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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http://blog.yes24.com/document/6873046을 인상깊게 읽고 오스카 와일드의 다른 작품들을 찾다가 발견한 책인데,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 소장한 책이라는 후광도 있어서 기대감과 호기심도 생깁니다.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 <저만 아는 거인>은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서 향수에 젖어듭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썼다는데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천박한 여성에 대한 조소와 죽음보다 강한 사랑에 대한 경멸이 느껴져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어두운 동화로 생각됩니다. 행복한 왕자, 착한 제비와 회개한 거인은 내세의 행복이라도 보장되니 그래도 권선징악에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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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거리가 있어(?)보이는 표지가 시선을 끈다.보르헤스 가 소개한 단편 가운데 아서 새빌 경의 범죄' 부터 읽어야 겠다는 유혹을 느낄 만큼... 다 읽고 난 후 시선은 자연스럽게 표지를 다시응시하게 만들었다. 아서 경 일거라 생각했던 표지 속 저 남자는 어쩌면 수상술사 포저스였을지도 모르겠다.뭐하나 부족할 것 없을 것 같은 이들도,미래를 예언해 줄 있는 이의 말에는 또 귀가 솔깃해지는 모양이다.여기 아서 경도 그 호기심을 포기할 수가 없어 포저스씨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어 보게 된다. 결혼을 곧 할 예정으로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인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그런데 '살인'이 보인다는 포저스의 한마디 말에 그는 정말 누군가를 살인하려고 한다...왜냐하면 결혼을 하고 난 이후에 벌어지게 된다면 자신의 애인에게 씻을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이 상황이 말이 되는가 싶지만 미래를 예언하는 이들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상황은 다를게다.읽는 내내 혹시 반전은 일어나지 않을까,만약 일어난다면 어떤식의 반전일까...역시나,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그려진다.생각해 보면 '살인'이란 이미지가 보인다고 했을 뿐,당신이 누군가를 죽인다고 말하지는 않았음에도 공포에 떨었던 시간..그리고 실제 그는 자신의 임무(?)를 착실하게 실행시키게 된다.보르헤스는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 대해서 선과 악의 경계를 우아하게 넘나드는 소설이라고 했다. 나는 미래를 알려 주려고 하는 이들도 어느 면으로 보면 범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개인적으로 사주학에 관심을 두고 여러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결론은.미래의 예언보다 나의 부족함을 어떤식으로 채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포저스와 같은 인물의 양면성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자신의 불안한 운명에 대해 아서 경이 혼자 읊조렸던 말은 그래서 더더욱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밤의 죄악과 한낮의 연기가 없는 런던,핼쑥하고 유령 같은 도시,황량한 무덤의 도시를! 그는 그들이 런던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 화려함과 수치를 그 격렬한 불꽃 빛깔의 기쁨과 지독한 허기를(...)그들은 무례했고 징 박은 신발은 무거웠고,걸음걸이는 어색했지만 약간의 아르카디아를 거느리고 왔다.그는 그들이 자연과 함께 살고 자연이 그들에게 평화를 가르쳐 주었다고 느꼈다.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모든 것에 부러움을 느꼈다."/81쪽 이게 다 '운명'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운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 하다.고로 아서 경이 저지른 범죄는 온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를 힘겹게 한 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다는 궤변에 가까운 합리화도 작용이 되어진 모양새다.정작 포저스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은니 말이다...
"<캔터빌 유령>의 테마는 고딕소설에 속하지만 다행히 독자에게 전해지는 방식은 고딕소설과 다르다.이 재미있는 단편에서 미국인들은 유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반면 독자들과 와일드는 미국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14쪽
<캔더빌 유령>의 결말은 다소 싱거웠지만,마무리로 가기까지의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재미'있었다.우선 유령이란 상징을 거둬 내고 먼저 소설을 생각해 보자면,오만함과 자신감의 경계,그리고 그로 인한 모욕이 누군가에게 복수의 불을 지필수도 있다..뭐 이런 도식을 그려보는 점도 재미롭게 읽을수 있는 지점이였다.다시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유령의 공포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제목과 달리,소설은 유령이 오티스 가족에게 그야말로 철저히(?) 공격을 당하는 스토리로 흘러간다.유령을 무서워하지 않다니...심지어 심한 모욕감과 좌절감까지....그러는 사이 유령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결국 그는 유령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유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형벌을 받았던 샘인거다.(오독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느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부인을 살해했고,자신 역시 아내의 가족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그러나 그는 죽어서도 영원히 죽지 못하는 형벌을 지게 된 샘인데...그 사실을 순순한 영혼을 가진 오티스의 딸 버지니아를 통해 알게 된다.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사이먼 경은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것 같다.그리고 영원한 죽음으로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이는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버지니아뿐이라고...이후의 결말은 단편에서 느낄수 있는 반전의 매력은 약했다.어쩌면 결말로 이어지기 전까지의 내용이 너무 재미났던 탓일수도 있겠다.그럼에도 버지니아가 사이먼 경을 어떻게 죽음의 세계로 갈 수 있게 해주었을까...궁금해진다.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리뷰로 남기지 않은 걸 보면 '행복한 왕자' 정도만 읽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바벨의 도서관'시리즈 덕분에 부랴부랴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을 찾아보니,공통으로 수록된 작품은<행복한 왕자> <아서 새빌 경의 범죄> <캔더빌 유령> 세 작품이다.'바벨의 도서관'에는 <나이팅게일과 장미> <저만 아는 거인>까지 해서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아서 새빌 경의 범죄' 와 '캔더빌 유령'에 비해 나머지 세작품은 매우 짧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하는 메세지는 어찌나 강렬한지 <저만 아는 거인>을 읽으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나만 잘사기 보다는 함께 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물론 오스카가 훗날 이런 상황을 염두해 두고 만든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말이다.<나이팅게일과 장미>를 읽으면서는 얼굴이 화끈...나이팅게일처럼 목숨을 바칠 희생적인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도 그렇지만,모든 답이 마치 책 속에 있다고 믿는 이들을 향한 작가의 경고가 섬뜩하게 느껴져서다.그리고 오스카 와일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행복한 왕자>를 마지막으로 읽었다.다시 읽으면서,리뷰로 남기지 못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의 숭고함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안데르센 식의 감상적인 동화다.또한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우울한 아이러니가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다"/14쪽 안데르센 동화스타일은 잘 모르지만 감상적이며 우울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는 보르헤스선생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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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에 북켄드 선물로 받았는데 도통 손이 안 가서 그냥 모셔두다가 책장 정리하면서 다시 꺼내보았다. 이리 얇은 책인데 왜 자꾸 외면할까? 답은 간단하다. 외국 책이고 보르헤스 세계 문학이라고 하니 왠지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하지만 생각해보니 ‘밤의 도서관’에서 이미 보르헤스를 만났기에 이 책도 도전해 볼만하겠다 생각했다. (리뷰: 도서관의 역사 ‘밤의 도서관’, 지은이 알베르토 망구엘은 시력을 잃어가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다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깜짝 놀랐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인 것이다. 도대체 나는 책을 보며 뭘 본 거지? 책 표지가 워낙 복잡하다. 오스카 와일드, 바벨의 도서관 그리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으로 바벨의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중 단편 5편이 들어있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운명에 대한 이슬람적 개념에서 나왔고 주로 어리석은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이 어리석은 인물들은 작가가 스스로를 패러디해서 탄생시킨 인물들이기도 하단다. 안데르센 식의 감정적 동화도 쓰면서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우울한 아이러니가 담겨있다고 한다. 우아하게 넘어선 선악의 경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행복한 왕자의 동상과 제비 이야기를 그린 ‘행복한 왕자’ 장미가 갖고 싶은 한 청년을 위해 붉은 장미를 만들어주며 자신을 희생한 나이팅게일의 이야기 ‘나이팅게일과 장미’ 나쁜 거인이 아이들을 정원에서 몰아내자 그 정원은 영원한 겨울이라는 이야기 ‘저만 아는 거인’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머지 두 편은 새로웠다. 아마 다른 2편이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손짓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극장가에서 기록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중에 ‘관상’이 있다.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고 문종 단종 그리고 수양대군과 계유정난의 역사에 ‘관상’이라는 소재를 살짝 가져와 만든 작품인데, 화려한 궁중생활과 의상, 이리상 수양대군과 호랑이상 김종서의 대결이 볼만하다. ‘아서 새빌경의 범죄’는 특이하게 수상술사가 나오는데 (시대적인 것도 그렇고 서양이라는 문화도 그렇고 그들도 손금을 보나 싶어서 흥미로웠다) 세 번 결혼했지만 애인은 한번도 바꾸지 않았으며 쾌락에 무절제한 열정을 지닌 윈더미어 부인이 개최한 부활절 전 마지막 연회에 많은 사교계 인물들이 모이는데 그녀는 손님들에게 ‘수상술사’를 소개한다. 포저스라는 남자는 손가락을 보고서 사람의 성격과 과거와 미래를 알려주는데 흥미롭게 바라보던 아서 경은 자신의 손을 보여주는데 포저스가 당황한다. 매력적인 젊은이의 손이라고 말하곤 항해를 한다느니 친척을 잃는다느니 이야기를 한다. 궁금해진 아서는 사람들 몰래 포저스를 따로 만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수상술사가 그의 손에서 본 것은 바로 살인! 자신이 살인자가 된다는 말에 불안한 아서는 시빌과의 결혼을 잠시 미루고 주위사람들을 눈여겨보며 계획을 세운다. 맙소사! 1584년부터 집안 사람이 죽을 때마다 나타나는 '캔터빌 유령' 때문에 귀신 붙은 집이라는 소문이 난 캔터빌 체이스. 유령을 믿지 않는 미국인 공사 오티스는 그 집을 산다. 부인, 아들 워싱턴, 딸 버지니아, 쌍둥이 아들도 유령을 믿지 않았다. 핏자국이 나타나면 세제로 닦는다. 그런데 닦아도 다음 날이면 또 나타난다. 쇠사슬의 요란한 소리를 내는 노인에게 사슬에 기름을 칠하라고 충고도 하고, 흰 물체가 베개로 공격하는 통에 진짜 유령은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복수를 결심한다. '나는 사슬을 덜그럭거리며 다니고, 열쇠 구멍에 대고 신음하고, 어둠 속을 배회해야 해. 그게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야.' '네가 날 도와다오. 죽음의 집의 문을 열어다오. 네게는 늘 사랑이 있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니까.' 유령 생활에 지친 캔터빌 유령 사이먼 경은 아내를 죽인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억울해하며 버지니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서 경의 수상술 숭배와 유령의 뉘우침을 포함한 5편의 단편 모두 1880년과 1890년대에 쓰여진 소설 답지 않게 꽤 세련되게 느껴진다.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패러디했다는 어리석은 인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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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전 소설들을 엮어 낸 책으로 부담 없이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을 수 있었다. 소설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처음 보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어린 시절에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반갑기도 했다. 그중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인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결혼을 앞둔 아서 새빌 경이 살인할 운명이라는 수상술사의 말을 듣고 최적의 살인을 계획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단편이라서 스토리가 빨리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좀 더 살을 붙여서 장편으로 만들었다면 엄청난 범죄스릴러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확실하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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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14번째 작가로 오스카 와일드를 소개한 책 <아서 새빌 경의 범죄>.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주로 단편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그의 단편집이 출판사별로 많이 소개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민음사와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출판한 오스카 와일드의 책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환상 문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보르헤스는 왜 오스카 와일드를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 그의 내적인 행복, 무엇에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행복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가 슬픈 댄디로 기억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 - 보르헤스 소개글과 같이 한때 촉망받던 유명한 작가의 위치에서 동성연애자임을 밝히고 나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오스카 와일드를 그의 작품으로서 재해석하기 위함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비참한 그의 죽음 보다는 그의 작품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아마도 그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오스카 와일드를 초대한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작품중 동화와 같은 3편의 단편은 '희생'을 소재로 한 작품처럼 보여진다. <행복한 왕자>는 아마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품이라는 것은 모를지언정 그 내용을 많이 접해보았을 것이다. 불쌍한 빈민을 돕기 위하여 왕자의 모습을 한 동상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던 보석들을 나누어주는 희생을 감행한다. 여기에 그저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려는 제비가 그러한 왕자의 희생을 빈민에게 전달하는 메신져 역할을 해주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대영제국의 화려한 이면에 고생을 하고 있던 빈민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측은지심을 담아낸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당시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통하여 촉구하는 한편, 왕자의 희생적인 헌신에 감화되어 남쪽 나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역시 자신을 희생하는 제비의 모습은 당시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메시지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빈민에 대한 측은지심을 통한 희생을 위한 작품이 <행복한 왕자>였다면,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희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죽음과 맞바꾸어 소년에게 붉은 장미를 마련해주는 나이팅게일은 그저 순수한 사랑에 자기 희생의 존재로 묘사가 된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는 이러한 사랑에 대한 희생을 여자로부터 실연당한 소년의 한탄으로 돌연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이 작품이 언제 쓰여졌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성과 동성에 대한 사랑을 모두 경험한 그의 실제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저만 아는 거인>역시 순수한 어린이에 대한 애정을 종교에 귀의하는 모습으로 연결짓는 과정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서 이 역시 우리 어른이 오히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3가지 단편은 저자의 이름과 다르게(?) 동화적인 요소로 마치 감성을 망각하고 있는 우리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시각을 다룬 소설이라 생각된다. 우연히 파티에서 윈더미어 부인의 소개로 파저스라는 손금을 보는 남자를 만난 아서 새빌 경. 그는 결혼을 앞두고 행복한 꿈에 젖어 있는 젊은 귀족이었다. 그러나, 용하다는 파저스의 손금 보는 실력에 흥미를 가지고 자신의 손금을 보고 나서 새빌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살인을 저지를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파저스의 예언은 새빌의 생활을 모두 바꿔버린다. 새빌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게 될 운명임을 굳게 믿고, 결혼까지 미루면서 결혼 전에 살인을 감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름 살인의 대상으로 선정한 인물에 대하여 살인이 이루어지지 않자 초조하게 된 새빌. 그리고, 우연히 다리에서 만난 술취한 남자 파저스. 새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야기의 소재와 흐름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작품의 맨 앞과 뒤에 등장하는 윈더미어 부인에 더욱 눈길이 간다. 어쩌면 그녀는 오스카 와일드의 인간의 명에 대한 답을 상징하는 존재는 아니었을까? 윈더미어 부인은 처음 새빌에게 파저스를 용한 수상술사(손금장이)로 소개를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반대로 그가 형편없는 사기꾼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새빌은 정말 살인을 저지를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파저스의 예언으로 인하여 살인을 행하게 된 것일까? 흔히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내용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파저스를 사기꾼이라고 주장하는 윈더미어 부인의 행동은 인간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처음에 파저스를 사기꾼이라고 매도하였다가 마지막에 그가 뛰어난 수상술사라고 밝힌다면 새빌의 행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러한 윈더미어 부인의 행동에 대한 재배치는 실제 작품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운명이 정해진 것인지, 아니면 개척하는 것인지를 좀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여진다.
<캔터빌 유령>은 유서깊은 캔터빌가의 저택에서 등장하는 유령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소재 자체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존재인 유령이기에 어쩌면 이 작품은 보르헤스의 환상 문학과 어쩌면 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소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국의 저택에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와 새로 주인이 된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 그동안에는 이 유령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충격으로 사망을 하였지만, 새로 주인이 된 이들 가족은 유령의 존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령을 괴롭히는 존재로 묘사가 된다. 유령은 당황을 하게 된다. 그들을 괴롭히려고 방법을 강구할때마다 오히려 미국인 가족들로부터 더 당하는 모습은 유치하면서도 재미있다. 한편의 코믹 영화나 <캐스퍼>와 같은 귀여운 유령을 보는 느낌이 든다. 단순한 재미로 본다면 그저 유령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좀더 복잡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이 작품이 만약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영국의 저택의 새로운 주인이 된 미국인 가족. 이는 당시 영국인 귀족과 결혼을 하여 귀족의 칭호를 얻으려고 한 미국의 부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즉,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던 미국의 부자들이 자신의 딸을 영국의 귀족(경제적으로는 다소 어려움을 겪던) 출신의 신사와 결혼을 시키는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처럼 보여진다. 캔터빌가의 유령은 이러한 그들의 결합이 허상에 불과함을 암시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인 가족은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이 유령에 대하여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점은 점차 강대국 시민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미국인이 영국의 전통에 주눅들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분명 이러한 해석은 이 작품이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것은 아닐까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5개의 단편을 소개하고 있으며, 작품 모두가 동화처럼 읽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느낌처럼 정말 동화로 읽어도 상관없고, 앞서 <아서 새빌 경의 범죄>나 <캔터빌 유령>과 같이 개인적으로 좀더 깊이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도 있다. 즉, 부담없이 읽으면서도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은 이처럼 밝은 느낌의 동화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의 비극적인 인생을 떠올린다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작품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된다면 그의 삶을 한번 떠올리면서 읽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바로 보르헤스가 자신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오스카 와일드를 소개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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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그의 단편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몇가지 특징이 보이는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작가는 와일드의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꽤나 잘 어울리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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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를 읽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 이라거나 ‘나의 천재성은 삶에 투여하였고, 나의 작품에는 약간의 재능을 썼을 뿐’ 이라는 등 (내가 이 두 말을 함께 기억하는 건 이 두 말 사이에는 일종의 어폐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겼다는 말을 들으며 꽤 잰 체 하는 19세기의 극작가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이와 함께 커밍아웃 당한 현대 작가의 시초쯤이라는 사실 또한 그에 대한 자유분방한 편견을 심어준 원인이 되었으리라, 이래저래 시대를 앞서간 것만은 분명하다...) 작품집에 실린 글들을 통해서는 그의 어둡고 약간은 비뚤어진 (나쁜 의미로서가 아니라)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썼다는 세 편의 동화가 가지는 일종의 어두움이나 두 편의 소설이 품고 있는 블랙 유머를 볼라치면 작가의 기질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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