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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급했던 세대들에게 ‘박정희’는 신과 같은 존재다. ‘독재 정권이기는 하지만 이만큼 먹고 살게 해준 건 박정희 덕’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렇게 경제 문제와 정치 문제를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시각은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히듯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6년동안 총 5차례 대통령직을 수행한 박정희는 현재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 박정희 세대에게는 ‘독재자였지만 경제 성장을 완벽히 수행한 경제 대통령’으로, 지금의 10~20대 세대에게는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로만 기억될 뿐이다. 박정희 시대에 경제 발전은 독재 정권으로 짓밟히는 민주주의의 은폐로 더욱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잔인한 것은 경제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박정희 신화’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런 박정희 체제는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더욱 강화됐으며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선거 기간 동안 박정희 체제를 이은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결국 당선 되었다. 결국 경제와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분리시킨 국민들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가? 비정규직뿐만이 아니라 간접고용, 불법파견, 인턴제 등 불안정 노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게다가 살림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전혀 다르게 물가와 공공요금은 몇 년 사이에 가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정치 부분에서는 어떠했나? 2008년에는 광우병 소고기 문제로 서울시청 광장을 포함한 전국에서 촛불 집회가 일어났다. 집회 현장에서 유행가처럼 불린 노래 구절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였다. 투표권이 주어진 오늘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시대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좌파들의 외침으로 치부되었던 요구가 시대를 거슬러 다시 거리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 그리고 이 외침은 2011년 6월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요구로 다시 서울 광화문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정희 체제에 얽매인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든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적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논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결정, 누구나 곪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모든 것을 분절시키는 논리가 아닌 모든 것을 함께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광일 저자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급진화’가 바로 우리의 논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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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역사와 위상을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한 책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을 썼던 이광일의 새 책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좌파는…>의 전사(前史)격일 텐데 무려 3년이나 뒤에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 저자도 박정희의 “인간적 그림자”를 벗어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일까? 이즈음에서 박정희체제를 연구한 학자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 데야 보통사람들이야 오죽하겠나 싶다. 그렇다. 우리는 박정희를 벗어나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보냈어야 했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는 무슨 망령 같다. 잊힐만하면 튀어나와 늘 현재적 쟁점이 되곤 한다. 경제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대선주자 박근혜 때문도 아니다. 저자 이광일은 YS-DJ는 물론 노무현까지도 박정희체제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 왜? 그들이 자유주의적 이분법의 발상을 뛰어넘지 못한 채 “또 다른 독재”로 박정희체제를 유지 온존시켰기 때문이다. 도발적이지 않은가? MB 하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고 있는 지금, 그 10년이 ‘또 다른 독재’였다고 하니 말이다.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억압”을 분리시켜 사고할 때 자유주의적 이분법의 유혹은 악마의 키스처럼 강렬하다. 어떻게 이 둘을 갈라놓고 박정희체제에 대해 논할 수 있으며, 어떻게 민주주의의 문제를 사회구성체 외부에 있는 어떤 것으로 떼어놓고 인식할 수 있을까? 저자는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기존 논의구도가 자유주의적 이분법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최근 대중독재 류의 ‘막대 구부리기’ 논의구도 또한 자유주의적 이분법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노동에 대한 착취와 수탈 없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지탱될 수 있겠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모순과 갈등을 비켜서 존재하는 성장 일반이나 발전 일반은 결코 없다. 이데올로기 비판! <좌파는…>에서부터 지속돼온 이광일의 일관된 문제의식과 예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를 읽으며 4.27재보선 이후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덤으로 얻는 효과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랑시에르를 전유하며 서동진이나 심광현에게도 귀 기울이는 이광일이 다음에는 또 어떤 이데올로기 비판 거리를 가지고 다가올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