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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은 구불구불한 강변길과 강의 길을 반듯하게 해서 강의 도로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직강화 사업이라고 부른다. 도로를 만들며 새소리, 풀벌레소리를 없앴듯, 4대강 사업은 수로를 만들어 여울의 재잘재잘 물 흐르는 소리, 물고기들이 수면위로 솟구치는 소리, 철새들의 소리를 없애는 일이다."
르포작가 송기역씨와 사진가 이상엽씨가 4대강살리기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4대강 죽이기의 현장을 누벼 만들어낸 책이 있다. 여기 흐르는 강물처럼은 우리에게 4대강에서 벌어지는 생태파괴, 삶의 파괴 현장을 고발한다. 그리고 연이어 닥칠 미래의 재앙을 경고한다.
'미친 괴물'의 공사 진행도는 어느새 7-80%에 이르고 있다. 개발 공사를 통해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고 이를 뒤로 돌리려드는 정부. 땅투기에 따른 불로소득을 노리라고 부추기는 이 나라 정부.
배를 뛰우고 운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깊게 파낸 강바닥은 물고기들을 서식지잃은 홈리스로 만든다. 스스로 말하지못해 하소연할 수도 없는 나무와 새들과 물고기들의 소리를 우리는 절절하게 듣고 있는데 개발에 미친 괴물은 오로지 전진뿐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알리라. 아니 여행을 좋아하고 이땅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리라. 망가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온 기억들 온통 포크레인으로 찍어내고 어디론가 트럭으로 실려가는 저들의 죽음을..
강이 강으로 흐르지 못하고 오히려 썩어간다. 습지가 사라지고 강이 정화기능을 잃을 때 강이 죽어간다. 그 속에서 누리던 인간의 삶이 뿌리뽑히고, 문화재가 사라져간다.
여기 두사람은 파괴되는 산천의 목격자이다. 그들은 그 현장을 증언하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그저 입에 발린 말만으로 4대강을 걱정하고 있을 때 처절하게 강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분노를 만나고, 그들의 절규를 함께 한 두사람이 그들의 목소리를 책으로 엮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안간힘이 강을 지키고, 땅을 지키고, 인간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그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물음에 나는 답하지 못한다. 답답하고 분하고 눈물나는 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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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다. 유기농의 본고장, 두물머리(경기도 양평)로 향하는 길.
“강은 소비해야 할 상품이 아닌 흘러야 할 모두의 생명 아닌가요?” 『흐르는 강물처럼』 이상엽 사진작가와 함께 한 두물머리 탐사 ‘4대강 살리기’라는 타이틀은,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치졸하고 졸렬하며 명박한, 아니 명백한 농담이다.(하긴, 애초 그 위정자는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뻥을 쳤었다.) 최근 한겨레의 탐사보도, <돌아오지 않는 강>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2009년 8월16일 낙동강 24공구, 공사 전 지질조사를 하던 49살의 남자가 보트전복으로 숨진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24일 낙동강 14공구에서 29살의 남자가 덤프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4대강 공사 현장에서만 스무 명이 죽어갔다. 스무 명이라는 세계가 으스러졌는데도, 대부분 언론은 침묵했고, 정부는 국민을 지켜야한다는 존재의 이유를 내동댕이쳤다. 지난 4월21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시부렁거린 발언을 보자. “(4대강 사망사고 중) 사고다운 사고는 몇 건 안 되고 거의 본인의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나 익사사고 였다.”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찰과 경찰 역시 이를 따르고, 토건업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미친 것이다. 운하를 향한 정권의 강박은 국민의 세금으로 대형 건설사(대표 시공사)를 비롯해 원청과 하청 건설사 등을 망라한 토건업자의 배만 채우고 있다. 그에 고용되거나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은, 국가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삶을 혼자서만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죽거나 입을 닫는다. 그야말로, 겁박(劫縛)하고 포박(捕縛)하고 협박(脅迫)하는, 명박(命薄?목숨을 가볍게 여기는)정권이다. 강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은 ‘죽이기’다. 강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산천을 죽이고, 나라를 죽이는.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4대강 문제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내용을 점검해보고, 과연 내가 생태 생명의 관점으로 볼 때 양심적으로 잘 살아왔는지 내밀하게 관조해 보시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4대강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p.59) ‘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흐르는 강물처럼』(글 송기역/사진 이상엽|레디앙 펴냄)은 그런 수경 스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것으로 끌날 수는 없었다. 지난달 15일, 스승의 날, 이십 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의 한 구간인 양평을 찾았다. 아마도 자연을 스승으로 삼은 사람들이 스승의 아픔을 그만 눈뜨고 볼 수 없어 나선 것이 아녔을까. 이날의 테마는 그래서, 이상엽 작가와 함께 하는 두물머리 탐사였다. “이 책은 실감의 책이고, 그 실감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울린다는 의미에서 공명의 책이다. 무엇이 공명되는가. 슬픔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부득불 슬픔의 책이라는 정의를 하나 더 보태야 한다.”(p.6) 4대강 사업부지로 지정된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팔당 유기농지’를 발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시간. 그러니까, 『흐르는 강물처럼』의 시작점에는 나온 이런 말. 옛날 내가 어렸을 때 부친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쓰거라. 그래야 우리가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단다.” 하셨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이 그랬듯, 이날 두물머리 탐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 쓰여 졌을 이야기를 대신해 나도 쓴다. 두물머리라는 스승이자 자연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아픔을, 명박(命薄)정권 아래 우리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설프게 쓴다. 아마, 탐사 참석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썼을 테니, 내 이야기는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두물머리 가는 길
“이상엽은 포토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1991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1996년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시베리아, 동남아 등지를 여행하며 사진과 글로 꽤 여러 편의 기록을 남겼다. 웹진 《이미지프레스》 대표로 일하며, 『이미지프레스 01, 여행하는 나무』를 기획했다. 네이버와 내셔널지오그래픽(한국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지금은 《프레시안》에서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고 강도 살리는 길이었다. 유기농업이다. 팔당의 유기농업은 1978년 정농회 회원 정상묵?정상일 형제 부부, 한솔공동체를 꾸린 김병수 씨가 길을 열었다. 이들은 ‘이웃이며 형제인 소비자에게 농약 친 농산물을 판다는 것은 간접 살인’이라는 생각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p.43)
서규섭 씨의 이야기다. “유기농업을 왜 하는가? 그것은 명확하거든요. 농업 자체가 자연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수탈하고 착취하는 것인데, 이것을 반성하면서 자연 그대로를 두며 생산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유기농업이 나왔어요. 4대강 사업은 자연에 대한 탐욕과 정치적 야망에서 나온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최소한 유기농업을 하는 사람들은 흔들리진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p.87)
“두물머리 유기농지 끝자락 두 물이 만나는 곳에 농민 최요왕 씨가 만들어 세운 나무 십자가가 서 있다. 십자가는 고난을 극복한 팔당 지역의 부활을 상징하는 듯하다. 국가는 두물머리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농민들은 생명의 먹을거리를 만드는 살림의 땅으로 만들었다.”(pp.44~45)
이상엽 작가 왈. “여기에 2000년대 초반에 귀농해 있는 대학 동기동창이 2명 있는데, 끝까지 버티고 있다. 주변을 수변공원으로 만들겠다며 유기농지를 철거하려고 한다. 이 지역은 국유지인데, 양 수변에 유기물이 풍부해서 농사가 잘 되는 곳이다. 그런 곳을 4대강사업에 포함시켜서 없애려고 한다. 팔당 유기농지는 1970년대 이 땅에 처음 유기농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그동안 유기농업을 권장하고 지원한 정부는 농민들을 수질 오염의 주범으로 몰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 일대를 수용해 제방을 쌓고,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위락시설을 만들 계획이다.”(p.44)
“유기농이 발원한 곳 중의 하나로, 대략 200여 농가가 팔당호 주변에서 유기농업을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먹는 것을 재배한 농민이 누군지 알고, 농민들도 누가 먹는지 안다.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는데, 지금 이곳을 몰아내려는 정부의 처사는 농민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다.” 방 국장에 의하면, 70년대 유기농업을 하신 분들은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유기농업을 개척했다. 그렇게 어렵게 해서 조금씩 확산되면서 국가적으로도 법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30~40년 동안 민관이 함께 유기농을 확산하고 있던 상황까지 왔으나, 지금 정부는 4대강사업을 빌미로 이 공든 탑을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정보과 형사들이 정씨 형제 집으로 출근을 할 정도로 유기농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정부 정책에 반하니까 빨갱이라는 거죠. 그때는 증산 정책이 우선이라 화학 비료나 농약을 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와서 밭에 있는 작물을 밟아서 막 파헤쳤으니까요. 그런 수모와 손가락질을 당하며 유기농업을 개척했어요.”(p.43) “관에서 유기농민들을 공격하면서 농민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누구도 유기농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시작해서 이렇게까지 왔는데, 정부에서 국가하천을 점유해서 떼쓰는 사람들로 몰아가서 상처를 받았다.” 아무리 좋게 봐도, 미친 것이다. 더구나 이곳 팔당 유기농민들은 2009년 6월 싸움이 시작됐는데, 초기부터 대안을 제시했다. 무조건 반대할 의사도 아니었다. 정부 안이 공익적이고 긍정적이었다면 충분히 협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 안은 그렇지 않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을 만들고 제방을 쌓는다는 건, 이곳의 역사적?사회적 가치를 무너트리는 것 아니겠는가. 4대강사업의 핵심은 농사를 못 짓게 하겠다는 것이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도 농업에는 관심도 없고, 보도 역시 하지 않는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유기농이 암을 유발한다는, 제 얼굴에 침을 뱉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농민들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다. 여기 농민들은 2012년 말까지 하천 점용권이 있는고, 지난 1심에서 우리가 승소했는데도 경기도는 공사 강행을 밀어붙이고 있다. 합리적이고 공익적이라면 우리도 물러나야 하나, (경기도에) 항의하면 정권 차원의 사업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한결 같은 공무원들의 답변만 받는다.”
“4대강사업 사진을 찍으면서 고민한 것이 있다. 사람들이 가진 불만 중의 하나는 사진이 아름답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파괴의 현장까지도 그랬다. 하나는 하진을 바라볼 때 파괴의 현장이 눈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실패한 것이라고 봤다. 그만큼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진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원래 사람을 찍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4대강 사진을 찍으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은 표정, 리액션이 강렬해서 이미지화하기 쉬우나, 가만히 있는 자연을 찍는 것은 사람을 찍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자연을 충실하게 솔직하게 담아내느냐는 찍는 사람의 마음과 연관되더라. 4대강을 돌아다니면서 파괴의 현장을 찍을 것이냐, 사는 사람을 찍을 것이냐 등 숱한 경우의 수가 있다. 작년에 진보신당에서 일반인과 함께 하는 4대강 사업 답사를 갔는데, 8번을 함께 갔다.”
더불어 하천 속도가 느려지거나 흐르는 방향이 바뀌어 퇴적물이 쌓여 생기는 하중도(河中島)와 4대강 공사 사진 등을 보여준다. 밤섬도 하중도이고, 여의도 역시 하중도다. 그러나 한강에 하중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강을 쭉 펴서 직선화시킨 때문이다. “아름다운 밤섬을 폭파한 이유는 여의도 개발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600여 명의 주민이 살아온 밤섬이 사라진 이후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냥 내버려둔’ 폐허 위에 토사가 서서히 쌓이면서 모래톱이 생겼다. 습지가 만들어지고 생태계가 회복된 밤섬은 철새 도래지가 되었다. 한강에 모래무지가 다시 등장한 것은 그네들의 서식처인 모래가 밤섬 등지에 쌓였기 때문이다. 자연을 파괴한 인간이 밤섬을 잊고 있는 동안, 밤섬은 스스로를 치유하며 아름다운 섬으로 되살아났다. 자연 스스로의 치유를 두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한강을 살려 냈다며 열띤 홍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인공 섬 ‘플로팅 아일랜드’를 건설하고 있다.”(p.32)
“강은 장기적으로 노력하면 살릴 수 있으나 지금의 4대강 시스템으로는 그것을 더욱 망가지게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1. 사진은 빛이 가장 중요하다. 해 뜨고, 지기 전 2시간이 사진찍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 찍으면 사람 피부나 사물의 톤이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2.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보는 것이 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는 방법이다. 3. 사진의 힘은 찍는 사람의 감정(가슴)에서 나온다. 처음엔 이성적으로 접근해도 가슴으로 공감해야 좋은 사진이다. 4. 디지털카메라라고 많은 것을 찍지는 마라. 관찰하고 생각하다가 찍어라. 5. 자신이 선택한 장면이나 대상에 충분한 시간을 쏟으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날 두물머리다방에는 지난 2월, 팔당 유기농민들이 하천점용허가 취소의 취소를 청구한 소송에서의 승소를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헌데, 이 행사가 끝난 며칠 뒤,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법치(法治)를 그렇게 강조하던 MB정부, 정확하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 판결을 무시하고 농지 강제수용에 나섰다. 한마디로 재판에 지고서도, 땡깡을 부리는 작태. 양평군의 항소로 이 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나 LH가 거부 농가 보상금 5억원을 공탁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눌러버리겠다는 천박함이다. “우리 사회는 부동산 토목업자들의 노예가 된 사회입니다. 그런 시위가 가능한 것은 지역동동체가 붕괴됐기 때문이에요. 부동산 땅값에 의한 불로소득에 혈안이 돼 있는 우리 사회의 천박함이 농촌을 붕괴시킨 거예요.”(p.97) 이런 시대, 우리는 유기농 삶을 살 수 있을까. 농약보다 더 독한 성분으로, 이름 모를 것들은 깡그리 쓸어버리려는 정부와 하수인들의 등살에. 과연 우리는? 책은 이렇게도 말한다. “700미터 지하에서 69일을 버티다 생환한 칠레 33인의 광부들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까지 남는 것이 희망입니다.”(p.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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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은 지금 현재대로라면 반어적 표현에 가깝다. 지난 추석 연휴를 맞아 4대강 곳곳에 설치된 보가 개방이 되었으니, 물은 스스로 흘러가고자 하는 곳을 따라 흐르지 못하고, 길을 터놓은 곳으로만 흘러가게 됐으니까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몰려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몰려가다가 사람이 막아놓은 곳에 갇히는 게 지금의 강물이 아닌가. 이 책은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한강을 두 발로 걷고 엮은 르포집이다. 그러니 강의 지금 모습을, 강이 품고 있는 숫한 생명들의 현재적 아픔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이명박 정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 4대강 공사! 어리석은 사람은 생명 살리기라 말하지만, 다수의 착한 민중들은 생명 죽이기라고 읽는다. 환경 단체를 비롯한 제 시민사회단체, 종교 지도자, 노동자, 농민, 학생이 생명을 죽이는 4대강 공사를 중단하라고 외칠 때, 정부는 귀를 막고 예의 포크레인 삽날처럼 날카롭게 우악스럽게 강바닥을 파헤쳤고, 강을 직선화했다. 그 어디서도 이 공사로 인해 생명이 살아났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 공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의 말을 말로 알아주지 않으니 입을 떼는 것도 힘겹다. 대신 안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과 안타까움만 쌓여갈 뿐! 나는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두 발로 걸었다. 어떤 때는 11박 12일, 어떤 때는 5박 6일, 틈틈이 강을 보겠다고, 강에 기대 사는 마을을 둘러보겠다고, 강에 깃들어 사는 온 생명의 숨결을 엿듣겠다고, 강에 조용히 내려앉는 낙조를 보겠다고, 그렇게 걸었다. 아무 것 없는 내가 강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숨길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강과 강이 아우르고 있는 모든 것과 나는 함께 넉넉하고 함께 즐거웠으며 같이 아파했다. 그것은 강이 곧 나였고, 강이 곧 모든 생명이었으며, 강이 온 우주와 같았기 때문이리라. 결국, 웬델 베리의 ``우리가 땅에 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는 곧 진리에 가깝다. 강이 죽는 것은 강만 죽는 것이 아니다. 강 삽질에 해오라기만 살 곳을 잃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 농부들이 땅을 잃고, 마을이 사라지고, 강물 위에 은은히 내려앉는 낙조의 쉼이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강의 죽음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사라짐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우리 스스로 우리 설 자리를 싹둑 베어버리는 일.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사라지게 만드는 일. 이런 폭력과 야만 앞에 댓거리 할 말조차 잃고 있는 상황이 아프기만 하다.
내가 3년 전 혼례식을 올리면서 작성한 모시는 글에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글귀가 있다. 멀리 에돌고 에돌아 만난 인연인 만큼 흐르면서 덜커덕거릴 때도 있겠지만, 흐를 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강물처럼 살겠다는 뜻을 담았다. 그런데 공사가 완료된 뒤의 강은 흐를 수록 쌓여가고, 흐를 수록 직강화되어버릴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결국, 우리가 이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은 일단은 실컷 아파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강에 바로 잇대 살아가는 물고기와 새의 죽음 앞에, 더 나아가 강의 죽음 앞에 울고 아파해야 한다. 아픔은 곧 새로움을 꿈꾸게 하지 않겠는가. 생명을 파괴하는 정부,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 삽질로 살려는 정부는 앞으로 단호히 거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이 죽음 앞에 우리가 그나마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면죄부 같은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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