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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한 예의] 동물을 존중할 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가 만드는 더 큰 차이
"[동물에 대한 예의] 동물을 존중할 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가 만드는 더 큰 차이" 내용보기
대학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며칠 뒤에 구입했던, 그만큼 내가 알아야 할 것이자 지녀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제목만 보고 집어든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만 보고 있어도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리마인드 되곤 했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느지막히 읽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심이 꽤 있는 편이다 보니
"[동물에 대한 예의] 동물을 존중할 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가 만드는 더 큰 차이" 내용보기

 

 

대학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며칠 뒤에 구입했던, 그만큼 내가 알아야 할 것이자 지녀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제목만 보고 집어든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만 보고 있어도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리마인드 되곤 했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느지막히 읽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심이 꽤 있는 편이다 보니 재밌게 술술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따분했다. 자료의 양이 굉장히 풍부해서 저자의 치밀한 자료 조사 과정이 잘 느껴지긴 했지만 지루한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꽤 강경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서술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긴장하게 돼서 피곤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상당 부분 동의한다. 물론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일반적인 답변이긴 했으나 실천적인 결론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의 리마인드 과정을 겪을 수 있었다. 그만큼 또 죄책감을 느껴야 했지만 말이다. 나는 채식을 포기한 인간이다. 우리의 채식은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여러 이유에서 분명히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나를 가장 동요하게 했던 것은 식인 부족의 뇌에서 광우병과 같은 문제가 발견되었다는 의학 보고였다. 거기엔 육식을 해야 하는 사자가 풀을 먹으면 소화를 해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처럼, 인간도 육류를 섭취하면 육류를 섭취한 소처럼 몸이 병들게 된다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인간은 잡식성이 아니라 초식성에 가까운 식성을 지닌 종이라는 뜻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접하고도 나는 채식에 실패했다.

 

 

내가 그나마 선택한 것은 나를 먹여주는 동물에게 감사하며 적당량을 섭취하는 것이다. 저자는 필요 이상으로 도축 등을 해서 동물의 생명을 '낭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낭비의 지점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지점을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동물에 대해 예의를 갖추게 되면 무자비하게 동물의 생명을 다룰 수는 없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다면 전 인류가 섭취하는 동물의 양은 줄어들 것이고 인간과 동물은 자연계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내가 바라는 지구의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 예의를 차리기 전에 예의를 차릴 대상이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유난떨며 걱정하는 나부터가 올 설 연휴에 갈비탕이며 수제햄이며 너무 많은 육류를 섭취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동물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죄책감과 같은 선택 후의 감정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동물을 존중하는 나는 내가 지나치게 섭취한 육류를 생각하며 다음 번 저녁 식사에서 메뉴를 선택하게 될 때 육류 이외의 것을 먹기로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저자의 말처럼 현대인의 일반적인 식탁 풍경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생물에게 주체가 있다는 점이 존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특성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모든 동물이 생명의 주체로 존재한다고 볼 때, 우리는 그 각각의 동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즉 저마다의 동물이 가진 느낌이 무엇이며 동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개체들은 다른 개체들보다 '더 중요한' 생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에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온당하겠지만, 그들이 모두 정확히 똑같은 양의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192쪽)

 

 

자연 세계 전체를 개조해서 우리의 기준에 맞추는 것은 개별 동물에 대한 존중뿐 안이라 우리가 가져야 할 또 다른 종류의 존중에도 치명적일 것이다. 지구 상에선 20억만 년 동안 환상적이고 복잡한 생물의 세계가 발달하고 번성해왔다. 때문에 생물학을 연구하거나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누구나 경외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산업 개발, 벌채, 탄소 배출,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사냥, 목초지, 그 밖의 파렴치한 온갖 방법으로 자연 세계에 개입해왔다. 도덕적 훈계와 통제 역시 침입이다. 범고래 떼에 쫓기는 새끼 고래를 보호하거나 비좁은 뒤뜰에서 새를 보호하는 식의 두서없는 친절은, 인간에게 스스로 자비롭게 느끼게 하고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그 순간 우리는 그들을 지배하는 통제자가 되는 것이다. (198쪽)

 

 

낭비의 지점이란 다시 말해,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죽이는 동물의 수가 너무 지나친 지점이다. 동물을 죽이는 것이 그 동물에게 매우 무례한 짓이라고 본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100만 번이고 계속 반복해서 죽일수록 동굴인은 점점 더 무례해질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 이런 무례는 산같이 쌓일 것이고, 동굴인은 문득 자신에 대한 존중이 무척 작아 보이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존중할 줄 아는 그 동굴인은, 그제야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201쪽)

 

 

당신이 미국에서 고기를 먹는 경우, 당신의 식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죽은 동물은 그저 물건으로 다뤄졌고, 동정 없이 그저 신속히 처리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좀 더 신경을 써서 홀 푸즈 마켓과 같은 상점에서 인도적으로 사육된 동물을 구입해 먹으려고 노력한다면 그 '어떻게'라는 문제의 심각성이 약간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 홀 푸즈 마켓의 홍보 자료는 무척 매력적이다. 그림에 그려진 아이슬란드의 새끼 양들은 푸른 목장의 들판에 서 있는데, 미국의 거대 목축 시설을 빽빽이 메운 돼지처럼 갑갑하게 갇혀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뉴질랜드의 새끼 양들 역시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어린 새끼 양이라는 것이다. 이 동물들은 생후 4개월 무렵 도살당한다. 양의 생명이 지나치게 단축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39~240쪽)

 

 

수요에 맞춰 생산하는 방식은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 당신이 닭을 한 마리 덜 구입한다면 지금 당장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 있지만, 닭 한 마리를 덜 구입한 다른 모든 사람들과 힘을 합친 결과를 낼 수 있다. (324쪽)

 



l******e 2012.0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