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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해진 왕의 권위, 통치 시스템의 와해 초래-세도정치
"유명무실해진 왕의 권위, 통치 시스템의 와해 초래-세도정치" 내용보기
대하 역사만화 박시백의 만조선왕조 실록 17편 순조 실록은 그 부제가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였는데, 이 한문장은 순조 시대를 그야말로 단  한 문장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 권력이 사대부들의 공론이나 공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몇몇 세도가 가문의 사적인 영역에서 행사될 때 빚어지는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정조가 급서하고, 순조가 11살 어린 나이로
"유명무실해진 왕의 권위, 통치 시스템의 와해 초래-세도정치" 내용보기


대하 역사만화 박시백의 만조선왕조 실록 17편 순조 실록은 그 부제가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였는데, 이 한문장은 순조 시대를 그야말로 단  한 문장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 권력이 사대부들의 공론이나 공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몇몇 세도가 가문의 사적인 영역에서 행사될 때 빚어지는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조가 급서하고, 순조가 11살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오르게  되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됐다. 
정순왕후하면 시파를 숙청하고 벽파를 기용했고, 천주교인들을 박해한 신유박해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정조의 치세를 다시 보수적인 흐름으로 시대를  역류하게 만든 완고한 여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순왕후가 서학을 탄압하고 벽파를 기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녀를 평가하는데, 간과했던 점도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해다. 공노비를 혁파하는 등의 정책을 보면 보수 일변도의 정책을 편 것만은 아니었고, 거기에 순조가 열다섯 살이 되자 순조가 친정에 임하도록 미련없이 수렴청정  둔 것을 보면,  정순왕후가 권력욕이 대단했을 것이라고 재단했던 내 평가가 지나치게 인색했던 모양이다. 
아마 정조의 개혁이 좌절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순왕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만 하게 된 것이 아니었는지 돌아보면서 부정 일변도였던 그녀에 대한 내 평가를 조금 긍정적인 쪽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정순왕후가 영조의 계비로 간택됐던 것은  그야말로 조선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지닌 반인간, 반여성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66세 노년의 왕에게  손녀뻘인 15세 된 규수를 부인으로 들이는 세상이라니..
지금의 기준으로는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당시 풍속으로도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국혼이라고 해도 이런 혼인이 온전하다고는 그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순왕후는  며느리인 정조의 모친 혜경궁 홍씨보다 무려
열살이나 어렸다. 정순왕후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쉰 살 넘게 차이 나는 남편을 맞아야 했던 것이다. 
영조가 승하했을 때도 정순 왕후는 살날이 창창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청상이었다.그 긴 여생을 한점 혈육도 없이 살아야 했으니 한 여인에게는 너무
나도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비로소 하게 됐다.한 여인으로서의 정순왕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연민이 느껴졌고, 동시에 사대부들에 대해서의문이 일었다. 그들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딸이나 누이의 행복은 안 중에도 없을 만큼 비정했던 것일까?

광해군와 인목 대비의 비극에서 볼 수 있듯 이 노회한 왕이 나이어린  중전과의  재혼, 삼혼으로 인해 여러 번의 참극이 빚어졌던 것을 역사는 똑똑히 기록하고 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정순왕후보다는 당시 조선의 가부장제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순왕후 이후 노론 벽파, 그것도 강경파가 집권했지만 이내 벽파와 시파 모두 무기력해졌고,  당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며 권력을 다투던 정치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당쟁이 끝났다고 해서 조선의 정치 행태가 발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사대부들의 공론이나 현안과 상관없이, 몇몇 세도가문이 권력을  좌우 함으로써,  정치형태는 오히려  후퇴일로를 걸었던 것이다.

가문이 당파를 삼키는 세도정치가 본격화 될 조짐은 순조의 장인인 안동김씨   김조순에서부터 싹이 텄다. 조선의 정치를 보면서 의아했던 점 가운데 하나가 종친의 정치 참여는 엄격하게 견제하고 있 었던 데 비해 상대적으로 외척들의 전횡은 왜 제어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명조대 외척이었던 윤원형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윤원형은 누이인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 뜨릴 만큼의 권세를 누렸던 인
물이었다.

탕평에 힘썼던 영조도 후기로 갈수록 외척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홍봉한, 홍인한 등 사도세자의 장인이었던 풍산 홍씨 가문과  정순왕후의 친정인 경주 김씨 가문의 인물들이 요직에  등용됐다. 경주 김씨가문이 홍씨 가문을 견제했지만 영조대에서는 혜경궁 홍씨 친정인  풍산 홍씨가문이  우세를 점했다.
당시에는 영조가 정치력을 발휘함으로써, 이 두가문은 세도정치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영조가 승하하자 정조는 양 가문을 모두 권력에서 배제했고 심지어 외가인 풍산 홍씨 가문은 거의 멸문에 가까운 혹독한 처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지기반이 신하들을  직접 육성했다. 
그러다 다시 
외척들이 중용 된 것은  순조대 들어 확연해진 것이었다. 순조 장인인 김조순을 위시한 안동  김씨 가문,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일가인 반남 박씨, 거기에  효명세자의 세자빈 친정인 풍산 조씨가문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외척들의 전성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몇몇 가문이 요직을 독점하게 되자  그 폐단이 심각해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주요 국정 현안이 이들 손에서 요리됐고, 또 이들이 관직을 매관매직하면서, 권력은
몇몇 가문의 사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세도 정치가  삼정의 문란, 지방관의 수탈을  초래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돈으로
벼슬을 사게 되니, 과거제도는 유명무실해졌고, 그렇게 부임하게 된 목민관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데 혈안이 됐던 것이다.

정치행위가 공적인 경로로  이루어지지 않고 몇몇 세도가에 의해 사적인 경로로
해결됨으로써, 조선의 문치주의를 유지해왔던 기둥인 대간들의 간관 활동도 무너져
버렸다. 서로  비판하고 견제했던 감시와 자정 능력이 무너지면서, 부패가 만연했던
것이다. 그 결과  왕의 권위가  급격하게 약화됐던 것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회 변동으로 신분제마저 흔들렸다. 양반수는 급격하게 늘어난데 비해 
세금와 부역을 담당하는  양민의 수는 줄어들게 되면서, 양민들에게 부과되는 세금과 부역의 짐은 더욱 가중됐다. 조선 사대부들은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과 민생을 외면했던 것이다.

몇몇 세도가들이 권세를 누리는 동안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지금같은 민주 사회라면 선거를 통해 집권 정당을 바꾸는 방법을 택했겠지만 군주제 아래 백성들은 고통이 극심해질 때면 최후의 수단이 등장했다. 난이 발생했던 것이다.
순조 후기 홍경래의  난을 비롯한 여러 민란이 발생하게 된 것은  세도 정치로 인해
위민(爲民)과 거리가 멀어졌던 정치가 촉발한 자업자득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백성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나마 세도 정치를 저지하려고 시도했던 효명세자 마저 요절하면서 상황은 더욱 절망에 빠졌다. 그렇게 안동 김씨의 전횡은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지속됐다.

세도 정치의 부작용은 엄청났다. 조선의 기강을 뿌리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왕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이 유명무실해졌고, 조선을 조선답게  만들어줬던 사대부들의 기풍은 사라져 버렸다. 
권력의 사유화와 지방관들의 횡포는 백성
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듦으로써,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 짜내는 가렴주구의 정치로 전락해 버렸다. 유민이 급증하면서, 조선의 통치기반은 급속도로 와해될 정도로 세도 정치의 여파는 혹독했다.

그 결과 조선은 시대의 흐름에 역류할 수 밖에 없었다. 봉건성을 타파하고, 근대화를
지향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근대화와 탈 봉건과는 반대 방향으로 사회가 후퇴하게 됨으로써, 조선은 안으로 곪아갔고, 병들어 갔다.  
그 무렵 조선에는 이양선이 자주 출몰하면서 외세의 거센 파고가 곧 밀려올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외세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전혀 갖추지 못함으로써,  사회 내부의 모순이 심화되고,외세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조선은 몰락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조선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졌던 것이다.







  



   






e****0 2011.10.26. 신고 공감 10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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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로 접어드는 조선의 위기...!
"구한말로 접어드는 조선의 위기...!" 내용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번째 작품인 순조편이 드디어 나왔다. 정조편이 발매된 지 6개월 후이지만, 그 시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의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기본 사료로 삼고 있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역사적 통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 순조편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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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번째 작품인 순조편이 드디어 나왔다. 정조편이 발매된 지 6개월 후이지만, 그 시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의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기본 사료로 삼고 있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역사적 통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 순조편도 그렇다.


  흔히 조선을 퇴행시킨 반동 보수의 화신이라고 알려진 정순왕후가 사실은 상당한 개혁과 진보 정책도 추진했다는 사실을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다. 한 예로 정순왕후와 순조는 지침을 내려 6만 명에 달하는 공노비들을 1801년, 무조건 해방시켜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조의 아들인 순조 역시 비록 아버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나라를 잘 이끌어 가려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백년 세월을 버텨온 조선은 이제 그 힘이 점차 쇠락에 접어드는 현상을 어쩔 수 없다. 순조의 치세 기간에 그 유명한 홍경래의 난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백성들의 민란이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으니 말이다.


  또한, 멀리서 다가오는 서구 열강의 힘도 조선에 위기로 작용하게 된다. 영국과 중국 간의 아편전쟁이 벌어지기 8년 전인 1832년, 조선에 영국의 선박이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쇄국정책을 기본으로 삼고 있던 조선은 외국인은 가급적 친절하게 대우하고 그들이 원하는 물품을 주면서도 통상만은 한사코 거부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조선이 훗날 1876년 일본의 군사적 압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불공평한 강화도 조약을 맺기 전에, 저 때 영국과 미리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어쩌면 개화가 더욱 빨리 진행되어 자주적인 근대화에 성공해, 일본의 식민지와 남북 분단이라는 두 가지 큰 비극을 맛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지나간 역사를 읽으면서 내내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x***2 2011.06.09.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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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로 점철된 순조의 치세를 이해하다!
"세도정치로 점철된 순조의 치세를 이해하다!" 내용보기
그 실체와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혁 군주’로 평가되는 정조의 죽음과 함께 조선은 몇몇 특정 가문에 의한 세도정치로 인해 암울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다. 11살의 나이로 즉위한 순조를 대신해서 선왕인 정조보다 어렸던 영조의 후비인 정순왕후에 의한 수렴청정이 시작되면서, 그 친정인 노론의 핵심 가문 안동 김씨의 정권 장악력이 더욱 공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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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체와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혁 군주’로 평가되는 정조의 죽음과 함께 조선은 몇몇 특정 가문에 의한 세도정치로 인해 암울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다. 11살의 나이로 즉위한 순조를 대신해서 선왕인 정조보다 어렸던 영조의 후비인 정순왕후에 의한 수렴청정이 시작되면서, 그 친정인 노론의 핵심 가문 안동 김씨의 정권 장악력이 더욱 공고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남인들이 많이 가담하였던 천주교교들을 ‘사악한 학술(邪學)’이라는 미명으로 탄압하여, 이른바 ‘신유박해(1801)’를 시작으로 대규모의 순교자가 이어지게 되었다. 주지하듯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인 정약용이 이에 연루되어, 처형을 겨우 면한 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순조가 15살이 되던 해인 1804년부터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거두어지고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지만, 안동 김씨가 장악한 정권의 핵심부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권력자들의 횡포가 지속되고 이에 민중들의 삶이 더욱 고단해지면서, 평안도 정주에서 흥기한 농민군이 홍경래의 주도 아래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이른바 ‘홍경래의 난’으로 칭해지는 이 사건은 19세기 내내 발생한 ‘농민봉기’의 명분과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19세기 초반부터 계속 이어진 민중봉기의 의미를 평가하여 당시를 '농민봉기(민란)의 시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병약한 순조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이 효명세자(익종)가 잠시 대리청정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한때 개혁을 추구했던 세자의 죽음 이후 다시 권력은 세도정권의 세력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세도정치가 실시되면서, 이전부터 조선의 해안에 출현했던 ‘이양선’으로 인해 서양 세[력의 침탈이 시작되는 조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당시 정순왕후의 후원 아래 권력을 장악하였던 이들은 안동 김씨 가문으로, 특히 한양의 경복궁 서쪽 자하동에 거주하면서 위세를 누렸던 이들을 따로 ‘장동 김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특정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고 당대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19세기의 상황을 일컬어 ‘세도정치’라고 한다. 순조의 치세를 다룬 이번 시리즈의 제목을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로 명명한 것도 당시의 ‘세도정치’의 위세가 그만큼 막강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더욱이 이전까지 기록에 충실했던 실록의 내용이 순조 집권 후반에 이르면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는데, 이 역시 당시 권력을 장악한 이들에 의해 남겨진 유산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24.09.1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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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발적인 민란, 백성들 분노를 분출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7 순조편
"다발적인 민란, 백성들 분노를 분출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7 순조편" 내용보기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다. 이번 달에는 19세기 조선의 역사와 관련한 책을 읽는 중인데, 어찌나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는지,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뭣부터 읽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개국이래 지난 3백년이상 쌓인 적폐들이 여기서 펑 저기서 펑 하고 터져서 그야말로 바람 잘날 없는 날들이 펼쳐졌고,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나라에 망조가 들면 어떤 일들이 벌
"다발적인 민란, 백성들 분노를 분출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7 순조편" 내용보기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다. 이번 달에는 19세기 조선의 역사와 관련한 책을 읽는 중인데, 어찌나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는지,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뭣부터 읽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개국이래 지난 3백년이상 쌓인 적폐들이 여기서 펑 저기서 펑 하고 터져서 그야말로 바람 잘날 없는 날들이 펼쳐졌고,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나라에 망조가 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기였다.

 

조선의 19세기는 11세 순조의 즉위와 함께 실질적인 막이 올랐다. 정조의 급작스러운 승하, 어린 왕, 그뒤로 이어진 상황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었다. 순조 뒤에도 헌종이 여덟살에 왕이 됐고, 철종은 강화도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고종도 방계로 이어졌으니, 보위가 불안정하게 계승되는 동안 왕권은 추락하고, 당파도 위세가 감소해 왕보다도 일개 가문이 더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비정상적인 권력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른바 세도정치다.

순조는 불행한 아버지였다.영특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들인 효명세자를 비롯해서 생떼같은 자식 넷을 잃은 뒤에는 충분히 의욕상실에 빠질만 했다.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심리였을 것이다.

 

반면 어린 순조를 대신해 4년동안 수렴청정했던 정순왕후의 정치력과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16세에 영조의 계비로 입궁한 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이였다. 요즘으로 치면 오랫동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정치 9단의 내공을 다진 경우라고 할까.

드라마를 통해 친정 가문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배후에서사도세자를 해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수렴청정하다 의외로 깔끔하게 물러섰다. 더욱이 공노비 해방을 약속한 정조의 명을 어기지 않고 시행한, 무려 66000명의 노비안을 소각해, 그들을 족쇄에서 풀어준 결단도 멋졌다.

 

다만 천주교 신자를 처벌했던 신유박해 그 피리린내나는 방식은 정순왕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마음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천주교가 조선사회를 지탱하는 신분제를 흔들어, 체제를 뒤흔드는 위험요소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이시기의 조선은 이미 신분제에 변화가 두드러졌다.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서학을 믿는 백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변화를 차단하려는 미봉책밖에 구사하지 못한 조선의 운명은 뻔한 것이었다. 홍경래의 난을 비롯한 민란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흔하게 하는 말로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데, 순조편에서 요즘 우리 정국을 떠올리는 대목이 나왔다. 바로 민란이 발생하게 만든 사대부들 전횡에 대한 처벌과 사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백성들은 탐관오리에게 고혈을 빨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암행어사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정도로 부정부패는 고질병이었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에게 솜방방이 처벌이 내려졌고, 설혹 유배나 벼슬에서 쫓겨난다해도 왕실 경사를 빌미로 숱하게 사면이 이루어졌고, 과거경력이 다시 관직에 오르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관리들의 기강이 서기는 커녕 부정부패가 고착화되는 데 한 몫을 거들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성현종 리스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사면 자체가 삼권 분립이나, 법치주의, 평등에 위배되는 성격이 강하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 실시하는 특별사면은 재벌이나 비리를 저지른 측근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주는 원칙없는 조치가 돼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처벌에서 면제되고 정치적 권리를 회복한 사람들의 행보는 어떤가. 반성하고 죽은 듯이 살면 또 모르겠지만 다시 선거에 나와 금뱃지를 달거나 공직에 앉는 것을 보면, 현대판 면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법은 딱 만명 앞에서만 평등하다는 소리가  단지 우스개가 아닌 우리 현실이고, 전근대성에서 벗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민낯이다.

 

19세기 들어서 드러난 여러 문제는 결국 곪을대로 곪아터진 조선내부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를 환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해야하는 환자임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조선은 결국 불치단계로 병이 악화되고 만다. 어쩌면 수술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부여잡고 싶었던 마지막 시기가 순조시대였지만, 그저 부질없는 일이었다. 홍경래의 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백성들은 더 이상 순한 양이 아니었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백성들은 권력자들을 향해 노여움을 분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활화산이 된 것이다.

 

e****0 2015.05.05. 신고 공감 2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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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내용보기
17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정순대비, 심환지, 장시경, 김관주, 순조,        이병모, 이인, 황사영, 홍낙임, 혜경궁 홍씨, 주문모, 정약용 오른쪽 : 김조순, 이시수, 효명세자, 권유, 김달순, 김성길과 김일주          홍경래, 조득영, 김재찬, 홍총각과 이제초, 이여절   17권은 순조실록이다. 순조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은 ‘홍경래의 란’과 조선의 망국을 부르기 시작한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내용보기

17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정순대비, 심환지, 장시경, 김관주, 순조,

       이병모, 이인, 황사영, 홍낙임, 혜경궁 홍씨, 주문모, 정약용

오른쪽 : 김조순, 이시수, 효명세자, 권유, 김달순, 김성길과 김일주

         홍경래, 조득영, 김재찬, 홍총각과 이제초, 이여절

 

17권은 순조실록이다. 순조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은 ‘홍경래의 란’과 조선의 망국을 부르기 시작한 무능한 임금이라는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순조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거의 없었다. 나의 부실한 지식을 보충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펼쳤던 책에서 받은 인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순조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순조에 대한 이미지는 ‘무능’과 ‘무개성’이었다. 심지어 철종처럼 세도가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문종이나 인종처럼 요절을 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순조는 34년이나 왕위에 있었다. 재위 기간이 결코 짧지 않았고, 즉위 초에는 강단 있는 모습을 통해 신하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 역사를 망라해서 다른 제왕과 비교해도 평균 정도의 왕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이 선명하지 못했고, 부정적으로 비쳐졌던 원인이 무엇일까? 수렴첨정을 했던 정순대비의 존재가 너무 컸고,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민중이 분노할 정도로 악정을 펼친 것으로 인식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받은 임금(헌종과 철종)들이 그와 비슷한 이미지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조선의 위대한 왕 중에 한 명이었던 정조가 부친이다 보니 선왕과 비교하여 그가 더욱 작게 느껴진 면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철종과 같이 무지했던 것도 아니었고, 어머니인 문정왕후로 인해 기를 펴지 못했던 명종처럼 정순대비가 긴 기간 수렴첨정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문종이나 인종처럼 재위기간이 짧아서 뜻을 펼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정종이나 단종처럼 왕권을 위협하는 강력한 종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홍경래의 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정도의 난은 다른 왕조 때도 있었다. 세조는 이징옥·이시애 등의 반란이 이어졌지만 위축되지 않았고, 영조는 이인좌의 난이 있었지만 왕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순조는 왜 그 정도의 정치밖에는 하지 못했던 것일까?

 

둘째, 정순대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였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순대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정조의 사후에 개혁을 뒤엎고 국정을 좌지우지 한 악의 축과 같은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문정왕후처럼 긴 기간을 수렴첨정을 했던 것도 아니고, 정조의 정책을 뒤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뜻을 계승한 면도 이었다. 수렴첨정에서 물러난 뒤에는 더 이상 정사에 개입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정조의 급사 이후의 혼란을 무난하게 수습한 뒤 권력을 순조에게 계승시킨 충실한 후계자였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순대비의 모습을 실록의 기록과 제반 상황을 바탕으로 해서 재조명하고 있었다.

 

비교 자체가 무리일지 모르지만 윤보선·최규하 대통령을 떠올려 보았다. 4월 혁명 이후의 과도기에서 대통령직에 있던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소장의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므로 인해 그의 18년 독재시대를 열었으며, 10.26사태 이후의 과도기에서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소장의 하극상을 예방하지 못함으로 인해 유신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카리스마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정조의 정권을 그 아들인 순조에게 무난히 인계한 정순대비의 정치는 훌륭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윤보선·최규하 대통령보다는 뛰어났다.

 

셋째, 이여절을 보면서 역사가 되풀이됨을 다시 느꼈다. 정조 19년에 창원군수로 있던 이여절은 가혹한 형정으로 25명이나 장살을 했고, 피살자의 가족을 협박해서 자신의 악행을 은폐하려 했다. 그의 악정에 대해 사형까지 거론하기도 했으나 유배형으로 그친 뒤에 곧이어 복직되었다. 순조 1년에 황사영 백서 사건이 있자 황씨 성을 가진 무고한 천주교도를 고문을 통해 황사영이라고 자백하게 한 후 범인을 잡았다며 보고를 했다. 이에 대해서 정순대비가 대노하면서 그를 평생 절도에 충군시키라고 하였으나 역시 다시 복직이 되었다. 그는 순조 22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는 등 권세를 유지했다.

 

부정과 비리 혐의자에 대한 이런 솜방망이 조처와 그들이 기득권을 잃지 않은 한심한 세태가 어찌 조선시대에만 있었겠는가? ‘우리가 남이가?’란 말로 온 국민을 경악시키던 권력자가 아직도 이 땅의 권력자로서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고, 사학비리의 표본으로 지탄받고 축출되었던 족벌사학이 다시 복귀해서 예전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것이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과거를 모르는 이들은 다시 잘못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현재의 상황을 짐작하면서 경계를 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일 것이다.

 

18권은 헌종과 철종의 실록이다. 서서히 국운이 쇠퇴하면서 망국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한말의 비극을 다시 보는 마음이 힘겨울 듯하다.

y******3 2014.08.27.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내용보기
17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정순대비, 심환지, 장시경, 김관주, 순조,        이병모, 이인, 황사영, 홍낙임, 혜경궁 홍씨, 주문모, 정약용 오른쪽 : 김조순, 이시수, 효명세자, 권유, 김달순, 김성길과 김일주          홍경래, 조득영, 김재찬, 홍총각과 이제초, 이여절   17권은 순조실록이다. 순조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은 ‘홍경래의 란’과 조선의 망국을 부르기 시작한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내용보기

17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정순대비, 심환지, 장시경, 김관주, 순조,

       이병모, 이인, 황사영, 홍낙임, 혜경궁 홍씨, 주문모, 정약용

오른쪽 : 김조순, 이시수, 효명세자, 권유, 김달순, 김성길과 김일주

         홍경래, 조득영, 김재찬, 홍총각과 이제초, 이여절

 

17권은 순조실록이다. 순조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은 ‘홍경래의 란’과 조선의 망국을 부르기 시작한 무능한 임금이라는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순조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거의 없었다. 나의 부실한 지식을 보충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펼쳤던 책에서 받은 인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순조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순조에 대한 이미지는 ‘무능’과 ‘무개성’이었다. 심지어 철종처럼 세도가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문종이나 인종처럼 요절을 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순조는 34년이나 왕위에 있었다. 재위 기간이 결코 짧지 않았고, 즉위 초에는 강단 있는 모습을 통해 신하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 역사를 망라해서 다른 제왕과 비교해도 평균 정도의 왕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이 선명하지 못했고, 부정적으로 비쳐졌던 원인이 무엇일까? 수렴첨정을 했던 정순대비의 존재가 너무 컸고,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민중이 분노할 정도로 악정을 펼친 것으로 인식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받은 임금(헌종과 철종)들이 그와 비슷한 이미지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조선의 위대한 왕 중에 한 명이었던 정조가 부친이다 보니 선왕과 비교하여 그가 더욱 작게 느껴진 면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철종과 같이 무지했던 것도 아니었고, 어머니인 문정왕후로 인해 기를 펴지 못했던 명종처럼 정순대비가 긴 기간 수렴첨정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문종이나 인종처럼 재위기간이 짧아서 뜻을 펼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정종이나 단종처럼 왕권을 위협하는 강력한 종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홍경래의 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정도의 난은 다른 왕조 때도 있었다. 세조는 이징옥·이시애 등의 반란이 이어졌지만 위축되지 않았고, 영조는 이인좌의 난이 있었지만 왕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순조는 왜 그 정도의 정치밖에는 하지 못했던 것일까?

 

둘째, 정순대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였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순대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정조의 사후에 개혁을 뒤엎고 국정을 좌지우지 한 악의 축과 같은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문정왕후처럼 긴 기간을 수렴첨정을 했던 것도 아니고, 정조의 정책을 뒤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뜻을 계승한 면도 이었다. 수렴첨정에서 물러난 뒤에는 더 이상 정사에 개입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정조의 급사 이후의 혼란을 무난하게 수습한 뒤 권력을 순조에게 계승시킨 충실한 후계자였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순대비의 모습을 실록의 기록과 제반 상황을 바탕으로 해서 재조명하고 있었다.

 

비교 자체가 무리일지 모르지만 윤보선·최규하 대통령을 떠올려 보았다. 4월 혁명 이후의 과도기에서 대통령직에 있던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소장의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므로 인해 그의 18년 독재시대를 열었으며, 10.26사태 이후의 과도기에서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소장의 하극상을 예방하지 못함으로 인해 유신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카리스마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정조의 정권을 그 아들인 순조에게 무난히 인계한 정순대비의 정치는 훌륭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윤보선·최규하 대통령보다는 뛰어났다.

 

셋째, 이여절을 보면서 역사가 되풀이됨을 다시 느꼈다. 정조 19년에 창원군수로 있던 이여절은 가혹한 형정으로 25명이나 장살을 했고, 피살자의 가족을 협박해서 자신의 악행을 은폐하려 했다. 그의 악정에 대해 사형까지 거론하기도 했으나 유배형으로 그친 뒤에 곧이어 복직되었다. 순조 1년에 황사영 백서 사건이 있자 황씨 성을 가진 무고한 천주교도를 고문을 통해 황사영이라고 자백하게 한 후 범인을 잡았다며 보고를 했다. 이에 대해서 정순대비가 대노하면서 그를 평생 절도에 충군시키라고 하였으나 역시 다시 복직이 되었다. 그는 순조 22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는 등 권세를 유지했다.

 

부정과 비리 혐의자에 대한 이런 솜방망이 조처와 그들이 기득권을 잃지 않은 한심한 세태가 어찌 조선시대에만 있었겠는가? ‘우리가 남이가?’란 말로 온 국민을 경악시키던 권력자가 아직도 이 땅의 권력자로서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고, 사학비리의 표본으로 지탄받고 축출되었던 족벌사학이 다시 복귀해서 예전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것이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과거를 모르는 이들은 다시 잘못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현재의 상황을 짐작하면서 경계를 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일 것이다.

 

18권은 헌종과 철종의 실록이다. 서서히 국운이 쇠퇴하면서 망국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한말의 비극을 다시 보는 마음이 힘겨울 듯하다.

 

y******3 2014.08.27.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순조편] 기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순조편] 기대???" 내용보기
두달 가까이 책을 멀리했다. 중간중간 쉬는 틈에 교양서 읽다가 쓰려지는 줄 알았다. 아직도 다 읽지 못하고 저만큼 밀쳐 두고,,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니 그게 그거지만 내가 봄을 매우 심하게 탔나? 여전히 진행 중인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지내던 참에 드디어 순조편이 나왔다는 문자가 왔다. 이 책을 보고 다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조편만큼 기다린 건 아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순조편] 기대???" 내용보기

두달 가까이 책을 멀리했다. 중간중간 쉬는 틈에 교양서 읽다가 쓰려지는 줄 알았다. 아직도 다 읽지 못하고 저만큼 밀쳐 두고,,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니 그게 그거지만 내가 봄을 매우 심하게 탔나? 여전히 진행 중인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지내던 참에 드디어 순조편이 나왔다는 문자가 왔다. 이 책을 보고 다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조편만큼 기다린 건 아니다. 정조편은 매일 출판사 홈페이지 가서 언제 출간되나 기웃거렸는데 순조편은 알게 모르게 발간됐다.

순조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은 왜 자신의 아버지만큼 하지 못했냐라는 것이다. 친정 초는 참 부지런했는데 중반에 순조는 몸도 아프고 아들과 딸들도 잃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일은 비변사에 맡기고 자신은 민생에 조금 힘썼다. 그렇다고 백성들이 잘 산 거 아니다. 뭐 한건지..

의외로 정순왕후(영조의 부인)이야기다. 처음에 이 책을 보면서 왜 이렇게 정순왕후가 우리가 생각했던 거와는 다른가 했는데 왜 좋은 쪽으로 평가를 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근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내 생각은 조금씩 바꿔지고 있었다. 정순왕후가 정조 사후에 행했던 일들이 정조와는 반대로 가는 거라서, 즉, 내가 존경하는 정조를 심하게 반하는 행동들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서, 여자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은 드라마와 여러 관련 책들이 그렇게 쓰여 있어서, 나도 모르게 정순왕후는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정순왕후는 문정왕후만큼 오래동안 수렴청정을 하지 않고 순조가 친정을 할 시기에는 선선히 수렴을 거두었고, 의외인 것이 공노비를 해방시켰다. 권력이란 것이 한 번 맛들이면 쉽게 손을 놓지 못하는데 그녀는 그러질 않았고,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아직도 믿지 못하겠는데 공노비를 해방했다는 거 참으로 대단한 일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실록에 있는 그대로 정순왕후를 잘 묘사해 내어 나도 모르게 그녀에 대한 반감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그 유명한 홍경래의 난이 순조 시절에 일어났다. 그러나 난은 난으로만 끝을 맺었다. 완강히 버티던 봉기군, 홍경래는 탄환에 맞아 죽고 민란은 평정되었다. 왜 민란은 평정되는 거일까? 잘 사는 백성보다 못 사는 백성들이 수가 더 많아 힘만 합치면 세상을 뒤엎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먹고 사는 문제 해결만이 아닌 근본적인 신분제 철폐(이 얘기는 나중에 나오지..), 왕조 체제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까? 지구 반대편에는 같은 인간인데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결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의 앞표지를 보면 김조순이 그려져 있다. 세도정치를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그. 누가 그랬는데 정조가 세상을 뜨기 전에 김조순을 불러다가 세자(순조)를 잘 부탁했다는, 자신이 척신정치 반대를 부르짖어면서 결국은 세자의 장인인 김조순에게 너무 의지해서 세도정치를 불렀다는 그런 얘기도 있다. 그래서 김조순은 왕의 장인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가지고 목에 힘 주고 정치를 좌지우지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표지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의 저 고개 숙인 자세로 살았다. 그러면 무슨 김조순이 세도정치의 길을 텄냐 하는데 세도정치의 막장은 그의 사후 그의 아들과 조카가 순조 말년에 중요 요직들을 맡으며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자신의 겸손과 저자세로 살았으나 아들과 조카는 터치하지 않았다는 것. 이걸 작가는 더 큰 권력, 정치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노림수였다고 평가한다.

아무리 실록이 김조순에 대해 칭찬일색이라 할지라도 현재 그는 위인전에는 끼지 못하는, 현재에 와서는 세도정치의 서막을 올린 그런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다지 훌륭하고 새로운 인물로 평가 또는 재평가는 못 받는다(정도전처럼).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의외의 괜찮다 싶은 인물이 있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럭저럭인 실망스런 인물도 있는데 그런 걸 아는 재미가 이 책을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뭔가 커다란 재미가 있을 거란 기대는 또 한번 무너졌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실록이 부실하단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조편이 기대에 많이 못 미쳤는데 아무래도 실록이 부실하게 쓰여 있어서 책이 재미가 떨어졌다는 것이 작가탓이 아니라 실록 때문이라는 이제 알았다. 괜히 작가만 원망했다. 다음 헌종/철종 편은 더하다는데 나도 걱정이다. 정조 이후의 조선정치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몰라 한껏 기대했는데.. 막바지로 가는 조선왕조실록!!! 암튼 다음 편은 어떻게 풀어나갈지 느긋하니 지켜봐야겠다.  




n*****1 2011.06.17.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정순왕후에 대한 재평가
"정순왕후에 대한 재평가" 내용보기
사극에서 항상 정순왕후는 사악하게 그려진다. 한국인이 사랑한 조선왕 정조와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였고 천주교 박해를 심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2년만에 수렴청정을 거두고 뒤로 물러난 것을 보면 도 그렇게 심한 과욕을 부리는 여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단지 명분이 달랐을 뿐... 요즘 그런 식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정순왕후에 대한 재평가" 내용보기

사극에서 항상 정순왕후는 사악하게 그려진다.

한국인이 사랑한 조선왕 정조와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였고 천주교 박해를 심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2년만에 수렴청정을 거두고 뒤로 물러난 것을 보면 도 그렇게 심한 과욕을 부리는 여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단지 명분이 달랐을 뿐...

요즘 그런 식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만화에서도 그런 평가가 보인다.

 

 똑똑한 아버지에 비해 너무 유순해 보이기만 하는 순조가 안타깝다.

그렇게 조선은 서서히 무너지고 만다.

e******s 2015.04.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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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재위기간, 빈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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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는 잘 모르는 임금이다. 사극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무엇을 하신 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존재감이 미미하다. 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이 1800 년부터 1834년의 약 34년간이었다. 초기의 정순왕후의 섭정 기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친정을 한 짧지 않는 치세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실록에는 기록이 별로 남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긴 기간이지만 초기 일부분과 그의
"긴 재위기간, 빈 업적" 내용보기

 순조는 잘 모르는 임금이다. 사극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무엇을 하신 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존재감이 미미하다. 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이 1800 년부터 1834년의 약 34년간이었다. 초기의 정순왕후의 섭정 기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친정을 한 짧지 않는 치세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실록에는 기록이 별로 남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긴 기간이지만 초기 일부분과 그의 장인인 김조순 그리고 홍경래의 난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참 존재감 없는 임금이다.

 작가는 정순왕후의 변명으로 시작한다. 아마 정순왕후에 대해서는 2차 평가, 3차 평가후에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 한때는 악의 화신인 정순왕후로 주로 나왔지만 작가인 박시백에 의해서 악의 화신의 이미지는 많이 벗어났다. 하지만 정조에 대한 반동인 것은 어쩔 수 없다. 탕평은 무시되었으며 정순왕후 가문의 회복이 중요했다. 요즈음의 대통령의 모습을 조금 보는 것 같다. 결론은 벽파가 성공하고 시파가 당하고 남인은 박살난다. 이것을 신유박해라고 한다.

 다음은 시파의 반격이다. 순조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순왕후는 수렴을 빨리 걷고 그 자리에 임금인 순조가 쉽게 위치를 차지한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나 같으면 시파의 접근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론으로 시파가 벽파를 작살내고 정권을 차지한다.

 재위 기간이 34년이지만 내용을 잘 모른다. 이 책을 통해서 볼 때 특별하게 왕권이 약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정통성에 있어서 숙종에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에 순조 임금은 그냥 권력을 놓는다. 그래서인지 정치적으로는 평안한 세상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구가 몰려오는 세상에 우리는 이양선만 보고 마는 정도이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이 이루어진다. 그 전에 대리청정과는 달리 순조의 대리청정은 상왕으로서 권력을 별로 챙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부자갈등도 보이지 않는다. 전권을 이양하는 대리청정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효명세자가 슬프게도 젊은 나이에 죽고 다시 순조가 돌아와 친정을 한다. 정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이고 권력의 공백이 느껴진다. 어린 손자에게 좀더 잘 권력을 넘겨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김조순의 권력은 무지하게 센 것 같다. 이 부분은 다른 책을 통해서 봐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생각과는 달리 내 생각에는 권력을 사양한 것이 아니라 굳이 직위를 가지는 것보다는 이미 막후에서 통했을 것 같다. 겸양의 대신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장악한 것이라고 본다.

 결론으로 순조는 짧지 않는 긴 재위 기간을 지낸 임금이다. 하지만 권력은 왕에게 없고, 당파도 사라지고, 이제 안동김씨 가문에게 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이 아쉽다. 실록의 기록이 빈약한 탓일 것이다.

z******g 2015.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