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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코시 글,그림/이현경 역| 미메시스| 144쪽| 378g| 175*238mm| 2011년 04월 25일| 정가 : 9,800원 나는 애들 밥 굶기는 것과 전쟁이 싫다. 지킬 것이 있어서 싸우는 것이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유태인 학살, 고라즈데 인종 학살, 유태인이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탄압, 우리나라에서도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전쟁과 또 다른 학살이 전선이 아래 위로 움직일 때 마다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현재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관계로 학살이라는 표를 붙이지 않았지만 현재도 세계에는 보복적인 다양한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 또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지 알 수가 없는게 세상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혀 다른 생각을 갖은 사람이 더 큰 힘을 갖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공포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권력이라는 독도 모르는 바 아니다. 신을 믿으면 행복하고 평화로와야 하거늘 꼭 전쟁에 종교가 끼어 있는 것도 뭐, 선동하는데는 최고니까 그렇다는 것도 알겠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빰을 내 주라던 신을 믿는 종교 지도자도 선동에 앞장을 서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상대를 조금만 믿어보면 이런 끔찍한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좀 덜먹고 덜 싸면 될 것을 참.
우리는 자랑스럽다고 외치는 단일민족이다. 그리고, 국토 특성 상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내전이 일어나고 남의 나라 군인들이 몰려와 선을 그어 놓은 그 교류도 안되는 선을 국경선으로 60년 가까이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 민족끼리도 싸우고서 60년이나 등돌리고 있는데 다른 민족이라면 오죽할까 싶다. 최근에 보고 있는 책들에 보이는 나라들은 대부분 단일민족도 아니고, 종교가 섞여있고, 국경선도 모호하다. 불 붙일 여지가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웃으로 살고 절친한 친구이고, 심지어는 가족이고, 어떤 아이들은 다른 민족의 결합으로 만들어지기도 할 터이다. 그런 곳에 불씨를 던진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가 남이가'가 될 수 없는 정말 '남'인 이들의 화해가 쉽지만은 않아보인다. 그래서 아직까지 터키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언급하는 안되는 사건으로 남아있단다.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안전지대 고라즈데]에서 이웃에게 총을 겨눈 사람들을 보고난 후라 그런가 두 사건이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만 든다.
1894년 힌차크당 주도 하에 폭동이 일어났고 터키인들은 이를 진압한다며 1985년까지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탄압은 이어져 1914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아르메니아인들 중 일부는 터키군에 소속되어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일부는 러시아로 들어가 합류했다. 이 만화는 터키군이 군대 중에 아르메니아인 군인들을 추려 학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학살 와중에 살아남은 주인공이 겪게되는 일과 학살과 추방으로 자신이 살 자리는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덤덤하고 큰 설명없이 펼쳐진다. 그 이야기 속에 150만 명이나 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희생되었다. 학살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터키인이면서 아르메니안 편에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들이 아르메니아인의 대학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메즈 예게른(Meds Yeghern)은 아르메니아어로 대재앙이라는 의미다. 터키는 이 사건의 가해자로 아직까지 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단다.
단순한 흑백그림으로 표현한 작가의 그림은 충분한 느낌을 준다. 이 끔찍하고 강렬한 상황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그림체라서 좋았다. 만약 더욱 거친 그림체로 이 만화를 보게되었다면 다 읽기도 전에, 이 사건의 의미를 알려고 하기 전에 끔찍하여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상태는 좋다. 가볍고 들고다니기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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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기전에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어가기도 하지만, 가끔은 도서관에 들러 구비된 책들을 구경하며 눈길이 가는 책들을 발견해 책정보 살펴본뒤 흥미롭다 생각되어 대출하는 책들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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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또 지나가는 것이 역사이며 그 중 대부분이 잊혀지는 것이 순리이지만,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것들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왜곡되지 않고 있었던 그대로 기억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신대 할머니들 문제와 같은 것들..
2차 대전 중 연합군이 저지른 최대의 만행 중 하나인 드레스덴 폭격이 커트 보네거트의 책 <제5 도살장>에 의해 만천하에 더 알려지게 되었다면, 이 책에 의해 터키의 만행과 부끄러운 역사가 알려졌다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아르메니아 인 학살 사건.
1차 대전의 혼란스러움을 틈타 터키 안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 인에 대한 대대적인 인종 청소와 탄압과 학살로 무려 수백만에 달하는 무고한 아르메니아 인이 죽어나간 사건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유태인의 거대한 힘, 그리고 종전 후 경제 성장으로 입김이 세진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 이러한 힘을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 인들은 가지지 못했기에 그들의 억울한 역사는 기억되지 못해왔다.
이탈리아 출신의 신예 만화가 파올로 코시는 이 슬픈 기억되지 못한 역사를 되살렸다. 먹선과 같은 선과 농담으로, 서양식 그림체를 지닌 독특한 그림으로 그려진 이 역사는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했고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전달되었기에 더욱 생생했다.
과연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예에게 지금의 역사는 무엇으로 보상하고 있는가. 터키 사람들에게 '메즈 예게른' (아르메니아 어로 대재앙 이라는 뜻) 이야기를 하면 매우 꺼린다고 한다. 과연 감추고 싶을 만한 광기와 피로 얼룩진 시간이다. 그러나 감춘다고 될 일인가. 이 학살을 주도한 인물의 이름을 딴 거리가 수도 앙카라의 한 켠에 그대로 남아 기념되고 있는 한, 그들은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있는 섬나라의 꼴통들과 동급이다. 진정으로 기억하고 반성할 때에만 현세가 의미가 있는 것.
역사를 기억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비단 영웅들의 업적만을 기억하고 자랑스러워 함이 아니라, 이런 수치를 반성하고 새겨 반복되지 않도록 함에 있음을 우린 너무 쉽게 잊는다. 때문에 아픈 역사와 전쟁. 그 덧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되는 것이리라.
슬프지만 꼭 읽고 마주쳐야 할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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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터키를 가리켜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인터넷상에서 퍼진 말이다.
하지만 그런 터키가 사실은 일제 뺨칠만한 악랄한 만행인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저지른 나라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터키 정부는 적국인 러시아와 인접 지역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자칫 러시아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무려 200만이나 되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아예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고, 사막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고통을 겪고 죽어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만이나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이런 식의 박해를 통해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학살을 저지른 터키에 대해서 아무런 제제나 불이익도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보고 유대인 대학살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만이나 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살육되었는데 터키가 아무런 불이익도 겪지 않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저런 식으로 유대인 죽여도 뒷탈이 없겠다, 싶은 것이다.
숨겨진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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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구입했었다.
그닥 역사에 관심이 있지 않은 나였다. 고등학교때 국사는 평균을 유지하기 버거워했고, 국사도 모르는데 세계사랴..; 대학생땐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수업을 들었을때에도 기억나는 단어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는 말밖에 생각이 안날 정도로 내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이 책을 펼쳐보았을때 마치 애들이 보는 책같았다 그림체 또한 그닥 끌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C에 일어난 에르메니아인 대학살.
우매한 대중. 보고싶은것만 보고 듣고싶어하는것만 듣는 인간. 사람은 망각의 동물. true와 fact. 인간의 양면성. 무력에의 굴복.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춰볼수 있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하지만 가장 고귀한 것도 사람. 과거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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