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코끼리를 좋아한다. 인자한 눈, 부처님보다 큰 귀, 두 손이 아쉽지 않은 긴 코, 풍만하고도 둥그스름한 곡선을 이루는 몸, 힘찬 기운과 영험함을 담은듯한 흰 뿔, 시간을 담아가는듯한 주름진 피부! 외양적으로도 사랑스럽지만 코끼리들의 성격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난 좋아한다. 코끼리가 조용하고 온순한 초식 동물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누군가 죽으면 애도를 한다든가, 무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가 힘이 센 자가 아니라 가장 지혜가 풍부한 노인이라는 점이라든가 하는 점 등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코끼리가 ‘초원에서 코뿔소 100여 마리를 상아로 들이받아 죽였다.’ 게다가 ‘ 우울증에 동료를 해치고, 식이장애에 아기 코끼리를 물에 빠트려 살해하는 어미 코끼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온순한 코끼리가 동족살해에 타종족살해까지 일삼게 된 걸까? 폭력적인 성향의 코끼리는 그저 그런 성격의 코끼리였던 걸까? 이 책의 뒷면에는 “코끼리 아저씨,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다”란 문장이 크게 적혀있다. ‘자연 과학 에세이’로 분류되는 이 책은, 재생종이로 500쪽이 넘어서 책을 펴기도 전에 꽤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대강 훑어보기만 했을 때는 더욱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지루함은 꼬리를 감추고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가슴이 절절해져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웬만한 소설보다 감동적이고도 슬픈, 가슴아픈 코끼리의 현실과 그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인간과 인간집단에 대해서 미운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은 아마 앞으로 쭉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될 터다. 앞으로 동물원을 가야할까? 난 웬만하면 동물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세계적인 동물행동 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면서 이종연구소의 공동창립자겸 소장이라고 한다. 제인 구달의 뒤를 잇는 또 한명의 저명한 동물 트라우마 전문가라고 한다. ‘이종연구소’란 게 어떤 건지 의아했지만 책을 읽으니 이해가 갔다. 이종異種, 즉 다른 종의 동물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소이다. 그런데 주된 한 종은 바로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른 종의 동물들을 위해하고 그들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연구처럼 그들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종을 초월한 과학적 연구’ 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녀는 자아인식이 인간만의 영역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이종연구에 대한 개념을 먼저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의식 이론, 거울 이론, 애착 이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트라우마) 등 심리학적 이론이 등장한다. 이런 이론들을 통해 인간을 보고 코끼리를 이해하고 분석하기도 하며, 코끼를 통해 인간 사회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코끼리를 통해서 인간을 보며 그들의 파멸이 인간의 파멸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에는 인간사회와 역사 상에서 상당히 문제화되고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사례들도 담고 있다. 우간다의 식민지화와 아촐리 족의 운명, 플로리다 살인사건의 전말,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사회의 붕괴, 악을 평범하게 만드는 현실왜곡(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포로 수용소)등. 이러한 사례들은 행동-심리 과학적으로 분석되며 사회-문화 과학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에서 화두로 삼는 코끼리 문제와 맞닿아 그것이 인간의 문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지적한다. 인간과 코끼리, 코끼리와 인간, 그리고 자아의식이 있는 한 생명체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이야기들- 저자가 책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하지만 문학 작품을 읽으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 소재, 주제 등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가 다양하게 되는 것처럼 이 책에도 그런 매력이 있다. 단순히 '자연과학'으로 분류될 책이 아닌 것이다. 책과 관련된 소개글을 문득 다시 읽어본다. 거기에 적힌 분류처럼 책을 표현해야 책에 대한 느낌이, 내가 느낀 것들이 와닿을 것 같아 이 글의 끝자락에 남겨본다. '인간의 아픔까지 어루만지는, 인간적인 동물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