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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말한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하지만 그 말에 모두 동감하지는 않는다. 분명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나 광고는 탐욕과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그걸 무시할 수 없는 건 그 또한 이 시대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그랬다. 영화는 영화로, 드라마는 드라마로, 예능은 예능대로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말자고.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는 말도 있듯이. 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고 책을 읽으면서 관점을 다르게 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에 만난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란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면 좋을 것들이 많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기 전에는 영화를 보고 나면 열심히 토론을 하곤 했었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취향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취향이 달라져 보고 싶은 영화를 취합하는 게 쉽지 않고, 가장 중요한 건 부모보다 친구들과 보는 영화를 좋아하기에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끔은 신문이나 영화 혹은 광고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왜 우리가 그런 것을 무시하면 안 되는지..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고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독서 목록 안에 이런 책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책에는 다양한 영화와 광고 혹은 드라마가 등장한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광고를 보며 불편했던 시선들이 이 책의 작가 또한 마찬가지였구나 하는 것에는 공감을 느낀다.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광고,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며 이야기를 펼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시간과 같은 ‘은하철도 999’를 보는 시선이다. 이 만화 영화는 정말 열심히 봤지만 그 의미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었다. 왜 철이는 은하철도 999를 타려고 했는지, 철이가 이루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어렸기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철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메가로폴리스 시민이 되는 것. 돈으로 기계 몸을 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기계 인간이 되어 노동에서 해방되고 아무 제한 없이 즐기며 사는 것. 하지만 메가로폴리스에서 이런 쾌락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돈 많은 부자들 뿐. 가난한 이들에게 꿈은 돈을 벌어 기계 몸을 얻는 것. 많은 사람들은 메가로폴리스로 몰려든다. 그중 로또 같은 것이 있었으니 은하철도 999 열차를 타는 것. 은하철도 999를 타면 공짜로 기계 몸을 주는 별에 갈 수 있다는 소문 때문.
아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인데 그 안에 품은 의미는 너무도 심오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 심지어 도시 빈민까지.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로 가는 이 사회의 모습이 그 당시 만화에 적용되었다는 것이 슬프다. 권력이나 부가 세습되어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돈이 없으면 교육 받을 수 없는 현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런 사회적 모순은 서글프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부모인 내 입장에서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을 욕하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층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더하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만화 영화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이 나온다. 어린 시절 즐겨봤던 인디에나 존스나 시리즈별로 챙겨봤던 베트맨 그리고 트루먼 쇼나 신데렐라, 해리포터 등.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안다면 마냥 즐겁게만 볼 수 없겠지. 작가의 관점이니 우리랑은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불어 사는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대목들이다. 가끔은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기. 의미를 찾기. 아이들과 함께 하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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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도 먹어도 자꾸 손이 가는 팝콘, 생각 없이 영상물과 만나기에 이보다 적당한 음식물도 없다. 기계적으로 손과 입이 움직이듯 눈 또한 보이는 대로만 뇌에 전달한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될수록 무비판적인 태도는 습관화된다. 영상 매체와 떨어져 생활할 수 없는 요즘, 우리는 무방비한 자세로 팝콘이나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피력하는 김선희의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을 읽었다. 같은 이미지와 메시지를 반복 주입시키는 광고나 이야기의 흐름 속에 그릇된 가치관을 숨겨놓은 드라마나 영화를 ‘복제되는 현대 신화들’, ‘문화 거울로 자기 바라보기’, ‘공존을 위한 숙제들’, ‘지구 단위로 생각하기’, 이렇게 네 가지 주제로 바라보았다. 널리 알려진 20여 편의 대중문화를 파헤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 차례 눈이 크게 떠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분들이 실은 미묘하게 일상의 의식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현재의 삶보다 미래의 죽음을 준비하도록 부추기는 보험 광고의 상업성을 비롯하여, 상품과 모델을 일치시키더니 결국에는 인간답게 사는 인간의 기준으로 소비자를 자극하는 수많은 광고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신분 상승이나 한탕주의를 유도하기도, 개개인의 영역을 존중을 무시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암암리에 심어주기도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한층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각자 고민하게 만든다. 대중문화의 허점이 화려하게 수놓은 오늘날, 다양한 대중문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해독제가 되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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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광고...
시각이 특히나 패권적 감각이 된 현대에 와서 이 두 매체는 점점 더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대중적 호응을 받았던 영화와 자본주의의 총아라 불리는 광고인지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두 매체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와 광고가 단지 보여지는 부분만이 아니라 그 저변에서 사람들의 무의식에 작용하여 그들의 욕망을 의도하는 쪽으로 충동질 하고 또한 원하는 쪽으로 생각들을 통제한다고 말이다. 보통 이러한 시각들을 문화 연구 분야에서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있는 셈이다. 영화와 광고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영화와 광고를 비롯하여 문화가 더 이상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정확히는 스튜어트 홀에 의해 주도된 '문화 연구'가 활발하게 되면서 그랬다. '문화 연구'는 문화가 있는 그대로의 투명한 존재가 아니라 생산에 있어서부터 그 이면에 만든 자의 의도와 목적이 개입되는 수단적인 매커니즘이라 말한다. 문화란 어디까지나 특정한 의도에 따라 특정한 효과를 노려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비관적으로 나아가면 문화란 통제된 대중을 생산하여 특정 체제의 사회가 지속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고 말한다. 특히 존 버거의 경우 'WAYS OF SEEING'을 통해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광고 사진에서 조차 에어브러쉬 기법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욕망을 충동질 하고 특정한 생각들을 옹호하게끔 만드는 메세지가 감춰져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존 버거의 고발은 컬트 감독 존 카펜터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 역시 영화 'THEY LIVE'에서 존 버거의 논의 그대로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미디어에 의도적으로 숨겨진 메세지가 있음을 SF적(그러니까 특별한 선글래스를 쓰면 감춰진 메세지가 보인다는 식으로)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
하지만 문화연구의 시각들이 비단 비관적인 전망만을 생산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논의를 통해 더욱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려 했던 것은 문화를 바라봄에 있어서 되도록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함으로써 문화를 생산하는 자들의 논리에 어리석게 이용되지 않게끔 하려 함이었다. 지금 유행하는 언어로 말하면 문화 생산의 저의에 깔린 '꼼수'를 밝혀 그 문화적 전략에 '쫄지 않고' 제대로 가지고 놀며 판단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문화연구'는 대중들에게 카펜터 영화에 나오는 그런 선글래스를 주려 한 것이다.(카펜터의 선글래스는 일종의 후설이 말하는 모든 판단 중지,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과 가치관의 리셋(RESET)를 의미하는 '에포크'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분명 어느정도 진실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진실에의 자각은 단절로 부터 오니까 말이다.)
과연 문화가 그렇다는 게 사실일까? 너무 치우친 생각이 아닐까? 혹시라도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카펜터의 그 선글래스로 바로 이 책 김선희 작가의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을 추천드리고 싶다.
물론 영화와 광고에 대해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책이 이 책이 처음이 아니다. 이 이전에도 비슷한 시각의 책들이 상당히 많이 나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감히 추천하는 까닭은 첫째 굉장히 쉽다는 점이다. 어떤 저작들은 상당한 이론으로 무장하여 좋은 얘기들을 하는데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김선희의 책은 그러한 거리감이 없다. 그는 이론틀마저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으며 그나마 논의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언급으로 지나쳐 갈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읽을 때 들 수 있는 선입견, 그러니까 너무 어려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다.
둘째는 동시대성이다. 여기서 동시대성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얼마전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 광고가 주 논의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문화연구'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시간'이다. 그러니까 너무 늦게 나오면 거기서 논의되는 영화나 광고들이 하도 오래되어 이미 잊혀지거나 해서 사람들에게 얼른 다가오지 못하여 이해의 거리를 더욱 넓혀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 연구' 또한 시의적절 하게 업데이트 될 필요가 있는데 김선희의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바로 얼마전 우리들이 감상했던 것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하다.
셋째는 선명한 주제와 정연한 논의 구조이다. 책이 쉽고 따끈따끈한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 쉽게 가질 수 있는 약점은 너무 쉬운 것과 시의적절성에 몰두한 나머지 그만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논의적 구조를 망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김선희의 이 책은 그 모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 있다. 그녀는 서두에서 부터 그녀의 방법론을 밝혀 놓는다. 그녀는 두 가지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하나는 푸네스의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두더지의 방법이다. 그녀 자신의 말에 의하면 푸네스는 보르헤스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처럼 영화와 광고를 다루는 데 있어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놓치지 않고 말하기 위해 그 푸네스의 방법을 쓸 것이라 한다. 그리고 두더지의 방법은 두더지란 원래 앞이 보이지 않아 정해진 길이 아니라 무작정 자신만의 길을 파헤쳐 가는데 그처럼 자신도 위로 부터 주어진 의미와 이론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그녀 자신만의 길로 해석을 밀고나가 그 자체로서 저항의 길을 만들어내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즉 이것은 대상과 해석에 따른 각각 다른 방법으로 대상에 있어서는 푸네스를 해석에 있어서는 두더지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그 둘이 모여 이루는 것은 결국 지배적 주류가 보도록 허용하는 것에 맞서 그것을 전복하고 그와 독립되고 자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저항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선명한 주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책 전체에 걸쳐 이러한 주제의식이 과연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선명한 논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단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각각은 헤겔이 말했던 정신의 발전 과정에 그대로 대응되는 듯 하다. 그러니까 첫번째, '복제되는 현대 신화들'에서는 헤겔의 첫번째 단계인 '개인'에 대응해 영화나 광고를 통해 특히나 강요 혹은 이식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체성이 횡단되고 있는 '개인'을 그리고 두번째 '문화거울로 바라보기'에서는 헤겔의 두번째 단계인 '가족'에 그대로 대응해 현대의 신자유주의가 문화적 매체를 통해 가족의 위상을 어떻게 의도에 따라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탐색한다. 그리고 세번째 '공존을 위한 숙제들'에서는 그 논의를 이제 '사회적' 차원으로 넓히고 마지막 네번째 '지구 단위로 생각하기'에서는 근대와 생태환경 자체를 그 기반으로 삼는다. 이렇게 김선희의 논의는 헤겔의 정신의 발전 단계를 따라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서 시대와 지구 전체로 포커스를 넓혀가며 그 각각에서 문화 매체들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세부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다. 즉 그녀는 앞에서도 말했듯 쉽게 독자들이 다가오게 하면서도 천명했던 푸네스의 방법을 잊지 않으며 각 단락 마다 선명한 주제 의식 마저 포기하지 않기에 개인과 시대, 지구 전체로 시야로 넓혀가면서도 자신만의 저항의 길마저 내내 이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저항의 논리를 자기의 말로 무장할 수 있게 되며 보다 더 커다란 시각 위에서 주입되거나 유포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전략들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는 역량마저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이렇게 하면서도 이런 내 말이 더 어렵게 여겨질 만큼 끝까지 쉽고 편하게 독자들을 데려간다는 점이다.
알고 있듯이 현실은 일종의 매트릭스다. 이 말은 현실은 그저 순수한 현실이 아니라 사람을 언제든 홀리려고 드는 온갖 이데올로기적 전략과 전술이 횡행하는 중첩된 장(FIELD)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쉽게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란 말도 있듯이 어느샌가 그 매트릭스 안에서 우리의 모든 신체와 감각 기관마저 그 얼기설기 엮어진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경마장의 말처럼 한쪽만 보도록 색안경이 자기도 모르게 씌워졌거나 혹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재조정된 신경조직으로 진실을 감각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내 감각이 착란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화연구'가 온전한 주체가 되도록 한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당신에게 진실만을 말하는 거울을 주는 것이다. 당신이 그 거울에 비친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을 보고 온전한 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당신 역시 지금 내가 어디 서 있는지 그 진실한 위치를 알고싶어졌다면 이 책이 그 거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선글래스를 쓰는 것 만큼이나 손쉽게.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이유로 기꺼이 추천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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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은 뇌에 잔상을 남기는 강력한 권력 대중문화를 상대로 저항의 시도를 담은 저자의 결과물이다. 영화나 광고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보르헤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기억력의 천재 푸네스처럼 생각하고, 지독한 근시 두더지가 제멋대로 땅을 파는 것처럼 제멋대로 헤매기를 바라고 있다. 액면 그대로가 아닌 새로운 시각에서 사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쉽게 그것에 속고, 간과하는 일이 비일비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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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인문 혹은 대중문화론으로 분류되는 책을 즐겨 찾는 나에게, 이번에 접한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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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두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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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내게 ‘TV’는 책과는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존재였다. 사람들이 TV를 ‘바보상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친구로 남아있다. 다만 TV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가 반드시 뒷받침해야 하고 나는 그 기준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수반하였다. 때문에 TV와 나는 지금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이 들 무렵에는 ‘영화’라는 다채로운 친구를 소개받았다. 현실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바로 영화였다. 어느 순간부터 ‘대중문화’로 대변할 수 있는 TV와 영화는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 거대한 영향력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스스로가 TV와 영화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수용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중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영향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 작품을 ‘대중문화’에 쉽게 휩쓸려 가지 않으려는 소박한 저항의 시도를 담은 결과물이라 지칭한다. 말 그대로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는 TV 토론자의 모습을 지양하고 화자는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라며 수줍은 모습을 띄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확고한 관점을 갖고 있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강력한 한 방 대신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영화와 TV를 바라보는 제 3자의 또다른 시선은 매우 재미있다. 덕분에 이미 확고한 관점을 소유하고 있는 독자이건 그렇지 않건 상당히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소소한 재미로 무장하고 있었다. 수차례 ‘대중문화’를 뒤집어 본 독자라면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은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 비판없이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하던 독자라면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영화와 TV속의 겉모습 바라보기를 멈추고 그 속의 내재된 숨어있는 진짜 의미를 찾게 도와준다. 그동안 수박겉핥기식으로만 ‘대중문화’를 바라본 ‘문화’초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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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당대의 트렌드들로 조명해보고 고민해보게 만드는 매력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민감하게 이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강력한 인상을 주는 광고나 이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영화와 드라마 등 가장 민감한 매체들의 효과들을 통해 시대를 통찰해보는 재미와 날카로움을 모두 갖춘 이 책의 매력은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커져만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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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먹는 팝곤.... 그팝콘을 먹는 동안 우리에게는 다양한 이데올리기와 편견그리고 저항, 타협등이 일어날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책을 보니 우리의 눈에 뻔히 보이는데요. 보지 못했던 부분과 편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지 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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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본 책은 즐겁고 가벼운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글이 되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