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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거나 넘어서거나 <하얀 성>을 읽고 주말 아침부터 알람 시계를 대신하여 뚱땅뚱땅 피아노 소리가 잠을 깨운다. 아이가 피아노 연주회에서 선보일 「터키 바자르」라는 곡을 치고 있다. 멜로디가 마치 복작복작 시장통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자르’가 시장을 뜻한단다. 때마침 12월 책모임 선정작이기도 한 소설의 배경이 터키(라 쓰고 ‘튀르키예’로 읽는다)인 까닭에 왠지 모를 기대와 설레임으로 책장을 열어본다. 시작부터 화자인 ‘나’(를 앞으로 ‘그’라고 부르자)는 이탈리아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터키 함대에 붙잡혀 긴박한 상황에 놓인다. 낯선 세계의 사람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라고 요구하자 나름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는 “No, Yeah!"라고 답하며 죽음 말고 그들의 노예로 삶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의 주인인 ‘호자’는 그와 생김새도 퍽 닮았으며, 그처럼 여러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학구열이 높아서 두 사람은 국적과 신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금새 가까워진다. 호자는 그와 대화할 때면 ‘우리’라고 칭하면서 둘만의 선을 오가지만, 정작 같은 나라 사람들은 ‘그들’ 또는 ‘바보’라고 부르면서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비판하기 일쑤다. 어느 날, 호자는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나는 나일까?(74쪽)” 그는 즉답을 피하고, ‘글쓰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들과 죄의식을 불러일으켰던 일을 포함하여 자신의 거의 모든 경험들을 호자에게 이야기한다. 둘이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이 일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상대방에게 섭섭함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듯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본질을 볼 수 있다.(84쪽)”는 호자의 말대로 두 사람은 일종의 거울치료를 주고받듯 거울 앞의 내가 자신인지 상대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서로에게 스며든다. 십수 년이라는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분신 같이 지내온 둘은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는 데에 공을 세움으로써 정치 지도자(술탄)의 신임을 얻고 나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이웃 나라와의 전쟁이 잦아질수록 개인적 그리고 국가적으로 두 사람이 일생일대의 결심을 해야할 날도 가까워진다. 이쯤에서 ‘하얀 성’은 대체 언제 나오는지 궁금해하는 독자가 있을 테다. 소설의 후반부, 그러니까 그와 호자가 술탄의 명을 받고 전쟁에 나가 다른 나라의 땅을 밟고서야 비로소 보게 된다. 하얀 성에 대한 해석은 독자마다 다르겠으나,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장치임에는 틀림 없다. 하얀색은 스스로 바탕색이 되어 그 위에 무슨 색이든 칠할 수 있거나 다른 색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아울러 소설 속에서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으며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로 묘사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상향 혹은 목적지로 여겨질 수도 있다. 두 사람이 하얀 성에 다다랐을 때 각자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본다. 성은 오래된 끝 혹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반환점으로 이들 앞에 서 있다. 돌아서든 뛰어넘든, 어떤 선택이든 해야하는 순간,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상대에게 오래된 삶을 벗어주고 새로운 삶을 입는다. 즉 서로가 삶을 바꾸어 살기로 마음 먹고 성을 넘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호자와 그가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설전을 펼쳤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내가 누군지, 나는 어째서 나인지를 따져물으면서 나보다는 가족, 친구, 연인 등 나를 둘러싼 주변인, 곧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기억들을 소환한다. 겉모습도 무시할 순 없겠으나 무엇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지닌 기억, 지식, 정보 등을 속속들이 모두 알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나는 네가 되고 너도 내가 될 수 있는 일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호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리라.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것과 앞으로 할 것들이지요.(187쪽)” 어쩌면 소설은 앞서 호자의 물음처럼 ‘나는 누구이며, 나는 왜 나인가’라는 정체성 문제, 그 질문 너머의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체성 그 너머의 것을 회의하고 그것을 넘어서보자고. 그럼 그 너머에 새로이 자기를 찾는 길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다시 고쳐 묻는다. 도대체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 번 확립되면 고정불변한 존재가 정체성이라는 것 또한 고정관념인지도 모른다. <하얀 성> 앞에 서서 돌아서느냐, 넘어서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말리뷰 #하얀성 #오르한파묵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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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릏나 파묵 저, 하얀 성 리뷰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처음 접해 본 작가입니다. 학자인 나가 노예로 잡혀가면서 자신의 모습과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요. 두 사람이 점점 동일시되는 느낌에 기뻐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
| 오르람 파묵 작가님 작품이라 구매했습니다. 역시나 내 이름은 빨강처럼 이슬람 문화권이 배경인 소설입니다. 이슬람 문화권은 잘 모르다보니 약간 비유나 상황적인게 잘 와닿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배우는 게 맞나봐요. 살짝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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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은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내이름은 빨강 이라는 작품으로 훨씬 더 유명한 작가이지만 나는 이 하얀 성이라는 작품으로 이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이 대체로 동서양 문화의 차이와 정체성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주제를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읽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왜 나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며 오랜만에 차분히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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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이스탄불 태생인 작가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동등하게 보고, 구분짓지 않을려는 의도를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서양의 문명이 우월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무기'에 비유하며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소설은 동양을 대변하는 터키인 '호자'와 서양을 대변하는 베네치아 출신인 '나'의 만남에서 쌍둥이 같이 닮은 외관에 놀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외모 뿐만이 아니라 호기심 많은 '호자' 덕분에 '나'를 노예로 삼고 같이 지냄으로써, 서로의 내적인 지식을 공유하며 닮아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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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서 모임은 러시아를 떠나 좀 더 따뜻한 나라인 남쪽, 터키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긴 하지만 문학은 정말 생소한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터키라는 공간이 주는 신비로운 느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실제 내가 영국에 살며 본 터키인들은 서양인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가부장적인 동양적 사고를 내면에 들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단 식성부터가 서양인들과 달랐으니까. 터키하면 케밥이었다. 그들에게 고기를 써는 칼은 어색했다. 이들은 야채와 향신료 그리고 새요리를 즐겨 먹는다. 서양 노예가 동양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주인은 정작 노예의 나라인 이탈리아로 돌아가 20년 동안의 터키 생활을 기초로 한 책을 만든다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그게 과연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호함을 머금고 끝을 낸다. 사실 나는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받고, 무라카미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며, 이 상을 가지고 심사위원까지 도박에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꽤 많은 불신을 갖게 되었다. 이 파묵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이 사람은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 자연스럽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행이도 이 책이 나름 쉬운 편이고 두껍고 난해한 책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나는 이 책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점성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작년에 긴긴 '코스모스 읽기'를 마치며 천문학에 대해 기초 지식을 맛본 터라 이 책의 배경이 내게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터키 전통의 역사적 순수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 나라 문화의 우수함을 같이 얘기하며, 이 제목 속 '하얀 성'이 바로 그 타인이 절대 침략할 수 없는 그 민족만의 특성과 문화 순수성이 아닐까라는 답안에 다가갔다. 비록 나는 100p정도만 읽고 갔지만 그 이야기는 풍성했고 이 이야기를 품은 채 완독하니 다시금 모임 속 이야기가 살아나며 완독한 후 더 얘기를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재미있는 책이었고 다음에 꼭 오르한 파묵 책 읽기를 해 보고 싶다. |
| 오르한 파묵은 참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듯한데 '내 이름은 빨강'과 함께 '하얀 성'이라는 작품이 특히 완성도가 있습니다. 파묵이 국내에서도 많이 각광을 받는만큼 그의 저서가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두 권의 책을 추천드립니다. (먼저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그 다음으로 하얀 성 읽기를 권합니다.) |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초기 작품이다. 1986년에 발표한 역사 소설로서 17세기 튀르키예를 배경으로하고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인 "내 이름은 빨강"의 시대적 배경과도 유사하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 문명과 튀르키예 문화의 만남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그의 취향과 주제의식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
| 대여 이벤트로 읽어보게 된 책입니다. 대여 기간이 짧아 급하게 읽은 게 아쉽네요ㅠ 개인적으론 글이 약간 어렵다고 느껴져서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나름 괜찮게 읽은 것 같아요. 평소에 읽는 글들과는 확실히 달라서 신선한 느낌.. 어려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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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작가의 작품은 난생 처음 읽어보지만 역시 인간은 시대와 언어와 문화가 아무리 달라도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묶일수 있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답변을 도출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제게 있어서 독서는 언제나 나 자신을 좀 더 잘 알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터키의 인물들을 배경으로 바라본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해답을 추구하게 만드는 동력으로서 나와는 다른 어떤 타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체성이란 결코 독립되고 분리된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며,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나 자신을 비추고 나 자신을 반영한 타자 혹은 타문화에 의해서 그 해답에 조금이라도 찾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추구하는 절실한 시간의 과정이야말로 내가 나일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요소가 아닌가 합니다. 나름 좋은 시간을 누릴수 있는 독서였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느긋하게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