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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넷인 어머니는 오늘도 녹차 밭에서 찻잎을 따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래. 별 일 없지? 아이들은 잘 있고. 우리 00만 건강히 잘 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며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할 뿐인데도 어머니는 무탈하게 지내줘서 고맙고 전화해줘서 더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무심한 딸이 그냥 생각나서 안부 전화한 것도 그저 고마운 모양이다. 엄마와 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가늠키는 어렵지만 어머니 생전에 안부 전화라도 자주 건네야겠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것은 황안나 작가와 그녀의 어머니가 쓴 글을 엮은 책, <<엄마, 너 또 올게>>를 읽고 나서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부모를 홀대하며 지내온 점을 뉘우치며 부모들이 갈증을 느끼며 사는 게 무엇인지 살필 때 이별의 회한은 조금 덜할 것이다.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육남매를 키워내느라 신산하였던 어머니는 공부 못한 한을 품고 지내서인지 독학으로 한글을 깨치고 일상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기와 편지를 써내려갔다. 병을 키워 자식을 가슴에 묻고 원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는 일기장에 쓰라린 마음을 토로하였고, 남편을 여의고 어린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지난했던 시절을 일기장에 담았다. 고된 시집살이의 혹독함은 상상을 초월하였지만 장성한 자식들이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에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며 지냈던 어머니의 글들은 팔순 잔치의 선물로 세상 빛을 보았다. 맞춤법도 맞지 않은 서툰 글씨로 써내려간 어머니의 일기장은 가장으로 생계를 전담하며 살아내느라 힘겨웠던 한 개인의 역사이면서 슬하의 자식들 역사를 아우르는 가족 공동체의 기록이었다. 어머니는 별 다를 게 없는 일상을 살면서 가슴이 시키는 말들을 기록하며 힘들어도 아이들을 젖 먹여 기르던 시절이 그리움으로 자리함을 회고한다. 간장을 달여 자식들에게 나눠 줄 생각에 고달픔은 기쁨으로 치환되었던 경험, 풍성한 가을을 지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스스로 단련됐던 경험, 자식들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며 전해준 소소한 감동 등을 살뜰한 눈으로 써내려간 글들에서 어머니 사랑을 확인한다. 아픈 다리를 끌면서도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한 가지 더 만들어주려는 어머니 생각에 울컥했던 마음은 눈물 되어 흘러내린다. ‘어머니! 사랑해요!’ 표현하지 못한 말은 마음속에 흩어지고 어머니 생전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지내지 못했던 점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가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무를 것이라는 착각 속에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흔하다. 작가의 꿈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맏이로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로 추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 살에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한 딸의 일상은 곤궁함을 벗어나질 못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많은 부채를 떠안아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날은 20년을 훌쩍 넘겨서야 끝났다니 그녀의 청춘은 빚 갚느라 소진된 셈이었다. ‘죽기야 하겠어.’ 생활신조로 자리하는 외마디로 고단한 삶을 집약할 수 있을 듯하다. 고령의 어머니에게도 맏딸은 가슴 아리는 추억으로 자리하였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남편 빚 청산까지 도맡은 딸이 감내하였던 헌신적인 책무 덕분에 지금의 자식들이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며 지내온 어머니였다. 정신이 맑았다 흐려지기를 반복하는 어머니는 맏딸의 버거웠던 지난시절을 기억하며 방은 구했는지 물었다. 아흔 여섯 봄에 영면한 어머니 역시 자신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먼저 간 엄마를 찾아 떠났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어머니, 생전에 자식들이 챙겨야 할 것들을 일깨워준다. 발신음과 함께 들려오는 어머니의 웃음 섞인 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바쁘다는 소리를 반복하며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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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거의 리뷰를 보고 너무도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매혹되어 이미 내용도 다 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표지만큼이나 푸근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라 넘겨짚게 되는 책이었다. 그 책이 우연찮게 내 손으로 들어왔다. 첫 시작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 무남이]이라는 제목에 붙은 ‘우리’라는 대명사가 무남이에 듬뿍 담긴 애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내 품속의 누군가’ 라는 지칭어로 자주 쓰게 되는 ‘우리 누구~’ 라는 식의 표현이 전해주는, 이 사람만 떠올리면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 그런 우리 무남이 일 것이다. 그런데 무남이가 만 1살도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도 무려 70년 전에 가슴에 묻은 내 자식 이야기.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펑펑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홍영녀 할머니(96세)의 일기와 그녀의 딸 황안나 할머니(72세)의 수필을 묶어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이 특별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홍영녀 할머니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어깨 너머 배운 한글로 조금씩 일기를 써왔고 그 일기장 8권이 큰 딸 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데다 그 안에 담긴 홍영녀 할머니의 솔직하되 가슴 찡한 짧은 글들이 큰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여러 상황들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긴 했지만, 실제로 다른 어떤 것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흔 넘은 할머니의 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 표현과 솔직한 일상 들이 담겨있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우리는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다시 아기로 돌아간 것처럼 투정이 많고 고집이 세며 젊은 날 어떤 모습이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름진 얼굴과 뼈 밖에 남지 않은 왜소한 몸, 이 정도가 내 머릿 속에 먼저 떠오른 할머니의 이미지다. 나에게 할머니의 이미지가 이렇게 그려지는 이유는 바로 시할머니 때문이다. 나의 유년 시절에는 ‘할머니’란 존재가 없다. 외가에도 친가에도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할머니 모두 진짜 할머니가 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 우리 부모님들의 기억과 사진 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는 20대의 젊은 아낙이었으니 더욱 할머니란 어떤 존재인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가끔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보게 되는 할머니란 존재, 살뜰히 손주(손자 손녀)들 밥 챙겨주고 다칠세라 어루어 주고 예쁘다고 안아주는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는 전혀 진전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내게 할머니가 생겼다. 그것도 시.할.머.니. 시집오기 전부터 약간의 어려움을 가졌던 부분도 시할머니의 존재였다. 귀여운 손주(손자) 며느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내게 할머니가 생겼으니, 할머니께 어떻게 하면 살갑게 다가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지, 시부모님을 대할 걱정보다 할머니 대할 걱정이 더 앞섰다. 시할머니는 여든 중반의 왜소하지만 깔끔한 분이셨다. 이때부터 내게 할머니란 존재의 이미지는 살집이 전혀 없이 왜소한 몸에 귀는 잘 들리지 않고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신체적 기능은 많이 퇴화되었으나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분으로 각인이 되었다. 홍영녀 할머니. 딱 우리 시할머니 모습이시다. 사진을 보니, 그리고 현재의 삶을 보니, 자동적으로 우리 시할머니로 치환이 되버린다. 잘 걸을 수 없어 기어 다니는 모습까지, 자식에게 짐이 될까 싶어 어디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외로워서 자식들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모습까지 닮아있다. 그런데 이건 눈에 보이는 모습들일 뿐이다. 이렇듯 처음엔 나는 시각적인 닮음만 좇았다. 하지만 홍영녀 할머니의 일기를 읽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너무도 많았음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속절없이 울음을 쏟아내고 만다. 무남이 이야기부터 그랬다. 무남이는 할머니의 둘째 자식이다. 돌도 되기 전에 저세상으로 보내야했던 그 아픔을 한 편의 시로 승화시킨다. 할머니는 노래하듯 운율 있는 일기로 쓰셨는지 모르지만 행과 열을 맞추고 나니 시가 탄생한다.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어미 때문에, 어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서 써볼까, 빌어본들 무엇 하리, 울어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꽃이 바람에 줄기째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움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보아라. 쥐암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보아라. 옹알옹알 옹알이로 조잘대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24~25p) 어미의 마음은 다 똑같다. “어머니의 물기 어린 마음"(206p)...... 그걸 어미가 되고 나서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할머니가 되어보지 않아서 할머니의 심정까진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무남이를 향한 마음은 할머니의 위치가 아닌 어미로서의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할머니도 누군가의 어미이고 솜털 같은 아기를 기르며 늙어갔음을, 나도 지금 그러고 있음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아직은 닿지 못한 미래의 시간을 미리 당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할머니들의 일상은 원래 그리 외롭고 느릿느릿하며 세상일에 둔감한 세대라고 특징 지어 버렸다. 즐겁게 살 권리는 젊은 사람에게, 희생할 의무는 나이든 사람에게 있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들통 나는 순간,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홍영녀 할머니의 글에서는 외로움이 진하게 깔려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이자 두려움인 ‘외로움’을 늦게나마 깨친 한글을 통해 위안으로 삼는다. 자신의 속앓이를 글로 토해내면서, 흰 공책을 까만 글씨로 채워나가는 만큼 자신의 외로움도 밀어 내본다. 이 내 몸, 꽃 같은 내 청춘, 한 많은 이 세상. 가는 줄 모르게 어느덧 팔십 고개 오르니 서리 맞은 들국화 바람에 시들듯이 늙고 병들어 시들어졌다. 항상 외롭고 쓸쓸하다. 마음은 허전하고 텅 빈 이 가슴에 한도 많고 설움도 많다. 내 앞엔 아무도 없다. 아무리 곱고 아름다운 꽃이라도 시들면 오던 나비도 멀어지고 외로움만 남는다. (43p) 슬하에 6남매나 있지만, 그리고 하나같이 효녀․효자․효부들이지만 그래도 늙어 가는 만큼 비집고 들어오는 외로움을 감당하기란 세월로 다져질 때로 다져진 강단만을 가지고 버틸 수가 없나보다. 아마도 너무 일찍 가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져 그런 게 아닐까.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편지, 무슨 사연 그리 많아 밤새도록 내리는가.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자느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67p) 홍 할머니의 글에는 항상 죽음을 염두 한다. 외로움의 끝은 죽음이련가. 나이가 주는 무게가 숨통이 막히게 하는가. 할머니 주변에는 죽음을 전하는 소식들이 줄을 섰다. 그리고 이젠 자신의 죽음을 경계하면서도 기다린다. 누군들 죽고 싶겠냐만은 긴 병환 앞에 효자 없다는 말을 새기며 자신을 늙은 거미로 비유한다. 명줄이 긴 것에 한탄하면서도 더 이상 실을 뽑을 수 없는 늙은 거미가 된 것까지 동시에 한탄한다.(71p, 나는 늙은 거미다) 주관적인 세월은 짧을 때도 있고 길게 느껴질 때도 있다. 홍 할머니의 시계는 지금 너무 느리게만 흐른다. 아픈 고통도 싫고 자식들 볼 낯도 없어서 얼른 이 시간들이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벽에 걸린 시계는 아랑곳 않고 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속도로 째깍거린다. 마루에 걸린 시계 소리 생명줄 닳아지는 소리 기다림 줄어드는 소리 (72p) 자식들에게 기대지 말자며 홀로 시골집에서 기거하는 홍 할머니, 그곳에서 채소도 가꾸고 닭도 기르고 친구도 사귄다. 그렇게 외로워하면서도 자식들에게만큼은 짐이 되기 싫고, 말년이라도 하고픈 것 하고 살겠노라 독립을 선언하더니 그 독립도 잠깐, 노환과 사고가 겹쳐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다시 자식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자신은 인생풍파 겪을 만큼 겪고 강해질 만큼 강해졌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을 하늘은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이렇게 병을 주고 드러눕게 만들어 자식들에게 짐만 지워준다. 할머니의 자존심에 심하게 상처를 입지만 그 상처를 도리어 자식들에게 짜증내고 고집 피워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덮어보려 한다. 홍 할머니의 외로움은 기다림으로 대체된다. 자식이 오고, 손자가 오고 이웃이 오고 친척이 와서 자신의 말벗이 되어주는 순간을 기다린다. 직접 수확한 채소를 나눠주고 조물조물 무치고 데쳐 만든 반찬을 자식들 입에 넣어줄 수 있는 그 시간들을 기다린다. 짧은 만남의 순간을 위해 할머니가 준비하는 시간은 참으로 길다. 일 년 내내 농사를 짓고, 아침부터 바지런히 청소하고, 자식들이 좋아할만한 반찬 사러 장보러 나간다. 이제 엉덩이 붙이며 방바닥에 앉았나 싶은데 벌써 몸을 일으키는 자식들을 배웅하는 심정을 다음의 만남에 대한 기쁨으로 미리 예약하며 자식들이 저만치 사라질 때까지 대문밖에 서 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프구나. 언제 다시 오려나, 끊임없는 기다림. 살아 있는 명줄이 끊어지지 않는 건 기다림 때문이다.(141p) 증손자(하온)를 향한 시할머니의 애정도 그와 같으리라. 홍 할머니의 낙이 일기와 글을 쓰는 것이었다면 우리 시할머니의 낙은 증손자의 사진을 보며 말을 거는 것이다. “하온아, 오늘 학원(어린이집)에 갔나?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레이, 잘 안들으모 밥 안준다.” “하온아, 인자 집에 왔나? 엄마 말 잘 들어레이, 울지 말고.” 시할머니는 벽에 나란히 놓여있는 손자의 액자들에게 시시때때로 말을 건다. 다리가 불편해서 어디 나가시지도 못하시는데다 성격도 친구를 사귀기보다 오직 당신의 가족만 챙기는 것이 다다. 모든 신경은 집안에만 쏠려 있고 도통 집밖으로 나가시질 않는다. 그래서, 누가 봐도 가장 외로운 사람은 할머니다. 할머니 스스로 자초했다고도 하나, 팔십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이 자신만의 정답인 줄 알기에 굳이 바꿀 의사도 없으시다. 당신이 밖에 나가질 않으시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매일 들르시는 시부모님을 기다리고, 주말에 가끔 들를 손자 가족을 기다린다. “우짤 때는 하온이가 보고 싶어 죽겠는데 그럴 땐 전화로 하온이 목소리만 들어도 살 것 같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 하온이에게 전화 상 고작 듣는 이야기라곤 “할머니” 또는 “사탕”정도다. (할머니 사탕주세요 라는 말) 그것마저 잘 듣지 못하셔서 계속 하온이에게 “하온아 할머니 해봐, 할머니 해봐” 라고 연신 외치신다. 차라리 하온이가 소리 지르며 놀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할머니 귀에는 뭐라도 들리지 싶다. 이미 다 커버린 손자 손녀와 함께 늙어가는 아들, 며느리, 딸들은 할머니에게 더 이상 살갑지 않다. 그래도 웃어주고 ‘왕 할머니’를 외치며 안기는 것은 증손자이기에 할머니의 안테나는 항상 증손자에게로 뻗을 수밖에 없다. ![]() ![]()
홍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며, 내내 시할머니 생각과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뒷방늙은이처럼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스스로 전락될까 두려워 이것저것 해보려 움직여보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것은 인생의 덧없음에 한탄하고, 혼자임에 슬퍼하고, 코앞의 죽음에 두려워한다. 그래도 그녀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어서 후손들에게 귀띔한다. 욕심 부리지 말고, 가족 간에 사랑하며 살라고. 살아보니, 돌아보니, 남는 건 후회밖에 없다고. 좀 더 베풀고, 좀 더 배려하고 살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온전히 움직이는 두 발로 힘차게 도움닫기 해서 훨훨 자유롭게 날아간다. 한 떨기의 국화꽃이 진다. 그렇게나 종달새처럼 날고 싶어 하고 자유로워지고팠던 소원을, 저 세상을 향해 날아감으로써 성취한다. 아름다운 꽃은 인간들의 오욕을 모두 버렸기에 아름답다. 외롭게 홀로 앉은 수행자, 외롭다는 생각마저 버렸기에 자유로웠다. (139p)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책을 읽고 울기만 하지 말고, 울면서 가졌던 감정의 정화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나부터 잘하자고. 도덕 시간의 단골손님 “노인공경”, “효”란 막막하고 메마르게 다가왔던 단어가 이젠 가슴으로 비수처럼 박혔다. 박히는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본다. 더 건강하실 때 효도하자. 미루지 말자. ‘살림이 좀 더 나아지면 여행도 보내드리고 용돈도 두둑하게 드려야지’ 하고 미루고 있던 다짐들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의 목록에 넣어보자. 얼마 전 형님(시누이)이 한 말이 더욱 크게 와 닿는다. “효도는 미룰 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다. 그래서 마음먹었을 때 가려고...” 형님이 겨울에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을 모두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선언하며 내게 던진 말이다. 빚을 내서라도 다녀오겠단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여행도 하실 수 있는 것이니 기력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금’이 여행의 적기임엔 틀림없으리라.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이 책을 읽고 나니 홍 할머니의 말씀 한 자락이 또 떠오른다. “그래, 젊어서 많이 다녀라, 내가 일흔 살만 되어도 그렇게 하겠다."(109p) 우리 세대 부모님의 나이대가 육십 대로 이제 칠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에 늙었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워만 했던 내 마음 가짐부터 혼을 내준다. 홍 할머니가 가장 그리워했고 돌아가고 싶어 하셨던 나이를 우리 부모님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제야 자식들 뒷바라지 거두고 당신 삶을 즐길 시간이 왔지만 나는 계속 부모님께 기대려하고 진작 해야하는 효도는 ‘조금만 더 있다가, 조금만 더 있다가...’ 하며 미뤄왔던 것이다. 우리도 그 가족 여행에 동참해야겠다. 융자금 걱정은 뒤로 미루고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시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시부모님과 시할머니가 따로 사셔서(따로 살게 된 사연이 복잡하다.) 시댁에 가면 두 걸음을 해야 해서 귀찮을 때도 많았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들렀으면 당연히 시할머니 댁도 들렀다 돌아가는 것이 맞으나 가끔은 그냥 지나칠 때도 있었다. 오히려 이제 말을 좀 하게 된 하온이가 “왕 할머니 집에 가자.” 라고 하는 바람에 지나치는 일 없이 할머니 집에 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이 앞에 한없이 부끄럽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내리사랑은 끝이 없다 했던가, 치사랑은 내리사랑을 따라갈 수 없다.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부모님 마음, 선생님 마음, 선배 마음... 아래 사람들은 윗사람들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해서 돌려줄지를 모른다. 그나마 좀 보답할라치면 부모님과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거 잘 사는 기 보답하는 기다.” 이것은 내가 아이에게 향한 마음과 똑 같은데, 왜 내가 내 자식의 부모노릇만 하려하고 부모님의 자식 노릇은 제대로 못하는지 한심하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 영글어 단단한 열매를 맺는 정석인데 말이다. 홍 할머니의 말씀은 왜 이리도 버릴 것이 없는지, 마지막도 홍 할머니의 글로 마무리 하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련다. 행복이란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아쉽지만, 아직은 덜 익어서 내일을 기다리는 것. (178p)
★오타 발견 184p 매주 -> 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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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읽을 줄 모른다고 믿었던 어머니의 글로 쓴 일기장이 발견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도 모르게 하루하루의 단상들을 열심히 기록해 둔 노트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바로 이 책이 그런 엄마의 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 홍영녀씨는 쓰고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식들이 그녀의 8권의 일기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 책은 그런 홍영녀씨의 일기들과 딸 황안나씨의 일기를 함께 담고 있다. 홍영녀씨는 자식들을 이야기하고 황안나씨는 어머니를 이야기 하고 있는 일기들이다. 이들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편안하고 다정했다. 특히 믿을 수 없는 것은 손주의 책으로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다는 어머니 홍영녀씨의 글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고 쓰지 못했던 할머니의 글이 어쩜 이리도 아름답고 훌륭할 수 있는지. 홍영녀씨의 시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웠다. 읽는 내내 한 권의 시집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그리고 참 반가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심상들이 글로 이 세상에 터져 나올 수 있게 된 것이 일개 독자일 뿐인 나도 너무나도 반가웠다. 어머니 홍영녀씨가 글을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면, 이 아름다운 시들과 노래들은 고스란히 그 육신과 함께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을텐데.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왜 글을 몰랐던 할머니의 일기이기에 그 글들은 어설프고 유치하리라 생각했을까? 마치 글을 모르는 사람은 그처럼 아름다운 생각과 시적인 표현들이 불가능하다고 믿어 왔던 사람처럼. 육신 속에 담겨있었던 그 고귀한 정신과 아름다운 세계는 글을 모르는 이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해 온 것처럼. 그렇기에 그녀의 글은 충격이었다.(유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의 글은 시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어떤 독자도 염두에 두지 않은 글이기에 더욱 진솔했을까? 이 노트는 유족들에게는 가보고(한 출판사의 실수로 분실되었단다. 말도 안 돼!) 나 같은 독자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의 글이었다.
홍영녀씨가 어린 아들 무남이를 잃고 쓴 일기에서는 나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게 이제 막 두 달이 지난 어린 딸이 있어서일까? 어린 자식을 잃고 쓴 어미의 글에서는 정말 짠 냄새가 났다. 얼마나 평생의 한이 되었을까? 글이라는 통로가 없었다면 그것이 가슴 안에 응어리져 얼마나 그녀를 괴롭혔을까? 물론 글로도 삭일 수 없는 슬픔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오래전 남편의 지갑에 들어 있는 시어머니의 편지를 본 일이 있다. 홍영녀씨가 자식을 바라보며 썼던 한 줄 한 줄의 일기처럼 내 시어머니의 편지 역시 그랬다. 둘은 서로 참 닮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어머니들의 편지이자 일기일지도 모르겠다.
늙은 노인의 역정과 자식에 대한 섭섭함과 삶에 대한 한숨이 담긴 글들에서는 '아, 내 엄마도 내 시어머니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자식을 향해 퍼주고 쏟아붓고 주는 것만을 보여 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에서는 그와 같은 감정들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 자식 바라기를 하며 산 억척같은 한 늙은이는 여전히 연약하고 소심한 작은 여자였다. 내 어머니와 내 시어머니도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섭섭치 않게 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너무나도 솔직한 글들이기에 더욱 가슴 깊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어떡해. 나 오늘도 안 죽을건가봐" 병상에 누워 있던 홍영녀씨가 울며 딸인 황안나씨에게 한 말이다. 마지막까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임종의 순간을 묘사한 황안나씨의 일기를 보니 얼마 전 외할머니의 죽음이 생각났다.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가는 할머니를 배웅하는 엄마와 이모들, 삼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나 너무나도 닮은 장면들. 어머니에게 어머니였던 외할머니 역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외할머니를 바라보는 엄마 역시 그런 기분이었을까?
정말 내 엄마 살아계실 때 이 책을 읽은 것은 참 다행이다. 만약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대성통곡을 하지 않았을 자신이 없다. 책을 읽으며 내내 엄마가 그리웠다. 전화를 하면 받을 것이고 보고 싶어 찾아가면 문을 열어줄 엄마가 있다. 그러나 세월은 이것들을 결코 영원으로 두지 않는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그녀를 더욱 사랑하라고 또 사랑하라고 말했다. 내게 있는 두 어머니. 나를 낳아준 내 어머니와 내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준 그의 어머니를 더 사랑하며 섬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깊이 한 날이다. 이 글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모든 자식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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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면의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확인한 일이 바로 사람이 마음만 있다면 나이라는 시간의 흔적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옛날 어른들은 딸자식에게는 공부를 시키는 일을 뒷전으로 밀어놓은 분들이 많았다. 당장 70대 중반인 내 어머니의 경우에서 농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아들을 중시하던 그 당시 문화의 피해자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동생들이 공부하는 어깨 너머로 들은 것이 공부와의 인연은 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물론 읽는 것은 떠듬거리며 읽을 수 있어도 언제나 자신감의 결려로 맘고생을 달고 사신다. 그래서 언제나 한글을 제대로 배워보는 것이 꿈이라는 어머니이다. 이 책에서는 고령의 나이에도 뒤늦게 글을 배운 어머니가 쓰신 일기가 빛나는 책이다. 아흔 여섯 어머니와 일흔 둘의 딸이 함께 쓴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나의 유년 시절은 시골 그것도 인적이 드문 할머니 댁에 놀러 가셔 며칠씩 지낸 기억이 많다. 자식들은 다 출가시키고, 아들을 바라보며 뒷바라지를 했어도 아들들은 대 도시에 나가 바쁘다는 이유로 명절에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고령의 어머니가 계신 곳에는 기다림이라는 익숙한 마음이 짙게 배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매일 매일을 자식 기다리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친정엄마를 찾아보지 못했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어머니의 마음이 더 잘 헤아려진다. 기다림으로 굳은 엄마의 일상도, 그래서 자녀들에 대한 기도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 책은 딸이 친정집에 찾아 갔다가 옷장에서 발견한 8권의 일기를 발견했고, 그래서 딸은 엄마의 일기를 일다가 받은 감동에 블로그를 운영하다 책으로 출간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책[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1995년 어머니의 팔순 잔치에 맞춰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또 이 어머니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에서 그 가을의 뜨락으로 방영도 되었다고 한다. 책의 출판 과정에서의 일기장이 분실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딸이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추억, 감동은 그 후 블로그를 운영할 만큼 애틋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어머니들의 삶, 그 현주소가 자신들의 삶보다는 자식들을 위한 열망과 기다림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후회와 반성들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한다. 단순히 뒤늦게 배운 한글공부가 어머니의 삶아온 지난 흔적은 물론 스치는 생각을 담아낼 줄이야. 그것도 읽는 이로 하여금 콧등을 찡하게 할 정도로 감동을 선사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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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를 훨씬 넘어서야 첫 아이를 한 여름에 낳았는데 낳자마자 장염에 걸려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여자 간호사 두명과 여의사 한명이 붙어서 아이의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찔러도 혈관을 찾을 수가 없어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데려갔는데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귀중하기도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생명이라는 위대함을 느끼며 감동이 아직 사그라지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고 자그마한 핏덩이가 아파서 자지러지게 우는 울음소리에 눈물은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은채 흘러내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었야 했다. 그때 수없이 났던 생각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였다. 참 희한한 것이 습관처럼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내 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는 게 세상 엄마들의 버릇인 가 보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꼬박 이틀을 울었다. 아이는 그 뒤로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었지만 그때가 가끔씩 떠오를 때면 자식의 죽음을 본 어미의 심정이 헤아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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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어머니께 맡기기 때문에 내가 잘 쓰는 말은 ‘내일 뵈~요’다. ‘또’라는 말은 안 쓴다. 매일 가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제목이 너무나 슬프고 애닯게 느껴진다.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마치 밥공기에 밥을 수북하게 담은 듯 진달래꽃이 가득한 그릇을 보면 분홍색의 그 따스함과 어머니의 사랑을 가득 담은 듯 넉넉함이 느껴진다. 우연히 발견된 어머니 홍영녀 님의 일기장을 팔순 기념으로 1995년에 발간한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2004년부터 현재까지 딸 황안나 님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 들어있는데, 어머니와 딸의 글이 교차하면서 어머니의 마음과 가족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어머니의 글은 분홍 진달래가 딸의 글은 봉우리 진 진달래가 그려져 있다. ![]() ![]()
아버지의 반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칠순이 넘어 한글을 배우신 어머니의 글이 너무나 소박하고 너무 순수하다. 시부모님의 연이은 상으로 돌도 안되어 먼저 떠나 보낸 무남이를 회상하고, 고된 시집살이를 말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육남매에게 편지를 쓰고, 나이 들어 아프자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는 어머니.. 그녀를 따라 울고 6수물에 웃고 (육수물) 온 가족이 모여 장을 담그고 배추를 심는 모습에 따스함을 느꼈다. 사경을 헤매면서도 큰 딸을 기다려준 어머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울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 생각한다. 엄마, 건강하세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간 김씨는 '가장 한국적인 것'에 주목하며 1995년부터 진달래를 소재로 작업을 하며 ‘진달래 화가’로 불리고, 진달래꽃이야말로 복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축복의 메시지로 치환할 수 있는 소재라고 강조했다. 젊은 청춘들아, 노인 보고 웃지 마라, 가는 세월을 그 누가 막겠느냐, 누구나 검은 머리 백발 되고 붉은 뺨에 검버섯 핀다. 잘나도 백발 오고 못나도 백발 온다. 노인들을 위로하고 불쌍히 여겨라. 노인들을 사랑하고 업신여기지 마라. 176페이지. 한평생 내가 배운 것들 아흔여섯의 어머니가 “엄마, 나 어떡해! 너무 아파!” 하시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찾으시던 밤, 일흔두 살의 딸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엄마’란 이름은 아흔여섯의 할머니도 애타가 찾는 영원한 그리움이다. 269페이지. 닫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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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지금 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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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저도 하늘나라에 전화를 걸고 싶어집니다. - 이해인(수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