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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참 착하다. 그래픽 디자인 쪽에 종사하는 편집자에게 김신 님은 꽤나 유명하다. 대한민국 디자인의 기록이라 평가받는(나 또한 빼놓지 않고 구독하고, 찾아 읽는) 월간 <디자인>을 무려 16년 넘게 만들어온 90년대 중반 이후 편집자로선 단연 첫손에 꼽힐 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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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디자인 김신 디자인 잡문집 이 책의 제목이다. 잡문? 너무 겸손하게 제목을 붙였다고 할 밖에 ! 디자인에 관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 .. 기술이 평준화되다보니 디자인에 더욱 치중하는게 당연하지에 한방 먹고,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괜히 편치 않던 생각도 한방에 날라가고, 해산을 거부한 망치 이야기는 처음부터 줄줄줄 외고 싶어 따라 옮겨 적어 봤다. 결코 잡문이 아닌 디자인에 관한 생각글 들이다. 그리고 편집 전문가답게 글 사이에 그림이 들어가면 참 뭔가 편치 않은데 그림들이 너무 멋지게 자리잡았다. 일본을 보며 우리 도시에 대해 느꼈던 불만을 해결해 줄 정리의 달인이 나타나기만을 고대하며 살기로 했다. 폴랜드가 리뉴얼한 IBM 글자체의 아주 작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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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게 가볍게 써진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 시작하게 된 고민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참 잘 만들어진 책이구나. 내용도 그 만듦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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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오늘 날 이런 부류의 사람은 많지만, 허세와 진심 사이의 한끗 차이가 두려워 쉽게 나는 디자인에 조예가 깊습니다 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회 전반에, 일상 구석구석에 보편정서를 겨냥하고자 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의도가 나날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분명히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디자인 잡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글을 모아 낸 이 책의 저자 김신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누구보다 자신있게 디자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도 허세 같지 않은 사람이다. 17년 가까이 독보적인 국내의 디자인 잡지인 월간 <디자인>에 몸담았으니 말이다.
저자 김신은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거침없는 비평을 쏟아낸다.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디자인의 위상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짙어, 디자인의 살 길을 진심으로 고심하는 게 느껴진다. 박봉에 이름을 내걸지 못해도 예술가 못지 않게 소신껏 디자인 작업을 하는 현대의 대한민국 디자이너들을 응원하는 그녀의 글에는, 자연스레 광고주의 심술에 대한 힐난도 녹아들어 있다. 광고주의 요청을 받아 이런저런 피드백으로 애초의 꿈 같은 기획은 그저 꿈으로 사라지는 일. 그녀가 개탄하는 일은, 모든 '크리에이티브'적인 작업을 요하는 직군에서 을 또는 병, 그 이하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일상이다.
저자의 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인데, 둘이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글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시안을 요구할 때 광고주가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것은 두 세 가지의 얼터안을 포함한 시안 세트라는 점을 지적한다. 예술가의 작업은 단 하나의 예술품이 될 테지만, 디자이너에게 이건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디자이너는 확신을 갖는 어떤 스타일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는 서로 다른 안을 뽑아내야 한다. 그 결과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광고주에게 난도질 된 어떤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내 주변의 디자이너들은 상당수가 자신을 예술가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 오래 전의 예술가들 역시 광고주라 할 만한 주문자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맞서 설득하거나 해야 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경계는 그어내기 어려운 것이다.
저자가 지닌 생각의 큰 틀에 크게 반감이 드는 부분은 없었다. 디자인에 대한 애정과 열정, 앞으로의 대한민국 사회에 디자인이 지평을 넓혀갔으면 하는 마인드 모두 전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다만 강한 어조와 논리의 비약이 종종 불편하게 느껴졌다. 몇 해 전의 글이라, 그녀가 글을 쓰던 시기와 지금의 디자인에 대한 분위기의 차이는 그 사이에 부쩍 벌어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만이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녀의 투박한 생각에 의아함을 가질 때마다, 대신 나는 이렇게 다른 의견에 대해 벽을 쌓고 있진 않은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꽤 가질 수 있긴 했다. 요즈음 타인의 앓는 소리가 유독 괴롭고, 누군가를 향한 타인의 비난이 전혀 무관한 것이어도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내가 또 꽤나 지쳐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면 내 입장만 보게 되고, 내 생각만 더 고집하게 되곤 하는데, 운이 좋게도 전혀 의외의 책을 읽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고마워, 디자인. 이 책의 제목처럼 정말 고마워질 줄이야. 글과 소리, 이미지와 영상이라는 정보는 이제 모두 디지털신호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손으로 쥘 수 없는 세계다. 그것에 대한 소유욕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상품적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걸 그럴듯한 물질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보에는 가치를 느끼지 못해도, 책꽂이에 꽂으면 폼 나는 양장 제본의 두툼한 책에 강한 소유욕을 느끼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단, 소유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물질적인 깊이감을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전문가가 바로 디자이너다. (45쪽)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과거 서구 디자이너들이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발전시켜온 것을 단 30년 만에 비슷한 수준에 올려놓았다. 물론 그런 만큼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지금의 속도라면 정상에 오를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124쪽)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는 보수를 많이 받아야 한다. 그 디자이너가 비록 정치도 모르고 인문학 소양도 없고 수줍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또 누군가는 누끼도 따야 하고 망치질도 해야 한다. 단순노동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에도 창의성이 요구된다. 그런 단순 '노가다'에서도 날카로운 감각은 빛을 발휘한다. 그에 따라 결과물도 천지 차이만큼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거창한 기획과 아이디어도 이 마지막 단순 노가다의 차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말만 거창한 정치인, 금방 대박을 터뜨려주겠다고 허풍을 떠는 기업인보다 작은 일의 달인이 훨씬 아름답다. 그런 사람들의 수를 늘리려면 그들이 매일 하는 작은 일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돈으로 말이다. (151쪽)
우리는 어떤 디자인이 연속성을 가지고 힘을 축적해 브랜드가 되기도 전에 허물어버린다. 자기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인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자산이 조금 축절될 만하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16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