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8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46%
  • 리뷰 총점8 45%
  • 리뷰 총점6 7%
  • 리뷰 총점4 1%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10)

리뷰 총점 종이책
낯익은 세상
"낯익은 세상" 내용보기
인터넷 서점에선 맛보기로 20페이지 가량을 보여준다.  20페이지를 보고 난 후에 책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던지.  책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다른일을 할 수가 없었다.   최정호. 딱부리라고 불리는 이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덮고는 또 한번 망연자실하게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딱부리라고 불리
"낯익은 세상" 내용보기

인터넷 서점에선 맛보기로 20페이지 가량을 보여준다.  20페이지를 보고 난 후에 책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던지.  책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다른일을 할 수가 없었다.   최정호. 딱부리라고 불리는 이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덮고는 또 한번 망연자실하게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딱부리라고 불리는 정호는 열네살이다.  곧 죽어도 열여섯이라고 우겨데는 이 녀석이, 엄마와 함께 꽃섬으로 들어온다.  꽃이 만발할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이름의 꽃섬은 분뇨와 시궁창 냄새와 상한 음식물과 간장을 끓이고 졸이는 모든 냄새가 합쳐진 곳이고, 차갑고 끈끈한 촉수를 내리는 파리떼들이 대담하게도 사람과 함께 공생하는 곳이다.  그곳은 쓰레기 하차장이다.  정말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있을까?  산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못 살 데가 어디 있겠냐. 돈 없으면 어디나 못 살 데가 되는거지.  여기서야 파리만 좀 참으면 돈이 생기지 않냐?  이제부터 날씨 추워지면 파리 모기도 들어가고 지낼 만하단다. - p.121

 

딱부리가 아수라백작이라고 칭하는 작업반장 아저씨와 화상으로 머리에 땜통이 있는 영길이는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  원래 그곳은 그런 곳이다.  일면식이 없어도 가족이 될 수 있는곳. 그렇게 의지하면서 그들은 살아간다.  냄새나고, 사람살 수 없을것 같은 그곳에서 돈이 될 수 있는 물건들을 얻기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그들은 일을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딱부리와 땜통은 아이들만의 또 다른 공간을 갖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빼빼 엄마라 불리는 신들린 버드나무 할머니.  모두다 잊혀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젠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엔 김서방네 가족이 있었다.

 

메밀묵을 좋아하고, 삼대가 함께 사는 김서방네. 강이 흐르고 건너편 들판 머리에 병풍 같은 산들이 빙 둘러져 있는 곳, 마을 어귀에 큰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서 꽃씨 농사를 짓는 김서방네가 있었다.  그들이 사라져간다. 회색안개로 그들의 마을이 줄어들고, 그들이 숨을 쉴 수 없게 되어갔다.   그들을 볼 수 있는 땜통과 딱부리를 통해 김 서방네가 항상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볼 수가 없다.   작가의 말처럼 전기가 들어오고 부터 도깨비라 불리는 김서방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물질이 넘쳐나고 넘쳐나서 주체를 못하고 있다.  집에서 회사에서 버려지는 음식과 소비용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난해의 음식물 쓰레기 양이 500만톤이란다.  가름조차 할 수 없는 양이다.  꽃섬은 지금은 있지 않는 곳이지만, 예전 드라마에선 난지도를 배경으로 만든 이야기들이 종종 있어왔다.  잊혀져 버린 이야기들과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 외출을 위해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아도, 외부사람들은 코를 쥐어싸게 만들던 곳에 살던 사람들.  온갖 폐기물과 함께 공존하던 그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결국 문명에 의해 버려진 것들이 인간을 덮어버리니 말이다.  문명의 이기와 함께, 김서방네라는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함께 공존하는 그곳. 꽃섬.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딱부리는 이제 얼마나 컸을까?  아직도 김서방네를 만나고 있을까?

 

딱부리는 이제 알고 있었다....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먼지와 연기와 썩은 냄새와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P.228

 



d****2 2011.06.21. 신고 공감 1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암울한 현대 문명의 뒤안길에서 본 작은 불꽃 하나!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암울한 현대 문명의 뒤안길에서 본 작은 불꽃 하나!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내용보기
문명이 만들어내는 자리는 무겁다. 휘황찬란한 광채와 세련됨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그들의 변주는 문명의 변덕스러움을 기막히게 드러내며 우울함을 자아낸다. 인간을 위한 그 자리에 한 부류의 인간은 희생양이 되지만 그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취급된다. 그러므로 문명의 냉혹한 본질을 아는 사람은 적다. 본질을 안다손 치더라도 문명의 혜택을 맛보았다면, 수혜자의 자리를
"암울한 현대 문명의 뒤안길에서 본 작은 불꽃 하나!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내용보기

문명이 만들어내는 자리는 무겁다. 휘황찬란한 광채와 세련됨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그들의 변주는 문명의 변덕스러움을 기막히게 드러내며 우울함을 자아낸다. 인간을 위한 그 자리에 한 부류의 인간은 희생양이 되지만 그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취급된다. 그러므로 문명의 냉혹한 본질을 아는 사람은 적다. 본질을 안다손 치더라도 문명의 혜택을 맛보았다면, 수혜자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입을 다물게 된다. 이제 극소수만이 남는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난다 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들은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그 불청객에 대한 이야기를 노작가 황석영이 들려준다. 이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들려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밀려난 난민들의 이야기는 대강 윤곽이 그려진다.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편할 것 같다. 진실은 도망갈 틈을 주지않고 구석으로 몰것이므로 애시당초 줄행랑을 치는 것이 상책이지 싶다. 황석영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날선 칼보다도 예리할 것이다. 들어야만 한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노작가의 글은 이제 전같지 않다. 목에 핏대도 서지 않았으며 서슬 푸른 소리도 있지 않다. 세월의 갖은 풍상을 견뎌낸 오래된 나무 같이, 황석영은 주목하지 않으면 있는지 조차 모를 조심스러움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시간의 채찍과 아픔의 시간을 견딘 자의 낮춘 소리에 지나가던 행인마저도 귀를 귀울일 태세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할아버지의 전래 동화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예전의 서울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새롭게 복원된다. 저잣거리의 뛰어난 무사였건만 한창 나이에 이방인으로 세계를 떠돌아야만 했던 할아버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많은 장소 중 쓰레기섬을 택했을까? 쓰레기섬에서 건져갈 만한 것이 그의 표현대로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쓰레기섬 난지도. 난꽃과 영지 버섯이 자랐던 섬이며, 섬의 모양이 물에 떠있는 오리와 비슷해 오리섬, 압도로도 불렸던 섬이다. 꽃이 만개한 섬의 모습이 하도 예뻐 사람들은 꽃섬으로도 불렀다. 그런데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면서부터 난지도는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섬이 되고 말았다. 난지도에 대한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은 쓰레기 매립장이 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 그 섬은 있으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섬이 되고 말았다.

 

'낮익은 세상'은 그 쓰레기 섬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16살처럼 보이는 14살짜리 소년 딱부리다. 딱부리의 아버지는 삼청대에 끌려가 돌아올 기약도 없고 홀로 남게된 젊은 엄마는 생계를 위해 난지도행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친구인 아수라가 구역 책임자로 있는 곳에 딱부리와 엄마는 정착하게 되고,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서 모자는 삶을 꾸려간다. 자연스레 아수라는 엄마와 같이 살게 되고 그의 아들 땜통은 딱부리의 동생이 된다.

'낯익은 세상'은 글의 구성이 단순하며 평이한 서술로 쉽게 읽힌다. 작가의 표현대로 감동을 위한 장치를 넣지 않았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잔잔하고 덤덤하다. 만약 감동에도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면 그건 순간적 감정의 고양일 뿐이다. 작가는 그런 치졸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그런 방식에 감동을 받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덧없고 하찮을망정 잠깐의 순간마저도 이제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무디어졌고 무관심해졌으며 약아졌다.

'낯익은 세상'에는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요소들이 몇 몇 있다. 우선 '낯익은' 이란 3음절은 낯익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위해 반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이라는 듯 매일 같이 벌어지는 싸움질과 술판, 도박과 밀약등이 낯익다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환멸과 위악만을 배울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낯익으면 안되는 이 세상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려준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쓰레기'는 '낯익은' 것을 두드러지게 하는 중심 제재다. '쓰레기'는 근대 도시의 욕망과 산업화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며,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뒤안길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재다. '쓰레기'는 쓰레기 같은 세상과 그에 빌붙어 사는 인간들을 조명하는 망원경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갖가지 형태의 삶의 모습은 감추고 싶을 뿐이다. 도시의 위정자들에게 그들은 실제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며 감춰도 명분이 서는 그런 대상에 불과하다.

'쓰레기'는 말만 들어도 시큼한 냄새와 더불어 고개를 돌리게 하는 단어다. 그러나 나는 쓰레기장 난지도에서 서러웠으나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보았고, 덧붙여 누추한 현실을 보았으며, 멋지게 위장된 미래를 보았다. 위용이 너무도 당당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고 영구할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무너지고마는 미래 말이다. 그러나 미래가 어떨지언정 또 언제 다가올지언정 나는 쓰레기 더미 위의 삶에서 희망을 읽는다. 그뿐 아니라 비루한 현실의 자리에서 절망의 노래가 희망의 노래로 바뀌는 변곡점 또한 발견한다.

 

자기 남편도 기다리지 못해 다른 남자의 동거녀가 되었던 딱부리의 엄마가 교도소에 들어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동거남의 자식을 괄시하지 않은 데서 희망의 싹을 보았다. 게다가 웬간한 어른보다도 영악한 딱부리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금붙이를 만물상 할아버지에게 주는 모습을 보고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특히 딱부리가 땜통을 가슴으로 품어주는 이야기를 보면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낮고 질퍽한 삶의 자리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우리의 희망은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을 통한 향유에 있지 않다. 그 희망은 때론 보잘 것 없고 하찮으며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마음 자리에서만 나온다.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가장 믿을 수 없는 그 마음 자리를 나는, 실날 같은 희망으로 붙잡으려 한다. 때론 뒤통수를 맞더라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이 책이 내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d*********2 2011.07.03. 신고 공감 14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낯익은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낯익은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하늘색이어선지 파란계열임에도 차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글씨가 정자체가 아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늘색이 주는 느낌이 하늘아래에 낯익은 세상이 있다는 의미와 하늘아래 세상은 낯익은 세상이다 라는 느낌도 들었다. 다 읽고나서 보니 세 가지 관점에서의 낯익은 세상이란 결말에 도달했다. 딱부리가 꽃섬이라 불리는 쓰레기장 속으로 들어가서
"'낯익은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하늘색이어선지 파란계열임에도 차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글씨가 정자체가 아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늘색이 주는 느낌이 하늘아래에 낯익은 세상이 있다는 의미와 하늘아래 세상은 낯익은 세상이다 라는 느낌도 들었다.
다 읽고나서 보니 세 가지 관점에서의 낯익은 세상이란 결말에 도달했다. 딱부리가 꽃섬이라 불리는 쓰레기장 속으로 들어가서 예전살던 동네로 잠시의 일탈을 해보니 낯익은 세상이란 의미와  일탈한 낯익은 세상에서 바라보니 꽃섬이 어느덧 낯익은 세상이 된거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따라서 꽃섬에 살지만서두 이곳이나 그곳이나 낯익은 세상이란 말은 정들고 마음붙이기 나름이라는...또한 자전적 소설이다보니 작가의 어린시절이 고스란이 표현된 꽃섬이 낯익은 세상이기도...그런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책은>
구루미 님께서 선물로 보내주셨다.
<저자는>
 저 : 황석영 黃晳暎 ---발췌하다
<책 내용 맛보기>
책 소개---발췌하다 
2011년 신작 소설의 주무대는 꽃섬이라고 불리우는 쓰레기장이다.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넘쳐나는 이 세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쓰레기장, 사람들이 쓰고 버리는 모든 물건들이 산을 이루는 진짜 쓰레기장이다.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쓰레기매립지인 이곳이, 생활의 터전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꽃섬’ 사람들이다.

작품의 한 주인공이랄 수 있는 소년 딱부리에게 꽃섬은 한편으론 빈곤하고 더럽고 삭막하기 짝이 없으나 다른 한편으론 경이로움이 가득한 성장환경이다. 비록 산동네이긴 하나 ‘도시’에 속해 있었던 딱부리는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장이라는―도시와 전혀 다른―세계로 들어왔고, 그 속에서 초자연적인 것과 조우하며 인간과 사회 학습의 길로 나아간다.

『낯익은 세상』은 소비의 낙원을 구가하는 문명의 이면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며 최하층 사회 속에서 형성기를 보내는 한 소년의 학습과 각성에 관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가장 빈곤한 것 속에 가장 풍부한 것이 있다. 황석영은 문명으로부터 폐기된 사물과 인간의 종착지에 문명에 대한 저항의 오래된 원천이 있음을 일깨운다.
<책 읽은 소감>
황석영 이름은 알고 있어도 책을 읽은 기억이 없던 어느날, 바리데기가 그리도 들썩였다. 신간소개였던 모양이다. 이름난 작가인줄은 알았기에 신간으로 구입하여 읽으며 뭥미? 별로 그다지 내겐 와닿는 게 없네, 괜히 신간 샀네 정도. 그러다 강남몽 리뷰대회도 있고 선물로 받았다. 처음만남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설레임으로 접했는데 강남신화를 보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건달조폭이 꼭 등장하는 삼류식으로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바리데기 보다는 났네. 세 번째로 만남에선 앞의 두 번을 다 만회하는 책이었다.

'꽃섬'으로 표현되는 그 이름을 가만히 되뇌다 보면 참 이쁜 이름이구나 싶다. 꽃이 만발한 섬을 떠올리기가 쉽지만 이미 거대한 쓰레기장의 다른 이름인 것을 알고서 대하니, 악취에 숨을 쉬기도 힘든 상황이 연상적으로 보여져도 그것보다는 그곳도 엄연히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아주 중요한 생각. 그네들에게 온갖 쓰레기는 꽃일 수 있다는 사실. 얼마나 이쁜 꽃이냐가 얼마나 돈이 되는 유용한 쓰레기냐인 생활이다보니 그건 꽃이다 라고 생각되어졌다. 너무 낭만적으로 내가 보는것이 아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고 했던가. 어차피 쓰레기장인 것을 알고 왔든 모르고 왔든 최하층민임을 거부할 수는 없는 삶이라면 그안에서 죽기살기로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을...그 사람들이 낯설은 세상 사람들로 인식되어져도 자신들 안에서는 낯설은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비교적 그렇게 하고 산다는 것.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식품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움을 꽃섬안에서도 영위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 성립한다는...

고아원 출신인 부모를 둔 딱부리.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옮겨 온 꽃섬에서 어머니는 어느새 땜통아버지와 내외하는 사이가 되는데, 호적상으론 기록이 없어도 땜통은 이복동생이 되는거다. 땜통이 꽃섬에선 딱부리보다는 인생선배로 눈치코치를 따를 수가 없는데 어린아이지만 참으로 신중하고 속이 깊다. 딱부리가 이런 땜통에게 은근히 맘을 주면서 그나마 꽃섬에서의 나날들은 흘러간다. 땜통으로 인해 비밀아지트도 방문하고 또다른 가족들과의 은밀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소년은 꽃섬에서만 이루어지는 생활이 아닌 묘한 일탈을 느끼면서 사뭇 땜통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누나네 집엔 병들은 강아지와 개들...이 보살핌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며 원한건 아녀도 은연중 자신도 보람있는 일을 하고난 후의 뿌듯함 비슷한 감정을 알게 된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던가, 마음나눔 같은건 해보지 않은 삶이었으므로 어린 땜통이 그리 기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니 땜통을 아껴주는 딱부리의 마음은 그야말로 친형같은 마음이며 땜통 역시 친부보다 더 따르고 의지한다.

딱부리와 땜통이라는 별명이 처음 접했을땐 거슬렸다. 뒷골목에서 좋지 않은 친구들이(원했건 안원했건) 부르며 불리우는 값싼 느낌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전소설이어선지 꽃섬의 일상을 소상히 절절하게 그려내는데 어느덧 이 별명들이 그리도 친숙하고 정겹게 느껴지는거다. 작가가 이제는 느긋한 여유로 관조하는 시선과 지나간 힘들고 아펐던 시절(실은 그렇다고 안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건 사치요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절이었을테니 그저 먹고살기 급급...)을 남 이야기하듯 덤덤히, 담담히 기술하고 술회하는데 억지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급하고 거센게 아닌 완만하고 자연스런 물줄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꽃섬 이미지와 비슷한 환경도 가까이하지 않은 나인데 꽃섬 이야기 즉 그네들 이야기를 접하며 꽃섬이나 꽃섬밖 사람들이나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네 싶으니 정들고 습관되면 낯익은 세상이란 머무는 곳이 아니겠나 싶다. 하늘아래 어느 동네든 몸담고 마음담아서 정들면 그곳이 곧 낯익은 세상일테요, 그 테두리 밖에서 다시 생활이 된다면 예전 동네가 낯익은 세상이더라는...그렇게 낯익은 세상을 작가는 그려냄과 동시에 떠올렸나 보다.


k******5 2011.08.21. 신고 공감 13 댓글 30
리뷰 총점 종이책
외면하고 싶은 세상
"외면하고 싶은 세상" 내용보기
세상에는 저마다 상대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빛과 그림자,  깨끗함과 더러움,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사람,  집이 있는 사람과 월세 조차도 구하기 힘든사람 등 상대적인 것들은 참 많다.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집도 돈도 없는 최빈곤층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이 가진 거라곤 가족 중에 한 명 쯤은
"외면하고 싶은 세상" 내용보기

세상에는 저마다 상대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빛과 그림자,  깨끗함과 더러움,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사람,  집이 있는 사람과 월세 조차도 구하기 힘든사람 등 상대적인 것들은 참 많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집도 돈도 없는 최빈곤층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이 가진 거라곤 가족 중에 한 명 쯤은 속 썩이는 구성원과 먹여 살려야 할 부양가족이 있다는 거다.  ’꽃섬’ 이라 불리우는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  매일같이 몇 대의 트럭이 쏟아내고 가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사람을 거쳐간 모든 것들이 그 수명을 다하고, 여러 쓰레기통을 돌고 돌아 한 곳으로 모인다.  그 모든 쓰레기의 집합장소가 꽃섬이다.  꽃섬이 쓰레기들의 종점이다. 

우리는 가끔 걸인을 볼 때가 있다.  우연히 지나는 거리에서 마주칠 때도 있고,  도로 한쪽에서 동냥 하는 거지를 볼 때가 있다.  근처에 가면 거지가 풍기는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있다.  그런 냄새의 수백배쯤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수백배의 독가스와 사람의 몸 여기저기에 붙어서 윙윙 거리는 파리떼.  파리떼라고 하기엔 표현이 부족해 보이는 시꺼먼 덩어리들이 늘 산재해 있는 곳이 꽃섬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  꽃섬에 사는 사람은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이다.  쫓겨났다기 보다는 돈이 없어 그 속에 못 들어간 사람이다.  한끼 끼니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물건으로 먹고, 입고, 눈비를 피하며 잘 곳을 해결한다.  매립지에서 내다 팔 고철이나 플라스틱, 종이 등을 모아서 돈과 바꾸며 돈 벌이를 한다.  이 매립지도 레벨이 있다.  그 레벨은 돈이 되는 물건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나뉜다.  물론 돈이 되는 물건이 많은 ’개인차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든 남보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선 대가를 치뤄야 하는 법이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편리해지고, 뭐든 빨라지고 있다.  편리함과 삶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물건들을 계속 만들어 낸다. 
신기하고 편리한 물건이 많아질 수록 버려지는 쓰레기도 많아졌다.  더 나아가 인간의 편리와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를 하는게 아니다.  체면을 위해서도 소비를 한다.  욕망과 끝없는 욕심이 사치와 또다른 소비를 부추긴다.  이웃사람과 비교해 더 행복하기 위해, 체면을 차리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듯 물건을 사들인다.  

사람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물건들 때문에 환경은 상대적으로 희생 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지는 묵묵히 받아준다.  몇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1회용품들.  플라스틱, 비닐봉지, 깡통 등등.  멀쩡한 것들도 싫증나서, 필요없어져서, 넘쳐서 버리는 물건들로 산을 이루고 섬을 이룬다.  꽃섬이 계속 늘어가는 한 지구촌 곳곳에서 사람이 설 곳은 점점 더 줄어든다.  

옛날을 떠올려 보면 하늘과 땅 차이라는게 느껴진다.  옛날엔 사람이 먹고 버린 음식은 짐승을 먹였다.  사람이 배출해낸 오물은 거름으로 사용했다.  썩지 않는 물건은 만들지도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만 만들고 사용했다.  버린 것들도 고쳐서 다시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고 또 많이 버린다. 

(중략) 내가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 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지옥 또는 천국처럼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일상적으로 낯익게 되어버린 것이다.(중략)

쓰레기 매립지라는 장소는 낯선 풍경이지만, 그 의미가 내포하는 세상은 낯익은 세상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도 그곳이니까.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이리만치 낯익은 세상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s***r 2011.06.18. 신고 공감 7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황석영 작가의 글
"황석영 작가의 글" 내용보기
어떤 책을 읽고 난 후에 문득 '교과서에 실리면 참~좋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과거를 보면서, 현재를 보살피고, 미래를 향한 눈을 둘 수 있는 이야기. 문인 황석영의 이번 이야기가 그랬다. 처음엔 황석영 작가의 아무렇지 않게 뱉는 욕(?)과 막말(?)이 '황석영이구나!'싶었다. 아름다운 문학이 그냥 내뱉는 말로 고상한 미학이 친근하면서도 넓은 세상의 미학으로 다가왔으니
"황석영 작가의 글" 내용보기

     어떤 책을 읽고 난 후에 문득 '교과서에 실리면 참~좋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과거를 보면서, 현재를 보살피고, 미래를 향한 눈을 둘 수 있는 이야기. 문인 황석영의 이번 이야기가 그랬다. 처음엔 황석영 작가의 아무렇지 않게 뱉는 욕(?)과 막말(?)이 '황석영이구나!'싶었다. 아름다운 문학이 그냥 내뱉는 말로 고상한 미학이 친근하면서도 넓은 세상의 미학으로 다가왔으니까(살면서, 그렇게 욕을 대놓고 들어보지 않은 경우에는^^).
 
     난지도. 지금은 공원이 들어서서 축구장과 종합건물로 더 익숙한 시대. 그런데 불과 20여 년전에는 그 곳은 쓰레기 더미였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땅을 메우고 다지느라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들락거렸고, 축구장은 개장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들 위주로 개방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새로웠다. 과연 이 모습이 대한민국이었는가? 그랬다. 잊고 살았다. 우리의 모습인데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태블릿 PC로 바쁜 척 하며 더운 여름에 몇 천원짜리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다니는 것이 진짜 대한민국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세상이 지금 나 자신에게 익숙한가? 때때로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가? 마치 20-30여 년 전의 난지도를 생각해야 비로소 느끼는 거리감처럼. 분명 이름이 있는데도 딱부리와 땜통이 먼저 생각난다. 14살이지만 학교도 안 다니고 엄마 뒤에서 쓰레기 줍는 일을 해야했기에 나이도 속여가면서 달동네에서 꽃섬으로 들어간 소년. 무언가 교육받으러 간 아버지 대신 아수라와 땜통을 만나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사춘기 소년의 마음설렘도 고스란히 간직한 평범한 10대 소년. 뭔가 부족해 보이는 땜통은 좋은 것보다 익숙한 야구모자를 더 손에 가까이 둔 정이 많은 순수한 아이로 보였다. 

     아이들의 탈선과 또래문화 역시 사회규범에서 보면 올바르지 않다. 그러나, 일에 지친 어른들의 삶과 다르게 형성된 나름의 시간으로 이해하면 마음으로 다가서기에 좀 쉽다. 

     때로는 내가 이야기의 어느 시간과 장소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김씨 가족에게 선물한 묵과 막걸리 덕분이었는지 쓰레기 더미에서 땜통이 찾아낸 지폐더미와 금품들. 몽환적이다. 단순히 '흥부와 놀부'의 제비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삶이 조금은 더 나아졌을지 모르나, 마을에 불이 번져 모두 잿더미로 변했을 때, 방바닥에 숨겨놓았던 지폐들은 아쉬움보다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하는 대상이 되고, 움직이는 마리오 아저씨를 찾으로 다시 들어간 땜통은 함께 숨쉴 수 없게 된다. 이들에게 돈, 혹은 물질적 가치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 그냥 하루벌어 하루먹는 것에 만족하는가? 내 안에 있을 때는 내 것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 내 것이 아닐 때는 더더욱 내 것이 아닌 것.

     쓰레기 마을이 난지도 보다 꽃섬으로 재인식되었을 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먼지와 악취, 벌레들보다는 시원한 물이 흐르고 논밫이 펼쳐진 김씨 가족들의 모습으로 더 다가왔다. 과거의 김씨 가족들과 현재 꽃섬에서 사는 딱부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면 백화점이 있고 번드르르한 분위기의 도시가 펼쳐진 곳. 과거와 현재, 현재의 공간적 분리를 통해 과연 내가 살고 있는 것이 과거와 비추었을 때, 현재의 다른 공간과 비추었을 때 '바람직한 것인가?' 물을 수 있게 한다. 어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서 10대의 소년으로 감정적 기복이 어느 정도 용인되고 이해되는 시선을 통해서. 

     살면서 누군가 가끔씩 보고싶을 때가 있듯, 몇 년이 지나 딱부리에게 나타난 땜통은 그저 과거속의 인물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공유한 벗으로 또 다른 딱부리의 거울이었을 것이다. 

      난지도에 모인 쓰레기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듯, 정말 최악의 상황, 진짜 아니라고 혀를 차게 되는 누군가에게도 진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그 상황을 이겨낼 힘도. 자신의 순수했던 시절의 또 다른 자신을 불러내어 진정 물어보는 것, '이 시간이 낯익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했던 그 시간과 그 모습인가?' 낯익은 시간과 장소에서 갑자기 낯설어하며 잠깐이라도 당황한 적은 없었는가? 혹은 잊을만 하면 보도되는 사건과 사고들에서 과거의 어느 한 때가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 난지도의 불이 개포동 판자촌의 불과 겹치고, 아이들의 방황은 세기가 변해도 일어나고 있는 것. 과거와 현재. 과연 사람의 감정이 보다 더 발전하기는 한 걸까? 생각할 게 참...많다.



YES마니아 : 골드 n********y 2011.06.15.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추함이 스며들어 아름다움이 빛나다
"추함이 스며들어 아름다움이 빛나다" 내용보기
잘 씻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코밑은 항상 반들반들했고 소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게 되는, 그런 아이였다. 어느 날 머릿니를 옮아왔다고 새엄마한테 등짝을 맞으며 이러다 두피가 벗겨지진 않을까 싶을 만큼 모진 참빗 고문을 당해야 했다. 이튿날 옆에 앉은 아이를 의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애를 노골적으로 미워했다. 무시하기 시작했다
"추함이 스며들어 아름다움이 빛나다" 내용보기


 


  잘 씻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코밑은 항상 반들반들했고 소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게 되는, 그런 아이였다. 어느 날 머릿니를 옮아왔다고 새엄마한테 등짝을 맞으며 이러다 두피가 벗겨지진 않을까 싶을 만큼 모진 참빗 고문을 당해야 했다. 이튿날 옆에 앉은 아이를 의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애를 노골적으로 미워했다. 무시하기 시작했다. 소소한 충돌은 후에 큰 싸움의 불씨가 되었고 결국 우리는 선생님 앞에 서야 했다. 그애 편을 드는 선생님이 못마땅해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그애를 무시한 것처럼 선생님이 날 무시하는 것 같아 낯이 뜨거워졌다. 옹졸한 내 속을 그대로 들킨 것 같아 마냥 창피했다. 바닥이 날 삼켜주었으면 바라며 훌쩍거릴 때 눈치 없이 내 몸은 훌쩍, 크고 있었다.


  창피함을 안다는 것은 내면의 성숙함을 의미한다. 미처 몰랐던 세상의 움직임에 눈뜰 때,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순간이 온다. 황석영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의 딱부리처럼 말이다. 딱부리는 부유층의 선행이 실은‘착한 인형 놀이’에 지나지 않음을 짐작했으나 이에 응하는 자신이 전혀 부끄럽진 않았다. 친절한 미소 속에 감춰진 경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저 손에 들려진 물품이 이 손에 전해지면 되는 거니까. 개척교회에서 위문품을 받으려고 줄 서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지도록 만든 것은 또래의 한 소녀. 교복 입은 소녀의 광채는 열네 살 딱부리를 충분히 누추하게 만들었다. 소녀에 대한 낯선 감정이 스스로를 멸시하며 요동치게 만들었다. 소년은 지금까지 구축한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몰랐다.


어른이 되어봤자 별로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딱부리는 눈치채고 있었다. (P. 196)


  이 작품은 먼저 성장소설로 다가온다. ‘꽃섬’이라 불리는 곳으로 엄마와 함께 이사한 딱부리는 최정호라는 자기의 이름이 낯선 지 오래다. 공식적으로 제 이름을 들을 수 있는 학교생활과는 진작 멀어졌고, 꽃섬 아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양부모와 사는 아이도, 부모의 한결같은 애정의 눈길을 받으며 지내는 아이도 드물었다.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하는 곳으로 이사한 것이다.


  아빠의 존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헛헛함을 메우기 위해서인지, 의지할 어깨를 찾으려는지, 이도 아니면 일종의 암묵적인 거래인지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준 아수라 백작과 동침하는 엄마. 그래도 아수라 백작이 겁탈했으리라 믿고 싶어 식칼을 들고 방문을 열었으나 엄마의 눈빛은 그게 아님을 명백하게 알려주어 당황하는 아들. 식칼을 떨어뜨리며 세상의 묘한 이치를 알아가는 시간.


  그렇게 아수라 백작의 아들 땜통까지 한식구가 된다. 땜통의 무구한 세계에 매혹되어 형제애 이상의 감정을 교류하며 소년은 자란다. 쌓인 쓰레기만큼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에서 순수한 마음의 거울로 신비로운 세계를 들여다보며 세상의 부조리를 알아간다. 땜통의 어이없는 죽음은 마지막 선물이 되어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쓰레기더미에서도 소년의 성장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다림질한 교복을 입은 소녀는 절대 품을 수 없는 고통이 있었으므로.


온 세상의 산 것들과 물건들이 너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P. 207)


  전통사회 가치관과의 단절로 읽혀지기도 한다. 숨 가쁘게 자본주의에 물들다 보니 나라마다, 지역마다 자연스레 형성된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잃어버렸다. 전통과 역사를 운운하며 흉내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소비가 미덕인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방출하는 쓰레기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으나 새로운 욕망에 밀려 쓰레기 처지가 되어버린, 아직은 꿈틀거리는 욕망이 모이는 곳, 꽃섬. 거대한 욕망의 무덤에서 삶의 터전을 발견한 사람들은 수많은 욕망의 찌꺼기로 연명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쓸 만한 쓰레기와 쓸모없는 쓰레기를 구분하며 삶의 고단함과 동시에 삶의 대한 애착을 강렬하게 표현하면서 욕망이 품고 있는 온갖 냄새를 기꺼이 껴안는다. 이는 타인의 살아온 냄새이기도 하다. 다만 묵히고 묵혀 지독한 냄새가 날 뿐이다. 냄새에 익숙해진 그들은 버려진 욕망에서 자기의 욕망을 꿰어 맞추는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면서 꽃섬 사람들도 잊어간다. 한때 이 땅과 연결되었던 이들을. 그들의 삶의 가치를.


  시간을 달리하여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김서방네와 소통하는 땜통과 빼빼엄마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이어주는 매개자로 등장한다. 사소한 물건에도 깃들어 있는 혼을 위로할 줄 아는 인물이다. 허나 낡아빠진 야구모자를 애지중지 아꼈던 땜통은 물질(슈퍼마리오 게임기)에 길들여지다 결국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말았고 버려진 개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때때로 신기를 드러내던 빼빼엄마는 꽃섬의 비극을 예견했는지 정신을 놓는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습성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세상의 흐름에서 언제부터인가 청명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개새끼! (P. 188)


  작가는 친절하게도 정신 바짝 드는 삼 음절의 경고를 남겼다. 눈에 보이는 차림새나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 은밀히 숨겨둔 저울에 달아 상대방을 평가하는 고약한 버릇이 때때로 드러냈던 독자라면 섬뜩했을 터다. 개척교회에서 라면상자를 나누어주던 소녀의 엄마처럼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겠다는 듯 시종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사이사이 측은함을 강조하는 미간의 주름도 놓치지 않고 연출할 수 있는 자라면 눈 속에 몇 개의 눈금자쯤은 숨길 줄 알겠지.


  백화점이라는 욕망의 전시장에서 근무하다보니 누구보다 빠를 시일에 눈금자와 저울을 마련한 젊은 점원에게 던지는 욕설이 아니다. 들꽃이 자라고 산뢰가 우는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김영랑 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부분)” 흐르는, 타인의 내면에 흐르는 강을 먼저 바라볼 줄 아는, 낯선 세상이 되어버린 낯익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구석에 숨어든 어둠을 밀어내며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을 가르면 아낙네들은 각양각색의 쓰레기통을 들고 종종걸음을 쳤다. 눈을 요란하게 비비며, 통 밑바닥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끈질긴 찌꺼기처럼 치맛자락을 잡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엄마는 매섭게 눈을 흘기다가 이윽고 아이의 엉덩짝에 불도장을 찍으면 동트는 기운을 막 흡입한 아이는 우렁차게 울어재꼈다. 종소리의 리듬과 울음소리의 멜로디가 하모니를 이루면 잠에서 허우적대던 아낙이 벌떡 뛰어나왔다. 판자를 높게 덧대어 가급적 많은 쓰레기를 적재할 수 있도록 제작한 진녹색 리어카가 점이 되어갈 때면 꼭 한두 사람은 한숨을 푹푹 쉬며 무게를 조금도 줄이지 못한 쓰레기통을 도로 들고 대문을 열기도 했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릴라치면 아직도 분주한 새벽의 광경이 떠오른다. 아침잠이 없었던 예닐곱 살의 기억은 무슨 쓰레기 처리 비용이 한 달에 천 원이나 하냐고 따지던 목소리까지 데려온다.


  저 많은 쓰레기를 어디로 다 가져가는 걸까. 대체 세상의 어느 끝에다 차곡차곡 쌓아두는 걸까. 그곳에도 사람이 살까. 만약 산다면 그들의 생활은 얼마나 끔찍할까. 이런 생각을 했다면 거짓말이고, 다만 쓰레기 아저씨 앞에 가기가 싫었다. 똥 푸는 아저씨와 더불어 내 또래 아이들과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코를 움켜잡게 하는 존재였다. 간혹 철없는 어른들은 공부를 못하면 저런 사람이 된다고 했고 난 똘똘한 아이의 특유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창피함은 여전히 싱싱하다. 책이 과거에서 건져준 창피함은 오늘의 나를 성숙케 한다. 한층 자란 나의 내면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어느 한 구석에 아름다움만큼의 추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추함이 스며들어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고. 어쩌면 추함과 아름다움은 이음동의어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는 공존해야 한다고 한 소년의 눈을 빌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YES마니아 : 골드 a*****4 2011.07.15. 신고 공감 6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낯익은 세상
"낯익은 세상" 내용보기
나에게 낯익은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다.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우리 집은 지독히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잘 살지도 않았다. 지독히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우리 넷을 키우는데 자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부족(금전적으로)했고,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셨다. 미치도록 화목하지는 않았지만
"낯익은 세상" 내용보기

나에게 낯익은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다.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우리 집은 지독히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잘 살지도 않았다. 지독히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우리 넷을 키우는데 자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부족(금전적으로)했고,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셨다. 미치도록 화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고, 가부장적인 아빠가 있었지만 나이 드시면서 약해지는 모습에 모두가 효도하려고 노력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우리 집. 이게 나에게 낯익은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할지..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그 원천이 되는 힘은 내가 가진 낯익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니까.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이름이 있지만 딱부리라 불리는 소년. 그는 꽃 섬이라는 빈곤하고 더럽고 삭막한 쓰레기 더미에서 산다. 물론 처음부터 쓰레기 동네에서 산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있을 때엔 비록 산동네였지만 도시에 속해 있던 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라지고 난 후 딱부리는 이곳, 이 세계로 들어왔고, 이곳에서 성장해 나간다. 아빠의 친구이자, 엄마의 보육원 오빠 아수라가 쓰레기 더미 꽃 섬으로 이들을 불렀고, 딱부리와 엄마는 쓰레기를 줍고 정리하며 살아간다. 엄마는 아수라와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고, 아수라의 아들 땜통은 딱부리의 동생이 된다.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도 계급은 존재하고 한다. 일부 돈을 내고 들어온 사람들은 다른 이보다 조금 더 풍족하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 이들은 쓰레기 냄새나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낯익은 세상은 쓰레기 일까?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사는 동네. 쓰레기 더미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냄새나고 더러운 곳. 쓰레기가 넘쳐나는 곳.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 했지만, 사람이 살았었구나. 그것도 가장 돈이 되는 쓰레기를 줍기 위해. 그 쓰레기를 줍는 것에도 1, 2진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책에서 말하는 꽃 섬이라는 곳이 예전의 난지도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대충 시대적 배경은 1980년 언저리이고. 지금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쓰레기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이곳의 쓰레기를 주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이곳에 들어오는 음식마저도 재활용하고. 하지만 아무도 그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인간에게 생존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모든 소비의 종착역인 쓰레기장이지만 이곳에선 또 다른 시작이 이뤄지는 곳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도시에서 버려진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도시로 갈 날을 바란다. 열심히 일하면서. 유복하지 않았고, 풍요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구나 싶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단단한 테두리 안에서. 어떤 부모도 내 아이에게 가난과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때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는 낯익은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곳이 된다. 그러나 영원히 낯익은 세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오늘. 그 오늘을 감사하며 살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6.01.30. 신고 공감 6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낯익은 세상』 by 황석영
"『낯익은 세상』 by 황석영" 내용보기
열네 살 소년 '딱부리'의 시선을 통해, 조용하고도 슬픈 동화로의 초대 『낯익은 세상』이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 버려진 문명과 정령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 파리떼들과 함께 소독되는 세상, 거대한 쓰레기 산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들을 채집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소란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폐기된 잡다한 물건들이 산을 이루는 쓰레기 매립지
"『낯익은 세상』 by 황석영" 내용보기

열네 살 소년 '딱부리'의 시선을 통해, 조용하고도 슬픈 동화로의 초대 『낯익은 세상』이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 버려진 문명과 정령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 파리떼들과 함께 소독되는 세상, 거대한 쓰레기 산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들을 채집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소란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폐기된 잡다한 물건들이 산을 이루는 쓰레기 매립지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그려진다.

 

 

아버지의 행방불명으로 인해 엄마와 함께 꽃섬으로 흘러들어온 딱부리는, 그곳에서 정착한 홀아비 반장 아수라와 그의 아들 땜통과 가족이 되고, 동생 땜통을 통해 꽃섬의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생계를 위해 쓰레기더미 속을 파헤쳐 가며 살아가지만, 오히려 쓰레기의 붕괴가 죽음을 앞당기게 하는 척박한 노동의 현장 꽃섬, 이 삭막하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도 자유가 있고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춤과 노래가 있고, 가장 빈곤한 가운데 가장 풍족한 것, 샤머니즘을 표방하는 파란 불빛(김 서방네)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슬픔과 기쁨, 상처와 치유를 맛본다. 꽃섬 사람들은 불행의 짐을 짊어지고 끔찍하게 살아간다. 후다닥 뚝딱 만들어지는 날림 판잣집에서, 버려진 쓰레기와 같은 삶이 반복되다가, 부패한 쓰레기산이 폭파하는 대참사를 겪는다. 순식간에 생계의 위협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담보로 살아가는 고단한 인생들이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원치 않는 보상을 받고 추방당한 김 서방네는, 푸른 불빛이 되어 꽃섬을 떠나지 못한 채 늘 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하는 과정이다. 한 때는 꽃으로 가득했고 철새들이 쉬어가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섬이었으며, 쓰레기를 매립하기 전만 해도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던 땅이었다. 비록 땅이 낮아 홍수철에는 집이 물에 잠기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찾는 산책로였으며, 조선시대 [택리지]에는 풍수조건이 좋은 땅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랬던 곳이 악취가 풍기고 오물이 넘쳐나는 쓰레기 산에서 지금의 하늘 공원으로 발전된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푸른 불빛은 거대 도시에서 소외된 욕망의 희생양이다. 꽃섬은, 소비의 욕망이 지탱하고 동물적인 생존이 지배하는 비루한 현실을 상징한다. 예전에는 낙원이었으나 쓰레기 천지가 되어버린 아픈 속살을 드러내는 비참한 막장의 한가운데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희망의 빛은 피어오른다.

 

 


못 살 데가 어디 있겠냐. 돈 없으면 어디나 못 살 데가 되는 거지. 여기서야 파리만 좀 참으면 돈이 생기지 않냐? -P121



d******7 2012.06.30.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낯선 세상을 기억하며
"낯선 세상을 기억하며" 내용보기
황석영 소설은 아프다.지금 세대들은 알지 못하는 전후 세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곤 한다.전작 개밥바라기별과 낯익은 세상은 그 이야기가 평행선상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이 아픈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작가와 그 이야기를 끊임 없이 소비하는 독자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결론은 황석영이니까.황석영 선생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아픔을 드러내면서, 그저 아파하기 위해서,
"낯선 세상을 기억하며" 내용보기

황석영 소설은 아프다.
지금 세대들은 알지 못하는 전후 세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곤 한다.
전작 개밥바라기별과 낯익은 세상은 그 이야기가 평행선상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이 아픈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작가와 그 이야기를 끊임 없이 소비하는 독자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결론은 황석영이니까.
황석영 선생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아픔을 드러내면서, 그저 아파하기 위해서, 슬퍼하기 위해서 풀어 놓는 이야기가 아니다.
잊지 말자고, 그 아픔들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왜냐.. 과거 없는 현재, 과거 없는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항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만큼 살만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아픔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들을 기억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하자.
세상 모든 기쁨과 환희의 뿌리는 이전의 아픔과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k*****m 2012.02.23.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꽃섬에서 쓰레기섬이 되어야 했던 그 모든것들에 대한 진혼곡
"꽃섬에서 쓰레기섬이 되어야 했던 그 모든것들에 대한 진혼곡" 내용보기
내가 어릴적엔 정말 등에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 매달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시던 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 어느 한 곳은 커다란 쓰레기장으로 쓰레기를 주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또한 빈병이나 폐휴지를 가져오라는, 그런 숙제아닌 숙제도 있어 한참 애를 먹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잊혀져 가고 먼 기억속이라 내 아이들에게 말을 해 주면 '정말' 하고 반문할
"꽃섬에서 쓰레기섬이 되어야 했던 그 모든것들에 대한 진혼곡" 내용보기

내가 어릴적엔 정말 등에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 매달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시던 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 어느 한 곳은 커다란 쓰레기장으로 쓰레기를 주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또한 빈병이나 폐휴지를 가져오라는, 그런 숙제아닌 숙제도 있어 한참 애를 먹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잊혀져 가고 먼 기억속이라 내 아이들에게 말을 해 주면 '정말' 하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쓰레기' 가 나오게 되고 쓰레기는 음식물이건 그외 분리수거용 쓰레기건 문제가 자주 거론되곤 한다.한때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 쓰레기매립장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마찰도 커 이슈가 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쓰레기가 그냥 쓰레기가 아닌 돈이고 자원이 되는 세상이다.

난지도,난꽃과 지초가 사는 모래섬으로 꽃과 철새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던 곳이 70년대 자연제방이 생기고 서울의 쓰레기매립장으로 변했다 한다. 이십여년간 쓰레기매립장이던 것이 90년대 중지하고 다시 생태고원으로 복원되어 지금은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그리고 그외 땅콩등 작물을 재배하는 곳으로 바뀌었단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쓸모 없는 섬이라 생각하고 환경적 자연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그저 버려진 섬처럼 있는 난지도라고 그곳에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할 생각을 했으니,그렇다면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그외 식물이며 철새들은 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기심이 불러 일으킨, 꽃섬을 쓰레기섬을 만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하여 무참히 스러져간 것들에 대한 작가의 진혼곡으로 나는 읽었다.그가 기억해주지 않았다면 누가 기억해 주었을까. 작가의 말에 '치매문학' 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어쩌면 후세대에 우리의 기억을 모두 소중히 남겨 주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치매문학이라기 보다는 '약속이행' 으로 보고 싶고 꽃섬에 살던 식물과 자연 그리고 그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살풀이와 같은 진혼곡으로 보고 싶다.

보육원에서 자란 엄마와 아버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살던 곳은 시장이 인접한 산동네,아니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마져도 아버지가 교육대에 끌려 가면서 떠밀려 나와야만 했다. 엄마가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친구라는 아수라를 닮은 쓰레기매립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를 따라 겨우 보따리 하나 들고 14살의 아들 딱부리와 빈 몸으로 쓰레기매립장인 '꽃섬' 으로 향하는 것 뿐이었다. 쓰레기장엔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 판자집을 지을 재료들이나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들과 옷가지들,산동네보다는 이곳에서의 수익은 배가 되어 엄마와 딱부리는 열심히 일했지만 엄마는 곧 아수라 아저씨와 동거아닌 동거에 들어가고 아수라 아저씨의 아들인 땜통은 딱부리의 동생처럼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가 뜨거운 물을 머리에 부어 머리에 화상과 땜통처럼 상흔이 남아 있는 아픔을 간직한 땜통, 녀석은 한자리 모자란듯 하면서도 영특하게 아버지와 딱부리 엄마의 사정을 꿰뚫어 보고 그리고 주변 상황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딱부리가 적응하지 못하는 듯 하자 그들만의 아지트인 '본부'에 데려가기도 하며 그와 빼빼엄마만이 볼 수 있는 영혼인 '김씨네 가족' 의 이야기도 해 준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빼빼엄마는 만물상 할아버지와 함께 장애 강아지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쓰레기매립장과는 벗어난 곳에서.

거대한 쓰레기매립장은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삶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계급이 있고 그들만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아수라 아저씨 덕분에 딱부리네는 그래도 자리를 잘 잡고 살아가고 있지만 아수라 아저씨는 늘 술추렴에 노름판으로 벌어 든인 돈을 날리기 일쑤다. 그런 아수라를 보고 엄마는 마누라처럼 잔소리를 하고 어른들이 소란스러우면 딱부리와 땜통은 그들만의 세계인 본부나 빼빼엄마의 집이나 그외 교회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그들의 아지트인 본부에도 계급이 정해져 있지만 남보다 손발이 긴 딱부리는 본부의 대장인 두더지와 친구로 지내며 자신의 위치와 영역을 확고히 한 덕분에 편히 지내기도 하고 그곳을 가끔 피난처처럼 사용을 한다. 쓰레기매립지만 벗어나 언덕을 넘으면 곧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섬의 원래 모습인 땅콩밭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던 사람들의 모습및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숲도 있고 바다도 있고 땅콩밭도 있는 아름다운 이 섬이 왜 도시인들이 쓰다가 혹은 넘쳐나서 버린 쓰레기매립지가 되어야 했는지,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파란불인 '김씨네가족' 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빼빼엄마에게 혹은 땜통에게 보여진다. 김씨네가족 혼들은 꽃섬이었던 과거와 쓰레기섬이 된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하루종일 도시민들이 버린 쓰레기에서 '금' 을 찾듯 쓰레기를 캐어 돈이 될만한 것을 찾는 그들에겐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지독한 냄새. 시내에 나가기 위하여는 빡빡 문질러 목욕도 해야 하고 쓰레기 냄새가 나지 않는 옷으로 갈아 입어야만 보통의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대로 나가면 '난 쓰레기섬에 살아요' 라는 표식처럼 모두가 코를 쥐어 싸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대량생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서는 쓰레기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버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삶이고 인생' 인 사람들은 받아 들이고 긍정적으로 대한다. 명절 전후엔 그들도 쓰레기에서 명절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엔 위험도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다. 두더지의 형이 두 다리를 잃었듯이 땜통의 아버지인 아수라가 자신들 또한 조금더 편하게 돈을 벌어보기 위하여 협상을 하려고 갔다가 노름판에서 살인미수죄를 저지르듯 그곳 또한 삶이 연장되는 곳이고 어느 세상이나 똑같이 사람사는 동네인 것이다. 그곳에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던 사이 위험은 점점 크게 번져 가고 있었다. 바로 쓰레기에서.

쓰레기들이 썩으면서 내는 독한 가스는 점점 위험수위를 넘고 있었던 것,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꽃섬을 쓰레기섬으로 만든 것과 같이. 한편 김씨네 가족들에게 메밀묵과 막걸리로 잘 대접하여 좀더 평화롭게 살고자 했던 할아버지와 빼빼엄마 덕분에 땜통은 그들의 은혜를 받아 돈과 금부치를 찾아내게 되고 그로 인하여 도시구경을 하게 된다. 쓰레기 동네에서는 예전에 살던 곳이 '그리운 곳' 이었는데 인간은 환경적응이 뛰어난 것일까 벌써 쓰레기매립장에 적응이 되었는지 도시와 예전 그곳이 이젠 평범하게 받아 들여진다. 이젠 이곳이 그의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쓰레기매립지의 독가스로 인해 커다란 불이 나고 땜통 동생을 그 불로 인해 잃게 되면서 쓰레기매립지도 변하게 되고 딱부리네의 삶 또한 변하게 된다.불은 모든 것을 태운것 같지만 아니다. 그곳엔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고 바람이 불고 그곳에 적응하여 살 수 있는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움트고 있다. 그곳에 희망이 자라게 된 것이다. 땜통 동생의 죽음은 서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이 희망적인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면서 끝이 나 다행이다. 노작가의 노련함에 쓰레기섬은 다시 꽃섬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꽃과 철새들의 고향과 같았던 아름다운 섬이 '쓰레기' 의 종착지가 되는 아니러니, 그렇다고 인간이 떠날까 떠난 사람도 있겠지만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쏟아져 그곳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인간사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늘 질펀하게 이어지는 술판과 노름판 그리고 돈벌이 지역에 대한 애착과 없지만 서로 돕고 어우러지며 한데 뭉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원혼들인 김씨네 대가족들,어찌보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동화같기도 하고 울면서 웃고 있는 그런 얼굴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꽃섬을 쓰레기섬을 만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원죄에 댓가처럼 일어나게 된 큰 화재사고, 잃은 것도 있지만 그 화재로 인하여 섬은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 그곳이 지금은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아픈 앙금을 가지고 있던 과거가 있다는 것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원혼들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풀어줘야 한다. 그에 대한 진혼곡이다. 감정을 넣지 않기 위함일까 대화가 그냥 평이하게 함께 쓰여 편하게 읽어나가게 한다. 어쩌면 평범해서 더 서럽고 아프다. 빼빼엄마가 읊어대는 말들처럼. 도시로 나가기 위하여 목욕탕에서 빡빡 문질러 닦고나서야 비로소 별명이 아닌 이름을 얻는 영길과 정호,작가의 철저한 계산이리라. 딱부리 땜통 얼마나 구수한 별명들인가.

현실이 아닌 '슈퍼마리오'  게임속과 같은 본드 흡입 후 꾼 꿈에 나타난 김서방네 할아버지, ' 우리 동네는 언제나 너희 곁에 함께 있는 곳이다 너희들이 있어서 우리가 있게 되고 너희가 없어지면 우리도 없어지는 거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오리 한 마리, 산과 강에 이르기까지 함께 살고 너와 똑같단다.여기서는 모든 물건이 장애물이고 싸워서 없애야 할 괴물에 둘러쌓인 너 혼자뿐이로구나.' 라는 말처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다른 세상일 수 없다. 모두가 사람 사는 곳이고 소중한 것들이다. '옛날 동네...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우리가 꿈꾼 거 아냐?' 꿈이 아닌 현실이었고 지금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존재했던 '낯익은 세상' 은 이제 '잊혀진 세상' 이 되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세상' 이었지만 뒤돌아보면 '낯 선 세상' 이 된 곳 꽃섬, 작가는 '기억해라' 그리고 '소중히 지켜라' 하고 말하듯 한다. 지난 과거의 아픔도 현재의 모든 것도 다 소중한 것이고 역사이다. 한바탕 작가의 진혼곡이 끝나고 나니 내 마음 속에도 풀 한포기 새롭게 싹이 트는 듯 하다. 노란 달맞이꽃 애처롭게 피어나는 듯 하다.



y******2 2011.07.07.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