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에베레스트 산을 금으로 바꾸어도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경험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재화가 필요할까? 또 그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얼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여기에 가장 명확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일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끼면 된다. 반대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적당히 일하고 욕심을 줄이면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음식을 맛으로 먹는 것에 반대한 사람이었는데 옥수수 빵만 먹고도 평생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보다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데 삶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음식의 맛에 대해 불평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했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책을 읽고 실험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느라 바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은 정말 대단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에 대한 해법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즉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은 존경할 만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였다. 이 말은 길게 보면 사실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대부분의 인류의 역사에서는 인류의 생산력은 정말 더딘 속도로 발전했고 어떤 시기에는 후퇴하기도 했다. 약간의 기후변화로도 대기근이 찾아 왔고 병충해의 습격 때문에 생산력은 급격히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정책에 따라 무역의 정도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 일을 쉼 없이 반복했다. 그 긴 역사 동안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을 각각의 작은 공동체 내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그래서 필요한 물품을 대부분 스스로 만들 줄 알았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부모에게 전수받고 스스로 깨달을 줄 알고 책임감 또한 강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테일러리즘 때문에 바뀌었다. 분업이란 마술은 인간에게 엄청난 수준의 생산력의 성장을 약속했고 이제 성장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이제 인류는 수천 수만 년 동안의 저성장의 관성을 버리고 고성장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생산력의 급격한 발전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비단 경기변동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슘페터가 말한 몇 번의 이노베이션 이후에는 생산력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20세기 초의 자동차 혁명은 전 세계의 경제 정치 지형을 바꾸는 일이었고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스마트폰 혁명은 감성적 측면에서는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비단 그런 일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모든 산업의 발전은 자본의 집적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상승은 바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이유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상승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가 되었다. 지금의 세계는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있거나 중간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 모두 경제성장이 국가 운영의 최고 목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나 절대빈곤을 걱정해야 할 국가들이 경제성장에 목을 매는 이유는 명확하다. 성장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빈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에서 저성장은 휴머니즘에 반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는 국가들에서의 경제성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들의 소득이 는다고 해서 행복도가 비례해서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파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면 뒤처지게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제시하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다. 결국 정치인들은 불가능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약속하고 사람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투표하게 되며 중앙은행에서는 적정규모를 넘어선 돈을 찍어내고 그 엄청나게 찍어 낸 돈 때문에 물가는 오르게 되며 세상 모든 것에는 거품이 끼게 된다. 그런 거품 속에서 절약하고 검소한 삶은 오히려 악덕이 된다. 세상에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없다. 단지 소비주의만 남을 뿐이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시한 해법 밖에 답이 없다. 가계에서는 소득 수준을 생각하며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는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게 만드는 정책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맛없는 옥수수 빵을 참아낼 인내력이 없다. 보다 큰 자동차를 사야 하며 신상품이 아닌 철 지난 옷을 입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넓이뿐만 아니라 사는 지역도 중요하다. 우리의 가계 부채가 900조를 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해답은 간단하다. 복잡하게 생각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 실행으로 옮기는 방법은 간단한 해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 된다. 단지 욕심이란 두 글자가 이 과정을 방해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에서조차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실천하기란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민도가 독일보다 낮은 우리나라는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미리 알고 배우며 다가올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힘을 내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특징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놀라운 능력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스타일이다. 우리가 지금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우리나라는 언제가 돼서야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탐욕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인가?
|
|
21세기에 위기가 왔다. 이전에 우리가 겪었던 금융위기, 세계 경제위기보다 더 크고 차원이 다른 위기가 도래할 것을 독일에서 가장 탁월한 사회학자인 마이하르트 미겔이 이 책 <성장의 광기>에서 예견하고 있다. 우리에게 찾아온 재앙의 시작을 보여주는 사례는 여러가지가 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의 온난화, 환경오염, 자원의 고갈 등등 ...게다가 경제성장을 외치던 선진국들은 줄어든 재산과 부동산 가치 폭락, 주가 하락, 게다가 청소년 실업률까지.. 특히 우리나라는 서구사회가 두세기동안 이루어 낸 것을 30년만에 이루어 낸 자랑스런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우리의 삶은 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는 걸까? 자살률 세계 1위 , 교통사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만이 성장한 것일까? 주식 또한 처음으로 2000P를 갱신했음에도 왜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더 피폐해졌을까. 줄어든 재산과 부동산 가치폭락, 주식하락, 무엇보다 실업문제는 또 어떠한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마인하르트는 인류 태초의 모습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성장이란 이름으로 변화해온 발자취를 사회학적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이 시원시원해 읽다 보면 그의 명쾌하고도 뛰어난 진단과 대안에 성장과 복지라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리라 생각된다.
<성장의 광기>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인하르트는 성장이라는 욕구가 인류최초의 모든 생명체의 기본 욕구인 팽창충동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팽창충동에 의한 욕구는 결국 자연이 정해 놓은 한계를 극복하기에 이르렀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간은 문화의 도움으로 불을 사용하고 ,우물을 팠고, 농지를 넓힐줄 알았으며 동식물을 기르고 바퀴를 발명했다. 이어 수억 년 동안 저장되어 있던 가스,석유,석탄을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팽창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인구의 증가때문이다.
팽창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는 자연이 보여준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팽창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뿐만이 아니라 수정과 산맥, 심지어 우주조차 팽창에 관여한다. 모든 것이 성장하지만, 언젠가 모든 것은 성장을 멈춘다. 그러고 나서 퇴화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사라진다. 모든 팽창에는 수축이 따르고, 이는 새롭게 팽창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인간은 공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공기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우리가 마시는 공기에는 연기,그을음,먼지,에어로졸,증기와 냄새나는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고 맛도 없으며 냄새도 나지 않는 가스를 공기중에 가득 채웠다. 바로 이산화탄소이다.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지표면 온도를 상승시켜 다수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이런 문제들은 특히 사람들을 위협한다. 첫째,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상승과 둘째 토네이도, 가뭄,홍수나 산불처럼 극단적인 재해를, 세째는 물부족과 식량부족의 위험도 커졌다. 네째는 생태계가 훼손당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동식물의 멸종을 가지고 왔다.
대기오염과 이산화탄소 누적과 같은 변화에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어마어마 하다. 이것은 최근 60년동안 이뤄낸 경제성장과 물질적 복지 증진에 대한 대가이며 지금까지 지불하지 않은 계산서라 할 수 있다.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마시며 기후 충격으로 인해 존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인류는 상당한 희생을 치뤄야만 할 것이다.
인류는 인생의 절반을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망가뜨리고 , 나머지 절반을 건강을 다시 찾기 위해 바치는 남자와 비슷할지 모른다.
이어 미성숙한 사회, 의지할 데 없는 사회, 흥분제를 먹은 사회. 과부하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현실의 사회의 모습을 ...그것은 바로 엄청난 빚더미 위에 복지를 건설한 것이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성장에 대한 논쟁이 본래 다루는 대상은 성장이 아니라 복지라는 사실 말이다. 바로 성장이란 덫에 걸려 복지라는 거짓된 속임수에 속아 해체된 가족, 스트레스, 환경 훼손을 막는 데 드는 비용 모두를 성장의 일부로 보았고 이로써 복지가 증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선진국들은 더이상 복지를 향상시키는 경제성장을 하지 않았으며 전승된 사회모델, 경제 모델, 그리고 삶의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 산더미같은 재화 뒤에 숨거나 모든 문제를 돈으로 떼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 결정해야 하고 미래의 복지를 어떻게 창출해낼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21세기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제는 성장할 것이고 또 해야 한다. 성장은 삶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성장하는 성장은 많은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장이 자연의 한계에 도전하듯 빠르게 성장하는 성장이 많은 부작용을 낳았듯이 앞으로의 성장은 자연적인 삶의 기초를 해치지 않는 성장만이 좋은 것임을 말한다. 다가오는 21세기의 위기 앞에 성장의 광기를 이제는 멈추라고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특히 사람에게 적합한 복지란 점점 더 많은 재화를 추구하느라 무시된 사람의 정신적,문화적 차원을 다시 생생하게 살리는 것임을, 이를 다시 인식하는 것이 이 세기에 바뀌어야 할 위대한 패러다임일 것이다.
우리에게 현재 닥쳐온 금융위기,세계 경제위기속에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의 온난화, 환경오염, 자원의 고갈 ,청년실업률에 직면해 있는 작금의 시대에 정치인들이 외치는 복지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겔의 시대 진단과 대안은 우리나라에도 무척 시의적절한 대안이라고 봐야 한다. 성장의 덫에 걸려버린 복지라는 이름이 현재 선진국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기도 한 이 책은 아울러 정치인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
|
최근에 우리시대에 맞고 있는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상문박사와 데이비드 올슨교수의 <컨버저노믹스; http://blog.yes24.com/document/4971758> 이진우박사와 이은주박사의 <제5의 물결, 녹색인간; http://blog.yes24.com/document/5003675>에 이어 마인하르트 미겔박사의 <성장의 광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들 책은 지구적으로 당면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그리고 경제위기 등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보화혁명의 후유증이랄 수도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금융산업의 불안정으로 야기된 경제위기가 전세계로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컨버저노믹스>에서 이상문박사와 데이비드 올슨교수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각 분야에서 발전시킨 성과들을 서로 융합하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인류는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바로 제4의 물결이 될 융합혁명을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이진우박사와 이은주박사는 경제위기와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 나보다 우리를 먼저 고려하는 영성을 회복하자는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자는 성장에 광적으로 매달려온 책임을 정책입안자에게 떠넘기고 민초들은 책임이 없는 듯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복지추구정책의 달콤한 사탕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거센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달려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 확대되어온 복지정책의 단맛에 너무 일찍 길들여져 복지가 땀의 대가라는 것을 망각하게 된 대가를 조만간 치러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출판사는 리뷰에서 “‘성장, 그 무엇보다 성장!’을 외친 결과이다. 그런데도 경제성장이 아니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우리. 도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멈출 것인가? 이 지고至高의 경제성장이 멈춘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살 것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결론에서 “경제는 성장할 것이고 또 해야 한다. 성장은 삶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장은 그것이 실행하기 전에 안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면 사람들은 실수를 하며, 자신의 복지를 증진시키고자 할 때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290쪽)”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복지는 더 이상 인구수와 재화의 양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민족의 문화가 만들어낸다.”는 저자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
|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앞 만보고 달린다면 멈출 수 있을까? 인류의 지난 200년 역사는 뒤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멈추지 않은 성장만이 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은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유럽사회에서 시작했지만 어느덧 세계 곳곳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덕분에 인류는 역사상 누려보지 못한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성장에 대한 기대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구자원의 유한성, 성장 위주의 정책이 가져온 한계와 더불어 성장 이후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가져온 결과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소외, 부의 불균등을 비롯한 인간성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을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멈출 줄 모르던 성장의 흐름은 속도가 느려지고 때론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가 하면 한 국가의 정체가 이웃국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로인해 세계경제가 파탄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의 시작은 성장을 주도 했던 경제적으로 선진 국가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누리고 있었던 물질적 풍요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점이 위기의식의 근본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경제성장이 아니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우리. 도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멈출 것인가? 이 지고의 경제성장이 멈춘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살 것인가?’ 이 책 ‘성장의 광기’는 바로 이러한 인류의 200년 역사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성장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성장이라는 실체가 과언 무엇인지 등을 단호한 목소리로 어쩜 인정하기 싫은 마음을 파고들며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무엇을 담보하고자 하는 걸음이었을까? 빈곤의 탈출, 생명의 연장, 물질적 풍요 등 이 모든 것은 욕망의 실현이라는 매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욕망의 근저에는 ‘행복의 추구’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성장도 바로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되면서 주인이 되는 인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성장의 결과를 인간 행복추구와 밀접하게 연결해 주는 것이 ‘복지’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 적합한 복지는 자연을 의식하면서 살고, 감각을 이용하고, 자기 자신과 이웃, 아이들, 가족,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다...... 자연, 예술, 아름다움, 배우는 것에서 얻는 기쁨이다.’ 이는 저자가 주장하는 복지정책의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빵이다. 하지만, 빵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성장’이라는 괴물을 키워오는 동안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는 지구라는 터전 위에서 가능했다. 이제 그렇게 이룬 성장의 열매를 인간과 자연에게 돌려주어 함께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 시급함을 제기하고 있다. 그 방도의 중심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
|
경제성장과 물질적 만족이 행복과 직결된다는 시각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성장이란 과연 무엇이고, 왜 우리는 그토록 성장에 몸달아 하는 것인지, 성장에 집착하는 원인과 이유를 묻는 것에서 부터 책은 출발한다. 일부에서는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인간의 채워지지않는 욕구에 있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돈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 라고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
|
마인하르트 미겔(Meinhard Miegel)의 ‘성장의 광기‘는 세계 경제 위기가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뒤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책의 원제인 'Wohlstand ohne wachstum'는 안락함과 유복함이 배제된 성장을 의미한다. 나는 이 책을, 크리시스(Krisis)라는 독일 연구팀의 ‘노동을 거부하라’,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등의 책들과 함께 읽었다. ‘노동을 거부하라’에 의하면 노동이라는 범주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상품 생산사회가 만든 특정한 행위양식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을 통해 상공인 계급(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노동은 신성하다’는 믿음이 부여되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이 위선적인 것은 필요하면 노동자들을 쓰다가 불필요하면 무원칙하게 해고하는 사용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겔은 “성장을 위한 성장, 노동을 위한 노동, 성장과 노동, 이들은 심지어 복지를 파괴하고 삶의 기초를 뒤흔든다“(43 페이지)는 말을 한다. ‘성장의 광기’의 요지는 세계 경제의 반복되는 위기는 성장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과도한 낙관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경제 위기는 빚을 얻어 너무도 호사스러운 잔치를 벌이면서도 누구도 비용 지불을 걱정하지 않은 과도하게 낙관적인 파티에 비유될 수 있다. 저자도 말했듯 소득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만족감과 행복감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소득이 늘더라도 행복감이 별로 커지지 않는 이 지점을 결별점(decoupling point)이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리고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질주“(96 페이지)하는 것이다. 미겔은 이런 말을 들려준다. “기존의 자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볼 때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물질적 복지와 성장을 이뤄냈다. 지구상의 많은 곳은 여전히 가난한데 일찍 산업화가 된 국가의 국민은 오늘날 너무나 많은 복지와 성장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117 페이지) 경제학자 故 정운영 박사는 “세계의 최고 부자 84명의 재산은 12억 중국인의 국내 총생산과 같다는데, 아무래도 내게는 중국 인민의 게으름보다 세계 부자의 탐욕이 한 층 더 죄가 무거울 듯하다.”는 말을 했다.(2006년 간행 ‘자본주의 경제산책’ 146 페이지) ‘성장의 광기’는 사회학 및 철학적 소양(素養)이 빛나는 책이다. 끝과 시작이라는 장에서 저자는 신앙심의 소멸 즉 정신적 황폐함을 산업혁명의 전제조건으로 규정하며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물질적 안락과 행복을 광적으로 추구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폈다. 나는 정신적 공허감이 사람들을 과시적으로 소비를 추구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신앙심의 소멸을 말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정신적 공허감을 말한 나의 문제의식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경제성장은 국가와 정파, 개인의 성향에 관계없이 神적 숭배 대상이 된 듯 하다. 아직도 다수의 사람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자원 고갈 및 식량 부족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 의지해 현재의 무한 생산, 무한 소비 체제가 언제고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성장의 덫에 사로잡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맹목과 다르지 않다. 결산하기라는 장에서 저자는 식량 및 자원 문제에서부터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질 짐까지 인류가 직면한 우울한 현실과 어두운 미래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피터 싱어(실천윤리학자)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에서 이성만으로는 자기 이익과 윤리의 충돌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의 일부분이기에 과감한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현 체제에서 윤리적 결단을 하는 것은 근원적인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위기의 실상을 바르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회학자이며 철학자인 미겔은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장을 통해 드러난 저자의 논의는 혁명적이다. 저자에 의하면 부자들의 재산은 거의 대부분 쪼개거나 나눌 수 없는 형태 즉 일자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부자들에게서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또한 재화와 용역을 더 많이 가지려는 메커니즘은 물질적 복지가 정체되거나 줄어들면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기에 폐기되어야 한다. 좋은 시대는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식해 개발도상국의 민족들과 후세들이 공평한 기회 아니면 단 하나의 기회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있는 힘을 다해 애를 쓰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 저자는 노동집약적인 농업과 산업이라는 대안을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 유용한 사람으로 발전하고 점점 물건을 쉽게 구입하고 버리는 기질을 버리게 될 것이라 말한다. 또한 복지는 두둑한 통장이나 재화 혹은 여행이 아니라 제 3자의 애정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과의 연계와 배려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업 노동시간과 비생업 노동시간을 교차시키면 생산성과 소득은 내려가지만 창의력과 동기, 삶의 질과 삶에 대한 기쁨, 비물질적인 복지는 올라간다고 말한다. 생업 노동시간과 비생업 노동시간을 교차시키는 것은 두세 가지 생계 능력을 함께 갖추는 것이며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은 이렇게 요약 가능하다. 환경에 최소한의 부담을 주어야 하기에 원료와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참여해야 하며 부자들에게서 돈을 나눠갖기는 불가능하기에 나누는 식의 복지를 지양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하며 생업과 함께 하는 간호, 안정적인 인간관계 등의 비생업 노동 또는 비물질적 노동을 하면 (비재화적인) 복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생산성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예속적인 생업 활동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장지상주의자와 복지를 중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 의미와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새롭게 짜자고 주장한 ‘크리시스라는 독일의 노동 연구 그룹, 물질만의 풍요가 아니라 참다운 의미의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 정의에 바탕을 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전제로 제로성장을 추구하자는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 등과 모두 차별점을 보이는 견해이다. 저자는 자신이 주장한 내용이 현재 시행되고 있으며 확대될 것이라 말한다. 사회법과 조세법의 철저한 수정, 보완은 저자가 내세운 보조수단이다. 저자의 주장은 어떤 경제학자, 어떤 사회학자의 의견보다 더 근원적이고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사회복지국가라는 유형의 기초는 경제적 팽창(243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성장과 복지를 배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무색하게 한다. 저자의 논조는 낙관적이다. 하지만 이는 맹목적 낙관에 근거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 희망하는 사람의 낙관이며 절제및 소박함과 결합한 낙관이기에 이성적인 동시에 이상적이다.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은 세금과 공과금을 통해서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공동체의 물질적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가 얼마나 이상적인 동시에 현실적인지를 알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이제 충분히 때가 되었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물질적 복지 증진에 대해 냉정하고도 계몽된 자세를 취하고 지금까지 비이성적으로 열광했던 태도를 끝낼 때“(289 페이지)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성장지상주의의 결과 감성과 사회적 능력을 무시하거나 필요한 만큼 발전시켜 주지 못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반갑다. 진정한 복지, 특히 사람에게 적합한 복지는 자연, 예술, 아름다움, 배우는 것에서 얻는 기쁨이라는 저자의 말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물론 나는 이 대목만을 따로 떼어내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훈계하는 편향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려면 성장지상주의자들 다음에 적어도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저자는 물론 적합한 집, 주민들이 가고 싶어하는 길과 광장이 있는 도시, 똑똑한 교통체계, 가끔씩 즐기는 고요함, 감각의 향유, 스스로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도 언급했다. 가슴 뿌듯한 책을 읽게 해준 저자, 출판사, 번역가 등의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며 내게 참 좋은 책을 선물해 읽게 해준 고마운 분께 큰 감사를 드린다. |
|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조는 단순했다. ‘성장이 곧 복지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마인하르트 미겔은 현대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물질적 복지라는 땅이 무엇을 대가로 얻은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성장의 이면에는 인간의 팽창 충동 덕분에 처참히 유린당한 자연,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욕심으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된 가난한 사람들, 서로 돌보는 기쁨과 안온함을 외면한 공동체가 있었다. 경제성장과 물질적 복지에 의해 좌우되는 공동체는 불안정하다. 성장 지상주의는 굶주린 자들에게 순간적으로 환영을 받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온전한 삶의 기초와 탄탄한 물질적/비물질적 복지를 당장의 먹을 것과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이제 물질적 팽창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그 빈자리는 문화적 발전, 서로 돌보기 등이 채워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
|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하게 다가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하지만 팽창충동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따른 경제성장이라는 낙관론에 의해, 이러한 견해들은 대부분 무시되거나 필요 이상의 극단적인 과잉반응으로 간주되었고, 이것은 아직까지도 하나의 변치 않는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듯하다. 최근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맞기 전까지, 우리는 불과 30여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산업화와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활의 편리는 물론,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은 사치가 덕목이라며 과잉소비를 외쳤고, 정치가들 역시 혹시 모를 마이너스 성장에 대비하기는커녕 고성장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을 해왔으며, 이에 편승한 일반 대중들은 물질적 복지를 최대한 누리고 사회적으로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무분별한 소비와 투자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경제 성장의 현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를 거쳐, 세계 경제 전체의 위기로 악화 일로로 치달으면서,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경제성장은 표면적인 내용과는 달리, 거품으로 확인되었고 이후 세계 경제는 급속히 냉랭하게 식어갔다. 경제 위기를 맞이한 세계 각국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퍼 부으며 경제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지금까지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
|
주식에 한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몇년전 한국 주식시장은 끝이 없이 계속 성장할 줄 알았다. 국가나 사회가 성장을 하지 않는다는 건 한국의 급성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획득이나 습득에 대한 욕심은 점점 커져가는 것 같고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성장하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