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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내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은 막연하게 어렵고 두려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조심스럽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한 7년쯤 전? 신문을 보다가 당시 1억 원 고료 논픽션 공모전에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란 것이 보는 이에 따라 굴곡진 인생일 수도, 재미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1년 가까이 낮에는 육아(그 당시 큰아이가 5살, 작은 아이가 3살이었다), 밤에는 글쓰기에 매진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1억 원이라는 돈 보다 욕심을 부렸던 것은 딱 하나. 육아로 인해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나 자신에게 알려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나의 20대는 늘 치열했고, 그렇게 살아야만 열심히 살았다고 위안 받는 줄 알았다. 마음의 여유는 어디를 찾아봐도 없었고, 늘 긴장한 상태로 팽팽한 끈처럼 살았다. 그런 나에게 육아는 해답도 없고 정답도 없는 항해요, 나를 바보로 만드는 시간의 흐름이라 생각되었었다. 나름의 슬럼프 기간이었고, 모든 의욕들이 상실된 기간이었다. 하지만 논픽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엄마라는 역할, 아내라는 역할, 딸이라는 역할, 며느리라는 역할 등. 나이기에 가능한 많은 이름표에 당당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극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 주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날은 울면서 글을 썼고, 어떤 날은 웃으면서 글을 썼고, 어떤 날은 흥분해서 글을 썼고, 어떤 날은 행복에 겨워 글을 쓴 나는.. 그때 처음 진정으로 나와 마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지만 못 쓰는 글이라도 글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진 이유는 바로... 그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책을 하나 만났다. “중년에 쓰는 한 권의 책”. 이제는 중년이라는 타이틀을 내 목에 걸었지만 나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읽고 배우려는 자세가 있으니.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 본다. 이 책은 현업에서 은퇴한 사람들 대부분 정해진 일과가 없는 상황을 가장 힘들어 하므로 자유라는 타이틀 안에서 글을 쓰라고 강조한다. 자유란 바쁜 일과 속에서 맞이해야 꿀맛이지 할 일이 없는 시간은 자유롭기 보다는 오히려 따분해진다고 말한다. 예전엔 “독서인”(일본에서)이라 하여 아무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책이 귀했고, 배운 사람만이, 혹은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책으로 인해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 충만하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자신을 향한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나에 대해 쓰든, 타인에 대해 쓰든 나의 자존이 머물고 있는 곳, 즉 개인 정체성을 찾아내 숨김없이 기록하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p197) 나도 내 작은 꿈을 위해 오늘도 조금씩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니.. 글로 표현하고 나를 다시 생각한다. 오늘 조금씩 투자한 시간들이 내일 더욱 빛 날 것이라 믿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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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이야기하면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거야.", "은퇴 후에는 책 한 권쯤은 쓰고싶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딱히 작가가 되고싶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책으로 한 권쯤은 엮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글을 써보는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 아예 인세를 받으며 살아가는 작가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 글을 쓴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글쓰기가 맘먹기처럼 되는 일도 아니고, 막상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어도 몇 시간을 백지만 쳐다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책 한 권쯤 쓰고싶다는 마음을 한켠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따위는 무시해버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 않던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거기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고...근데 쓰고싶다고 막무가내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작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작법이란 것은 연습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무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제 일기장에서만이 아니라 진짜 글을 한번 써보는 것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저자는 글쓰기가 은퇴 후, 행복한 제2막의 인생을 펼쳐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면 저자의 말처럼 글쓰기로 그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글쓰기가 조금이라도 쉬워지려면 우선 많이 읽어야 한다.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이 써봐야 한다. 매일 몇 장씩이라도 정해놓고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 거뜬히 한 권의 책 분량을 써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원고지 매수를 정해놓고 글을 쓰면 편하다고 말한다. 또한 글쓰기를 할 때 목차를 미리 정하라고 한다. 목차 없이 문장을 쓰는 것은 지도 없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3분할법을 이용하라고 한다.
![]() 글쓰기란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기록으로 남기어진다는 것이다. 은퇴후의 삶에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고 말하는 이 책, 글쓰기는 행복한 도전이 될 것이라 말하는 이 속삭임을 귓가에 기억하고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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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쓰는 한 권의 책 / 와시다 고야타 / 김욱 / 21세기북스 15년이 지나면 무조건 은퇴를 하겠다고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선언을 해 두었다. 그런 말을 한 지 3년이 지났으니 12년이 남았다. 은퇴를 하고 도대체 뭘 하려고 한창 팔팔한 40대의 청춘이 벌써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놀겠다고 말한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면서 즐기는 것이 내 꿈이다. 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매진하면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공병호 박사의 글을 읽고 나서 책 읽기에 15년간을 한번 빠져 보자는 생각을 하고 그 15년간의 독서를 바탕으로 나머지 삶도 책과 더불어 마무리하려고 작정한 것이었다. 그때쯤이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는 다하지 그런 생각을 가진 나의 눈에 띈 이 책은 펼치자마자 단숨에 읽기에 충분했다. 가끔씩 무슨 해괴망칙한 생각이냐는 식의 황당한 시선을 보이는 친구들을 볼 때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함께 확신이 흔들리기도 했었는데 이 책이 그런 불안을 일소해 주었다. 현업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진 일과가 없는 상황을 가장 힘들어한다. 그동안 바쁘게 살다가 자유로워졌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과연 그럴까? 이렇게 은퇴 후의 할 일 없이 따분한 일상을 저자는 멋있는 글쓰기로 인생 제 2막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은퇴 후의 글쓰기를 생활의 중요한 일부로 여기자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이다. 글쓰기가 생활의 충족과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55세부터의 인생 계획에 ‘글쓰기’를 포함시키면 어떨까. 글쓰기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기쁨을 맛보게 해 준다. 이것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과 나 자신의 체험에서 도출된 확신이기도 하다. 책 읽기와 글쓰기로 나의 삶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타당성을 한번 더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다. 저자는 은퇴 후의 글쓰기를 위해서 필요한 여러 구체적인 기술을 말해 준다. 첫째, 컴퓨터를 이용하여 글을 쓸 것을 권한다. 저자가 말한 글쓰기의 속도가 다르다거나 삭제와 복사가 자유롭고 구성과 재편성이 간단하며 그리고 보관과 정리 등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는 등의 장점들은 내가 얼마 전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째, 3분할법이라고 저자가 이름 지은 글의 목차를 정하는 방법이다. 쓰고자 하는 주제를 정한 다음 그것을 세 단원으로 나누고 각각의 단원에 소제목을 다시 세 개로 나눈 후 각 소제목마다 원고지 4매 반 정도의 분량으로 쓰는 방법이다.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에 대해서는 저자 역시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서재나 도서관에서, 출근하여 일 하듯이 매일 일정한 시간을 꾸준히 읽고 쓰는 것이 은퇴 후 생활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나의 은퇴 후 ‘백수생활’ 계획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고마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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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단오 아버님께서 병상에서 운명하셨다. 무사히 장사를 치른 후,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었다. 평소 입고 다니셨던 옷, 애용하시던 모자, 그리고 펜던트 목걸이 등을 분류하여 폐기 처리하자 오래 된 앨범 속에 있던 사진들을 모두 꺼내 어머니께서 불로 태웠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보시던 책, 헤진 성경책, 기타 잡동사니를 정리하다가 문득 나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50여 권은 족히 돼 보이는 대학 노트였다. 노트 표지엔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기간표시가 적혀 있었다. 아버님이 젊은 시절부터 경영하던 회사는 하향곡선을 그리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완전히 망했지만, 재무에 밝아 장부 정리만큼은 정말 치밀했던 분이다. 이 노트엔 가세가 기울어 남의 집에 전세로 지내던 때부터 현재까지의 신변잡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자식들이 보낸 용돈을 절약하여 매월 얼마씩 적금을 불입하고 있었다. "적은 금액일지라도 조금씩 모아 집집마다 2백만원 씩 줘야겠다"라고 기록된 내용을 읽고선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우리 형제는 아들 셋, 딸 하나인 4남매이다. 아버님의 적금 통장엔 8백여 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신변잡기엔 돈의 흐름은 물론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떠 올랐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만 남기랴. 사람은 죽어서 글을 남긴다.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이나 사마천의 '사기'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자신의 글을 책으로 남기면 기억에서 사라질 염려가 없을 것이다. 돌에 새겨 남기거나, 나무에 새기거나, 죽간에 쓰거나, 또는 종이에 글을 남기고 싶었던 인간의 욕구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생생유전 생자필멸(生生流轉 生者必滅)이다. 글쓰기는 우리를 영원함에 동참시켜 준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다고 한다. 아버님의 신변잡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누구에게나 삶의 궤적이 있기에 사는 동안의 경험을 기록한다면 책 한 권 분량으론 충분할 것이다. 과연 얼마나 꼼꼼하게 기록했는지 질의 문제는 남겠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모델로 하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렇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드물다.
글은 읽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생활기록부 취미란에 '독서'라고 당당하게 기록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를 위해서 최소한의 지식이 요구된다.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었다. 일본의 순수문학계에 이런 경계선을 허무는 작가가 등장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그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쓴다.
요즈음 책을 출간해도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 책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도구, 자료 수집 등 비용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잡지에 글을 투고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글솜씨에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봐야 한다.
만년필은 대량의 글을 빠르게 쓰는 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루에 원고지 20매 이상은 무리다. 펜을 쥘 수가 없어 악필이나 난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로 글을 쓰면 악필도 난필도 없다. 특히, 컴퓨터는 고령자에게 유용한 글쓰기 도구이다. 키보드에 익숙해지면 입력과 수정 모두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일생에서 집을 짓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집짓기는 설계부터 시공 그리고 보수공사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건축과정에 참여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글쓰기도 이에 못잖다. 집을 짓는 것은 타인에게 맡길 수 있지만 글쓰기만은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다. 한 글자씩 쌓아 올려야 하는 중압감이 있지만 이는 기쁨이기도 하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알 것이다. 산행을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글쓰기도 산행과 비슷하다.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목차가 필요하다. 등산 전에 미리 길과 방향을 머리 속에 넣듯이 글 쓸 때는 미리 내용을 구상하고 거기에 맞게 써야 한다. 목차를 보면서 전체 내용을 체크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짧은 글이 모여 긴 글이 되는 것이다.
'읽기'의 연장선상에 '쓰기'가 있다. 글을 쓰려면 먼저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여기서 자료란 기존 작가들이 발표한 글을 의미한다. 먼저 읽어라. 그래야 글이 술술 써진다. 읽지 않고서는 쓸 수 없다. 원고의 목차를 만들고 나면, 쓸 수 있는 문장부터 써야 진도가 나간다. 시바 료타로의 원고를 보면 처음에 썼던 글자의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삭제와 수정을 몇 차례 했기 때문이다.
은퇴 후 글쓰기를 생활의 일부처럼 즐기자. 글쓰기는 나를 성숙시켜 준다. 좋은 글을 쓰기위한 훈련도 해보고, 글쓰기에 최적인 환경도 만들어 보자. 이제 연령, 성별, 그리고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고픈 말을 글로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차근차근 준비하면 조만간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이 수중에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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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책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 책을 발견하자마자 꼭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행동에 옮겼습니다. 책 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 책을 쓰는 노하우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평상시에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두며 좋은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서 매일 매일 글을 써야 하며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 단순한 문장이지요? 사실, 저는 어떤 커다란 노하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15일만 연습하면 저자가 될 수 있다거나 또는 한달만 연습하면 책을 써서 1억을 벌수 있다와 같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자극적인 노하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서재에 대한 저자의 표현력에 빨간색 볼펜으로 줄긋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요. '서재는 주인이 읽고 자신의 영혼을 담아두는 그릇이다. 함부로, 서재에 들어오는 것은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영혼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엄청난 표현력이죠? 같은 하루 3끼를 먹는 사람으로써 이 어찌 표현력이 풍부할지~ 대단합니다. 저자는 참으로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자는 책을 쓰지 않더라고 매일 글을 쓰는 연습을 하다보면 더 깊은 사고를 하게 되며 책을 읽을때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하니 글 쓰는 연습은 누구나 필요하겠죠? 글쓰는 기술 (요령 또는 방법)
저자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 한 권 분량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글쓰는 기술이 필요하며 그것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이면서요. 지금 당장, 짧은 글부터 써보고 서두르지 말고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도 꾸준히 쓰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수 있다고 합니다. 자~ 그럼 글을 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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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글쓰기는 본능이다라는 코너에 독서인이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책을 잘 읽는 사람. 학자나 지식인의 총칭이라고 한다. 다양한 책을 골고루 읽지 않는다면 진정한 지식인(독서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학교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것은 전문서적조차 제대로 읽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고 한다. 시간이 날 때 책을 꺼내 페이지를 넘겨본다. 책을 통한 이런 행위야말로 혼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모델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드물다. 무라카미 문장은 누구나 쓸 수 있고(쓸 수 있다는 생각하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쓴다. 글쓰기의 조건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동시에 나밖에는 쓸 수 없는 글. 글을 잘 쓰려먼 어느 정도는 훌륭한 문장들을 모방해봐야 한다. 형편없는 글을 모방하면 형편없는 문장밖에 씆 못한다. 글쓰는 즐거움은 작자가 등장인물의 역할과 행동 전부를 연출한다. 글로 표현된 이야기는 모두 작자와 작자의 대화다. 질문과 대답. 복잡하게 얽힌 연애감정. 정치문제를 둘러싼 격론 등은 모두 작자가 자신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드라마이자 혼자하는 연극이다. 은퇴후에 시작해도 죽을 때까지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글쓰기의 매력이다. 자신의 글을 책으로 남기면 기억에서 사라질 염려가 없다. 돌에 글자를 새기거나, 달근 쇠로 글자를 찍거나, 나무에 새기거나, 종이 등에 남기거나 도구와 재료는 달라도 자신이 마음속에 간직했던 생각을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변함이 없다. 글을 쓸때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당신이 보는 사람들, 사물들, 나라와 문화에 대해 써도 좋다. 당신이 무엇을 쓰든 당신이 쓴 글에는 '당신'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나를 알기 때문이다(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자료(데이터)는 충분하다. 글쓰기는 과거의 발견인 동시에 미래의 발견이며, 창조의 과정이다. 내 곽를 돌아보며 쓰는 과정에서 내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직장생활의 '노동' 과 거의 비슷한 강도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모두 그렇다. 글쓰기에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읽는다'는 행위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은 똑같지만 이해되는 것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의 의도와 반대되는 해석도 가능하다. 읽는 것은 '발견'이다. 책을 읽을 때 발견 되는 것은 책 내용이 전부가 아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써서 출판해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글 쓰는 일이 정체성, 즉 자신의 존대를 증명할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였다. 개인적인 취미를 즐길 틈도 없고 즐길 돈도 없다. 그래도 글쓰기의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컴퓨터는 고령자에게 특히 적절한 글쓰기 도구다. 고령자도 편리하게 최신 유행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최근에 쓰이고 있는 언어들이나 문장형태를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인물의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나에게 와닿아서 밑줄을 그어놓은 내용 들이다. 난 평소에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꿈을 꾸기도 했다. 현재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나의 인생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 말이다. 아마도 시집을 가서 아이를 키우는 전업 주부로만 살아가는 건 너무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나에게 원동력을 준 책이 바로 중년에 쓰는 한권의 책이다. 책 제목으로 볼때는 무슨 중년에 책을쓰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작가가 될 수 있을거란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작가가 또 말하기를 작가에게 혹독한 비판은 바로 '칭찬'이라고 한다. "일부러 당신 책을 사서 읽었다. 감동했다." 라고 말하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칭찬해주면 기쁘다 못해 황송하다. 그러나 이런 칭찬들은 대개 실체가 없는 칭찬이다. 칭찬에 약한 저자들은 호평을 받고 한 껏 들떠 있다가 평가에 대한 진심을 알게 되면 큰 충격에 빠진다. 나는 그렇게 추락을 경험한 사람이 두번 다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숱하게 봐았다. 이 구절을 읽고 내가 이런 독자측에 속하날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만 생각하고 이 사람이 이런 내용은 좀 부족하구나라는 생각도 해야하는데 나는 아직 책을 읽을 줄만 알지 정확히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글을 계속 써나아가야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한 설계에 한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글쓰기에 있어 작가는 나를 성숙시켜준다고 한다. 오늘부터 무조건 써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훈련도 해보고,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환경도 갖춰보자.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착실히 준비하면 머지않아 당신에게도 당신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이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 난 더 용기를 내어 오늘부터 글쓰기 연습에 돌입해야겠다. 비판을 잘 할 줄 모르는 독자라서 아직은 이 책이 나에게는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항상 내 옆에 두고 글쓰기에 도움을 많이 받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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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고 저자는 말하며, 글쓰기를 힘들어하고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쉽게 글을 쓸수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글쓰기도 일종의 기술이다. 훈련에 따라 충분히 갈고 딲을 수 있다.'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착실히 준비할 수 있도록 가장 쉬운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을 통해 다가올 인생 2막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기술을 익혀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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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학교를 다니고, 누구나 학교에서 아니면 어딘곳에서 글짓기를 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글짓기는 학교 과제였기도 했고, 방학 숙제였기도 했었다. 글을 쓴다는건 하나의 고충이기도 했었고, 아니면 글쓰기를 즐기기도 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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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황금연휴를 맞아 나홀로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독서'는 나의 하루를 온통 깊이있는 물음과 반성이란 언덕을 거닐게 했다.급피곤함이 몰려오다가 이내 평온함을 안겨 주었다.이따금 나이가 든다는 것에 반기를 들고파 격한 몸부림을 치고도 싶을때가 있었다.헌데 이상하리만큼 그 이면엔 뾰족한 내 성격이 둥글넙적하게 변해가는 것에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달리 말해서 까탈스럽다 못해 일단 내가 해야 직성(直星)이 풀리는 그야말로 피곤함의 결정체였던게다.지금은 어떠한가.주기도문마냥 늘상 반복되는 기도에서와 같이 오늘은 어제보다 다른 일이 한 가지만 생겼으면 좋겠다고 그 일에서 더한 열정으로 임하게 해 달라고 간절함으로 매하루를 마무리 했던 듯 하다.그 반복은 실상 내게 피로를 주곤 했으나 결국에는 내 자신을 이끌어 주는 힘이 되는 반작용을 일으켜 주었다.
당신이 정년을 맞이한 사람이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아침 혹은 저녁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대하라고 나지막하게 전해주는 '중년에 쓰는 한 권의 책'은 살아온 삶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알갱이로 '글쓰기'를 권고하고 있다.저자의 의도가 꽤나 마음에 와 닿았다.내 나이 딱 마흔이란 점을 찍고 있다.하여 지금껏 쉼없이 내달려 온 내 인생길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나만의 이야기를 글쓰기를 통해 그 어떠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그 통로를 열어 주고 있다.물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첫 글쓰기에는 용기가 수반되어야만 한다.도통 일관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일지언정 멈추지 말고 그 시행착오를 기꺼이 즐기라고 응원해 주는 듯 하다.또한 글을 쓸때 글의 맛은 '작법훈련'을 통해 얻어진다고 한다.다시 말해 이 책은 아직 서투른 글을 쓰는 혹은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울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흔히 우리네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엔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 보인다.이는 정확히 알고 있는 내용은 자신있게 표현이 되는 반면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에서는 글로 쉽게 표현이 되지 않는다는 방법론이 나온다.과거와 달리 미디어 시대에 들어서면서도 1인 블로거들이 많아지면서 독서열풍 가운데 수면 위로 떠오르는 독자들의 '서평' 역시 그 중심선상에 있음을 익히 잘 알고 있다.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읽고 자신이 느낀 점에 대한 솔직한 평을 쓰고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터라 글쓰기에 대해 어느 정도는 스스로 연습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나 싶다.
여기서 더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을 저자가 말한 두 가지 요건을 보태게 된다면 그 이상의 글쓰기로 중년의 지지 않을 꽃을 피우게 될게다.하나는 누구나 함부로 모방할 수 없는 나만의 개성을 담는 것과 다른 하나는 타인이 읽고 함께 편히 공감할 수 있는 편한 문체를 갖추는 것이다.실상 배움의 끝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름 끄적임을 넋두리 삼아 했던 이들에게 있어서는 알토란 같은 채움을 선사해 주는 듯 하다.현대사회에서 희망정년을 특정한 숫자에 맞추고 있는 사실이 유감스럽기만 하다.아직 더 해야 할 또는 할 수 있는 정신적,신체적 요건이 비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정숫자에 맞춰 멈춰야 함을 거부하고 싶다.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중년은 인생길에 있어 후퇴도 아닌 자신의 내면과 앎에 대해 족히 세상을 향해 내보이고 다시금 자신만의 글로서 열정을 불사르며 새로이 즐기고 누릴 줄 아는 시기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국내에서도 꽤나 두터운 매니아층을 갖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첫 작품을 쓸때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서 비롯된 글을 쓰는 행위에서만큼은 '완전초보'라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을 날릴 줄 아는 저자가 꽤나 유쾌하기까지 하다.게다가 시대가 변하는 가운데 과거 원고지에 쓰던 것에 비해 컴퓨터로 쓸때의 차이가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그 부분에서 나 역시도 끄적임을 할시에 느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글을 쓴다는 것에 너무 사치스럽게 치장하지 말아야 한다.반드시 책을 읽을 필요도 없는 것이며 다방면의 도구 활용을 해서라도 자신이 오릇 습득한 지식을 앎을 기꺼이 솔직하게 글로 쓰면 되는게다.더 한 살을 붙히고자 한다면 쓰기 전에 읽으라는 것이다.이유인즉 읽지 않고서는 문장은 이루어지지 않을테니 말이다.그렇게 되면 그 소재는 다양성을 갖추게 될 것이고 글쓰기의 시작과 끝이 자신이 최선을 다한 결과물로 재탄생 되는 순간을 맛 보게 될 것이다.중년이란 깊은 세월 속에 자신만의 색깔 있는 글쓰기의 객이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전환점을 맞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