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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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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은 질문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하면 포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까닭은 영화「변호인」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려「변호인」을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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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은 질문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하면 포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까닭은 영화「변호인」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려「변호인」을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묵직하고 호소력이 묻은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즉,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계란은 바위를 넘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다운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운 삶.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사항’ 이니까요.

 

사회역학자 김승섭의『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회 곳곳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차별, 혐오, 질병, 가난, 재난, 성소수자라는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듣고 있으면 앞서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사항이었던 사람다운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계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당사항은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답으로 되돌아올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병들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바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수많은 데이터는 사회적 약자가 어렵지 않게 환자가 된다는 근거를 합리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합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적절한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몸이 계속해서 건강에 빨간불을 깜박이며 위험 신호를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멈추지 않고 달기만 하면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 당장의 건강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령,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몸이 아파도 일해야만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바커 가설(Baker's Hypothesis)’에 따르면, 비정규적 근로자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모순이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보통 그 대답으로 적절한 치료를 많이 듣게 됩니다. 가령, 금연을 하면 폐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처방입니다. 물론 이런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폐암의 원인을 오로지 담배에게만 책임을 따지면서 담뱃값을 올려버리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담뱃값을 걱정하면서 금연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연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더 망가질 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탐구합니다. ‘역학(Epidemiology)'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흡연은 폐암의 주요 원인입니다. 하지만 폐암의 원인을 찾아보면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여러 원인이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면, '원인 그물망'의 한가운데에 있는 '거미'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금연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흡연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연제도보다 현실적으로 스트레스가 없어야 금연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사회역학을 전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또한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사회역학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살다보니 더 많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료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 약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질병을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는 사회적으로 단절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라는『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어 나가면서 ‘정의로운 건강’을 생각했습니다. 정의로운 건강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으며 평등해야 합니다. 정의로운 건강은 정의로운 사회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건강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지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폭력 혹은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얼마든지 죽거나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존재가 되어 버리는 현실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만약에 아픔이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궂은비를 맞았습니다. 비록 아픔을 멈출 수 없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아픔이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변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 길이 될 때 정의로운 건강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한발자국 다가가며 공감하는 저자를 보면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변호인’이 우리 눈앞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픔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정의로운 건강을 몸소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함께 하는 세상은 이런저런 제도에서 벗어나 ‘사람이 먼저다’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요?

    

p******0 2017.10.10. 신고 공감 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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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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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가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 역학이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원래 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역학 연구는 인구집단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고 노동자가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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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가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 역학이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원래 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역학 연구는 인구집단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고 노동자가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시멘트 공장 지역 주민들이 단체로 폐렴에 걸렸을 때도 역학조사를 한다. 이 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들어가는 말에서 이야기 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살아간다.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이런 문제들을 네 개의 주제로 묶어서 설명한다. 1.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등이 그것이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같은 대답이지만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의 경우, 그 말이 사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p.20)”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에도 이렇게 아픔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만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되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전 사회가 남긴 상처가 인간의 몸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Me Too 운동도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40여 년 전 레이온과 석면을 생산하는 일이 노동자들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잘 알면서도, 일본은 한국에 동양레이온의 기계를 넘기고 합작회사인 제일화학을 설립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한국 노동자들이 겪을 이황화탄소 중독과 악성 중피종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이 누군가에게 1964년의 동양레이온이나 1971년의 일본석면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p.119)” 그러나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암으로 죽어갈 때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해 오면서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지금도 중국, 인도네시 등 20여 곳에 생산거점 공장을 세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위험한 작업은 하청을 주어 해결하고, 하청 기업은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힘없는 근로자만 오롯이 그 피해를 떠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동남아 국가 등 열악한 환경의 나라에 그 위험을 지난날 일본이 우리에게 넘기듯 떠넘기고 있다.

 

이달의 사락 k******4 2018.08.09. 신고 공감 1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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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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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동아시아/2018.1.10.sanbaram   메리스나 AI처럼 급격히 전염되는 질병이 휩쓸고 지나갈 때나,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생명이 스러질 때, 또는 세월호나 제천 목욕탕화재 같은 사건 사고 등이 발생하면 매스콤은 온통 그 소식으로 도배 된다. 그러나 몇 달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그 피해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주 여성이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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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동아시아/2018.1.10.

sanbaram

 

메리스나 AI처럼 급격히 전염되는 질병이 휩쓸고 지나갈 때나,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생명이 스러질 때, 또는 세월호나 제천 목욕탕화재 같은 사건 사고 등이 발생하면 매스콤은 온통 그 소식으로 도배 된다. 그러나 몇 달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그 피해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주 여성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다고 한다. 이렇게 아픔을 간직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세상에 내 놓았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6년부터 2년 연속으로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수상했다. 재소자 인권, 결혼이주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한국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고 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가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 역학이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원래 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역학 연구는 인구집단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고 노동자가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시멘트 공장 지역 주민들이 단체로 폐렴에 걸렸을 때도 역학조사를 한다. 이 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들어가는 말에서 이야기 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살아간다.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이런 문제들을 네 개의 주제로 묶어서 설명한다. 1.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등이 그것이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같은 대답이지만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의 경우, 그 말이 사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p.20)”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에도 이렇게 아픔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만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되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전 사회가 남긴 상처가 인간의 몸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Me Too 운동도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40여 년 전 레이온과 석면을 생산하는 일이 노동자들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잘 알면서도, 일본은 한국에 동양레이온의 기계를 넘기고 합작회사인 제일화학을 설립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한국 노동자들이 겪을 이황화탄소 중독과 악성 중피종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이 누군가에게 1964년의 동양레이온이나 1971년의 일본석면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p.119)” 그러나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암으로 죽어갈 때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해 오면서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지금도 중국, 인도네시 등 20여 곳에 생산거점 공장을 세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위험한 작업은 하청을 주어 해결하고, 하청 기업은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힘없는 근로자만 오롯이 그 피해를 떠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동남아 국가 등 열악한 환경의 나라에 그 위험을 지난날 일본이 우리에게 넘기듯 떠넘기고 있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암에 걸려도 공무 중 부상 처리를 받기 쉽지 않은 것과 같은 경험이다. 피해자 개인에게, 자원과 자본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인과관계 증명의 부담을 떠넘기는 한국사회의 취약함이 세월호 참사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p.185)”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담보로 근무하는 그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는 1997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비정규직 고용이 전 사회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약자의 생존에 위험을 주기 시작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깊은 통찰과 연구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의 일과성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 지향이고 HIV감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p.215)” WHO는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WHO, 1992). 유엔 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2012).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한국에서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 한다. 그리고 2013년 출판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이나 캐나다에 거주하는 스무 살 젊은이가 HIV에 감염되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평균 51.4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의학의 발달로 HIV/AIDS는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가 단일민족 신화에 기초한 민족주의이고, 그 종교의 교인이 될 수 없는 이들은 내내 한국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람이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귀화한 지 20년이 넘는 한국 사람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그 말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현하는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알고 있을까요?(p.230)” 이와 같이 인종차별의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식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기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강조하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달의 사락 k******4 2018.02.27. 신고 공감 7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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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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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져서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의 인권도 존중해야 하느냐’는 동일한 질문을 독서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들을 수 없겠지만) 저자에게 던졌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답했다.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조심스럽지만, 지금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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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져서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의 인권도 존중해야 하느냐는 동일한 질문을 독서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들을 수 없겠지만) 저자에게 던졌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답했다.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조심스럽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문장만으로 윤리교사인 나보다 사회역학자인 저자가 훨씬 더 윤리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예민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조화로운 춤을 추는 듯하였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의 책임을 묻고,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떤 생각을 갖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진심어린 고민이 페이지 한 장 한 장마다 배어있다. 그 고민은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 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던 그 때 나는 어디 있었냐고, 무얼하고 있었냐고 묻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학자이자 의사인 저자는 당연하게도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 (과 마음)의 고통은 어딘가 상처를 입었음을 알려주며,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아픔이 어떤 식으로든 명징하게 기록되어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되어야 함을 일관되게 설득하고 있다. 이 책은 그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이 책을 독서하는 동안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 감탄하다가, 내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던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동반한 고통을 느끼다가, 책을 덮을 즈음엔 희망을 보았다. 자신의 지성을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진정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저자 같은 이가, 비록 눈에 띄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사회 곳곳 어디선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면, 아픔은 조금씩 치유될 것이다. 작은 힘이나마 이 책을 되도록 내가 아는 많은 사람에게 권함으로써, 치열한 경쟁의 입시문화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말자고 윤리교육의 본질을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저자의 진심과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이 책은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중략)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저자의 이 말에 덧붙일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18.09.04.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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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내용보기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로 일했고, 지금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김승섭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랍니다. 언론의 극찬을 받은 책이라하여 작년 말 사놓고는, 제법 되는 두께에 눌려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더랬습니다. 언젠가부터 책 읽기가 힘겨워지고 밀도있는 글도 쓰지 못하는 터라,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내용보기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로 일했고, 지금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김승섭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랍니다. 언론의 극찬을 받은 책이라하여 작년 말 사놓고는, 제법 되는 두께에 눌려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더랬습니다. 언젠가부터 책 읽기가 힘겨워지고 밀도있는 글도 쓰지 못하는 터라,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평에 끌려 제게 오게 하였습니다.

인문교양서나 사회비평서로 분류되는 글인데 어쩜 이리 아름다운지요. 기저에 슬픔이 깔려서일까요?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글은 문장 자체가 가진 고유의 힘에 의해서도 나오지만, 대상을 대하는 사람의 애정에도 크게 기인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처연한 느낌이 계속 저를 잡고 있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저이기에 어쩌면 저 자신에 대한 애처로움이 투사되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라는 이름의 글을 올리는 것이 이 책에는 맞지 않는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리뷰를 무용하게 하는 책이랄까요? 조금 과장되이 말하자면,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을 올려도 평균 수준의 리뷰보다 낫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감상을 올리지 않는다면 선악을 분별하지만 침묵하는 자의 비겁함이 되지 싶어 책의 일부분을 올리는 것으로 면피코자 합니다.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중략...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d*********2 2018.02.1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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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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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읽은 일반서적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통계가 이렇게 가슴아플 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역학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어서 좋았어요또 하나 큰 의미로 다가온 건 저자의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입니다.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고 쓴 글은 정말 가슴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나도 이런 시선을 지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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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읽은 일반서적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통계가 이렇게 가슴아플 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역학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어서 좋았어요

또 하나 큰 의미로 다가온 건 저자의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고 쓴 글은 정말 가슴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나도 이런 시선을 지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은 쉽습니다. 연민을 가지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진실로 한발자국 나아가서 약한자들의 

편에 서는 것은 일반적인 용기로는 택도 없는 일이라는 걸 절실히 압니다.

겁쟁이인 저에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이런 책이야말로 정말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n********l 2019.02.0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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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내용보기
개인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부대끼며 사회라는 틀 안에서 지낸다. 나라의 국민으로서, 일터의 노동자로서 살아가며 다양한 업무환경, 정책, 때로는 재난에도 노출된다. 개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으려면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누군가 힘들고 아프다면 유전적 요소 뿐만 아니라 환경적 요소 때문이기도 하다.  보건과학과 교수이자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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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부대끼며 사회라는 틀 안에서 지낸다. 나라의 국민으로서, 일터의 노동자로서 살아가며 다양한 업무환경, 정책, 때로는 재난에도 노출된다. 개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으려면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누군가 힘들고 아프다면 유전적 요소 뿐만 아니라 환경적 요소 때문이기도 하다.

 

보건과학과 교수이자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는 그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차별경험이나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사회와 격리되어 혼자 살아가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듯,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은 없다. 따라서 개인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책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공동체 내 소수자들이 겪는 편견과 억압이 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겪은 질병과 자살, 유해물질 관리를 하지 않아 수많은 노동자를 사지로 몰아넣은 원진레이온과 제일화학,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이 겪은 직업병, 사회적 약자의 열악한 근무환경 등 사례는 다양하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 중 다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가족을 포함한 관련자 중 29명이 뇌출혈과 심장마비,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 중에는 자살자도 다수 있다. 이는 해고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한국사회에는 해고자를 보호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이 일반화되어 해고가 자유로워졌고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으로 고용안정성이 줄어들었다. 앞서 본 쌍용자동차는 인건비를 감축할 목적으로 정리해고를 원했고 정리해고 대상 기업이 되기 위해 감사보고서를 실제보다 더 부실해 보이도록 왜곡했다. 이제 기업은 필요에 따라 노동시장을 흔들 수 있게 되었고, 경영자는 노동자보다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심신의 건강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서 시달린다. 정규직 노동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다면, 혹은 자신이 업무 저성과자로 평가받는다면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일한다. 압박과 스트레스가 노동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는 더 있다. 바로 ‘위험의 외주화’다. 직장의 위험한 작업이 점점 사회적 약자의 손에 전가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란 하청이나 도급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빈곤층이다. 원청 업체가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기면 하청업체는 원청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위험부담을 떠맡을 수밖에 없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난소암과 다발성경화증을 얻어 사망한 여성 노동자들은 긴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았지만, 다른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한 작업을 하며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건강을 잃는 사례는 도처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김승섭 교수는 인턴과 레지던트, 소방공무원, 양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도 연구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도 병원이라는 사회 내부에서는 약자이다. 수련이 끝나면 더 높은 보수와 대우가 주어지겠지만 전공의들의 사정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주 평균 93시간을 일하고 일 평균 5.4시간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이 턱없이 부족한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공의는 병원에서 근무하지만 본인이 아파도 시간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7년부터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병원 내 폭력 역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사회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공무원이나 의경이 받는 처우도 다르지 않다. 소방공무원은 현장에서 일반인에게 폭행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다. 일하다 다쳐도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까봐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포기한다. 게다가 소방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기 힘들다. 시위 현장에 나가 몸으로 시위대를 막아내는 의경들 역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의경의 처우 개선을 말하는 이들을 찾기는 아직 힘들다.

     

사회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은 타인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배척받고 고립된다. 미국에서 실시된 연구에 의하면,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은 뇌 전두엽의 같은 영역을 자극한다고 한다. 즉 차별이나 모욕도 신체적 폭력과 유사한 영향을 뇌에 미친다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 역시 신체적 폭력처럼 위협적이며 개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은 편견과 싸우는 과정에서 불안장애나 정동장애 등을 얻는 등 정신적인 건강을 해치게 된다. 오늘날 동성애는 더이상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미국 정신과협회는 이미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인 DSM-2에서 제외한 바 있다. 더불어 미국 연방대법원도 2015년 동성결혼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에이즈를 퍼뜨린다고 오해하고 동성애자들은 음지에서 살아간다. 사회적 낙인과 오해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의 건강을 지키는 사회가 되려면 우선 공동체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구성원이 안전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 사회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공동체가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 타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할 때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철학을 공유하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회 정책과 제도이다. 제도와 철학은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영향을 주며 맞물려 가므로 한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이 정책이나 제도적 노력을 통해 개선되어야한다. 그래야 직업, 소득 수준, 교육 수준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회적 통합, 양극화 해소, 지역 간 균형 발전의 관점에서 건강 불평등 정책에 접근해야 한다. 계층화를 약화시켜 불평등을 줄이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규제와 제도가 있어야 한다.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구성원은 절망한다. 소외된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안전에 관한 제도는 더욱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규제를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안전 규제는 아무리 엄격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진레이온과 제일화학 사례에서 보듯 의사결정 과정에서 알 수 있듯 느슨한 규제가 계속되는 동안 노동자들은 유해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죽어갔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절차에 따른다는 명목으로 규제 기준을 지나치게 엄밀하게 연구한다거나, 로비를 받아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 결과를 내어 놓는 경우를 막아야 한다. 안전 규제는 기업 운영을 어렵게 하거나 매출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공동체 구성원이 편견, 차별, 재난 등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원인을 밝히고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낙태, 성소수자, 재난 피해자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특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들의 자유와 권리도 사회가 나서서 동등하게 보호하여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의 책무이다. 이들 편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려 한다.

j********7 2018.06.0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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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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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 섬세한 사람이 쓴 섬세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내게도 저자의 감수성이 전해져서, 저자와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끼며, 함께 분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역학이라는 분야가 뭔지 알고 싶어서 본 책이었는데 이 책은 정말이지, 뜨거웠다.[밑줄과 함께]「어떤 이는 이 논문을 두고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연구라고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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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 섬세한 사람이 쓴 섬세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내게도 저자의 감수성이 전해져서, 저자와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끼며, 함께 분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역학이라는 분야가 뭔지 알고 싶어서 본 책이었는데 이 책은 정말이지, 뜨거웠다.



[밑줄과 함께]


「어떤 이는 이 논문을 두고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연구라고 할지 모릅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이 연구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든 자원의 생산과 배분에 대한 모든 문제는 항상 정치적입니다. (...) 당연히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편향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해서 어떻게 분석을 했고 그래서 결과를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해서 투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가지는 의미와 더불어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히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P. 76)


「이 '모순'은 공중보건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설이 경쟁하고 충분한 근거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순수과학과는 다르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 역학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의 건강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순수과학과 달리 공중보건에서 판단을 미루는 것은 여러 위험 요소로부터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뜻합니다. (...) 이들이 목숨을 잃은 다음에 얻을 수 있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치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근거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합리적인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P. 82)

* 몇몇 급진적인 한의학 비판자들은 한의학이 과학적인 근거를 구축해야 하며(이는 한의계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 문제이다), 제대로 된 근거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모든 비과학적인 진료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여러 반박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이 인용문에서와 같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그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한의사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람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의 진료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진료 행위를 올스탑하라는 주문은, 그런 사람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없다. 그것은 무척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정의롭지 못한 생각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치료, 명백하게 틀린 치료를 걸러내고 과학적 근거를 구축하는 것 또한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 정도로 중요하다. 그로 인해 미래의 더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둘 다,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한의사들도 몇몇 비난자들도 한 쪽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있을 그리고 미래에 있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말로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일방적인 주장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이 두 부류 모두가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발생했던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울 만큼 기록이라 할 만한 게 없었어요. (...)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P. 166)

* 한국은 기록 문화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옛날부터 이곳저곳에서 들어왔었는데, 이것은 그 하나의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일어난 것이 아니다. 기록해야만 과거를 살피고 더 나아갈 수 있다. 나도 더 열심히 기록하자.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P. 299)

*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 혼란스럽다.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만 하다. 나침반도 없고 지도도 없고 이곳저곳에서는 귀를 막으려 해도 잡스러운 소리들이 계속 들려와 날 짜증나게 한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말이 크게 와닿았던 것은. 특히 "준비를 하자"라는 말. 이 말이 왜 내 가슴에 그렇게 울림이 왔을까. 무척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마치 어릴 때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것처럼. 나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 그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준비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반가운 울림. 오늘도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난다.


 4점

y*****2 2018.04.1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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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선생님이 '특별히 훌륭한 사람'이 아닌 사회에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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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쓴 책이다. 학자로서 대중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디까지 설명해주어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을 뿐더러, 학자에게 요구되는 정밀성을 잃지 않으면서 쉽게 설명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승섭 선생님은 과학사회학/과학철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이를 본인의 연구를 사회와 관계맺게 할 때 고민하시는 듯하다.얼마 전 대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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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쓴 책이다. 학자로서 대중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디까지 설명해주어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을 뿐더러, 학자에게 요구되는 정밀성을 잃지 않으면서 쉽게 설명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승섭 선생님은 과학사회학/과학철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이를 본인의 연구를 사회와 관계맺게 할 때 고민하시는 듯하다.


얼마 전 대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셨을 때 들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자신의 일을 마땅히 하는 것뿐이라고.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흔히 '소수자' 연구나 펀딩이 잘 들어오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헌신을 희생으로 해석하게 되지만, 사실 그들은 정말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고 이렇게 볼 때 어떠한 왜곡도 없이 학자로서 그들을 대할 수 있다. 김승섭 선생님 같은 분들이 뛰어나고 훌륭하되, '특별'하지는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b***6 2017.11.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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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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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질투심 또는 원한감정이 그 뿌리에 있다고 했다는데, 처음 이 말을 듣고 이해했을 때 대단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도덕이라는 범주에 테두리를 치고 누군가 그 범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우리는 모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니체는 이걸 노예의 도덕이라고 봤다. 자신이 능력이 되지 않으니까 땅을 산 사촌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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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질투심 또는 원한감정이 그 뿌리에 있다고 했다는데, 처음 이 말을 듣고 이해했을 때 대단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도덕이라는 범주에 테두리를 치고 누군가 그 범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우리는 모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니체는 이걸 노예의 도덕이라고 봤다. 자신이 능력이 되지 않으니까 땅을 산 사촌에 배 아파한다. 바람피우는 친구를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질투심이 한 움큼 섞여있다. 이를 '르상티망'이라고 한다.

 

도덕의 기원이 원한감정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도덕은 다양한 가치를 포함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자기 잇속만 채우는 부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질투심이라기보다는 공정, 정의감에서 비롯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평등은 노예의 도덕이기보다는 실용적인 선택에 가깝다. 약육강식의 정글보다는 약자에게도 최소한의 몫을 떼어주는 것이 공동체의 일원인 강자에게도 유익하다. 인간이 대체로 일부일처로 살아온 것도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해 각자의 몫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는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평등이 노예의 도덕이라는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평등을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은 대개 약자이고, 평등의 원칙은 못 사는 계층에게 이롭게 보인다. 힘과 부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평등은 자신의 소유를 강탈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도둑질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이들은 능력에 따라 소유하고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 인류 발전의 기본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지만, 늘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니체는 자신의 육체적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입장에 서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듯, 저자인 김승섭 교수는 평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편이다. 동료들처럼 의사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대열에 서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고 잘하는 일을 통해 사회를 좀 더 평등하고 살만하게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약간은 생소한 '사회역학'을 통해서 질병과 죽음을 만들어내는 '원인의 원인'을 탐구하고 있다. 사회는 풍족해지고 기술은 발달하고 있지만, 산업재해와 자살은 왜 세계 1위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그 밑에 놓여있는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이다.

 

알면 보이고, 그때부터는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흡연의 근접 원인은 개인의 스트레스지만, 근본 원인은 고된 작업환경과 문화적 소외다. 40대 남성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인 근본 원인은 노동의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하루아침에 구조조정을 당해 길거리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 소수자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알게 되면 느끼게 되고, 타인의 처지를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 앎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연구하는 저자와 같은 이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이유다.

c****s 2021.08.3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