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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열린책들)』의 목차를 살피다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1번부터 11번까지의 목차 중 제일 위에 ‘매그레 반장의 범죄’라는 소제목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체 매그레 반장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매그레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분명히 설명 가능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매그레를 향한 신뢰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p.7)’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생폴리앵에 지다』는 매그레 반장이 노이샨츠 역에서 젊은 사내를 뒤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반장은 사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구입한 뒤 두 개의 가방을 슬쩍 바꿔치기한다. 사내는 매그레가 바꿔치기한 가방을 들고 값싼 숙소로 들어가는데 가방 안에 헌 신문지밖에 들어있지 않은 걸 확인하고선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입을 쩍 벌려 총구를 들이대고는 방아쇠를 당(p.13)’겨버린다. 숙소에서 발견한 것이라고는 여권이 전부다. ‘루이 죄네’라는 이름의 사내는 오베르빌리에 출신의 기계공이었다.
- 여러분은 여러분 방식대로 수사를 하시되, 저도 제 수사를 계속하도록 해주십시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사람은 자살을 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고… - 이자를 미행해 온 겁니까? - 설명하자면 깁니다…. (p.15)
파리 오르페브르 가의 수사국 본부에서는 그날 밤 매그레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 그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실제로 거의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p.16)
매그레 반장이 사내의 뒤를 쫓게 된 건 우연이었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브뤼셀에 갔다가 여유 시간이 생겨 호기심에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손님이 거의 없는 카페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내가 매그레 눈에 띄었는데 초라한 몰골과 다르게 1천 프랑짜리 지폐를 수북이 꺼내 세고 있었다. 사내는 지폐다발을 포장한 다음 우체국으로 가서 내용물이 인쇄물이라고 표기한 후 파리에 사는 ‘루이 죄네’ 앞으로 발송했다. 우체국을 나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내를 따라나서기로 한 건 서둘러 파리로 돌아가야 할 일이 없었고 사내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막연한 인상(p.19)’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내는 ‘가방을 도둑맞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p.23)’ 한 것이다. 죄책감을 느낀 매그레는 사내에게서 슬쩍한 가방을 살피지만 고작 낡은 양복과 더러운 셔츠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매그레가 찾은 거라고는 가방 안에서 발견한 옷이 사내의 것인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부랑자가 그토록 소중히 가방에 지니고 다닌 것, 얼마나 소중했던지 잃어버렸다고 해서 목숨까지 버린 그것은, 남의 옷이었다!(p.24)’
매그레는 사내가 죽은 이유를 찾아 나서려고 했지만 단서가 없었다. 사내의 여권이 위조 신분증이었기 때문이다. 자살한 사내의 이름은 루이 죄네가 아니었다. 매그레는 이 정체불명의 사내를 어디서부터 찾아나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시체 공시소로 가짜 루이 죄네를 보기 위해 ‘조제프 반 담’이란 사내가 찾아왔다. 조제프는 ‘호기심에 한번 와보고 싶었을 뿐(p.28)’이라고 둘러댔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신문에 난 짧은 기사를 눈 여겨 보았을 리 없다. 매그레의 조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매그레 시리즈는 작년 겨울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부터 시작해서 『생폴리앵에 지다』까지 총 여덟 권 읽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심농의 놀라운 추리력에 감탄과 탄성을 질렀지만 지금까지 읽은 여덟 권 중에서 단연 최고를 꼽으라면 『생폴리앵에 지다』를 선택하겠다. 읽은 책보다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이 남아있어서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생폴리앵에 지다』가 최고다. 이야기꾼 심농의 추리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라서 그렇다. 매그레 반장의 놀라운 직감이 냄새를 맡은 사건은 26일만 지나면 공소시효가 지나는 10년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 사람은 자살을 했어요! 입증된 사실이지요. 고소한 사람도 없고 따라서 경찰이 수사할 일도 아닙니다.(p.90)
수사할 일도 아니라며 큰소리 친 사내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수사가 진행될까봐, 매그레가 그들을 잡아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 아버지가 된 사내들은 10년 전 크리스마스 밤 <묵시록의 동지들> 모임에서 술기운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모임의 구성원 중 살아남은 사내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었다. 매그레는 ‘어쨌든 아이가 다섯이나 되지 않소…(p.203)’라는 말을 남기고 세 명의 사내와 헤어졌다. 매그레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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