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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나무 숲에 그를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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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남이섬은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언제봐도 늘 느낌이 새로운 '겨울연가' 드라마로 회상되는 곳이다. 핑크색이 주는 느낌이 밝고 환상적이고 섬이라는 특수한 장소까지 어우러져 무척 낭만적일 것임을 기대했으나 낭만적과는 조금 거리가 멀기도... 2편의 중편과 3편의 단편이었다.<이책은>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다. 처음에 10명 선정였는데 추가5명에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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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남이섬은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언제봐도 늘 느낌이 새로운 '겨울연가' 드라마로 회상되는 곳이다. 핑크색이 주는 느낌이 밝고 환상적이고 섬이라는 특수한 장소까지 어우러져 무척 낭만적일 것임을 기대했으나 낭만적과는 조금 거리가 멀기도... 2편의 중편과 3편의 단편이었다.
<이책은>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다. 처음에 10명 선정였는데 추가5명에 들었다니...
이 책은 벌써 읽었는데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느긋하게 기다렸는데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서...실상 잘 쓰지 못할거면서 하릴없이 시간만 허비한 건 아닌지...
<저자는>

 저 : 전상국 ---발췌하다
全商國
1940년 강원도 홍천 출생. 어린 시절을 홍천에서 보내며 한국전쟁을 겪었다.

<책 내용 맛보기>
중편 「남이섬」은 한국전쟁 당시 남이섬을 무대로 한 격동 속에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인물 김덕만과 이상호를 통해 역사적 상처를 견디며 치유하는 하나의 환각적 방식과, 치유되지 못한 실존적 상처가 과도하게 덧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적 단면을 겹의 이야기로 보여 준다. 한국전쟁 당시의 죽임과 죽음의 상처가 인상적으로 각인된 소설이 「남이섬」이라면, 살아남은 자들의 그 상처에 대한 윤리를 인상적으로 강조한 작품이 중편 「지뢰밭」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마음의 지뢰밭을 거두고 교감의 지평을 넓혀, 비극적 과거를 치유하고 희망의 미래를 기획할 것을 진정성 있게 제의한다. 오랫동안 분단 시대를 체험하고 성찰한 작가 전상국이 찾은 실천선(實踐善)이요, 실천윤리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단편 「드라마 게임」은 어린 시절 미군기의 폭격으로 부모를 여읜 후 평생 땅굴을 파는 두더지 인생 허선구와 양갈보란 질시와 천대를 감내하며 동생 허선구와 그 가족들을 뒷바라지한 허정임의 삶을 통해 역사적, 실존적 상처를 조망하고 치유를 시도한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풍속소설의 일종이기도 한 단편 「춘심이 발동하야」는 성춘양에게 전략적으로 이혼당하고 “발광 같은 춘심 발동”을 보이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안병신의 수소문담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문제적인 것은 진실이 소통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편만화되어 있음을 환기하는 대목이다. 그 어떤 것도 진실의 소통과는 무관하기에, 인물의 실종담은 곧 진실의 실종담과 겹쳐지는 것이다.

열망하던 두 남자 초헌과 우목을 차례로 떠나보낸 한 여인의 사랑과 그리움이 아름답게 그려진 단편 「꾀꼬리 편지」는 “노년의 연애 감정을 그윽하면서도 열정적이고, 곡진하면서도 애잔한 파동으로 넘쳐 나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정서적이면서도 생태적인 파토스와 로고스가 농밀하게 교호하는 소설”이다.---발췌하다
<책 읽은 소감>
며칠전 읽던 책 몰입도도 떨어지고 서평도 안 써지길래 리모콘을 눌렀다. 케이블TV에서 겨울연가 1~4회 연속방송을...최지우와 배용준의 몰입된 연기는 늘 남이섬에서 그렇게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돌아갈 수는 없어도 회상할 수는 있는 교복입었던 시절말이다. 남이섬은 그렇게 내게 각인된 곳으로 다녀온 적은 없지만 이리 책으로 만나는 시간이 될 줄이야.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너무 먼 아픈 상처가 있는 곳으로 한국 전쟁의 참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작가는 말해준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북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가슴에만 묻은채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함구해야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그건 전쟁의 상흔이었다.

중편 <남이섬과 지뢰밭 > 단편 <꾀꼬리 편지, 춘심이 발동하야, 드라마 게임>으로 엮어진 이 책은 등단한 지 49년째를 맞이한 통산 열 번째 소설집이란다. 이제서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가님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신다는데 옳소!. 위화, 천명관, 성석제 님이 떠오르는데 이 세 분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비슷하다거나 닮은 맥락을 느끼는 이야기꾼이라면 전상국 님은 이들과는 다른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겠다. 삶의 연륜에서 지긋이 묻어나오는 정제된 진솔이 있다. 자연스레 물흐르듯 나오는 깊이가  있다. 젊은 사람의 팔딱팔딱 뛰는 박진감 넘치는 스릴은 없으나 은근이 멋스러운 운치가 있다. 익숙한 듯 낯선 느낌들이 거슬리지 않는다. 자연이 함께하는 숲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꾀꼬리 편지』는 참으로 긴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듯 읽었다. '은빛 상상력' 이라 표현되었는데  노년의 사랑을 말함이라. 어려서의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이 자리하는 어린 소녀는 수많은 남자를 거쳤다. 수많은 남자에게 몸과 맘을 열었다. 정신과 육체가 합일하는 그런 사람(남자) 한 명 만나고 싶어서였는데, 몸이 뜨거우면 맘이 식고, 맘이 가면 몸이 싸늘해기를 반복하니 그 자신이 못견디게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잠재워준 사람이 있었으니 한 가정을 파탄냈다기보다는 사실혼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남이 볼때 별문제 없던 사람을 홀려서 왔다고 할 수 있으나 그건 그 남자도 안주만 했던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장성하고 안정된 터전을 버리고 홀홀단신 늙은 나이에 산중으로 둘이 들어갔지 싶다. 집이 아닌 숲 속에서도 언제든 둘이 하나되는 시간들. 그건 너무나 행복한 열락인 것을...그런 그가 어느날 병이 들면서 마음은 있되 육에서 열기가 떠나고...친구나 마찬가지인 조카가 오고...마음으로부터 은애하는 사람이 되고...그걸 감지하는 사람(남편)...그걸 아는 한사람(조카)...그럼에도 오매불망 어쩌지 못하는 또 한 사람.

병들어 자연으로 돌아가 수목장을 선택하고...또 다시 기다림 속에 사는 세월들...예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깎듯한 시간들이지만 서로의 마음속엔 늘 타오르는 열기를 잠재울 순 없었다. 혐오스럽다거나 추하지 않은 맑은 사랑. 정신이 교감하는 사랑이되 눈빛으로도 읽히는 경지의 사랑이다. 다 늙은 사람들이 망측하게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순결한 사랑이다. 은빛 상상력이다. 은빛 물결이 살랑이는 그 마음으로 조카마저 수목장으로 뿌려진다. 한 줌 재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 뜨건 몸에 손을 대본다. 몸과 맘이 뜨건 상태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앞전의 사랑이 결코 불경했던건 아닌데 뒷사랑이 더 무게가 실린다. 그건 육을 겸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운 사람들의 인간이 인간에게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끼는 사랑이었나 보다. 그걸 먼저 알았던 남편인지라 아내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조카에게 질투를 하지 않았음이라. 그 큰 사랑안에서 아내는 조카를 마음에 품었음이라. 

『춘심이 발동하야 』를 읽고는 참으로 깊은 맛에 입맛을 다셨다.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속담이나 비유가 그리도 맛깔나고 적절한지. 무릎을 탁 치느라 멍들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들어보는 말들일지라도 전혀 낯설다거나 생경하지 않았다. 어찌나 구수하고 정겨운지...아마도 강원도쪽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들인지, 우리네 고유의 속담인지는 무슥해서 알 수가 없지만  아주 흥미로웠다. 내용은 친구가 쓴 글로 안병신(이름만 그렇지 멀쩡하게 생겨서 하는 짓이 모자라지 싶다)이 성춘양(성춘향은 절개를 지키는 여인네의 으뜸이거늘, 무늬만 비슷한 여인)에게서 이혼을 당하고 그후 짐작만 하는 끝맺음. 그 과정에서의 여러 속담이나 비유된 말들이 어찌나 적절하고 기막힌지 그저 놀라울뿐이다. 전혀 거슬리지 않는 글들로 마치 오래전부터 사용한 것 같은 친근함이  든다. 아내가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이 일상에서도 있을 것 같다는...수완좋기가 모든 사람에게 거짓을 진실로 다 믿게끔 원형제작을 해놓다니...그 글에 놀아나는 시간들이 사기를 맞은건 분명하나 조목조목 따져봐도 미세한 꼬투리조차 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앞에서 울고 싶어진다. 감쪽같은 사기극에 다 놀아나도 따질 근거가 없다. 그렇게 사람을 철저히 믿게 만드는 재주 아닌 재주는 귀신이나 할 수 있을랑가. 

『남이섬과 지뢰밭』은 가슴 싸아한 아픔으로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평불만이 극에 달했던 사람들이 표출하고자했던 마음을 담아 환영했던 사람들과의 합류. 거기서 야기된 비극이며, 그렇게 남겨지고 기다리고 ...야수가 되어 동족을 처단하는 잔혹성과 야만성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 지뢰처럼 마음밭에 남아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마음의 감기'라 치부하기엔 그 세월이 너무나 길다. 점차 한국전쟁의 상흔은 세대가 바뀔수록 옅어지는데 남북의 분단이 가져온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이념의 격차는 점차 커지고...북한이 점차  고립되고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안심이 되면서도 걱정이 된다. 남과 북의 언어에서조차 남의 다리 긁는 현상이 계속되는데...그럼에도 점점 그날이 다가오는 것 같아 희망적이 되기도 한다. 통일되어 전세계에 한민족으로 우수성을 알리며 살아야지 싶다. 

5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나이 많은 주인공들이다. 그 어울림이 되는 친구들이나 조연들도 대개는 나이가 지긋하다. 그렇기에 경박하거나 경솔함과는 조금 거리가 멀고 진중하고 진지하다. 나무가 등장한다. 숲에서의 나무들이 어우러지는 풍경하며 자연과의 교류가 있다. 서늘한 피톤치드가 나오는 것 같은 맑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글을 따라가보면 마치 숲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도 다가온다. 용 씨가 등장한다. 흔한 성은 아닌데 장애자로 그려진다. 우직한 사람으로 자신의 할 일은 묵묵히 하되 어떤 범주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말도 못하는 사람이 표현하는 반응이 흥미로운건  노래를 할때와 다른 상황에서의  어투가 같은듯 다름이다. 백치아다다를 연상했다. 그런 사람을 매 등장시킨건 어떤 경험안에서의 중요한 사람! 허튼 어림짐작일수도...지루하지 않고 가만가만 속삭이는 듯한  은근한 사랑 얘기가 좋았다. 숲 속을 거니는 듯한 그 기분 아직도 생각난다. 사기를 당하고도 읍소할 수 없다는 사실, 그 글력에 놀아나는 시간도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분단의 상처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은 가슴에 오래도록 머문다. 



k******5 2011.07.28. 신고 공감 13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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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북로거] 남이섬에서 월든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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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http://blog.yes24.com/document/2275816>을 읽고서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전상국선생님의 소설집입니다. 소설집에는 중편 ‘남이섬’과 ‘지뢰밭’ 그리고 단편 ‘꾀꼬리편지’, ‘춘심이 발동하여’와 ‘드라마게임’을 담았습니다. 다섯편 가운데 ‘남이섬’, ‘지뢰밭’ 그리고 ‘드라마게임’은 6.25동란의 지워지지 상처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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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http://blog.yes24.com/document/2275816>을 읽고서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전상국선생님의 소설집입니다. 소설집에는 중편 ‘남이섬’과 ‘지뢰밭’ 그리고 단편 ‘꾀꼬리편지’, ‘춘심이 발동하여’와 ‘드라마게임’을 담았습니다. 다섯편 가운데 ‘남이섬’, ‘지뢰밭’ 그리고 ‘드라마게임’은 6.25동란의 지워지지 상처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비극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작가의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전쟁이 끝난 지 반백년이 가까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으니 전쟁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으신 것도 있고, 아무래도 기억에 남기기 싫어 억지로 잊으려하시는 것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의 기억에 아픔을 각인시켜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계신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쟁이라고 해서 서로 죽이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고지전>에서도 다루었습니다만, 막상 부딪혔을 때 살수(殺手)를 펼쳐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고, 무언가 마음에 걸려 살려주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인데, 작가는 <지뢰밭>에서 그런 경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그때의 기억이 단단한 옹이처럼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언젠가 풀려날 기회만 기다리며 살아온 셈인데, 그것이 쉽게 풀려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이섬>의 주제는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 김덕만씨와 이상호씨 만이 기억하는 여자 ‘나미’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전쟁 당시의 남이섬 분위기를 알았더라면 몇 년 전 가을에 남이섬을 찾았을 적에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쟁 당시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도 이념이 다른(이념이 서로 달랐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이 대립하여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김덕만씨와 이상호씨로 대립되는 두 세력을 남한강의 동쪽과 서북쪽으로 나누고 그 강안에 떠있는 섬은 두 세력이 얽히는 묘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여자 나미는 어느 한편의 손만 들어준 것은 아닌 셈이니 두 세력의 대립자체가 과연 이념의 대립이었는지 회의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꾀꼬리편지>에 마음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길이의 여유때문인지 중장편에서는 대체적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슨하게 풀려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단편은 짧은 길이만큼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압축해내지 못하면 다 읽고나서도 미진한 무엇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꾀꼬리편지>는 잘 엮여진 이야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헌과 우목 그리고 화자(話者) 사이에서 엮이는 묘한 감정을 실타래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목의 물오름과 같은 속수무책의 관능으로 온몸이 뜨겁던 나이에 초헌을 만난 화자가 복사골에 정착하게 되면서 뜨겁던 몸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초헌과 우목으로부터 자연을 배우게 되면서라는 것을 은연중에 전하면서, 우리 또한 자연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메시지를 수목장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초헌을 만나 농익은 육신의 갈증을 몰아의 황홀경으로 이끌어갔던 화자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만사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은 초헌의 변화에 마음의 길을 잃고 말지만, 우목을 만나면서 그 갈증을 자연을 찾아 풀어내게 되지만 두 사람의 현실적인 거리는 결코 가까워진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話者)처럼 저 역시 “상수리나무 잎 하나를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의 크기로 정교하게 접어놓은(26쪽)” 꾀꼬리편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꾀꼬리가 편지를 접다니 참 신기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지 작가는 꾀꼬리편지는 거위벌레 암컷이 낳은 알을 잘 건사하기 위해서 만드는 안식처라는 설명에 그 안식처를 만드는 모습까지도 빼놓지 않는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꾀꼬리는 다만 이를 세상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셈이라는 것까지도 말입니다.


꾀꼬리편지를 통해서 작가는
“세상의 온갖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인데 그것이 자연보다 낫다는 자신이 없으면 아예 손을 대지 말 일.(26쪽)”이라고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우목의 유골을 생전에 소망하던 복사골 백합나무에 뿌리면서 화자(話者)가 얻는 깨달음은... “드디어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절간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하나되기, 그 없음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화실이 시위를 벗어나 과녁에 맞는 순간까지가 인생일 터. 화덕을 거쳐 기계공이로 빻은 뼛가루가 이렇게 산 사람의 손가락을 통해 술술 빠져나가 바람으로 물로 사라지는 이 투명한 비움.(37쪽)”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관조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란 생각이 들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연에 스며드는 삶이 주는 묵직함을 언젠가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y*****2 2011.09.20.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전상국]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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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전상국 작가에 대한 친숙함이다. <우상의 눈물>, <동행> 등의 작품들을 교과서 또는 TV문학관 등을 통해서 자주 대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작가의 고향인 홍천군 내촌면 인근의 학교에서 다년간 근무를 한 인연이 있다. 그것을 통해 작품에 등장하는 구둔치 고개나 내촌 숲길 등을 직접 걷기도 했다. 즉, 작가의 목소리는 내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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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전상국 작가에 대한 친숙함이다. <우상의 눈물>, <동행> 등의 작품들을 교과서 또는 TV문학관 등을 통해서 자주 대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작가의 고향인 홍천군 내촌면 인근의 학교에서 다년간 근무를 한 인연이 있다. 그것을 통해 작품에 등장하는 구둔치 고개나 내촌 숲길 등을 직접 걷기도 했다. 즉, 작가의 목소리는 내게 있어서 이웃의 소식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둘째, 남이섬에 대한 친근함이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남이섬은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자주 갔던 곳이다. 유원지로 개발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곳인 것이다. 그런 내게 있어서 남이섬은 고향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셋째, 작품을 얻게 되는 행운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약간의 서평단의 모집할 때 선정되는 행운이 있었다. 그로 인해 이 작품집을 선물 받게 된 것이다. 꼭 읽고 싶은 작품을 발간과 동시에 읽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인연 속에 만나게 되었으니 아마 내 글은 객관적인 서평이 되지는 못할 듯하다. 작가에 대한 친숙함, 작품에 대한 친근감에 행운까지 겹쳤으니…. 이 책을 직시하기에는 나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장편이 아니라 5편의 중·단편이 실린 작품집이다. <남이섬>은 단편 <꾀꼬리 편지>에 이어서 두 번째에 실려 있는 50여 쪽 정도의 중편 작품이다. 그밖에 <춘심이 발동하야(단편)>, <지뢰밭(중편)>, <드라마 게임(단편)>이 실려 있다. 

이런 작품집은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기가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작품들을 망라하기도 어렵고,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도 그렇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첫 작품인 <꾀꼬리 편지>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이어서 <남이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첫 작품으로 실었거나, 작품집의 제목으로 정했다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애착을 느꼈다는 의미일 듯해서이다.

<꾀꼬리 편지>는 30여 쪽 되는 단편이다. 첫 문장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여름 숲속의 고요. 집 아래 언덕바지에 올라 앉아 아랫마을 신작로를 헤아린다."

지금이 초여름이 아닌가? 그와 함께 '언덕바지'와 '신작로'라는 말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어린 시절 고향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언덕의 꼭대기를 '언덕바지' 또는 '언덕배기'라고 불렀었다. 포장도로를 보기 힘들던 시골에서는 차가 다니는 큰길이 신작로였고…. 마치 옛 사진첩에서 그리운 단짝을 발견한 듯 가슴이 설레었다.

원로작가만이 쓸 수 있는 경륜과 깊이가 느껴졌다. 그러나 나와 같이 분위기에 공감대를 느끼지 않는 독자에게는 좀 지루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등장인물이 어떤 존재인지 집중을 해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4명이다. '나'는 사고무친의 몸이지만 용모가 빼어난 여인이다. 초헌은 복사골에 묻혀서 신선같이 사는 인물로 '나'는 그의 후처이다. 우목 선생은 초헌의 숙부이지만 나이는 조카보다 세 살 아래이다. 나와 초헌, 그리고 우묵과의 사귐이 이 글을 이끌어 가고 있다. 또 한 사람의 주요 인물이 용씨이다. 농아로서 선대 이래 초헌의 땅을 관리해 온 용씨는 자연의 지킴이라고 할까? 이 네 인물이 복사골의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꾀꼬리가 어떻게 편지를 쓰는가? 작품을 읽으면 자연의 신비에 머리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남이섬>은 6.25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인공은 나미라는 여성과 이상호와 김덕만이라는 남성이다. 이 작품에 대해 느낀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처음에는 집중이 어려웠다. 이 작품은 지역신문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소설가가 화자로 등장해서 사건을 서술하는 1인칭 소설이다. 그런데'나미'라는 여성이 누구인지, 이상호와 김덕만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금방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 여자와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서 셋의 관계가 삼각관계도 아니다. 이상호와 김덕만은 서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나미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눈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인 '나'가 그 관계를 캐는 형태이다. '나미'의 실체가 애매하니 이 책은 독자들이 끝까지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6.25의 동족상잔을 새삼 느꼈다. 남과 북의 대립으로 인해 한 동리 사람끼리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며 죽고 죽이는 지난 과거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실감나게 전개되는 비극의 현장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에 누구 아버지는 빨갱이였고, 누구 할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어떻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탓일까? 이 글속의 사연이 고향의 성처를 다시 후비는 듯 했다.

셋째, 시공과 사상을 초월한 구원의 힘이 주제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상호와 김덕만은 각각 좌익과 우익에 연계되어서 죽을 고비에 처한다. 그 둘의 공통점은 절박한 순간에 강에 투신했을 때 '나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한 여성이 비슷한 시기에 남이섬이라는 한 공간에서 두 남자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두 남성은 서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가? 

이 작품에는 '나'의 후배인 카페지기와 카페 여성의 사랑 이야기도 등장한다. '나미'의 실체가 애매하듯, '카페 여성' 역시 그렇다. 나의 후배는 작품 속에서 자신이 사랑을 나눈 여성이 선배님('나')이 찾던 그 여성이라고 했다. 즉, 나미와 카페 여성을 동격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호와 김덕만, 그리고 나의 후배와 사랑을 나눈 여인은 시공을 초월해서 구원을 주는 여성이 아니었을까? 그 실체가 <신곡>에서 단테를 인도하는 베아트리체의 역할처럼 성스러운 성격과는 다른 것이겠지만….

인제군과 양양군게 걸쳐 있는 한계령에 가면 '은비령'이라는 상호가 많이 보인다. 식당과 산장의 이름으로…. 은비령이란 실제의 지명이 아니라 작가 이순원씨가 소설 <은비령>에서 쓴 말이다. 작중 화자가 한계령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한계령의 아름다운 경치를 '은비8경'이라고 명명했는데, 작품속의 지명이 실제의 지명으로 정착한 것이다. 나는 인제지역에 근무할 때 작품 속에서 언급한 은비8경을 하나하나 순례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소망은 남이섬에 어떤 형태로든 <나미의 추억>이 들어섰으면 하는 것이다. 나미의 아버지로 추정(명확하지 않음)되는 진군수네 집을 복원하는 것도 좋고, 그녀의 체취가 남아있을 만한 곳에 조각 등 기념물이 들어서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남이섬을 찾게 되면 나미와 이상호, 또는 김덕만과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거닐게 될 것이다.

남이섬은 이미 <겨울연가>와 <남아장군의 전설> 등으로 유명 관광지가 된 곳이다. 그런 경관에 '나미의 추억'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새로운 문화유산으로 더욱  풍성해질 남이섬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y******3 2011.07.09.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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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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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이미지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그윽한 차와 함께 지나온 시절을 회고하고 성찰하며 말못할 사연을 툭 털어놓고 싶은 분위기이다.남이섬은 총5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으로 작가가 성장하고 사회인으로서 활동했던 지난 세기 한국의 어두운 전쟁의 상흔과 독재정권이 낳은 사회 구성원들간의 소통 부재를 직접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 사이를 유머러스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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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이미지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그윽한 차와 함께 지나온 시절을 회고하고 성찰하며 말못할 사연을 툭 털어놓고 싶은 분위기이다.남이섬은 총5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으로 작가가 성장하고 사회인으로서 활동했던 지난 세기 한국의 어두운 전쟁의 상흔과 독재정권이 낳은 사회 구성원들간의 소통 부재를 직접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 사이를 유머러스하고도 풍자적으로도 다가오고 있으며 인생의 허망과 허무를 인간의 도덕과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소년시절(10세정도)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을 통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살아 있는 자들을 내세워 들려 주고 어둡게 깔린 마음을 실존하지도 않은 여인(나미)를 내세워 환상적이면서도 마음 들뜨게 하게 하며 이데올로기로 인해 스러져간 희생자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의 지뢰밭을 경고하고 있으며 원활한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회 구성원간의 간극을 매꾸기 위한 소통의 방법도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꾀꼬리 편지를 통해서는 초원과 우목을 사랑한 한 여인의 일편단심과 같은 정절을 읽을 수가 있었다.살아서 손 한 번 제대로 못잡아 본 짝사랑이 우목의 죽음을 통하여,여인은 한 줌의 뜨거운 재로 변한 연인의 뼈가루를 몸과 마음으로 체휼하게 되고 춘심이 발동하야에선 안병신이라는 주인공의 적절치 못한 처세와 허풍등으로 쓸쓸한 비극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한국은 외세의 침략부터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인 6.25동란,독재 정권에 의한 소통의 부재,빈부의 격차등으로 사회 구성원간의 위화감 및 사회 불평등 요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주기만 했다.훌훌 털어 버리고 싶어도 털어 버릴 수 없었던 암울하고 속절없는 원망을 이제는 비움과 소통의 자세로 마음의 도약을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마음에 자리잡고 똬리를 틀고 있는 상흔과 원망,수치등을 누군가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진실의 입장에서 털어내고 들려 주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다.




j******6 2011.07.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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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기와 은빛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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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책의 홍수에서 말머리만 읽어보려 한 것인데 첫장을 넘긴 이후로 손에서 떼어내지 못한 책이다.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감성이 돋보이는 문체들 때문이었다. 여성작가인줄 알고 책을 다시 살펴보니 여성작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 절제된 감정들이 주는 매력과 더할나위 없는  감미로운 표현으로  자꾸 빨려드는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그리움을 " 몸과 영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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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책의 홍수에서 말머리만 읽어보려 한 것인데 첫장을 넘긴 이후로 손에서 떼어내지 못한 책이다.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감성이 돋보이는 문체들 때문이었다. 여성작가인줄 알고 책을 다시 살펴보니 여성작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 절제된 감정들이 주는 매력과 더할나위 없는  감미로운 표현으로  자꾸 빨려드는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그리움을 " 몸과 영혼이 온통 기다림이란 낱줄과 씨줄로 직조되었다는 생각" 이라 표현하는데 그냥 그립다는 표현보다 더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남이섬] 은 다섯편의 중단편으로 엮어져 있다.

<꾀꼬리 편지>에서는 초원과 우목, 둘다를 사랑한 예순을 앞둔 여인의 마음을 감성적인 표현으로 그려내고 있다. 초헌과 30년을 함께 살고 떠나보낸 후 우목을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음을 꾀꼬리편지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꾀꼬리 편지가 오는 날 우목이 뇌일혈로 쓰러졌다는 전갈을 받는다.

드디어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절간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하나되기. 그 없음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화살이 시위를 벗어나 과녁에 맞는 그 순간까지가 인생일 터.p37

덤덤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여인의 마음은 그렇게 덤덤하지만은 않다. 우목을 얼마나 절절히 사랑했는지 우목의 뼛가루를 만지며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우목의 몸과 마음 전부를 온전히 만지는 뜨거움이란 표현을 한다. 비록 우목의 죽음으로 인생에 대한 성찰로서 모든 것을 관통한 깨달음을 얻지만 결국 여인의 마음속에는 누구보다 더한 슬픔이 자리잡고 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샘물이 솟아나듯 생명이 태어나는 것 막을 수 없고 구름이 흩어지듯 허무로 돌아가는 것 막을 수 없나니.p37

<남이섬>
내가 사는 곳에서도 해마다 위령제를 지낸다. 6.25 당시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제인데 <겨울연가>로 유명해진 남이섬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남이섬 또한 전쟁의 상흔을 피해갈 수 없듯이 전쟁중 살아남은 두 남자와 두남자가 애면글면 평생 바라본 한여인 나미의 이야기이다. 두남자 상호와 덕만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처형대에 올려지는데 둘 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나미라는 여인이 생명을 구해주었다며 나미를 기억한다. 남이섬에 취재차 나간 기자는 남이섬에서 까페를 하는 후배를 만나고 후배로부터 여자이야기를 듣는다. 항상 커피 세잔을 시키는 그 여자를 후배는 나미라고 생각한다. 상호와 덕만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는데 누구도 나미를 모른다는 것이다. 기자인 "나"는 상호가 말했던 "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지요." 라는 말로 나미가 실존했는지 아닌지 조차 헷갈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미의 존재에 사로잡히게 된다. 

<춘심이 발동하야> 약간 통속소설처럼 보여지는 이 소설은 안병신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소통이 주는 상실감을 표현한다. 특수반 교사가 결국 혼인빙자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무척 유머스럽게 그렸는데 안병신의 부인의 이름은 성춘향이다. 이름이 보여주는 풍자의 의미에 자꾸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는데  성춘향에게 당하기만 하는 찌질한 캐릭터 그대로 이름처럼 병신짓만 하는 안병신은 결국 친구들 사이에서 연락이 끊기자 모두들 그의 부재를 걱정하며 병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뢰밭> 전쟁이후 휘말린 이데올로기에 어처구니 없이 휩쓸려  죽어간 사람들과 살아남은 자의 몫을 말해주는 듯한 소설이다. 주인공과 용우성은 아주 오래전 인민군의 손에 의해 죽을 운명에서 함께 한 인연이었다. 이제 일흔이 되어가는 주인공과 용우성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의 그 날로....

위험 표지 선 안에 있는 지뢰도 무섭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위험 표지도 없는 곳에 묻혀 있는 지뢰지요. 여기 앉아 있는, 내 안에도 지뢰가 여러 개 묻혀 있다는 거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 p166 

<드라마 게임>
전쟁때 기총사고로 즉사한 상처로 고모는 억처스러운 삶을 아버지는 땅굴을 파는 행위로 사회를 거부하는 삶을 보여준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의 삶과 아내의 삶을 표현하며 그들의 아픔을 마음의 감기로 표현한다. 고모의 마음의 감기는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남을 헤아리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아버지의 마음의 감기는 스스로를 동굴안에 가두는 것으로 표현되어지고 아내는 그 둘 중간에 있다. 

이 다섯가지 중단편들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강하게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한 글 속에 빠져 작가의 의도에 서서히 젖어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꾀꼬리의 편지에서도 절대 사랑이라는 말이 없음에도 그 여인이 얼마나 우목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고 남이섬에서  보여주는  몽환적인 느낌이 나미라는 환상의 존재가 왠지 남이섬에 가면 나도 나미를 만날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 나미란 누구인가? 라는 것인데 남이섬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상실감의 극복을 나미라는 여인에게서 이루어낸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이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뢰밭이었는데 주인공이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 공포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을 지뢰가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현실이 어쩌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를 마음속에 두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작가는 또 지뢰가 터지게 놔두지 말고 이제 지뢰를 스스로 거둬야 할 때란 것을 용우성을 통해 표현한다. 살아남은 자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작가는 소설을 통해 덤덤히 물어오는 듯하다.  남이섬은 분단의 아픔을 나미라는 여인을 통해 느끼게 해주며  안병신으로부터는 소통의 부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지뢰밭으로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드라마게임에서는 마음의 감기를 치유하는 소통의 방법을 애잔하면서도 유머있게 그리고 잔잔하게 말해주고 있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1.07.08.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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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면서 시원한 책, 남이섬의 딸 '나미'
"더우면서 시원한 책, 남이섬의 딸 '나미'" 내용보기
초여름 숲속은 고요한데 그곳 복사골에는 거목이 서로 생이별을 하며 늙음을 소진하여 초헌과 우목이 상여를 타고 한 줌 재로 저승의 死이별을 맞이한다. 용씨가 수화로 그들의 시름을 달래준다. 따뜻한 말 벗, 술 친구, 모질게 질긴 인생을 살아왔던 두 님의 발자취 뒷켠에서 산속의 고요를 가르며 새 한 마리가 이렇게 노래 부른다. 영원한 것은 없어, 초헌도 갔고 이제 우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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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숲속은 고요한데 그곳 복사골에는 거목이 서로 생이별을 하며 늙음을 소진하여 초헌과 우목이 상여를 타고 한 줌 재로 저승의 死이별을 맞이한다. 용씨가 수화로 그들의 시름을 달래준다. 따뜻한 말 벗, 술 친구, 모질게 질긴 인생을 살아왔던 두 님의 발자취 뒷켠에서 산속의 고요를 가르며 새 한 마리가 이렇게 노래 부른다. 영원한 것은 없어, 초헌도 갔고 이제 우목도 없다. 그 형상의 바뀜,신체의 죽음과 함께 그 마음도 따라 죽고 마는 것이라는데 저 새소리는 왜 이리도 가슴을 치나.

여기서 작가의 묵직한 기개를 드러낸다." 드디어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절간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하나되기, 그 없음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화살이 시위를 벗어나 과녁에 맞는 그 순간까지가 인생일터. 화덕을 거쳐 기계 공이로   빻은 뼛가루가 이렇게 산 사람의 손가락을 통해 술술 빠져나가 바람으로 물로 사라지는 이 투명한 비움."

두 사람의 죽음을 이어주는 이음새가 마치 상여를 타고 죽음 여행을 하는 힘찬 어~야 `어~야 하는 메아리가 귓가에 스쳐오는 듯하다. 망자는 말이 없으나 좀 늦게 갈 뿐인줄을 잘 알고 있는 이승의 모리꾼들이 인생 허무의 노래를 실어 나른다. 샘물이 솟아나듯 생명이 태어나는 것 막을 수 없고 구름이 흩어지듯 허무로 돌아가는 것 막을 수 없나니, 지금 복사골 계곡을 졸졸거리는 지 물과 수천 년 전 흘러갔던 그 물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먼저 간 초헌은 어디 있고 지금 뼛가루로 흩어지는 우목은 또 어디에 머물 것인가. 이 지극한 슬픔도 슬픔을 지닌 사람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잊힐 터.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이 마음이 죽는 일이라 했던가. 우목의 뼛가루가 손가락에서 다 빠져 나가자 생전의 그 형체가 기억에서 아득히 멀다.

                                        >>>   꾀꼬리 편지 中에서



나미에 대한 그리움의 발원지, 가평 사내 김덕만, 남이섬 동쪽 춘천 땅 방하리 사내 이상호 두 사내의 맹신의 무지가 그러지고 있는 나미에 대한 집착이야기, 1950년대 20년전 남이섬에 나미라는 여자를 두고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그 사내들의 뼈대를 추려낸다.

그네가 환생한 괴물, 두 사내를 홀려 그 영혼을 쥐락펴락한 영락없는 귀신(나미)를 두고 육감체질의 김덕만과 가방끈 길이 만큼 낭만적이 이상호의 시대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도 결코 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의 죽음, 냄새는 어떤 기억에 이르는 통로처럼 통증을 추억 속 추억을 끄집어 내며 고달픈 삶의 피신처로 남이섬에서 그네의 고통을 함께하며 나미를 탐하는 재주를 맘껏 발산한다. 이들에게는 사랑의 에너지 중 가장 푹신한 것이 너그러움이라는 것을 수용하기엔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고 한 참 더 가야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의 피신처 남이섬, 지리산 빨갱이들이 숨어서 낮에는 순사들의 세상 밤에는 빨갱이들이 산 밑 초가집 어머니 집을 넘나들며 밀주 내나라 밥내나라 얘기해주시는 부모님의 말씀이 아련히 떠 오른다. 청춘이 무던히 아픈 아린 청춘들은 1950년 전쟁에 대한 아픈 상처의 구심점 조차 헷갈리고 있는 시대적 상흔의 충동인 시기에 갇힘을 드러내고 욕구를 분출할 해방구로 작가는 두 사내와 나미라는 가상의 여인을 통해 아물어 져가는 상처를 간절히 도려내지 않고 대한의 상처가 잊혀지지 않도록 갈대 숲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나미를 통해 발산 시킨다.


                                         >>>>> 남이섬 中에서



마누라 돌보기 편에서는 찌지고 볶는 척박한 삶의 상처를 잘 보듬어 주고 있다. 심심풀이로 읽어도 좋고, 지긋하게 나이드신 분들에게 맛이 우러나고 청춘들에게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표현의 차이이지 육두 문자가 건너가던 사랑의 부채질은 똑 같지 않을까.

마누라 없이는 단 한시간도 견디지 못하는 위인, 툭하면 칼을 빼들고 위협위에 바람피는 마누라가 자랑인듯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꼬부랑자지 제 발등에 오줌 누기식 마누라 돌보기는 의처증에 의해 철저히 훼방받는다. 이쁜 아내 성춘향이를 내 팽개치고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의 빈대 안 남긴다고 안병신의 춘심 발동의 전개과정은 이 여름을 한 껏 수박통 쪼개듯 시원스러움을 만끽하게 한다. 바람둥이는 인문학적으로는 절대 치유될 수 없는 병임을 한번 더 입증한다.


                                    >>>>>> 춘심이 발동하여 中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순식간에 바뀌는 전쟁, 지금도 여전히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휴전선 155마일 철책선안 4킬로미터는 지뢰밭이다. 살인무기로서의 지뢰보다는 약3년간 육이오 전쟁으로 인한 450만명의 영혼의 아픈 지뢰밭이 더 시린 가슴을 후려 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는 대부분의 전후 세대들에게는 먼 이웃나라 이야기로 방치되고 있는 매꿀 수 없는 거리를 달래보기에는 아픔이 아려 온다. 책속에서 서울시내 7개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학생들, 37.8%가 조선 시대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답했고, 5명 중 1명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싸운 전쟁이라고 응답한 결과는 기억의 굴절을 바로 잡아 주는데 뼈대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각인 시켜주고 있다.

                                >>>>>>>>>> 지뢰밭 中에서

수월한 삶이 어디 있으랴, 들여다 보면 다 그렇고 그런것이지.

혹독한 전쟁의 상처로 몸과 마음 모두 고통으로 얼룩져야 했던 고모, 1세대 우리 어머니들이 다. 척박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었듯이 세상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힘을 실어준다. 그 힘이 돋보인다. 불행중 다행인가, 행불행의 교차적 인물인가. 부모의 불화와 이복형제들의 알력으로 복잡한 사슬로 인생이 점철 될 수 밖에 없었던 허선구의 누나(허정임0가 토해내는 삶에대한 억척스러운 우울증은 스스로 미워하고 학대의 역순환고리를 선순환고리로 자기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마음감기 보듬기는 고모의 죽은 영정 사진속 질곡의 삶을 압도하지만 담쟁이처럼 차디찬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타 올라가는 끈질긴 생명력처럼 질겼던 그 억척스러움이 늙어 몸이 씨들해지자 교통사고를 과장해 육신을 스스로 거두어 내는 인고의 삶에서 역사적 실존의 상처를 아물게하는데 강력한 트라우마의 종결을 고한다.


                                       >>>>>>>  드라마게임 中에서


전상국 작가님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무거운 소설이다.
중,단편소설 다섯 장를 통해 우리가 전쟁과 분단의 현재진행행 사이에서 겪는 고통과 상처의 트라우마와 전쟁 의 피난처에서 벌어지는 차디찬 삶의 질곡을 가감없이 토해낸 작품이다.

어쩜 역사는 죽음과 피빛 상처를 통해서 발전한다고 봐야한다.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유효한 이유임을 알게된다. 이 아픈 상처와 불안 죽음의 혼을 달래주는 글쟁이들이 있어 역사는 또 한 번 더 힘차게 굴러가고 있지 않을까.



 



YES마니아 : 골드 c*********o 2011.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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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우상의 눈물, 그 이후 남이섬
"[남이섬] 우상의 눈물, 그 이후 남이섬" 내용보기
왜 중·단편집이라고 생각지 못했을까. 이 책은 총 5개의 중·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꼬리를 무는 듯이 이어지는 소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 게임. 호기심이 가는 제목만 여저물어 이어붙어도 한 편의 재미난 소설이 뚝딱 만들어질 것 같다. 남이섬에서 - 꾀꼬리 편지를 받아 - 춘심이 발동한 사내들이 - 그려낸 드라마 게임. 그
"[남이섬] 우상의 눈물, 그 이후 남이섬" 내용보기
왜 중·단편집이라고 생각지 못했을까. 이 책은 총 5개의 중·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꼬리를 무는 듯이 이어지는 소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 게임. 호기심이 가는 제목만 여저물어 이어붙어도 한 편의 재미난 소설이 뚝딱 만들어질 것 같다. 남이섬에서 - 꾀꼬리 편지를 받아 - 춘심이 발동한 사내들이 - 그려낸 드라마 게임. 그 전조는 지뢰밭에 있었다. 한 작가의 소설이기에 은연 중에 풍기는 정서가 하나로 있었고, 각각의 소설은 저마다의 소재로 혹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색깔을 달리했다. 이 책에 대한 해설을 해 놓은 우찬제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은빛 상상력이 노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작품의 매혹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첫 장을 읽으면서 장편으로 이어질 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호흡이 길고, 한 인물에게 쌓인 사연의 깊이가 그윽했다.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발을 들일 깊이가 너무 깊어 조심스러웠다. 한참 읽고 나서야 초헌, 우목, 용씨(꾀꼬리 편지 中) 사이에 얽힌 관계가 이방인에게 낯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온전히 보존되고 싶은 마을 특유의 정취가 있었다. 그 정취는 쓸쓸한 사람들이 한둘 떠나가면서 쓸쓸하게 풀렸다. 분명 이야기는 끝이 났는데, ’현실’로 깨어난 내 시간은 단편이 아니었다. 참 오랜 시간 그네 마을의 이방인으로 살았던 것 같았다. 


이야기 진화의 발원은 대체로 그리움이다. (43쪽)

나미에 대한 그리움을 앓고 있던 두 사내의 이야기가 ’남이섬’이다. 남의 섬이니 남이 장군의 섬에서 들리는 애먼 귀신 이야기로 굳어진 ’나미’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남이섬을 빙글빙글 떠돌았다. 그 끝에 다시 ’나미’라는 마지막 조각으로 완성되는 그 느낌이란.  과거의 나미와 현대의 나미가 오버랩되면서 소설은 끝났다. 사연을 가진 나미의 이야기는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을 남기 듯이 사라졌다. 몽환적이지만 즐겁지 않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몽환이 소설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졌다. 초헌, 우목, 용씨 그리고 나미와 나미를 떠올리던 두 사내까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중편 ’남이섬’에서 보았던 한 구절에서 다섯 이야기가 모두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남이섬』의 발원. 


’춘심이 발동하야’를 읽는 마음은 한결 간편했다. 남이선과 달리 짧은 단편이기도 했지만, 안병신이라는 사내의 발자취만 쫓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어디에 갔을까, 를 쫓는 친구들의 수소문담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그의 전처였던 성춘양은 이전의 나미처럼, 혹은 이전이전의 여시처럼 농간이 대단했다.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에도 한 명의 뚜렷한 여성은 소설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드라마 게임’에서는 고모로 이어진다. 하지만 고모는 이전의 인물들처럼 희희낙락 웃다가 금세 떠나버릴 것 같은 가벼운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가족 모두의 큰 어머니마냥 모든 일에 관여하고 직접 나서 일을 보란 듯이 처리한다. 자신의 몸이 좋지 않는 것을 알고 스스로 교통 사고를 위장하여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나’는 부모같은 고모의 부고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는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형, 먼 나라에서 시집 온 형의 아내, 평생 땅굴을 파던 아버지와 거슬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갖은 사연의 중심이다. 그네의 죽음으로 엉킨 실타래가 풀린다. 마음의 상처가 있던 가족들이 다시 손을 맞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꾀꼬리가 아닌 거위벌레의 작품이었다. 거위벌레 성충이 낳은 알이 우화되기까지의 집이며 먹이였다. 애벌레에서 성충이 된 뒤 불과 20여 일 사는 동안 거위벌레 암컷은 짝짓기를 한 뒤에는 곧장 산란할 나뭇잎 하나를 선택홰 오랜 시간 재단을 한다. 잎 하나를 이리저리 깔출없이 재고 난 뒤에는 잎의 위쪽 부분을 가로로 3분의 1쯤에서 삭삭 절단, 다시 잎의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엽맥 깨물기. 마지막으로 잎 끝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알을 한 개 낳은 뒤 잎을 착착 말아 올려 만든 요람이다. 그렇게 거위벌레가 말아 놓은 잎이 간댕거리고 있으면 호기심 많은 꾀꼬리가 그것을 부리로 쪼아 땅에 떨어뜨리렸다 …… 꾀꼬리 편지. (26쪽)

얼마나 울렁거렸을까. 장윈의 ’길 위의 시대’를 읽고 우리 소설에서 이 같은 몽환적인 소설을 꿈꿨다. 큰 원을 그리면서 돌다가 정착하는 그 지점의 소설을 주워올린 전상국의 소설은  이전 『우상의 눈물』 단편집을 읽고 느낀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다주었다. 


 

a*******6 2011.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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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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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소   설남이섬차례꾀꼬리 편지남이섬춘심이 발동하야지뢰밭드라마 게임작가의 말작품 해설마음의 감기와 은빛 상상력-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과 교수)[남이섬]은 겹의 이야기이다.한국전쟁 당시 남이섬을 무대로 한격동 속에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인물이 있다. 섬의 서북쪽 가평 사람인 김덕만과 동쪽 춘천 방하리 사람 이상호가 그들이다. 이둘은 애면글면 '나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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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
소   설

남이섬



차례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 게임

작가의 말
작품 해설
마음의 감기와 은빛 상상력-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과 교수)

[남이섬]은 겹의 이야기이다.한국전쟁 당시 남이섬을 무대로 한
격동 속에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인물이 있다. 섬의 서북쪽 가
평 사람인 김덕만과 동쪽 춘천 방하리 사람 이상호가 그들이다. 이
둘은 애면글면 '나미'라는 여인을 잊지 않고 살다가 죽어 간 사람들
이다. 그래서 나미는 이야기의 중핵에 자리한다. 두 인물의 전쟁 체
험기의 밖에는 그 둘의 이야기를 통해 나미를 추적하는 잡지 기자
출신 '나'의 이야기가 있다. 서술을 담당하는 나는 시간적으로 과거
와 현재를 넘나드는데, 그런 나의 이야기의 바깥에는 또 그 후배와
카페 여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술자 나의 관심은 물론 독자들의
관심도 최종적으로는 이야기 동심원의 중핵에 위치한 나미와 동심
원의 바깥을 휘감고 도는 여성의 관련 맥락을 찾는 일이 된다.
 각각 좌우익과 연계된 김 씨와 이 씨는 죽을 고비에 처해 강에
투신하여 나미의 도움으로 살아났다는 환상을 지니고 있다. 그리
고 이후에도 줄곧 나미의 환각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눈에 보
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지요."라는 이상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나미에 들릴 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면서
도 그들은 나미를, 더 정확히는 나미에 대한 기억을, 배타적으로 독
점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본 나미만이 사실이고 남의 나미는 거짓
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서술자는 이미 20년 전에 이 두 인물을 취재
하여 신기한 사람들로 다룬 바 있거니와, 이제 새로운 원고 청탁으
로 그 둘의 이야기를 다시 끌어낸다. 현재 시점에서는 고슴도치섬에
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섬 마니아 후배와 그 손님인 한 여성의 이야
기가 원경으로 잡힌다. 이미 두 번의 사랑을 떠나보낸 여성이 후배
의 카페에 들러 분위기에 취해 잠시나마 교감했다가 강섬에서의 자
살로 끝을 내는 이야기이다. 이 현재의 겉 이야기는 과거의 속 이야
기인 김덕만/이상호의 나미 이야기와 겹쳐진다.
 

'나미는 누구인가?'
강섬에서 자살한 여인의 실체 또한 헤아리기 어렵다.잠시나마 그 여인에게 이끌렸던카페 후배는, 그녀가바로 선배님이 찾는 그 여인이라고 말 한 적이 있는데, 어쨌든 나미라는 코드에 부합하는 여성임에 틀림 없다.김덕만과 이상호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나미의 실재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었던 게 사실이다.요컨대 [남이섬]은 역사적 상처를 견디며 치유하는 하나의 환각적 방식과, 치유되지 못한 실존적 상처가 과도하게 덧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적 단면을, 겹쳐서 보여 주는 소설이다. 김덕만과 이상호 모두 나미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으로 살다가 갔다. 강섬 여인 또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득한 그리움을 주체 하지 못한 채 육신을 거두었다. 남이섬 강물 따라 그녀 또한 나미가 되었을까?
3****t 2011.07.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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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이 느껴지는 이야기꾼 전상국 작가님의 10번째 소설집 '남이섬'
"관록이 느껴지는 이야기꾼 전상국 작가님의 10번째 소설집 '남이섬'" 내용보기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게임. 이렇게 5개의 작품이 엮어져 만들어진 책 남이섬은, 전상국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내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시키는 작품이었다.달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표지와는 다르게 그 속 내용은 제법 서글프기도하고 감동적 이기도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졌을때 표지를 다시 한번 보았는데, 처음 그냥 봤을때에는 큰 커피잔
"관록이 느껴지는 이야기꾼 전상국 작가님의 10번째 소설집 '남이섬'" 내용보기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게임. 이렇게 5개의 작품이 엮어져 만들어진 책 남이섬은, 전상국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내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시키는 작품이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표지와는 다르게 그 속 내용은 제법 서글프기도하고 감동적 이기도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졌을때 표지를 다시 한번 보았는데, 처음 그냥 봤을때에는 큰 커피잔과 분홍색만 보이더니, 다시한번 살펴보니 얼굴이 나오지 않는 여자가 떠억하니 존재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짙은파란색의 길다란 손톱이 인상적인 하얀 손에는 회색의 연기를 피워대는 담배가 끼워져있는.... 남이섬에서 따온 장면이다.
처음봤을때에는 그 붕홍빛 부드러운 색감에 마냥 달콤해 보이더니, 책을 어느정도 읽고 다시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라, 묘한 기분도 들었다.
전체적으로 스스로의 경험과 경력이 사무친듯한 글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에서 묘사되는 표현 하나하나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 없다. 사실 이 작가님에대해 잘 몰르지만, 글에서 풍겨오는 이미지로 생각해 보았을때 겪을것 다 겪고 초월할것 다 초월한 인자한 백전노장이 떠 오른다.
표현 하나하나가 묘사 한줄한줄이 어쩜 이렇게 멋지고 대단할까.
책을 읽는다 읽는다 하지만 독자로서 아직 레벨이 부족한지 독특하고 새로운 방향의 소설이아님에도 많은 감탄이 입에서 나온다.
일본등의 해외문학을 자주 읽다보니 국내에 이렇게 감성과 표현이 풍부한 글을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붕 뜨면서 글 자체에 이미지가 박혀있는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깔끔하고 직접적이어서 읽기쉽고 대부분이 간단하게 표현되는 (내가 읽었던)해외작품과는 달리, 국내에는 이렇게 같은 나라의 사람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그 '분위기'와 느낌을 한껏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은듯 싶다. 특히 전상국 작가님처럼 연륜있는 분의 글 이라면 더더욱.
예를 들어, 꾀꼬리 편지 에서의, [끔, 하고 마른 몸피를 일으키는 순간 가슴이 덜컥한다.]나, 지뢰밭의 [여러 방의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가을볕이 따갑게 내려앉은 골짜기에 쩌르렁쩌르렁 산울림을 일으켰다.] 같은 표현이 너무 좋았다.
복사골의 자연을 느끼고 싶은 꾀꼬리 편지, 전쟁의 아픔을 상기시켜주는 남이섬등,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각자 다르면서도 같은 분위기에 휘말려든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든다.
무리없이 술술 읽히면서도 책 속 상황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그려지는것도 남이섬의 매력이었다. 인물들의 말투, 행동, 배경등이 읽으면서 저절로 떠오르니 읽기에 편했던듯...^^
오락적인 재미보다 감성적인 재미로 본다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읽고나니 참 잘 읽었구나! 라는 만족감이 든다.

q***********2 2011.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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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지치면 그리움으로 살아가길...
"기다림에 지치면 그리움으로 살아가길..." 내용보기
처음 인터넷에서 작게 뜬 『남이섬』표지를 봤을 땐 소설가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기억하는 전상국과 책의 표지가 연결되지 않은 까닭이다. 책의 읽고 보니 표지는 단편「남이섬」의 한 장면이었다. 내가 처음 책의 표지를 봤을 땐 분홍색만 눈에 들어왔는데 책을 읽고 나니 테이블에 커피 세 잔이 놓여 있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여자가 보였다. 얼굴은 잘렸고 짙은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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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넷에서 작게 뜬 『남이섬』표지를 봤을 땐 소설가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기억하는 전상국과 책의 표지가 연결되지 않은 까닭이다. 책의 읽고 보니 표지는 단편「남이섬」의 한 장면이었다. 내가 처음 책의 표지를 봤을 땐 분홍색만 눈에 들어왔는데 책을 읽고 나니 테이블에 커피 세 잔이 놓여 있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여자가 보였다. 얼굴은 잘렸고 짙은 파란색 매니큐어가 발라진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끼워 있었다.

 

수컷 원앙처럼 초헌도 우목도 다 떠났다. 아니 그 별리를 어찌 수컷 원앙에 비할 것인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떠남은 허파가 허옇게 타는 그 아득한 기다림을 거두는 대신 이제 무엇을 남겨 놓을 것인가. 밖으로 향한 기다림의 불빛이 꺼지면서 내 속은 더 막막하게 밝아오는 지도.(11쪽,「꾀꼬리 편지」)

 

‘꾀꼬리 편지’는 거위벌레 암컷의 산란, 생의 절정을 의미한다. 삼촌 조카 사이이자 친구 사이였던 우목과 초헌, 초헌당 안주인 ‘나’는 복사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의 절정’을 보냈으나 초헌과 우목은 떠나고 이젠 ‘나’만 남았다.

 

우목, 저 사람 많이 슬프네요.

우뚝 치솟은 자목련이다.

백합나무 고목이 말을 받는다.

초헌, 남을 슬퍼하는 사람의 슬픔까지 슬퍼하니 이제 비로소 슬픔에서 벗어나신 겁니까.(39쪽, 「꾀꼬리 편지」)

 

초헌의 산을 관리해주던 용 씨는 초헌이 떠나고 우목마저 떠나자 분봉 유인을 하며 괴성을 질렀다. 슬픔이 가시진 않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몫은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리라.

 

「남이섬」은 한때 지방지 기자였던 ‘나’가 강섬개발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는 현재와 1950년 7월 반공 산악대가 인공 치하에 있던 남이섬을 습격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쟁은 어제의 이웃을 오늘의 적으로 만들고 자식을 전쟁 속으로 보내야 한다. 김덕만과 이상호의 기억 속에 나미란 여자는 존재하지만 드러난 그녀의 실체는 없다.

 

1950년대의 남이섬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피처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땀이 밴 남이섬의 농사터를 다시 찾아 나룻배를 띄운 이상호 씨나 상점의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잠깐씩 섬에 들리는 김덕만 씨도, 끝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나미에게도 그 섬은 세계와 단절이며 자기 찾기의 유일한 공간이었을 터. 갇힘으로써 열리는 욕구 분출의 해방구. 그 속의 벌거벗은 몸으로 행위예술을 하는 그네들이야말로 그 시대의 아티스트.(79쪽, 「남이섬」)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연은 훼손된다. 「남이섬」은 잊고 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켰고 우리가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요. 위험 표지 선 안에 있는 지뢰도 무섭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위험 표지도 없는 곳에 묻혀 있는 지뢰지요. 여기 앉아 있는, 내 안에도 지뢰가 여러 개 묻혀 있다는 거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166쪽, 「지뢰밭」)

 

「지뢰밭」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용재두는 원한을 가진 사람이 지른 화재로 아이를 잃었지만 끝까지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았다. ‘나’의 형은 육이오 때 실종 됐지만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그러나 어느 쪽에 가담했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리는 존재다. 악명 높았던 용재두였지만 그는 사람을 살려 주었다. 전쟁은 현실의 기억이 사라진 노인의 기억 속에 각인된다. 남겨진 자들은 마음의 지뢰밭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닮을 수밖에. 자네가 내 인생까지 살고 있잖아.”

그 말끝에 고모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조카 와이프, 그 애도 어딘지 우리와 닮았잖아. 자기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결혼을 택했다고 버젓이 말했다며? 또 한 생을 세상에 내놓는 게 싫어 애도 안 낳겠다고. 그러니 어쩌겠어. 그런 사람 선택한 사람이 끌어안고 갈밖에. 수월한 삶이 어디 있나. 들여다보면 다 그렇고 그래.”(241쪽, 「드라마 게임」

 

「드라마게임」은 평생을 가리는 일 없이 열심히 살았던, ‘나’의 형 재목에게 이앙갈브라고 불렸던 고모 정임의 죽음과 땅굴 파기에 집착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총소사로 죽은 부모를 둔 아버지에게 땅굴은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죽음이 누나의 웃음 탓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잘못을 용서받고 싶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전쟁을 겪은, 혹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었다.

 

「꾀꼬리 편지」의 두 남자 초헌과 우목은 삶과 이름은 연결되었는데 「춘심이 발동하야」도 인물의 이름과 삶이 연결된다. 한때 부부였으나 성춘양에게 이혼당한 안병신의 이야기가그와 같은 초등학교에 재직했던 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안병신은 성춘양이 바람났다고 생각했고 성춘양은 안병신이 의처증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이름과 삶이 연결되는 인물 중에 신경식이 있는데 그는 성춘양이 안병신을 강제로 입원시킨 신경정신과 병원의 원장이다. 성춘양에게 이혼당한 안병신은 혼인빙자사기꾼으로 전락하더니 사라졌다. 「꾀꼬리 편지」의 표현을 빌리면 ‘생의 절정’을 함께 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남이섬』에 실린 다섯 단편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단어는 그리움과 기다림이었다. 생이 다해 떠났기에 슬프지만 보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았으나 유해조차 찾지 못한 경우도 있고, 떠났으나 생사를 알 수 없어 남겨진 이들에게 슬픔이 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떠난 이를 따라 가고 누군가는 남겨진 자들에게 영원히 기억된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지쳐서 기억을 지우고 싶어진다. 소설은 기다림이 지치면 함께 했던 그날의 기억으로 살아가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다보면 생이 조금은 유쾌해질지 모른다고.



YES마니아 : 로얄 m****6 2011.07.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