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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라신 대로,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분투로 지친 당신의 창조물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밤의 종말>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테케루>의 속편이다. <테레즈 테케루>의 감동과 충격이 가시길 기다린 뒤, <밤의 종말>을 주문해 읽었다.
_나는 테레즈의 고통받는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쓰고자 했었다. 하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이 작품이 내게 의미하는 바를, 이 작품 속에서 내가 발견한 바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에 짓눌릿 창조물에게 주어진 힘, 그들을 짓누르는 관습법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_그러나 그녀는 생을 마감해야만 이 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참으로 대단한 종족이 아닌가! 그런 이들은 이 밤을 체념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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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 모리아크의 소설 <사랑의 사막>, <독을 품은 뱀>, <테레즈 데케루> 모두 좋게 보았고 재미있게 읽었다. 한데 이번 <밤의 종말>은 세 작품에 비해서 실망스럽다. 특히 <테레즈 데케루>를 재미있게 읽어서 더욱더 그렇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커서 선입견 없이 썼다면, 이번 <밤의 종말>은 서문에서도 그렇고 아예 미친년을 만들어 놨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여성들에게 뭔가 피해를 보았는지 아니면 선입견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작가의 입장에서 괴롭힘을 주려고 계속 정신병을 만들어내고 불안하게 하고 심장병 피해를 주고 사업이며 모든 것을 서서히 말려 죽이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침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를 본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작가로서 주인공에게 벌을 주려고 하다가 약해져서 안 주려고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아니 그냥 <테레즈 데케루>에서 멈추지, 뭣 하러 15년 후의 이야기를 썼을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와 사람들의 의도가 달라서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려고 했던 것인가?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잘못을 알려주려고 했던 작품인데, 일본 사람들은 형제의 불쌍한 이야기를 통해서 일본의 피해를 상기 자신들의 피해를 억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와 사람들의 평가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작품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나의 손을 떠난 것은 그 뒤 내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나빠서 실패할 수 있고, 대충 했는데 운이 좋아서 성공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평가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에게 강요하고 설득하려고 하는 순간 늙은이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흐름에 맞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잘못이 있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고 잠깐 밀려날 순 있지만 뒤로 가지 않고 쉬었다가 다시 가면 된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대부분이다. 조급하게 가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가더라도 앞으로 가면 좋겠다. 정신병이 있든 미쳤든 몸이 아프든 돈이 없든 장애가 있든 온갖 장애물이 있더라도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