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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북켄드 상반기결산에서 받은 선물입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996577). 앞서 읽은 책들이 소설이란 이유 때문에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가벼운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종호교수님의 날카롭고 명쾌한 비평에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고, 또한 비평의 범위가 단순하게 문학에 머물지 않고 영화면 영화, 미술이면 미술, 건축이면 건축, 문화 전반에 걸쳐 해박한 앎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교수님은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이라는 제목의 1장에서 마치 외국을 드려다 보듯이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문인들의 행적에 대한 비평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친일행위자 명단의 발표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저 역시 당시 있었던 상황들의 물밑에 숨어있는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지금의 시점에서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자료만으로 친일행위를 판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대목을 옮겨봅니다. “친일행위자에 대한 규탄은 당연한 것으로 거기에 원론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매국행위로 작위와 거액의 상여금을 수령한 적극적 원조급과 일제 말기의 피동적 생계형 행위자를 일괄처리하고 규탄하는 것은 형평성을 잃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식민지체제에서 초기의 반일 실천자가 친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엄격히 말해서 국내 잔류 인구치고 완전히 친일행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도 문제이다. (32쪽)” 유교수님은 또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책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부정적인 면을 모두 빼버리고 긍정적은 면만을 인용하여 소개한 재야사학자의 시각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해야 글을 읽는 사람들이 왜곡된 인식을 가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사회에 잠재적 위험요소로 남아 있는 열광적 집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자애본능과 타자증오를 넘어선 냉철한 자기성찰이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52쪽)”는 것입니다. 2장 텍스트의 현장은 본격적인 문학비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만, 교수님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잘 나가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유교수님의 날카로운 비평은 특히 화제작 <노르웨이의 숲>을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다.”고 규정하고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요즈음에는 이런 류의 책을 읽지 않고 있어 어떤 내용인지는 저는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만, 유교수님은 문학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데 ‘사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거나 ‘모든 것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생활신조를 내세우는 화자를 통하여 무라카미의 소설은 ‘약삭빠른 글장수의 책이지 결코 예술가의 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유교수님은 박목월시인과 정지용시인의 표절과 모사에 관한 논쟁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당신이 듣거나 보고 읽어서 알고 있는 자료들을 통하여 명쾌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일부러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명품을 찾아내는 것과 함께 명품을 지키는 것도 비평의 소임이다. 많지 않은 우리의 정전을 지켜야겠다는 뜻도 있지만, 편향된 논평과 평가가 기초적 독해를 선행하는, 극복돼야 할 우리 쪽 오랜 관행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도 없지 않다.(197쪽)”라고 적었습니다. 유교수님은 정지용시인의 <향수>는 “시인이 고향과 조국과 모국어에 바친 최고의 헌사의 하나일 것이다.”라고 극찬하게 된 이유를 조곤조곤 풀어내고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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