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책 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난 조정래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이름과 책 제목이 낯설지 않아서이고 리뷰로 종종 보았기에 어느새 읽은것같은 착각에 빠진거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작가와 책 제목이 많아진다는 난감함이 있다. 그건 건방진(?)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을 시집으로 가지고 있는데, 남편이 조정래 작가인줄은 몰랐었다는 무슥함도 고백한다. 다만 그 유명한 태백산맥 세트를 선물로 받고는 단 한 권을 읽다가는 놔둔 채로 있다. 세트 도서라서 한 번 잡고서는 죽 밀고 나가야는데 그러기엔 일상이랑 다른 책들이 더 가까웠는가 보다. 아니, 이미 잡은 고기라서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기 때문일게다. 그러니까 이 책이 처음 만남이라고 해두자. 이 책은 37년 전에 중편 소설로 나왔던 책이었단다. 그 당시는 단편이 대세였는데 장편으로 하자니 어중간하여 중단편으로 묶었다는...이번에 장편으로 다시 개정한 것이란다. 책도 시대 따라서 선호도(생계)가 다름을 알게도 되었고 흐름이 있다는 것은 감지하겠다. 지금은 어떤 테마위주로 책들이 출간된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흐름을 주도하는 식으로 유행이 되더라. 위에 떤 너스레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대한다는 그 떨림이 있던차 접한 리뷰들은 무척 불편했다. 하나같이 비슷한 간략한 내용을, 비슷한 감정들로 썼기에 내 댓글들도 하나같이 비슷한 양상이 되더라. 실제로 읽게 되니 요약한 글들이 주는 뉘앙스때문에 언급하지 못했거나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을 독자의 상상만으로 보충하는 부분에서의 오류가 크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같다하더라도 과정이 그럴수 밖에 없었다 와 마치 원해서 그리했을거라는 생각과는 천지차이가 아니겠는가. 내가 접한 리뷰들을 읽으면서는 왠지 자의로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더 자리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100%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난세(특히 전시)에 미모는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걸 이용하여 제 갈길을 갈무리할 정도로 똑똑하고 현명한 조선의 여자는 많지 않음이라. 유교사상이 자리하는 시절에 아녀자의 위치는 매우 한정되었고 정절이 생명인 시대인고로 극악무도한 일본넘들이 위안부로 끌어가서도 조선여자들을 최고로 쳤다는 사실. 여기에 점례라는 이쁘고 암팡지고 사려깊은 큰 딸이 있다. 애지중지 키운 점례의 부모는 금실이 매우 좋았는데 그 방증이 남편이 부인일을 남의 시선 마다않고 도와줌... 그런 그녀의 부모는 과수원일을 봐주는데 일본인 주인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 호의가 흑심을 내품고 있을줄이야...점례의 어머니를 겁탈직전에 점례 아버지가 발견, 일본인 주인은 그야말로 묵사발이 되었다. 살인 직전에 점례 어머니의 만류로 살인범은 면했는데 그게 점례의 발목을 잡았다. 주재소 순사의 조선인앞잡이에 의해 점례는 부모님을 살리고자 일본넘의 정부가 된다. 그녀의 나이는 17세. 한없이 축복받고 성스러워야할 처녀의 졸업이 일본넘의 유린이라니...그 넘을 죽이고 자신도 죽자 마음먹으니 부모님과 동생들이 걱정이고...청춘인 몸은 정상이니 왜놈의 씨앗이라도 잉태가 되고...조부는 홧병 사망,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역시 고문후유증에다 울화병까지 겹쳐 차라리 살인범이 되었더라면...가슴앓이를 하다 끝내 돌아가신다. 그렇게 살아있으되 죽은 목숨이요 기막힌 삶인데도 어린 자식은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사시나무 떨듯 와들바들거리던 일본넘은 줄행랑을 쳐버리고...팔자 기막힌 딸은 어린자식을 데리고 친정으로 오나 뭇시선들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보다 못한 재력있는 이모가 나서서 어린 자식을 친정어머니에게 떠맡기고 먼 도시에서 제대로된 혼례를 올리며 가슴은 타들어간다. 어린것이 눈에 밟혀서도 그렇고 사람을 속여야 한다는 정신적 고통이 크다. 사람답게 대접받는게 그런건가를 느끼며 알콩달콩 살다보니 어느새 생명을 또 잉태되면서 딸을 낳는다. 미안해하자 그런말이 어딨냐며 고마워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사랑받음은 일본넘에게 유린당하던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여전히 어린 자식은 가슴속에서 가끔씩 생각나 옷을 사서 보내기도 한다. 또 한 번의 임신으로 둘째딸을 낳기에 이르나 여전히 남편은 서운함이 없고 고마움뿐이다. 그러던 남편이 모임과 집회를 종종 하더니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첫 남자도 그리 사라지더니...불현듯 다가오는 불안감을 잠재우며 남편이 나타났으나 이젠 공산당이다. 평등을 운운하고...자신이 알던 남편은 남편이건만 너무나 낯선 모습하며 표정하며 말투며...결국 남편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모 집에 숨어있다가 이모네가 피해를 당할까봐 자발적으로 붙잡히고...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가운데 빨갱이의 남편 소재를 추궁당하고...그러던차 둘째딸이 탈진하기에 이르고... 자신의 신원보증을 해주고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준 고마운 사람. 파란 눈의 군인. 선의를 보였던 그넘도 펄펄 끓는 청춘이고 이미 여자로 살아본 점례도 저항했지만...사회물정에 어둔 면도 있었지만 빨갱이의 여편네로 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그러자니 양공주 아닌 양공주로 지낼 밖에...건강한 몸인데 서양놈과 지낸다고 아이가 생기지 말란 법이 어데 있던가. 그렇게 아들을 또 하나 낳아버렸다. 누가 봐도 혼혈인 아들의 외모는 불보듯 앞날이 훤히 보이고...그것도 잠시의 행복이었나 싶게 유부남이었던 파란 눈은 줄행랑을 치고...그제야 아비가 다른 세 아이를 건사하며 억척으로 삶을 일구는데... 일본넘 씨앗인 그 녀석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찌 그리도 막내동생을 물심양면으로 갈구는지...이건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전초전같았다. 늘 당하기만 하는 동생. 그 중간에 딸과 어머니는 전전긍긍하며 막내동생만 다독일 수 밖에 없었다. 어지간히 다 장성한 자식들을 보며 점례의 선택은... 이렇게 기막힐 수도 있는 여자의 일생이다. 그러나 말이다 내가 싫은건 어떤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며 적어도 나라면, 내가 주인공이라면, 내가 누구라면 이라는 가정하에 어떤 대책은 할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끝도 없이 아무 대책도 없이 나락으로만 떨어지거나, 늘 더 나쁜 상황으로만 치닫는 상황은 사람을 미치기 직전으로 내몬다. 너무나 고통스럽다. 당해보지 못한 고통이나 그 고통이 감지되는 괴로움. 그 괴로움이 감지되는 공명이 싫은거다. 어쩌면 그리도 단 한 번을 좋게 되지 못하나. 설령 3명의 각기 다른 일본넘, 빨갱이넘, 서양넘을 정식이든 아니든 서방으로 맞았어도 아이는 안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아이가 생김으로써 겪게 되는 심적 고통과 타인의 시선속에서 감내해야할 아이와 가족과 점례의 고통은 어찌란 말인가. 설령 태어났다해도 좀더 한국적으로 외모가 생기던지...혹은 빨갱이넘 일망정 그 남편과 월북을 해버리던지...얼마든지 점례가 조금은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괴로운 면만을 콕콕 찝어서 독자로 하여금 고통스런 순간을 맛보도록 하는 잔인함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리네 역사고 잊지 말아야할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난 참으로 고통스럽게 이 책을 읽었다. 징글징글하게도 풀리지 않는 점례의 팔자가 참으로 딱했다. ‘왜 조선은 나라를 빼앗겼는가’ 하는 의문에, ‘남자들이 못나서’ 죄 없는 여자들까지 화를 입는다는 것. 여기서 남자들이란 일부 지도층임을 분명히 하면서 통한의 식민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내부의 문제를 통렬히 꼬집는데 여기서 점례와 친구 순심과 복실의 대화가 나온다. 점례는 얼마나 당차고 야무진지 점례가 의문을 갖는점과 그 문제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놓는데 친구 둘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을만치 점례를 경외스런 시선으로 본다. 이런 내재된 열정과 에너지가 굉장한 점례였는데 야마다라는 일본넘에게 어쩔 수 없이 정부로 살면서의 태도를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어이없음이여. 아무리 처한 상황이 그렇다해도 자신이 그정도로 죽어지낸다는게 좀 어패가 있어 보였다. 빨갱이 남편과 지내면서도 어쩜 그렇게도 무지몽매하게 무관심으로 남편일에는 관심을 안두지도 이해가 좀 안갔다. 오히려 서양넘하고 지내면서는 조금씩 물건들을 팔아야함을 깨닫고 필요한 물건을 요구할 줄을 알게 된다.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거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당찬(당차질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이자 엄마가 되었는데 자식들에겐 뜨끔한 소리 한 번을 못하는 에미였다니...이것도 너무 자격지심아닌가. 암튼 슬픈 역사에 슬픈 여인네의 삶을 알게된 뒷끝이 영 개운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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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가 처음 [태백산맥]을 펴내기 시작할 때 그를 만나, 지금까지 그의 글들을 읽고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그리고 [한강]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진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태백산맥]은 두,세번 읽은 까닭에 줄거리며, 등장인물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리랑]은 한,두장면, 그러나 [한강]은 아예 그런 기억조차 없는 것 같다. 작가는 1974년에 중편으로 발표한 글을 개작하여 장편 [황토]로 새롭게 탄생시켰다고 한다. 일제말기부터 시작하여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시기 이전까지를 시대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 [황토]가 그의 대하소설 3부작의 모태이었음을 느낀다. 이 책의 주인공 점례에게서 [아리랑]의 감골댁을 연상하고, 점례의 유일한 남편 박항구에게서는 [태백산맥]의 염상진을 떠 올린다.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들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여인, 그녀는 당시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념에 덫에 빠진 힘없는 서민으로서, 권력에 농락 당하고, 시대의 모순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살아가야 했던 이유는 세 아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례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누이이자, 어머니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셋째가 조난을 당했다는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에, 큰아들에게 연락했지만 그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모멸감뿐이다. 경찰서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아들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경찰의 눈빛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수없이 받아온 눈빛이지만, 속이 오그라드는 것은 어쩔수없다. 점례는 지나온 인생을 떠올려 본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식민지 백성을 농락하는 일본인 주재소 주임 야마다의 노리개가 되는 점례, 결국은 야마다의 아이를 낳고,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홧병에 죽고 만다. 해방이 되자 야마다는 야반도주 했고, 그들 모자는 버려졌다. 해방이 되었지만 점례는 왜놈의 첩이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모진 인생을 산다. 어느날 찾아 온 큰이모는 점례에게 시집 갈것을 종용하고, 점례는 항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젖먹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큰이모를 따라간다. 큰이모부의 소개로 독립투사의 아들이라는 박항구를 만나고, 점례는 과거를 속인체 그와 결혼한다. 자상한 그와 살았던 시기가 점례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딸둘을 낳았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그전에 사라졌던 남편은 인민군과 함께 나타난다.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다시 떠나가고, 국군 점령소식과 함께 점례는 구속되어 취조를 받는다. 그곳에서 만난 미국인 대위 프랜더스는 아픈 둘째 딸을 치료해주고, 점례의 신원보증인이 되어준다. 점례는 그의 집을 청소해 주면서 딸아이가 낫기를 기다리지만, 뜻하지 않게 프랜더스에게 겁탈당하고, 딸아이마저 죽자, 그의 첩이 되어 지내게 되고 둘째 아들을 낳는다. 휴전이 될 무렵, 프랜더스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귀국해 버린다. 또 다시 버림 받았다. 남자들이 못나서 나라를 빼앗기고, 죄없는 여자들이 화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점례, 프랜더스는 또 하나의 야마다였다고 고백하는 점례, 좌우의 이념 속에서 서로 더나은 세상을 만들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은 전쟁이라는 선택속에서 힘없이 당할수밖에 없는 민중들을 보면서, 외세의 본질은 똑 같은것임을, 권력을 잡은자들의 욕심은 나라를 망치지만, 결국 그러한 아픔과 모순을 받아내는 것은 이 땅에 살고있는 힘없는 민중임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비록 60-70년전에 이 땅에서 살아왔던 우리들의 누이이자 어머니들의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어떠한지 살펴보게 만든다. 서로 반목하는 큰아들과 둘째아들을 보면서, 그들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는 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순은 언젠가 반드시 해소되어야만 가정이든 국가든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못난 남자들 때문에, 욕심 많은 위정자들 때문에, 외세에 농락당했던 지난날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반면교사이다. 시대의 모순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민중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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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다음으로 선택했던 조정래 작가의 책이다. 관심의 눈을 옮겨 놓기만 하면 이전과 다른 것을 볼 수 있음을 재확인하는 중이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읽어내기 위한 전 단계란 핑계로 단행본으로 나온 작가의 책들을 먼저 보는 중이다. 이 책을 놓자 마자 《허수아비춤》을 읽기 시작했고, 《황홀한 글감옥》을 틈틈히 보고 있다.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태백산맥》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냥 대작이란 막연한 생각으로 읽기 보다는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알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 몰입도를 높여 긴긴 장편을 읽는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 시작한 나만의 워밍업 방법이다. 느릿느릿 책을 읽어내는 내게 10권이란 책을 외도하지 않고 읽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해 알아가는 만큼 작품에도 관심이 더해간다. 그래서 연이어 한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고 여세를 몰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소설 조차도 잘 읽지 않던 내겐 새로운 관심거리가 생긴 것이니 다행한 일이다.
이 책 《황토》는 어린 시절 TV문학관에서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고난과 한을 담았던 단편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는 숨통을 조여오는 그런 답답함이 등장 인물들 사이에 흐른다. 불행의 역사로만 활자화 된 역사책을 읽으면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당시 상황을 개별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황토》 역시 자유가 없던 시절,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게는 무조건 복종해야만 했던 피지배국 국민들의 설움을 온몸과 마음으로 견뎌내야 했던 점례라는 주인공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죄가 될 일도 아닌 것을 죄로 뒤집어 씌워 말도 안되는 억지 요구를 하는 일부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좌지우지 했던 만행들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던 것 같다. 철저히 개별적이었던 고통스러운 삶을 만나 공감할 수 있게 해 준다.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점례의 삶도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는다. 아버지가 제 각각인 그녀의 세 자녀와 그들간의 갈등 또한 그런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대변해 준다.
제목 황토는 그런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를 깊숙히 간직한 땅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TV문학관을 떠올렸던 것처럼 자연스레 떠올린 생각이다. 불행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땅.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을 눈물을 머금고 있는 땅.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변해가지만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작가는 제목에 담고자 한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소설 어디에서도 갑갑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장성한 자식들 마저도 유별나게 서로 다툰다. 그런 갈등이 해소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소설은 끝이 난다. 마치 우리가 바라는 해피엔딩은 아직 멀었다거나 그런 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준 채 말이다. 점례는 자신이 살아온 평생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써내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북으로 가버린 남편이 자신의 딸을 찾아 자신이 쓴 글을 읽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면서. 그녀는 과거 이야기를 잊지 말기를 거기서 우리가 무엇이든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쓰는 손가락에 힘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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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발표한 <황토>를 이번에 새롭게 손을 보고 다시 개정판을 내놓았다고 한다. 개정판이라고는 하나 기존 원고의 대부분은 예전 30여년전의 작가의 문체라고 생각하니 새로웠다. 기성작가들도 초기 작품과 최근의 작품이 간혹 차이가 있기도 하는데, 조정래작가의 이 글은 <태백산맥> 이나 <아리랑> 에서의 작가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아픔과 민초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고 인간적으로 그려낸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책에는 열일곱살의 '점례' 부터 오십줄에 들어선 '점례' 가 나온다. 그녀의 일생을 영화처럼 슬라이드 쇼를 한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30여년간의 그녀가 살아온 시대 환경은 식민지와 6.25 전쟁이 들어 있다. 생각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기는 한다. 두 말 필요없이 험난한 인생이 들어있다.
점례는 예뻤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예쁘다는 건 그닥 좋은일이 못된다. 주재소에서도 악랄하기로 소문난 '야마다'의 눈에 찍혔다. 열일곱살의 꽃다운 나이의 순결한 처자는 부모의 목숨을 담보로 그렇게 짓밟히며 야마다의 여자로 지내야 했다. 짐승처럼 갇혀 지내며 겨우 해방이 되었고, 야마다는 야반도주를 하고 남겨진 건 갓 태어난 아들과 자신 뿐이다. 해방이 되면, 자유가 생기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멸시와 모멸이었다. 왜놈의 아이를 낳은 점례를 누구도 반겨주질 않았다. 사람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몸은 자유인이었어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또 다른 여인이 있다. 이제 갓 스무살인 그녀를 시집보내기 위해 분주한 친정엄마 였다. 아들이 있는 것을 숨기고 처녀인 것처럼 속여 만난 두번째 남자는 '박항구' 였다. 똑똑하고 자상하고 말 수가 적은 듬직한 남자였다. 야마다와는 혼례라는 것도 없이 치뤄진 일방적인 결혼이었다면 박항구와의 결혼은 혼례도 치루고 동네사람도 초대해 잔치도 벌렸다. 남편은 멀지 않은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을 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다. 점례도 자상하고 듬직한 남편덕에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 세연이도, 세진이도 태어난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큰 딸 세연이가 3살무렵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놀라운 사실은 말 수가 적었던 남편이 '부위원장' 이란다. 남편과의 대화가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놀랍고 야속한 일이다. 공산당 간부의 아내로 살면서 눈치조차 못챘기 때문이다. 부위원장의 아내로서 점례는 너무 무지했다. 하지만, 한가지 못 사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은 믿고 싶었다. 모두가 고루 평등한 세상이 온다는 말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국군에 밀려 공산당원들은 점점 북으로 북으로 몰리고 있었다. 서로 뺏고 빼앗기고 끝에 현재 우리의 모습. 38선을 기점으로 남과 북이 갈리는 현 상황이 소설에서도 벌어진다. 남편은 집안에 있는 모든 서류들을 불 태우고 처자식을 버려두고 "다시 돌아올꺼다" 라는 말만 뒤로한 채 떠난다. 야속한 사람. 다시 볼 수 있을까.
홀로 남겨진 점례. 부위원장의 아내였던 점례를 가만두지는 않았다. 젖먹이 세진이를 업고서 심문을 당하는 점례. 고함소리가 난무하는 지리한 곳에서 세진이는 병이 들었다. 점례를 취조하던 자리에 있던 미군 대위의 남자. 고맙게도 아이를 치료해 주겠다고 한다. 아이의 병을 치료해 주면서 알게 된 미군 대위. 그녀의 무죄를 도와주며, 아이의 병을 치료해 주는 선심을 쓰고... 예쁜 그녀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또 얼마간 미군의 여자로 지내게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버지가 다른 세 명의 자식을 키우며 늙어가는 점례의 모습을 통해,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현대역사를 소설 한권으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무지하고 순박하기만 했던 한 여인을 통해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억울함과 희생, 삶의 고단함... 나라를 잃은 힘없는 민족의 아픔에, 민초들의 고통에 고개가 숙여진다. 안타까운 목숨이 잔인하게 죽어 가고, 일부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죽했으면..." 이란 생각을 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인생들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많은 희생과 뼈아픈 역사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 지금의 우리는 고귀한 희생으로 되살아난 존재들인데 그 소중함을 자주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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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일제강점기. 아버지가 주재소에 끌려갔다. 일본 사람을 때린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구하려 하지만 힘이 없는 점례는 그만 돌아온다. 그날 저녁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강호식은 어머니께 어떤 이야기를 하고 돌아간다. 그 이야기는 곧 점례에게 전해지고 그녀는 주임 야마다에게 불려간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풀려난다. 그날부터 그녀는 야마다의 첩이 되어 살아간다. 아이를 낳고도 그녀는 떳떳하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일본이 망하고 야마다는 그녀 몰래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야마다의 아들과 사람들의 욕지거리 그리고 손가락질 뿐이다.
이야기 둘.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점례. 그런 그녀를 그냥 볼수 없어 엄마와 이모는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 이모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다른 이의 아내가 되어 딸을 낳는다. 그렇게 행복할 것 같은 생활도 남편이 인민군과 함께 돌아오면서 산산히 부서졌다.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남편은 기세가 등등해졌지만 그녀는 점점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런 위세도 국군이 들어오면서 위험에 쳐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떵떵거리던 놈, 제 처자식 버리고 도망갈 꼬락서니에 인민해방? 이말과 딸을 남긴채.
이야기 셋. 국군과 미군이 들어와 동네를 장악했다. 그녀는 위원장의 아내라는 이유로 고문을 받지만 다행히 큰 죄를 짓지 않아 풀려나게 된다. 그러면서 미군 장교의 빨래와 청소를 해주게 된다. 작은 딸이 죽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신원보증인제도. 그리고 그녀는 미군 장교의 새끼 손가락이 되었고 아이를 임신했지만 미군 장교는 본국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자신은 세 아이의 어머니였다. 자신은 혼자였고, 세 자식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앞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 중한 현실만 똑바로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다거나 신세가 박복하다는 비탄이나 탄식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피하려야 피할 수 없어서 당하게 된 일이었다. 이제 남은 길은 단 하나, 세 자식을 꿋꿋하게 키워내는 것뿐이었다. (p 247)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자식들에게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시대의 희생자는 아니었을까? 예전에 그런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대가 불안할 때, 여자에게 예쁜 얼굴은 때론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아픔을 모른다. 이후 나라의 불안한 정세를 피부로 느끼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결과만으로 그녀를 욕할 수 있을까?
여자에게 인생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몇번은 혀를 깨물었을 그 인생을 살게 한 건 아이들이었을것이다. 이후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악마처럼 싸움질을 하는 한이 있어도, 그들이 더 나빠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 이유 또한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 가족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를 본다. 처음부터 그런 인생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앞으로 이런 비극 자체가 일어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아픔과 피와 눈물로 지금 우리의 삶이 만들어졌다. 위안부 문제며, 전쟁의 사과며... 우리는 그들에게 받아야 할 것이 참 많은데... 속절없이 시간만 가고 우리의 기억속에 그들은 흐미해져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게 제일... 마음 아팠다. 언제쯤이면 그들은... 진정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될까? 아마... 내 평생 그런일은 없는 것일까? 왠지 씁쓸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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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발표한 중편 [황토]와 [비탈진 음지]를 개정해서 장편을 만들어서 발표한 작품이 황토이다. 즉 이 작품은 [아리랑],[태백산맥],[한강]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할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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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일지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밖에 길이 없다. 한 여자가 살아오면서 겪어야만 했던 인생이 너무나 가여웠다. 여자의 몸으로 아비가 다른 세 자식을 키우느라 온몸으로 차가운 세상을 헤쳐나갔을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원치않았지만 일본순사의 첩이 되어 큰 아들(태순)을 낳았고, 짧은 결혼 생활을 통해 딸(세연)을 낳았으며 미군에게 겁탈을 당해 막내 아들(동익)을 낳았던 여자 점례. 태순, 세연, 동익은 아비는 다르지만 한배를 타고 태어난 자식들이다. 일본인을 아비(야마다)로 둔 첫째 아들 태순, 엄마가 박항구와 결혼해서 낳은 둘째 딸 세연, 미군(프랜더스)을 아비로 둔 막내 아들 동익, 세명 모두 부친의 얼굴을 모르고 엄마와 살아왔다. (세연의 여동생 세진은 어린 시절에 병으로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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