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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권진규의 자살은 1973년 한국 미술계를 흔든 큰 사건이었다. 그가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어도 당시 언론은 '급환'으로만 짤막하게 보도하였다. 다음날이 '어린이날'이어선지 신문 한 귀퉁이의 부고란이 전부였다. 능동의 어린이 대공원이 처음 개장하였던 터라 신문의 1면 컬러 광고에는 당시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기증 내역과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천재 조각가의 죽음과 대비되는 안타까운 증거이다. 당시 권진규의 자살에 대해 "진의는 성의 있는 연구과제로 남았다"라는 말을 한 평론가도 있었다. 그의 자살로부터 45년이 흘렀지만 체계화된 권진규의 연구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하여 부족해 보인다. 비단 권진규가 현실에 쫓기며 극단으로 치달았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권진규라고 해서 풍족하고 윤택한 삶을 살지 말란 법도 없었다. 그에게도 사실 여러 번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권진규는 스스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외곬의 삶이라고 할 만큼 권진규는 순수 예술을 부르짖으며 세상과 현실과 나름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권진규를 동경으로 모셔가려고도 하였다. 또한 국내의 굴지 화랑이 개업하면서 화랑 주인이 동선동의 권진규 작업실로 작품을 사러 갔더니 너무 싸게 불러서 놀랐다고 한다. 권진규는 되려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면 어떻게 화랑을 운영하냐 "며 오히려 화랑 주인을 걱정하였다는 것에 더더욱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권진규는 현실의 궁핍과 고난이라는 벽에 무너졌지만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아마 타협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는 '악(惡)'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스스로 최후를 맞았다. 충분한 명성과 풍족함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일본을 마다하였고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놀랄 만큼 싼값을 부른 것은 팔기 위해 만들어내는 '돈벌이'가 아니라 하나하나 몰두하며 소생시킨 '자식'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던 것. 부와 명예를 모두 배제한 순수예술의 길은 매우 험난하고 고독하다는 것을 권진규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1975년 「광복 30주년 문화 1세대」라는 연재(1975년 8월 6일, 경향신문)에서 1960년 조각가 차근호, 1973년 권진규의 자살을 두고 "그들 개인의 문제보다 예술가가 살아가야 할 땅이 너무도 각박하다는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해 준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이는 지금도 좀처럼 달라진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현실의 간극은 일자 선택(一者選擇)만을 강요할 뿐이다.
조각가 권진규가 1973년 '인생은 공, 파멸'이라는 섬찟한 유언을 남기고 떠난 지 올해로 45년이다. 생전에 궁핍과 고독으로 몸부림쳤으나 작품을 돈벌이로 보지 않고 자식으로 보았다. 작가는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면 안 된다는 외곬의 삶 또한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궁지에 몰리던 그는 재산 1호이던 흰색 전화기를 팔기에 이른다. 얄궂게도 목숨을 버린 지 6년 뒤인 1979년 신세계 백화점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권진규의 조각상 2점이 각각 455만 원과 500만 원에 낙찰되었다. 두 점 모두 동일인이 낙찰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합계 955만 원으로, 1,000만 원이 못되었다. 당시 새롭게 신축 분양하던 대치동의 은마아파트가 평당 55만 원 하던 때였다. 7.5평짜리 잠실 주공 아파트 한 채가 600만 원 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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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 건칠로 작업한 그의 인물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우울함이 말하고 있는 것 같고, 어떤 침묵이 절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는 예술에 대한 천재성은 타고난 것 같다.
그는 외롭게 작업만 하다가 52세 젊은 나이에 동선동 작업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그가 쓴 한 장의 유서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
| 이 책은 권진규라고 하는 예술가에 대해서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본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더 구체적으로 삶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싶고, 작품 하나하나에 반영되었을 것이 틀림없는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싶어진다. 그 흔적들 속에는 권진규라는 개인의 삶은 물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아픔과 격동의 세월이 여전히 살아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책을 펼치고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연속해서 다 읽었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오랜 세월을 통과해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직접 작품을 볼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희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