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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속일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사랑,기침,가난 이 세가지는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히든 >이 책은 크게는 가족소설이지만 자매간의 사랑으로서 이야기가 축소되며 그 안에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린 한 소녀의 삶을 보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해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들 개개인이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해주기 때문에 그들 각자의 삶을 쉽게 이해하게 되는 장점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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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상처를 입히기 쉬운 사람들은 누구일까? 뒤집어 말하면 우린 누구로부터 가장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것일까? 아마 우리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신뢰를 확인시켜주는 사람들, 부모이고 그리고 자매와 형제들일 것이다. 의지해야 할 대상인 이들이 신뢰를 배신하고 이기적이며,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온통 불안과 불신, 두려움의 상처를 안고 암흑 같은 세상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법,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 그리 자신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과 부모형제에 대한 신뢰의 기대는 그 무엇보다 삶을 지탱하는 첫째가는 요소이다. 하물며 부모의 사랑과 보호에 의지하며 세상을 조금씩 이해하고, 불안을 여과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란 거의 절대적인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삶의 현실은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맞벌이 부부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축소되고, 또한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는 그래서 오로지 물적 자본과 과시적 명예자본을 축적하는 데에만 골몰한다. 이것은 그대로 아이의 양육방식에 이전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뛰어난 인간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아이들의 성품과 인격은 오직 성공이란 기준 하에서만 재단된다.
소설은 이처럼 사회적 지위라는 명예자본을 중시하는 부모로부터 성장하는 두 소녀의 빗나간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학업, 운동, 미모...모든 것에서 최고여야 하는 아이, 그래서 부모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그 관심과 지원에서 차별된다. 우등생인 첫째 딸 ‘앨리슨’, 민감한 감수성과 섬세한 성격으로 그런 잘난 언니를 배려하는 둘째 딸 ‘브린’,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에 무심한 브린은 부모의 관심으로부터도 배제된다. 열등감과 신뢰에 상처를 확대시킨다. 그러나 끊임없는 경쟁 레이스는 열여섯 살 고등학생 소녀 앨리슨의 평정심을 손상시키고 뜻하지 않는 임신으로 이어진다. 오직 경쟁의 우위에만 관심을 가진 부모는 속이기가 쉽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 성과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아이의 신체나 감성의 변화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앨리슨,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환경은 이 사실이 은폐되어야만 하는 까닭이다. 고통스러움 속에서 언니의 출산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리는 브린, 그리고 아기는 강보에 싸여 강물에 버려지지만, 영아 살해죄로 앨리슨은 5년의 형기를 마치게 된다. 자신들의 명예만을 중시하는 부모들은 앨리슨을 그들의 삶 속에서 지워버리고,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브린 역시 부모의 무대에서 배제된다. 한편 불임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던 작은 서점을 꾸려가는 ‘클레어’는 소방서 앞에 버려진 사내아이 ‘조슈아’를 입양하고 그 아이를 세상의 축복으로서, 지극한 사랑으로서 양육한다. 혹여나 그 극진한 “사랑이 세상에 대한 아이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자신의 사랑을 의심할 정도로.
여기에 상처를 준 유일한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남자를 갈구하고, 그 남자들로부터 어린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의 이기심만을 좇는 엄마를 말하는 스물한 살의‘챠메인’은 엄마가 버린 남자,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준 폐암으로 죽음에 임박한 전직 소방관인‘거스’를 간호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의 신뢰와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전령처럼 황폐해진 오늘을 일깨운다. 소설은 이렇듯 좋은 부모, 좋은 가족, 좋은 사람의 의미를 환기시키는데 열중하는 것 이상으로 소설로서의 견고한 구성과 속도감, 긴장감과 같은 요소로 이야기로서의 즐거움을 놓지 않는다.
소도시의 작은 서점, 다섯 살 소년 조슈아, 그의 양부모인 클레어와 조나단, 앨리슨, 차메인, 브린 등을 한 무대에 집결시킴으로써 가족의 갈등과 유대, 사랑과 용서,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의 양육이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관심으로서 이해되어야 함을 밀도 높은 감성과 긴박감 속에 그려낸다. 더구나 앨리슨과 브린 자매의 영아 살해와 관련한 진실을 쫓게 하는 또 하나의 시선은 거대한 비극으로서의 구성적 축이 되어 소설을 더욱 풍성하고 조용한 웅장미를 창출해 내기도 한다. 섬세한 여성적 문체와 이야기로서의 아름다움 속에 부모란 무엇인지, 또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다시금 생각게 하는 진중하고 충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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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책의 제목이 Hidden 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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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느껴지는 가장 큰 문학의 매력은 그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품이미지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시각적 이미지를 먼저 전달하는 영화 등에게서는 각각의 기대이미지가 있어서 그것을 넘어서거나 다르게 표현될 때 실망감 등의 여러 감상을 가지게 되는 반면 문학의 문자는 독자 스스로 그 이미지를 생산하는 주체로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평소 크게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흔한 장면에도 ‘히든’의 장면은 다르게 다가왔고 유난히 울컥하는 등의 다양한 나의 감정을 끌어내게 된다. 눈물나도록 클레이의 감정이 안타깝게 와닿을 때도 있고 브린과 앨리스의 어렸을 적 모습이나 마일로와 트루먼이라는 강아지들과 장난치는 장면에 웃음이 난다. 내가 상상하는 가장 최적의 이미지를 찾아냄으로써 독자는 다양한 또 다른 ‘히든’을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하다. ‘히든’은 앨리슨, 브린, 차메이, 클레이 네 여자의 옴니버스 영화와 같다. 네 여자 각자를 중심으로 짤막한 챕터들이 교차되어 나열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작가적 시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앨리슨과 브린, 두 자매의 경우에만 1인칭으로 진행된다. 이 둘 사이의 감정선이 (그들이 짧은 재회를 갖기까지) 책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가기 때문일까. 옴니버스 영화들이 흔하게 채택하는 방법으로 각각의 인물들이 후반부에 한 시공간에 얽혀 있음을 드러내곤 한다. ‘히든’의 저자도 이러한 방법을 택하고 있어 네 여자가 한 시공간에 극적으로 배치되는 장면은 책의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저자는 몇 가지의 사회문제와 가족의 허위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가장 부각하고 싶었던 것은 미국의 ‘세이프헤븐’제도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데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단은 태어난 생명을 보호하는 데 동기를 가진 듯한 세이프헤븐제도는 혹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영아살해와 유기율을 감소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소수이긴 해도 영아 생명 유지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네 여자의 관점과 앨리슨과 브린의 부모의 시선으로 대체되는 사회적 시선이 대조되면서 선악의 경계를 긋기 어렵게 한다. 특히 부모의 역할에 대한 옳은 대답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부모의 모습이 사회적 시선을 대체하기는 했지만 때문에 열일곱살의 어린 여학생이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가 강조되지는 못한 점이 아쉽다.) 앨리슨과 브린이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했고 사회적 시선으로는 완벽한 자신의 부모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앨리슨의 말들이 가슴아프다. 얼마나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물질적으로 자녀를 지원하는 데에 부모의 역할을 한정짓고 그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물론 앨리슨과 브린의 부모도 자매를 너무도 사랑하고 사랑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꼭 자녀의 범죄에 휘말려 일생을 함께 희생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딸의 전과에 대해 잊고 싶어하고 나름의 인생을 살아내려 하는 그들의 노력도 이해가 가고 안타깝다. 하지만 막연히 자녀의 범죄를 부정하려는 태도보다는 위로가 되는 가족으로서는 남는 노력은 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죽었다고 생각한 영아를 차가운 물에 띄울 수 밖에 없는 어린 여자아이의 대처보다 더 성숙할 게 없는 그 부모의 태도는 부모되기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회복귀훈련시설인 가석방자의 집에서 만나는 비이처럼 엄마된 자격에 대해 반성하고 준비하는 부모가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앨리슨의 의견대로 자녀 곁에 하루라도 빨리 머무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모성은 신화라고 늘 느끼면서도 이 네 여자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신화라고 비판하기 어렵다. 저자 또한 이러한 신화적 모성을 견제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자신 또한 엄마에 대한 상처로 피폐해져 있으면서도 병석에 누운 의붓아버지 거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돌보는 차메인에게서 느낄 수 있다. 차메인에게서 돌봄의 의지를 본다. 거스에게, 아이에게 느꼈던 차메인의 돌봄의 의지는 아이를 살리기도 하고, 평화롭고 위로받는 죽음을 맞게끔도 돕는다. 모성은 엄마와 아이에게서만 쓸 수 있는 단어이지만 이 책의 작가가 전달하는 사랑은 모성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돌봄의 의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히든’이 우리나라 드라마로 각색된다면 아마 공중파로서는 자극적인 소재라 할 수도 있고 막장드라마의 모습으로 변모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잉적 소재는 우리 현실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미국의 이야기, 미국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일 뿐이겠는가. 막장드라마 속의 그 자극적인 소재들은 우리가 가진 현실의 문제를 약간 과장되게 표현된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우리의 현실을 까발려 버리지 않고 분명 과장되었음을 전제하는 막장드라마, 폭력과 코미디로 옷을 입은 영화들에서 그 현실들은 조용히 고발되고 있다. '히든' 속에 숨겨진 것은 책 후반부에 알려지는 사건의 진실들만은 아니다. 사실이 독자에게 숨겨져 왔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잊고 싶어하는,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적 분위기, 그래서 은폐해버리려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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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인 '헤더 구덴커프'의 데뷔작인 <침묵의 무게>를 읽은 지가 1년이 좀 안 되었는데,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인 <히든>을 읽게 되었다. 이런 작가의 작품 경향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인 <히든>의 결말 부분에서 허를 찌르는 반전에 부딪혀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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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평생 옳은 결정만 내리고 살다가,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내 삶은 망가졌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결국에 언니는 영아 살해죄로 감옥에 가게 되고, 5년 후에 교도소를 나와 사회복귀 훈련 시설로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숨겨졌던 '그날 밤'의 새로운 진실들은 하나씩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
" 그 순간은 언니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죽도록 싫었고, 완벽한 언니, 똑똑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언니가 임신을 하더니, 이젠 내게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한다는 것이 싫고 미웠다.
그러나 '그날 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또 있으며, '그날 밤'의 진실은 밝혀진 것이 모두는 아니라는 것이다. ![]() <히든>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영아 유기죄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모의 역할,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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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이 왜 교도소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10년 형을 받은걸 보면 단순한 죄목은 아닌 듯싶은데 16살 먹은 여자 아이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써놓은 프롤로그나 에필로그, 시놉시스를 먼저 읽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에는 에필로그가 있었는데 미국의 영아 보호법에 관한 글이 쓰여져 있었다. 그래서 대략 앨리슨의 죄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어떤 영아를 살해 했을까?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영아살해죄는 형법 251조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 보다 훨씬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살 차이였지만 언니를 세상의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브린은 왜 언니의 편지는 물론이고 전화 통화까지 거부 했을까? 둘간의 hidden이 소설의 핵심인 것으로 좁혀졌다. 사실은 앨리슨 대신에 브린이 감옥에 갔었어야 했다. 영아를 살해한 것이 언니가 아니고 본인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가 대신 감옥 행을 택하자 견딜 수 없는 압박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언니가 석방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는커녕 무관심으로 대응하지만 결국 언니를 만나고 자신이 죽인 영아의 남 동생 조슈아를 만난다. 죽은 여자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조슈아를 누가 곁으로 보내려 욕조에 물을 받아 익사 시키고 자기는 여자 아이를 놓았던 지점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다. 차메인이 클레어 서점인 북엔즈에 자주 들리고 조슈아를 찾아 조슈아가 친 엄마이고 아이가 보고 싶어서 찾는 것으로 착각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잘못된 판단 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조슈아의 고모였던 것이다. 차메인의 직업은 간호사로 조슈아를 자신이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클레어 서점에 자주 들러 아이의 안부를 확인 한다. 그러던 중 브린이 조슈아를 익사시켰을 때 가지고 있던 의학지식으로 살려낸다. 그는 엄마의 전 남자친구인 거스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이유는 그의 엄마가 한 남성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져 가족을 돌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같이 살고 있는 거스는 엄마와 4년간 동거했던 남자로 과거에는 소방관 이었으나 지금은 폐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클레어는 조슈아의 양 엄마로 아이 간절하게 희망하였으나 유산하고 수술하여 절망 하던 중에 조슈아를 얻었으나 친 부모가 찾아와 아이를 데려갈까 봐 노심초사해 한다. 조슈아 를 입양하기 전에 엘라 라는 예쁜 딸을 입양했으나 친부모가 데려가는 바람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조슈아의 친 엄마가 영아를 살해한 앨리슨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큰 혼란에 빠지면 모든 걸 정리하고 조슈아를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은둔을 하게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더 많지만 대략 이 네 사람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고 이야기의 전개도 대 부분 이들로부터 풀어진다. 브린이 앨리슨은 왜 멀리하게 되었는지 후반부에 들어 서면 알 수 있다. 브린이 무심코 벌인 일 때문에 앨리슨은 영아살해죄로 징역을 5년이나 살고 가석방 되었다. 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언니를 멀리하게 된다. 앨리슨이 차메인의 오빠인 크리스토퍼와의 불장난으로 임신을 했는데 부모님 안 계실 때 애를 몰래 낳아 처리 하려고 했는데 브린이 갓 태어난 아이를 수건에 싸서 강물에 띄워 보낸다. 처음엔 애가 움직이지 않아 죽은 줄 알고 물에 놨는데 물에 닿자 움직이고 울음까지 터트렸으나 다시 아이를 잡으려고 했을 땐 이미 강물에 휩쓸리고 난 뒤였다. 물론 앨리슨은 애를 강물에 빠뜨려 없앨 생각은 아예 없었다. 단지 어떻게 처리 할까 고민하였고 결론은 아이 아빠인 크리스토퍼에게 키우라고 데려다 주려던 차에 브린이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가 더 반전이다. 뱃속에 아이가 한 명이 더 들어 있었는데 그 아이가 클레어의 양아들 조슈아였던 것이다. 소설이기에 이러한 설정이 가능 했겠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독자를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앨리슨을 우리나라 16세 소녀로 대입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대입이 되지 않는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시련이기 때문이다. 본인 앞 가름도 하기 힘든 판국에 동생의 장래까지 생각하다니 앨리슨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범죄자이든 따뜻하게 대해 줬을텐데 앨리슨의 부모가 그녀에게 냉소를 보낸 것은 동양과 서양의 정서가 달라서 인가 보다. 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라 그런지 이 이야기가 소설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물론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모로서 항상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성 작가가 쓴 글이라 순정만화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순정만화 보다는 서스펜스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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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정의 달 5월이면 버려지는 아이와 입양되는 아이를 다루는 프로를 마주 하게 된다. 그리고 매주 멀리 입양이 되었다가 돌아온 아이가 친부모를 찾고 말이 통하지 않아 통역사를 곁에 두고 서툴지만 서로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그럴 이유가 있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울음바다를 만드는 장면도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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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희망을 품고 세상을 맞이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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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 구덴커프의 작품인 『히든』을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읽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헤더 구덴커프의 전작인 『침묵의 무게』도 그러했는데 이 작품 또한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중간까지 읽는 데 오리무중이었다. 이렇게도 상상해 보고 저렇게도 추리를 해보았지만 나의 상상이나 추리는 작가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침묵의 무게』, 『히든』두 개의 작품 모두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재미있고, 사회성 짙고, 서사 구조와 인물의 성격 묘사 또한 대단한 작품인데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면 후회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정말 좋은 작품이다.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허튼 상상과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끝까지 읽지 않으면 절대로 이 작품을 읽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립박수가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을 때 주의할 점 : 어떤 사건 속에 숨겨진(Hidden) 진실이 나오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말 것 작가 헤더 구덴커프 - 는 아이오와대학에서 교육학 학위를 수료하고 지난 16년간 초등학생들을 가르쳤다. 저서로는 『침묵의 무게』가 있다. 이 『침묵의 무게』는 읽었다. 인물탐방… 앨리슨 : 크레이븐빌 교도소에 수감. 5년 만에 모범수로 가석방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보호하려는 강인한 성격의 인물. 그 사건 이전에는 부모님 에게 완벽한 딸이었으나 그 사건 발생 후 부모님으로부터 버려진 인물. 차메인 : 리안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 크리스토퍼가 오빠인데 오빠가 도망간 이후 어린 조슈아를 소방서 앞에 갖다 놓은 장본인. 브린 :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던 인물. 나중에 앨리슨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갖고 한 행동이 잘못되어 누나가 감옥에 간 이후 할머니에게 몸을 의탁한 인물. 나중에 앨리슨을 다시 만나고 좋은 않은 결말로 간 인물. 클레어와 조나단 : 조슈아의 양부모 , 서점 주인으로서 나중에 앨리슨을 점원직원으로 뽑아 줌으로써 앨리슨이 조슈아를 만나게 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인물. 도둑들이 서점에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그런 만남은 없었을지도 모름. 크리스토퍼 : 책임감이 없는 인물. 진짜 전혀 없는 인물. 크리스토퍼는 많이 나오는 인물이 아니지만 이야기의 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있음. 아주 나쁜 놈임. 크리스토퍼만 없었어도 앨리슨과 브린 자매는 잘 잘았을 텐데 아주 나쁜 놈임(두 번이나 말했다) 크리스토퍼와 리안, 그리고 앨리슨과 브린의 부모님들은 안 좋은 인물로 보였음. 애정을 쏟아 보살펴 준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 보였음. 과연 어떤 사건이 숨겨져 있는지,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제목만 보고는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었다. 정말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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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기에도 완벽한 소녀가 있다. 축구, 배구를 비롯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전교에서 1등에 부모님은 남들이 보기에 부유하고 친절하며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열여섯살 소녀 앨리슨은 그만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자신이 낳은 갓 태어난 신생아를 강물에 빠트려 죽인다.
앨리슨은 10년 형을 선고 받아 생활하던중 모범수로 5년만에 교도소에서 출소를 한다. 한번도 앨리슨과 브린 자매를 따뜻한 시선과 사랑으로 안아주지 않는 부모지만 앨리슨은 완벽한 부모님 기대에 맞추어 생활하려고 노력하며 밤마다 잠자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이 교도서에서 차츰 사라지며 그녀가 살인죄로 기소되고 난 후 부모는 그녀와의 연락을 일체 끊으며 출소하는 날에도 부모님 대신에 변호사 데븐이 나타나 그녀를 안아준다.
브린은 앨리슨의 여동생으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지만 항상 기대에 못미치는 그녀에게 무관심한 부모님은 한번도 그녀를 앨리슨만큼 위해주지 않는다.
클레어는 남편 조나단과 함께 아이를 갖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첫번째 여자아이를 잃은 상처를 5년 전에 조슈아를 입양하면서 행복함을 만끽한다. 조슈아의 친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데려갈까봐 항상 불안하다.
차메인은 자주 남자를 갈아 치우는 친엄마로 인해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그녀의 엄마가 결혼한 퇴직 소방관 거스에게서 부정을 느끼며 그와 함께 살면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제소자들끼리 생활하던 곳의 관리자가 소개한 서점에서 일을 하게 된 앨리슨은 뜻밖에 자신의 일생에서 3주동안 알고 지내며 좋아한 남자를 꼭 닮은 아이를 보게 되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앨리슨이 자신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생 브린에게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며 예전의 자매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반면 언니의 출현은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라 브린은 자꾸만 도망가고 싶다.
각각의 이유로 조슈아가 양부모에게 받는 온전한 사랑이 깨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앨리슨은 완벽한 자신의 삶을 포기할 만큼 동생 브린이 연약하고 무너져 내리기 쉬운 성격이라 모든 것을 감내하며 오빠의 어이 없는 행동은 차메인을 힘들게 하지만 갓난 아이의 모습은 그녀를 행복하게도 한다. 앨리슨, 차메인은 열여섯 소녀들이 하기엔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것이 결코 법이나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라고해도 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좋은 조건의 부모를 만나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그런 조건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을 쏟아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일은 없겠지만 주인공 앨리슨과 그녀의 동생 브린은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부모지만 항상 밖으로 나도는 바쁜 생활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완벽한 자식이 필요할뿐 정작 자신들의 일 빼고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부모다.
책속에는 네명의 여성이 1인층 주어를 사용하며 각각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네 사람 모두는 나름의 커다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역활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흔히 가족하면 무조건 사랑과 용서, 화목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부모의 역활.. 나아가 형제, 자매, 남매간의 지켜야할 의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한동안 뉴스에 나왔던 영아 살해와 같은 극단적인 비극을 초래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 역시 가족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책표지에 나온 두 소녀가 꼭 앨리슨과 브린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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