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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풍수는 동양의 전통적인 지리과학이다. 그런데 최창조는 전통 풍수가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동감한다. 서양의 실증주의 지리학에 비하여 동양의 풍수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교감을 강조한 인문주의 지리학이다. "장소 곧 땅, 자신에게 의미 있는 땅, 많은 사람에게 상징성을 갖고 있는 땅은 중요하다. 사실 민족성이란 것도 그들이 사는 풍토에 대한 반응이지, 사람 그 자체의 흐름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니까 장소를 중시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풍수라는 관념이 있다. 그것은 과학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풍수는 지혜이자 관념이다."(11쪽)
그런데 최창조가 주창한 자생풍수는 문제가 있다. 단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에 근거해 명당의 조건을 최종적으로 확정짓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생풍수는 불교적인 유심론 색채가 너무 강하다. 전통 풍수는 도교적 자연철학과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환경결정론의 색채가 강한데, 자생풍수는 '일체유심조'의 불교적 색채와 '다 나하기 나름'의 개별성이 강하다. 이는 자생풍수의 비조인 도선에서 내려온 혈맥 때문인가 아니면 저자의 세계관 때문인가. 저자는 전통 풍수가 말하는 명당은 이제 조선팔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연적 풍수에 완벽한 명당이란 없으며 이상적인 명당은 언제나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자생풍수에 따르면, 도시 밀림 또는 아파트 수풀 속에서도 명당을 찾을 수 있고, 단칸방도 명당이 될 수 있다. 최창조가 정의한 자생풍수의 특징은 다음 열 가지다.
자생풍수에 대한 이론적 기반과 경험적 자료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데, 굳이 인용문으로 점철된 글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 옳은 수법인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부제가 '최창조의 망상록'인데 저자의 '망상'보다 '인용'이 더 많은 게 흠이다. 벤야민을 흉내낸 것 같지만, 이런 식의 인용문으로 점철된 글쓰기를 굳이 자생풍수를 논하는 자리에서 적용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