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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이 1994년에 만든 <조지왕의 광기 The Madness of King George>는 잉글랜드 임금 자리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면서 벌어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서 칼까지 휘두르던 영화 <겨울의 라이언>에 견주면, 오히려 우스개 영화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 자리에 누가 오르냐에 따라 여러 사람들의 자리도 뒤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앞세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다 같겠지만, 끝마무리는 어째 좀 싱겁다.
2. 잉글랜드의 조지 3세(나이젤 호손)는 나라나 아랫사람들을 꽉 잡고 있는 임금이다. 샬롯 왕비(헬렌 미렌)와 혼인한지 스물여덟 해가 지났으며, 아들과 딸이 모두 열다섯이나 된다. 나이가 쉰 살이지만 아직 드세다.
큰 아들인 웨일즈 왕자(루퍼트 에버렛)도 꼼짝을 못한다. 오히려 아버지가 나무라면 쥐구멍이나 찾을 수밖에 없는 몸이다. "참한 아가씨와 혼인해야 백성들이 날 사랑하듯 널 좋아하게 될 거야..." "빈둥거리는 건 좋지 않아. 살만 자꾸 더 찌고 있잖아. 살 좀 빼라! 살과 싸워. 싸우라고..."
제 나라의 식민지였다가 떨어져 나간 미국이 못내 아쉬운 조지는 그 이름마저 부르기를 꺼려한다. 이렇게 나라를 쥐고 흔들던 사람이 어느 날 달라진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랫사람들을 깨워 들볶고, 아내를 도와주는 아낙네를 괜시리 자빠뜨리고, 아낙네 방에 들어가 요강에다 오줌을 누기도 하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가리키며 "가슴이 탐스럽구만" 한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머리가 살짝 돈 것이다.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까닭을 아내한테는 말한다. 마음대로 안 된다며. "소리가 들리니까 자꾸 말을 해야 해..."
떵떵거리던 임금이 탈이 났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자리를 큰아들한테 물려주고 쉬어야 할까? 아니면 용한 의사를 불러 고친 다음 다시 임금 노릇을 하도록 해야 할까?
3. 영화는 웨일즈 왕자가 아버지를 밀어내고 섭정으로 그 자리에 오르려 하는 모습과 조지가 다시 병을 고치도록 애쓰는 모습을 엮어놓았다.
1788년 무렵의 일을 다루고 있으므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왕족들이 입는 옷이며, 노리개, 마차, 궁전 따위는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게다가 바라기만 하면 첩을 얼마든지 둘 수 있는 데도 왕비만을 곁에 두고 사랑하는 조지가 우러러보였다. 힘이 있으면서도 힘대로만 하지 않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데도 삼가는 사람이랄까. 마뜩찮은 대목도 더러 눈에 들어왔다. 임금 자리를 놓고 쉰 살인 아버지와 서른도 되지 않은 아들이 다투는 모습에 백성들은 눈길이나 주었을까? 의회 수상으로 있으면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하는 피트나, 다음 수상 자리를 노리는 폭스는 또 모르겠지만. 오히려 런던을 새로 짓고, 노예무역을 없애고, 미국을 있는 그대로 봐주려 하는 웨일즈 왕자가 조지보다는 잉글랜드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이 하고 싶다며 살만 찌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웨일즈 왕자는 보기에 딱했다. "잉글랜드에선 왕자들은 왕을 다 싫어해" 하며 미친 아버지를 떼어놓았다며 제 엄마한테 따귀를 맞을 때나,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 "건강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하는데도, 아버지인 조지가 "내가 죽기만을 바랄 뿐이겠지. 이 돼지 같은 얼간이놈아..."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살이 쪘다는 것만으로 늘 꾸중을 들어야 한다면, 이런 아버지를 아들이 좋아할 수가 있을까?
또 웨일즈 왕자와 피처버트 사이를 아버지 조지가 떼어놓으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이서 남몰래 혼인까지 했고 서로 사랑하면 되었지, 왜 도이칠란트 아가씨와 혼인해서 아이를 낳도록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버이를 떠나서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혼인하는 요즈음에 비추는 게 잘 하는 일은 아니지만, 조지한테 못마땅하게 보이도록 웨일즈 왕자를 감독이 너무 나무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밭에서 일을 하게 하면서 머리가 돈 사람들을 낫게 한다는 윌리스 박사(이안 홀름)가 하는 것도 조금은 낯설었다. 조지가 엉뚱한 말을 하거나 험한 말을 할 때마다 의자에 묶어놓고 꼼짝을 못하게 하는데, 머리에 탈이 난 사람들을 그렇게 다루는지 모르겠다. 한쪽에선 일을 하면서 제 머리를 낫게 한다면서, 조지한테는 묶어놓고 "엉뚱한 소리는 하지도 마!" 하는지. 그렇게 하면 조지의 파란 오줌이 누런 오줌으로 바뀔까?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면 나라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엉뚱한 곳으로 치닫는 조지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의자에 묶는지는 몰라도, 알 수 없는 대목이었다.
4. 아무도 무섭지 않고 발 아래로 내려다 보던 자리에서 벗어나 남들 눈에 엉뚱한 짓이나 하고 옷에 똥오줌을 싸대는 조지왕을 맡은 나이젤 호손의 연기가 좋은 영화였다. 아내인 샬롯 왕비를 부여잡고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다가도 돌아서서 큰물이 들거라며 제 아이들을 높은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나설 때나, 웨일즈 왕자가 붙여준 의사한테 잡혀 꼼짝을 못한 채 아프게 치료를 받으면서 성경 구절을 외울 때는 정말 안쓰럽게 보였다.
조지가 멀쩡하든 살짝 돌았든 사랑으로 감싸는 샬롯 왕비 노릇의 헬렌 미렌은 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든 삭이며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 같이 아이를 열다섯이나 낳을 수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두 해에 하나는 낳아야 하는데...아무리 금슬이 좋아도...
감독은 잉글랜드 왕실을 좋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쪽에선 그런 체제를 까고 싶은 마음을 슬며시 드러내고 있었다. 윌리스 박사의 말을 빌려서. "전제 군주와 광기는 통한다는 것을 아시오"
조지가 의회에서 말할 때 폭스가 말한다. "조지가 몸소 쓴 게 아니네요..." 피트 수상이 되받는다. "임금은 (우리가 써준 대로)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거요" 그러자 폭스는 더 나아간다. "그러면 없애버리면 되겠네. 미국은 그렇게 했잖아요"
왕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거나 왕족들이 쓰는 돈을 백성들이 내야하는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프랑스처럼 왕실을 몰아내고 백성들이 뽑은 사람으로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고 싶을 것이다.
5. 두드러지게 잘못한 일도 없는 아들을 나무라고 아버지와 아들이 자리를 다투는 모습 따위는 백성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보이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도 않아 별 다섯을 주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제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보이고, 조지가 멀쩡할 때나 살짝 맛이 갔을 때 보여주는 감칠 맛이 나는 연기나 영화에 나온 이들이 입고 나온 옷이나 궁전 따위는 볼만 했지만.
영화를 만든 지 열일곱 해밖에 안 지난 것이라 디뷔디 화면이나 소리는 그런대로 괜찮다. 덤으로는 예고편만 보여주므로 조금 아쉽다. 그래놓고 13,200원이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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