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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기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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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가 좀 골치 아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책이었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와 책들로 그 답을 말하지만, 과연 누가 이 답의 정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인간이지만,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학문의 체계나 정신적 체계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크 트웨인은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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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가 좀 골치 아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책이었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와 책들로 그 답을 말하지만, 과연 누가 이 답의 정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인간이지만,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학문의 체계나 정신적 체계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크 트웨인은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으로 알려진 작가이지만, 여기서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찰스 다윈을 만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저자. 그의 변신은 과연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전체적으로 인간 기계론을 내세운다. 인간이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은 인간을 아주 단순화시킨다. 인간에게는 편견을 제거할 힘도, 없애려는 욕망도 없다. 이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편견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개인적 생각의 최소한 만큼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모든 것이 빌려온 재료들을 조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오직 신만이 외부로부터가 아닌 자신만의 생각을 가릴 수 있는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창조를 하지 못한다. 단지 관찰한 결과를 옮기는데 지나지 않는다.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게끔 하는 힘은 인간 자신의 정신을 만족시키려는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유일한 충동은 그것을 그 자신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교육을 제외하고 제대로 규정된 도덕이나 행위의 지침 또는 동기로서의 인간의 양심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기쁨은 그가 의무라고 믿었던 것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자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있다.충동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런 활력도 없는 시체와도 같은 것이며 세상은 멈추고 말 것이다.

 

의무의 이행과 본성과 교육, 교육은 외부적인 영향력이다. 가장 최고의 교육자는 인간관계이다. 높은 이상으로 향하게 하는 동기부여자는 올가미 역할을 한다.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 기질은 바꿀 수 없지만, 자제를 통해 억누를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평화와 기쁨과 만족을 찾고 있다. 종교와 복음에 의한 훈계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이 첫째이고, 이웃과 지역사회는 그 다음이다. 외부의 영향은 새로운 성격에 일치시키는 시점에 도달하도록 인간을 교육할 수 있다. 일을 하게끔 하는 것은 단 하나의 외부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력들이 축적된 최후의 유일한 영향력이다.

 

인간이란 다른 사람의 기준을 검토할 때 언제나 아래를 보기 마련이다. 물론 마음은 순수하고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동기계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란 그 어떤 것도 창출해내지 못한다. 인간이 인지한 것들을 뇌라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합하는 것이다. 모든 명예는 창조주의 것이다. 내 진리에 대해 설득하려는 논쟁이나 반대하는 사실을 접하게 될 때 외면하는데 보내게 될 것이다.

 

본능과 사고는 같지만 능력면에서는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의지(자유로운 선택)는 단어상으로만 존재하는 것, 사실상 현실적으로는 없는 것이다. 지적인 인식의 명령이 의지이다. 모든 열망은 정신적인 것이고, 인간의 정신을 만족시켜 주면 귀중한 것이고, 그것에 실패하게 되면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만다.


나라는 것은 누구를 가르키는 것인가? 인간이란 도덕적 그리고 정신적인 매커니즘으로 구성된 기계이다. 양심은 인간의 도덕적인 체계 안에 존재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기계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인간의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타고난 기질은 믿음을 후천적으로 획득한 것이지만 기질은 타고난 것이다. 믿음은 변하기 쉬운 반면에 어떤 것도 기질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국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피스트의 궤변 같기도 하다. 처음부터 정의에 대한 것이 없다. 인식이 차이를 만듦이다. 이 책을 읽다가 생긴 의문은 그럼 이런 언어나 철학 등 수많은 산물은 도대체 어디에서 모방했는가? 이다.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모든 시작은 신에게 맡겨버린다. 그러면 시작이 되지를 못한다. 인간의 것들은 인간적인 것으로 시작해야 풀어낼 수가 있다. 어쩌면 그의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신이 결정하면, 인간의 단지 기계에 지나지 않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그럴꺼라고 인간들에게 의문을 던져주고, 의문의 해결을 고민하게 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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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약 290페이지) 중 영어 원문수록(약 120페이지) 수록, 영한대역이라는 표기가 없음.



p*******t 2011.07.26. 신고 공감 8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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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나, 인간의 착각과 인간이라는 기계의 자유선택에 대하여...
"내가 아닌 나, 인간의 착각과 인간이라는 기계의 자유선택에 대하여..." 내용보기
진정한 ‘나’란 없으며 누구든지 마음의 지배자에 의해 선택하게 된다는 노인의 이야기 또한 들을수록 옳은 말이고 이에 반박하는 젊은이의 말 또한 조목조목 우리의 의견을 대신한다. 그 둘의 말은 분명 대조를 이루고 있고 일방적으로 젊은이는 설득당하고 있지만 이 둘의 어느 말도 틀리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특히 노인의 인간기계에 대한 논리는 전후의 모든 반박의 가능성을
"내가 아닌 나, 인간의 착각과 인간이라는 기계의 자유선택에 대하여..." 내용보기

진정한 란 없으며 누구든지 마음의 지배자에 의해 선택하게 된다는 노인의 이야기 또한 들을수록 옳은 말이고 이에 반박하는 젊은이의 말 또한 조목조목 우리의 의견을 대신한다. 그 둘의 말은 분명 대조를 이루고 있고 일방적으로 젊은이는 설득당하고 있지만 이 둘의 어느 말도 틀리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특히 노인의 인간기계에 대한 논리는 전후의 모든 반박의 가능성을 젊은이와의 대화를 통해 논증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이 책의 등장인물 젊은이의 편에 동일시되어 우리의 존재를 가치 있고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노인의 말처럼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독서 내내 우리는 노인의 말에 설득당하면서도 기계는 수동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래밍되며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프로그래밍될 수 있지만 이를 인지하고 선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여지는 있다고 작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진다. 거기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희망을 찾고 싶지만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이 또한 결코 있을 수 없는 모든 인간행동을 형성된 자아인 마음 속 지배자, 우리가 스스로의 욕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지배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론으로 일관한다. 노인을 지독한 구조주의자라고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싶어져도 그의 이야기를 틀렸다고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그래도 유일하게 주절거려 볼 수 있는 이야기란 범죄와 처벌의 권리정도이다. 노인의 논리는 옳지만 젊은이의 경우처럼 사회가 인정하고 개개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범죄와 처벌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범죄 또한 사회와 환경의 영향으로 탓할 수는 있지만 아닌 육체를 처벌하고 있는 현 사회체계 내에서 노인의 이야기는 물질적으로건 상해이건 간에 타인에게 가해한 누군가를 처벌할 기준을 모호하게 만든다. 가해를 한 인간욕망의 도덕성 여부를 판단하여 처벌해야 하는데 주체적인 인간이란 없어서 이 또한 다른 요인으로 결정지어지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여론을 중시하거나 판사의 내적 지배인의 결정에 의해 육체의 처벌의 정도가 결정지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육체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다고 방치하기에는 사회의 존속을 위해 수용할 수 없으며 현대사회의 모든 영향의 결과인 보편성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처벌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다면 처벌하는 (같은 비주체적인 인간으로써) 권리는 어디에서 발생하며(자연법에 기준할 것인가. 그 자연법 또한 노인의 말에 의하면 사회에 편승해 있으려는 인간의 내적 지배자의 영향력이 아닌가) 타당한 것인가. 하는 여러 반문이 발생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나아가
노인에게 반문할 수 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 있을 수 있다
. 우리 안의 내적인 주인은 또한 주체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욕망은 내적 주인을 만족시키는 것인데 그 주체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가 아니라면 온갖 사회적 도구로 훈련된 그 무엇이라면 우리는 내 자신의 주인이 진정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자신의 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입을 통한 마크 트웨인의 의견은 그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염세적인 대답만 돌아온다. 그 내적인 주인을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안의 모든 주체적 가능성을 말살시키는 것이므로 이러한 질문 또한 노인의 이야기에 반문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돌려보자. 이것을 인지하고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가. 노인에게 설득됨으로써 우리가 남은 삶의 질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과연 이를 전복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른 인간에게서 내적 지배인의 형성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원을 밝힌다면 진정한 주체적 인간을 찾을 수 있을까. 마크 트웨인은 조물주를 그 결정론자로 제시하면서 일말의 희망,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안정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있지만 썩 말끔히 의문들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 근원을 밝히기 보다는 나의 내적 지배인이 다른 이에게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데서 내적 주인의 형성을 최대한 고매한 존재로 단련해가는 인간들의 노력을 보는 데서 그 희망을 찾고 싶다. 마크 트웨인이 제시한 것처럼 기계적인간의 전복적 가능성을 오히려 그 안에서 찾자는 이야기다. 영향을 받고 진정 내 의도대로 힘을 행사할 수는 없을 테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크 트웨인의 내적 지배인과 내가 아닌 나로 보았을 때 객관적으로 육체의 행동과 생각을 분리해서 관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주체적 행동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젊은이와 노인의 이야기가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젊은이는 노인이 말하는 모든 분열된 존재(도덕적 영역, 육체적인 영역 등)의 통합체로 인간을 보는 것이며 노인은 그 중 특정한 영역을 결정짓는 분열체로 인간을 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간을 존재지으려 하는 젊은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을 염려한 마크 트웨인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은 존재를 보고 있지만 시각적인 겉모습의 존재가 그 존재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언행을 결정짓는 내부의 존재가 인간의 존재성과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우리는 라는 단어를 1인칭 대명사라고 말한다. 대명사, 존재를 대신한 이름이다. 무엇을 대신한 이름인지 노인의 말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젊은이의 편에도 한번 서 볼 필요가 있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부딪혀 볼만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 화두를 접하면서 분명 독자는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서 열띤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 하지만 그 토론의 즐거움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마크 트웨인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현재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 데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다. 현대의 인간을 진화의 최상급으로 여기거나 그 진화가 진정 발전으로 오인하고 있는지는 않은지 충분히 반성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물적 존재에 불과한지, 주체적이거나 솔직하지도 못한 분열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을 한번 더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단련시키는 데 진정한 발전이라는 한걸음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딜레마에 빠지고 질문과 반문으로 마음이 시끄러워 질지도 모른다. 딜레마에 대해 우리는 굉장히 복잡하고 현실적인 삶을 방해하거나 풀리지 않는,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깨달음과 발견은 이러한 딜레마의 사유에서 발생한다고 나는 믿는다.

f*****5 2011.07.2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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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찮은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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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을 좋아한다. 그의 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가 그랬고, <톰 소여의 모험>이 그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확신했다. 이 책은 내가 그의 작품으로 접하는 네 번째이다.  <왕자와 거지>에서는 '같은 사람'인데도 '신분'에 따라 주위의 대접이 얼마나 달라지는 지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 날 왕자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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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트웨인>을 좋아한다. 그의 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가 그랬고, <톰 소여의 모험>이 그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확신했다. 이 책은 내가 그의 작품으로 접하는 네 번째이다.

  <왕자와 거지>에서는 '같은 사람'인데도 '신분'에 따라 주위의 대접이 얼마나 달라지는 지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 날 왕자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거지에게 바깥 세상이 궁금하니 나와 옷을 바꿔 입자고 제안을 한다. 거지는 머뭇거리지만 왕자의 호기심에 찬 눈빛과 바깥 세상으로 나가 더 넓은 세계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깨달았는지 어떤지는 잘 몰라도 바꿔 입는다. 그 때부터 둘의 상황은 정반대로 바뀐다. 왕자로서 '당연히'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한 왕자는 넓디 넓은 세상의 냉정함에 새삼 놀라고, 거지로서 '당연히'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리게 된 거지는 새삼 감옥같이 좁은 세계의 따뜻함에 당혹한다.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글쓴이가 살던 당시에도 여전한 <신분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고픈 것은 아니었을까.

  <톰 소여의 모험>을 보자. 말썽꾸러기며 천둥벌거숭이 개구쟁이인 톰은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살지만 그런 <격식>을 차리는 것은 애초부터 훌훌 털어버리고 넓은 세상과 '교감'하며 자유분방하게 산다. 그런 톰에게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부자>든 <가난>하든 아무 거리낌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게다. 물론 이 책에서 <인디언 조>가 악당으로 등장하면서 <인종차별>의 냄새를 살포시 느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자유분방한 삶>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은 아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앞선 작품보다(어느 작품이 먼저 쓴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읽은 순서대로) 주제가 뚜렷하다. 바로 <자유에 대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주제 말이다. 그리고 <허클베리 핀>과 함께 동행하는 <도망 노예>의 처지를 살펴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한편 동행하는 둘과 만나는 다른 인물들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한 번 가진 <편견>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이 세 작품을 통해 살펴본 <마크 트웨인>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다분히 어리석은 짓을 참 많이 하는 존재'로 본 듯 하다. 이런 관점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나는 횡설수설하는 글쓴이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헷갈리게 되었다.

  이 책에서 글쓴이는 <인간은 기계에 불과해서 애초부터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그래서 '자유의지'는 없고 겨우 '선택'만 할 수 있을 뿐이며, 결국 조물주의 피조물이기에 절대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이야기한 듯 하다. 내가 읽기에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그려놓았기에 '출판'을 망설였고, '출판'한 뒤에 따를 여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책머리에 '허세'를 부렸던 것은 아닌가 살짝 의심했더랬다. 그만큼 글쓴이는 소심했던 것일까?

  그런데 글쓴이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 하는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차서 넘친다. <인간은 하찮은 존재>라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만물이 공존하는 지구에서 유독 <인간>만이 잘났다고 떠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란 말인가. 그러니 그런 잘난 체는 제발 거두고 겸손해지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 또한 그렇지는 않을 거란 짐작이 글쓴이를 괴롭혔던 모양이다. "겸손하려면 너나 겸손할 것이지 왜 전 인류를 싸잡아 홀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찮은 짐승들 보다 못한 존재로 말하느냐? 설령 당신의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깊이 공감하긴 힘든 이론이다. 그러니 한 마디로 <노 땡큐>다!"라는 비난 어린 댓글이 달릴 것을 걱정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그렇지만 이런 짐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내 생각만 고집하면, 다시 말해, 닫힌 생각(편견, 선입견 등)만 해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진리'를 얻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잘난 체'를 하기보다 겸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글쓴이는 이 책을 출판할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 <인간이란 존재가 하찮다>고 주장한 마크 트웨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겸손치 못한 사람>이 되고 마니 결국 제 자랑만 일삼아서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마크 트웨인이 '분석'한 <인간 존재>는 읽는이로서 불편하다. 특히 종교적 관점이 확고한 사람은 <절대자의 피조물>이 하찮다는 분석이 불편할 테고, 덜 확고한 사람은 <하찮은 인간이기에 절대자에게 기대고 나서야 스스로 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내용이 찜찜할 게다. 죄송하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글쓴이가 분석한 내용을 나열할 생각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을 연상시키는 방법이기에 분명 책을 읽기도 전부터 불쾌함이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불편한 진실> 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교훈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가 명심해야 할 내용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 여전히 <마크 트웨인>을 좋아한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지 않은가? 잘나도 잘난 체 하지 않고, 도리어 잘날 수록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역설하는 그가 멋져 보인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1.07.23.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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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인간은 기계다! 인정하기엔 너무 허전하다.
"[11/50] 인간은 기계다! 인정하기엔 너무 허전하다." 내용보기
1835년, 이 땅에서는 다산 정약용이라는 인물이 생을 마감할 무렵에, 저 넓은 아메리카 땅에 태어난 마크 트웨인.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자원을 끌어들여 풍요로운 삶을 일구던 시간, 하나의 문명을 지탱하기 위해 다른 문명을 재물삼기 위해 군대를 앞세워 점령과 약탈이 벌어지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자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란 무엇인
"[11/50] 인간은 기계다! 인정하기엔 너무 허전하다." 내용보기

1835년, 이 땅에서는 다산 정약용이라는 인물이 생을 마감할 무렵에, 저 넓은 아메리카 땅에 태어난 마크 트웨인.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자원을 끌어들여 풍요로운 삶을 일구던 시간, 하나의 문명을 지탱하기 위해 다른 문명을 재물삼기 위해 군대를 앞세워 점령과 약탈이 벌어지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자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 속에서 저자가 던지고자 했던 물음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들뢰즈가 영토화와 재영토화, 포섭과 탈주의 개념에서 인간의 신체는 어떤 것과도 결합할 수 있는 '기계'로 이해를 합니다. 책을 마주해서는 '책을 읽는 기계', 길 위에서는 '달리는 기계'...... 어느 한 순간, 필요한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기능을 멈추어 버린, '기계'가 되는 인간을 상상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인간은 기계다! 라는 선언을 누가 먼저 했는지 모르지만, 마크 트웨인 역시 그와 비슷한 인간의 모습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게 됩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는 수 많은 이들이 모두 '스마트폰 기계'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 '기계가 되어버린 인간'을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시간이 흐르게 되면 정말이지 우리 스스로 '인간'이 아닌 '기계'라고 선언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계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입력들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프로그램과 조건에 따라 얻어진 결과를 반영합니다. 인간의 두뇌작용과 유사하다는 수퍼컴퓨터 역시, 입력값과 조건들이 좀 더 정교한 과정에 의해 결과물에 반영된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저자는 우리 인간들 역시 기계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교육, 환경, 인계관계 등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고 말을 합니다. 외부의 힘이 주어지지 않는 한 내적인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죠. 뒤집어 생각하면, 인간을 변화시키는 교육, 환경, 인간관계 등이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유일한 충동은 자신의 정신을 만족키키려는 욕구이고, 물질적 욕망 역시 궁극에는 정신적 만족이 자리하고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메슬로우가 마크 트웨인보다 후대의 사람이니 그 이전에 인간의 욕구의 최상위에 정신적 만족을 가져다 놓은 그의 혜안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어떤 희생이나 봉사, 동정 따위도 결국 본인의 만족을 위한 행위라는 것이지만, 정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선'한 쪽이 되도록 외부의 힘이 가해질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마크 트웨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인간과 나머지 동물은 지적능력 정도의 차이일 뿐, 정신적 기계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인간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아는 사실은 지적 우수성을 증명하지만, 그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는 다른 생물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러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을 하고, 인간이란 종족이 이 지구의 일원이 된 것은, 지구의 역사에 비교할 때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중에서도 '내가 이 지구의 주인이다'라는 선언으로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은 찰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 파괴한 자연은 수 십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지구의 역사를 무색하게 합니다. 아마 마크 트웨인은, 인간의 이런 오만함과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는 도덕적 타락을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생물과 비교해서 절대 우위에 있는 종족이 아니다! 오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기계와 같은 메카니즘을 가진 존재라고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조금 허전한 듯합니다. 그래도 인간인데,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게 남습니다. 그 아쉬움과 허전함이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말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감정과 공감'을 그 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계처럼 주어진 조건들에 의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만, 기계에는 없는 '감정'을 가진 또 다른 기계라고, 또한, 기계에 없는 '공감'의 능력을 통해서 다른 존재들과 접속하는 색다른 기계라고 말입니다. 부디,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들과 내부적인 감정과 공감의 능력이 긍정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가능성은 낮습니다만.

s*****2 2014.03.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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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을 토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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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덕 교사다. 지난 1년 동안 '도덕', '교육'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현대 주류 패러다임이라 불리는 과학주의의 어떤 자만심 같은 것에 반박하고 싶어져서 관련 책을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 읽었다. 사실 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눈에 보이는 증거를 제시하는 명쾌함 덕분에 매력적이었고, 또한 실제로도 인간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주의적 관점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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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덕 교사다. 지난 1년 동안 '도덕', '교육'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현대 주류 패러다임이라 불리는 과학주의의 어떤 자만심 같은 것에 반박하고 싶어져서 관련 책을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 읽었다. 사실 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눈에 보이는 증거를 제시하는 명쾌함 덕분에 매력적이었고, 또한 실제로도 인간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이 전부라고 단정짓고 인간은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결정론적 사고방식이 위험해보였다(요즘에는 많이 조심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과학주의가 바라보는 인간은 '도덕', '교육'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어떤 기반에서 그런 투철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아야겠기에 인간을 뇌, 유전자, 호르몬으로 설명하는 책들을 찾아 읽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확고하게 인간을 100% 기계로 보는 시각은 드물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듯 뇌, 유전자, 호르몬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유물론적 관점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전제를 깔아두고 인간을 본다면, 우리는 인간을 교육할 여지가 없고 교육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이 책을 통해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의 인간론을 만나게 되었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왕자와 거지" 같은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쓴 그인지라, 그의 인간론도 훈훈하고 따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책 첫 장을 펴자마자 '이 사람, 반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논리를 전개해나가고 있었다. 첫 '난쏘공' 도서라 긴장했는데, 이 책은 난해한지는 모르겠지만 공격적으로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을 불끈 솟게 해서 배송되자마자 단숨에 읽어나갔다. 내가 '젊은이'의 입장이 되어 마음 속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그를 응원하면서, 노인의 말이 납득이 되어서가 아니라 대체 어떤 근거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주장을 펼쳐나가는지 밑줄을 쳐가면서 재미있게 읽어나갔다(영어로 읽어야 해서 난해한 것일까, 책 뒤쪽 절반 이상의 분량에 영어 원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접어두기로 한다).



 

책의 영어 제목은 "What Is Man?". 인간을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의 논조는 이미 제목에 표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인간 존재에 대해 '무엇'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저자의 '무엇'은 좀 더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마크 트웨인(1835-1910) 말년인 1906년, 그의 나이 71세에 쓰여진 책이다. 그렇다면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처럼 문답법으로 되어 있는 노인과 젊은이의 대화에서 '노인'은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인간 존재가 생물학으로 설명되는 지금, 우리는 1세기 전에 나온 이 책을 다시 읽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읽어도 사람들에게 이 책 내용이 별로 이상하게 다가가지 않을 것 같아 무서워졌다. 책 전체는 아마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유행하기 시작했을 구조주의, 쾌락주의, 행동주의에 입각해서 인간을 기계(동물도 아니고 기계!!)로 치부한다. 지식인으로서 최신 과학, 심리학을 섭렵했을 저자는 그에 입각해서 이 논쟁적인 책을 썼을 듯하다.

 

1. 구조주의

구조주의에 의하면 인간은 마치 기계처럼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다. 저자가 줄곧 '타고난 기질'을 강조하는데, 현재 업데이트된 지식에 대입해보면 인간이 발생하면서부터 뇌와 몸에 새겨진 어떤 구조이다. 대학원 강의 시간에 뇌 관련 서적인 "꿈꾸는 기계의 진화"를 읽으면서 교수님께서는(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노교수님이 굉장히 많이 생각났다) 유전과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환경을 많이 잡아도 5%도 안 될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통상 50%:50%라고 말하는 것은 상징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는 'FAP(고정행위패턴)'이라는 것을 공부하기 위해 읽었는데 생명의 생존에 유리하게 몸에 새겨진 기억으로서, 위기가 닥치면 의식 이전에 즉각적으로 나타나며, 오랜 시간 몸에 축적되면서 유전 되어온 것이다. 나는  FAP를 설명하기 위해 이나스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구조주의나, 마크 트웨인이 인간을 기계로 보는 시각이나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았다.

 

2. 쾌락주의

인간은 철저히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선한 행위라고 여기는 것들도 잘 분석해보면 그 기저에는 자기 만족이라는 목적이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기는 프로이트를 비롯해 심리학이 일종의 매력적인 과학으로 여겨지던 때였을 것이다. 인간의 성격, (이상) 행동의 원인을 분석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소설 속 '노인'도 도덕적 행위의 진정한 원인으로 여겨지는 자기 만족이라는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결과인 행동'을 놓고 '자기 만족이라는 원인'을 찾아간다. 이러한 분석 방법의 한계는 목표(가설)가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점, 하나의 결과에 하나의 원인을 연결 짓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노인도 역시 자기 만족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으며, 도덕적 행동은 사실 오로지 자기 만족에서 나온다는 명제를 확고한 결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행동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 원인들 사이에서 항상 보편성을 갖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원인들과 결과 사이의 개연성을 찾기도 쉽지 않다. 노인의 논증은 결과를 놓고 원인을 소급해가는 추측일 뿐인 것으로 보였다. 

 

3. 행동주의

노인은 '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행동주의가 선호했던 용어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 사고, 양심과 같은 것을 훈련과 교육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보인다. 교육학에서도 20세기를 주도했던 '행동주의'야말로 인간을 기계로 보고 일정한 투입(자극)이 있으면 기대하는 산출(반응)이 뽑아져 나오리라고 믿었다. 동물을 놓고 실험함으로써 인간도 그 실험 결과대로 행동하리라고 예측했다. 심지어 인간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실험을 자행했던 여러 행동주의 심리학적 실험들이 존재해왔다. 행동주의 교육학에서 교사는 학생을 대상으로 강화와 처벌이라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을 훈육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인간을 기계로 대하는 것의 폐해와 위험성에 대한 반성이 많아졌기 때문에 행동주의 교육학은 일정부분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의 교육 전문가들은 '시험 성적이 오르면 용돈을 준다'거나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칭찬스티커를 붙여주고 1등에게 선물을 준다'는 등의 방법을 두고, 교육적이지 못하고 효과도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행동주의 메커니즘에 따르다보면 자극의 극치는 계속 높아져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오거나 상황은 악화되기 쉽다.  

 

위와 같은 일련의 사고방식들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항상 문제가 되어왔던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노인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철저히 기계인가? 그 이전에 노인은 과연 인간을 철저히 기계로 보고 있는 것이 맞는가? 그는 '기계'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기계적인 인간이 움직이게 하는 자신의 선택을 비롯해, 환경, 힘, 충동, 주변의 영향 같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철저한 기계로 본다면 타고난 기질이 좀 더 좋은 방향을 향해 뻗어갈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여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노인은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이 교육의 과정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잘 파고 들어가보면 '자유로운 선택'을 말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를 일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어떤 힘이나 영향력에 의해 인간이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내몰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그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노인이 '자유의지'와 '자유로운 선택'을 구분하는 근거를 납득할 수 없었다. 위에서 말했듯 인간이 특정한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꼭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프로이트VS 사르트르의 생각을 비교해본다면...).

"노인: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힘에 의해서 선택이 행해진 것이네. 자유의지라는 것은 언제나 단어 상으로만 존재해온 것일 뿐 거기에서 멈추고, 내 생각에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에 다른 단어를 사용할 것이네... 바로 "자유로운 선택"을 말하는 것이지...

"자유의지"라는 것은 자네가 만족하는 대로 행동하는 구속되지 않는 힘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은 두 가지 사이에서 어느 것이 가장 옳고 정당한 것에 근접하는지를 결정하는 비판적 능력인, 단지 정신적인 과정을 뜻하는 것이지..." p. 142

 

그런데 결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라는 기계에 대한 노인의 해결책은 인간을 창조한 '신'의 존재에서 뽑아져 나온다. 대화 내내 굉장히 과학주의에 기반을 둔 듯한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던 노인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시대적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는 진화론과 지적설계(혹은 창조)론 둘 다를 옹호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지적인 기계를 만들었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으니 겸손하자, 타고난 기질은 결정적인 것이어서 결국은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일련의 대화의 결론이 되는 것 같다. 책 내용이 논쟁적이어서 비난을 받을까봐 신이라는 테제로 마무리한 것일까, 마크 트웨인의 신념이 정말 그러했던 것일까. 나도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했음을 믿지만 위에 적은 이유들 때문에 인간이 철저히 기계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그 비율이 5%인지 50%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셨다고 믿는다. 젊은이의 말처럼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삶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찾을 여지가 없어지며, 우리가 열심히 교육하고 열심히 살기 위한 추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과연 우리는 20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거짓말에 기만 당해온 것일까?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타당한 면이 있기 때문에 어쨌든 지금까지도 그러한 사고방식이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중심과 타자중심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경계고침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기와 타자 사이 틈에 있는 그 무엇, +a로서 작용하는 어떤 힘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이 신경전달물질로 인해 뉴런과 뉴런 사이에서 오고가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전기신호이든, 실체로 존재하는 영혼과 영혼 사이의 어떤 에너지의 교감이든 자기라는 기계 안에 갇힌 단순한 인간들의 모임이라는 설명 방법으로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나니 2011년에 이 책을 출간한 의도가 사뭇 궁금해진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기에 누군가는 노인의 말에 200%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서, 다른 분들의 리뷰가 기대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1.07.13. 신고 공감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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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0. 인간이란 무엇인가 – 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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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0. 인간이란 무엇인가 – 이가서   마크트웨인의 책. 많이 읽어보셨는지요  저는 허클베리핀의 모험, 톰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아서왕 궁전의 코데티컷 양키까지.. 대략 4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들은 그 때 (19세기 말) 특유의 모험과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이 잘 가미되어 있는 재미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극빈층의 소년, 장난꾸러기 소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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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0.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가서

 

마크트웨인의 책. 많이 읽어보셨는지요 

저는 허클베리핀의 모험, 톰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아서왕 궁전의 코데티컷 양키까지.. 대략 4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들은 그 때 (19세기 말) 특유의 모험과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이 잘 가미되어 있는 재미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극빈층의 소년, 장난꾸러기 소년, 부랑자, 양키까지... - 양키라는 표현에서 머리를 올백으로 올리고 금발이나 형광색 염색한 양아치를 연상하진 마시길... - 평범하거나, 하층민이 주인공이 되어서 생기는 다양한 사건들이 위 책들의 내용입니다.

 

이런 소설만 읽은 독자로서는 사회비판적인 기질이 강한 작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반골적인 기질은 소설에만 나타나진 않습니다. 작품만이 아닌 사회비평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그의 가벼운 느낌의 소설만 연상해선 뭔가... 접점이 없다는 느낌이 들지만, 내용자체는 훌륭합니다.

 

이 책은 단 두명의 인물만이 등장합니다.

 

노인과 청년.

노인은 인간은 기계 외부 자극에 의하여 움직이는 도구 라고 주장하고, 청년은 이에 반박합니다.

철학? 사상? 하여간 이런 쪽으로 본다면 노인의 생각은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를 부정하며 인간은 완전히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청년은 선한 의도가 인간에게 있다고 하지만, 노인은 이 의도 자체가 자신의 만족, 행복을 위해서라고 반박하고 있구요.

 

책의 구성은 이렇게 주장과 반박, 재반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즘의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부모의 영향이 일부 있고, 환경의 영향도 일부 있다고 합니다만...

 

마크 트웨인이 생각한, 혹은 이 책속의 노인과 청년이 생각한 인간에 대한 이 글을 읽고 인간이란, 하나의 존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현대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이 이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자신의 이야기로 각색했는지, 아니면 거의 유사한 상황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참.. 신기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보면 개미의 사고능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과학자며 정치가인 프랭클린이 설탕물컵에 모여드는 개미를 실험한 내용입니다.

개미가 설탕물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설탕물컵 주위에 타르를 칠하거나, 혹은 테이블의 다리를 물이 있는 접시에 고정시켜, 개미가 다가가지 못하게 방해했지만, 개미는 천정으로 올라가서 다이빙해서는 결국 설탕물을 먹었다는 얘기입니다.

정주영회장의 경우는... 부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빈대가 계속 괴롭혀서.. 방에 있는 밥상의 4다리를 물양재기에 넣어, 빈대가 다가오지 못하게 했지만... 3일 정도 후 달려들어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를 보니.. 마찬가지로 다이빙 했다는군요..

 

동일한 사례가 나와서 흥미로웠습니다.

 



u***z 2012.06.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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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의 인간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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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질문이자, 완전한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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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질문이자, 완전한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인간은 우리 자신에 대해 물음이니만큼 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해답에 이르는 길은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는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인명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생명을 잃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테러범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비단 노르웨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 곳곳에서 도저히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등한 동물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떻게 이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귀결점은 인간이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기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도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톰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허클베리핀의 모험’ 등으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이 일흔한 살이라고 하는 노년에 인간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직고 답을 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마크 트웨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무거운 주제도 가볍고 시니컬하며 유쾌하게 다가온다. 해학 속에서 깊은 고통과 절망을 끄집어 내어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글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와 같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철학자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에게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다.

 

책은 노인과 젊은이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을 차용한 것 같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가 전개되어서인지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 외부로부터의 힘, 충동, 본능, 교육과 훈련, 인간관계, 자기만족과 인정욕구 등이 이 책에서 소재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고민하고 많은 생각을 한 부분들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오래 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상당한 흡입력이 있다.

세상은 갈수록 더 복잡해져가고 각박해져가고 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이 지구는 더더욱 살기 힘들어지는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보면 그다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점점 나빠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 전의 글임에도 상당히 공감이 간다. 대화체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편하고, 책의 말미에는 원문을 수록하여 번역문이 아닌 원문만이 가지는 참맛을 느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지식은 행동으로 표출이 되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은 부분이라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하겠다.

c*****1 2011.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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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음울한 인간성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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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이란 이름을 듣노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두가지 작품이 있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두 작품은 그 심오한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아동용 작품으로 오래전부터 인식되어 오고 있으며 만화와 동화, 에피소드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우리의 유년기와 학생 시절을 함께했다. 그러나 실상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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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이란 이름을 듣노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두가지 작품이 있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두 작품은 그 심오한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아동용 작품으로 오래전부터 인식되어 오고 있으며 만화와 동화, 에피소드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우리의 유년기와 학생 시절을 함께했다. 그러나 실상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노라면 이 작품들이 어릴 때 우리가 지겹게 접했다는 이유로 그냥 넘길만큼 만만한 소설이 아님을 알게된다.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9세기 후반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흑인 노예에 대한 신분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여 그 당시 미국 사회를 아이의 눈으로 날카롭게 풍자하며 미국 사회 혹은 인간 사회 전반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예리한 시각을 여지없이 뿜어낸다. 그래서 나에게 마크 트웨인은 동화 혹은 청소년 용 소설을 썼던 유쾌한 작가라기 보다는 그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음울한 예각으로 사회를 해부하는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작가로 기억된다. 이런 작가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썼다는 마지막 작품은 나의 기대를 한껏 받기에 충분했다.

 

 

마크 트웨인의 마지막 작품. 인간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마지막 성찰을 다룬.애초에 내가 기대한 마크 트웨인의 인간을 바라보는 모습은 다소 희망적이길 바랬다. 그의 작품에서와 같이 풍자당하고 놀림당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인간에 대한 보다 낙관적인 시선이 마크 트웨인의 마지막과 함께 했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기대는 처음부터 들어맞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어느정도 예상했다. 인간을 기계에 비유하며 실상 인간은 그 아무것도 아니라는 노인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예상했다. 그러한 음울한 이야기로 시작한 노인의 이야기 속에서 청년은 그 노인을 반박하고 서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그 진행 속에서 노인은 청년이 가지고 있는 인간 특유의 근거없는 자신감을 냉혹하게 난자한다. 인간의 이성과 그로 인한 문명의 발전, 욕망의 제어와 그에 대해 작용하는 양심과 선행, 도덕에 대해 노인은, 마크 트웨인은 철저하게 비웃는다. 그것은 그저 인간이 기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의 다름아니라는 것을 노인은 청년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설명한다. 그리고 청년 역시 자신의 근거없는 낙관주의에 부끄러워하며 어느덧 노인의 이야기에 수긍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그 결말에 다다를 무렵 나는 다시 한번 제대로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반전은 시작일 것이라고. 마크 트웨인이, 노인이 비록 인간은 쥐와 같은 형식과 같은 격을 가진 생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래도 인간이라는 것에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정말 반전이 일어났다. 분명 반전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 영화에서 반전이 없음이 오히려 반전으로 나가오는 것처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시 그대로 이야기가 끝이난다. 오히려 더 암울한 시선을 함유한채. 인간이란, 인생이란, 인간사회의 운명이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그렇게 음울하게,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까지처럼 살아갈 것이라는 노인의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마크 트웨인이 인간과 인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이러한 마크 트웨인의 시각이었기 때문에 그가 노예제도를 그렇게 한없이 비판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다름 아니다라는 근원적인 생각은 바로 인간 모두에 대한 동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란 하등 잘난 것이 없는 생물일진대, 마차 자신들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그릇된 오만 속에서 모든 폐해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냥 다 똑같은 것이라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한 마크 트웨인의 생각은 19세기 후반 인간의 오만과 그에 따른 광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어쩌면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조금 식상한 일일지라도 모르겠다. 이미 인간의 이성과 오만의 광기가 한차례 끝나고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있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마크 트웨인이 실존주의 시대 이전에 전하는 구조주의의 이데아가 별 것 아니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인간 이성의 궁극의 시대에서 백년 후의 이야기를 꺼내는 마크 트웨인을 통해서 우리는 선지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지식인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이란 백년 전이나, 백년 후나 결국 같은 것임을 다시 한 번 맴돌며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j*******s 2011.07.3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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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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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년전만 하여도 나는 오늘날처럼 인터넷과 휴대폰이 보편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물론 지금에야 이와 같은 문명의 이기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버겁지만, 삐삐라고 불렀던 호출기를 가진 아이들도 한 반에 몇 되지 않았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살아감이 크게 불편하지는 아니했던 듯하다.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언급이 될 수 있었으나 구체화된 모델이 제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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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년전만 하여도 나는 오늘날처럼 인터넷과 휴대폰이 보편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물론 지금에야 이와 같은 문명의 이기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버겁지만, 삐삐라고 불렀던 호출기를 가진 아이들도 한 반에 몇 되지 않았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살아감이 크게 불편하지는 아니했던 듯하다.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언급이 될 수 있었으나 구체화된 모델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꿈꾸다 스스로 지쳐 버리곤 했었다. 나이 든다는 사실이 두려운 까닭은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어느 순간부턴 적응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매년 커져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인간이 지닌 힘은 거대해서, 사실 세상의 변화는 모두 인간이 이끄는 것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길 꿈꾸면서 동시에 자신이 만든 문명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 중이다. 이처럼 이중적인, 너무도 이중적인 인간의 능력은 그렇다면 어느 정도인 것일까? 정말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힘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제 능력에 대한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일말의 회의감이 교차하는 상태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과 이 책은 좀처럼 어울리지를 않는다. 이런 생각이 어쩌면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아마도 <톰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과 같은 모험심 그득한 작품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내 뇌리를 스치는 걸,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느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은 그래서, 마크 트웨인이 부르짖기에는 너무도 진지하다고 생각했었다. 철학자가 던지기에도 다소 무게감이 있는 이 제목으로부터 이 노년의 작가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감조차도 잡기가 힘들었달까. 제목이 작품을 결정한다는 말은 다소 어패가 있을 수도 있는데, 왠지 이 작품은 그런 점이 없지 않은 듯했다. 진지한 제목에 부합하는 참으로 진지한 대화가 두 인물 사이에서 오가는데, 난 어느 쪽의 발언에 좀더 집중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두 인물은 노인과 젊은이로, 지금은 예전만큼 경로효친사상이 크지 못하다고도 하나 노인이 젊은이보다 많은 생의 경험을 갖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노인으로부터 기대할 순 없겠지만 난관에 봉착했을 때 아무도 보지 못할 거대한 숲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노인은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나이듦이 허락하는 지혜는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하물며 100년 전, 200년 전이라면 더더욱. 난 작가가 좀더 무게감을 실어 설정한 인물이 노인일 거라고 강력히 믿는다. 그런데 내 자신이 아직 충분히 나이들지 못한 탓일지, 이 노인이라는 사람의 발언이 크게 마음에 와닿지를 않았다. 인간이 기계라니, 이 말이 가당키나 한가? 만일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기기에 불과합니다.” 라는 발언을 들었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미소를 머금고 “고맙습니다!”라고 냉큼 고개 숙여 인사할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의 노인은 그런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젊은이에게 제 사상(?)을 피력하는 데에도 아주 적극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당신의 모든 것은 물질로 귀결된다는 식의 유물론을 접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다시 만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 시절, 안간힘을 써서 부셔보려 했던 그 이론. 하지만 애쓰는 내 모습도 결국에는 내 머릿속에 자리한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낸 무언가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의 왠지 모를 서글픔, 허무함을 이 책 속 젊은이는 느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젊은이의 논조는 처음에는 반항적인 기질이 농후해 보였으나 차츰 노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못해 아주 적극적으로까지는 아니지만 나중에는 경청하고 동조하는 식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설득당한 것이다. 반박할 길이 없기에...

그렇다면 왜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인간상을 설정한 것이고 노인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에게 드러낸 것일까? 아무리 노력하여도 당신은 기기라는 전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으며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하다는 이 이론이 대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어란 말인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제 능력을 과시하기에 급급한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해 본다. 능력이 많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보단 분명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턴가 제 능력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타인을 무시하고 결국에는 제 자신을 배반하는 식의 활동을 펼쳐왔다. 자연을 짓밟고 오로지 인간만이 살아갈 공간으로 지구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것이 발전이자 진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의 믿음이 생성해낸 결과가 마냥 바람직하지만은 않았다. 보다 많은 부를 추구했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만큼의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를 물으면 왠지 부끄러워진다. 누군가는 너무 먹어 병에 걸리는데 다른 누군가는 기본적인 식생활을 하지 못해 굶어죽는 이 사회의 기괴한 현상 역시 우리 자신이 긍정적이라고 믿어왔던 방향을 향해 걸으면서 발생한 것이다. 뛰어난 인간의 뛰어난 생각이 만들어낸 그리 바람직하진 못한 현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제 원하는 대로 해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지금 우리는 몸소 체험 중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우리 자신이 기기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억지로 남을 억누르면서까지 내 자신의 안위를 바란다면, 그 순간엔 잘 모르더라도 결국엔 그 모든 행동이 나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 경도되어 인류 스스로의 고결함에 대해 망각한 상태이다. 하지만 우리가 애타게 부르짖는 돈도 알고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특정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사고가 만연한 세상, 하지만 진정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건 돈이 결코 아니다. 무언가는 할 수 있고 또 다른 무언가는 할 수 없는 우리, 있는 그대로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기기가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운 무언가로서 빛날 수 있다. 과연 인간다운 존재로서 이 땅에 선 인간이 몇이나 될까. 투박하고도 어찌 보면 극단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노인의 견해를 접하며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아직은 젊은이에 더 가까운 나의 생각이 산산이 부서져 노인의 생각에 닿기까지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q*****2 2011.06.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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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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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티비 만화 영화로 톰 소여의 모험을 본 적이 있다.   재밌게 보았던 그 작품의 작가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것을 안 것은 세월이 좀 더 흐른 다음에서였다.   유명 작가라는데 실은 아직도 그 이름에 대한 명성의 꼬리만 부여잡고 있을 뿐이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   마크 트웨인, 그가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으로 나의 앞에 나타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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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티비 만화 영화로 톰 소여의 모험을 본 적이 있다.   재밌게 보았던 그 작품의 작가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것을 안 것은 세월이 좀 더 흐른 다음에서였다.   유명 작가라는데 실은 아직도 그 이름에 대한 명성의 꼬리만 부여잡고 있을 뿐이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   마크 트웨인, 그가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으로 나의 앞에 나타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어려운 철학적 질문을 제목으로 만들어냈다.   그것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게된 이유이기도 하지만서도 말이다.

  이 책은 어느 노인과 어느 젊은이의 주고 받는 대화로 채워진 글이다.   노인은 인간이란 단지 기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고, 젊은이는 그 이야기에 반대하며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젊은이라면 궁금한 것은 참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고, 노인은 그 나름의 연륜으로 삶의 철학을 아직은 푸릇한 삶의 언저리에 있는 젊은이에게 가르침의 미덕을 베풀어야 하는 나이에 있음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젊은이가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이 독자인 나의 귀도 쏭긋이 열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유일한 충동이란 자기 자신에게 인정을 받는 것에 비롯된다고 말하는 노인, [인간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일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을 위해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네. / 38쪽]  그는 인간의 희생, 선함조차도 자기 만족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납득을 해낼 수 없는 젊은이는 계속 노인에게 더 자세한 설명들을 요구하고 그는 예를 들어가면서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철학을 하나 하나 살펴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인은 마크 트웨인이고 젊은이는 독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책 속에서 의문을 느끼고 서서히 이해를 해나가는 젊은이의 모습들이 결국 독자인 나의 모습과 겹쳐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무거운 주제의 대화를 하고 있는 노인과 젊은이였지만 나는 노인의 그 철학들이 싫지 않았다.
  조금씩 설득되어지기도 하고, 공감되어지기도 하고, 혹은 갸웃거려 보기도 하고, 진지한 대화의 시간이었지만 그 진지함으로 삶의 철학은 더 깊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있네만 실은 그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라네. / 70쪽]  그는 인간이란 외부적인 영향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지 인간의 두뇌는 어떠한 생각도 창출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직 자기 만족만을 위해 돌아가는 기계,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노인의 이야기들을 되씹어 본다.   마크 트웨인, 그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하필이면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고 있는 책으로 첫만남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 반하게 되는 더욱 큰 이유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m******i 2011.07.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