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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불가지하고, 또한 아원자 레벨에서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늘 유연한 상태에 있으며 변화 가능성과 언젠가는 우세하게 되리란 희망, 즉 멋없는 단어를 쓰자면 승리의 희망을 안고 있지요. 이렇게 볼 때, 미래는 곧 게임입니다. 시간은 게임 규칙 중 하나고요.」 ― 책 속에서
이언 M.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 그 두 번째 책인 『게임의 명수』. 사실 첫 번째 책은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지만 그보다 이 책이 컬처 시리즈 입문서로 낫다는 추천을 받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분량도 적고, 구도도 좀 더 단순한데다가 컬처 시리즈는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가 아니므로 저 역시 이 책을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 구게가 어떤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모래투성이 사막에서 전투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미확인 비행체를 총으로 쏘아대는 게임, 즉 우리가 보통 SF 소설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분위기로 시작하죠. 하지만 이 분위기는 몇 페이지 못 가서 끝나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컬처가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 다소 난해하고 황당한 설명이 쭉 이어집니다. (해님빵나무, 야릇베리, 뜬숯싹 같이 원문이 궁금해지는 요상한 단어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걸 번역한 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솔직히 말해 이쯤에서 책 읽기를 그만두는 독자도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구게가 컬처를 떠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집니다. 어쩌다보니 구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 컬처를 대표하여 또 다른 사회인 아자드 제국의 게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게임의 정확한 규칙은 나오지 않지만 단순한 두뇌대결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을 반영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컬처의 유명한 게임 플레이어 구게와 제국의 정점에 있는 황제 니코사의 대결은 그야말로 컬처와 제국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컬처는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화폐나 소유의 개념이 없는 사회입니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해 대다수의 질병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성별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권력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마인드라는 인공지능이 사회를 관리합니다. 그야말로 유토피아에 가까운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에 비해 제국은 철저하게 약육강식에 따르며 지배와 소유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다른 사람을 잔혹하고 변태적으로 다루는 행위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제국 내에서의 계급은 게임의 승패로 결정되지만 게임은 순수한 개인의 능력 대결이 아니라 정부기관, 교육기관, 미디어 등의 개입으로 불공정하게 진행됩니다.
결국 『게임의 명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을 밑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컬처에서만 살아온 구게가 처음 제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마지막에 다시 제국을 떠나 컬처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그 여행을 함께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컬처는 유토피아이고, 제국은 디스토피아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컬처와 제국 중에서 어디와 닮았을까?
이언 뱅크스는 이언 M. 뱅크스라는 이름으로 SF 소설을 쓰고, 이언 뱅크스라는 이름으로는 SF가 아닌 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게임의 명수』는 이언 M. 뱅크스의 이름으로 발표한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말벌 공장』이나 『공범』같은 소설과 무척 비슷한 분위기가 납니다.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여러모로 신선한 느낌의 SF 소설이었습니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SF가 넘쳐나는데 유토피아를 다뤘다는 점에서부터 흥미로웠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되었다고 해서 인간들이 이렇게 싸우지 않고 별 문제없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남지만요. 또 컬처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사회여서 컬처인들의 모습은 '히피'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건 아마도 작가가 서양인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동양인 작가가 상상한 유토피아는 컬처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컬처 시리즈가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은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도 컬처와 컬처인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을 느꼈던 등장인물은, 아니 등장기계는 인간이 아니라 드론인 플레레-임사호였습니다.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구게한테 툴툴대기도 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주기도 하는 모습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어요!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SF 영화가 대세입니다. 일단 올 한해만 해도 <아이언맨 3>, <오블리비언>, <월드워Z>, <스타트렉 다크니스>, <퍼시픽 림>, <엘리시움> 같은 영화들이 개봉했죠. 스펙타클한 액션이 특징인 이런 영화들을 보다가 이언 M. 뱅크스의 소설을 읽으니 무척 새로운 기분입니다. SF의 세계를 확장해보고 싶은 분, 아니면 반드시 SF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독서 세계를 넓혀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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