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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소설은 독자와 평론가에 의해 평가된다. 작가는 작품을 내어놓고 한발짝 물러서서 자신의 글에 관한 논의들을 바라보는 것이 보통이다. 대개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하며 작품에 내려지는 평가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하거나 독자의 질문에 반응하지도 않는다. 대개의 작가는 이런식으로 작품속에 숨기를 원한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출판하고 3년뒤 이 책을 집필했다. 물론 에코도 이 책에서 장미의 이름에 관한 독자 질문과 평론가의 평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독자를 위해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많은 예시, 적절한 비유를 통해 친절하게 나열하고 있다. 텍스트를 통해 만나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 독자의 해석에 의해 얼마든지 자의적일 수 있는 해석의 문제,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글쓰기란 어떠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등, 이책에는 글쓰기와 독자에 관한 수많은 담론들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어설픈 작품 설명서도 아닌, 일방적 논조의 작가론도 아닌, 이책은 글쓰기와 글읽기에 관한 너무나도 훌륭한 이론서 이자 지침서 였다. [인상깊은구절] "화자는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마련하지 말아야 한다. 화자가 작품의 해석까지 마련하는 짓은 해석을 잘하는 기계 한대 마련하는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나라면 시적 효과를, 고갈되는 법이 없이 계속해서 다른 독법을 생성시키는 텍스트의 기능이라고 정의 하고 싶다." "소설의 세계를 구축해 놓으면 언어는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메세지 수용의 불가능성은, 수용불가능성 자체가 이미 재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이상 실험소설의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없다" "책을 쓰는데는, 나 자신의 것일 수 없는 강박적인 생각이 따라붙는다. 그것은 책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고, 결국 범인을 캐고 들어가면 우리 모두가 유죄라고 하는 생각이다." |
| 언젠가, 대학시절에 도서관에서 이책저책 뒤지다가, 장미의 이름을 발견했다. 움베르트 에코.. 움베르트 에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낯익은 이름이었고, 생각해보니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이건 소설인지, 철학 , 역사 연대기인지 구분이 안가는 방대한 내용과, 난해한 글귀들... 결국,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춰서 대충 그 줄거리만을 읽게 되었다. 올 여름이 끝나갈무렵, 갑자기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이번엔 꼭 뭔가 이해하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은마음으로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를 받아들고 열심히 읽었다. 글쎄..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는 비단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 한권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소설을 이해하는 태도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결코 이것이 장미의 이름의 해독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에코의 집필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미의 이름 속으로 들어가실 분들, 준비되셨다면, 창작노트를 통해 작은 열쇠라도 얻어 가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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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미의 이름'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중세에 관한, 두근두근한 미스테리, 철학적 성찰이 가득한, 읽는 재미, 그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모처럼 만난 좋은 책에 내 나름대로의 경의를 표하는 방법으로, 그 책을 쓰게 된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야만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보다 솔직히 말한다면, 원체 난해하기로 유명한 에코니만큼, 그의 목소리를 통해 장미의 이름을 쉽게 이해해보려는 속셈이였다.
책을 받아들었을때, 나는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썼던 독이 묻은 책장의 트릭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 슬슬 불안해졌다. 그리고 몇 분뒤, "화자는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마련하지 말아야 한다"
는 에코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것으로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깐 이 책에서, '창작노트'라는 제목에서 기대하게끔 한 창작에 관한 그의 노하우랄까 비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담 '창작노트'란 제목이 내용과 동떨어져 있다고 중얼중얼거리며 에코의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가득 들어있는 이 책의 제목은 '작가론'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제목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독자를 조직하는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건 거참...어릴적 많이 해보았던 스무고개 문답 놀이를 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의아해한다. 그리고 그는 대답한다. 그러나 그 대답 역시 진정한 대답은 아니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어딘가 그에게 속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제목에 특별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니!
"침묵을 지킴으로써 다른 독자들에게도 텍스트 자체를 통해 문제의 해석에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점쟎게 충고하는 에코의 말을 듣고서야, 난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나를 서너번 쯤 놀린 후에야 에코는 비로소 천천히 '장미의 이름'에 대한 자신의 창작과정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왜 배경이 중세여야 했는지, 액자소설이란 양식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소설이 이루어진 수도원의 모습과 시간, 미궁등등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내야 했던 많은 어려움, 캐릭터만의 언어, 암시적 간과법- 언급의 회피를 통한 직접적인 언급이란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나는 아드소가 부엌에서 여자를 만났다는 얘기를 믿지도 않거니와 할 시간도 없어.' 이 기법만으로도 그의 교묘함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글쓰기의 리듬, 탐정소설과 역사소설에 대한 이야기...... 내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 부분들이었던 것 만큼 나는 찬찬히, 주의깊게 이 부분을 읽어내렸다. 그리고 그 때였다. 에코가 털어놓고 있는 '장미의 이름'에 대한 비밀을 흐뭇하게 즐기고 있는 그 때, 에코는 내게 한방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말은 '장미의 이름' 앞부분이 너무 어려워 읽기 힘드니까 줄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그의 친구들과 편집자들에게 던진 말이지만.... 실상 그의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를 겨냥한 말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어서 빨리 비밀을 밝혀달라고 재촉하던 '나'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보는 소설의 재미를 모조리 망각했던 '나' 작가이기도 하지만, 대학교수이기도 한 에코의 따끔한 가르침을 통해 수수께끼는 풀렸다. '장미의 이름'을 제대로 읽는 법이란 읽는 사람 각자의 마음에 있다는 것!! [인상깊은구절] 원고를 읽어본 내 친구들과 편집자들은 처음의 백 페이지를 줄일 수 없느냐고 했다. 너무 어려워서 읽으려니까 진땀이 나더라는 것이다. 나는, 두 번 생각해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