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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거 줄께.' 미치코 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 좋겠다, 좋겠어.' 스즈 짱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언제나 '고마워' 라고 말했다. '미안해'와 같은 뜻을 담아서 '고마워' 라고 되풀이했다. - P.55 , [좋은 거 줄께] 중에서 -
말버릇처럼 '좋은 거 줄께' 하고 말하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치코 짱! 새로 전학온 나카무라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치코 짱의 '좋은 거 줄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카무라에게도 이어지고 있었다. 전학을 와서 가장 먼저 사귄 친구는 미치코 짱을 꽤나 받드는 스즈 짱이다. 미치코 짱의 집은 치도리야 백화점을 운영하고, 스즈 짱네 집은 그 곳에서 만월당이란 가게를 하고 있다. 스즈 짱의 부모님은 항상 치도리야의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래서인지 스즈 짱은 몸소 미치코 짱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 나카무라에게 고민이 있다. 유통그룹 본사에 근무하던 나카무라의 아빠는 이번에 이 작은 마을에 쇼핑센터를 만들고 관리 책임을 맡게 된것이다. 이 쇼핑센터 덕?에 치도리야 백화점은 점점 쇠락해가고, 치도리아와 연관된 미치코 짱, 스즈 짱 등 친구들에게 미안한 나카무라는 아빠의 직업이 자동차 판매원이라 거짓말을 한다. 치도리야 백화점은 위기에 처하고 결국 미치코 짱은 전학을 가게된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게된 나카무라, 스즈 짱... 친구도 무엇도 아닌것 같았던 그 아이들에게 따스한 우정이 가슴속에서 꿈틀 거린다.
시게마쓰 기요시!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나는 이 작가, 느낌이 참 편안하다. 나오키 상과 야마모토 슈고로 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 일본 순수 문학을 이끌고 있다는 이 작가 시게마쓰 기요시는 조금은 익숙한 이름인 '아사다 지로'를 떠올리게 한다. '철도원', '가스미초 이야기' 그리고 '저녁놀 천사' 등의 작품들로 따스한 감동과 여운을 전해준 아사다 지로식 향수와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순수한 어린 시절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고 그 소중했던 시간들을 다시금 일깨우는 듯한 시게마쓰 기요시의 거꾸로 가는 시계속에 바로 이 작품 <재회>가 있다.
'장사는 전쟁이야'라고 나카무라의 아빠는 말한다. 하지만 나카무라에게 아마도 그런 말은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어른들의 사고가 아닌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책이 물든다. 이 작품이 <재회>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아마도 어린 시절의 추억과, 소중한 그 시간속 그 누군가와, 잊고 있던 그 순수함에 대한 '재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재회'는 그렇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책속에는 모두 여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처음 소개했던 '좋은 거 줄게'를 시작으로 '허풍쟁이 삼촌', '영원', '찰리에게',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그리고 'Long Long Ago'까지... 마지막 단편인 'Long Long Ago'는 '좋은 거 줄께'에서 마지막에 등장했던 '세오'라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20년 만에 다시 그 마을, 학교로 되돌아와 6학년때 전학을 갔던, 세오의 첫사랑 미치코 짱을 추억하는 이야기로 꾸며진다. 어렵게 그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지만... 어찌 되었건 이 또한 또 다른 '재회'로 매듭지어진다.
'아이를 낳으면 ..... 그 부모는 죽어선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래 살아야 해.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그거란다.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 있으면 그것만으로 아이는 행복한 거야.' ..... '부모는 무리하면서까지 자식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아도 돼. 하지만 슬픈 일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죽어버리면.... 아이한테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단다.' - P. 125 , [허풍쟁이 삼촌] 중에서 -
여섯편의 단편 모두 그것이 현실이건 회상이건 간에 아이들이 가진 순수한 시간속 이야기를 전해준다. '허풍쟁이 삼촌'에서 히로시의 아버지가 들려준 위에 적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보니 어느새 나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는 죽어선 안 된다.... 이 말 속엔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비참하게 찢기고 흩어진 현실속 '가족'이란 이름 속에서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고 행복은 무엇인지, 부모와 자식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엄마, 운이 나빠도 행복할 수는 있는거지...?' 내가 불쑥 내뱉은 말에 엄마는 '운이 좋고 나쁜건 행복하고는 상관없겠지. 행운과 행복은 다른 거니까.' 하고 웃으며 대답하곤 탁자에서 멀어졌습니다.' - P. 360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중에서 -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가는 이런 물음을 던져놓는듯 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아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이름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이 현재 나 자신에게 놓여진 하나의 과제이자, 현재의 행복이자, 미래의 희망이 아닐까. 특별한 사건도 없고 빼어난 이야기꺼리도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게마쓰 기요시의 추억 여행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행복, 미래의 희망까지 모든것을 들려준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우리 삶의 특별한 이야기가 <재회>속에 담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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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력이 남다르다 했더니, 역시 나오키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다. 상 받는 사람의 글은 역시 다름을 이번에 또 한번 실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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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청소년 문학 43 <재회>를 모두 읽었답니다.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시공사/421 페이지/A4(14.8*21)사이즈
이 책은 여섯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에피소드인 <좋은 거 줄게>를 읽는 동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답니다.
중3때 국어선생님께서 소나기의 후속편을 각자 지어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 주셨는데, 전 그때 주인공인 내가 청년이 되어서 소녀와 흡사한 어느 여성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썼었거든요. 발표날 선생님께서 지목한 한 아이가 자신의 글을 읽어내려갔구요, 발표한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반은 웃음바다로 바뀌었답니다.
주인공 소년이 꿈을 꿨는데 산신령이 나타나서 산삼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 산삼을 죽을 고생을 해서 얻은 소년이 그걸 아그작아그작 씹어서 죽은 소녀에게 먹여 다시 소생시킨다는 내용이었거든요.
그 아이의 투박스러운 표현들과 엉뚱한 발상은 반 아이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지만 제게는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거든요. 그 아이의 때묻지 않은 유쾌한 시각이 부러웠구요, 저의 시각이 일어날법한 사건 속에서 얽매여 좁아져있는 반면, 그 아이는 여주인공이 죽는 다는 거 기본적인 발상 조차도 깨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본인의 마음내키는데로 자유롭게 써 내려가더라구요.
이 글의 여섯가지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잘 짜여진 구성인터라 긴장감있게 읽어지구요, 작가가 어떻게 결론을 내려줄지 무척이나 희망을 가지고 읽게 되거든요. 하지만 작가 또한 상식선에서의 최대한의 배려를 한 해피엔딩의 결말을 내리는 걸 보면서 전 만약 중3때 그 아이였다면 어떤 결말을 지을 지 사뭇 궁금해졌답니다.
만약 그 아이였다면 <좋은 거 줄게>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중재해서 치도리아와 심포니가 공생할 수 있는 쪽으로 결론짓지 않았을까? 만약 그 아이였다면 <허풍쟁이 삼촌>에서 켄타로 삼촌의 재산을 나누어서 히로시 삼촌이 헤어진 가족이랑도 재결합하고 가족들끼리도 모두 화해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론을 짖지 않았을까?
매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마음 한 편이 시큰해지면서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 것인가 긴장되더라구요, 그리고 역시나 상식선에서의 최선의 결말이 나더라구요.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한동안 마음 한 켠이 시릴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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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순수문학작가로 청소년소설에 특히 일가견이 있는 시게마쓰 기요시重松淸의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결론적으로는 희망과 기적을 그리는가 싶지만 빛이 비치는 곳까지 더듬어가는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걷다보면 때론 부딪치고 넘어지기도 하며 음지와 양지, 평지와 언덕을 오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진리를 기조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리얼하고 묵직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진한 감동을 준다고 해서 마냥 따스함이 배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글픔, 애달픔, 안타까움, 미련, 후회 같은 감정들을 맛보게 한 후에야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는 그 자체야말로 행복 아니겠니?”라는 위로를 슬쩍 던져주는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러 형태로 다시 마주한 ‘만남’을 모티브로 하는 단편집 <재회>는 수록작 「Long Long Ago」를 개정한 제목으로 표제작을 비롯해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된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좋은 거 줄게 いいものあげる
허풍쟁이 삼촌 ホラ吹きおじさん
영원 永遠
찰리에게 チャ-リ-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人生はブラの上を
Long Long Ago 再會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순위를 매기는 일이라는 것을. 놀이보다는 공부. 공립보다는 사립. 이 아이보다는 저 아이. 나는 반에서 몇 등. 나는 저 아이에게는 뒤떨어지지만 이 아이에게는 이기고 싶다. 순위를 매기면 서열이 생겼다.
아이들도 자신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어른이 되고 나면 깡그리 잊어버린다. 자기 앞가림하는 것만도 급급한 나날의 계속이니까,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던 어린 시절이 좋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히려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미성년이기에 겪어야하는 아픔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비교적 화목한 가정에서 별다른 굴곡 없이 학교를 다녔지만 되짚어보면 이런저런 성장통은 분명 있었다. 당시는 세상 고민을 모두 껴안은 것 같기도 했고 또래집단에 존재하는 미묘한 갈등이나 경쟁의식에 피곤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솔직히 성인이 되어 내 손으로 돈을 벌고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게 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찾은 기분이었다. 어느 사회이건 서열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 상처를 입는다 해도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점점 더 심각해지는 교육환경과 폭력에 노출된 현 세태를 바라보며 무관심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한탄을 금할 길 없다. 하지만 ‘모든 행운과 행복은 나만 비껴가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에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행운’과 ‘행복’은 다른 거라는 작가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운이라는 건 변명을 위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을 뿐, 자신의 길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행복 또한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임을 나 역시 새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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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내가 제일 사랑했던 장면은 그 장면이다. 꿈에서, 성인이 된 선덕여왕이 어린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가야한다'고 어깨를 토닥이던 그 장면. 어렸던 그녀는 꿈에서 그토록 다정하고 애틋하게 자신을 끌어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죽음을 앞둔 어느 날인가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험하고 외로운 인생을 시작한 자신을 끌어 안아 준 것은 다 자란 자신이었음을.
나에게도 안아주고 싶은 '초등학생인 나'가 있고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은 '초등학생인 나'도 있다. 작가 시게마쓰 기요시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나를 명확하고 실체적으로 그려 작품에 담았다. <재회>에 담긴 6가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기억 속에서 흐릿하고 막연하게 존재하던 '어린 나'의 미묘하고 섬세한 기분과 감정들이 마치 어제의 일인것처럼 새록새록 살아난다.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서러움과 불안함. 잊고 있었던 그 복잡한 심정을 떠올리게 되면서 나는 작품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이게 된다. "아이로 사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너무 어려워요."
좋은 거 줄게를 비롯한 6작품 속에서 화자는 대부분 어른이다. 그러나 어른의 삶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각자의 특별한 계기 혹은 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의 느낌과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당시로서는 미처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서야 알아차리게 된 감정과 생각들까지 어우러지며 그들의 회상과 독백은 더 다양하고 맑은 빛을 발한다. 꾸밈없이 진솔하고 담백한 필치의 회상과 독백은 수채화처럼 평온하고도 아련한 감성을 전한다.
6작품 모두가 다 맑고 고운 느낌이지만, 그 중에 유난히도 많은 공감과 감동을 주는 것은 '찰리에게'와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의 두 작품이다. '찰리에게'는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찰리 브라운에게 전하는 화자의 편지다.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한 불운의 캐릭터 찰리에게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된 화자는 '너라면 어린시절의 나를 이해하겠지.'라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어린시절, 무엇에든지 열심이었고 잘하고 싶어서 능력보다 의욕이 앞섰던 그 시절의 자신이 가졌던 순수함, 서운함, 울분과 불안함 들에 대해 화자는 어른의 눈으로 덤덤하게 이야기 하지만 그게 더 가슴이 아프고 애틋하다. 아마 나도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 어린 마음에 동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은 어눌하고 둔해 늘 아이들의 놀림이 되었던 '무'라는 친구와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는 주인공의 회상이다. 아이들의 놀림이나 괴롭힘에 위축되지도, 분을 품지도 않았던 특별한 아이 무에게 주인공 자신은 '착한 천하며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던 비겁한 아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한다. 이기적이고 비겁했단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책, 친구 무에 대한 속죄가 회상의 전체에 흐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말미에 연락이 끊어졌던 무의 새해 인사 엽서를 받게 되는 주인공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게 되면서 이야기는 잔잔한 기대와 설렘을 전하며 막을 내린다.
시게마쓰 기요시는 어린 아이들의 미묘하고도 여리고 복잡한 심리를 자연스러우면서도 섬세하게 그린다. 과하게 꾸미려고도 하지 않고 너무 지나친 묘사도 피한다. 모든 화자들의 회상은 일기를 쓰는 것처럼 담담하고 진솔하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들이 더 애틋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놓쳤던 아쉬운 순간들, 두고두고 돌이켜보며 후회하게 되는 여러 사건들이 나에게도 있으니까. 껴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은 ' 어린 나'가 나에게도 있으니까 <재회> 속에 담겨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재회> 속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어린 시절을 재회하듯, 나 역시 어린 나를 재회하기 때문에 말이다.
옛날에는,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문제를 ‘나머지’없이도 풀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머지’가 생기지 않는 나눗셈법을 알게 될 거라고. 그래서 지나간 일 때문에 끙끙거리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도 ‘나머지’는 줄어들지 않았다. 줄어들기는커녕 어린 시절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친 ‘나머지’가 있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머지’가 생기지 않는 나눗셈법을 터득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나머지’를 쌓아 두는 창고가 넓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p144~145
나는 늘 그래왔다. 어른이 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어른으로 사는 것은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린 나를 재회하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시절을 잊었거나 묻어두고 살아온 것 뿐이다. 아이로 사는 것 역시 그 조그만 마음에 꽉 찰 정도의 힘겨움이 있다. <재회>가 눈물겹고 애틋한 것은 잊었던 어린아이로서의 마음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라서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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