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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에 일본어판 <母>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기다린지 1년, 드디어 강상중 저자의 새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저자분은 내가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분이라, 이 리뷰의 내용과 별 갯수만을 믿고 책 주문하지는 마시라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자비로 구입해 읽은 책임도 아울러 밝힌다.)
위에 인용한 부분처럼, 일본 구마모토에 와서 고생끝에 사업이 성공한 이후에도 고국의 무속 풍습을 지키며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 부분은 마치 문화인류학 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외교포분들을 보면 이미 고국에서는 사라진 풍습을 그대로 지켜 가시거나, 고국보다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 사고방식을 가지시는 경우가 많아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는데, 이 책에 드러난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을 알겠다. 서가에 간직하고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머릿속 복잡해질 때마다, 나를 사랑하지만 나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애정표현 방식을 지닌 내 어머니와 소소한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틈틈이 꺼내 읽겠다. 벌써부터 이 저자분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저자 소개는 생략했으니 혹시 저자에 관심있으시다면 내 리뷰 [재일 강상중]개인과 역사는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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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책- 강상중의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어디서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상중의 어머니에게 가면 그 무게는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그건 그의 어머니가 겪었던 시대의 중량감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16살 봄에 혼처로 정해진 남자를 찾아 주소만 가지고 일본에 온다. 그리고 찾아온 해방, 하지만 조국의 혼란 등으로 귀국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남편과 더불어 벌인 고물상이 자리를 잡아서 결국 구마모토에 정착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국 여인이 평생 지고 가는 한을 그대로 채득한 분이다. 거기에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혼란 중에 숨진 아들 하루오를 몸주신으로 모신 듯 무녀와 같은 특징을 가진 어머니는 그 특유의 느낌과 판단으로 이 시대를 헤쳐간다. 그리고 강상중은 그녀가 낳은 세 번째 아들이면서 가장 빼어난 디아스포라의 정신을 이어받은 지식인이 된다.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는 들추어보다가 말았기에 이 책은 내가 읽은 그의 첫 책에 가깝다. 우선 놀라운 것은 그가 글을 다루는 능력에 있어서 흠잡을 데 없이 완결한 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정체성 등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그는 대학 2학년때 한국을 방문해 보고 그의 피 속에 있는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인정하기 이른다. 책을 이루는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 이와모토 아저씨, 숙부인 강대중의 삶은 당대를 넘어오던 이들의 거친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때 어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은 앞서 말한 첫 아들 하루오의 영혼과 그녀가 중시했던 제사, 저자가 생경스러워했던 무속의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식은 쇠퇴하고 대신에 남편과 자식의 변화가 어머니의 인생에 더 깊게 각인되어 더 완벽한 이성을 이루게 된다. 어머니는 고향인 진해를 두 번 다녀간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와 만년이 되어서다. 그리고 그 길과 마음은 다시 아들들에게 전해져서 언제나 고국이라는 정서를 뼈속에 안고 살아간다. 책 표지의 언급처럼 역도산, 정대세, 추성훈, 이충성 등의 민족 정체성은 혼란을 넘어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묘한 정서가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혼돈이 덜한 중국 동포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복잡한 정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연원을 의미있게 보여주는 정겨운 책이다. 그 혼돈의 시대를 현명하게 건넌 아름다운 현자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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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 한국인들은 어떻게 국가 없는 나날을 견뎌왔을까. 강상중은 자신의 어머니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다. <어머니>는 국가가 없는 세계에서 철저한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은 한 재일한국인 여성의 이야기다.
흔히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그 문장의 표본을 보여준다. 그의 어머니는 열여섯에 나라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철을 주운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심지어 갈 곳이 없는 같은 조선인 출신 과부, 이와모토 아저씨까지 떠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녀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말을 중얼거리거나 어릴 적 살던 고향인 진해 산천에서 부르던 "한숨 같은 노래"를 중얼중얼 읊조리고는 했다. 그러한 말들은 타향살이를 견뎌내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배움이 얕은 자신을 한탄하곤 했는데, 자신의 '난민 같은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단지 배움이 얕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엄연히 태어난 나라가 있는데 나라가 없는 국민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나고 자란 진해가 바로 지척인데 갈 수 없는 땅이 되었고, 이미 몇십 년을 살아온 일본에서는 '조센징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다니는 개인의 삶은 이토록 한스럽다. 역사는 돌고 돈다. 70여 년 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지난하게 살아가던 강상중 어머니의 삶은 2014년 4월, 국가에 의해 아이들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에게 바통을 넘겼다. 분명 헌법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1900년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안 되었고, 2014년의 국가는 돈과 탐욕에 눈이 멀어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 그들은 생존이 기본 과제인 삶에서 실체 없는 국가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짜피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살던 국가따윈 무시하고 각자도생으로 발길을 옮기면 그만일까. 강상중 어머니의 지난한 삶이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국가라도 그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결국 비극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타지에서 눈물 흘리던 재일한국인의 삶, 세월호와 함께 잠겨 사라진 300여 명의 삶, 개인의 희생은 이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우리는 탐욕으로 침몰하는 국가를 똑똑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들이 아이히만이 되는 모습마저 잊지 않고 기록해내야 한다. 그리고 자꾸만 그들의 탐욕에 저항하고 모여 외쳐야 한다. 무너지는 국가를 바로잡는 길을 그것밖에 없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비극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단, 우리가 눈을 감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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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의 역사를 간단히 하면 이렇다. ‘처음엔 필요가 없었고 필요가 생기자 처절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안에는 어머니라는 카데고리로 묶인 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있다. 그녀들은 온갖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곳곳에서 받으며 세월의 흐름을 온몸으로 버텨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이론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다. 그러니까 교과서나 시사주간지 따위에서 짜맞춰진 조각 지식들. 이런 건조했던 앎에 강상중의 <어머니>가 생생한 색을 입혔다. ‘그런 상황에서는 참 힘들었을거야’라는 막연한 생각이 그 시대를 살아낸사람들 관점에서 이해하게되는 구체적인 드라마로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변화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건들에 하나씩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S도 그들만의 역사와 명분, 그들의 어머니가 있을 것이고 시리아난민도 타국에 유입되어 지난한 역사가 쓰여지고 있을테니. 뉴스 기사를 접하면서 사실 뒤에 숨은 그들의 드라마에 관심이 생겼다. 책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의 어머니는 재일조선인의 어머니다. 약소국의 국민으로, 일본 사회에서의 소외, 가부장적 세계안에서의 약자로서몇 겹에 걸친 사회구조적 약자. 기본교육에 소외되어 문맹일 확률이 높고,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채 무방비로 방치된 삶을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이들이 ‘사회적 최약자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회적 약자’들은 어쩌면 인권이라는 의미를 모를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기도 어려워 할 수 있고,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사회적 지식인의 자세는 뭘까? (여기서 사회적 지식인이란 단행본 추천사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 부터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 아는 사람들 까지 쯤으로 정의하면 되겠다.)
재일조선인 2세인 서경식은 <시의 힘>에서, 사회적 지식인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권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회적 지식인들은, 교육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의 표면적인 현상을 통해 일방적으로 상대를 규정하고 해석하는 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집안일로 바빴는데 오늘은 정치범의 어머니가 되어 각종 조사를 하거나, 피해자인줄 알았는데전쟁의 역사를 들먹이며 위안부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말들로 약자의 삶을 해석한다. 사회적 지위나 발언권을 앞세워 약자에 대한 해석의 권위를 남발하는건 뉴스 뿐 아니라 내 일상에도 들어와 있다. 정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무의식적으로 나도 사회적 약자를 평가하고 해석했다. 오늘도 나는 일상과 미디어에서 다양한 모습의 사회적 약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나오기까지의 그들의 삶을 색을 입혀 상상해 본다. 이어 섣불리 내가 아는 기준으로 판단하고 규정했던 시선을 거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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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는 작가의 '어머니의 삶'을 통해 재일교포들의 고난과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을 통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자이니치(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삶을 다큐멘터리 보듯 관찰할 수 있었다.
전쟁의 패배로 인한 국가적인 궁핍에 자이니치로서의 차별대우까지 더해져 그들의 삶은 신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16세의 나이에 여자의 몸으로 혈혈단신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기 위해 타국으로 떠난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가 겪었을 어려움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하늘을 향해 던질 뿐 그 어떤 대답도 기다리지 못한채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 또다시 내던져지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서두 글을 통해, 괴로울 때나 슬플 때, 또는 몸이 고달플 때면 항상 기도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저 세상으로 간 조상들과 대화를 도모하고, 또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는 것 말고는 살아갈 아무런 힘도 얻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 그런 어머니를 보고 강상중 교수는 과거의 유물에 집착한다며, 비합리적이라며 창피함을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머니가 늘 붙잡고 있었던 '기도의 세계'야 말로 지금 이 세상, 합리성과 경제성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꼭 필요한 것중의 하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피드로 경제성장을 이룬 자랑스러운 국가의 국민으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옆집 사람이 굶어 죽어도 알 수 없고, 알아도 알고 싶지 않은 '효율성'의 삶만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한편 이책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강상중 교수의 작은 아버지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다. 패전 후 한국으로 돌아온 숙부 강대성은 보란 듯이 변호사로 성공적인 삶을 누린다.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사 청산은 커녕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는 건 출세에 커다란 플러스 요인이었을 것이다. 거꾸로 가문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항일 투쟁을 했던 애국자들은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아본 채 잊혀졌다. 기회주의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돼버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 모든 것들이 시발점이 되어 종교비리, 사학비리, 언론비리, 정경유착 등의 문제들이 결합되어 지금 우리나라의 모순으로 남기 때문이다. 도저히 어디서부터 손 대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커져버린 문제들. 따지고 보면,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나 작은 아버지나 모두 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 쳤을 것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 한 짓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혼자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우린 모두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공동체가 살아야 진정한 혼자만의 삶도 유지될 수 있다. 어머니의 기도도 단지 '나와 내 가족만 잘 살자'는 기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