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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로 놀림받는 대니얼에게 유일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먹을 때뿐이다. 그래서 음식은 그녀의 영원한 단짝 친구였고, 뚱뚱한 그녀를 더욱 뚱뚱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현실에 악순환의 고리였다. 비만캠프, 학교와 집, 모든 생활 자체가 악몽인데 엄마와 아빠는 새로운 시작이라며 전학과 이사를 반복한다.
대니얼은 비난과 조롱과 야유에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에 어떠한 진실도 의심하는 병이 있다. 심지어 엄마와 아빠에게조차 마음이 닫혀있다.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굴욕의 순간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가 당황해 있을 때, 아이만을 생각할 것!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안심시키고, 내 아이는 항상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인식시킬 것! 올곧게 생각하고, 어긋나지 않고, 늘 성공하는 삶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줄 것!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산타나에게 “왜 나일까?” 라는 의문을 갖는다. 진실인척 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을 버리거나 놀림거리로 만들겠거니 라는 자기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현실은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진실과 거짓을 가리지 못하는 오류에 자주 빠지곤 한다. 상대의 마음읽기는 어른이 되어도 정말 힘들다. 하지만 믿자. 믿어달라고 할 땐, 믿어주는 게 속이 편하니까.
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산타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가 낙마로 돌아가시고, 그때 덮친 바위를 산타나의 엄마 에어리얼이 산에서 가져다가 벤치를 깎아 만들었다. 돌로 만든 그 회색 벤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엄마는 산타나의 생일 때마다 벤치에 앉아서 아빠 얘기를 들려준다. 큰 키에 하얀 머리카락과 삐쩍 마른 몸을 가진 산타나. 아빠 얼굴도 모른 채 세상에 태어났지만 엄마의 사랑으로 성장한다. 살고 싶은 산타나와 죽고 싶은 대니얼의 구도로 대비되는 이야기는 종국엔 산타나의 진심어린 다독임과 위로로 인해 대니얼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33개 국가 중 1위로 평균 세 배에 가까운 수치다. 현재 대한민국은 35분마다 1명꼴로, 하루에 약 42명이 자살한다.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고의적 자해인 ‘자살'로 나타났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살시도를 가져다주는지, 왜 죽음이 가장 편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지부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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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남겨진 날들은 앞으로 23일뿐, 그녀는 23일후에는 세상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언제나 시도했지만 늘 실패로 끝나는 자살의 유혹에서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의 단맛을 취하기로 결심하는 그녀였다. 그녀라고 이르기엔 아직 어린 소녀 대일린..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자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
열다섯살인 대일린의 삶에는 행복한 순간보다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태어나지말았어야 할 아이라는 것이 대일린이 바라보는 자기자신의 모습이다. 어떤 이유도 원인도 없다. 그저 그렇게 되어있었다. 뚱뚱하다는것이 원인이었는지 그것조차 확실하지않다. 그저 늘 언제나 대일린은 많은 아이들의 표적이 되어 놀림당하는것이 익숙해있었다. 아니 익숙하다는것은 맞는 표현이 아니다. 견디고 싶지않지만 견뎌야 하는 고통의 무게였을뿐, 아무리 똑같은 일상이라해도 절대로 익숙해지지않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나면 늘 대일린은 엄마와 아빠에게 학교로 보내지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대일린의 고통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못하는 엄마와 아빠는 늘 그렇듯이 말은 사람을 죽이지못한다며 자꾸만 대일린의 등을 떠밀었다. 아무도 그 고통에서 대일린을 구원할수없다면 본인 스스로 그 고통에서 빠져나갈 결심을 하는 대일린은 그렇게 자살에 중독되어 갔다.
대일린은 말을 하지못한다. 여지없이 반복되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성대에 무리가 생겨 지금은 말을 하지못하는 상태. 그저 주위의 소음을 주위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언제나처럼 책을 펴들고 벤치에 앉은 대일린에게 낯선 소년이 말을 건넨다. 조심해야 한다. 교묘한 남자아이들의 장난에 이미 여러번 호된 상처를 입은 대일린은 소년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저 책의 내용에 집중하려고 할 뿐이다. 대일린의 일거수일투족은 엄마와 아빠의 주의에서 벗어나지않는다. 언제이고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는 딸 대일린을 살펴보기위해서 대일린이 검색하는 사이트를 찾아보는것이나 대일린의 분위기를 살피는것은 이제 통과의례가 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하루가 지나고 이제는 대일린이 견뎌야하는 삶도 얼마남지않았다. 그런 대일린에게 어느날 나타난 호지킨병에 걸린 산타나는 살아야하는 이유를 알게한다. 산타나가 그의 엄마에게 삶의 목적이기에 죽고싶지않다는 산타나.. 죽고싶어하는 늘 언제나 죽고싶어하는 대일린에게는 그런 산타나가 부럽다.
폭력은 늘 대일린의 주위에 도사리고 있었다. 걷어차는것은 일상이었고 남학생들의 교묘한 성폭행, 선생들의 무심한 방관 비만캠프에서 일어났던 학대와 폭행 경멸어린 시선, 모든것들이 대일린에게서 삶의 행복보다는 고통만으로 기억될뿐이다. 누구에게도 한번도 사실대로 털어놓을수없던 그 고통들을 대일린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상처들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면 조금씩 상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대일린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에밀리와 산타나..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계정을 삭제하시겠습니까..예.. 예전같으면 다른 아이가 발로 대일린을 찾을경우에 그저 웅크리고 앉아서 울기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 대일린은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한다는것을 안다. 대일린을 걷어찬 아이에게 똑같이 걷어차주고 욕을 하며 사라지는 아이의 등뒤에 똑같은 말을 던질수있게 된 대일린..이제 이전의 대일린라이스는 사라졌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살하기전에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신호를 알아듣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로 이어지지는 않는것이다. 대일린에게 이전에는 아무도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없었지만 산티나가 손을 내밀고 에밀리가 손을 내밀면서 대일린은 자살에 성공하겠다는 유혹을 떨쳐낸다. 아직은 왜소하고 날지못하는 새인 대일린이지만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법이다. 빛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대일린에게서 투지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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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로 쓰나미처럼 '자살'이라는 충동적일 수도 있는 혹은 계획적일 수도 있는 극단적인 판단하에 생명의 귀중함을 내동댕이 치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기만 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때가 되어버렸다.무심코 켠 컴퓨터 화면에 또는 뉴스를 볼라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대문짝만하게 기사화 하는 언론사들의 열띤 경쟁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설령 그들이 공인이였더라도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한순간 꿈처럼 사라진 것인데 어째 그 죽음 앞에서 왈가왈부(曰可曰否) 할 수 있단 말인가.전 세계를 통틀어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가 귀에 못이 박이듯 들어 온 소리인데다 다반사처럼 들려오는 소식에 그저 한숨만 깊어질 뿐이고 이것이 특정대상이 아닌 그 누구라도 경험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유행처럼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는 이 세상이 꽤나 혼탁스럽고 불미스럽기 그지 없다.
왜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라는 당연한 질문을 던지지도 말고 그 어떠한 이유도 묻지도 말자.그 누구의 책임을 묻겠는가 말이다.지금 그 어디에선가 자살을 고민하고 괴로워 하고 있을 그 누군가가 저 멀리 있는 이가 아닌 내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개인적으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물론 일에 따라 깊이의 차이는 있겠고 상황에 따라서도 가변적일게다.헌데 지금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내 기분은 늘 지나치던 길을 걸으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가 보지도 못하고 보려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진정 내게 묻고 싶다.사회의 교만한 강자보다는 겸손한 약자의 모습으로 살리라는 내 의지가 한순간에 꺽이는 찰라였다.이때 백지장(白紙張)처럼 하얗게 겁에 질린 소녀가 한 손으로 가린 눈의 모습이 강하게 자리잡은 채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는다.사회적으로 약자인 소녀 대일린 라이스를 위해 나는 작게라도 내 힘을 다해 끝까지 함께해야만 하겠다는 의지로 마지막 장까지 힘겹게 넘긴 듯 하다.뚱뚱하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그것이 전부인 듯 보일테지만 그것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왜?라고 묻지 말았으면 한다.대일린은 외계인이 아닌 정상적인 감정과 정체성의 혼돈에서 빚어지는 여러갈래의 혼선에서 찢기고 찢기다 갈등에 부딪히다 이내 작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을 뿐인게다.하여 스스로 자구책(自救策) 을 마련한 것이다.그러던 중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자살 사이트를 발견하곤 행동에 옮기고자 한다.생애 마감일은 정확히 23일 뒤다.죽음이 한시라도 절박한 대일린에게 그 시간은 더디고 긴 시간에 불과할 뿐이다.어떻게든 빨리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대일린에게 있어 주변인이 맴돈다.자신을 닮은 듯한 에밀리 그리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아니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산타나는 대일린이 택할 마지막 결론을 알고 있다.'네가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난 죽고 없을거야'가 아닌 '네가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난 너의 곁에 함께 있을거야'가 될게다.아직 서투른 현실세계와의 섞임이 부자연스러울 대일린에게 그들은 더이상 이방인(異邦人)이 아니였음을 오히려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의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에 대해 가슴 벅찰 뿐이다.
어느 누구한테도 다른 사람을 이렇게 심하게 상처 줄 권리는 없다.(30P발췌)가만 생각해 보자.자살은 이젠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책임을 묻고 그에 따른 대책마련이 시급히 체계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예컨대 익명성으로 무장해 인터넷을 통한 악의적인 덧글로 인해 죽고 사는 험악한 시대에 살아가는 외계인들 틈바구니에서 지치고 힘든 영혼들을 공감해 주고 귀 기울여 주고 이해해 주는 상응(相應)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그러한 노력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혹 겉치레만 난무(亂舞)하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봐야 한다.실로 환한 불이 켜진 방에 불이 꺼지면 어둠속을 뚫고 나가긴 힘들겠지만 원래부터 어둠을 뚫고 지나는 사람에겐 그 어둠이 익숙한 법이다.더이상 대일린은 서투르지도 아니하고 안열릴 것은 닫힌 감정 세계에서도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된게다.이를테면 배가 항구에 있어야 가장 안전해 보일 듯 하지만 그것만이 배의 존재는 아니듯이 대일린 역시 숱한 경험 앞에서 부딪히게 되면 부딪히면 그만이고 지킬 수 없을때엔 한 발짝 후퇴하면 그만인 것이다.그 자살을 앞두고 있던 그 찰라의 순간을 자신의 삶과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가벼운 마찰 정도로 생각하고 더 이상 고립이 아닌 소통의 부재를 치유할 수 있는 세상에 서 있기를 바래본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직 더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그러하기에 더한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단 한 사람의 아픔이라도 보담을 줄 아는 긍정적인 의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스치는 그림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가며 상응관계 이루며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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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상을 마감할 시간은 오늘부터 23일 뒤입니다. 준비하겠습니까?
목에는 보호대를 차고, 손목엔 그은 자국 투성이소녀 데일린... 그녀는 어디를 가건 왕따다. 책과 컴퓨터만이 유일한 친구... 몇번의 자살시도가 실패하고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부모님의 감시에 살아 가면서도 자살만을 생각한다. 그런 그녀가 발견한 사이트는 자살 사이트. 자살방법들을 제시해주고, 자살 날짜를 예고해주는 대신 절대 사이트내의 다른 사람의 자살을 설득하면 안되고, 한번 탈퇴하면 재가입이 안되는 사이트... 그녀는 그 사이트에 가입하고 다른 사람들이 토해내는 자살 이유들을 읽는다... 그 즈음부터 자신에게 접근하는 하얀소년... 옛날의 자신을 보는듯한 합창단의 소녀. 그녀는 자살결행일이 다가오며 모든것으로 부터 멀어지려 하지만...
이책은 조금 건조하다. 읽고 있다보면 데일린이 목에 차고있는 보호대처럼 목을 조여온다. 뚱뚱함, 성폭행, 왕따, 학교내 폭력... 게이라서, 레즈비언 이라서 또는 오해로 인한, 못생겨서... 피해를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듯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살고자 하는데 죽어가는 사람도 나온다. 사람이 자신을 포기하기 까지 얼마나 걸리는 것일까? 얼마만큼의 이유가 필요한 것일까?
엄마 아빠한테 말할 수 있으면 이런 게 좋겠다. "나를 돕고 싶으면, 죽게 도와주세요." ---100P
작가는 청소년 도서임에도 친절하지가 않다. 이래야 한다거나 저래야 한다는 이야기 보다는 건조하게 상황을 보여주어 자신이 어땠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투영해보게 만든다. 산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그저 지켜 보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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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연예계에서 꽤나 유명하고 잘 나가는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모범생인 아이가 단지 전교 석차가 조금 떨어졌다는 이유로 자살하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론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은 쉽지만 직접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얼굴도 잘났고 돈도 잘 벌고 뭐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데 왜 자살을 해? 그럴 용기가 있다면 나 같으면 더 열심히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일린은 뚱뚱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집단으로 학대받는 아이였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그 뒤로 부모님은 항상 대일린을 감시하신다. 혹시 대일린이 또 자살을 시도하지나 않을까 싶어서...
마음 속엔 항상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대일린. 그러다 우연히 스루더라이트란 자살사이트에 접속하게 되고 그 사이트는 23일 뒤를 D-Day로 잡아준다. 매일 스루더라이트에 접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고 자신의 짐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는데,...
어느 날 학교 앞 벤치에 낯선 남자애(산타나)가 자꾸 대일린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대일린이 쌀쌀맞게 대해도 별로 개의치 않고 대일린에게 얘기를 걸어 온다.
산타나가 빌려 준 노트북을 계기로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되고 산타나가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나중에 혼자 남겨질 엄마를 위해 비디오를 제작하는 산타나. 23일 뒤의 자살계획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는 대일린.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대일린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서로 상처를 입히지도 않고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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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죽고 없을 거야
주인공 '대일린' 또래의 사춘기 딸아이가 있는 학부모다. 부모가 되어 자신이 낳은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감사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이 생길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매스컴이나 인터넷 등의 발달로, 그리고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진 환경으로 인해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여서 더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기만 한 모습이다.
'왜 이런 패배자를 낳았나요? 왜 내가 희망도 없고 뚱뚱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애들과 일부러 어울리게 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았나요? 이 세상은 나를 위한 게 아니었어요. 나는 너무 일찍 태어났든지 너무 늦게 태어난 거예요. 결함투성이예요.' ( p. 100 )
'대일린'은 바로 그렇게 여러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으로 부터 상처를 받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한다. 늘 자살만을 생각하고, 그저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실행하는 아이다. 일찍부터 뚱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 시작하면서 가벼운 장난부터 노골적인 괴롭힘까지 여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을 당한다. 팔목을 자르고, 암모니아 표백제를 마시고...끝도 없이 죽음만을 생각하는 아이를 부모는 24시간 교대로 감시하게 된다.
아직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세상에 자신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 가입을 한다. 자신이 죽음을 실행할 시간을 23일 이후로 정해지면서 매일 그 곳에 접속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죽음에 대한 결심을 나눈다. 그러면서 그 곳에 어떻게 자신이 죽음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아픈 시간들이 있었는지, 자신이 어떤 상처를 받게 되었는지, 한 가지씩 그 과정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다.
23일, 22일, 21일, ... 죽음의 순간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부모님과 일상을 이어가면서, 그렇게 아이는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어느 날 아이의 주변에 '산타나'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수업이 끝나고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학교 앞 벤치에 앉아 있으면 어기없이 나타나 '대일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산타나. 그리고 나쁜 병에 걸려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 산타나를 알아가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신의 모습과 살고 싶어하는 산타나의 모습에서, 삶에 대해 진지한 마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하는,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느껴가게 된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는 대일린의 심리를, 그 나이 또래의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마음을, 화자가 대일린이 되어 너무도 안타깝게 표현하고 있는 이 소설은 괴롭힘을 당하든, 그렇지 않든,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에게, 그리고 또래의 당사자 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지방에서 전학을 하면서 몇 개월간 집단 따돌림으로 너무도 힘든 시기를 겪었던 딸아이를 봐왔기에, 그것이 지금까지 아이의 가슴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남아 두고 두고 상처가 되고 있음을 알기에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지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대일린' 처럼 속으로 속으로 울고 있을지.
'네가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범신론에 대한 네 생각을 듣고 싶거든. 자신을 아프게 하면 다른 사람도 모두 아프게 하는 거란 기본적이고 도덕적인 신념에 대해서도. 우린 모두 그렇게 연결돼 있어.' ( p. 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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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책의 제목중에 가장 긴 이 책의 제목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 책의 제목...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죽고 없을꺼야"...
요즘 청소년 집단 따돌림과 자살이 늘어가고 있는데.. 집단 따돌림을 보아도 혹시나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모른척하게되는게 현실인 것 같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보게된 책인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죽고 없을꺼야]....
뚱뚱하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대일린. 대일린은 24시간 자살 감시를 받고 있다. 그만큼 자살이 습관이 된 것이다. 대일린은 '스루더라이트'라는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곳에 접속을 하고 자살을 계획하게 된다. 산타나와,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에밀리를 통해 얼었던 마음이 점점 녹으면서 문을 열게 되고 살아갈 힘을 점차 얻게 된다. 과연 마지막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이 책을 보면서 부모의 중요함도 느끼게 되었다. 지금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큰 축복이고 행복이 아닐까?
내가 직접 책속으로 가서 대일린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표지에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슬퍼보이는 소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을 한번 내밀어 주자고는 많이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쉽지 않다고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번 노력이라도 해보는 사람이 됬으면 좋겠다. '왜'힘드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힘듦을 같이 나누려는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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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몇번이나 자살을 실행했던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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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사회적 현상 중에서 큰 이슈가 되어진
아픈 이야기이고,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인 이야기였다.
집단 따돌림은 오랜 세월을 두고도 있어 왔던 이야기들이라 본다.
그러면, 오래 전부터 왜 문제를 풀지 못 했는지에 대해서 반문 한다.
아마도 그 동안은 당한 피해자들 만의 애기로 인식들을 해오고,
우리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함께 풀어가는 사고의 부족이라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에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 왕따..등의 여러 표현으로 불리어진
피해 당사자인 그들이 당해야 했던 고충은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들이었을꺼다. 갖은 수모와 고통, 외로움, 가졌을 그들,
직접적인 당사자인 그들 중 최후의 결단인 자살로 치닫는
경우들을 우리는 뉴스와 그 외의 관련 정보들을 통해서 접하고 있다.
어린 청소년들 세대에서 일어나는 왕따의 집단 따돌림은
사춘기의 피해 학생들에게는 더욱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기
쉽지 않았을 치명적인 것이었을 꺼라 생각된다.
이 책에 소개 되어진 18세 소녀 대일린은 뚱뚱하다는 것 때문에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었고, 많은 힘든 과정을 경험하고,
여러 학교을 옮겨 다녀야 했고, 미수에 그친 자살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더 이상은 삶에 대한 목표나 의미를 상실하고
벼랑 끝 죽음을 결심하여 자살 사이트를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23일 뒤에 죽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해 나간다.
그 과정에 호지킨 병에 걸리 산타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받게 되고,
또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에밀리를 통해서 자신과 다른 모습을 발견
하기도 하고, 벼랑에 선 자살을 결심한 자살사이트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당했던 피해 사레들을 접속을 통해서 읽게 된다.
1인칭 중심의 이야기 진행으로 대일린의 마음을 더욱 더
개인적 감정변화와 심정을 실감있게 공감할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된다.
OECD국가중 자살률 1위는 불명예스런 우리 사회의 모습은 함께 풀어야 할
괴제라 생각된다. 피해 당사자는 적극적으로 강한 자아 의식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표현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가해자에게는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죄없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깨우치고,일깨워 주는
부모, 학교,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깨어 있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나쁜짓을 했을때는 그에 따른 댓가를 가르치는게
필요하다고 본다. 피해 당사자는 언제든 나의 가족이 될 수있다고 본다.,
더 이상은 자살이라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게 문제를 다함께
해결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더 이상은 왕따로 인한
자살이 없기를 바라는 맘이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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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엄마가 제목을 보시고는 "너는 무슨 그런 책을 읽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른들이 보시기에 제목이 좀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죽음을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삶,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1인칭 시점에 충실한 이 소설은 뚱뚱하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대일린이라는 소녀의 내면 세계를 간결한 문체로 보여준다. 뚱뚱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비만캠프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누구에게도 그 괴롭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던 대일린은 자살을 통해서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차례를 그것을 시도했고, 마지막 자살시도로 인한 후유증으로 성대를 다쳐 말을 하지 못한다. 이제는 더 이상 뚱뚱하지 않지만 마음을 다칠 대로 다친 대일린은 부모인 킴과 칩에게조차 곁을 주지 않는다. 킴과 칩은 대일린을 위해 학교를 옮기고 의사를 바꾸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24시간 함께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조차도 대일린에게는 귀찮고 가식적으로 느껴질뿐이다. 킴과 칩이 대일린에게 이야기할 때 말을 할 수 없는 대일린의 생각이 이 소설에서는 그대로 보여진다. 꼬일대로 꼬인 대일린의 속마음을 보면서 갑갑하기도 하고, 그 또한 상처 입은 대일린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잘못된 방어기제의 한 모습일 뿐이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런 대일린이 인터넷에서 우연히 스루더라이트(Throuh-the-Light.com)이라는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에 가입하게 된다. 대일린은 내일이라도 당장 생을 마감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스루더라이트는 기본방침에 따라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이 '지금'으로부터 23일 뒤이다. 이 소설은 이 23일의 기록이다. 스루더라이트에서 여러가지 게시판과 토론방 실행방법(자살방법)에 대한 소개글들이 있으며, 마지막 며칠간은 꼭 대답해야만하는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23일이라는 시간. 누구도 자살을 말리지도 권하지도 않는 토론방에서의 자신의 마음 속에 꼭꼭 눌러담아두었던 아픔의 기억들을 꺼내 놓기, 생을 마감함에 있어 생각해봐야 할만한 질문들.. 스루더라이트는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길로 안내하는 사이트가 아니라 삶의 길로 안내하는 사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루더라이트와 함께 대일린의 삶에 등장한 수수께끼의 깡마른 소년 산타나와 예전의 대일린처럼 뚱뚱하지만 대일린보다 훨씬 밝고 씩씩한 에밀리의 존재. 이 둘의 존재 특히 산타나의 존재가 대일린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따돌림을 넘어서 괴롭힘을 당하는 소녀 대일린이 어떻게 마음의 문을 닫아 걸게 되었는지, 상처입은 아이들이 어떻게 타인을 대하는지를 느껴볼 수 있었다. 특히 안타까웠던 점은 대일린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부모인 킴과 칩이 했던 행동들에 대한 대일린의 반응들이었다. '진심이 아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고 시켰다. 나한테서 해방이다....' 등등. 그렇게 되기까지 제대로 된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아이들을 대할 때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강요하기만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요즘 아이들은 쉽게 상처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쉽게 상처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도 수많은 대일린이 죽고싶다는 생각을 할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고 싶다'는 말을 다르게 말하면 '행복하고 싶다'가 아닐까. 죽어버리고 싶은 것은 행복하게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선택하고자 하는 길일뿐일테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갈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네들에게 내가 산타나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