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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성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성장의 광기』
"사람들은 저성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성장의 광기』" 내용보기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에베레스트 산을 금으로 바꾸어도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경험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재화가 필요할까? 또 그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얼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여기에 가장 명확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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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에베레스트 산을 금으로 바꾸어도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경험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재화가 필요할까? 또 그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얼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여기에 가장 명확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일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끼면 된다. 반대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적당히 일하고 욕심을 줄이면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음식을 맛으로 먹는 것에 반대한 사람이었는데 옥수수 빵만 먹고도 평생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보다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데 삶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음식의 맛에 대해 불평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했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책을 읽고 실험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느라 바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은 정말 대단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에 대한 해법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즉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은 존경할 만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였다. 이 말은 길게 보면 사실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대부분의 인류의 역사에서는 인류의 생산력은 정말 더딘 속도로 발전했고 어떤 시기에는 후퇴하기도 했다. 약간의 기후변화로도 대기근이 찾아 왔고 병충해의 습격 때문에 생산력은 급격히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정책에 따라 무역의 정도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 일을 쉼 없이 반복했다. 그 긴 역사 동안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을 각각의 작은 공동체 내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그래서 필요한 물품을 대부분 스스로 만들 줄 알았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부모에게 전수받고 스스로 깨달을 줄 알고 책임감 또한 강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테일러리즘 때문에 바뀌었다. 분업이란 마술은 인간에게 엄청난 수준의 생산력의 성장을 약속했고 이제 성장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이제 인류는 수천 수만 년 동안의 저성장의 관성을 버리고 고성장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생산력의 급격한 발전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비단 경기변동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슘페터가 말한 몇 번의 이노베이션 이후에는 생산력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20세기 초의 자동차 혁명은 전 세계의 경제 정치 지형을 바꾸는 일이었고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스마트폰 혁명은 감성적 측면에서는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비단 그런 일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모든 산업의 발전은 자본의 집적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상승은 바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이유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상승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가 되었다.

 

지금의 세계는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있거나 중간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 모두 경제성장이 국가 운영의 최고 목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나 절대빈곤을 걱정해야 할 국가들이 경제성장에 목을 매는 이유는 명확하다. 성장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빈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에서 저성장은 휴머니즘에 반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는 국가들에서의 경제성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들의 소득이 는다고 해서 행복도가 비례해서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파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면 뒤처지게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제시하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다. 결국 정치인들은 불가능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약속하고 사람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투표하게 되며 중앙은행에서는 적정규모를 넘어선 돈을 찍어내고 그 엄청나게 찍어 낸 돈 때문에 물가는 오르게 되며 세상 모든 것에는 거품이 끼게 된다. 그런 거품 속에서 절약하고 검소한 삶은 오히려 악덕이 된다. 세상에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없다. 단지 소비주의만 남을 뿐이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시한 해법 밖에 답이 없다. 가계에서는 소득 수준을 생각하며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는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게 만드는 정책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맛없는 옥수수 빵을 참아낼 인내력이 없다. 보다 큰 자동차를 사야 하며 신상품이 아닌 철 지난 옷을 입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넓이뿐만 아니라 사는 지역도 중요하다. 우리의 가계 부채가 900조를 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해답은 간단하다. 복잡하게 생각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 실행으로 옮기는 방법은 간단한 해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 된다. 단지 욕심이란 두 글자가 이 과정을 방해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에서조차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실천하기란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민도가 독일보다 낮은 우리나라는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미리 알고 배우며 다가올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힘을 내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특징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놀라운 능력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스타일이다. 우리가 지금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우리나라는 언제가 돼서야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탐욕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인가?



m*****a 2011.08.27. 신고 공감 13 댓글 23
리뷰 총점 종이책
왜 경제가 성장할수록 삶은 피폐해지는가.
"왜 경제가 성장할수록 삶은 피폐해지는가." 내용보기
21세기에 위기가 왔다. 이전에 우리가 겪었던 금융위기, 세계 경제위기보다 더 크고 차원이 다른 위기가 도래할 것을  독일에서 가장 탁월한 사회학자인 마이하르트 미겔이 이 책 <성장의 광기>에서 예견하고 있다. 우리에게 찾아온 재앙의 시작을 보여주는 사례는 여러가지가 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의 온난화, 환경오염, 자원의 고갈 등등 ...게다가 경제성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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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위기가 왔다. 이전에 우리가 겪었던 금융위기, 세계 경제위기보다 더 크고 차원이 다른 위기가 도래할 것을  독일에서 가장 탁월한 사회학자인 마이하르트 미겔이 이 책 <성장의 광기>에서 예견하고 있다. 우리에게 찾아온 재앙의 시작을 보여주는 사례는 여러가지가 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의 온난화, 환경오염, 자원의 고갈 등등 ...게다가 경제성장을 외치던 선진국들은 줄어든 재산과 부동산 가치 폭락, 주가 하락, 게다가 청소년 실업률까지.. 특히 우리나라는 서구사회가 두세기동안 이루어 낸 것을 30년만에 이루어 낸 자랑스런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우리의 삶은 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는 걸까? 자살률 세계 1위 , 교통사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만이 성장한 것일까?   주식 또한 처음으로 2000P를 갱신했음에도 왜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더 피폐해졌을까. 줄어든 재산과 부동산 가치폭락, 주식하락, 무엇보다 실업문제는 또 어떠한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마인하르트는 인류 태초의 모습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성장이란 이름으로 변화해온 발자취를 사회학적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이 시원시원해 읽다 보면 그의 명쾌하고도 뛰어난 진단과 대안에 성장과 복지라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리라 생각된다. 

 

<성장의 광기>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인하르트는 성장이라는 욕구가 인류최초의 모든 생명체의 기본 욕구인 팽창충동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팽창충동에 의한 욕구는 결국 자연이 정해 놓은 한계를 극복하기에 이르렀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간은  문화의 도움으로 불을 사용하고 ,우물을 팠고, 농지를 넓힐줄 알았으며 동식물을 기르고 바퀴를 발명했다. 이어 수억 년 동안 저장되어 있던 가스,석유,석탄을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팽창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인구의 증가때문이다.

 

팽창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는 자연이 보여준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팽창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뿐만이 아니라 수정과 산맥, 심지어 우주조차 팽창에 관여한다. 모든 것이 성장하지만, 언젠가 모든 것은 성장을 멈춘다. 그러고 나서 퇴화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사라진다. 모든 팽창에는 수축이 따르고, 이는 새롭게 팽창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인간은 공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공기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우리가 마시는 공기에는 연기,그을음,먼지,에어로졸,증기와 냄새나는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고 맛도 없으며 냄새도 나지 않는 가스를 공기중에 가득 채웠다. 바로 이산화탄소이다.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지표면 온도를 상승시켜 다수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이런 문제들은 특히 사람들을 위협한다. 첫째,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상승과 둘째 토네이도, 가뭄,홍수나 산불처럼 극단적인 재해를, 세째는 물부족과 식량부족의 위험도 커졌다. 네째는 생태계가 훼손당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동식물의 멸종을 가지고 왔다.

 

대기오염과 이산화탄소 누적과 같은 변화에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어마어마 하다. 이것은 최근 60년동안 이뤄낸 경제성장과 물질적 복지 증진에 대한 대가이며 지금까지 지불하지 않은 계산서라 할 수 있다.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마시며 기후 충격으로 인해 존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인류는 상당한 희생을 치뤄야만 할 것이다.

 

인류는 인생의 절반을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망가뜨리고 , 나머지 절반을 건강을 다시 찾기 위해 바치는 남자와 비슷할지 모른다.

 

이어 미성숙한 사회, 의지할 데 없는 사회, 흥분제를 먹은 사회. 과부하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현실의 사회의 모습을 ...그것은 바로 엄청난 빚더미 위에 복지를 건설한 것이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성장에 대한 논쟁이 본래 다루는 대상은 성장이 아니라 복지라는 사실 말이다. 바로 성장이란 덫에 걸려 복지라는 거짓된 속임수에 속아 해체된 가족, 스트레스, 환경  훼손을 막는 데 드는 비용 모두를 성장의 일부로 보았고 이로써 복지가 증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선진국들은 더이상 복지를 향상시키는 경제성장을 하지 않았으며 전승된 사회모델, 경제 모델, 그리고 삶의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 산더미같은 재화 뒤에 숨거나 모든 문제를 돈으로 떼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 결정해야 하고 미래의 복지를 어떻게 창출해낼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21세기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제는 성장할 것이고 또 해야 한다. 성장은 삶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성장하는 성장은 많은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장이 자연의 한계에 도전하듯 빠르게 성장하는 성장이 많은 부작용을 낳았듯이 앞으로의 성장은 자연적인 삶의 기초를 해치지 않는 성장만이 좋은 것임을 말한다. 다가오는 21세기의 위기 앞에 성장의 광기를 이제는 멈추라고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특히 사람에게 적합한 복지란 점점 더 많은 재화를 추구하느라 무시된 사람의 정신적,문화적 차원을 다시 생생하게 살리는 것임을, 이를 다시 인식하는 것이 이 세기에 바뀌어야 할 위대한 패러다임일 것이다.

 

우리에게 현재 닥쳐온 금융위기,세계 경제위기속에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의 온난화, 환경오염, 자원의 고갈 ,청년실업률에 직면해 있는 작금의 시대에 정치인들이 외치는 복지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겔의 시대 진단과 대안은 우리나라에도 무척 시의적절한 대안이라고 봐야 한다. 성장의 덫에 걸려버린 복지라는 이름이 현재  선진국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기도 한 이 책은  아울러 정치인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1.08.17.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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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한계에서 포퓰리즘성 복지를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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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시대에 맞고 있는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상문박사와 데이비드 올슨교수의 <컨버저노믹스; http://blog.yes24.com/document/4971758> 이진우박사와 이은주박사의 <제5의 물결, 녹색인간; http://blog.yes24.com/document/5003675>에 이어 마인하르트 미겔박사의 <성장의 광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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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시대에 맞고 있는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상문박사와 데이비드 올슨교수의 <컨버저노믹스; http://blog.yes24.com/document/4971758> 이진우박사와 이은주박사의 <제5의 물결, 녹색인간; http://blog.yes24.com/document/5003675>에 이어 마인하르트 미겔박사의 <성장의 광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들 책은 지구적으로 당면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그리고 경제위기 등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화혁명을 거치는 동안 인류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도약을 거듭해왔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지구내 자원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인류는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기는 했지만, 정보화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아직 이를 극복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보화혁명의 후유증이랄 수도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금융산업의 불안정으로 야기된 경제위기가 전세계로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컨버저노믹스>에서 이상문박사와 데이비드 올슨교수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각 분야에서 발전시킨 성과들을 서로 융합하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인류는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바로 제4의 물결이 될 융합혁명을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이진우박사와 이은주박사는 경제위기와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 나보다 우리를 먼저 고려하는 영성을 회복하자는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마인하르트 미겔박사의 <성장의 광기>는 ‘성장의 광기’라는 제목을 단 1장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추구해온 성장 우선주의가 드디어 종말을 맞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끝과 시작’이라는 2장에서는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의 문제와 역시 무한정으로 캐낼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해온 지구자원들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추구론자들이 숫자놀음으로 통하여 감춰온 진실을 어느날 갑자기 알게되면서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산하기’라는 제목의 3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한계 다음의 세상에 대한 대책마련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성장의 한계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경제가 성장할수록 삶은 피폐해지는가’라는 부제 뿐 아니라 <성장의 광기>라고 한 제목은 저자가 책에 담은 생각의 일부만을 발췌한 것 아니냐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Exit: Wohlstand ohne Wachstum>입니다. 독일어공부를 그만둔 지가 오래되어 제대로 뜻을 새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성장없는 부에서 탈출하기’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미친 듯이 성장에만 몰입하여 달려온 서구 산업사회가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이고 이를 넘어설 묘책은 없을까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읽혀지는데, 책을 펴기도 전에 이제 갈 곳이 없다는 식의 좌절감에 휩싸이게 하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장에 광적으로 매달려온 책임을 정책입안자에게 떠넘기고 민초들은 책임이 없는 듯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복지추구정책의 달콤한 사탕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거센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달려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 확대되어온 복지정책의 단맛에 너무 일찍 길들여져 복지가 땀의 대가라는 것을 망각하게 된 대가를 조만간 치러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겔박사 역시 성장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해결방안을 논하는 장에서 “정치는 시민에게, 앞으로는 지금가지 익숙했던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과제가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정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게 전달해야 한다.(245쪽)”고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일자리창출에 관한 부분에서도 “시민들이 직접 형체도 없는 욕구를 창출해달라는 뜻이다.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는 일자리를 세금으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236쪽)”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리뷰에서 “‘성장, 그 무엇보다 성장!’을 외친 결과이다. 그런데도 경제성장이 아니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우리. 도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멈출 것인가? 이 지고至高의 경제성장이 멈춘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살 것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결론에서 “경제는 성장할 것이고 또 해야 한다. 성장은 삶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장은 그것이 실행하기 전에 안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면 사람들은 실수를 하며, 자신의 복지를 증진시키고자 할 때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290쪽)”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복지는 더 이상 인구수와 재화의 양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민족의 문화가 만들어낸다.”는 저자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y*****2 2011.08.25.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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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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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앞 만보고 달린다면 멈출 수 있을까? 인류의 지난 200년 역사는 뒤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멈추지 않은 성장만이 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은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유럽사회에서 시작했지만 어느덧 세계 곳곳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덕분에 인류는 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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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앞 만보고 달린다면 멈출 수 있을까? 인류의 지난 200년 역사는 뒤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멈추지 않은 성장만이 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은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유럽사회에서 시작했지만 어느덧 세계 곳곳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덕분에 인류는 역사상 누려보지 못한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성장에 대한 기대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구자원의 유한성, 성장 위주의 정책이 가져온 한계와 더불어 성장 이후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가져온 결과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소외, 부의 불균등을 비롯한 인간성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을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멈출 줄 모르던 성장의 흐름은 속도가 느려지고 때론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가 하면 한 국가의 정체가 이웃국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로인해 세계경제가 파탄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의 시작은 성장을 주도 했던 경제적으로 선진 국가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누리고 있었던 물질적 풍요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점이 위기의식의 근본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경제성장이 아니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우리. 도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멈출 것인가? 이 지고의 경제성장이 멈춘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살 것인가?’

 

이 책 ‘성장의 광기’는 바로 이러한 인류의 200년 역사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성장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성장이라는 실체가 과언 무엇인지 등을 단호한 목소리로 어쩜 인정하기 싫은 마음을 파고들며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무엇을 담보하고자 하는 걸음이었을까? 빈곤의 탈출, 생명의 연장, 물질적 풍요 등 이 모든 것은 욕망의 실현이라는 매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욕망의 근저에는 ‘행복의 추구’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성장도 바로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되면서 주인이 되는 인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성장의 결과를 인간 행복추구와 밀접하게 연결해 주는 것이 ‘복지’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 적합한 복지는 자연을 의식하면서 살고, 감각을 이용하고, 자기 자신과 이웃, 아이들, 가족,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다...... 자연, 예술, 아름다움, 배우는 것에서 얻는 기쁨이다.’ 이는 저자가 주장하는 복지정책의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빵이다. 하지만, 빵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성장’이라는 괴물을 키워오는 동안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는 지구라는 터전 위에서 가능했다. 이제 그렇게 이룬 성장의 열매를 인간과 자연에게 돌려주어 함께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 시급함을 제기하고 있다. 그 방도의 중심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m*****8 2011.08.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한한 소득이 있는 세상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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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물질적 만족이 행복과 직결된다는 시각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성장이란 과연 무엇이고, 왜 우리는 그토록 성장에 몸달아 하는 것인지, 성장에 집착하는 원인과 이유를 묻는 것에서 부터 책은 출발한다. 일부에서는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인간의 채워지지않는 욕구에 있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돈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 라고도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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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물질적 만족이 행복과 직결된다는 시각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성장이란 과연 무엇이고, 왜 우리는 그토록 성장에 몸달아 하는 것인지, 성장에 집착하는 원인과 이유를 묻는 것에서 부터 책은 출발한다. 일부에서는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인간의 채워지지않는 욕구에 있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돈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 라고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저자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사회적 지위, 즉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는데, 누구에게나 돌아갈 만큼 충분하지 않은 사회적 지위를 사람들은 결국 물질로써 채우고자 하기 때문에 끝없는 성장을 갈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개념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타인을 위해 배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교양과 함께 타인을 즐겁게 하는 재주를 겸비한 사람을 더 높게 인정할 때 물질로서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려는 전쟁을 끝낼 수 있지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능하게 된다.

과거, 인간과 동물의 수동적인 힘을 이용해 농사를 짓던 시대가 지나고 자연자원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산업화 사회가 되자 인간은 그로인해 많은 편리함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은 더더욱 많은 만족감을 얻기 위해 생산의 가속화와 대량화를 요구하게 되고, 이에 자국에서 고갈되는 자원을 얻기 위해 서구의 선진사회는 이른바 후진국의 자원을 탐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을 자원전쟁이라고 보는 시각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모든 것이 계속 성장하고 원하면 충분히 얻을 수 있을 듯 보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뻔히 보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후진국의 자원을 착취하고,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면서 이른바 잘사는 나라가 된 이들은 굶주린 아이들의 사진을 근거로 세계 모든 나라가 가난을 극복하고 더이상 굶주리는 이가 없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성장을 요구한다.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자연자원을 더 많이 요구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 매립지를 요구하지 않아야 할 생각은 도저히 하지 않는다. 환경적으로 시대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에 내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최고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기 위해 자국의 성장의 고삐를 약간이라도 늦추자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지구는 전 세계를 선진국의 수준으로 산업화할 만큼의 여력이 없다는 것을 성장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더 나아가 악용하는데까지 인간의 권리라고 확대하게 되었다. 이에 자연은 나날이 피폐해지고 자원은 고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간은 언젠가는 고갈될 자원과 그에따라 멈추게 될 성장 또한 알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 거는 최면으로부터 이 성장의 파티를 멈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마지막이 오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혹은 마지막이 오기전에 인류는 다른 대안을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이런 인류의 낙관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저자는 이러한 도취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경제성장이란 허구이며 속임수라고 일갈한다.

산업사회와 함께 피폐해진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라 그 속의 인간 역시 노예에서 하인으로, 근로자로 예속되어 절반은 노동의 노예로 절반은 소비의 노예가 되었다. 저자는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불리는 유럽인으로, 진정한 복지란 국가가 무조건 적으로 베푸는 재화 서비스가 아니라 개인이 개인의 삶을 처리할 수 있는 자유 속에 있다고 한다. 주체에 의해 통제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내가 원하는 것, 내게 중요한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할 수 있는 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이른바 선진국은 지금까지의 성장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그러기 위해 개개인은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교육에서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교육은 지식과 능력의 전수 뿐만이 아니라, 물질적 복지를 잃어버리더라도 견딜수 있는 힘을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재화가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도 또한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은 허구라는 것은 이미 너무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완벽한 허구랄 수 없는 것이 가난한 나라에서는 일정한 정도의 부가 행복도를 높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 만족으로 인한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일정한 수준까지만 가능하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소득의 증가나, 재산의 증가가 아니라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주도적 인간이 되는 데 있다.

우리사회에도 이미 성장은 필수의 목표가 되었다. 성장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덮는 사회가 되었다. 성장없는 사회, 개인은 더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하고 모자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활동은 즉각 소비로 이해되는 지금까지의 선진국식 경제가 우리의 생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왜 계속 성장해야만 하는 것인지, 현상유지로는 도저히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인지, 수치 따위로 삶의 질이 완벽하게 평가되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가짓수만을 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음식들이 올라오는지에 관심을 갖을 때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국가의 재화서비스에 대한 부분에서 이미 국가로부터 여러가지 사회안전망을 제공받고 복지혜택을 받아온 저자의 의견이 아직 제대로 된 복지체계를 갖추지 않은 우리나라 독자에게 오역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우려를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제도적 복지와 보충적 복지의 수준도 아직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의 경우 제도적으로 학생 모두에게 서비스할 것이냐, 필요한 아이들에게만 보충적으로 할 것이냐가 지금 우리 사회의 커다란 이슈이다. 나는 무상급식은 제도적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서비스 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교육이란 지식의 전수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체계속에서 이미 교육은 시작되고 있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정한 복지는 재화서비스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100% 동감하지만, 기본적인 재화 서비스는 반드시 필요하고, 학생들의 무상급식은 기본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그 속에서 모두가 영양과잉이 되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꼭 필요한 만큼의 영양 만을 주체적으로 섭취하는 사회를 꿈꿔본다.

a*****0 2011.08.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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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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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하르트 미겔(Meinhard Miegel)의 ‘성장의 광기‘는 세계 경제 위기가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뒤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책의 원제인 'Wohlstand ohne wachstum'는 안락함과 유복함이 배제된 성장을 의미한다. 나는 이 책을, 크리시스(Krisis)라는 독일 연구팀의 ‘노동을 거부하라’,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의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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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하르트 미겔(Meinhard Miegel)의 ‘성장의 광기‘는 세계 경제 위기가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뒤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책의 원제인 'Wohlstand ohne wachstum'는 안락함과 유복함이 배제된 성장을 의미한다. 나는 이 책을, 크리시스(Krisis)라는 독일 연구팀의 ‘노동을 거부하라’,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등의 책들과 함께 읽었다.

 

‘노동을 거부하라’에 의하면 노동이라는 범주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상품 생산사회가 만든 특정한 행위양식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을 통해 상공인 계급(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노동은 신성하다’는 믿음이 부여되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이 위선적인 것은 필요하면 노동자들을 쓰다가 불필요하면 무원칙하게 해고하는 사용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겔은 “성장을 위한 성장, 노동을 위한 노동, 성장과 노동, 이들은 심지어 복지를 파괴하고 삶의 기초를 뒤흔든다“(43 페이지)는 말을 한다. ‘성장의 광기’의 요지는 세계 경제의 반복되는 위기는 성장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과도한 낙관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경제 위기는 빚을 얻어 너무도 호사스러운 잔치를 벌이면서도 누구도 비용 지불을 걱정하지 않은 과도하게 낙관적인 파티에 비유될 수 있다.

 

저자도 말했듯 소득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만족감과 행복감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소득이 늘더라도 행복감이 별로 커지지 않는 이 지점을 결별점(decoupling point)이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리고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질주“(96 페이지)하는 것이다. 미겔은 이런 말을 들려준다. “기존의 자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볼 때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물질적 복지와 성장을 이뤄냈다. 지구상의 많은 곳은 여전히 가난한데 일찍 산업화가 된 국가의 국민은 오늘날 너무나 많은 복지와 성장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117 페이지) 경제학자 故 정운영 박사는 “세계의 최고 부자 84명의 재산은 12억 중국인의 국내 총생산과 같다는데, 아무래도 내게는 중국 인민의 게으름보다 세계 부자의 탐욕이 한 층 더 죄가 무거울 듯하다.”는 말을 했다.(2006년 간행 ‘자본주의 경제산책’ 146 페이지)

 

‘성장의 광기’는 사회학 및 철학적 소양(素養)이 빛나는 책이다. 끝과 시작이라는 장에서 저자는 신앙심의 소멸 즉 정신적 황폐함을 산업혁명의 전제조건으로 규정하며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물질적 안락과 행복을 광적으로 추구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폈다. 나는 정신적 공허감이 사람들을 과시적으로 소비를 추구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신앙심의 소멸을 말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정신적 공허감을 말한 나의 문제의식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경제성장은 국가와 정파, 개인의 성향에 관계없이 神적 숭배 대상이 된 듯 하다. 아직도 다수의 사람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자원 고갈 및 식량 부족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 의지해 현재의 무한 생산, 무한 소비 체제가 언제고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성장의 덫에 사로잡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맹목과 다르지 않다. 결산하기라는 장에서 저자는 식량 및 자원 문제에서부터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질 짐까지 인류가 직면한 우울한 현실과 어두운 미래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피터 싱어(실천윤리학자)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에서 이성만으로는 자기 이익과 윤리의 충돌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의 일부분이기에 과감한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현 체제에서 윤리적 결단을 하는 것은 근원적인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위기의 실상을 바르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회학자이며 철학자인 미겔은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장을 통해 드러난 저자의 논의는 혁명적이다.

 

저자에 의하면 부자들의 재산은 거의 대부분 쪼개거나 나눌 수 없는 형태 즉 일자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부자들에게서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또한 재화와 용역을 더 많이 가지려는 메커니즘은 물질적 복지가 정체되거나 줄어들면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기에 폐기되어야 한다. 좋은 시대는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식해 개발도상국의 민족들과 후세들이 공평한 기회 아니면 단 하나의 기회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있는 힘을 다해 애를 쓰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

 

저자는 노동집약적인 농업과 산업이라는 대안을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 유용한 사람으로 발전하고 점점 물건을 쉽게 구입하고 버리는 기질을 버리게 될 것이라 말한다. 또한 복지는 두둑한 통장이나 재화 혹은 여행이 아니라 제 3자의 애정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과의 연계와 배려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업 노동시간과 비생업 노동시간을 교차시키면 생산성과 소득은 내려가지만 창의력과 동기, 삶의 질과 삶에 대한 기쁨, 비물질적인 복지는 올라간다고 말한다.

 

생업 노동시간과 비생업 노동시간을 교차시키는 것은 두세 가지 생계 능력을 함께 갖추는 것이며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은 이렇게 요약 가능하다. 환경에 최소한의 부담을 주어야 하기에 원료와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참여해야 하며 부자들에게서 돈을 나눠갖기는 불가능하기에 나누는 식의 복지를 지양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하며 생업과 함께 하는 간호, 안정적인 인간관계 등의 비생업 노동 또는 비물질적 노동을 하면 (비재화적인) 복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생산성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예속적인 생업 활동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장지상주의자와 복지를 중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 의미와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새롭게 짜자고 주장한 ‘크리시스라는 독일의 노동 연구 그룹, 물질만의 풍요가 아니라 참다운 의미의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 정의에 바탕을 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전제로 제로성장을 추구하자는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 등과 모두 차별점을 보이는 견해이다. 저자는 자신이 주장한 내용이 현재 시행되고 있으며 확대될 것이라 말한다. 사회법과 조세법의 철저한 수정, 보완은 저자가 내세운 보조수단이다.

 

저자의 주장은 어떤 경제학자, 어떤 사회학자의 의견보다 더 근원적이고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사회복지국가라는 유형의 기초는 경제적 팽창(243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성장과 복지를 배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무색하게 한다. 저자의 논조는 낙관적이다. 하지만 이는 맹목적 낙관에 근거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 희망하는 사람의 낙관이며 절제및 소박함과 결합한 낙관이기에 이성적인 동시에 이상적이다.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은 세금과 공과금을 통해서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공동체의 물질적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가 얼마나 이상적인 동시에 현실적인지를 알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이제 충분히 때가 되었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물질적 복지 증진에 대해 냉정하고도 계몽된 자세를 취하고 지금까지 비이성적으로 열광했던 태도를 끝낼 때“(289 페이지)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성장지상주의의 결과 감성과 사회적 능력을 무시하거나 필요한 만큼 발전시켜 주지 못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반갑다. 진정한 복지, 특히 사람에게 적합한 복지는 자연, 예술, 아름다움, 배우는 것에서 얻는 기쁨이라는 저자의 말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물론 나는 이 대목만을 따로 떼어내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훈계하는 편향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려면 성장지상주의자들 다음에 적어도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저자는 물론 적합한 집, 주민들이 가고 싶어하는 길과 광장이 있는 도시, 똑똑한 교통체계, 가끔씩 즐기는 고요함, 감각의 향유, 스스로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도 언급했다. 가슴 뿌듯한 책을 읽게 해준 저자, 출판사, 번역가 등의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며 내게 참 좋은 책을 선물해 읽게 해준 고마운 분께 큰 감사를 드린다.  

http://anuloma01.egloos.com/10767397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document/45387970
http://www.texter.co.kr/04_review/review2_board_view.php?no=10813&book_no=8266&id=texter

m******1 2011.08.2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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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광기] :
"[성장의 광기] :" 내용보기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조는 단순했다. ‘성장이 곧 복지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마인하르트 미겔은 현대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물질적 복지라는 땅이 무엇을 대가로 얻은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성장의 이면에는 인간의 팽창 충동 덕분에 처참히 유린당한 자연,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욕심으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된 가난한 사람들, 서로 돌보는 기쁨과 안온
"[성장의 광기] :" 내용보기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조는 단순했다. ‘성장이 곧 복지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마인하르트 미겔은 현대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물질적 복지라는 땅이 무엇을 대가로 얻은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성장의 이면에는 인간의 팽창 충동 덕분에 처참히 유린당한 자연,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욕심으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된 가난한 사람들, 서로 돌보는 기쁨과 안온함을 외면한 공동체가 있었다.
경제성장과 물질적 복지에 의해 좌우되는 공동체는 불안정하다. 성장 지상주의는 굶주린 자들에게 순간적으로 환영을 받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온전한 삶의 기초와 탄탄한 물질적/비물질적 복지를 당장의 먹을 것과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이제 물질적 팽창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그 빈자리는 문화적 발전, 서로 돌보기 등이 채워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 풍요로움 같은 말은 안정적이고 매력적이다. 이에 반해 진보의 언어는 불안정해 보인다. 성장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에게 ‘경제성장은 끝났다’라는 마인하르트 미겔의 말은 단호하고 과격할망정 편안하거나 의지하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의 ‘돌아온 CEO 하워드 슐츠는 “성장 지상주의는 발암물질이며, 성장은 전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제12차 5개년 개발계획 정부 관리의 업무 실적을 경제성장 지상주의로 평가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발전을 종합평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균열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성장의 미망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세계관을 상처 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역할이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에 기대 살아가야 할까? 마인하르트 미겔의 대답은 이러하다. 서구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누려온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시대는 곧 끝난다. 그러나 진부한 수사이기는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기는커녕 인간성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장의 미망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능성과 욕망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가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고 하는가? 욕망은 채울 수도, 과도하게 채울 수도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원을 현명하게 이용하고 환경과 자연을 존중한다면 말이다.
앞으로 경제성장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 우리를 위로해줄 것은 정신적인 복지의 회복뿐이다.

(작성중입니다 ^^)

j******m 201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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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종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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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하게 다가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하지만 팽창충동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따른 경제성장이라는 낙관론에 의해, 이러한 견해들은 대부분 무시되거나 필요 이상의 극단적인 과잉반응으로 간주되었고, 이것은 아직까지도 하나의 변치 않는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듯하다. 최근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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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하게 다가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하지만 팽창충동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따른 경제성장이라는 낙관론에 의해, 이러한 견해들은 대부분 무시되거나 필요 이상의 극단적인 과잉반응으로 간주되었고, 이것은 아직까지도 하나의 변치 않는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듯하다. 최근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맞기 전까지, 우리는 불과 30여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산업화와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활의 편리는 물론,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은 사치가 덕목이라며 과잉소비를 외쳤고, 정치가들 역시 혹시 모를 마이너스 성장에 대비하기는커녕 고성장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을 해왔으며, 이에 편승한 일반 대중들은 물질적 복지를 최대한 누리고 사회적으로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무분별한 소비와 투자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경제 성장의 현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를 거쳐, 세계 경제 전체의 위기로 악화 일로로 치달으면서,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경제성장은 표면적인 내용과는 달리, 거품으로 확인되었고 이후 세계 경제는 급속히 냉랭하게 식어갔다. 경제 위기를 맞이한 세계 각국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퍼 부으며 경제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지금까지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위기에 빠진 오늘 우리의 경제 현실을 시급히 타개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이데올로기로 인식되고 있는, 그리하여 마치 광기로까지 비춰지는 외형적 성장의 외침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이며, 지금까지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경제 위기가 기업을 흔들고 은행을 휩쓸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위기는 이를 넘어선 국가의 몰락까지를 예견하면서, 기존의 경제 성장 정책에서 벗어난 거대하고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을 구조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패러다임이 창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자주 제시되는 유한한 세상에 무한한 성장이 있을까 하는 철학적이고도 물리학적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는 경제성장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연에서는 모든 가능한 것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듯해 보이지만, 어느 일정한 단계에 다다르게 되면 퇴화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사라진다는 사실에서처럼, 경제 성장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 성장의 바탕에는 바로 자연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그동안 자연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끊임없는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산업화를 겪으면서 인간의 탐욕에 의한 자원의 무자비한 남획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반면에 자연 환경은 크게 훼손당했으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됨으로서, 이제는 인류 생존의 안위까지를 걱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대기오염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기후 이상을 불러왔고, 산업쓰레기는 물과 토양을 황폐화시켰으며, 자원의 고갈은 결국 에너지 부족을 초래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인간성 상실과 같은 가치 혼란이 생겨났고, 이는 결국 미성숙하고 허약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해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1950년에 비해 1인당 다섯 배나 더 많이 물건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러나 복지를 포함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당시와 비교해 다섯 배 늘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장에 집중함으로서 우리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입거나 잃어버린 것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음에 그는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경제성장에 크게 위해 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몇 가지 방안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먼저 성장을 통한 단순한 물질적 복지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삶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도한 소비방식과 조장을 멈추고, 물질적인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으며 정신적 영역에서의 가치가 대우받는 사회로 만드는데 있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리 인식의 틀을 변화시켜야 하며, 자연과의 공생을 모색하고, 노력하지 않고 얻은 재산에 대해서는 공평하고 정당한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가능하게 하고 활발하게 촉진해 가기 위해서는, 공공정신이 바탕이 되어 연대의식을 갖고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회 참여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뒷받침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집중해왔던 성장의 주요 문제의 원인은, 복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지 않고 물질적인 형태로만 관리해왔기에, 상대적으로 정신적 가난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한 바와 같이, 성장이라는 관점을 단순히 경제라는 측면에서만 이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능력을 고려한 총체적인 시각에서 그 균형을 맞추는데 노력해야 하며, 특히 인간에게 있어 성장의 의미라는 것이 더 많은 재화를 추구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닌, 정신적 문화적 차원으로 한 단계 높이 승화시켜 가야 한다는 그의 견해에 대해, 독자들이 한번 깊이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p*******3 2011.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성장의 허구에 대한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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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광기는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그러니까 기존 자원을 이용하면 무한한 시간동안 제한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낙관론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서두 및 1장에서 지속적으로 자연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성장을 추구해왔던 상황과 이의 허구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2장에서는 이러한 기존 성장 방식의 문제점, 그리고 3장에서는 이로인해 우리가 직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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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광기는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그러니까 기존 자원을 이용하면 무한한 시간동안 제한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낙관론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서두 및 1장에서 지속적으로 자연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성장을 추구해왔던 상황과 이의 허구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2장에서는 이러한 기존 성장 방식의 문제점, 그리고 3장에서는 이로인해 우리가 직면하게 된,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직면하게 될 상황의 위험함을 주장한다. 에너지문제, 환경문제, 그리고 다양한 인간문제들이 그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류가 미래의 생산력을 고려할 경우 하루동안 소비해야 하는 음식은 인도인의 평균 식사량에 불과하며, 미래에 대두할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아 문제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많은 상품들이 과다 생산되며 제대로 비축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버려지고 있다는 점이 저자가 주장하는 현대인들이 경계해야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대한 비관론은 멜서스의 인구론,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등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제기되어 온 게 사실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러한 비관론에도 불과하고 나름대로 위기를 잘 극복해왔지만(물론 엔트로피는 이러한 상황 자체도 극복이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전환시켜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비관론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차단해버렸지만..)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그리고 그 몇 년뒤(즉, 불과 2,3주전) 다시 발발한 최근의 금융 위기는 다수에게 이러한 비관론 제기가 이른 시기에 제기된 것일 뿐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불안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빚을 기반으로 거품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허구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건 비단 저자뿐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는데, 몇 년전부터 시리즈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시대정신(Zeitgeist) 역시  저자의 입장처럼 인류가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비관론들 역시 다양한 부분에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맬서스의 인구론이 현재 지나치게 과장된 우려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성장의 광기가 제기하는 비관론 역시 일면 과장된 측면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또 저자가 인식하고 있는 문제상황에 대해서도 다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이미, 경제성장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 및 전문가들은 충분히 동의하는 입장이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낙관론에 대한 다소 극단적인 느낌을 주는 비방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솔로우 모델은 성장의 체감현상을 제시했고, 발전된 모형들 역시 한계생산의 체감 및 생산 저하 현상에 대해서도 다양한 성당모형을 통해 인정한다 볼 수 있다. 즉, 낙관론자들도 어떻게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지, 무한정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그러나 저자는 사람들이 지금껏 자원을 지나치게 낭비해 왔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보호 운동, 아껴쓰기 운동 등에 동참하고 경제위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보건데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멈출수가 없기에' 자원이라는 공유재를 놓고서는 현상의 위험성을 이미 충분히 알면서도 과점형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생각할 수 있다. 

즉, 저자의 견해처럼 실은 사람들은 개별적으로는 우둔하지는 않으나 그들은 사회적으로 우둔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소비하는 것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현상을 바꾸는 게 어렵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일경우 현상은 바뀔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소비를 줄이는 편이 나만 소비하는 걸 줄이는 것 보다 훨씬 낫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전략을 취할 경우 나는 무임승차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거의 모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게임보수 역시 알기 때문에 스스로 먼저 행동하지 않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리고 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취할 즈음이 되어야 아마도 이들은 모두함께 거의 동시에 행동에 변화를 꾀할 것이다.

요는 문제는 사람들의 지나친 낙관론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면모로 인한 것인 거다. 이러한 이기적인 개인은 차라리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을 믿고 싶을 것이고, 이들은 모든 걸 이미 알면서도 낙관론을 제기하는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진다. 낙관론을 제기하는 정치인들 역시 자신들이 제시한 낙관론 자체가 완벽히 구현가능한게 아님을 알고, 실은 유권자들도 믿는척하지만 결국은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모습은 비관론을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낙관론을 믿고싶어하는 시간할인율이 매우 높은 개인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 실은 수많은 개인들이 저자가 생각하는 것 처럼 우둔하지 않다는 것 정도를 고려하고 감안해서 저자의 비관론을 받아들이면서 저서를 읽으면 '성장의 광기'는 꽤 읽을만한 책이다. 저자는 상황에 대한 단순 비관론 뿐 아니라 인간 공동체에 대한 변화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가 성장의 문제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복지의 문제를 언급하기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단순한 경제문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훨씬 의미있고 유용한 것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앞으로 필요한 인간형은 '감성적'인 인간형이라고 제시한다. 이웃집 아이를 위해 축구공을 차는 시범을 보여주는 사람, 아픈사람을 돌보기 위해 이해관계 없이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사람.... 이처럼 타인의 감정 및 욕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혼란기에 처한 사회에서 분할되는 군중들을 결집시킬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모든 견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깊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n 201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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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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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에 한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몇년전 한국 주식시장은 끝이 없이 계속 성장할 줄 알았다. 국가나 사회가 성장을 하지 않는다는 건 한국의 급성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획득이나 습득에 대한 욕심은 점점 커져가는 것 같고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성장하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잘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쌀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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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에 한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몇년전 한국 주식시장은 끝이 없이 계속 성장할 줄 알았다. 국가나 사회가 성장을 하지 않는다는 건 한국의 급성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획득이나 습득에 대한 욕심은 점점 커져가는 것 같고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성장하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잘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쌀밥을 먹을 수 있으면 잘 산다고 했었다. 요즘은 가난해도 흰쌀밥은 먹는다. 그럼 밥만 먹어도 모두 행복하고 부자가 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충분히 부를 축적하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더 가지려는 욕심은 끝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욕구 말이다. 모순적이긴 하지만 현실에서의 행복과 성장은 별도인 것 같다. 그리고 행복이나 부의 의미도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로 측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부를 쌓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이 책이 부자에 대한 질책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장의 원리는 부를 축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지도 않고 더 경쟁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주위는 성장을 계속한다. 10년 후 내가 버는 돈으로는 10년전의 삶을 누릴 수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속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 대 국가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성장의 정체에 도달한 그 순간 우리는 후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만치 앞질러간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 국가가 부를 축적하고 있고,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이 훨씬 좋은데도 수많은 돈을 들여 복지정책을 펴고 그 복지 정책은 작년만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모든 것이 성장을 멈춘다면 그 다음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의지할 수 없는 실패의 늪으로 빠지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복지란 수많은 돈을 들여서 이루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저자는 정신적 복지를 외친다. 정신적인 복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위안은 지금 앞만 보며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r*****1 201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