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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의 소설은 허드레 대중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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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북켄드 상반기결산에서 받은 선물입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996577). 앞서 읽은 책들이 소설이란 이유 때문에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가벼운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종호교수님의 날카롭고 명쾌한 비평에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고, 또한 비평의 범위가 단순하게 문학에 머물지 않고
"무라카미의 소설은 허드레 대중문학이다" 내용보기

예스24 북켄드 상반기결산에서 받은 선물입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996577). 앞서 읽은 책들이 소설이란 이유 때문에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가벼운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종호교수님의 날카롭고 명쾌한 비평에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고, 또한 비평의 범위가 단순하게 문학에 머물지 않고 영화면 영화, 미술이면 미술, 건축이면 건축, 문화 전반에 걸쳐 해박한 앎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글머리에 두신 ‘과거’라는 시제에 대한 교수님의 시각이 범인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경우의 과거는 저를 둘러싼 사회가 지나온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영국작가 하틀리의 소설 <중매인>의 첫대목에 나오는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는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과거’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정의 가운데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3자의 시각에서 특정 사회의 시간을 종으로 잘라보았을 때, 그 사회의 과거는 현재와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저개발국가를 방문하였을 때, “꼭 우리 60년대 분위기였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의 60년대로 돌아가 본다면 그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리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래서 유교수님은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이라는 제목의 1장에서 마치 외국을 드려다 보듯이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문인들의 행적에 대한 비평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친일행위자 명단의 발표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저 역시 당시 있었던 상황들의 물밑에 숨어있는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지금의 시점에서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자료만으로 친일행위를 판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대목을 옮겨봅니다.

“친일행위자에 대한 규탄은 당연한 것으로 거기에 원론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매국행위로 작위와 거액의 상여금을 수령한 적극적 원조급과 일제 말기의 피동적 생계형 행위자를 일괄처리하고 규탄하는 것은 형평성을 잃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식민지체제에서 초기의 반일 실천자가 친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엄격히 말해서 국내 잔류 인구치고 완전히 친일행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도 문제이다. (32쪽)”

유교수님은 또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책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부정적인 면을 모두 빼버리고 긍정적은 면만을 인용하여 소개한 재야사학자의 시각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해야 글을 읽는 사람들이 왜곡된 인식을 가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사회에 잠재적 위험요소로 남아 있는 열광적 집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자애본능과 타자증오를 넘어선 냉철한 자기성찰이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52쪽)”는 것입니다.

2장 텍스트의 현장은 본격적인 문학비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만, 교수님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잘 나가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유교수님의 날카로운 비평은 특히 화제작 <노르웨이의 숲>을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다.”고 규정하고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요즈음에는 이런 류의 책을 읽지 않고 있어 어떤 내용인지는 저는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만, 유교수님은 문학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데 ‘사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거나 ‘모든 것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생활신조를 내세우는 화자를 통하여 무라카미의 소설은 ‘약삭빠른 글장수의 책이지 결코 예술가의 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유교수님은 박목월시인과 정지용시인의 표절과 모사에 관한 논쟁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당신이 듣거나 보고 읽어서 알고 있는 자료들을 통하여 명쾌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일부러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명품을 찾아내는 것과 함께 명품을 지키는 것도 비평의 소임이다. 많지 않은 우리의 정전을 지켜야겠다는 뜻도 있지만, 편향된 논평과 평가가 기초적 독해를 선행하는, 극복돼야 할 우리 쪽 오랜 관행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도 없지 않다.(197쪽)”라고 적었습니다.

유교수님은 정지용시인의 <향수>는 “시인이 고향과 조국과 모국어에 바친 최고의 헌사의 하나일 것이다.”라고 극찬하게 된 이유를 조곤조곤 풀어내고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유교수님은 또한 일본에서 최근에 새로 번역하여 소개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두 달 사이에 30만권이 팔린 현상에 주목하면서 무라카미만 읽는 것이 아니라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높은 일본문화의 저력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비교가 되겠습니다만, 담배를 끊을 적에 흡연빈도를 줄이는 방식보다는 단번에 끊는 것이 성공률이 높듯이 고전도 우선 읽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속적인 삼류소설이 정신을 갉아먹는 해충이라고 한다면 고전은 쉽지는 않지만 생각을 살찌우는 양식입니다.


그밖에도 어떻게 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에 대한 간단한 팁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읽어가다가 만나는 ‘달큰한’ ‘휘뚜루마뚜루’와 같이 이미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표현을 읽으면서 입가에 작은 미소가 절로 지어지더라는 말씀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유교수님이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 담아낸 비평의 세계를 제대로 적어내지 못한 리뷰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y*****2 2011.09.28. 신고 공감 5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