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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이 흐르는 여름, 개천에서 멱을 감을 때면 느닷없이 소낙비가 내릴 때가 있었다. 비가 올 때 큰 나무 밑에 숨으면 위험하다는 상식 조차 모르던 때이므로, 큰 나무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집이 되어 주었으며, 널찍한 이름모를 잎은 좋은 우산이 되어 주었다. 비 오는 어느 날, 홀로 생각에 잠길 때면, 누구나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짐짓 미소를 짓게 하는 어릴 적 추억이 있다. 그때 그 시절이 너무나 요원하지만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오히려, 어제 아침에 읽은 신문 기사, 통화를 했던 거래처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바로 어제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마치 나의 기억 속에 차마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듯이...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모두 한군데 모여 살다 보니 갈수록 사람들은 엽기와 신경질에 칡넝쿨처럼 엉켜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벽장은"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첨단의 디지털 문명이 만들어 준 가상의 공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들은 감촉이 없고 냄새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 page 40 - "나무처럼 자라는 집"의 지은이는 건축가 부부이다. 요즘 집 한 채 짓는데 채 몇 달 걸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우리와 관련된 일 중에서 가장 큰 행사 중에 하나이다. 집 지을 자리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뼈대를 올리고, 살을 바르고, 지붕을 올리는 것 까지, 조금이라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 집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또한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 조금 소홀히 한 부분이 있디면,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들통이 나고 만다. 그런 것이 바로 집이다. 이처럼 집 짓는 것을 직업으로 한 사람 답게, 그의 책에서도 역시 그러한 내음이 난다. 갈색 물결 춤을 추는 책 표지에서 부터, 수채물감으로 그린 듯한 책속 그림들까지, 모든 것이 도면 속에 그려진 건축물 처럼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에는 책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외향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읽을 거리가 없는 책에 이리저리 그림으로 채워 사람을 현혹하고, 공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 대개가 그림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아, 그림은 그림대로, 글은 글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도심 속의 인공 폭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인공적이지 않은 그런 느낌이어서 더욱 좋다.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합니다.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의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page 20 - 지은이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년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부러 책을 느리게 쓰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은이는 집을 짓듯이 그렇게 글을 써나 간 것 같다. 책 속 이야기는 지은이가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냐, 언제이냐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는 후대에 가서 빛을 발하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듯이 우리가 경험한 오늘 이란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가, 만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는데 역시,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가 책을 쓰는데 걸린 10년이란 시간 역시 그리 긴 시간만은 아님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건축물" 안에서 보낸다. 일을 할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우리는 건출물 "안"에 있다. 때론 건축물 "밖"에 있으면서도 "건축물"을 보는데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일상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건축물"이지만, 우리가 기껏 "집" 관해 이야기 할 때는 ’평당 얼마더라’, ’전세가격이 얼마나 하더라’ 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집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무언가 격조가 있어야 한다거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집에 대해 이해할 때, 그것은 마치 자연을 이해하는 것처럼, 집과 내가 함께 더불어 살아 숨쉬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때론 시장에 억지로 끌려 가는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때론, 할머니의 자장가에 이끌려 스르륵 잠이 드는 아이처럼,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집과 더 가까워 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이 더 다채로운 색깔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탱글탱글한 도토리 묵 보다는 진한 향이 나는 따끈따끈한 순두부 같은 책이다. 비유가 하필이면 두부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책 앞에서는 체면도 내려 놓을 만큼 친숙한 그런 느낌이 난다. 책을 이어가는 대강은 지은이가 설계한 집들이다. 전국을 돌며, 여러 사람의 의뢰를 받아 집을 짓는 동안, 지은이가 방문한 여러 장소,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진솔하게 묻어난다. 그곳은 어떤 여행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곳이며, 그가 만난 사람들은 비록 유명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때로 고민했던 마음 속 숨겨놨던 짐의 한 켠을 받쳐주는 고마운 충고가 되어 주기도 한다. 비슷한 날 휴가를 떠나고 비슷한 시간에 귀경 길에 오릅니다. 물론 머리를 많이 씁니다. "교통량이 적은 시간을 택해 고속도로에 오르리라? 그러나 모두 고속도로에서 만납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모두 고속도로로 올라오는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 page 159 - 현실을 똑같이 그린 그림보다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솔직하게 그린 그림이 감동을 줍니다. 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의 화법으로 진솔하게 그린 그림도 감동을 줍니다. - page 61 - 책 속에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도 많다. 스님이 평생 도 닦아 얻는 것이 결국 아무 생각 없음이고, 김정희가 평생 공부해서 얻은 경지가 일곱 살 대 글씨체라고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진정 원하는 집은 어떤 집일까?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내가 그렸던 나의 집은 과연 어떻게 생기었을까? 건축에 관한 에세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고, 그리고 집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과 애정이 가득 배어나온다. 책의 이면 커버는 마치 화선지나 먹지 같아, 책 속의 향기가 그곳에 배어 있어, 나조차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마져 든다. 최근들어 시골로 낙향하고 싶다거나, 한적한 곳에 별장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주말이 되면 가족들을 태우고 근교로 나가지만 그것은 도시가 싫어 탈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자신들이 그간 얼마나 꽉 차인 도시 생활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몸짓 같았습니다. - page 93 - 인터넷을 두런두런 하다보면, 가끔 멋진 교외의 집에서 한 껏 멋낸 사진 이라든가, 화려하게 차려진 가든 파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떠랴 라는 마음도 들지만 한 켠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휴대폰을 끄거나 진동으로 바꿔주세요 하는 성우의 목소리 또는,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하는 문구, 어쩌면, 단순히, 관람을 방해하거나, 작품을 훼손하기 때문에 그런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라면, 혹은, 자신이 마음 속으로 그리던, 혹은 자신이 정말 만족하는 어떠한 순간이라면, 잠시 다른 것은 내려 놓으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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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이란 저자 ‘건물이란 생물처럼 시간이 지나며 자라고 늙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축가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리고 그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다는 사람들의 시간이 담겨져 사람과 같이 자라는 집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대부분 아파트였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아파트 동홋수정도일 정도로 집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을 보낸 집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면, 그리고 그 집에서 아직도 살아간다면 분명 남다른 경험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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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집에서 살고, 누구나 자신만의 집을 갖고 싶어 한다.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제처럼 제시되곤 한다. ‘집’이라는 말은 누구나 어둠이 내리면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 할 가장 편안한 장소이면서 또 그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합니다. 집이란 짧은 시간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의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p.20) 양동마을 ‘심수정’이라는 집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는 자신이 감탄하는 우리의 고택들과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여러 고장의 집들을 소개한다. 늘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집이라는 것은 신기해서 짓고자 하는 대로 지어지지 않을 때로 있고, 짓고 나서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자꾸만 변해간다는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건물에서 풀기를 빼 주기도 하고, 생경한 색깔을 누그러뜨려 주기도 하고, 성질을 눌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은 보태기도 하지만 지우기도 많이 합니다. 사람은 그 안에서 살기도 하지만 내몰리기도 합니다. 사람이 살던 곳에는 시간의 퇴적물들만 쌓입니다. 사람이 머물렀던 곳은 그저 흔적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p.22) 저자는 자신이 지었던 집들에 대한 일화도 전해준다. 집을 짓겠다는 주인들을 만나 집터를 보고 집에 대한 소망을 듣는 단계부터 그 사람에게 맞는 집을 지어주고자 이리저리 그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양을 생각해보면서 창의 위치를 바꾸고, 집이 동네와 소통하는 방식을 꿈꿔보고 하는 내용이다. 건물이란 생물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고 늙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전통 건축에 대한 애착은 이런 퇴행적 감상의 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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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에서 싹을 틔워서 오래오래 수십년 아니 수백년씩 자라는 나무. 그러나, 실상은 무조건 커가는게 아니라 가로 생장으 하면서 오래된 내부는 죽어가고 바깥 세포가 계속 자라나가는 것이다. 오래된 세포가 젊은 세포들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다. 또한, 나무는 자연을 이기거나 거스르려고 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서슴치 않은 이기주의라고들 한다. 근데 생각해보면 인간만 그럴까? 생각하는 머리를 가졌으니 더 갖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 아닐까? 나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서로 햋볕을 더 보기 위해 경쟁적으로 키를 키워나가며 땅속의 수분과 영양분을 더 섭취하기 위해 서로 서로 경쟁을 하고 심지어 어떤 나무는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며 기생하기도 한다. 유독 인간만이 이기적인 것인 양 말하는 것이 살짝 거슬리기도 한다. 사자들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다른 사자의 새끼는 모두 물어서 죽이지 않는가?
서론은 그만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두명의 부부 건축 설계자가 동업을 하면서 수많은 집을 설계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집이 완성되어 가며 느끼고 바라본 것들을 글과 그림으로서 담아낸 작품이다. 건축학과 출신이니 단무과(단순,무식,과격)를 연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공대생 출신답지 않게 뛰어난 문장력으로 에세이를 쓰듯이 적어내려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해준다. 건축물을 굳이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고 글로서 표현해도 머리속에 상상이 되니 오히려 실물을 보는 것 보다 낳은 것 같다. 상상속에서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이 실물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루하게 저자가 설계한 집 이야기만 늘어놓았다면 실망이 컸을 것이다. 그와 더부어 저자가 만났던 집주인들과 있었던 해프닝들을 읽다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고 한번 살다가는 인생 좀 더 편안하게 욕심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야 겠다는 생가기 많이 들었다. 재건축을 기대하고 강남아파트에 무리해서 입주하거나 역세권 오피스텔을 분양받아 프리미엄을 받고 팔거나 임대 수익율을 받는 이른바 수익형 부동산만 바라보다가 자연과 함께 어울려서 복숭아 나무를 바라보며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여사는 곳 이것이 진정한 집인 것이다. 사고 팔기 위한 집이 아니라 진정 살기 위해서 일상에 지친 내 몸을 쉬게하고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이는 보금자리가 진정한 나의 집인 것이다. 보금자리 주택때문에 OO집값이 떨어졌네 등에 연연하지 말고 나무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비바람도 서로 막아주는 그런 집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서로 햋볕을 더 보기 위해 경쟁하고 다른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는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 아니라 서로 어울릴 줄 아는 나무처럼 자라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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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집'에 관한 기억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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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만큼 저도 한옥을 사랑하는 한사람입니다. 또한, 어린시절부터 아파트가 아닌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자라서 그런지 사람은 땅을 밟고 자연과 벗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합니다. 지금은 결혼하여 신랑과 함께 아파트에 살고있지만, 아직도 친정은 전원주택입니다. 아파트의 편리성때문에 주택이 불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 오히려 주택의 장점이 더 많은거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저자가 돌아다니면서 나무로 된 집을 소개하고, 절등에 대해서도 소개할때면, 나무로 만든 집이 여러가지로 장점이 있는듯합니다. 요즘 아토피 있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도 시멘트보다는 나무가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파트도 한옥아파트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만큼 나무처럼 좋은 집은 없는듯합니다. 그리고, 책속에서도 여러집을 소개하듯이, 집도 그 사람의 개인취향이면서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집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집을 통해 그 사람의 성향도 읽을수 있다는 군요. 어려서부터 건축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 길로 못가서 조금은 아쉽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라도 건축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중에 전원주택에 살 우리 부부에게도 좋은 도움이 되어준 책입니다. 앞으로 점점 주택이 좋아질거 같습니다. 아이들도 마음편히 뛰어놀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부모마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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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두분의 이야기 속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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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단순하게 집을 짓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이나 하는 심정으로 책을 들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집이란 그저 좋은 집이란 성냥갑처럼 쌓여져 있는 아파트 들이다. 살기는 아파트가 편하지. 아파트 가격이 제일 비싸지. 등이 살면서 흔히 듣던 집이라는 것의 가치였다. 가끔 나오는 멋진 집들을 보면서도 왠지 울타리만 클 뿐이지 그 밖으로 나오면 그저 도시의 일부분일 것이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있었다. 지리산 종주를 하며 너무나 아름답던 그 산에 흠뻑 취했지만 대문을 열고 나오면 지리산이 될 수 있도록 그곳에 집을 짓고 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했다. 그저 정해진 틀대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것뿐이지 내가 어떠한 집에서 살고 싶으며 이렇게 저렇게 생긴 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감히 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 이 책은 완전한 신세계였다.
그의 직업이 한편으로 참 자유로워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오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땅을 보고 집을 짓는 일. 늘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기계처럼 살아가고 내일 아니 일 년치 해야 할 일이 이미 정해져 있는 나에게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집을 짓는 그가 마냥 자유스럽게만 느껴진다.
또한 집을 짓는 이야기를 담을 책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자서전처럼 그의 생각과 그의 마음을 집이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지리산에 집을 지으며 사람들의 악다구니에 자연이 망가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산을 가리지도 않고 땅을 짓누르지도 않고 투명하고 가벼운 집을 짓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은 따뜻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상산마을 김 선생 댁의 집을 짓는 과정을 보면서 문뜩 나도 한번 나의 집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서울의 많이 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파트가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이유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런 집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을 만큼 척척 생각의 가지가 자라났다. 이 책을 마치고 난 나는 이제까지 바라보던 집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살고 싶은 곳을 찾고 싶어졌고 그 땅을 바탕에 두고 살고 싶은 집을 그리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것. 한 번도 마음에 담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상상을 선물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