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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들의 자녀교육법으로 나와 있는 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은 독보적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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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말로 인해 성공하는 것, 자아를 실현하는 것, 꿈을 갖고 쓰고 말하는 것, 칭찬으로 춤추게 하는 것, 자존감을 높이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매일 듣고 있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익숙한 말들일 것이다. 특히나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진정 그리스도인도 이런 말과 생각으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본질에 충실하며 진리에 비춰 이 참혹한 현실을 봐야 한다.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말은 현실이 아닌 ‘착각’이며, 자아는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며, 꿈은 갖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며, 칭찬은 ‘고래나’ 춤추게 하는 것이며, 자존감이 아니라 ‘겸손’이며, 하고 싶은 것은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성경을 통해 확신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부족한 교사로서 성경적으로 올바른 교육을 향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갈급하다. 이런 때에 작고 얇지만 귀한 본서가 출간되었으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인 조엘비키(Joel R. Beeke)는 칼빈과 청교도 사상에 관한 전문가이며 특히나 다음 세대의 교육에 관해 큰 관심이 있다. 본서의 제목(‘언약 자손으로 양육하라’)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임과 부담감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필자에게는 크게 반가운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자녀양육이 ‘언약신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특별히 필자가 근무하는 기독교학교라는 공동체도 언약신학 아래 있으니 올바른 교육은 올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바, 본서에서는 거의 스치듯 지나가지만 성경이 말하는 ‘언약’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첫걸음임을 알 수 있다. 본서는 1~4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자녀를 왜, 어떤 방법으로 양육해야 하는 지를 비교적 쉽게 기술하였다. 무엇보다 쉬운 예시들을 보여주기에 읽는 독자들에겐 참으로 친절한 책이다. 그럼에도 처음 이런 종류의 교육도서를 접하는 독자들에겐 약간의 난이도가 느껴질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체험을 중시하는 현시대에서 ‘지식’과 ‘체험’의 불균형 사상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둘째, 현실을 중시하는 현시대가 ‘신앙’과 ‘현실’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올바른 교육과 삶은 결코 올바른 ‘지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올바른 지식이란 성경 즉,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지식이다. 이를 ‘신학’이라 정의해도 무방하다.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이 밝힌 것처럼 인간은 지식을 통해 의지가 움직이고, 의지를 통해 삶의 모습(정서)가 바뀐다. 본서는 그 밑바탕-하지만 표현하자면 ‘밑바탕’이지 이는 삶의 모든 영역을 살아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이 되는 지식(신학)의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방법을 통해 언약 자손에게 가르쳐야 하는 지, 마지막으로 자손이 얻게 되는 삶의 경험은 부모의 삶을 통해 얻게 된다고 말한다. “성경 외에 자녀들이 읽게 도리 가장 중요한 책은 부모의 삶이라는 책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 부모들의 삶에서 무엇을 읽고 있습니까?” -p. 77- 무엇보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정예배’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자녀는 성경을 알며, 역사적이며 정통적인 교리문답(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통해 교리를 배우고, 예배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예배자의 모습을 배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가정에 가정예배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자녀들에게 전하는 복음전도의 내용이 담긴 2장은 본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부모들에게 이 내용들을 공부하고 숙지하길 촉구하고 있다. 10가지로 제시된 이 내용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1)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2)죄의 심각성을 직시함, 3)거듭남과 회심의 절대적 필요성, 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보더라도 작금의 현실이 이끌어가고 있는 신앙교육과는 사뭇 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진리들이 우리가 잃어버린 진리들이란 것이다. 저자는 2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면서 성경을 대하는 부모들의 자세에 대해 잠시 언급한다. “성경 진리나 성경의 인물, 혹은 성경의 교훈에 대해 자녀들과 이야기하면서 농담조로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들을 소홀히 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너무나 엄중하고 죽음과 다가올 심판은 너무나 확실하며 영원은 너무나 길기 때문에, 성경의 거룩한 진리들을 감히 농담조로는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p. 49- 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는 얼마나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농담을 했는가.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는 동안 마음에 떠오르는, 독자가 했었던 그 농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농담뿐이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숙고하지 않고 잘못된 적용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생각해 보라. 부모와 교사의 삶을 통해 배운 성경에 대한 가벼운 자세가 자손들에게 그대로, 때로는 더 강화되어 나타나는 그 장면을. 심히 끔찍하고 추악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앞에서는 작은 것에 충성되어야 할 것이다. 자녀들에게 건네는 성경에 대한 짧은 말 한마디, 생각 한 소절의 깊이와 맛이 진리다워지길 바라며. 되도록 많은 부모들이 본서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되도록 많은 교사가 본서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세대에 앞서 진리를 맡은 자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모’며 ‘교사’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되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서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본서에 인용된 ‘리처드 매더(Richard mather)’의 설교에서 지옥에 간 자녀들이 그 부모들에게 어떤 원망을 쏟아낼지에 대한 예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여기서 받는 이 모든 고통은 모두 부모님들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죄로부터 멀리하고 바로잡아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부패와 죄책이 당신들로부터 전가되어왔지만, 우리가 그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어떤 경고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무관심으로 우리는 계속 죄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저주 아래 있습니다. 화로다, 우리 자녀들이여! 육신적이고 생각이 모자란 부모를 두었었구나! 자녀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그들의 영원한 비참함의 운명을 막는 데 나태한 부모들에게 화가 있을지로다!”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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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녀는 이 나라의 미래 주역이다. 장차 이 나라를 책임질 이들이다. 더욱이 (택함 받은) 자녀는 한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존재를 넘어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요, 교회의 일꾼이자 원동력이다. 자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릴 또 한 명의 교회이다. 이러한 자녀를 어찌 잘 양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모는 자녀 또한 청지기적 사명으로 길러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를 방만하게 양육한다. 지나치게 아껴서 "오냐오냐" 기르거나 무관심으로 방종에 가깝게 기르기도 한다. 전자의 양육 방식으로 인해 이기적인 아이로 자란다. 후자의 경우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로 삐뚤어진 성격을 갖는 경우가 있다. 물론 방금 예로 든 두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두 양극단의 언저리를 맴도는 양육 방식으로 자녀를 기르는 부모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경우는 어떠할까?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바른 자녀 양육 방식을 모르거나 비그리스도인 부모와 같이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바쁜 생활로 자녀 양육에 힘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상황을 핑계 대며 계속 자녀 양육을 태만히 해야 할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단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 전까지 수발하는 데에 있지 않다. 자녀는 내가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할 대리만족의 도구가 아니다. 자녀는 좁게 보면 자신이 낳은 핏덩이이지만, 넓게 보면 하나님의 한 가족이자 형제이다. 자녀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일꾼이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책임감 있게 길러야 한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언약 자손으로 철저히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은, 나태하고 무관심한 자녀 양육은 하나님 나라에 해가 된다. 이래도 자녀 양육에 힘쓰지 않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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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부모님은 모범적이고, 존경할만한 크리스천이지만, 그 자녀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또는 부모 자신의 신앙은 부족할지언정 자녀 만큼은 제대로 된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크리스천 1세대로서 2세대인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서, 항상 이 문제를 두고 책임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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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의 언약 자손으로 양육하라는 평소 청교도 신앙을 본받아왔던 저자 답게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철저하고 보수적인 신앙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전에 나왔던 크리스천 가정의 자녀양육서와 좀 다른 점이다. 이전 책들이 여러 가지 삶의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생각이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 철저하게 성경중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 사상이 이제 우리의 뇌 속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는 이 시기는 그야말로 가치체계가 완전히 무너져가고 있는 세계다.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것이 오늘 날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지하철에서 20대 남자가 70대노인에게 폭언을 퍼붓는 행위도 어쩌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절대적 가치가 없으니 자기 좋을 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인 셈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 옛날부터 경고해왔다.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하는 순간의 말씀은 이런 것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왕이 없어 자기 좋을대로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눈과 마음을 가리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스라엘은 늘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외부세력의 침략도 침략이지만 내부적으로 우상숭배와 타락, 서로 물고 물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인간답게,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그 분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삶이다. 오직 예배에서만이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가정에서부터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아주 단호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자녀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성을 아주 많이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은 현대그리스도인들 부모들이 심각하게 고민해볼 사항이다. 현대 그리스도인 부모 어느 누구도 자기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즐겨하는 자를 찾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믿게 되겠지.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그러지 않겠어?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엄청난 오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복음은 우리 신앙의 원동력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은 내버려두고 다른 부분들만을 가르치려고 애를 쓴다. 특히 우리가 즐겨하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 가르치기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통한 기도응답. 이런 따위가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을 목마를 때 동전을 넣고 꺼내 먹는 음료수 자판기 정도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이 책을 읽고 그리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