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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1월의 꽃은 '제주 수선화'가 으뜸이다. 은 쟁반에 금잔을 올려놓은 듯하다고 하여 금잔옥대, 은잔옥대라고도 칭하는 제주의 들꽃이다. 귀한 꽃이지만 지천으로 피어 소나 말의 먹잇감으로 쓰인다고 한다. 제주 유배중이었던 추사는 수선화를 칭찬하는 시를 자주 남겼다. 아마도 아름다운 인간 이념의 상징인 수선화가 찬밥 신세를 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처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처지가 마음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이다.
추사는 그의 나이 55세가 되던 헌종 6년(1840) ‘윤상도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 대정현에 위리안치된다. 거기서 9년이란 고독한 세월을 보내고서야 육지의 땅을 다시 밟게 된다. 과연 추사는 생지옥이라고 불리는 9년 동안의 억압생활을 어떻게 지냈을까? 세한도에 나타난 송백의 지조를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박철상의 '세한도'). 이 책은 추사가 9년간의 제주 유배생활에서 겪은 방황과 고민의 모습과 함께 학문과 예술을 향한 정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조선시대 사대부는 벼슬을 그만두면 낙향하여 학문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해왔다. 귀양살이의 경우 생활을 곤궁함과 행동의 제약이란 점이 있지만 결국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일 역시 자기수양을 위한 학문과 후진양성 두가지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막한 귀양지 제주 대정으로 유배 간 추사의 일상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책에서는 제주도 제자 이한우, 강도순, 강도휘, 이시형, 박계첨, 김구오, 오진사 등의 진술을 통해 추사의 모습을 돌아보고 있다. 또한 한양을 비롯한 타지에서 유배 중인 추사를 방문한 이들도 있었다. 특히 역관출신의 제자 이상적의 도움으로 북경의 각종 서적들을 구해보고 '세한도'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추사의 학문적 족적은 서예, 회화, 금석학, 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제주 유배와 관련하여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추사체가 제주에서 잉태되었다는 점이다. 추사체의 완성에 새로운 조형적 감각이 담긴 것은 제주의 풍광도 한몫 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추사체에는 치명적 폭풍으로 뒤집혀진 제주 바다의 날선 파도들이 보이기도 하고, 더러는 그 거무튀튀한 제주 돌담을 방금 돌아 나가는 매운 칼바람들이 눈에 잡히기도 한다'고 술회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이 추사의 유배에서 해배까지 길을 직접 답사하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는 구성방식도 재미있다. 서울에서 제주 대정까지 2,040리길을 따라가면서 일어났을 일들을 스토리텔링식으로 재구성해 읽는 사람들도 마치 유배를 함께 가는 듯한 분위기를 맛보게 한다. 생활인으로서의 추사를 만나게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멋진 관광지로서 다가오는 제주, 하지만 그 당시 귀양다리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길, 절망의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유배지에서 회갑을 맞고 아내와 사별하는 외로움을 겪으면서도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어올린 추사는 갖혀 있으면서도 갖혀있지 않았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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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책을 선택할 때 표지와 편집에 꽤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쁜 겉표지와 팬시한 편집에 약한 편이다.
이 책은 유배 시절의 추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던 내용이지만 추사의 글씨, 그림, 제주도의 사진, 고지도, 초상화까지 모두 모아 놓은 책이라 단지 글만 있는 책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림과 사진조차도 작은 크기가 아니라 두 페이지에 걸칠 정도로 커서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편집이다.
편집의 힘을 보여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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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이란 책을 보았다. 일단 얇은 두께의 책에 부담감이 덜했고, ‘2010 서귀포 시민의 책 선정도서’라는 표시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시작으로 이곳의 유배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를 읽어보았다. 최근에 올레길 열풍에 더해 ‘추사 유배길’이 개통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배’ 하면 이곳 제주도에서 추사체를 완성하신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의 작가 양진건 님이 저자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 연구개발센터의 센터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이력을 보고 나서인지, 그동안 많이 가다듬어졌는지, 이 책을 읽으면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역사라는 것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주고,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짚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중간중간에 글과 그림, 사진 등이 어우러져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보며 추사 선생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싶어졌고, 조만간 추사 유배길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나에게 관심의 증폭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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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고 30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제주도가 바뀐 지도 오래다. 한국인 못지않게 외국인들의 발길도 많이 머무는 장소로 탈바꿈한 이곳이 한때는 기약 없는 유배길에 오른 이들의 안식처(?)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란 쉽지가 않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살아서 땅에 닿을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길 수차례. 지칠 대로 지쳐서야 겨우 제주도에 그들은 도착했을 것이다. 정쟁이 드셌던 만큼 유배길에 오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 중 제주도에 무려 9년간 있어야만 했던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김정희다. 글씨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그는 글씨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하고 남을 내공을 보였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고루 그 능력을 발휘했음을 우리의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근데 그의 인생을 쳐다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한 사람에게 너무도 많은 재주가 쏠리다 보니 세상의 시샘을 온몸으로 받았겠구나. 9년 동안이나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휴대전화를 너도나도 소지한 시절도 아니고 하니 더더욱 말이다. 9년간의 유배생활을 중심으로 추사 김정희의 삶을 살펴보는 데에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이 할애되었다. 물론 전반적인 삶에 대한 언급 역시 저자는 잊지 않았다. 지금의 잣대를 드리워도 그의 생은 짧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아마도 천수를 누렸다는 평을 들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단명과 인연이 깊었다. 아버지와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다. 고된 유배생활에도 불구하고 추사가 오래도록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마도 주변 사람들의 단명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저자는 보았다. 죽음을 퍽 어린 시절부터 접하면서 알아서 건강을 챙기게 됐을 거라는 뜻이다. 타고난 기질이 병약했던 것인지 아니면 유배생활의 영향이 큰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추사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지인과 제자들, 제주목사 등의 도움이 긴긴 유배생활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거친 풍랑도 지나가고 나서 평온한 시점에서 떠올리면 견딜 만했다는 평을 할 수 있다. 죄인 된 입장에서, 더구나 가시울타리로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사는 일이 어이 쉽겠느냐마는 그와 같은 고독과 고통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대학자 김정희가 아닐지 싶다. 선비가 권력만을 추구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겠지만, 만약 한양에서 임금 곁에 머물렀더라면 추사의 학문은 역사가 기억하는 만큼 무르익지 못했을 듯하다. 유배는 자연스레 그에게 할 수 있는 게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는 마치 공부를 하기 위해 속세와 단절된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물론 자발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추사의 행보는 어딘지 모를 서글픔을 자아냈지만 말이다. 뛰어남을 알아보았기에 제주까지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한양과 어마어마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제주의 사람들 역시 그의 곁에 머무르길 자청했을 것이다. 스승 추사를 기억하는 제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현 모습이 추사 선생 탓임을 고백했다. 이름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추사가 살아간 시대에 대해 고려해보게 된다. 풍전등화 수준까지는 아직 아니었지만, 분명 왕권은 흔들리고 있었다. 변화해야만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미 조선 외의 지역에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여러 모로 앞선 추사는 그와 같은 분위기에 부응했다. 그의 학문은 훗날 개화라는, 부족하긴 했으나 자생적인 변화를 꿈꾸었던 세력과 과거를 연결하는 일종의 연결고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도 한계는 있었으니, 외국 선박의 출현에 대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추사의 한계라기보다는 당대 모든 사람들의 한계였다. 오늘날 제주는 추사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추사의 삶을 따라 걷는다면 아마도 섬이 지닌 특유의 외로움을 물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만남에 치인다. 내가 누구인지 묻기보다 세상이 시키는 것을 좇기에 바쁘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를 유배시키고픈 충동을 느낀다. 유배가 나에게 추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기꺼이 그 기회를 잡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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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것이면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