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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친구들 음담패설 끝에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관능적인 부분이 어디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신체 부분을 언급하던 중, 한 친구가 ‘혀’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20대의 청춘기를 지내던 때라 젊은 시절의 우리는 ‘혀’가 음식을 씹어 삼키거나 이야기를 하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첫 키스의 기억을 상기하듯 ‘혀’를 외친 친구에게 몰표를 몰아주었다. 칼 주경철은 <그해, 역사가 바뀌다>라는 책에서 노엘 페린의 저서 <철포를 버린 일본인>을 소개한다. 노엘 페린은 이국에서 받아들인 총포를 발달시킨 일본이 총을 개발하지 않고, 칼로 나아가게 된 이유를 일본 지배 계급인 사무라이의 특성에서 찾는다. 칼은 사무라이의 혼(魂)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무라이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실제로 총을 사용하는 병사는 일반 서민들이었습니다. 전쟁 시 당장 필요하니까 이런 사람들을 모아 총 쏘는 기술을 연습시켜 전장에 내보냈지만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피지배민들의 무력이 사무라이보다 계속 강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래서 서서히 총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결국 총은 사무라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사라진 것입니다.(주경철, <그해, 역사가 바뀌다>, 234쪽) 흔히 동북아시아 세 나라의 무기를 중국은 창, 한국은 활, 일본은 도라고 말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 빌>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하토리 한조의 칼이 가지는 절대성은 감독의 일본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권정현의 <칼과 혀>를 읽으면서 음식을 만드는 ‘칼’과 음식을 삼키는 ‘혀’보다, 사람을 베는 칼(刀)과 관능으로서의 ‘혀’가 먼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칼과 혀>라는 이 소설의 강렬한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제목이 주는 강렬함은 부드러움의 속성을 가진 ‘혀’와 날카로움을 가진 ‘칼’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묘한 긴장감에서 기인한다. 일제 말기 만주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요리사와 관동군 사령관, 그리고 조선인 처녀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일제 말기 만주라는 구체적인 시공간 안에서 허구(fiction)와 역사적 사실(fact)이 교묘하게 교차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들의 모든 행위는 그러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요리사 ‘첸’에게는 아버지 ‘왕채판’이, 제 19대 관동군 사령관인 ‘야마다 오토조’에게는 어머니가, 그리고 ‘길순’이라는 조선 여성에게는 남겨두고 떠난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오빠’가 그들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다양한 변주가 인물들의 행동을 움직이는 주된 요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적 설정이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각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 인물들의 무의식적 기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관점에서 인물들이 하고자 하는 행동들을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게 제시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왜 요리사인 ‘첸’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요리’를 사령관과 일본 장교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하는지, 그리고 ‘요리사’였던 ‘첸’이 왜 항일 운동으로 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조선인 처녀 ‘길순’과 관동군 사령관 ‘오토조’의 행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칼’이 지니는 이중성과 미각의 결정체이면서 관능의 상징인 ‘혀’의 예사롭지 않은 조합은 그 자체가 흥미롭다. 그렇기에 차라리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칼’과 ‘혀’로 상징되는 ‘음식’에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고, 그들의 욕망이 ‘음식’을 통해 부딪히는 이야기가 일본의 패망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에 가려지면서 이 소설은 급격히 서사의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구화지문(口禍之門) 설참신도(舌斬身刀) 입은 재앙의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매사에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이 고사 성어에서 입은 음식을 삼키는 입구가 아니라, 화가 드나드는 문이다. 또한 혀는 음식을 맛보는, 그래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신체 기간이 아니라, 사람을 망치게 하는 것으로, 칼(刀)이 겨누는 대상은 다양한 요리의 재료가 아니라 사람의 신체이다. 입의 기능이, 혀의 기능이, 칼의 원래의 기능이 무엇이었을까? 음식을 삼키고 말을 하는, 음식을 맛보고 말을 하는, 음식을 만들고 사람을 죽이는 이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세 가지의 사물들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그리고 그 ‘음식’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음식’의 맛을 보고 삼키는 데 가장 필요한 기간이 바로 ‘혀’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가장 무서운 '칼'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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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만주국을 배경으로 하는 책. 책 소개를 보았을때, 음식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듣고 독립관련 이야기려니 하면서 읽기시작했다. 배경이 일제치하이고, 만주에서 벌어지는 한중일의 대결이라. 하지만 책은 나의 예상을 비껴가는 느낌이였다.
한국인 길순. 중국인 요리사 첸. 일본군 대장 오토조.
이 세사람은 대체 그 시절, 만주국에서 어떤 인연으로 만난것일까.
일본인 대장을 죽이기위해 요리사로 위장했지만, 독을 잘못 쓰게 되어 결국 쇠사슬에 묶여 요리만을 해야했던 첸.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도망쳐 나와 첸의 부인으로 살다 첸의 암살실패로 일본인 대장의 인질로 바쳐진 길순.
그리고 일본인 오토조.
오토조는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죽이기위해 독을 탔던 첸을 대체 왜 살려둔 것일까. 그 혼탁했던 일제 강점기 하. 끝까지 첸에게 자신에게 어떤 요리가 극강의 요리였던 것일까. 첸은 대체 그사람의 무엇을 위해 요리했던 것일까. 요리로 그사람을 길들이겠다는 첸의 의지는 자신감이였던 것일까 오만이였던것일까. 길순은 오빠의 망령속에서 오토조를 죽이지도, 자신을 놔버리지도 못한 그 중간 어디쯤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낸 것일가.
그저 한편의 소설이려니 하면서 읽기 시작한 이책은 뭐지, 왜, 이런 의문을 남기게 한다. 배경은 일제강점이 였지만 나라에 대한 책이라기보단,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던것 같다. 정말 혼란했던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라와 나 사이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어야 하는가.
"칼과 혀" 책을 읽고 나니 제목부터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칼은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만드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중 하나이다. 혀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의 맛을 느끼게 해주면서, 혀가 제기능을 하지 못할때 우리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고 없다면 말도 할수 없는.
제목이 정말 책의 전체 스토리를 다 담고 있다. 낯설다. 뻔한 스토리를 예상하고 읽기시작했다, 많은 의문을 남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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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육군 장군, 중국 혁명과 광복을 위해 움직이는 요리가, 조선인 처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결국 어떤 상황에 놓이든 맛있는 요리를 먹어야한다는게 핵심인 이야기인건지...마지막에 육군장교는 불상을 밀반출 하려다가 속은걸 알고 다시 절로 가고....동아시아 대륙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는 재미있었고 대단한 상상력이 발휘된 소설이나 정확히 정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잘 모르겠다. 대동아의 평화인지 더이상의 전쟁은 없어야한다는 것인지.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서 잘 읽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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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다는데 그 중 하나가 식도락이라 한답니다.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행위"이자, "신의 선물(p.136)"이란 의미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하는 행위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입니다. 단순하게 생존을 위해서 먹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친밀감을 쌓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이 보다 더 인간다운 방법은 없습니다. 흔히들 '식사는 하혔어요?', '다음에 식사 한 끼 같이 하시죠.'라는 말로 인사를 하는데, 이런 인사말들이 개인적으로 먹고 살아남는데만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행위란 뜻입니다. 때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자, 숭고한 희생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먹는다는 행위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식습관을 본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격이 어떠한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먹는 걸 크게 중시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굳이 주어진 맛있는 음식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굳이 꼭 저걸 먹어야한다는 식의 강력한 의지는 표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습니다. 안먹으면 배고프고, 그러다보면 살 수 없으니 치뤄야 할 일로 대합니다. 찬찬히 맛을 음미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키키 급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하나의 과업으로 효율성 있게 먹어 치웁니다. 설겆이 거리는 최소한으로, 잔반 역시 최소한으로. 그렇다보니 라면, 패스트푸드가 주종을 이루며, 정성스러운 식사는 대량의 설겆이를 남긴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대충 어떤 사람인지 보이실까요? 이는 일하고, 살아가고, 남들과 함께 사는 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너무 개인적인 경우입니다만. 그렇다보니 늘 쫓기는 느낌으로 산다고 해야할까요. 세상사에 누구보다 스트레스 받으며, 누구보다 삼아남으려 애씁니다. 생명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만,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해야할때는 효율성 있게 칼을 써서라도 최소한의 생존은 확보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합니다.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칼과 혀>를 보며 이런 잡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존과 음식, 칼과 혀. 이 적절한 조합 말입니다. 식민지 만주국이라는 배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소설에 모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음식을, 저마다의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장교와 병사, 민중과 투사, 먹는 이와 먹히는 이들 사이의 얽히고 설킴이 역사적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 설정과 분위기가 '음식'을 통해서 나타나고, 앞서 장황하게 말한대로, 각 인물들이 취하는 삶의 태도와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게 합니다.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패망전의 만주국, 혼란한 시기를 관통하는 만큼 배꼽 잡고 웃으며 읽을 소설은 아닙니다. 칼과 혀라는 제목과 음식이라는 주제에 맞게, 작가는 음식과 요리 묘사에 큰 신경을 썼습니다. 오히려 이런 묘사나 요리에 대한 태도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잉된 묘사가 이 소설의 힘이라 봅니다. 덕분에 소설 속 인물들이, 한중일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느낍니다. 팩션소설의 특성(?)상 결말이 예상되고, 이 소설 역시 그 경로를 따르지만 인물과 설정, 배경과 소재를 이끌어가는 소설에 흠뻑 빠질 만 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 교만은 죽음을 부른다는 걸 견장에 힘만 줄 줄 아는 자들일수록 알아야 한다. 나는 이토를 관통한 안의 총소리 따윈 절대 듣고 싶지 않다. p.23 "한 접시의 요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접시에 담긴 요리사의 진심이다. 모든 일에는 흥하고 망함이 있다. 너희들이 매 순간 중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자들의 힘도 무뎌지는 것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자신이 오늘 하루 소꼬리를 잘라내는 데 썼던 그 칼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소꼬리 찜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배우자!" p.56 전쟁이 나면 멍청한 남자들일수록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잖아? 그건 때가 되면 규칙적으로 여자들에게 찾아오는 이름 모를 일본 병정들이나, 남부식 권총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내 오빠나, 도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첸이나 모두 매한가지야. 그래서 난 사내들을 믿지 않아. p.98 "우리 고향에선 음식이 곧 목숨이었다. 음식을 먹는 시간은 최대한 간략하게 줄여야 했고 낭비는 허락되지 않았지. 무사나 군주들일수록 겸양의 미덕을 보여야(p.113) 했거든. 밥을 축내는 노인네들은 수침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제 어금니를 부러뜨렸어." p.114 전황을 보고받을 때마다 나는 죽음과 삶 사이에 끼인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운명만큼이나 절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식탁에 차려진 갖가지 산해진미가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이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 소화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소멸되지 않는 장식품은 아무런 미적 가치가 없다. 극락사의 반가사유상이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이 긴 세월 동안 조금씩 부패해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것의 몸엔 녹이 잔뜩 슬고 미소는 기괴하게 일그러질 것이다. 그러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그 미소를 사랑할 가치가 있다. p.126 "옳으신 말씀입니다. 요리가 가진 최고의 기능은 침묵이죠. 인간들이 세 치 혀로 감히 만평할 수 없도록, 그들을 침묵 속에 빠뜨려야 합니다. 더불어 아는 척을 조금 더 하자면..." "하자면?"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혀와 위가 우리의 뇌에 가져다주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을 만끽하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지요." p.136 나라는 몸은 무엇이며 나라고 믿는 이 생각은 무엇이며 내가 겪었다고 믿는 과거는 무엇이며 나는 어느 인과를 통해 낯선 신경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는 걸까. 내 오빠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차나무에 앉아 아침 이슬을 매달고 지리하게 먹이를 기다리는 염낭거미의 반에 반만큼이나 삶은 의미가 있을까? 온종일 먹이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삶은 간절할까. 오빠처럼 거창한 명분은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어. 거창한 명분을 가진 자들일수록 모양과 크기에 집착하는 법이잖아. 종종 삶의 가장 진실한 알갱이를 잃어버리기도 해. p.148 그러면서 사내들은 단련이 되는 것 같아. 몸속의 피가 밖으로 빠져나와 그들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그때에. p.150 개가 허공을 보고 짖을 때 노인네들은 귀신을 보고 짖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개가 허공에 떠다니는 냄새를 맡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죽은 자의 냄새일 수도 있고 사물의 단순한 냄새일 수도 있다. 냄새가 흩어지지 않고 떠다닌다는 건 그만큼 그 맛들이 단단한 힘으로 뭉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설 때 손님들은 먼저 코를 통해 그것을 찾는다. 그다음 눈이 그것의 모양과 색을 구분하고 마침내 혀로 평가를 내리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개처럼 사슬에 묶여 있는 나는 인간보다 확실히 개에 가깝다. p.213 내 눈을 탐했던 적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혀에 와 닿는 맛으로 경험했던 그 날, 나는 커서 결코 군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을 죽이다가 끝내는 자신마저 그 죽음 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미련함,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품평을 강제당한 채 통일된 동작으로 뜨겁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획일화된 세계에 대(p.234)하여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p.235 가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하나가 저 부엌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어느 부엌이든 문을 열(p.246)고 들어가면 주린 배를 채울 무언가가 숨어 있게 마련이지.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그곳. p.247 "집중, 집중! 너희들이 무슨 생각으로 요리 병과로 지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요리사는 요리사이기 이전에 가장 현란한 마술사가 되어야 해. 알겠어? 마술사와 요리사 모두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다만 마술사는 상대의 눈을 속이지만 요리사는 상대의 혀를 속여야 해.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습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마술사들이 젊은 연인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내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맛을 대령하는거지. 곧 죽어갈 머저리들에게. 응, 알겠나?" p.256 사람의 표정은 때로 미래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한 집단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p.257 썩어가는 것들일수록 더 깊은 맛을 풍기지. 인생도 그렇다. 너의 무엇이 너를 간절하게 하느냐? 그것이 없다면 요리는 겉치레일 뿐이다. p.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