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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明朗)이란 말을 들어 본지가 언제인가 싶다. 군에 있을 때, 들어본 ‘병영의 명랑화’가 아마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전에는 ‘명랑’이란 잡지로 만나기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명랑은 선데이서울과 쌍벽을 이루던 잡지였다. 선데이서울이 주로 화보로 불량(?) 청소년들에게 다가갔다면, 명랑은 픽션을 가미한 명랑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었다. 물론 여기서 명랑의 동의어는 ‘선정적이다’라는 뜻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도 명랑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선생님들에게서 듣는 칭찬 중에도 ‘명랑하다’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명랑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다. 아마 지금 듣는다면 명랑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빠질 법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소래섭은 이런 명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감정문화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명랑이,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도 광범위하게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쾌하고 활발한 감정이나 밝고 맑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지금의 명랑이라면, 1930년대나 군사정권 시대에 우리가 들었던 명랑은 정권에 저항하는 불순분자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말한다. 5.16 쿠데타 이후, 그리고 광주항쟁 이후 군사정권은 명랑을 유난히도 강조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명령에 순응하는 윤리를 몸에 새겨 넣는 것 이었다. 우리의 현대사에 나타난 명랑은 불신, 시기, 질투, 중상모략의 대척점에 놓여 있었고, 명랑의 대척점에 있었던 그 단어들은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건, 도덕적 정당성이나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권력은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체제에 대한 도전을 무력화 시켰다. 그러기에 우리 현대사에서 쓰였던 명랑은 항상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1930년대 식민지 시대에도 마찬가지 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두뇌와 신체를 통제하기 위하여 감정정치로 명랑화 작업에 착수하였고, 근대 자본주의의 유입과 함께 노동 또한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를 통치정책으로 내세웠다. 경성이 확장되면서 여러가지 도시문제가 뒤따르기 시작했고, 그러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총독부는 명랑화라는 명분을 내 걸었던 것이다. 이때 명랑의 반의어는 불결, 불량, 오염, 범죄, 퇴락 외에도 저급, 불온, 침울, 퇴폐까지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총독부가 내건 명랑이 체제에 저항하는 것들을 억압하고,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만을 양성하는 규율담론임을 나타내는 것 이었음을 보여준다. 교육은 학적부를 만들어 학업성적 이외에도 가정환경이나 성품, 소견 등이 기록되어 명랑한 학생을 요구했고, 대중문화는 검열에 의한 사상통제로 전쟁수행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른바 건전과 명랑이라는 이름의 모범을 전파하기에 안간힘을 썼고, 이것은 근대적인 자본주의의 심화와 경제불황과 맛 물리면서 가식적인 웃음이 일상화 되게 만들었으며, 아니 이런 웃음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갔다. 명랑한 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랑의 홍수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현실에서, 그런 현실을 신랄하게 비웃는 코미디가 더해져 웃음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명랑해졌지만, 그것은 강압적 통제를 정당화하려는 총독부의 통치 이데올로기였고, 근대 자본주의가 강조한 강요된 감정이었다. 저자는 실제로 명랑을 강요 받을 수밖에 없었던 ‘데파트 걸’, ‘엘리베이터 걸’등 1930년대 각종 ‘걸’들과 경제불황으로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눈칫밥 룸펜’들의 비애 속에서 현대의 88만원세대의 우울을 발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명랑이라는 포장기술을 필요로 했고, 따라서 명랑은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지금에 와서는 명랑이라는 말이 ‘쿨’이라는 레토릭으로 대체되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저자는 현재의 문화를 대변하는 코드가 되어버린 ‘쿨한’ 감성을 1930년대 경성에서 넘쳐났던 명랑의 현대버전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총독부나 자본주의가 강요했던 명랑이 아직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이쯤에서 1930년대 당시의 평론가 김기림이 강조한 감정을 배제한 이성으로서의 명랑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진정한 명랑은 언제나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는 자에게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은 잃어버린 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명랑, 그런 명랑의 문화사를 저자는 불온한 경성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서 찾는다. 1930년대에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웃음이 넘쳐나고 있다. 아니 여기저기서 웃음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로 명랑한 것일까? 여전히 그때 경성에서 넘쳐났던 명랑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말한 1930년대 경성을 생각하면서, 김기림이 말했던 대로 불온한 명랑이 아니라,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명랑이 범람하는 시대가, 그리고 그런 서울이 되기를 바래본다. 과연 그런 명랑이 우리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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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쇼 같은 곳에 가면 몸매 좋은 미남 미녀들이 즐비하다. 더욱 좋은 점은 그런 미남 미녀들이 친절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가는 사람들이 차를 보러 가는 것인지 그런 모델들을 보러 가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있다. 백화점 판매원이나 전화상담원과 이야기하다보면 존댓말을 말하는 상대뿐만 아니라 물건들에게도 마구 사용하여 사람이 물건과 동급의 취급을 받게 되기 십상이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의 한 모습인데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는 거의 없었던 감정노동의 놀라운 결과물이다. 긍정적인 점은 우리는 돈과 열정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나 ‘왕’이나 ‘귀족’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점은 그것이 ‘진짜’는 아니라는 것이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에서 소래섭은 이런 자본주의적 감정, 혹은 근대적 감정의 탄생의 기원이 1920년대 경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분석이 처음은 아니다. 《별건곤》이나 각종 신문 만평을 통하여 한국적 자본주의의 이면을 보여주는 책들이 이전에도 있었다. 아마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책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책은 뛰어난 내용과 멋진 제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보다 쉽게 읽힌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키워드는 명랑이란 말인데 1980년대까지 꽤 많이 사용됐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저자는 명랑이라는 말의 근원을 찾아가면서 식민지 조선의 삶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비정규직이 몇 십만이고 실질임금이 몇 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다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을 듯 하지만 또 로열 웨딩이 유행이라는 뉴스를 보면 결혼식에 저렇게나 많은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자신과는 다른 삶을 동경하게도 된다. 어느 시대에나 삶의 모습은 다양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반의어이자 동의어이기도 하듯이. 한국전쟁에서는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었지만 군인들의 매춘도 극에 달했다. 부산에서는 ‘룸싸롱’이 성업이었으며 심지어 군부대 안까지 여자들이 배달되었다. 베트남전에서 정글을 헤매던 미군들은 휴가를 받아 대만에 가서 여자들과 함께 목욕하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서로 반대의 뜻을 나타내지만 사디스트는 마조히스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닥부터 시작한 자수성가형 지도자가 더 지독하게 사람들을 괴롭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의미는 균형을 잡지 못하면 천국이 곧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강요된 명랑의 기원이 식민지 조선의 경성이라면 명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 혹은 일제가 조선에 강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식민지 시대의 우울을 가리기 위해 대중매체에서는 즐거운 모습이 더욱더 강조된다. 지금도 공익광고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은 항상 밝고 이웃 간에는 친절하며 국가적 어려움은 온 국민이 힘을 합하여 쉽게 극복한다. 신입사원들은 항상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고 식당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론 이런 모습과 현실의 통계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식민지 조선의 명랑이 독재 시대의 명랑처럼 강요된 개념이기에 결국 자연스런 민주화 과정을 겪고 좀 더 평등한 사회가 되면 이런 개념들이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라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수많은 재미있는 예시를 들어가며 명랑이라는 개념을 부정적으로 몰고 간 다음에 김기림을 불러들인다. 김기림이 보기에 명랑이라는 개념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 감정의 발현이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명랑이라는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즉 지배계급이 보기에 명랑은 도달해야 할 목표지만 김기림은 그 명랑을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당대에 김기림의 이런 시도는 모두에게 비판받았지만 저자는 그런 시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김기림에 따르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결합할 수 있으며 우리가 삶을 명랑하게 볼 때에야 그 뒤에 있는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며 우울한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지금의 시대에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데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오락에 탐닉하는 것이 아닌 즐거움의 눈으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즐겁지 않으면 진실의 무거움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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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이란 단어는 받침에 'ㅇ'이 있어서 그런지 어감 상 경쾌하게 들리는데, 흥미로운 것은 명랑의 뜻이 주로 날씨가 맑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 1930년대 들어 유쾌하고 활발하다는 의미로 주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식민지치하에서 느닷없이 명랑이 유쾌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에서 시대적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일제가 정책적으로 '도시명랑화'를 추진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경성의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교통, 치안, 주택, 위생 등...도시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게 되자 총독부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도시 명랑화'였다. '도시 명랑화'는 도시인의 생활 교양 위생등을 위한 시설을 갖추는 것과 도시 문화의 향상 증진을 방해하는 요인을 퇴치하는 두가지 방향으로 추진됐다. 명랑이란 어디까지나 감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총독부에서 도시문제의 해결을 외면적인 행동을 규율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했다는 것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총독부에서는 식민지 시민인 경성인의 감정을 명랑하게 만들어줄 복안이 있었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시기의 명랑은 만들어진 감정이고 주입된 정서였다. 공황의 여파를 극복기 위한 수단으로 또 건전한 오락을 통해 조선인들의 생산량을 높여 전시체제에 활용하고자 일제가 짜낸 고도의 식민정책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에는 감정적 자본주의의 모습들이 도드라지고 있다. 최근에 감정 노동자들이 고객을 대하면서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고충이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다.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누르면서 상대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간에 친절과 명랑한 상태로 대해야 한다는 것, 감정 자본주의로 인한 감정이 왜곡되는 전조가 이미 30년대의 명랑화 속에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여덟 개 드러내고 웃는다는 백화점 직원의 환한 미소를 떠올려 보면 알겠지만,권력과 자본의 위력으로 감정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명랑한 상태로 꾸민다고 해서 현실이 유쾌해지는 것은 아니니, 명랑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좁혀질리가 없었다. 결국 명랑은 실체를 가리는 포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불온함을 허용하지 않는 건전 혹은 모범과 일맥상통했다. 조선인의 신체와 두뇌까지 통제하려 들었던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성격이 짙었고, 궁극적으로는 조선인들이 식민지배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책을 쓰게 된 발상에서부터 신선했다. 무심코 스쳐지나갈 수 있었던 소재였음에도 필자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그 시기를 지배했던 명랑의 감정이 지닌 역사성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30년대를 관통했던 명랑의 감정적 실체와 더불어 감정까지 관리해야 했던 감정자본주의의 민낯에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 명랑의 감정이 정치의 장에서 작동하는 것이 30년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 정치적으로 명량이 강조될수록 더욱 암울한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는 일침을 가하는 것에서 작가의 통찰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명랑에 취하기보다는 불온하고 저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비단 30년대 경성에서 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문제이기도 했다. 명랑의 정치와 자본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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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명랑, 근대화, 자본주의, 식민통치, 감정 관리
‘살아있는 것은 다 관리하라.’
법정 스님의 책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최근의 상황에 맞게 패러디한 대사이다. 21세기 초엽은 인류가 지나왔던 그 어떤 시대보다 경쟁과 관리가 중요한 시대로 써질 것이다. 특히 사적 개인이 공적 활동에 진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관리들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소위 ‘스펙’으로 표현되는 개인 전반에 대한 관리는 이제 우리 일상에 너무나도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방학만 되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의 무리들이 너나없이 학원이나 과외를 찾아다니며 나름의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펙을 쌓지 않는 것 즉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태만이요 범죄요 사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개인의 ‘관리’의 영역은 단순히 가시적인 영역의 ‘스펙’만 있지 않다. 스펙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영역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능력 중 하나는 바로 ‘감정 관리’이다. 공적인 장소와 만남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꾸며야 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김기림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정의 화장법’이야 말로 스펙만큼이나 중요한 현대인의 기본 능력이다. 하지만 감정 관리는 단순히 사회 진출에 필요한 능력으로 멈추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관리는 개개인의 인생 내면에까지 침투하여 실존적 자아의 정체성마저 규정하려 든다. 외부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자기 관리가 이제 인간 내면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범람하고 있는 자기계발서의 유행과 과도한 행복추구 경향이다. 신자유주의 풍토가 확산되면서 유행한 자기계발서는 스스로의 계발을 통해 이 사회에서 더 우월한 지위를 획득할 것을 강조한다. 사회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케 하고 개인 간의 경쟁을 통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안정된 지위의 쟁취를 추구해야 함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는 책이 자기계발서이다. 또 마치 강박증과 같이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도 문제다.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체감 경기가 어려울수록 행복에 대한 욕망은 더 커진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행복’을 자신의 삶에 대한 ‘정신승리’쯤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행복이라는 상태 또는 감정 아래 모든 개인은 그 외의 감정을 부정해야 하는 감정의 독재시대가 펼쳐졌다. 행복에 반하는 상태 또는 감정을 가진 개인은 비정상적이거나 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로 낙인찍힌다. 마치 전염병자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책은 지금까지 말한 ‘감정의 포장 기술’에 대한 역사․언어적 고찰이다. ‘명랑’이라는 말에 고민하고 비판했던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 ‘박태원’의 사유를 좇는 것으로 문을 연 이 책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정치․경제 권력에 의해 실존적 개인의 감정과 사고가 어떻게 통제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명랑’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지만 결국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통제되고 또 강요당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증거이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듯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명랑’에 대한 고찰은 1930년대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명랑’이라는 말이 범람했던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훑어보면서 ‘명랑’의 의미를 크게 세 가지로 고찰하였다. 그 세 가지는 첫째, 일본 총독부라는 정치권력에 의한 ‘명랑화’ 정책이다. 둘째, 자본주의 경제 권력에 의한 ‘명랑’의 사회․문화적 확산과정이다. 셋째, 진정한 의미의 ‘명랑’을 찾고자 했던 식민지 지식인들의 치열한 고민과 정신적 투쟁과정이다. ‘명랑’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1930년대의 경성에서 이 세 가지의 의미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첫째, 총독부에 의한 ‘명랑화’ 정책에서 ‘명랑’의 의미는 불온 세력에 대한 대척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지 않는 인간상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 ‘명랑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감정․사상․행동의 통제 노력은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둘째, 자본주의 경제의 확산으로 경제 주체들에게 내재화 된 ‘명랑’이다. 지금은 상식처럼 통용되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구호가 이 시기에 그 단초를 마련하였다. 즉 서비스업의 큰 성장으로 사회 전반에서 ‘명랑’은 타자를 위한 감정의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감정의 포장 기술’이니 ‘감정의 화장법’이니 하는 의미에서의 ‘명랑’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셋째, 외부에서 강요된 ‘명랑’에 대한 식민지 지식인들의 고민과 정신적 투쟁과정에서의 산물인 ‘명랑’의 정의는 김기림 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부정의 의미’로서의 명랑을 주창한다. 즉 어떤 힘이 균형을 이루어 고정된 상태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힘들이 역동적으로 발산되면서 ‘혼돈’의 상태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혼돈’을 긍정하는 것에서 진정한 의미의 명랑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부정하고 오직 한 가지의 상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소의 감정의 위장은 있더라도 삶의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어야 명랑한 개인, 명랑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명랑’은 단어의 형태는 같지만 각각의 경우에 따라 큰 의미의 차이를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이 세 가지 중 앞서 제시된 두 가지의 명랑만이 이름을 바꿔 통용되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거나 혹은 개인들의 내적 검열에 의해 관리당하는 감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긍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너무 포괄적이긴 하지만 각 개인의 의식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노력을 굳이 첨언하자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닐까.
책의 말미에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지배했던 감정 중 하나인 ‘슬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식민지 시대 민족의 정신적 유대감이 강조되면서 등장한 ‘슬픔’은 한반도에서 살아온 공동체 구성원들의 성격을 규정해버린 단어가 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미술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조차 조선의 미학을 ‘비애에 찬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결국 민족적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슬픔’, ‘한’, ‘우울’이 식민지 조선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강요된 슬픔이 외부의 강압으로 등장한 명랑과 대면하게 되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주게 되었다고 작가는 전한다.
비록 마지막 말미에 짧게 등장하였지만 ‘슬픔’이야 말로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감정 또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비장’이라는 의미로 등장하기도 하고 ‘설움’으로 등장하기도 하면서 현대 한국사의 질곡을 해석하는 매개가 되었다. 책의 주제를 ‘명랑’으로 한정시키다 보니 이런 ‘슬픔’에 대해 다소 소략하게 다룬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두고 벌어진 강요된 감정들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줬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찰의 장소를 경성으로 한정하였는데, 책의 분량과 고찰의 범위, 경성이 갖는 사회․문화적 상징성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의의 범위가 국지적이고 전 사회적 확산 과정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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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에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줄은 의심해본 적도 없었다. 저자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흥미로운 사료들을 가지고 근대에 만들어진 '명랑'이라는 감정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대까지 이어져온 명랑을 이야기하기 위해 전라도민 명랑화 프로젝트를 끄집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일제의 경성 명랑화 프로젝트로 이어가거나, 한국인 특유의 우울함을 캔디 주제가를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만문만화, 신문기사, 잡지를 계속 분석해오는 작업이 저자가 탄탄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지 않았을까 싶다. 문고판이었던 "에로 그로 넌센스"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단행본도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알차게 미시사적 방법으로 '명랑'을 분석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세 가지 명랑을 제시한다. 첫 번째 명랑은 정치적인 것으로, 일제가 경성을 '명랑'화할 때의 명랑이다. 건전, 질서를 뜻하는 이 명랑은 군부독재 시절까지 이어져왔다. 경성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질서를 잘 지키도록 훈육하는 일제를 위한 근대화였다. 두 번째 명랑은 경제적인 것으로, 자본주의가 입지를 굳혀가면서 서비스업에 있어 감정의 절제술, 감정의 포장술로서의 '명랑'이 생겨났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감정을 통제하고 의도적으로 명랑해보이도록 꾸미는 것이 요구되었다. 이 명랑은 군부독재보다도 생명력이 길어서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명랑을 교육, 대중문화, 출세, 연애, 여성, 스포츠의 분야를 통해 길게 분석해나간다.
이렇게 사실적인 기술을 통해 두 가지 명랑을 제시한 후 저자는 사장되었던 세 번째 명랑을 이야기한다. 이는 시인 김기림이 주장했던 명랑으로 위의 두 명랑과는 의미가 매우 달랐다. 그의 명랑론을 읽으면서 니체 분위기가 난다 싶었더니 역시 저자는 니체 이야기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변증법이 우리나라 문학계에도 있었구나 싶어서 반갑게 읽었다. 김기림의 니체적 명랑론이 매혹적인 한편, 그의 모더니즘이라던 합리적 지성으로 감정 통제하기가 고전주의를 극복하고 낭만주의로 넘어가던 초기낭만주의 시기의 예술론과 비슷해보였다. 비슷하다면 낭만주의를 비판하려던 김기림이 오히려 초기낭만주의자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니체도 일정부분 낭만주의자들에게 받은 영향이 있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김기림은 부정을 포함한 긍정으로서의 명랑을 이야기한다. 남이 강제한 명랑이 아니라 스스로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자기 창조로서의 명랑인 것이다. 어디까지가 김기림의 고유한 이야기이고 어디부터가 저자의 해석인지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말대로 88만원 세대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만큼 현대에도 매력적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김기림) 그는 1920년대를 풍미했던 낭만주의 문학이나 사회주의 문학 모두를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모더니즘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맞는 문학의 지향점이라고 주장했다... 김기림이 더욱 문제 삼은 것은 낭만주의였다. 그는 김소월이나 홍사용으로 대표되는 1920년대의 낭만주의를 '센티멘털 로맨티시즘'으로 규정하며 격렬한 반감을 드러냈다. 센티멘털 로맨티시즘이란 애상, 비탄, 절망, 단념과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문학을 말한다. 그러한 경향은 '18세기적인 감정'을 '19세기적인 모양'으로 노래 부르는 시대착오적 사고의 산물이라는 것이 김기림의 생각이었다... 모더니즘은 1920년대 문학을 극복할 대안이었다. 김기림이 말하는 모더니즘의 핵심은 '지성에 의한 감정의 통제'였다... 김기림은 합리적 지성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시에 '애매성'이라는 해악을 낳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는 애매성과 감상성을 배제함으로써 명랑성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것은 시인의 꾸준한 지적 활동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김기림에게 '명랑'은 슬픔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바람직한 태도이기도 했다. p. 256-258
사실 나는 김기림의 명랑론보다도 그 이전 시인들의 비극적인 시론에 더 마음이 갔다. (할 수 있다면 약간 거리를 둔) 비극은 단순한 아름다움보다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게 도와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물론 우울이라는 감정이 민족 차원에서 비참함에 빠지게 하기도 했겠지만, 그런 감정을 딛고 올라가 김기림이 주장하는 명랑을 갖기 위해서는 일단 비극적인 감정도 필요할 것이다.
(김소월의 <시혼>)이 글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을 통해 사물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꿰뚫어볼 수 있다. 그런데 영혼은 아무 때나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일상에서는 숨죽이고 있던 영혼은 적막, 고독, 슬픔, 죽음의 순간에서야 비로소 숨겨진 진실들을 감지해낸다. 빛이 없는 '어둠의 골방'에서 오히려 사물들은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며, 그런 사물들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바로 '시혼'이다. 그러므로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려는 시인은 스스로 골방에 유폐되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환희와 생명을 노래하기 위해 슬픔과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런 운명을 자각하고 수용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들은 예술가의 호칭을 얻는다. 모름지기 예술가가 되려는 자는 우울이나 고독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p. 235
명랑이 현대에는 '행복'으로 둔갑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결말도 와닿았다. 능력주의와 무한경쟁체제에 물든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지상주의에 빠져있다. 그 행복이 과연 전적으로 내 행복인지 의심스럽다. 식민지 조선의 명랑이 그랬듯이 우리에게 행복은 강요된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부정을 포함한 긍정으로서의 명랑이 필요했듯 우리도 나를 위한 좀 더 진실한 의미의 행복을 찾아야할 것 같다.
문체가 술술 재미있게 잘 읽혀서 금방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88만원 세대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함이었을까,학술서적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저자가 종종 사용하는 가벼운 단어들 때문에 글의 신뢰감이 반감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창 우리나라 근대 미시사 열풍이 지나가고 요즘은 주춤한 상태인데 이 재미있는 책이 그 때에 비해 얼마나 읽힐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당시 '푸른역사'나 '그린비' 같은 출판사들에서 나왔던 책들에 비해 얼마나 새로워졌는가하는 의문도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근대 만문만화와 기사들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명랑'이라는 단어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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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단 <볼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우리 사회에 슬그머니 스며든 ‘명랑(明朗)’이란 감정의 정체를 뒤쫓은 울산대학교 소래섭교수의 문화사적 탐정놀이라고 읽었습니다. 프롤로그를 통하여 저자가 <명랑운동회>라는 TV오락프로그램을 인용하고 있어 꽤나 친근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제가 명랑운동회를 즐겨보던 시절의 나이와 비교해보면 조숙했을지도 모를 나이에 즐겨보았던 모양입니다. 어떻거나 저 역시 ‘명랑’하면 <명랑운동회>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후배의 학위논문의 초고를 읽다가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명랑’의 정체를 뒤쫓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근래 들어 ‘명랑’이란 화두를 들어본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제1장에서는 ‘명랑’이 우리의 뇌리에 기억되기까지의 역사를 뒤쫓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명랑’은 백성의 눈을 가려 현혹하려는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래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제5공화국이었고, 그 앞에 자주 인용되었던 것이 제3공화국, 그리고 거슬러 결국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통치의 문화적 접근방안으로 강요된 것이 처음이라는 근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억압된 사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명랑’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경주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회에 특정정서가 자리를 잡는데 힘으로만 눌러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되돌아보면 민족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아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조선의 백성들은 우울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일제가 던져준 ‘명랑’이란 화두가 그런대로 먹혀들어갔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사회에 명랑이란 말이 자리 잡게 되는 과정에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요인은 처음 시발점이 되었던 조선총독부의 ‘감성정치’, 두 번째 요인인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자본주의적 근대화과정의 요소로서의 ‘감정관리’ 그리고 세 번째 요인은 김기림이 간파한 ‘배후의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각각의 요소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면, 조선총독부가 통치수단으로서 명랑을 강요한 것은 식민지화에 대한 조선백성들의 열패감, 경제적 수탈 및 부를 창출한 수단을 빼앗긴 절망감 등으로 바닥까지 가라앉은 조선백성들의 감정곡선을 끌어올려 일제가 예정하고 있는 전쟁수행의 장애요인을 사전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농업을 비롯한 일차 산업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조선사회가 유통에 중점을 둔 상업중심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로 전환되면서 감정서비스의 필요성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김기림을 인용한 ‘배후의 감정’이란 ‘명랑’이란 가면 뒤에 숨어 있는 본디의 의도를 깨부수기 위한 배후의 감정으로서 ‘명랑’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식인들이 간파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래섭교수를 따라서 ‘명랑’에 숨어 있는 이러한 의미들을 뒤쫓다보니 상당기간이 일제 강점기간에 조선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화두가 되는 위생문제에 관해서도 정말 경성거리가 인분이 나뒹구는 끔찍한 상황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시골에서 밭농사를 짓는데 인분이 정말 귀하게 쓰였기 때문에 뒷간에서 일을 보아야 했고, 화장실을 정기적으로 치우기 위해서 똥장군에 퍼 담아 소달구지에 얹은 똥통으로 져 나르던 인부들을 흔히 보고 자란 세대이기도 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일상, 대중문화, 돈벌이, 연애와 스포츠 등등 다양한 화제를 중심으로 하여 식민지 조선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명랑을 뒤쫓는 소래섭교수의 탐정놀이의 결말은 ‘만들어진 명랑’이란 제목으로 제3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조선사회가 피동적으로 수용하게 된 ‘명랑’이란 화두를 능동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앞서 소래섭교수가 세 번째 요인으로 김기림을 인용하여 설명한 배후의 감정으로서 명랑은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명랑을 추구하게 되는 과정인데, 이는 오히려 웃음보다는 눈물에 가까운 역설적인 접근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통이 크고 슬픔이 깊을수록 웃음에 대한 욕망이 더 세차게 끓어오른다. 이주일과 배삼룡이 아직도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암울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219쪽)”는 소래섭교수님의 말은 그의 속마음에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단초라 생각합니다. 소래섭교수님은 ‘명랑’이란 화두를 쫓아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조선사회는 일하고자 하나 일자리가 없는 절망한 젊은 청춘들이 넘쳐나는 시기였고, 그들의 관심을 ‘명랑’이란 밝은 이미지의 단어로 포장해서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게 만들다가 결국은 총 한자루 쥐어서 전선으로 내몰려는 일제의 간악한 흉계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소래섭교수님의 탐정놀이의 마지막 반전은 바로 ‘88만원 세대’라고 자조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내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듣기조차 어려운 ‘명랑’이란 단어이지만, 사실은 ‘행복’전도사, ‘쿨’하다, 등 다른 이름으로 가면으로 바꿔쓰고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래섭교수님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공허한 행복론 따위에 매달리거나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가며 쿨한 척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손바닥만 한 거울과 그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명랑해질 준비는 다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명랑은 언제나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려는 자에게만 찾아온다.(281쪽)”는 결론으로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들이 감지했던 ‘배후의 감정’을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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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인데다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인 단순하고 또 단순한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학문하는데 있어 도통 진전이 없다. 그냥 기존의 연구를 답습하는 듯 한 느낌만 들 뿐이다. 이런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책이 있었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이 책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깊이 생각하고 볼 줄 아는 작가의 새삼함이 묻어난다. ‘명랑’이라.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도 나는 그냥 ‘밝을 명, 밝을 랑’하며 기분 좋은 단어라고만 생각했었다.
첫 번째 명랑은 조선총독부의 계획적인 조선인 길들이기 장치로 쓰여졌다. 두 번재 명랑은 자본주의적 감정 관리를 위해서 사용되었다. 즉 노동자들이 연출해야할 대표적인 감정으로서의 명랑이다. 세 번째 명랑은 위의 조선총독부나 자본주의가 강요했던 명랑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명랑이다. 조선을 슬픔에서 건져내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려는 명랑. 하지만 진짜 퍼져야할 세 번째의 명랑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요즈음 세상이다. 오히려 사라져야할 첫 번째, 두 번째 명랑이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단다. 그것은 행복이나 쿨하다 등. 그래 그렇다. 나 또한 작가의 씁쓸한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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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은 명랑하다. 명랑이란 뜻은 <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랑은 1)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함. 2) 유쾌하고 활발함,이라고 되어 있다. 제목부터 명랑함이 솔솔 풍기는 이 책은 사실 명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명랑이라는 단어가 1930년대 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와 그 안에 감추어진 속뜻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는 명랑이라는 말을 안 쓰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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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대의 경성이라... 그렇죠. 본격적인 황민화정책이 실시되던 1930년대의 조선땅은 그저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3·1만세운동도 그때 뿐이었나 봅니다. 이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꿔야만 했고 학교에선 더 이상 조선어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정기적으로 신사(神社)에 방문해서 그네들의 천황과 조상신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 우울하기만 했던 시대에도 명랑한 운동이 일어났었다고 이 책에 씌여있군요. 그러니까 암울한 현실 속에서 우울했던 개인들은 명랑사회구현을 목표로 하는 일제의 획책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오호 흥미롭습니다! 로마 시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여겼던 로마 황제들이 떠오릅니다. 또한 아프고 고달픈 현실을 잊을 수 있도록 이른바 3S라 불렸던 정책을 감행했던 우리의 군사정권도 떠오르고요. 2.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잘 써먹는 이 방법이란 것이 1930년대에도 있었단 말이군요! 명랑은 친일이고 우울은 반일이란 감정정치의 실상을, 그 자세한 내용을 읽어제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명랑’이라는 말이 1930년대 이전의 조선에서는 주로 날씨를 가리킬 때 사용된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 말이 ‘30년대 이후에는 급거 상태나 성격을 의미하는 말로 전환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러한 언어적 전환이 일어났을까요? 미나미 지로가 조선총독부에 부임한 이래로 이른바 문화정책을 폐기하고 황민화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생긴 일이라는군요. “체제가 요구하는 건전한 사상과 감정만을 머리에 담는 것, 명랑한 두뇌란 바로 그런 상태를 말한다.”(73쪽) 즉 명랑화란 일본 제국주의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선일체(內鮮一體)란 말은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여기겠다는 말이 아니라 실상 조선의 청년들과 처녀들이 전장으로 보내기 위한 허울좋은 수단이었다는 것이지요. 이 우울한 시대상을 일소해버리고자 일본인들은, 우리가 날씨를 표현할 때나 사용하던 명랑이라는 단어를 가져다가 정치적으로 전유appropriation했다는 겁니다요!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낮추어 달라는 요구가 어디 개인적인 것입니까? 저축은행에 예금한 돈을 돌려달라는 서민들의 항의가 개인적인 것이던가요? 구조적인 모순의 총체적인 난국을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쿨해야한다고 강요받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에 여전히 우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4. 권력은 여전히 개인의 감정조차 통제하고자 합니다. 우울은 국익에 도움이 안되니 급거 명랑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 강요된 명랑화가 성공한 적은 결코 없다”(38쪽) 인간이 기계가 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 싶습니다. 명랑이라는 단어와 감정의 변천사를 분석한 이 책은 우리 시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우리를 움직이는 작동 매카니즘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이 아니겠나 싶네요. 문제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매트릭스를 보았으니 깨어나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잠든 채로 모른척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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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울했던 시기인 식민지 시대에 국민들에게 명랑이라는 말이 참 안 어울리네요. 도대체 왜 일본은 경성에 명랑이라는 감정을 주입하려고 했던 걸까요?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길래? 사실 그동안 우리들에게는 명랑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그것은 바로 일본이 1930년대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고자 이런 명랑이라는 감정을 주입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울한 현실 속에서 자칫 그들의 식민통치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면 뜻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만들어지고,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까지고 철저하게 그들의 의도대로 하려고 한 것 같아요.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 당시의 삶을 한 번 돌아다봐야겠어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에게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들어오고, 삶의 질은 나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울분이 담겨 있기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코 웃음이라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경성에서도 젊은 청춘들 사이에서는 자유 연애라든지, 모던보이, 신문물과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 그리고 만들어져 가는 명랑. 그것은 어쩌면 삐에로의 얼굴과 같은 것 같아요. 웃고 있는 얼굴에 감쳐진 슬픈 눈물처럼 말이죠. 일본이 이처럼 명랑이라는 감정을 주입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는 경성이 그만큼 근대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도시 명랑화를 통해서 어느정도 사회적으로나 치안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또한 명랑을 통해서 사회에 반항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죠. 이런 과정 속에서 명랑이 그 뜻과는 다르게 우리들에게 불온하게 다가오는 것이겠죠. 명랑이라는 말을 통해서 어쩌면 근대의 아픈 우리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명랑이라는 이름 아래 슬픔을 감출 수 밖에 없었던 우울한 시대. 어쩌면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cool 이라는 단어를 외치는 사람들과 묘하게 일치하는 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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