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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녹록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역사적으로 위인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을 담아내려면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역사적 사실과 허구, 실재와 상상력사이에서 지난한 싸움을 벌이면서 집필하지 않을까.
한승원 작가하면 지금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로 더욱 알려져 있지만 오래 전에 그의 작품 ' 불의 딸'과 '포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자세한 내용은 떠오르진 않았지만, 토속적이면서도 묘하게 원색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작가로 인상에 남아있다. 과연 이 한승원 작가는 다산 정약용이란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했을까. 역사적 인물 이외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그리고 그 내면으로 얼마나 파고 들어갔을까. 이것이 소설 '다산'을 택한 내 초미의 관심꺼리였다.
그런데, '다산'에서는 오래전 그 한승원의 인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데다 역사적 인물이 정약용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보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다 이내 맥이 빠져왔다. 내가 역사적으로 접했던 '다산'과 소설 '다산'으로 만난 인물 간에는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다산이 살았던 역사적 흔적을 충실하게 좇아가기는 했지만, 그의 인간적 면모를 그려 내지 못하고 외면적인 행동 묘사에 머물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소설이 역사적 존재를 흡사하게 복원하는 과정이 아닐텐데..언제 어디에서 지냈고 누굴 만나서 어떤 학문을 논하고 어떤 책을 썼는지는 알겠지만, 다 어디선가 보고 들은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만 같았다. 새로움이 없고, 따뜻한 피가 도는 정약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몇년 전에 읽었던 김훈의 '칼의 노래'가 떠올랐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영웅이 아니었다. 임금에 대한 회의나 자신의 고뇌를 잘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적 인물 이순신과는 전혀 다른 그의 심리가 눈에 그려졌고, 그런 소설 속 이순신의 흔들림과 갈등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다산1'2'를 통해 정약용의 속내를 조금더 알아보고, 사료에서 만날 수 없었던 그의 인간적 면모를 보고 싶었는데, 실재에 파묻혀 가려져있던 인간 정약용, 그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었건만 이 작품은 내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정약용은 너무 상투적이라,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가 자료에 매몰된 나머지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일까.아니면 역사적으로 알려진 그 인물 그대로 훼손시키지 않고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작품에서 시작은 다산의 회혼식을 불과 하루 앞둔 날에서 비롯됐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신유 박해 시절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고, 유배가게 된 시절로 회귀하게 되고 그러다 다시 회혼식날 세상을 떠나는 정약용에게도 돌아오는 형식인데, 중간중간 에피소드가 토막 토막 이어 지기도 해서 더러 흐름이 끊어지는 듯 했다.
정약용을 객관화적으로 접근한 것인지,아님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본 것인지, 다산에 대한 작가의 인간적 이해나 호오의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썼을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작가가 다산의 어떤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해주려고 했는지, 그를 통해 어떤 메세지를 주고 싶었는지, 그 의도가 애매하기만 했다.
역사가 학문의 성격이 짙다면 문학은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고로 역사에서보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텐데. 역사라는 시간적 거리를 지우고 정약용과 좀 더 허심탄회하게 만나고 싶었건만..인간 정약용의 모습은 별로 손에 잡히지 않았고, 여전히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지식인 정약용의 모습 그것으로 남게 되다니. 아쉬웠다. 꽤 긴 작품이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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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1분 독서 - 제291호 (2010/03/02)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 첫째로, 생각을 맑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맑아지지 않으면 더욱 맑게 하고, 둘째로, 용모를 단정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정해지지 않으면 더욱 단정히 하고, 셋째로, 말을 반드시 필요한 것만 말하되, 말을 뱉은 다음 그것이 꼭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싶어지면 더욱 잔말을 줄이고, 넷째로, 행동을 무겁게 하되 제대로 무거워지지 않으면 더욱 무겁게 하여 애쓴다. (한승원, <다산 2>에서) ***** 지난 주 다산 정약용의 얼이 배어있는 ‘사의재(四宜齋)’를 찾았습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와 첫 거처로 잡은 주막의 뒷방 이름입니다. 다산은 유배생활이지만 절망하지 않으려 했으며, 오히려 그 기간을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다짐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방대한 양의 저술을 통해 다산학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마당히 해야 할 네 가지를 실천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땅히 네 가지를 해야 할 방’인 사의재에서 다산과 같이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생각을 맑게 해야 하겠습니다. 생각을 맑게 한다는 것은 머릿속을 비우라는 의미보다 우리의 생각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라는 경구로 들립니다. 내 편 네 편이라며 당파를 짓는 것부터 점과 관상 등 이단 잡술에 빠져드는 것, 사리사욕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것 등이 모두 우리의 생각을 흐리게 하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혹여 이러한 생각들을 가진 적이 없었는지, 이러한 것들을 인생의 무기로 삼지는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또한, 다산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속으로 마음을 쏟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상도 이에 따라 변한다.” 용모따라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행동에 따라 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얼굴은 얼의 꼴이라고 합니다. 정신이 나타나는 곳이 얼굴이라고 합니다. 지금 나의 얼굴은 어떠한 상태인지, 미소를 띠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보다 가려야 할 말을 가려 말하는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합니다. 지식없이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들은 곧 밑천이 드러나고 맙니다. 그동안 백 마디의 말을 믿음직하게 했다 할지라도 한 마디의 거짓말이 그동안의 신뢰를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알량한 일편의 지식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듯 떠벌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머릿속 생각보다 손과 발을 통한 실천은 중요합니다. 실천이 없는 꿈은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천이 중요하다며 앞뒤 따져보지 않고 돌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생각이 없는 짐승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며 총칼들고 은행을 털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행동을 무겁게 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대함에 있어 신중하게 하고 정성을 다하고, 그 행동에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경박한 행동으로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살펴봅니다.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했으면 합니다. 매사에 경계하고 삼가는 태도로 스스로를 다스린 다산처럼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맑게 하고, 얼굴에 미소를 돌게 하여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을 함에 있어 떠벌리지 않고 가려 말할 줄 알고 신중히 행동함은 물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하는 그런 아침을 매일 맞이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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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잘 비틀어 꼬면 소리가 되고 그 소시를 잘 내면 빛이 되고, 그 빛은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요.. 다산의 무엇이 작가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발목이 잡혀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일까. 다산1에서는 경상도 장기에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이야기지만 다산2편에서는 드디어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이 그려진다. 그의 둘째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우이도)에 있고 그는 그가 있는 우이봉에 올라 그의 스승이나 같은 형을 먼발치에서 쳐다보듯 산의 정상에 올라 그리워한다. 어떻게 해서든 천주학쟁이가 아니라고 밝힌 다음에 한양으로 올라가려 노력하지만 그의 유배기간은 너무도 길었다. 그 유배기간동안 형제는 한번도 만나니 못하고 그의 형이 흑산도에서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작가는 그런 다산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꿈속에서나마 몰래 둘이 만나는 것으로 그려 놓았지만 형을 향한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다산, 시대를 일깨운 웅대한 산. 그의 큰 산을 잘 탄 초의, 반면에 그를 꺾으려 했던 혜장은 그의 산에서 헤매이다 죽고 만다. 얼마나 큰 산이었기에 그들이 그토록 그의 산에서 헤매이기도 하고 오르려 했을까. 유배기간동안 오백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해배가 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집필에 전념하여 손에 마비증세가 오기까지 했는데도 그는 후세를 위하여 집필에 몰두했다. 그를 헤아려주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가하면 그를 우러러보며 큰 산으로 받들던 이들 또한 많았으니 소설로 만나는 정약용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그의 유배가 풀리던 날 강진 사람들은 강진의 태양이 한양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모두가 나와서 그를 울며 배웅했으니 그 속에 그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직한 연두색 머리처네의 여인 또한 그를 배웅했지만 정약용은 가족을 위해 그여인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사람이 진실하다면 통하듯이 그의 본심을 알고 무리를 지어 그를 따르던 강진의 사람들 그가 오랜시간동안 머물렀던 '다산초당'을 몇년 전에 여행을 갔다가 앞에서 그냥 지나치고 만것이 후회가 된다. 그가 태어난 두물머리도 가 보고 싶고 강진도 다시 가고 싶어졌다. 그의 발자취가 얼마나 큰지 보고싶다. 소설은 <흑산도 하늘길>을 읽은후라 그런지 두소설이 주고받듯 연관이 있어 흐뭇하게 읽었다. 이곳에서 아직 젊은 '초의'를 만났는데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초의' 로 만나고 싶다. 작가가 13년 동안 동거동락한 '다산' 이 한사람의 인간으로 아버지로 스승으로 생생하게 잘 그려져 다산과 관계된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 만들것 같다.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의 책들도 기회가 되면 읽고 싶다. 그저 국사시간에 줄줄이 외웠던 제목만이 아니라 책을 펼쳐 그가 한 자 한 자 새겨 넣은 진실을 대하고 싶어졌다. 작가 한승원과 만나는 역사와 인물은 인간적이게 만나서일까 더 가슴으로 와 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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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한 비밀이 있다고 해 지난 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다산선생에 대한 얇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읽자니 어렵고, 그냥 두자니 자꾸만 눈에 밟히는 '계륵(닭갈비)'과 같은 책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한승원 선생께서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펴내셨다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찌기 정약전 선생을 다룬 책 [흑산도 가는 길]과 다산 선생의 제자 초의스님을 다룬 책 [초의] 그리고 다산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를 펴낸 적은 있었고 그 책들에서 다산선생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다산 선생을 주인공으로 책을 냈다는 데 그분의 사명은 다한 듯 마지막 완결을 짓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인 한승원 선생 스스로가 "드디어 힘겨운 큰 산 '다산'을 넘었다" 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그에게 이번 소설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책의 소개글에서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를 토대로 완성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소설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18년 간의 삶과 유배 이후 노년의 삶을 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정약용 선생의 일생이 조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약용선생이 천주교 신사였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책은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다고 봐야겠다. 소설인 만큼 저자 스스로도 그 답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그의 형 정약종과의 대비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철학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 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종교임과 동시에 학문으로 삼은 것이다. 가문은 폐족되고, 자신과 형님은 서로 떨어져 유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 인간의 절대고독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던 다산선생의 학자적 정신에 감동을 받는다. 유배생활동안 만나는 주막집 주모와 연두색 머리처네, [주역]을 대상으로 한 혜장 스님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영원한 제자이자 벗이었던 초의 스님까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운다. 눈에 보이는 듯,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 읽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페이지를 더할수록 다산 선생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 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참고문헌을 수배중에 증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발견한 흘림체의 한글로 쓴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산비결]인 듯 하다 했다. 방례초본의 핵심을 간략하게 적은 책이라고 하나, 한글로 된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해 써진 책이라고 보여졌다. 내용 또한 짐짓 놀랄 만한 것들과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라고 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양반으로써는 감히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그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언문(한글)로 쓴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음을 보면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된 점은 "흥인지문을 서울의 동쪽에 세우고, 숭례문을 서울의 남쪽에 세운 것은 임금이 어짊과 예로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다. 착취와 탐학을 일삼는 임금과 관료들은 백성들을 벌벌 떨게 하는 법으로 다스리지만, 자애로운 임금은 백성들을 어짊과 예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문구였다. '예禮를 높이 받들어라'는 뜻으로 당시 명필이었던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일부러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초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그 현판은 불타서 아래로 내려져 있고, 그 후로 일어나는 국내의 사건들로 인해 온 국민이 떠들썩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임금이 백성들을 대할 때 '어짊과 예'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물이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배라고 하는 임금이 잘 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인데, 배가 풍랑을 만나 심하게 요동치는 요즘의 세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예감하게 한다. 또한 [다산비결]에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고, 임금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다. 여기에서 현재와 비교해서 생각하건데 온 국민이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이고, 나라를 평온하게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여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것은 그들이 하늘인 백성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므로 그들이 근무태만을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일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니 그런 벼슬아치는 도둑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성이 먹거리를 걱정함이 당연하듯, 정치하는 이들은 국민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남아있는 아쉬움은 다산선생과 같은 훌륭한 학자이자 선각자가 지금 이땅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며, 가족을 아끼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학자이자 양반이 오늘날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더욱 그를 뒤쫓게 만든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새로고쳐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내친 김에 얼마전 구입한 책 [다산어록 청상]도 함께 읽으려 한다. 얼마전 정조대왕 '이산'을 극화화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영민함과 부모에 대한 효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자애로움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지금 시대의 부름은 '다산 선생'를 찾고 있다. 이젠 그를 부를 차례다. 이 책이 그를 찾는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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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은 사실적인 요소에 작가의 개인적인 시선을 담아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그 작가가 또한 역량이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수많은 자료와 고문을 통해 팩션을 모으고 다시 소설화 한다는 그 방대한 작업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작가 한승원의 말처럼 13년의 사업의 결과물이라면 실로 엄청난 노력과 세월이다. 그래서 기꺼이 '역작'이라 하지 않았을까?
정약전 선생의 이야기 [흑산도 하늘 길]에서 다산의 제자인 초의의순스님의 이야기 [초의]로, 그리고 다시 다산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이야기 [추사]로 이어지던 다산을 향한 그의 구도행각이 이 소설로 완결되어졌다. 그러니 읽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내내 등장하던 '두물머리'가 머릿 속에서 맴돈다. 이제는 그 옛모습 찾을 길 없이 변하였겠지만 다산이 어딘가에서 그 물길을 내려다 보았으리라 생각하니 새삼 그곳이 의미있어진다. 7년 전 찾았던 두물머리는 어느 구석엔지 숨은듯 자리해 찾기도 어려웠는데 직접 발 딛었을 때엔 다산과의 인연은 몰랐었다. 소설의 시작부터 가까운듯 느껴지는 다산! 이제 그를 만나러 간다.
'두 가지 약을 섞어 마신 정약용'이라는 소설의 시작이 말해주듯 정약용은 주자학과 천주학을 두루 아우르는 사상과 철학을 갖고 있었다. 꿈 속 이벽의 말은 아마도 다산 정약용 일생의 사업에 대한 해법과도 같다. " 어느 한쪽 약만 먹으면 안 되고....고루 섞어서 마셔야만 합니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 정약용에 대한 배움에선 항상 '실사구시'란 용어가 나왔었다.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던 조선 후기에 선생의 삶의 모습은 선구자적인 것이었다.
어느 역사나 그러하듯, 진정 난사람, 된사람이 행세하기엔 세상이란 그릇이 너무 작다. 다산 역시 그를 해하려는 정적의 무리들과 끊임없이 싸워야했다. 그로인해 18년이라는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했다. 권력이 무엇인지 시공을 초월하는 그 힘이 사뭇 무섭다.
사도세자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조임금은 쉽사리 누군가를 믿지 못하며 신임할 만한 신하일 경우엔 수시로 시험하곤했다. 기세등등한 노론파의 영의정 심환지와의 논전은 읽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도록 적당히 긴장되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다행히 운이 따라 주었던듯 다산은 결혼한 지 60년 되는 기념일을 맞을 만큼 긴 역사를 품었었다. 덕인 세자의 진맥을 하고 약을 처방한 바로 그 다음 순간 세자의 죽음을 보게 된 것이 이를 증명하듯 절묘하다.
역사가 이렇듯 재미있는데, 어찌하여 국사 시간은 그리 따분하고 답답했는지. 한승원 작가의 '다산'은 이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재미와 지식이 적당히 어울려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을 멋드러지게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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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의 저자. 다산 정약용을 소설로 만나보다!
역사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요즘 시간도 부족하고 거기에 두권짜리 책이었던지라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다산 정약용을 만나고 그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겐 커다란 행운이었다.
얼마전 정조대왕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을 하여 많은 이들이 그 드라마를 보면서 눈시울이 젖어들기도 했으며 또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역사가운데에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정조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던 그는 노론의 시기질투의 대상이었고, 결국에는 1801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정약용, 정약전 형제를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보낸다. 서로가 서로를 찾아 울부짖지만 함께할 수 없기에 더욱 더 구슬픈 그들의 형제애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터지는 아픔을 선사하기도 한다.
솔직히 유배지 생활을 했던 과거 역사속의 인물들이 불운하기는 했지만 학문적 성과는 그곳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나타냈는데 다산 정약용 또한 그 당시의 생활이 자신의 생활엔 독이 되었겠지만 학문적 성과는 가장 컸던 것이 사실이다. 유배생활에서의 혜장스님과의 만남은 다른 모습의 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다산은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로 완성한 한승원 역사소설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다양하고도 단단한 스토리라인을 기반으로 소설적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었다. 역사 소설이 대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특히 다산은 지인과 함께 읽으면서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서 그런지 더욱 재미있었던 듯 싶다. 두 권이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사극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다.
정약용의 사상엔 주자학과 천주학이 공존공생하고 있다. 그는 주자학을 어린시절부터 읽다가 새로운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천주학을 접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하느님을 깊이 흠모하였지만 나라에서 금하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천주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 신앙이 어디로 가지는 않았나보다. 그는 그 요체를 가슴에 새겨 담고 있었다. 결국 그는 그 두가지 사상의 양면을 가지게 된 것이다. 햇살 가득 받고 있는 사제복을 입은 서양인으로 인해 천주교를 접하게 된 다산 정약용의 삶.. 이 책을 통해 더욱 깊이 있게 만나볼 수 있으리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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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느낀점]
<다산 1>은 정약용 선생의 귀양살이 전의 모습을 담은 책이라면 <다산 2>는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의 귀양살이를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각도는 1801년 신유사옥(벽파가 천주교를 내세워 정적을 숙청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기구하고 신산한 운명을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하는 데에 푯대를 맞추어 썼다. 다산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사랑이 서울살이하던 그를 전라도 장흥 바닷가의 토굴로 끌고가 가두어놓고 다산 선생의 선비 사업을 흠모하고 본받으며 13년의 세월을 살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다산>이다.
경상도 장기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정약용에서 한양으로 다시 올라오라는 명을 받았다. 천주학쟁이로 알려진 조카 황사영이 잡혔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무 관계도 없는 황사영과 정약용을 묶어 기어이 남인 잔당들을 모두 쓸어 없애야 한다고 논의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정약용을 죽이는 것이었다. 정약용은 분명 하늘의 운을 타고 난 자가 틀림 없었다. 그들도 고백을 하기를 지금은 비록 가엾은 처지지만 대단한 천운을 타고난 그가 부러웠다. 결국 황사영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귀양살이를 떠난다.
복은 하늘의 선물이라고 했던가! 약용은 전의 귀양살이와 달리 스스로 살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양반의 체면을 뒤로한채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남의 대문을 두드려야 했다. 하지만 그가 오기 전에 이미 관아의 엄혹한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낯선자들을 집에 들이지 말라는 엄명과 수상한 자가 들어가 숨으면 관아에 발고하게 하라는 오가작통 명령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바로 약용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자존심을 뒤로한채 남의 대문을 수십번 두드렸지만 그때마다 거절 당했다. 모든 희망이 땅으로 꺼질무렵 어느 처자가 자신을 모시고 싶다며 직접 찾아 왔다.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때에 따라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처럼 그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 바로 다산초당이었다. 강진 귤동 다산 중턱의 자그마한 서옥의 주인인 윤단이 그 서옥을 약용에게 빌려준 것이다. 그는 18년 귀양살이 동안 무려 1천5백여 권의 책을 읽었고 저술한 책들만 4백여 권이었다. 그의 소문을 듣고 학문을 사랑한 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고 헤매는 자와 방황하는 자가 생겼다. 그 만큼 약용은 큰 산이었다. 정약용이란 산에 들어와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무작정 들어오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데, 그리하여 정약용이라는 숲도 보고 나무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애초의 자기 길을 잃고 절망한 것이다. 그가 바로 스님 혜장이었다. 반대로 초의라는 젊은 승려는 다산의 기운을 받아 훌쩍 커져버린 도깨비같은 존재였다. 똑같은 가르침을 받고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다산 1>에서도 언급했듯이 학문은 그림자일뿐이다. 수많은 세상의 학문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아니라 비판하고 판단하여 자가만의 특이한 주장을 펼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의혹이나 진리란 것은 풀어놓고 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하잘것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은 그냥 별이 아니고 내 눈이 그 별을 만든다' 그것은 인식의 차원을 넘어 내 눈의 창조와 개혁을 말하는 것이다. 약용은 그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로 보았고 그때부터 <방례초본>과 <목민심서>를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가 죄인으로서 오랫동안 강진에 유배되어 살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고 허무에도 물들지 않고 견고하고 알차게 살아배길 수 있었던 것은 대나무같은 그의 심지때문이었다. 제자 초의는 그를 영감이라 부르지 않고 탁옹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대나무껍질 탁자와 노인 옹자를 붙여 만든 호였다. 대나무는 껍질은 단단하고 속은 허령하게 텅 비어 있는 우주적인 나무이다. 전쟁 때는 창이 되는 무서운 나무이기도 하고 토막 내서 구멍을 알맞게 뚫으면 피리젓대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잘 흔들리지만 절대로 몸을 굽하지 않은 나무이다. 탁옹 선생은 대쪽같은 단단한 데다 또 정직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의 성격때문에 붙여진 호였다. 스스로를 묶어 가둘 줄도 알고 자유롭게 풀어놓을 줄도 아는 그였다. 초의가 말하기를 "석가모니 부처에게서는 부처님을 배우고, 공자님 맹자님에게서는 어짊과 예를 배우지만, 탁옹 선생에게서는 사람을 배웁니다."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약용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탁옹 선생은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라는 소명을 받은 자'임을 깨달았다.
혜장과 정약용의 대화에서 깊은 공감을 느낀 부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거래 관계'라는 점이다. 하늘과 땅이 거래하고, 꿀벌과 꽃이 거래하고, 부처님과 중이 거래를 하고, 중과 신도가 거래를 하고, 사또와 아전이 거래를 하고, 임금과 백성이 거래를 한다. 문제는 그 거래를 얼마나 착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자비롭고 향기롭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거래를 하되 상대의 몸과 마음에 흠집을 내지 않는 거래를 해야 한다. 새들이 하늘을 날지만 하늘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꿀벌은 꽃한테서 꿀하고 꽃가루를 가져가지만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정받이를 도와준다. 약용은 그 전에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약용의 삶은 거문고와 같았다. 거문고 줄에 쓸 명주실을 만들려면 누에고치 스물다섯 개에서 한 줄(25종사)을 뽑는데, 큰 줄을 꼴 때에는 그 25종사 80개를 비틀어 꼬아서 한 개의 굵은 줄을 만들고, 다시 그 굵은 줄 세 개를 꼬아 큰 줄 하나를 만든다. 그러니까 누에고치 6천개를 죽여서 이 줄 하나를 만든 것이다. 거문고의 소리는 죽어간 누에고치 2만여 마리의 원들의 합창을 하는 소리이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울화가 치밀어도 자신의 마음 헤아려주는 이 하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안달인 그들에게 말을해봐야 죽음뿐이었다. 누에고치가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음을 만들어낸것처럼 고통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잘 비틀어 꼬면 소리가 되고, 그 소리를 잘 내면 빛이 되고, 그 빛은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요." 거문고 만드는 장인의 말이다.
그는 불혹의 나이에 떠나갔다가 예순을 앞둔 나이에 반백의 머리칼로 고향에 돌아 왔지만 그의 자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읽기와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손에 마비가 오도록 죽음이 눈 앞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천주학쟁이로 오해를 받아 18년을 귀양살이한 그였지만 마음은 하느님을 버리지 않았다. 천주교가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천주학을 버렸고 정학으로 돌아 섰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주자학을 비판하고 그의 글에서도 천주학이 깔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사상과 철학은 천주학과 주자학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새로이 디자인한 것이다. 정약용 선생을 다산으로 만든 원동력은 어쩌면 유배생활(고통과 인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배생활을 통해 몸을 낮추게 되었고, 양반 신분이 아닌 죄인의 몸으로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살아 생전에는 내놓지 못한 '금전'을 기록한 것이다. 그 책은 후세 사람들을 위해 남긴 책이다. 다산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 인류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다산에 관한 많은 책이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다산 정약용을 만나보길 바란다.
[책 속의 말]
"스스로 짜낸 지혜로써(창조적으로) 위기를 탈출할 줄 아는 너의 아버지를 능가한 도통한 도둑이 되었느니라."
모든 잡념들은 생산적인 것이 아니다. 나를 헛되이 소비하는 것일 뿐이다. 이불 속의 달콤한 맛을 꿈지럭거리며 즐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세상을 반만 살게 하는 악귀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물처럼 구름처럼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흘러가면서 가뭇없이 사라지게 된다. 사라진다는 것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일단 마음에 걸린 것들을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그것들이 결과 무늬와 색깔을 속속들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생각은 샘물하고 똑 같다. 샘물은 자꾸 품어야 새로운 물이 솟아나온다. 생각은 늘 꼬리를 물고 거미줄처럼 기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품어내지 않으면 생각이 가득 차 있기 마련이고, 가득 차 있으면 넘쳐 흘러가 없어지거나, 다음의 새로운 생각이 솟아나오지 않게 된다. 한 생각이 나오고 다시 한 생각이 따라나오고, 또다시 한 생각이 따라나오는 것들을 붙잡아 기록할 만큼 붓이 따라주어야 한다. 달필을 쓰는 손끝의 놀림과 머리 회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붓을 놀리면 생각이 풀린다.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주문을 하곤 하네. 우리는 그 주문대로만 배를 저어가서는 안 되네. 그랬다가는 배가 산으로 가고 마니까. 나의 나아갈 길에 대한 세상의 주문을 우리는 다만 참고를 할 뿐이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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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사후 어린순조를 대신해 정순왕후가 대리첨정을 시작했다. 정조가 살아계심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던 남인들은 1901년 노론벽파가 천주교를 내세워 남인들을 내친 신유사옥으로인해 많은 피를 보게되고 정약용또한 그 칼날앞에 자유로울수 없었던 천주학 쟁이였던지라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떠나게된다.
그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한차례 고초를 더 치른 다산과 둘째형 약전은 전라도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지가 바뀌고 있었다. 한양에서의 모진 고문과 심문끝에 무죄로 풀려난 그들이 전라도 나주까지 동행하며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뒤로하고 강진에 도착한날 그를 기다리는것은 끝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있는 노론벽파 홍희운과 서용보의 계략이었다.
그를 평가하는데있어 정조와 함께 이루었던 수많은 업적들도 큰 역활을 하고있지만 강진에서의 유배생활당시 진정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 떠내려간 수많은 저서들이 더욱 큰 빛으로 평가하는데는 주저하지 않는사실이다. 또한 귀양간 아비로인해 좌절할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마음이 배어나오는 편지들도 큰몫을 차지한다.
그의 사상과 철학이 되었던 주자학과 천주학의 이념아래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고귀한 정신을 깊이감 있게 만나며 유배중인 선비들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게된다. 노론벽파의 계략으로 노독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를 찾아헤매던 그는 성밖 주막집에서 강진에서의 삶을 시작하게되고 그후 보은산방 다산초당으로 잠자리가 바뀌어가고 있었다.
흑산도 먼 섬에서 고생하고 계실 형님에 대한 애틋함과 거문고 현을 연상시키는 여인과의 인연을 비롯하여 강진아전들의 자재를 가르치는 훈장님으로 때론 불쌍한 백성들을 바라보며 느꼇던 안타까움들을 책으로 풀어내며 그렇게 길고 긴 유배생황을 하고있는 그에게선 자신만의 깊은 사고가 살아있었다.
우리시대 대표소설가 한승원선생님의 이야기로 만난 다산의 일대기속에는 다산이외 그 이야기의 작가인 한승원선생님의 생각과 사상과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것이 무엇일까 콕 찝어내고 싶은 뭔가 모를 특별함이 분명 숨어있었다. 다산의 정신과 우리문학을 마주하는 작가의 사고가 한데 어우려져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던듯싶다.
다산의 심오한 뜻을 풀이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글로써 이렇게 풀어놓고있는 작가의 역량이 절로 존경스러웠다. 다산의 일대기를 통해 불교를 대표하는 도와 조선시대를 대표하고있는 주자학 그리고 새로운 문물을 주도하고 있던 천주학까지 그속에 깃들여있는 깊은뜻을 헤아려보게된 시간으로 한승원이라고하는 우리시대 한 이야기꾼의 큰 업적을 마주하게된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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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정약용에게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다산 정약용이 훌륭한 학자 훌륭한 관리라는 것도 알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목민심서와 같이 훌륭한 책을 지으신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정약용 보다는 홍국영에게 더 관심을 가졌고, 더 매력을 느낀게 사실이다.
홍국영이 권세를 잡게되면서 더 많은 권력을 탐하다 죽음을 당했지만, 권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움켜쥐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라면 욕심을 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산>을 읽고 난 후, 정약용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다산>에서도 내가 정약용에게 느낀 올곧은 성품은 다름 없었지만.. 내가 별로 매력을 못 느꼈던... 너무 바른 사람은 지루하다고 느꼈던 그 올곧은 성품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크게 2부분으로 나뉜다. 1권에서는 정약용과 천주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로 인해 신앙으로 믿지만, 조상의 제사 모시기를 거부하는 천주교에 대해서 알고 나서는 다시 정학으로 돌아서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지 못한다.
조선 후기, 천주학을 믿고 신봉하는 세력들을 탄압했던 당시, 한때 천주학을 신봉했다는 사실은 정약용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게 된다.
정조가 승하한 이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때를 기다리던 노론 세력들은 정약용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을 하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순교하게 되고 그 중에는 약용의 셋째 형님은 약종도 포함되어 있다.
2권은 유배를 간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지내는 생활들이 주 내용이다.
한승원 작가님의 글은 처음 접해보는데.. 정약용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고 많은 생각을 하셨는지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한승원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한때 천주학을 신봉했던 정약용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천주학을 버리지만...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하느님의 존재까지 부정하지는 못했다는 작가의 해석이 흥미로웠다.
평소 팩션 소설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주로 미스테리나 스릴러라는 장르였기 때문에.. 처음 접해보는 정통 역사 소설은 처음이라 자칫 지루한 내용은 아닐까 하고 우려를 하였으나....
한승원 작가는 정약용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모진 시련을 겪고 형님과 동거동락했던 벗까지 잃게 되는 상황에서도 적들에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대나무의 껍질은 단단하고 속은 텅 비어 있는 나무지만 전쟁때는 창이 되는 무서운 나무이기도 하고 토막내서 구멍을 알맞게 이으면 피리젓대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잘 흔들리지만 절대로 몸을 굽히지 않는 스스로 묶어가둘지도 알지만 풀어놓을줄도 안다는 초의 선사의 말처럼 대나무 같았던 정약용...
그의 외롭고 고독했던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끝까지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정약용에게 존경을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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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 “다산”은 한승원 선생이 고증과 상상력으로 쓴 정약용의 자서전같은 소설이다. 읽기 전까지 와 읽은 후의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큰 산을 올라 천천히 그 산을 느끼며 내려온 느낌이었다. 말보다는 실천으로 세상을 봐라보았고, 민초들과 몸을 부대끼며 한 세상을 살다 가신 분이다. 그의 사상 속에는 주자학과 천주학 심지어는 불교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통합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형제이면서도 타인처럼 느껴졌던 셋째형 약종, 약용을 만나고 더 길을 읽어버린 혜장과 약용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알아준 초의, 그는 제자였지만 또 다른 스승이였다. 약종과 혜장은 한쪽 날을 가진 도(刀)를 쓰다 흩어져 버렸고, 초의는 검을 써 남는다. 초의가 말하는 검은 부처의 도이지만 항상 부처의 도에 따라 살지는 않는다. 겉모습의 형식에 얽매이지 말라 라고 나는 받아 들였지만 그들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인식의 차이는 분명 달리 하였다.
진리는 죽어간 사람들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잘 살수 있도록 편하고 유용하게 쓰여야 진정한 진리란 어찌 보면 실사구시란 말에 더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천주학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명령과 부처님의 명령을 똑같이 생각하는 초의, “나는 눈이 하늘의 별을 만든다” 라고 말할 때의 “나의 눈은 어떤 눈인가”라는 물음에 각성한 자의 눈이어야 한다는 대답, 그것이 선비다 라는 초의와 약용의 생각에 그것은 유학을 대표하는 선비와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소명을 받은자라고 동질감을 표현하지만 이것이 참다운 진리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형제이면서도 타인처럼 느껴졌던 셋째형 정약종 그는 한동안 도교에 빠져있다 가장 늦게 천주학이라는 것을 접했으나 철저하게 신앙으로 믿었고 학문으로만 받아들였던 약용은 현재살고 있는 조선이라는 유교문화속의 한계상황을 인식했으며 늘 공격만 하는 노론의 역할 또한 그가 그럴수밖에 만들었지만 그는 그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큰 하나의 산이 되었다. 정치판의 모습이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는다는 생각 속에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노론은 정약용을 제거하기 위해 있지도 않는 죄의 명목을 만들어 보지만 하늘의 운인지 그들 마음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력을 위해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노론벽파에 아버지를 잃은 정조임금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중심정치에 배제된 남인과 서얼들을 등용시킨다. 임금의 총예에 위기를 느낀 노론벽파는 정약용을 견제하지만 정조임금 사후 남인들의 처지는 벼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남인들이 정치권에서 축출되고 한때나마 마음은 나누었던 지기들 마저도 변절하고 남인들을 탄압하는데 선두에 선다. 한때나마 정약용 자신 또한 천주학이라는 것에 빠졌었지만 1801년 신유사옥으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었지만 가족과 지인들의 생명은 지키지 못한다. 셋째형인 약종과 조카사위인 황사영은 사지육신이 찢기는 형벌을 받지만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순교한다. 약종과 약용사이의 인식차이는 크게 나타나고 있었다. 정약용은 인간관계에서도 되도록 적을 만들지 않았으며, 변절한 친구에게도 따뜻한 손을 내밀어 친구의 노모를 보살펴주었고 위기 때마다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내는 일등공신이 된다.
어떻게 보면 다산의 삶속에서 1801년은 그의 삶속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1801년의 삶은 “예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보지도, 듣지도, 행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라도 강진의 귀양지에서 18년동안 갇혀 지낸 세월동안,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둘째형님 정약전의 죽음을 들었고 아들을 잃었다. 형제 중에서 가장 자신을 이해하며 뜻이 맞았던 형님이었지만 그의 죽음마저 지킬 수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가지고 고통 스러워 한다. 갇혀있는 삶과 그 속에 일어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학자로서의 면보가 많은 저서로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 속에 느끼는 절대고독과 그 고독과 맞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생의 모습에서 인간으로서 한편으론 안됐다는 마음과 숭고한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 출판된 정민교수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서는 다산이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을 저술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글쓰기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 지역민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민초들에게 다가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실생활에 필요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많은 저술을 남기었다. 강진의 다산초당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오히려 위협으로 다가선 사건에서 인간에 대한 실망과 그 실망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순화시킨 주모의 이야기, 아들과의 편지에서도 알수 있듯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페족된 가문의 구성원으로 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았서인지 편지부분에서 아들에 대한 미안함도 느껴지며 노론에 대한 분노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다산의 주변 인물들을 크게 낯설지가 않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이산에서의 인물에 잘 나타나있고 드라마에서 접한 이벽과 정약종, 김범우 등 천주교의 순교자로 남은 사람과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 및 초의선사등 친밀하게 느껴졌다. 조선후기 영조 조를 시작으로 헌종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으므로서 당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와 지금의 사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서도 그들이 왜 그렇게 밖에 살수밖에 없는 사회현실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다. 다산은 말보다는 실천을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임금과 나라, 민초들을 진정으로 사랑했고,형제와 가족들에게 또한 한사람의 가족으로서 행한 사랑은 그의 저서들과 편지, 역사의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대나무의 껍질은 단단하고 속은 허령하게 텅 비어 있는 우주적인 나무이구만이라우. 전쟁때는 창이되는 무서운 나무이기도 하고 토막내서 구멍을 알맞게 으면 피리젓대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잘 흔들리지만 절대로 몸을 굽히지 않는며 스스로 묶어가둘지도 알지만 자유롭게 풀어놓을 줄도 안다는 초의 선사의 말에 다산선생의 성품이 잘 나타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초의 선사의 소설속 말에 전적으로 나는 동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