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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의 축쇄판-『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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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라는 자전 소설을 발표한 이후 거의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한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앵무새 죽이기』는 재판을 발행할 때마다 하퍼 리의 짤막한 코멘트만이 서문에 갈음한다. 그 서문 비슷한 코멘트의 내용은 서문이란 쓸데없는 내용의 반복이란 자신의 견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하퍼 리의 유명한 코멘트 이후에 어떤 이들은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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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라는 자전 소설을 발표한 이후 거의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한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앵무새 죽이기』는 재판을 발행할 때마다 하퍼 리의 짤막한 코멘트만이 서문에 갈음한다. 그 서문 비슷한 코멘트의 내용은 서문이란 쓸데없는 내용의 반복이란 자신의 견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하퍼 리의 유명한 코멘트 이후에 어떤 이들은 서문 중에서 뛰어난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동감을 표시할 수도 있다. 이는 일종의 유명인의 견해에 대한 밴드웨곤 이펙트라고도 볼 수 있는데 한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을 때(지금도 영향력은 상당하다) 지하철 표를 거의 잃어버리지 않았던 사람조차 자신은 지하철 표를 자주 잃어버리는 사람이라고 여길 때도 있었다. 즉 지하철 표를 우연히 한 번 잃어버린 경우가 발생했을 때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려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문이 훌륭한 경우는 책이 훌륭한 경우와 비슷한 정도의 확률로 발생한다. 훌륭하지 않은 책이 많듯이 단지 훌륭하지 않은 서문이 많을 뿐인 것이다.

 

서문이 훌륭한 책이 얼마쯤은 있을 텐데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는 나 자신의 기억력의 부족도 있겠지만 『북학의』의 서문이 너무도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학의』의 서문은 박제가, 박지원, 서명응 이 세 사람이 썼는데 이 중 박지원의 서문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견주기 힘들 만큼 압권이다. 박지원의 식견과 문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지만 짧은 서문 정도로 공부와 인생의 요체를 설명하고 『북학의』전체를 아우르는 필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서문의 시작부터 무게감이 남다르다.

 

「학문하는 길에는 방법이 따로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잡고 묻는 것이 옳다. 비록 종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많이 알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신이 남과 같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것은 종신토록 고루하고 무식한 테두리에다가 자신을 가두는 것이 된다.」

 

이렇게 당연한 말이라도 실천하지 않는 삶이라면 그 가벼움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몸소 그 말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말이 천금의 무게를 가지게 된다. 이런 학문의 도는 조선 후기에는 무너지게 되는데 학문이 점점 더 편벽해지고 그 편벽함 때문에 넓은 세계를 배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도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세계의 한 모퉁이 지역에서 났으므로 한편으로 치우친 기질을 타고 났다. 발은 한 번도 중국 땅을 밟아 보지 못했고, 눈으로는 중국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서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이 나라 강토를 떠나 본 적이 없다. 학의 다리가 길고 까마귀 날개가 검은 것처럼 각각 타고난 천품을 변하지 못한 채 마치 우물 안 개구리나 나뭇가지 하나에만 깃들이는 뱁새처럼 홀로 그 땅만을 지켜 왔다. “예禮는 차라리 야野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더러운 것이 검소한 것인 줄로만 안다. 이른바 사농공상의 사민四民이라는 것은 겨우 명목만 남았고, 이용하고 후생하는 재원은 날로 곤궁해지기만 한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학문하는 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에 조선은 청나라를 오랑캐라 하여 좋은 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무조건 그들의 것을 배척하기만 하고 진실에 눈을 감으려고 했다. 그렇기에 청의 수도인 연경(베이징)에 다녀와서도 오로지 오랑캐 욕을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다행히 모든 사람이 눈이 어둡지는 않아서 박지원을 비롯한 몇몇의 뛰어난 선비들은 청의 선진문물을 수용하고 구습을 타파하여 나라의 발전을 도모했다.

 

「법이 좋고 제도가 아름다우면 아무리 오랑캐라 할지라도 떳떳하게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하물며 그 규모의 크고 넓음과 마음가짐의 정하고 치밀함과 모든 제작의 크고 원대한 것과 문장의 빛남이 아직도 삼대 이래로 한, 당, 송, 명의 옛 법이 남아 있음에랴?」

 

「내 이 책을 시험 삼아 한 번 펴 보니 나의 『일록日錄』(열하일기)과 조금도 어긋난 것이 없어, 이는 마치 한 솜씨에서 나온 것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나는 몹시 기뻐서 사흘 동안이나 읽었으나 조금도 염증이 나지 않았다.

아아! 이것은 우리 두 사람이 눈으로 직접 본 뒤에야 알게 된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비오는 지붕, 눈 뿌리는 처마 밑에서 연구하고, 또 술을 데우고 등잔 불똥을 따면서 손바닥을 치며 이야기했던 것이다. 여기에다가 다시 눈으로 직접 징험했을 뿐이다.」

 

실제로 『열하일기』에서 편 주장과 『북학의』에 나온 내용은 상당 부분 겹친다. 수레며 인재 등용, 농사법 등 어디 하나 다른 견해가 없으며 연암의 표현대로 ‘마치 한 솜씨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글의 재주와 담력, 그리고 그 내용이야 『북학의』가 『열하일기』에 조금 못 미친다 할 수 있으나 개혁의 의지와 간절함은 연암의 그것에 비해 떨어진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은 조선 후기의 갖가지 폐단의 근본을 밝히고 중국의 선진문물을 배워 조선 전기의 전성시대, 혹은 성인들이 다스리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당시의 조선은 이념과 학문은 편벽되어 다른 모든 학문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사족(士族)의 폐해는 극에 달해 온갖 허세가 사회를 지배하고 물산은 풍부하지 않아 가난이 도처에 널려 있어 비록 왕족이라 하더라도 사치하고 낭비를 조금만 하면 그 재산의 탕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복궁이 불탄 지 오래 지나고 외적의 침입이 100년 이상 없었지만 나라의 창고는 텅텅 비고 백성들은 가난하여 경복궁을 중수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는 경제의 운용에 문제가 있어서인데 농업 기술 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 기술 모든 것에서 중국에 뒤처져 있었다. 사실 더욱 큰 문제는 그 뒤처짐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지 않고 더 뛰어난 제도와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이는 사치를 피하고 근검절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농업 기술을 개량하고 생산력을 높이며, 길을 뚫고 수레를 사용하여 유통망을 원활하게 하며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선진기술을 배워 나라 전체의 생산력을 키워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당시 정조도 수 년 동안 근검하고 절약을 생활화했지만 궁녀의 월급을 주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의 재정은 열악했다. 이 시기의 생산력 수준은 거의 세종 때의 절반 정도에 머물렀을 정도였다. 세종 때에는 궁궐에서 꾸란이 읽혔으며 신숙주는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했지만 정조 때에는 청나라의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양반 가문 중에서는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과거제는 뛰어난 인재들의 등용문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깡패들의 천국처럼 변질되어 문벌을 등에 업지 않으면 급제하기 힘들었고 설사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관직의 수는 부족하여 10분의 1만이 등용되었다. 나머지 10분의 9는 등용되지 못한 채 무위도식하는 처지였으나 사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온갖 폐단의 근원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온갖 모순과 부조리가 판치는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단지 230년 전 이야기일 뿐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문제가 현대에도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길을 넓히고 수레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 아주 많이 나온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방으로 도로가 뚫려 있고 자동차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적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유용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직도 이 책의 절반쯤은 지금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 이 책에는 수레의 사용이나 농업기술의 발전만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제를 비판하고 인재등용의 방법을 설파하기도 하며 군사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단지 비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해결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그 담대함은 바다와 같고 그 세심함은 구석구석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 대학 진학률은 90%에 육박하고 있다. 당시의 과거제도 지금과 비슷한 양상이었는데 조선 초기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회적 양상이 점점 더 부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개혁하지 않고 계속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띠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빠진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대학진학률이 90%가 넘으면서 좋은 점은 거의 없고 나쁜 점만 많아지고 있다. 서울대와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의 정원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진짜 뛰어난 학생을 가릴 수 없고 경쟁은 하늘을 찌르며 학생들의 공부는 시험에만 나오는 것 위주로 하여 진짜 필요한 능력은 배양시킬 수도 없고 창의성은 바닥을 친다. 온 나라가 대학에 미쳐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도 온 나라가 과거에 미쳐 있었다. 그렇다면 박제가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과거를 보려는 선비를 도태시키고 싶어도 어찌 그들의 손을 묶어서 물러가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 답하는 말은 이렇다.

“과거를 보려는 선비는 문장과 행실이 과거를 보기에 족하다고 보증하는 그 사문師門의 장長의 추천장을 갖추게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거주하는 지방 관원으로 하여금 선발하여 보내게 한다. 왕도王都에 들어오거든 엄하게 대조하여 글을 강하게 하고, 합격하면 면전에서 다시 시험하여 무릇 네 차례의 절차를 겪게 하면 턱없이 덤비는 자는 없어질 것이다.”」-254쪽〈유생의 도태〉

 

조선에는 뛰어난 선비나 계책이 없어서 약해진 것이 아니다. 그 선비를 등용하지 않고 계책을 실천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 계책을 실천하지 않은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그랬지만 백성들이 변화를 싫어하는데도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국사책에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을 중수한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종 때 황희 정승의 청빈함을 찬양한다. 그러나 창강 김택영 같은 이는 황희 허조 같은 무리를 진취성이 없는 구태로 몰아 붙였고 경복궁 건축 때 백성들의 원망함을 비판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미래를 대비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큰 세계를 보고 현실의 폐단을 잘 살펴 변화를 추동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현대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인재등용이나 군사에 관한 것은 다시 한 번 돌아봐도 좋을 것이다.

 

사족이라면 이 책은 40년 만에 2판을 발행했는데 책날개에서부터 오타가 발견된다. 본문에도 오타가 꽤나 있으며 의심되는 한자도 조금은 있다. 그리고 고전번역은 주석이 상당히 중요하다. 모르는 단어를 살펴보는 것이 불편한데다 사진이나 그림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당 부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물론 돌베개에서 나온 『열하일기』라는 걸출한 책을 보면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집도 돌베개의 『열하일기』를 참고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m*****a 2011.06.22. 신고 공감 8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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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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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정이라는 것이 없다.한번 지나간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전철로 삼지 않고 귀감으로 삼아 보다 밝은 사회와 풍요로운 나라 만들기를 제대로 실천적으로 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북학의'로 널리 알려진 박제가의 청국 기행기는 내편,외편,진(進)북학의로 나뉘어져 있고 읽어 가는 도중에 청국의 선진화된 문물과 청국인들의 지혜로운 생활 패턴등이 당시 조선사회의 실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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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정이라는 것이 없다.한번 지나간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전철로 삼지 않고 귀감으로 삼아 보다 밝은 사회와 풍요로운 나라 만들기를 제대로 실천적으로 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북학의'로 널리 알려진 박제가의 청국 기행기는 내편,외편,진(進)북학의로 나뉘어져 있고 읽어 가는 도중에 청국의 선진화된 문물과 청국인들의 지혜로운 생활 패턴등이 당시 조선사회의 실상과는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1778년,1790년,1801년 세 차례에 걸쳐 청국 연경에 다녀오면서 청국의 농업과 상업,군사,사회제도등을 조목조목 세밀하게 나열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옮긴이의 정성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당시 조선의 양반제도등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나라가 살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콕 짚어 준 선각자다운 면모가 무척이나 인상이 깊었는데 특히 당시 조선은 과거제도를 통해 어떻게든 입신출세를 해야 하는 강박증에 걸린거 같고 백성들은 관리와 백성간의 원활한 소통과 정보의 부족으로 국내 및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 나라를 이끌어가는 왕과 신하,사대부들이 사서오경 타령에만 몰두하고 있으며 정조가 승하하고 세도 정치가 판을 치는 마당에 백성들의 가난과 무지,생활고는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박제가는 '사농공상'중 상업을 가장 천하게 여기고 있던 조선사회의 실상과 나라의 가난을 상업을 통해 부유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중상주의를 제시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조선은 협소하고 백성은 가난한데 백성이 경작에 부지런하고 나라는 인재를 등용하며 상업이 잘 융통되게 하고 장인들에겐 혜택을 내려서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나라의 살길이 무엇인지를 잘 제시하고 있다.또한 먼 지방(중국등)의 물자를 통상시킨 다음이라야 재물을 늘리고 온갖 기구를 생산할 수 있다는 부분도 무역을 통한 국부를 늘릴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는데 그가 신유사옥의 주모자 임시발의 무고로 유배되고 그의 살아있는 뜻은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조선은 세도정치,민란,외세의 개방 압력과 더불어 쇄국정책,일제 강점기등으로 조선후기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오리무중으로 치닫고 말았던 것이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당시 국내 사회분위기,사색당파와 왕실간의 권력다툼,수렴청정등으로 백성들은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었고 위정자는 눈 먼 봉사마냥 나라의 전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절름발이 치세로 말미암아 외환을 자초한거 같고 박제가와 같은 중상주의의 선각자의 뜻을 제대로만 읽고 실천했더라면 이웃 일본보다도 몇 십년은 앞선 경제대국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j******6 2011.06.23.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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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학.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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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박제가 지음, 이익성 옮김, 을유문화사   대~~~박~~~ 너무 읽고 싶었던 박제가의 <북학의>!!! 책을 받아보고 을유문화사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뜸! 원래 책을 차암 잘 만드는 출판사인데 이번 책은 북학의의 특징을 너무나도 잘 살린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종이질마저 북학의와 딱 걸맞는! 아주 만족스럽다!   밀양이 본관인 박제가의 북학의를 옮긴사람이 밀양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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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박제가 지음, 이익성 옮김, 을유문화사

 

대~~~박~~~ 너무 읽고 싶었던 박제가의 <북학의>!!! 책을 받아보고 을유문화사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뜸! 원래 책을 차암 잘 만드는 출판사인데 이번 책은 북학의의 특징을 너무나도 잘 살린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종이질마저 북학의와 딱 걸맞는! 아주 만족스럽다!

 


밀양이 본관인 박제가의 북학의를 옮긴사람이 밀양출생인 이익성님이다. 갑자기 밀양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는건 왜일까? 북학의와 첫대면은 생각보다 두꺼워서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더니.. 음.. 뒤쪽에 상당부분의 원문이 실려있어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출판사의 센스!

 


서문에는 연암 박지원의 글도 실려있다. 왜 있자나... 요즘 소설을 보면 앞표지나 뒷표지에 유명한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해 평을 해준게 실려있는것처럼 말이다. 난 연암과 박제가가 동시대 사람인것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는.. 박제가가 훨씬 이전 사람인지 알았다...

 


이 책은 박제가가 중국에 가서 수레부터 시작해 사상까지 보고 들은것을 모두 기록해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책으로 쓴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수레편은 중국에서 본 수레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소소하게 있는그대로 적어놓고 우리나라와 비교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왜 필요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모두 짧게 짧게 잘 정리되어있고 말투가 상당히 재밌어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을 보면서 박제가가 살던 그 시대 우리나라 생활 모습들이 눈앞에 그림으로 표현되어 지는거 같아서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되어서 기뻤다. 예를 들면, 그 시대 사람들은 소고기만 먹었다는거.. 그래서 밭갈 소가 부족했다는것도..

세세하게 묘사되어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웃긴 부분도 많고..

 


특히 내가 빵~ 터진 부분은.. p57 "우리나라 사람은 아침에 저녁 일을 걱정하지 않아서 백 가지 기예가 황폐해지고 날마다 소란스럽기만하다. 백성은 이 때문에 안정된 생각이 없고, 나라에는 일정한 법이 없다" - 바로 요 부분- 예나 지금이나 우리민족의 나쁜 특성인가?? 윗대가리들 하는 짓거리들보면 맨날 사건이 터지면 그때서야 약간의 생쑈만 하고 미리 미리 대비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 말이다.

 

박제가는 이렇게 그 당시 사람들의 후퇴된 생각들을 꼬집어내면서 설득해나간다. 그러다가 나중에 임금님께 올리는 글을 보면 목숨을 걸고 썻다는게 와닿는다.. 예전엔 말과 글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세상이었으니까.. 그 두려움이 현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의 스승인 박지원도 그의 제자인 추사 김정희는 어떤 심정으로 그 시대를 살아갔을까? 그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그 시대 사람들처럼 무조건 우리것만 좋다고 우리게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우기기보다 나쁜건 개선하고 좋은것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좋은것들은 촌스럽다고 버리고 나쁜것만을 빠르게 받아들인건 아닐까??

 

k******2 2011.06.22.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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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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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국사시간에 단골 시험문제였던 것 같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파의 이름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쓴 저서는 처음으로 읽는다.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고 나니 연암 박지원의 책도 읽고 싶어진다. 그것은 당시 시대에서 실학파들의 주장은 획기적이었고 혁명적이었으나 그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아마도 지지세력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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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국사시간에 단골 시험문제였던 것 같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파의 이름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쓴 저서는 처음으로 읽는다.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고 나니 연암 박지원의 책도 읽고 싶어진다. 그것은 당시 시대에서 실학파들의 주장은 획기적이었고 혁명적이었으나 그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아마도 지지세력이 없던 탓이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해본다. 그 시대의 모든 사대부들이 뒷짐지고 자신의 권력과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반면에  실학파들은 그런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대부들이 천시하는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싸웠다.그리고 사대부들에 비해 그들은 가난했다. 일부 개념없는 사대부들은 국가재정은 궁핍하고 민생은 도탄에 허덕였음에도 북벌을 주장했고 중국에는 이미 선교사들을 통해 과학 문명이 서서히 흘러 들어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북학의>는 내편,외편, 진북학의 이렇게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에서는 실생활에 필요한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선으로서 수레,배, 성,벽돌,궁실,도로,교량,목축 등 서른 아홉 게 항을 기록했다. 내편 중에서 수레에 대한 편을 강조한 듯 보이는데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레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장사를 천시하였던 조선사회의 분위기에 중국인들이 가난해지면 장사한다라는 부분에서는  가난에 찌들어도 사대부란 이유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겉치레와 체면만을 내세워서는 가난을 면하기 어려움을 말하기도 한다. 

외편에는  당대의 현실정치의 사회제도의 전반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그 서정의 개혁방안을 서술했다. 외편에서는 과거제도를 없애라는 주장을 하는데 나라는 가난에 찌들어가고 있는데 사농공상을 천시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대부들이 많았음에 있다.  진북학의 편에는 내, 외편에서 농사와 관련이 있는 몇 항목을 초출하고 다시 몇 항을 첨가하여 왕에게 바쳤다.

청나라에서 발달된 문명을 보고 온 박제가는 끊임없이 왜 조선은 가난한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나라가 부강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알리기 위해 <북학의>를 썻다. 박제가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의 기본을 세웠다면 박제가는 <북학의>를 통해 부국론을 제창했다. 하지만 박제가의 실사구시 학문이 완벽해 보인지 않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이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중국의 모든 것에 심화된 나머지 우리 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배워야만 중국의 문화를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말까지 하고 만다. 참 그  말만 안했어도 아마 박제가는 역사속 큰인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실학파들의 급진적인 개혁론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각을 잊은 채 선진문물에 도취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후 박제가의 주장은 순조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만약 당시 실학파들이 과학적인 선진문물에 도취했던 그 마음에 시대 상황과 정치적인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경술국치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당시 실학파의 주장은 꼭 필요한 것이었으나 시대적 상황과 사회는 받아들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1.06.15. 신고 공감 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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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기본 정신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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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기본 정신을 배우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가 옳다고 할 때 그르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 그 의미 속에 포함된다면 우리 역사에서 그러한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하지만, 같은 의미일지라도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당리당략에 의한 말이라면 숨은 뜻을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조선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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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기본 정신을 배우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가 옳다고 할 때 그르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 그 의미 속에 포함된다면 우리 역사에서 그러한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하지만, 같은 의미일지라도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당리당략에 의한 말이라면 숨은 뜻을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조선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시기가 영조, 정조 때로 보인다. 인진왜란의 혼란을 일정정도 극복하고 오랜 파쟁도 영조의 탕평책으로 인해 누그러졌던 때가 바로 흔희들 문예부흥기로 이야기하는 그때이다. 특히, 정조왕의 개혁적 정책에 힘입은 세력이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北學派)가 활동하던 시기다. 북학파의 중심에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이 있었다. 북학이라는 말은 맹자에서 “진량은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북쪽으로 유학하여 북방의 학자들도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다”라는 구절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들 중 초정 박제가(1750~1805)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의 거장으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북학의’를 지었다. 박제가는 누구보다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본받아 생산 기술을 향상시키고, 통상무역을 통하여 이용후생을 실현’할 것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저서로는 ‘정유집’, ‘북학의’, ‘정유시고’, ‘명농초고’ 등이 있다. 이 책은 박제가가 저술한 ‘북학의’를 을유문화사가 원문을 번역하여 1971년 발행한 것을 30여년이 지난 후 새롭게 발간한 개정판이다.

 

북학의는 크게 내편, 외편, 진북학의로 세편을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수레, 성, 벽돌, 궁실,

도로, 교량, 목축 등 서른아홉 가지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외편에는 밭, 거름, 농업, 잠업, 과거론, 재부론, 군사론, 장례, 절강 상선과 통상하는 문제 등 열여섯 가지 박제가의 진솔한 사상이 담겨 있다. 진북학의는 박제가가 영평현령으로 있을 때 정도의 왕지에 의해 내, 외편에서 농사와 관련된 항목을 뽑아 여기에 수리, 지리, 모내기, 농기구 등 항목을 추가하여 다시 작성한 것이다.

 

북학의를 통해 본 박제가의 글은 진솔하고 담백하다. 주장하는 바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고루하거나 군더더기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조선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철저히 실용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모습이 돋보인다. 또한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쓴 것이지만 당시 동북아 삼국인 청나라, 조선, 일본의 현실을 비교분석하고 있는 점이 더 철저한 실학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말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할 말이 많을 것이다’고 한 것은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조선의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무작정 청나라의 문물을 따라가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의 글 내면에는 바로 조선 백성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그러한 현실을 극복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사에서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가정을 통해서라도 달라진 현실을 기대하고 싶은 것이 사람 아닌가 싶다. 만약 박제가의 이러한 선진적인 사상이 받아들여졌다면 무척 다른 역사를 만들어 왔을 것이라는 점에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대를 뛰어 넘는 급진적인 사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면 역사의 진보는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박제가의 개혁사상은 학문이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의 여러 우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둘 때 그 의의를 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박제가가 현시대를 보면 어떨까? 그가 그토록 바랐던 물질적인 혁신은 그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m*****8 2011.07.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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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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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박제가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중상학파의 한 사람으로 낙후된 조선의 사정을 답답해 하면서  선진문물이 가득한 청국을 여행하고 왔다. 청국 방문은 그에게 중국의 학자들과의 교류, 그리고 청의 문물, 제도 등의 관찰기회를 제공하여 조선의 낙후함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청에서 돌아온 박제가는 당시 보고 들은 내용 가운데 조선에 행해지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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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박제가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중상학파의 한 사람으로 낙후된 조선의 사정을 답답해 하면서  선진문물이 가득한 청국을 여행하고 왔다.

청국 방문은 그에게 중국의 학자들과의 교류, 그리고 청의 문물, 제도 등의 관찰기회를 제공하여 조선의 낙후함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청에서 돌아온 박제가는 당시 보고 들은 내용 가운데 조선에 행해지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아 29세 때(1788)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북학의(北學議)』를 저술하였고 이를 통해 홍대용과 박지원 등의 학풍을 계승하여 북학론(北學論)을 정립시켰다. 조선 후반에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주장하는 실학자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공리공담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실학을 주장하였고, 이는 현실을 개혁하고자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이용은 사용하기에 편리한 각종 기계나 운송수단을 말하며 후생은 의복과 식량 등을 풍부하게 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부강한 주변국 청나라에 비해 한없이 작고 약해 보이는 자신의 나라 조선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가슴아파한 한 사람의 마음, 이에 급진적인 개혁을 의도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한 사람의 꿈이 이 책에 담겨 있다고 하겠다. 당시 그의 진보적인 사상을 이해하지 못해 실현시킬 수 없었고, 결국 그의 우려대로 나라의 큰 위기를 맞았었다.당시 조선이 낙후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농사짓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한 것도 있지만 교환경제적 측면에서 재화가 유통하지 못한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박지원과 마찬가지로 상업의 중요성은 물자를 유통시켜 쓸모없는 물건을 쓸모있는 물건으로 유통하게 하여 편재성을 극복함으로써, 국내에 생산되는 모든 물건을 유통시켜 골고루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데의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상업이 발달하려면 교통기관이 발달되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용차·용선등 교통수단의 기술적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차를 쓰면 상품유통이 활발해지고, 물가의 평준화가 이루어 지며, 전국적인 시장이 형성되고 시장이 광대되면 생산물의 수요가 증대되어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과 수공업이 다같이 발전된다며 국내시장의 단일화를 주장하였다.또한 북학파의 사상은 문명상향(文明上向)이란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문명상향. 이는 문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문명을 향상 시키겠다는 말인데, 당시 조선에 비해서 선진문명국은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이 중국처럼 선진문명국이 되고자 한다면, 학습하고 필요하다면 중국문명의 선진화에 영향을 준 서양문물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박제가가 이 북학의를 지은 지 200여년이 지났다.  박제가가 제시한 이러한 방안들의 발전, 개혁 내용이 현재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나 방향성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것 같다.

k****7 2011.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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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박학다식 속에 드러난 시대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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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중국에 대한 좋은 느낌이 없다. 수천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중국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인 ‘북학의(北學議)’의 저자인 박제가(朴齊家: 1750 - 1805) 선생이 살았던 시대는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로 여겨 배척한 시대이다. 선생은 청나라의 모든 실용적인 것들을 높이 여겼다. 물론 의복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선생의 급진개혁론이 담긴 ‘북학의’는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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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중국에 대한 좋은 느낌이 없다. 수천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중국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인 ‘북학의(北學議)’의 저자인 박제가(朴齊家: 1750 - 1805) 선생이 살았던 시대는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로 여겨 배척한 시대이다. 선생은 청나라의 모든 실용적인 것들을 높이 여겼다. 물론 의복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선생의 급진개혁론이 담긴 ‘북학의’는 심혈이 깃든 명저로 내편, 외편, 진북학의(進北學議) 등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기행 후 정조에게 올린 상소문 격의 책이다.(북학이란 단어 역시 중국의 사상가인 맹자의 글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내편에는 수레, 배[船], 벽돌, 도로, 시장, 여자의 의복, 극장, 총과 화살, 고동서화 등이 다루어졌고 외편에는 거름, 녹봉제도, 재부론(財富論), 장례론, 존주론(尊周論) 등이 다루어졌고 진북학의편에는 내편 및 외편과 관계있는 사항들을 다루어졌는데 칙(則)과 론(論)이라는 단어가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수레나 성(城)에 대한 부분에서 드러난 것처럼 선생의 눈은 예리하고 실용적인 부분에 정통하다. 특히 벽돌, 수레, 성(城), 기와 등의 내용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듯 하다. 이는 박지원 선생이 서문에 썼듯 박제가, 박지원 두 분이 연구하고 이야기하고 직접 경험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22 페이지)  
 

선생 당시에 우리나라의 자기(瓷器)가 형편없다는 이야기는 다소 생각 밖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소들조차 청나라의 소들과 달리 더러웠다고 하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말을 버리고 한어(漢語)를 배워도 불가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선생에게는 중국을 본받는 것이 최선이다.(물론 선생은 한어 뿐 아니라 만주, 몽골, 일본의 말들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은 일을 잘 한 뒤에라야 정치하는 사람이 베개를 높게 하고 누울 수 있다는 말로 백성에 대한 애정과 정치인들의 바른 길을 제시했다. 그 뿐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 대한 마음씀도 돋보인다.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유자(儒者)들로 하여금 무역 및 판매일에 종사하게 해야 한다는 말과, 실력도 없이 과거(科擧) 시험장에 나오는 자들에게 죄를 주어야 한다는 말은 실용 정신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 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냉정한 느낌이 들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물화(物貨)와 화폐 유통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은 선구적이다. 다른 나라는 사치 때문에 망하기도 했거니와 우리나라는 검소함으로 쇠(衰)해 졌다는 말은 현대 경제학자의 진단인 듯 하다. 
 

선생의 박학다식 속에 드러난 시대비판을 들으며 그 시대나 우리 시대나 마찬가지인 점이 많아서 놀랐다. 인사 적체, 행정체계상의 문제, 연고(緣故)에 얽매인 인사(人事) 행태, 부패 등등...‘병오년에 올린 소회(所懷)’나 ‘북학의를 임금께 올리며’ 는 실로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卓見)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선비는 실상 농사를 망치는 몹쓸 자라는 주장은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할 말이다.   
 

선생은 진실로 백성에게 이로우면 그 법이 비록 이적(夷狄)한테서 나왔다 해도 성인이 장차 취할 것이라는 말로 열린 이용후생(利用厚生)적 가치관을 지녔던 분이다. ‘북학의’는 박제가 선생이 청나라의 문물을 두루 시찰하고 쓴 기행문이다. 선생이 주장한 정책은 중농(重農) 및 중상(重商) 정책이다. ‘북학의’는 여러 부분에서 청나라에 매료된 선생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명저이다.   
 

청나라에 대한 논조가 지나치게 찬양 일변도여서 거슬리는 바가 있지만 주자학의 공리공론에 대한 비판정신에는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정조의 서거(逝去)로 북학파의 개혁정신이 사그라진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집에 있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를 읽어야겠다.

m******1 2017.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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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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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評 - 『북학의北學議』  무릇 학문은 실생활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과 괴리감이 있으면 그 자체로 학문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수년 전 나는 『북학의』를 읽었다.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북학의』를 다시 읽으며 당신 문인, 관료, 사회제도에 관하여 심도 있는 안목을 주고 있음을 느끼며, 아울러 사회와 제도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초정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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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評 - 『북학의北學議


 무릇 학문은 실생활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과 괴리감이 있으면 그 자체로 학문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수년 전 나는 『북학의』를 읽었다.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북학의』를 다시 읽으며 당신 문인, 관료, 사회제도에 관하여 심도 있는 안목을 주고 있음을 느끼며, 아울러 사회와 제도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초정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볼 수 있었다. 사실에 입각하여 바른 것을 찾는다, 라는 말인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제대로 보여준 게 바로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북학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실사구시는 바로 『한서漢書』卷五十三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에 보이는 대목이다.


『북학의』를 『서경書經』의 「대우모大禹謨」를 빌어 분석을 하기 전에 초정 선생은 『서경』을 빌어다 쓰기를, “政在養民. 水火金木土穀 惟脩 正德利用厚生”라고 하였다. “정치는 백성을 기르는(보양)하는데 있으니, 물, 불, 쇠, 나무, 흙 및 곡식들을 잘 다스리고, 또 덕을 바로 잡고 물건의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터이 함이다.”라는 말이다. 정치는 바로 임금이 덕을 오롯이 하는 데 있으며 바름을 기르는데 있는 것이다. 水 ․ 火 ․ 金 ․ 木 ․ 土 ․ 穀를 동양학에서는 이른바 육부六府라고 한다. 백성을 배부르게 하고 잘 기르는데 있어 이 육부를 잘 다스리면 된다는 게 아마 초정 선생의 생각이 아닌가 한다.


 - 水 : 하천의 준설에 관하여 초정은 지세의 높낮이에 따라 하천 바닥을 끌어내야 한다고 하며, 수의의 높낮이를 측정해야한다고 한다. 중국의 강소, 절강 지방과 교역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데 육로 무역보다는 바닷길을 통하면 그 이문이 몇 갑절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배는 작고 그 기능이 보잘것없어 늘 배의 밑바닥에는 물이 차 있다고 한다. 강과 바다를 이용할 것을 여러 차례 말하고 있는데 비단 중국만이 아닌 다른 나라와도 통상을 해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잇점을 살리고 강과 하천을 통한 물품 운송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음이다.


 - 火 : 우리나라는 기와는 굽는데 벽돌은 굽지 못한다고 한다. 벽돌로 성을 쌓는데 있어 돌로 쌓은 성보다는 그 견고함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나무는 많은데 이를 불을 때서 벽돌을 굽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돌로 쌓은 성은 그 무게로 인하여 한쪽이 침식되고 비로 인하여 지반이 무르게 되면 가라앉는 현상이  일어나니 회로 지반을 다져 그 위에 구운 벽돌로 쌓으면 가라앉을 우려가 없다고 한다. 수백 내지 수천 도의 불을 견뎌내는 가마를 만들어 각 군과 현에 벽돌을 구우면 그 이로움이 돌로 성을 쌓는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벽돌은 이동성이 좋아 성벽이 무너지는 경우 곧바로 대처를 하지만 돌로 쌓은 성벽이 무너지면 성벽을 모두 해체하여야 한다고 한다. 벽돌로 쌓은 성벽은 벽돌 하나가 빠지면 그 자리에 끼워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불을 이용하자는 초정의 생각이다.


 - 金 : 초정은 우리나라는 해마다 수만 냥의 은을 수출하여 반나절이면 소모되는 약이나 반년이면 썩어버리는 비단으로 바꿔온다고 한다. 한정된 자원인 은을 수출하니 이는 진흙으로 만든 소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화폐는 돌고 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쇠를 녹이는데 중국은 석탄을 이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석탄이 나는데도 이를 이용하여 쇠나 구리를 녹일 줄 모른다고 한다.


 - 木 : 중국은 나무가 귀하나 재목은 많다고 하고 우리나라는 나무는 많으나 재목은 귀하다고 한다. 중국의 재목은 한 자 한 치가 모두 정밀하게 가공되었다고 한다.    

 

 - 土 : 초정은 거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중국의 농촌은 거름더미가 노적가리나 산더미 같다고 한다. 거름을 쌓더라도 한 편에 독을 묻어 거름에서 나오는 거름 물을 모아두어 이를 이용한다고 한다. 중국은 거름을 금같이 여기고 말똥을 잘 건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거름더미는 있으나 중국과 같이 해자를 파지 않아 거름 물이 그대로 도로에 흘러 우물로 들어가거나 도랑에 들어간다고 한다. 재도 그냥 거리에 버린다고 한다. 거름과 재 모두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 穀 : 씨감자의 보관 방법을 이야기하고, 우리나라는 곡식의 이름이 지방마다 다 다르게 불리운다고 한다. 중국은 밭에 심은 곡식 세 줄 사이가 우리나라의 밭 곡식 두 줄 넓이와 같다고 한다. 파종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밭과 소와 사람과 농기구의 파종 간격을 고르게 하면 씨앗이 들쭉날쭉하지 않게 자란다는 말이다. 또 우리나라는 콩이나 보리를 심을 때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뿌려 곡식이 더부룩하게 얽혀 바람과 볕을 고루 받지 못한다고 한다. 많이 뿌린다고 수확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다.    


 초정은 물이 물의 구실을 못하고, 불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쇠가 쇠의 구실을 하지 못하며, 나무가 나무 노릇을 하지 못하며, 흙이 흙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곡식을 마음 내키는 대로 뿌려 지실이 든다고 한다. 결국 육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니, 물건의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터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중농주의자인 초정 선생이 본 게 이와 같다.

그 식견이 이러하고 무릇 유교를 배우며 공자왈 맹자왈을 읊는 유생들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말을 내뱉는다.『서경書經』에도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 하였다. 지금의 정부 관료나 공무원들인 이들이 이 도서를 읽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 도서가 아쉬운 점은 원문을 뒤편에 싣지 말고 바로 원문과 대조하여 읽게끔 바로 옆이나 행간 아래에 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도서를 추전, 선정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단기 4344년 6월 21일

충주에서

東洋學者 姜相圭 올림/


c********1 2011.06.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