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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그런 건 안 믿어서요. 저희는 기독교 가정을 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라일 아주머니. 그런 옛날 방식은 믿지 않아서요. 옳지 않아 보이네요."
"옳지 않아 보인다고? 너
태어났을 때 네 궁둥이 때려준 게 누군데?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떠하냐'가 중요한 거야. 나 같으면 내가 스토브에 물 끓이는 동안 저기 눈밭에 구멍이나 파겠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마셜의 외곽, 그곳은 목사 챔블리스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믿음만 있으면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시고 불을 얼굴 앞에 들어 올려 화상을 입는지 시험하는 등 무모한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중 많은 수가 화상을 입고 중독되었지만,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의사를 찾아가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성경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극단적 기독교 근본주의 교회에서 신처럼 행세하는 목사와 맹목적으로 믿는 신도들. 그곳에서는 오래 전 그 말도 안 되는 예배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11년 뒤, 또 한 소년이 교회에서 진행된 예배 과정에서 죽게 되고 그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마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마을의 비극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세 명의 각기 다른 화자를 통해 들려진다. 노부인 애들레이드
라일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목사 챔블리스 맞섰던 사람이다. 그녀는 챔블리스가 마을에 온 뒤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챔블리스에게 그가 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교회를 나왔고, 그로
인해 거의 평생을 간직해온 친구들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10년
동안 다시는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챔블리스를 조금도 바꿔놓지 못한 채, 다만 그를 더 용감하고 무모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마약에 매달리듯 종교에 매달리곤 하며, 한 번 붙잡은 종교는 놓으려 들지 않으며 살아왔다. 마치 종교가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 같아서, 종교를 가진 뒤에는
이 산간벽지의 작은 교회들이 시키는 짓은 무엇이든 하려 들었고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완전히 달라져
신앙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자기 아이들을 내다 버리고, 남편과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이루었을 때만큼이나 빠르게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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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하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죽인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야, 그 애가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었으니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가 된단다." 고모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교회 안에서 크리스토퍼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한다.
두 번째 화자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홉 살 소년 제스이다. 어느 날 자폐증을 앓으며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제스의 형 스텀프를 치료하겠다며 엄마가 교회로 데려가면서 그 모든 일이 시작된다. 제스는 어른들이 엿보지 말라고 했지만, 호기심에 단짝 친구인 조 빌과 함께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엿보러 간다. 그곳에서는 말 못하는 스텀프를 신앙의 힘으로 치유하겠다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무서운 광경에 겁이 나 숲으로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형 스텀프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세 번째 화자는 마을의 보안관 클렘 베어필드이다. 그는 목사 챔블리스를 오랫동안 주시해왔지만, 그 동안은 애써 무시해왔다. 하지만 스텀프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챔블리스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 아들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목사에게 의지하는 엄마 줄리, 슬픔과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의 아빠 벤 그리고 오랜만에 마셜로 돌아온 할아버지 지미의 위태로운 관계,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제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잘못된 신앙이란
무지와도 같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사이코패스 살인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보통 사람들의 광기가 아닐까. 집단이 휘두르는 신앙에의 맹목적인 믿음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광기의 일종이다. 와일리 캐시는 이 비극을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그려내면서, 아름답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코맥 매카시가 다시 쓴 <앵무새 죽이기>를 읽는 것 같다는 엄청난 평이 자연스레 수긍이 될 수밖에 없는, 대단한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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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서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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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기대했던 가독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의 산만함이 한 역할을 한 것도 있지만 조금은 밋밋한 전개가 이것을 부채질했다. 화자가 세 명인데 처음에는 이것을 몰랐다. 아홉 살 소년이 화자라는 착각을 한 탓이다. 이런 착각이 몇 개의 문장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바뀌는 화자는 조금 더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강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인물과 관계에 대한 두터운 바탕을 쌓아올린 뒤 순식간에 파국으로 이끌어간다. 이 과정을 보면서 그들에 닥칠 비극을 알게 되고, 운명 같은 삶의 관계가 엮이면서 이어진다.
애들라이드 라일은 노부인이다. 챔블리스의 교회에 다니다가 한 신도가 방울뱀에 물려 죽는 것을 보고 발길을 끊었다. 그 죽음은 은폐되었고, 목사는 라일을 위협한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산파로 아이들을 받아온 그녀는 이제는 교회 밖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혹시 교회에서 일어날 사건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교회 밖 관찰자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녀는 스텀프의 죽음을 보고, 숨겨진 사실을 알지만 그 어떤 진실을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독자들은 그녀의 속내와 감정의 표현과 과거사만 볼 수 있다. 이 과거사에서 또 다른 사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제스 홀은 아홉 살 소년이고, 스텀프의 동생이다. 이 소년은 또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여준다. 스텀프에게 있었던 사건과 그 후에 벌어지는 몇 가지 비극의 현장에 있음으로써 산증인이 된다. 처음 형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그가 내뱉은 한 마디는 광신의 무리에게는 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보는 이들에게 사실의 무게는 아주 가볍다. 그리고 그가 본 불륜의 현장은 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다. 아직 어리고 겁이 많은 소년이 사실을 제때, 제대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안관 클렘 베이필드는 노년이다. 그의 과거사 또한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이 집안의 비극은 홀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보안관이고, 스텀프의 죽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한다. 부검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듣고 싶어한다. 그는 챔블리스의 과거도 알고 있다. 라일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할 뿐이다. 스텀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역할은 제스의 목격과 부검 결과가 맡는다. 신의 권능을 외치는 무리에게 인간의 법이 다가간다. 광신과 맹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의지조차 없다.
이 세 명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삶과 현실의 사건을 바라본다. 스텀프의 죽음은 신의 권능을 빌려 자행된 살인이다. 자폐에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소년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미 이런 살인을 저질러온 그이기에, 모성보다는 신의 권능 아래 살기를 바라는 엄마 때문에 이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비극을 설명하기 위해 그 지역의 맹신적인 종교애를 앞에 풀어놓고, 이성이 얼마나 허약한 실체인지 보여준다. 예정된 파국과 과거의 비극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 이 마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에서 종교에 대한 맹신과 광신에 가려진 이야기 하나가 있다. 벤과 줄리의 부부관계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은 이 둘의 불안한 관계에서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교회에 가서 맹신적인 믿음을 보여줄 때도, 불륜을 저지를 때도, 아내와의 유대와 사랑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줄리의 과거 속에 맹신의 씨앗이 있었다고 해도 그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인 운명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관계를 만든 것은 그 두 사람이다. 비극의 현장에서 줄리가 보여준 행동은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허울적인지, 광신이 얼마나 모성애보다 강한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의 후기들이다. 보통의 후기와 달리 그가 이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등이 알려준다. 그의 후기를 읽다가 발견한 한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딱 한 권 번역되었고, 그것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중고 거래 가격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고, 부디 요즘 아주 가끔 가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봤을 때 그 제목을 기억하기만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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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보다 따뜻한은 종교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된 마을 사람들과 그것을 이용하는 목사와 그런 상황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마음 주민들의 일상이 비극으로 남겨진 이야기 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마셜의 외곽에 챔블리스 목사는 교회를 만들었고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는 것은 안전한 일이라면서 여러가지 위험한 일을 시켰고 목사의 말에 그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무모한 짓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뱀으로 신도들을 시험하고 불을 이용하는 위험한 목사의 행동으로 신도가 죽게 되어도 챔블리스 목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고 신도들도 그런 목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애들레이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만간 사람들이 경찰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나서지 않았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교회가 더 이상 자신과 몰리 같은 늙은 여자와 아이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목사에게 몰리의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어른들을 구하지는 못해도 아이들만이라도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는 아이들을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고는 자신이 맡는다고 말했습니다. 애들레이드의 말에 챔블리스 목사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것은 곧 외부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 했지만 애들레이드는 마을의 아이들을 위해 그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챔블리스는 변하지 않았고 지금은 더 늙고 용감하고 그리고 더 무모하게 되었습니다. 제스의 엄마는 언제나 하나님과 챔블리스 목사와 교회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에는 엄마만 나갔고 아빠와 형 스텀프 그리고 제스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엄마와 형이 사람들과 교회에 가는 것을 친구 조 빌과 보게 된 제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형을 제스가 돌보아야 했고 형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지켜야 했던 제스는 자신이 형이고 스텀프는 오히려 동생같은 존재 였습니다. 엄마와 형이 있는 교회에 제스는 가지 않을려고 했지만 조 빌이 겁쟁이라고 놀려 할수없이 교회를 엿보게 된 제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텀프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예전에 제스와 스텀프는 아빠가 집에 없을때 엄마와 챔블리스 목사가 있는 것을 몰래 엿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스는 얼른 도망쳤지만 스텀프는 목사에게 들켰고 그때 제스가 보지 못한것을 형은 보았고 나중에 목사와 제스는 형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챔블리스 목사님이 화상 입은 손으로 엄마와 스텀프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목사는 스텀프에게 팔을 두르고 있었지만 엄마는 목사의 그런 행동을 그냥 내버려 두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제스는 화가 났는데 그 이유는 형은 남이 그렇게 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목사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목사의 행동에 스텀프는 발버둥치다가 넘어졌지만 목사님은 스텀프를 더 세게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챔블리스 목사님과 다른 사람이 스텀프를 붙잡고 있었고 엄마는 그들을 스텀프에게서 떼어 놓을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조 빌은 달아났지만 제스는 계속 교회 안을 보고 있었고 너무 놀라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서는 목사와 다른 어른들이 스텀프를 덮쳐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스는 엄마에게는 자신이 교회에 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제스에게 형이 교회에서 치유 받아서 엄마라는 말을 했다고 했지만 사실 그 말은 제스가 교회를 엿보다가 너무 놀라 자산도 모르게 한 말이었지만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치유를 받아 스텀프가 말을 한다고 믿는 엄마와 마을 사람들은 저녁 예배에서도 스텀프를 치유할려고 했지만 끝내 스텀프는 치유되지 않았고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1961년부터 매디슨카운티의 보안관으로 25년을 근무했지만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외부인으로 취급받고 있는 보안관에게 벤 홀의 큰아이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벤 홀의 아내가 교회에 아이를 데려갔는데 교회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과 벤 홀의 아버지가 마을에 돌아왔고 그도 함께 교회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보안관은 놀랐습니다. 죽은 아들 제프와 벤은 친구 사이였는데 벤은 풋볼선수로 마을에서 유명했지만 대학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선수가 많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은 줄리와 결혼해 살고 있었습니다. 보안관은 교회 사람들이 스텀프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실 벤의 아버지는 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그런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벤이지만 지금은 벤이 아들의 죽음에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게 되는 온갖 행동들이 가져온 비극은 종교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맞아 떨어져서 더 광기스럽게 변하고 마을을 휘감은것 같습니다. 챔블리스 목사의 어두운 내면을 알고 아이들만이라도 보호하고 싶었던 노부인과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만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지켜만 보고 있었던 보안관과 형의 죽음을 보게 된 아홉살 소년 제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그것을 덮고 어른으로 자라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이 마을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비밀과 그것이 밝혀졌을때 마을에서는 어떤 비극이 닥치게 될지 지켜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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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교회에 출신이 불분명한 카슨 챔블리스가 목사로 왔다. 그가 온 뒤 교회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챔블리스 목사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강요하고, 교회를 다니는 마을 주민들은 그 말을 믿는 가운데 말 못하는 열세 살 소년 스텀프가 기도회를 하던 교회에서 죽었다. 동생 제스는 형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고, 아빠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분노한다. 그리고 엄마는 스텀프가 죽은 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교회를 알았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도 되는 것처럼 그 교회를 운영하는 남자를 알았으며, 거기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카슨 챔블리스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두려웠다. p.114 작은 마을에 외지인이, 그것도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챔블리스가 목사로 오게 되면서 벌어진 일들을 보여줬다. 비밀스러운 일이라도 벌이는 듯 교회 창문에는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신문지를 붙였고, 교회를 다닌 주민들은 맹목적으로 챔블리스를 따랐다. 챔블리스는 살무사가 든 상자에 사람들의 손을 넣게 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강요하는가 하면, 교인들은 갑자기 자기 집 헛간을 태우기도 했다. 거기다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하지 못했던 스텀프를 데려다가 말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기도회를 열어 13살짜리 어린 소년을 죽였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3명이었다. 라일 할머니는 챔블리스가 그곳에 온 이후 예배 중에 처음으로 사망한 사람이 나타나자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간파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른들이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할 동안 그들의 아이들만 따로 모아 10년째 주일학교를 열고 있다. 제스는 스텀프의 동생으로 말 못하는 형을 돌보는 9살 소년이다. 아이들은 교회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었지만, 어느 일요일에 교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스텀프를 데리고 교회에 가자, 제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회 안을 몰래 훔쳐본다. 매디슨카운티에서 25년 간 일한 베어필드 보안관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운티에 전화해 챔블리스의 과거를 알아내고, 스텀프가 어떻게 죽었는지 사건을 파헤친다. 기적이라는 게 때로는 이런 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너무 목이 말라서, 그 마음을 달래줄 만한 거라면 뭐든 보고 싶어 하게 된 거다. p.81 읽는 내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의 엄마와 그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의 행동과 맹목적인 믿음 모두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종교인의 탈을 쓴 범죄자의 말을 어떻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을까. 태생부터 말을 하지 못했던 아이를 기도로 말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는지.. 내가 종교가 없어서 그런 믿음에 대해 알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 사람들은 정말 기적이라도 믿는 걸까. 신앙 자체가 아닌 목사를 믿는 경우인 것 같다. 뉴스에 나오고, 취재 프로그램 같은 데서도 종종 볼 수 있듯 천국을 가기 위해 자신과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등의 되도 않는 개소리를 하는 목사의 탈을 쓴 범죄자들. 소설은 스텀프의 사건을 중심으로 가족을 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고모할머니와 살던 라일 할머니나 사고로 아들을 잃은 베어필드 보안관, 스텀프를 잃은 아빠의 모습을 비롯해 마지막엔 가족을 잃은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도 보여줬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서로 원한을 가지고 얽혀 서로를 증오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같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결말을 보인다.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법한 일이 아니라서 더 끔찍했다. 자폐증이 있던 아이가 치유 예배를 받던 중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고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니 말이다. 제발 이런 말도 안되는 일로 사기치는 범죄자가 없길, 약해진 마음으로 속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