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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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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이라는 책은 인간을 그저 일하는 기계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를 고발하고, 이 자본주의를 고치는 해답은 노동자들의 연대 즉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뿐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뚜렷한 주인공이 없어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노동자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것이 감독 즉 자본가와의 갈등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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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잡이 공선이라는 책은 인간을 그저 일하는 기계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를 고발하고, 이 자본주의를 고치는 해답은 노동자들의 연대 즉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뿐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뚜렷한 주인공이 없어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노동자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것이 감독 즉 자본가와의 갈등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은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했던 군함(정부)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때 자신들이 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투쟁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감독(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갈등이 심해진다. 그들의 투쟁은 한번 실패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투쟁을 하여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

 이 책은 1929년에 써졌지만 2008년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 이유는 일본의 사회의 변화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은 원래 회사에서 종신고용이라고 해서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보장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에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종신고용이라는 것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은 아르바이트 비용이 비싸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이 종신고용이 깨지면서 아르바이트의 경쟁률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고,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졌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게잡이 공선이라는 책의 상황이랑 맞아 떨어져 2008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노동자의 삶을 다시 한번 깨닫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q****u 2011.09.25.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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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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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문어는 살아가기 위해 제 살을 깎아 먹는다”라는 이야기를 게 잡이 공선의 노동자에 빗대어서 표현한 부분에 크게 공감을 하면서, 그 옛날 일본이나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놀랍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즈음에서는 구축함이 왔다는 소리에 노동자들이 국가가 자신들을 구조해주길 바라고 환호하지만, 결국 국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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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문어는 살아가기 위해 제 살을 깎아 먹는다”라는 이야기를 게 잡이 공선의 노동자에 빗대어서 표현한 부분에 크게 공감을 하면서, 그 옛날 일본이나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놀랍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즈음에서는 구축함이 왔다는 소리에 노동자들이 국가가 자신들을 구조해주길 바라고 환호하지만, 결국 국가는 회사의 편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 역시도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씨를 응원하기위해 부산 영도로 모여든 희망버스를 일일이 수색하고, 통제하며 한진 중공업을 위해 병력을 쓰던 대한민국의 정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아사카와 감독관(도 회사에 의해 쓰여진 것과 다름없지만)이나 회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본인들이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게 잡이 공선의 노동자들은 본인들의 진정한 이익에 대해 무지했었고, 그랬기에 사용자들의 착취와 협박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들은 무지에서 깨어났고, 진정으로 살기위해서, 더 이상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 지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연대였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게 잡이 공선의 노동자들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야 다 함께 진정한 생존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h****5 2011.09.24.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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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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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한국에는 ‘88만원세대’, 유럽에는 ‘592유로세대’, 미국에는 ‘워킹푸어’, 그리고 일본에는 ‘게잡이 공선’.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삶의 의미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느낌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어업노동자들의 처절함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 고립감, 그리고 아무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는 그 무참함. 노동자들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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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한국에는 ‘88만원세대’, 유럽에는 ‘592유로세대’, 미국에는 ‘워킹푸어’, 그리고 일본에는 ‘게잡이 공선’.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삶의 의미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느낌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어업노동자들의 처절함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 고립감, 그리고 아무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는 그 무참함. 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다.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두 부분이었다. 첫 번째는 소형선이 본의 아니게 러시아로 들어가 일본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장면이다. 러시아인은 중국인을 통역으로 앞세워 일본 어업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를 설명했다. 중국인의 서투른 일본어로 설명되는 사회주의는 복잡한 정치이념이나 철학적사고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지극히 소박한 바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파업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는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한 노동자가 “살해당할 것 같으면 (감독을) 죽이겠다”고 말하자 다른 노동자가 퉁을 놓는다. “그게 언제야. 지금 살해당하고 있잖아. 조금씩.” 현재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이 부조리하고 세상이 못마땅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행동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불합리함을 참다가 결정적일 때 들고일어나겠다고 모두들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정작 들고일어나야 할 때는 그럴 힘도 의지도 다 사라져버려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중요한 건 바로 지금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금세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같은 선배세대의 말대로 정말 짱돌이라도 들고 거리로 나가야 하는 걸까. 그러나 그도 이미 알고 있듯 한국 대학생들은 너무 바쁘지 않은가. 학점관리에, 토익에, 자격증에 그리고 취업준비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는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우리는 지난여름, 부산에서 제주에서 그리고 광화문에서 그 희망을 보았다. 다시 처음으로. 우리의 저항과 연대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다. 그것은 더 이상 갉아 먹히지 않기 위한, 살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다. 하여 80여 년 전 그들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들고 일어서자. 그래, 다시 한 번 더!

r*********4 2011.09.25.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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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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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은 80여년 전에 쓰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은 여전히 현재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노동착취’의 문제이다.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만약 노동자들을 위해 자선적으로 행동한다면 다른 기업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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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잡이 공선은 80여년 전에 쓰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은 여전히 현재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노동착취’의 문제이다.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만약 노동자들을 위해 자선적으로 행동한다면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게잡이 공선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노동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기업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이고 재화를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존중받아야하고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자들의 ‘권리’는 사실상 무시당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번 겨울 홍대에서 있었던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이 떠올랐다. 그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고 휴식을 취할만한 휴게실조차 없었다. 화장실 한 칸의 청소 용구함과 같은 눈에 띄지 않은 곳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면서 정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권리를 찾고자 투쟁을 시작하셨고 결국 승리하셨다. 게잡이 공선에서 어업노동자들이 살기위해 투쟁을 하였던 것과 청소노동자분들이 생존권을 위해 투쟁을 하였던 것이 대응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투쟁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당한 것이고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투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그러한 부당한 일을 겪어보지 못해 직접 투쟁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 생각에 젖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태업을 하자는 말에, 일하기는 힘들어하면서도 태업에는 싫은 얼굴을 했던 중년 어업노동자들이 참 안타까웠다. 그들은 부당함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으려했다.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로 인해 가장 고통 받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점차 투쟁을 해나가면서 생각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행동에 있어서도 변화가 왔다. 투쟁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한다. 그저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찾으려고 투쟁하는 사람들이나 노동자들의 고충을 먼 세계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게잡이 공선의 감독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감독은 스스로가 노동자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적이 좋지 않자 해고를 당하게 되는데, 바로 감독 또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이고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게잡이 공선에서 기업은 어업노동자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게잡이 공선의 사업이,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어업노동자들의 희생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는 애국주의를 포장으로 한 국가주의적이면서도 자본주의적인, 기업의 이익의 논리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애국심을 자극하면서 기업의 이익창출에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또한 희생마저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취직이 점점 힘들어지고 사실상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비정규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신과 동떨어진 세계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취업, 취직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며 현실 사회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s******7 2011.09.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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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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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을 읽고 나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다만 게잡이 공선을 타고 있지 않다고 해서,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게잡이 공선이 있다. 선장은 선원들을 부리고 회사에서 내려온 감독은 선장과 선원과 노동자들을 부린다. 노동자들은 돈이 필요한 학생이거나, 빚에 떠밀려 갈 곳 없이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 감독의 말에 혹해 무작정 배를 탄 사람들이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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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잡이 공선을 읽고 나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다만 게잡이 공선을 타고 있지 않다고 해서,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게잡이 공선이 있다. 선장은 선원들을 부리고 회사에서 내려온 감독은 선장과 선원과 노동자들을 부린다. 노동자들은 돈이 필요한 학생이거나, 빚에 떠밀려 갈 곳 없이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 감독의 말에 혹해 무작정 배를 탄 사람들이다. 물론, 감독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배를 타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들은 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할당받는다. 감독이 자신들을 애당초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해당하지않기 위해서 일을 한다. 어차피 배 안에서 도망칠 곳이라고는 깊은 바다 속 뿐인 상황에서 문제는, ‘누가그들을 죽이느냐이다.

 2008,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닥쳤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메릴린치가 강제매각되었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직장, 예금,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위기 발생의 주범인 투자은행의 CEO나 컨설턴트, CDO와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이용한 그들의 도박을 눈감아준 정부 고위 인사들, 함께 말 맞춰준 학계의 내로라하는 브레인들은 잃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가 상상조차 못할 액수의 돈을 챙기고서도 책임조차 회피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하소연할 곳 없는 억울한 실업자들과 그들이 떠안은 빚뿐이었다.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이런 일들이 가능했냐는 것이다.

 “마지막엔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불변의 진리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질 수밖에 없다. 가진 게 많기 때문이다. 똑같이, 가지지 못한 자는 더 빼앗길 수밖에 없다. 가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노력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는 원리는 그 원리를 보호하는 튼튼한 지지대가 없으면 공정성을 잃고 왜곡되고 마는데, 그 지지대를 마련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지지대는 그들의 이익만을 보호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만든 지지대가 진짜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깨달은 것을 옆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있다. ‘속지 않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닌 걸 알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일부러 속는 척하는 경우도 많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나서기보다 내가그 일을 당하지 않는 데만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기울어진 균형을 바로잡는 데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부당함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각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연대와 투표는 제대로 된 교육만 보장된다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단순히 아는 것만이 아니라 알고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다.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실행할 것인가, 실행한다면 제대로 실행될 것인가, ‘제대로실행되면 마땅히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최소한의 인력으로도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했다. 아무리 열 명 중 아홉 명이 자신의 타당한 권리를 위해 그 이하의 조건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남은 한 명이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는 기꺼이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 아무리 200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배 안에는 또 다른 100명의 노동자들이 있고, 게잡이 공선 하나가 파업을 하더라도 회사는 다른 더 많은 배들을 소유하고 있다. 투쟁이 자칫 실패하면 이는 100을 얻으려다 0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전한 50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현실이며 따라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은 

 나는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남이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 믿어야지만 자신도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결국 또 다시 원점이다. 인간의 양심을 맹신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뛰어넘을 또 다른 방법이 언제나 있는 이상, 그리고 그 방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의 무기가 되고 있으므로,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이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절대로 가지지 못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들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s******2 2011.09.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