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학과 심리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 <피에르 슐츠>의 책 <개가 주는 위안>은 ‘반려견과 소통하는 행복심리학’이라는 부제에서 보는 것처럼 개라는 동물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엿보이는 책입니다. 그리고 강아지 세 마리가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책상위에서 잠든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저자는 글머리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가 얼마나 좋은 동물인지 그저 칭송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유에서 도시인들이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지 그 연유를 분석하자는 것이다.(4쪽)” 저자는 개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을 발굴하여 해석하고 있습니다. 개의 계통발생과 유전에 관한 자료, 야생동물인 개를 가축으로 길들이는 과정과 개의 행동에 관한 자료, 등등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 http://blog.yes24.com/document/4873684>를 인용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바로 저자가 객관적 시각에서 개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부디안스키가 자료를 인용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에 대한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만, 슐츠 역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시각에서 개라는 동물의 행동양식과 생각까지도 이해하려하는 일반인들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 첫 번째는 개의 기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간은 야생동물인 개를 수백년 동안 길들인 결과 가축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해서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개와 사람이 협력하게 되었다.(11쪽)”고 하여 인간의 필요성에 의하여 개를 가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종래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디안스키의 설명에 따르면 야생개가 먹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주위를 맴돌던 끝에 인간의 삶에 파고들게 되었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저자는 개와 인간이 먼 옛날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공생관계의 기본인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루는 점이 전제가 된다고 함에 있어, 인간사회에 들어와 먹이를 해결한 개가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개가 인간에게 기생하게 된 것이라 볼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개도 사람에게 ‘젖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공생관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주인의 병을 개가 떠맡아서 주인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들 한다.(55쪽)”고 적었습니다. 이런 주장 역시 철저하게 사람의 시각에서 생각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집안에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위암으로 수술받고 투병중인 매형 집에서 오래 같이 살던 개가 어느 날 죽게 되었습니다. 누이가 오랫동안 아끼던 녀석이라서 몹시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마 매형의 병을 대신해서 죽었나보다고 위안을 삼는 경우를 보았는데, 매형을 간병하느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에서 오는 변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자나 호랑이를 만나게 되면 내 개는 나를 위하여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싸우려 달려들 것이다.(56쪽)”라는 콘라도 로렌즈의 말을 인용한 것도 대부분의 실제상황이라면 꼬리를 말고 먼저 달아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강아지”라는 속담이 내려오는지도 모릅니다. 개의 지각작용에 관한 글에서도 주인이 집에 도착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는 이야기(59쪽)에 관해서도 부디안스키는 이미 개의 일반적인 행동양식을 통해서 개가 특별한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 바 있지만, 저자는 이와 관련된 자료는 외면하여 개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슐츠는 개의 신분상승이 눈부시다는 점을 당연하다는 듯이 적고 있습니다. “인간은 개나 다른 반려동물에 대해 때로는 괴상스러울 만큼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과 가까워져서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여러 종류의 동물 중에서도 개는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139쪽)”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에 불이나면,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개를 구할 것이다.(183쪽)”는 발언을 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인간과 생활을 같이해온 개라는 동물이 탐색견, 양치기개, 사냥개, 등과 같이 다양한 목적에 맞도록 품종이 개량되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어온 점은 분명 치하를 받을만한 일입니다. 또한 최근들어 그 활동영역을 넓혀 사람의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는 치료견 뿐 아니라 외로운 사람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의 차원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는 점도 인정할 수 있지만, 개와의 눈치싸움에서 밀려 주도권을 넘겨주고 개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개는 개일 뿐” 아니겠습니다. 저자는 반려견의 위로와 치유에 관한 연구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인간관계를 재조명해오고 있다고 합니다만, 현대인의 외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반려견에서 위로를 찾는다는 발상은 마치 마약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현실 회피적이라는 느낌이 들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회복시키기보다는 현대인의 고립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프랑스어 번역서인 탓인지 책읽는 흐름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개인사에 관한 문제로 우리에게 친숙한 르윈스키를 레빈스키로 번역한 것(176쪽)이나 헨리왕 군대에 대한 곳에서 ‘도그(116쪽)’라고 적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사람들. ![]()
![]()
"들판에서, 해변에서, 숲에서, 사람과 개가 함께 있는 모습을 관찰해 보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들은 (나는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개가 없는 사람'보다 더 쾌활하고, 더 활기차며, 더 즐겁고, 더 여유 있으며, 더 젊어 보인다. 그렇다. '개와 같이 있는 사람'은 '개가 없는 사람'보다 더 강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자연과도 더 친밀하게 소통한다. " (p20) ![]() ![]() ![]() 이 책을 읽으면서 개를 좋아하는 애견인으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 ![]() 작가는 문학, 심리학, 동물 행동학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서 왜 우리가 개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일깨워준다. |
|
비물질적 공생 관계란, 숙주(인간)가 공생 동물(개)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보호해 주는 대신 공생 동물(개)로부터 빗물질적인 서비스를 기대하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협력 형태를 의미한다. 개가 인간의 정신 작용을 도와주고 조율해주는 무형의 서비스, 이 새로운 역할에 저자는 ‘에그조프시쉬슴(exopsychism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개는 사람의 두뇌 외부에서 의욕과 감정을 자극하는 원천이 된다. 에그조프시쉬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개가 사람에게 제공해 주는 정신적 서비스의 장점은 주인이 날마다 긍정적인 감정을 수엇이 많이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몇몇 종류의 개미들은 진드기들이 생산하는 당분이 든 분비물을 먹고 산다. 개미들에게 젖소 역할을 하는 진드기들은 개미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곤충이며, 개도 진드기처럼 사람에게 젖소 역할을 한다. 소중한 당분이나 꽃꿀같은 우정 혹은 사랑을 준다. 인생을 더 즐겁게 만들어야 하는 전략 중의 하나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위안을 받기 위한 전략은, 개가 주인에게 매 순간마다 보여주는 애정 어린 관심을 통해, 개 주인은 자신의 존재감과 중요성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개와 같이 있는 사람은 개가 없는 사람보다 더 쾌활하고, 더 활기차며, 더 즐겁고, 더 여유 있으며, 더 젊어 보이고, 더 강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자연과도 더 친밀하게 소통한다. 개는 겸손하면서도 재주 많은 도우미며, 사람처럼 고기를 먹을 줄 알고, 스스로 사냥감을 유인할 줄도 안다. 이런 이유들로 개와 사람은 가까워졌다. 개가 어린이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좋아한다. 개의 매력은 익숙하지 않은 것과 이상한 것에 대한 사람의 호기심에서 나온다. 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함을 기본자세로 삼는다. 단번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신뢰감이 넘치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반면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본자세는 관찰과 경계심이 주가 된다. 개는 가까운 사람을 잃고 큰 슬픔을 경험할 수 있다. 고통 받고 있는 주인의 병을 개가 떠맡아서 주인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들 한다. 개는 다정다감하면서도 깊은 충성심을 겉으로 표현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사회화와 웰빙의 원천이 된다. 반면, 질투심과 과격함도 드러낸다. 늑대는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존경과 복종을 맹세한다. 인간의 가정에서 살고 있는 개는 대개 그 가정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을 따른다. 개가 주는 기쁨은 매 순간 약간의 모험을 채색해 주고, 기계적인 생각이 주는 영향력을 줄여주고, 긍정적 감정의 주파수를 높여주며, 어린이의 교육과 노인의 안락함에 이바지한다. |
|
|
|
주변을 둘러보면 개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집에서 개를 2마리 키우고 있지만 엄연히 말해서 내가 키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산 것도, 밥을 주는 것도, 주사를 맞히러 병원에 데러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돈을 아껴쓰는 ! 바로 내 동생이 개를 키운다. 그것도 두 마리나.그녀의 성질 같으면 절대 허튼 데 돈을 쓸 사람이 아닌데 왜 개를 저렇게 아끼고 온갖 돈을 다 쓰는 걸까? 궁금할 때가 있었다. 나도 같은 집에 살다 보니, 그녀가 키우는 개들을 자주 대한다. 개들은 참 귀엽다. 아무한테나 잘 달려든다. 그것이 우리 집 개의 성격이 좋아서? 라고 그녀는 말한다. 확실히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이 책은 이처럼 개를 키운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에 관점을 맞추어서 써 내려가고 있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는데, 그것은 내가 개를 키우진 않아도 개를 접해봐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와 함께 생활하지 않았을 때에는 나는 개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멍멍 짖는 것도 무섭고, 큰 개이면 더 무서웠다. 하지만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개가 얼마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개의 충성심에 대해서도 감동에 감동을 했다. 직접 키우지 않는 나에게도 이렇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주는데,주인에게는 얼마나 큰 사랑을 줄까?? 그것은 현대인이 살면서 생활 속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는 100% 순도의 사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생이 왜 개를 키우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개는 사람과 달리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리에 따라 떠나고, 가만히 놔둬도 실망하고, 나를 오판하면서 아프게 하면서 오히려 나를 탓한다. 하지만 개는 아니다. 내가 개에게 함부로 대해도 (!) 곧 꼬리를 흔든다. 내가 혼내고 뭐라 하면 멈칫 하다가도 곧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고 내가 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들에게 괜히 화를 냈구나 ㅠㅠ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무작정 주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들은 나를 재고 따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해 주는 것이다. 이런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를 키우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신의 개가 소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개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집에 있을 강아지들이 오늘따라 더 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개에게 무엇을 줘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개가 스스로 좋아서 꼬리를 치는 것이라고 책에 써 있었다. 그 녀석들이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대서 아구 귀찮아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 의심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늘은 집에 갈 때 개 껌이라도 사 갈까..^^ (근데 동생은 매니아라서 그런 저질불량식품 ? 개껌은 주지 않는다고 한다....ㅡㅡ.. 자연산으로 삶아서 먹인다... 닭고기 등.. )
|
|
개를 기르다보니 예전에는 관심이 없던 분야에 대한 책도 관심이 많아졌다. 가령 이런 책들 말이다. 처음에는 개를 잘 기르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 개를 훈련시키고 개를 주인마음에 들게하는 류의 책들이었다.
그러나 어느정도 살아가면서 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제는 공생을 넘어 상생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개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가 나에게 주는 가치와 그 의미에 대한 것들을 곱씹어보게 되었고 결국 이런 류의 책들도 관심이 가게 된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개는 친구보다 편안하고 연인보다 사랑스럽다는 말에 동의한다. 개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을 터놓고 할 수 있다. 비밀이 보장되는 것이다. 아무도 듣지 않더라도 임금님귀는 당나귀귀라고 외치고 싶은 그 심정~! 강아지한테라도 털어놓으면 얼마나 후련한지 경험해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마치 알아듣는듯한 리액션! 강아지들은 얼마나 훌륭한 친구인지 느끼시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부분은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개의 입장도 배려했다는 것이다. 개는 물론 이제 어떤 사람들은 누리지 못할 특권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안들겠지만 어쩌겠는가! 개는 이미 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를 갖춰버렸는걸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개가 뽀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개는 복종의 의미로 싫은데 뽀뽀하는 주인을 참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사실 쇼킹한 내용이었는데.. 서로 별로 안내키는 뽀뽀를 참고 하고있었다니 웃음만 나온다. 그런데 나는 싫은 뽀뽀를 참으면서 하다보니, 어느새인가 뽀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우리 새꾸들은 아직도 뽀뽀가 싫을까?
개와 함께 살아가시는 분들은 이 책이 재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이 많은 정보를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된다.
|
|
세상에는 정말 많은 동물이 있다. |
|
지금의 나는 다른 반려동물 애호가처럼 애완동물을 이뻐하고 키우는 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수 있지만, 어릴때는 우리집 개도 그다지 예뻐해 주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좀 복잡한 느낌이었다. 어렸을때 부터 강아지가 방에 있으면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고 한다. 예민한 탓이었을까, 강아지의 존재를 두렵게 느끼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집에선 어쩔수 없이 강아지 다른 집에 주고, 그 이후 강아지를 다시 키우지 못했다.
우리집 개도 안아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서선지, 내가 강아지를 안아본 것은 한참 후의 경험이다. 한여름 야외 행사장에서 누군가 안고 있던 시츄가 너무 귀여웠다. 주인이 한번 알아보라며 내게 넘겨주었는데 녀석도 가만히 있고, 내가 다소 소심한 시도를 했고, 그 물컹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애완견으로 누리는 기쁨중에 하나일까, 소통을 알기전에 헤어져야했지만, 사랑을 표현할줄 아는 존재에 우리는 위로 받는 것이다.
예전보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수 있고, 나도 그 이웃들로 부터 위로를 받는다. 주로 만나는 녀석들은 시츄, 푸들, 말티즈 정도로, 녀석들의 개성도 품종만큼이나 다양한데 예민해서 처음 만난날부터 나랑 대치하던 녀석, 얼굴을 익힌 날부터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도 있다. 처음에 냉랭했다고 해서 두번째 볼때도 그런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녀석이 나의 서열을 알았다기 보다는 안면텃다며 반가움의 긴 세리모니를 하기에 이른다. 그런 호의를 보이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상승하는데, 어찌 이뻐하지 않겠는가.
개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개에 대한 인간의 권위는 절대적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런 점을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개와 함께 있으면, 다른 존재가 항상 옆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개와는 어렵게 협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사람이 평생을 걸쳐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결점도 개 앞에서는 온전히 드러내 놓을수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지! - 본분중에서 발췌 -
사람과 개의 동거는 여러가지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충분한 위안과 충직의 표현을 개로부터 무한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개와 인간 어느쪽에서 서로를 길들였을가, 책에서 처럼 종종 그런 생각도 해봤다. 서열이 분명한 녀석들이니 만큼 정말의 마음은 어떤걸까 생각해 보지만 본능에 충실하고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이니 더 사랑스러운데 그런 생각을 하는것은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비언어적 소통으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달까, 점점 욕심이 과해지는 인간의 특징인지, 개을 인간과 동일시하는 현상도 자주 볼수 있는데, 그러한 과정은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영화 '말리와 나', '에이트 빌로우'는 개가 나오는 영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인데, 말리와 나의 경우, 부부가 결혼하고 가족을 늘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모든 과정에 말리가 있었다. 리트리버 아가였을때 부터 세상을 떠날때까지 그들과 함께한 말리는 가족이었다. 애완견을 키울때 자기만의 철학도 중요하지만 '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혀가며 성장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
|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었지만 개들은 남아 있었다
ㅡ 미키 루크 Mickey Rourke
나는 개와 함께 산다. 이름은 하루. 하루를 알고부터 나의 세계는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다.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많은 동물들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꿈 같은 일이다. 하루가 나를 동물의 왕국에 초대해준 것이다. 감긴 눈이 와짝 떠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개를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낯선 촉감과 체온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아기처럼 옷을 입힌 개를 품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작고 가벼워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하루를 만지는 연습부터 시작해 이제는 나도 그들처럼 개를 품에 안고 다닌다. 추울 땐 옷도 입힌다. 그리고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에도 익숙해졌다. 이 놀라운 변화를 통해 나는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실감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경멸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고 언젠가 우리도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지도 모르니까.
7월이면 하루는 두 살이 된다.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구나. 처음 몇 개월 간은 정신이 없었다. 개 양육 관련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휘젓고 다녔다. 각종 예방접종과 중성화수술, 배변훈련을 거쳐 하루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하루를 돌보는 일에도 제법 능숙해졌다. 샴푸 거품을 뒤집어쓰고 욕실을 탈출하는 하루를 쫓아다니는 일도 없고, 간혹 끅끅거리며 게워내는 것을 보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이제 내 관심은 하루와의 소통이다. 자연스럽게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반려동물에 관한 책들도 눈여겨 본다. '반려견과 소통하는 행복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도 그렇게 만났다.
"우리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고,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숨을 쉬기만 하고 전혀 살아가지 못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갈 운명에 처해져 있지만,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 해도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짐이다."
ㅡ 에드워드 영(1983~1765)
개를 키우면서도 개가 주는 위안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루랑 있으면 생각할 틈이 없다. 매순간 경이로울 뿐이다. 이렇게 죄 없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하루의 순수한 본능을 좇아 놀다 보면 내 무거운 죄들도 잠시나마 잊혀진다. 개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 단순한 본능으로 움직일 뿐이다. 먹고 싸고 놀고 잔다. "개를 키울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꼴뤼쉬(뭐하는 사람일까?)의 말처럼 개는 아기와 같다. 나이를 먹어도 개는 아기 같다. 책에서는 이 순수함을 개가 주는 위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미 자신에게는 없는, 잃어버린 순수함을 체험할 때 인간은 무거운 짐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 같은' 개가 주는 위안은 또 있다.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길을 잃고 굶주릴 연약한 존재를 통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사랑 대개는 온전히 남아 있는 사랑 그들이 완전히 체험할 수 없었던 사랑 혹은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타버리지도 못한 사랑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 개는 그 사랑의 화신이다
ㅡ 마들렌 샵살 Madeleine Chapsal *프랑스 소설가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개에게 너그럽다. 사방에 오줌을 뿌리고 다니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짖어대도 개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영역표시를 하고 짖는 것은 개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꾸짖기는 하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 개를 대하는 이 너그러움이 인간에게로 향한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 대해서는 쉽지가 않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개처럼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심을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치사하다. 이기적이고 치사한 사랑에 지친 사람들에게 개는 사랑을 일깨워준다.
아기 같은 순수함(그리고 연약함)과 무조건적인 사랑. 이 책에서 말하는 '개가 주는 위안'이다. 이 책을 선택하는 대부분이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상된다. 그중에는 나처럼 자신의 개를 좀 더 잘 알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개에 관한 책이 아니다. 개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책이다. 심리학 전문 의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반려견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와 치유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을 조명하고 있다. 개와 관련된 경구나 개가 등장하는 문학작품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
|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을 말하자면 멍멍이를 말할수 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