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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주일이 넘게 '더버빌가의 테스'를 읽었다. 조금 기분이 오락가락하던 시기에 읽어서인지 힘들게 읽었고 그녀, '테스'를 감정적으로 바라보며 애증까지 생길정도로 감정과잉이 일어났었다. 테스가 믿는 사랑이, 테스가 하는 사랑이, 테스가 이상화시킨 사랑의 대상이 벅차게 느껴졌다. 그녀는 어쩌면 저리도 사랑 앞에 맹목적일 수가 있는지, 무모하리만큼 에인절이 만들어 놓은 '순결한 사랑' 앞에 그렇게도 순종적일 수가 있는지, 너무나 뜨거운 마음을 그리도 참고 참으며 지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생겼다. 여기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있다. 빼어난 미모가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고통과 시련이 되어버린 노동자 계급의 '테스'가 있고, 모든 인습과 종교적인 사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답습을 하며 테스의 고통을 사랑의 이름으로 가중시키는 에인절이 있다. 또 한 남자, 알렉이 있다. 그는 테스의 소녀시절을 송두리 채 망친 사람이며 육체적인 사랑이 우선인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테스가 바라보는 두 남자에 대한 시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다는 점이다. 마치 처음 인식된 것이 전부라고 믿는 아이처럼 테스는 반응한다. 한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적인 남자로, 또 한 명은 파렴치한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과 말에 집요하리만큼 집착하며 사랑을, 증오를 가진다. 하지만 두 남자는 결국은 똑같다. 둘 다 테스가 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질 않는 모순을 지닌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테스의 '모습'만을 추구하고 욕망한다. 에인절은 현재의 테스의 깊은 사랑을 철저하게 외면한 채, 과거라는 이름의 망령에 시달리며 테스를 잔인하게 감정적으로 내치고, 알렉은 뛰어난 외모만큼이나 삶에 대한 열정을 지녔던 테스의 이성을 무시한 채, 그녀의 육체만을 소유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테스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갈등하게 되고 혼란을 느끼게 되며 자신을 더 이상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도 테스는 처음 인식된 그녀의 이상적인 사랑, 에인절에 대해 끝까지 순결, 무결하게 맹목적인 믿음을 보인다는 사실에 감동이 되기도 하고 그녀의 순진함에 어이가 없어지기도 한다. '더버빌가의 테스'를 읽는 동안, 읽은 후에 '사랑'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왜 '사랑'은 현재를 사랑하지 못할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의심과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나는 과거에 집착하며 그녀의, 그의 과거의 사랑에 궁금해 하며 뭘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과거의 사랑보다 내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는 여러 생각들이 든다. 테스가 그저 애원의 눈길로 사랑의 마음을 다해 에인절에게 원했던 대로 '현재'의 사랑을 가장 중요시하며 살아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테스가 바란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말이다. '더버빌가의 테스'는 오랜만에 사랑의 과잉(?) 속에 있을 수 있게 해준 책이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고1 때 소녀의 편견으로 무자비한 잣대로 읽었던 테스는 진정한 테스가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진정한 '테스'를 만나고 싶다면, 그래서 테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다면, 사랑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고 느끼고 싶다면 다시 어른의 시각으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테스'가 어떤 사랑을 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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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사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 야한(?)소설로 알려져 있기도 했었다. 그때는 원제명인 [더버빌가의 테스]가 아니라 그냥 테스였는데.. 어쨋든 야릇한 호기심에 꺼내 읽었다가 '참 답답한 여자구나'라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로 테스를 다시 읽어볼 생각을 못했었는데, 영문학 강의에서 일부를 읽게 되었는데 어린시절 받았던 인상과 참 달랐다.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졌던 여성이.. 참 자신에게 충실하고 또 행복하기를 갈구하는 여성으로 다가온 이유는 내가 그 동안 살아오며, 삶이란 내 뜻대로만 흘러갈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어서 일것 같다. 테스는 참.. 안타까운 소녀이다. 행복한 농촌의 소녀일수 있었던 그녀지만.. 산업혁명의 소용돌이속에서 몰락해버린 농촌의 현실속에서 어쩔수 없이 부자집 하녀로 가게 된다. 그리고 바람둥이인 알렉에게 겁탈을 당하고 사생아를 낳게 된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주변환경의 일방적인 간섭속에서 뒤틀려버린 그녀의 운명.. 하지만 그녀는 꽤 담담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그 소용돌이를 견디어낸다. 그렇기에 다시 자신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은 여전히 그녀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순결한 여성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던 [더버빌가의 테스] 사회적 통념에 따르면 테스는 순결한 여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의 진정한 사랑이였던 에인절이 그녀를 떠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였다. 하지만..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사랑앞에 더없이 순결한 여성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에인절이 그녀에게 돌아왔던 이유도 바로 그것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 이 책을 읽으면서는 도리어 '진정한 순결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에인절이 테스를 바라볼때의 시선의 변화역시 참 흥미롭다. 그녀를 더없이 순결하게 바라보며 온갖 찬양의 수식어를 가져다붙이던 그의 시선은 그녀의 고백 이후로 극단적인 변화를 갖게 된다. 그 고백전이나 후나 테스는 같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것도.. 지극히 나를 위한, 그리고 나에 의한 위안이고 유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 사랑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를.. 그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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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넉넉하지 못한 집의 막내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쁘고 화려하고 새것과는 별 인연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린시절에는 그걸 몰랐지만 크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랬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는 친구들이 별 감동없이 오히려 지겹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보던 그림동화책도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시절을 보냈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오래비의 방에서 발견한 총천연색의 책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친구들은 아무도 모르는 꼬마 니꼴라의 독특한 그림체, 원서로 쓰여져 있어 무슨 내용인지도 알지 못했지만 화려한 색채와 낯선 모습의 사람들과 문화에 자꾸만 눈길이 갔던 아스테릭스. 그리고 만화같았던 두 권의 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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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책을 손에 쥐고 그 대단한 두께에 겁부터 먹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한마디로 재미있었고 비교적 읽기 쉬웠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있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작품 속 주인공에게 미안하고, 독후감을 쓰는 머릿속은 복잡하다. 이 작품에는 '순정한 여인 A Pure Woman'이란 부재가 붙어있다. 테스의 굴곡진 삶을 짚어가는 일이 바로 이 순정함의 의미를 찾는 과정의 연속이라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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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그 뜻이 조금 바래졌지만 몇 십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것 가운데 '첫날밤', 즉 '초야'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이러한 순결주의의 피해자는 거의 대부분 여자인 경우가 많다.
남자는 순결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말인가? 여자는 목숨 걸고 순결을 지켜야지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논리인 걸까? 두 번의 호란과 한 번의 왜란을 겪은 우리나라는 적에게 목숨을 구걸해 살아남은 남자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지만, 적들에게 능욕당한 여자들에게는 죽음으로 죄를 물었고 또 박해했다. 이는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라는 말인가.
이렇듯 말이 길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테스'라는 여자의 삶이 밉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사회에 내몰린 그녀가, 그녀를 죄인 취급하는 사회가, 그녀를 능욕한 남자들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테스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이유로, 아니 부잣집 하녀로 들어간 이유로, 더 나아가 주인에게 겁탈당했다는 이유로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박탈당해버렸다. 이런 불합리한 것들은 과연 누가 정의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마음들이 지금까지 가라앉지 않는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공감대를 이끌어낸 토머스 하디의 힘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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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인생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테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귀족 가문에서 하녀로 일한다. 주인집 아들에게 겁탈을 당해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다가 잃고, 목장에서 일하며 농장 경영을 준비하는 에인절과 결혼하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된 남편은 그녀를 버린다.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순수하게 사랑에 빠지고 버림받음을 반복하는 그녀를. 사회적 지위가 낮고, 여성이면 그녀가 사회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범위는 줄어드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인물들은 각각 상징성을 강하게 지니고,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평한 것이다. 아무도 진정한 소설가로서 하디의 힘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을 자기만의 열정과 특성에 내몰린 우리와 같은 사람들로 믿게 만드는 힘 말이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상징적인 면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재능이다. _버지니아 울프 도덕과 윤리, 그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응당 행해야 할 행동과 참아야 할 것들이 빚어내는 갈등은 사람들이 본인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특히 여성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얼마나 역설적인지를 잘 나타내준다. 도덕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좀더 적절히 말하자면, 도덕적인 여자는 누구인가? 한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그의 성취뿐만 아니라 의도와 충동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진짜 이야기는 무슨 일을 했느냐보다는 뭘 하려고 했느냐에 담겨 있다. _p. 507 세월이 지나도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