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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저명한 가족문제 전문가 스티브 비덜프(Steve Biddulph) 박사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두 아이들이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다. 당시 서른 즈음이었던 나는, 아내가 들고온 제목이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 이었던 예쁜 표지의 책 두권에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았다. 첫째는 아직 젖먹이인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건, 그저 제때 우유병을 물려주고, 자주 안아주며, 눈높이에서 놀아주는게 다라는 근거없는 어설픈 신념으로 그런 류의 육아서적에 대한 '무용론(無用論)'을 독자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급변하는 주변환경에 채 적응하지 못해, 그저 나는 돈을 벌어다주는데 필요할 뿐,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하는 황당한 질투심 비슷한 것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는 어쩌면 세명의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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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수염이 나고 변성기를 거치면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나타나는 맹렬한 성욕을 겪어낸 것만으로는 남자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군대를 갔다 오면 남자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아직도 남자의 자격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남자의 자격’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도 있다. 예전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종족이라고 느껴 열등한 종족인 여자를 깔보며 엘리트 의식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남자란 동물이 여자보다 우월하지 않음을 깨닫고 교육받게 되면서, 심지어는 여자가 더 뛰어난 동물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남자들의 삶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진정한 ‘남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남자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로 사실과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여자들보다 6년 정도 짧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연령대에서 남자들의 사망률은 여자들에 비해 훨씬 높다. · 남자들은 보통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다. (두 가지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결혼 가정의 40퍼센트 이상이 이혼하는데, 5건당 4건은 여자가 이혼을 제기한 것이다.) · 폭력 행위의 90퍼센트 이상이 남자들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희생자의 70퍼센트가 남자이다. · 학교 내에서 문제를 보이는 아이들의 90퍼센트 가량이 남자아이들이며, 학습 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의 85퍼센트가 남자아이들이다. · (15살에서 25살 사이)젊은 남자들의 사망률은 그 나이대의 여자들보다 세 배나 높다. 그리고 이 사건의 원인들은 하나같이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중 가장 큰 사고 원인은 자동차 사고이다. · 노숙자의 80퍼센트가 남자이다. · 감옥 수감자의 90퍼센트가 남자이다. · 15살에서 44살 사이 남자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자실이다. 위 사실을 보면 지구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만으로 열등감을 느낀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오랜 역사 동안 남자들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왔는데 지금의 현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위와 같은 이유의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남자에게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남자는 남자를 교육시키는 교육자였다. 교육자는 남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에 남자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으며 교육자로서의 자리를 여자에게 넘겨줘야 했다. 교육이란 공동체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이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이다. 맹자는 군자삼락 중의 하나를 천하영재를 만나 교육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 기쁨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남성성을 ‘가장’하는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데 결국 이 상태를 벗어나야 남자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진정한 남성성은 우리 시대에만 사라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에서부터 혹은 할아버지 세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버지를 멘토로 삼지 못하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삶이 아들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기쁨이 아니고 아버지는 아들의 존경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럼 그 모든 것은 아버지가 잘못된 삶을 살았고 아들은 나쁘기 때문일까?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그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끊어진 관계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장거리 전화를 건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아버지,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저예요.” “어! 잘 있었냐? 엄마 바꿔 주마….” “아니오, 엄마 바꾸지 마세요. 아버지하고 얘기하고 싶어서 전화한 거거든요.”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왜? 돈 떨어졌냐?” “아니요, 돈 때문이 아니에요.” 그 말 뒤에 아들은 미리 연습을 했는데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제가요, 아버지 생각을 하다 보니 기억나는 일들이 많이 있어서요. 아버지가 제게 해 주셨던 일들 말이에요. 절 대학에 보내시고 가족들 먹여 살리시느라고 그렇게 싫어하셨던 일인데 그만두지 못하셨던 게 생각나네요. 또 저희를 먹이고 재우고 입혀 주셨고, 제가 뭘 공부할지 그리고 어떤 직업을 가질지 저한테 선택하라고 맡겨 주셨잖아요. 지금 제가 잘 나가고 있는 건 다 아버지가 출발을 잘하게 해 주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제가 한번도 이런 말씀 드린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감사하단 말 말이에요….” 아버지 쪽에서는 계속해서 말이 없다. 그러자 아들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아버지. 그리고 사랑해요.” 꽤 오랜 침묵이 흐른 뒤 아버지는 마침내 이렇게 대답한다. “너 술 취했냐?” 이 이야기는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이 시대의 남자라면 웃으면서도 눈가에 눈물이 맺히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남자와의 관계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다. 거꾸로는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것이 없으므로 남자들과의 관계란 것이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항상 겉도는, 몇 년이 지나도 상대 친구의 속마음 따위는 모르는 그런 얕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그럼 여자와의 관계는 어떨까? 여자 친구 혹은 자신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전혀 원만하지 않다. 그것은 진정한 남성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할 때 필요한 조건에는 믿어지지 않게도 여자의 입술라인이나 풍만한 가슴, 혹은 끝내주는 엉덩이 라인 같은 최소한 30년을 함께 하며 버텨내지 못할 것들이 포함된다. 상대를 인식하는 방식이 이런 식의 성인이 못 된 어린아이나 소년 같다면 그들의 인생이 비극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결혼해서 배우자와 수십 년을 함께 사는 것은 독립적인 인간만이 가능하다. 서로 의존하고 3살 먹은 아이와 같은 분리불안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남자들은 겉으로는 다 큰 어른이지만 속으로는 어린 아이나 소년에 불과한 경우도 상당하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치거나 성인식 따위는 겪어본 적이 없다. 남자들의 성생활이란 것도 사랑하는 상대와 정신적 교감을 거쳐 영적인 합일로 나아가는 형태로 가지 않는다. 세상은 온통 섹스로 도배되어 있지만 부부 간의 성생활이 양쪽 다 만족하고 있는 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섹스란 몸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도 중요함을 남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아들이 되고, 진정한 남편이 되며,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남자의 가이드북으로써 손색이 없는 이유는 이런 모든 일에 대해 실용적이고도 마음을 울리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나 관상학적으로 뭔가 부족하면 그 부족한 점을 상대편은 파고든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 주위에는 정상적이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불행한 사람들은 더 불행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스스로 독립적이 되고 행복해지는 방법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은 비단 남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여자들이 본다면 보다 건강한 남성상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은 남자 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필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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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개의 정자 중에 하나만이 난자를 만나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태아나기는 어려웠는데 남자 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확률 50%! 태아나 보니 남자였다. 그러나 진짜 남자 되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방황하는 남성을 위한 남자 되기 지침서가 등장했으니 “남자, 다시 찾은 질실” 바로 이 책이다. 정확히 하자면 나보다 내 아들에게 더욱 좋은 남자가 되게 하는 지침서이다. 이 책에 따르면 아버지가 진짜 남자가 되어야 아들이 진짜 남자가 될 수 있다. 내 나이 37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나에게도 이 책이 필요하다. 400페이지 정도의 적지 않은 분량으로 총 12장에 걸쳐 현대 남성의 남자 되기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모든 내용이 매우 바람직하고 인간적인지라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로서 절대적으로 수용하고 적용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30여년을 이러한 남성의 남자 되기에 관해 고민한 저자의 결론은 누가 보아도 당장 실행하여야할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짜 남자 되기는 결국 제대로 된 사람 되기이기에 조금만 다르게 보면 이 책은 진짜 여자 되기 지침서가 될 수도 있겠다. 여러 저서나 강연 내용의 적절한 예들을 소개하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출판되고 우리나라에 까지 소개된 것을 보며, 아주 어려운 시절을 벗어났지만 극심한 빈부격차와 인정사정없는 경쟁구조 속에서 일과 가족, 자본과 교육, 미래와 현재 등의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관해 이렇듯 진지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위안을 얻었다. 우리사회도 조금씩 더 살기 좋은 더 인간적인 사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아들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찐짜 남자로 살아가기가 더 수월해 지기를 바래본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서인지 2장과 3장, 7장의 내용들을 깊게 생각하고 공감하였다. 우리는 오늘 결심하여야 한다. “환관이 될 것인가? 남자가 될 것인가?” 아버지와 화해하고 그에 관해 제대로 된 견해를 갖는 일은 ~중요하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존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도 존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65.p.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쩌면 자기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자기 부정을 피하고, 자기 아버지가 왜 그런 선택들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70.p. 성인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기꺼이 주기 위해서야 한다. 94.p.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그 슬픔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통과하는 것이다. 315.p.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와 목적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의미와 목적만 있다면 남자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초월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34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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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스티브 비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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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티브 비덜프(Steve Biddulph)는 교육자이면서 심리학자 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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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당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중2무렵으로 기억한다. 까까머리 남자 중학생들, 곧 어린 마초들.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하게 분비돼 이를 어떻게 제어해야할지 알 수 없는 나이. 아해들은 콘테스트(?)를 가졌다. 그게 뭣이냐. 욕이었다. 육두문자. 말하자면, 욕 콘테스트. 어떻게든,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욕을 만들어오기. 그리고 그것을 퍼트리기. 경쟁은 치열했다. 그야말로, 서바이벌이었다. 누가 욕을 잘 만들어 와서 퍼트리느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아이들의 서열을 조장했고, 자신이 만든 욕을 퍼트린 자는 영웅(?)으로 숭앙됐다. 그것은 남자다움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소년에서 남자가 되고 싶은, ‘테스토스테론 끝판왕’들은 어이없는 치기로 자신들의 남자다움을 과시했던 거다. 나도 꽤나 많은 욕을 생산(?)해냈다. 당최 입으로 꺼내기 힘든 그런 육두문자들. 그 나이의 중학생 남자 아해들이 으레 그러려니 한다지만, 글쎄, 바닷가 소년들의 남자 됨은 거칠고 투박한, 그리고 ‘쪽팔린’ 면이 있었다. ‘Boys, Be Ambitious’를 새길 나이에 나와 그들의 야망은 왜 ‘욕’을 향했을까. 단순히 마초 기질이 강해서였을까? 커서는 그것이 우습기도 한 치기였지만, 왜 그랬을까, 생각해도 쉬이 답이 나오진 않았다. 이 책을 읽고 그 답을 찾았다. 그래, 말하자면 ‘다시 찾은 진실’이었다. 《남자, 다시 찾은 진실(The New Manhood)》. 호주에서 가족 및 부모 역할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스티브 비덜프의 ‘남자 탐험’이 그 욕의 봉인된 비밀을 풀었다. ‘남자로서의 인간성’을 잃은 남자들
비덜프는 이렇게 진단을 내린다. “오랜 역사의 악몽 속에서 우리는 남자로서의 인간성을 잃어버렸다.”(p.21) 남자로서의 인간성. 결국 진짜 남자를 상실했다는 얘긴데, “이거 남자한테 참 좋은데, 직접 말하기는 그렇고…”와 같은 게 아니다. 오랜 시간, 인류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남자가 갖춰야 할 덕목. 그것을 잃은 시대. 비덜프에 의하면, 남자의 삶에는, ‘그러려니 살았던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는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창조적이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삶을 꿈꿨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그것을 다시 붙잡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새로운 욕을 만드는 창조가 아니라, 욕 아닌 다른 것에 몸과 마음을 쏟는 무엇. 미처 남자가 되지 못한 소년들에겐 과연 무엇이 없어서였을까. 비덜프가 제시한 것은 세 가지 비타민이다. 애정, 가르침, 모범. 인간이 성장하는데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 그러니까, 그때의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했다.(애정) 또 우리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없었다.(가르침) 뭣보다, 이것. 훌륭한 남자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보고 배우지 못했다.(모범) 그런 3대 비타민의 결핍. 그 결핍을 메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아해들이 찾은 통로가 ‘욕 콘테스트’가 아니었을까. 선생이 있었고, 학교가 있었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도교육의 틀이 그렇듯, 우리는 산업역군으로서 존재하게끔 키워졌다. 전인교육? 남자교육? 그건 교과서에도 휘발된 박제된 용어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도 있지 않느냐, 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산업화가 절정에 다다른 시절, 거칠게 말해서, 아버지는 없었다. 선생도, 아버지도 없는 시절.(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으나, 남자의 각성이 조금씩이라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 어른’이었다. 소년에서 남자로. 비덜프는 그 과정에서 ‘봐야’ 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자신보다 나이 든 남자로부터, 진짜 남자의 삶을 ‘목격’하고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 타당하다. 그러니까, 존경할 수 있는 누군가,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누군가. 직업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무엇이었다. “한창 성장하는 나이에는 그러한 기질을 보여 주며 바람직하고 존경스러워 보이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필요하다.”(p.37)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에겐 ‘남자 사람’이 없었다. 극히 일부가 아니었다손, 대부분의 선생은 산업화 역군이 되기 위한 소양(?)을 가르치거나 몽둥이 들고 패대기를 칠뿐이었다. 산업화의 역군인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주는 것이 최대 임무라는 국가의 세뇌에 철저히 봉직했다. 이른바 ‘남자 상실의 시대’였다. 소년, 남자 아닌 기계가 되다
남자의 자격. TV 예능프로그램 제목이겠거니 하지만, 과거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선 과정과 절차가 있었단다. 그냥 훌쩍, 나이 먹었다고 등 떠밀려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성인 남자들이 오랜 시간 집중적으로 소년들을 훈련시켰다. 그 소년이 성인이 되면, 다시 자라난 소년을 위해 훈련시키는 선순환. 비덜프는 그것을 ‘남성성의 강물’이라고 했다. 그 강물이 흐른 것은 인류 역사의 95%를 차지한단다. 말하자면, 남자(가 되기 위한) 의식이 있었다. 애정과 가르침, 모범이 결합된 의식. 고대인들은 자녀들이 성인으로 향하는 길을 훨씬 더 계획적으로 다뤘다는 거다. “인간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공동체 전체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각 세대의 소년들을 유능한 성인 남자로(소녀들을 유능한 성인 여자로) 탈바꿈시키는 일이었다. 고대인들은 그것을 우연에만 맡겨 두지 않았다.”(p.170) 비덜프는, 기존의 생각을 엎는 인식의 틀을 알려줬다. 성인식이다. 나는 그 전에 성인식을 ‘홀로서기’의 첫걸음으로만 봤다. 비덜프는 다른 프리즘을 들이댔다. 성인식의 목적은 성인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동체 네트워크가 나를 지지하는 한편, 고통이 따르는 삶이 공동체를 건설하는 중요한 단계이자 의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성인식의 의미가 풍부해졌다. 그것은 또한 소년에서 남자가 될 수 있는 과정이리라. 그러나 지금, 성인식은 형식적이 됐고, 강물은 멈췄다. 과정은 생략되거나, 신경 쓰지 않는 사회가 됐다. 그것 때문일까. 많은 소년들은 마초가 되거나 초식남이 된다. 남자가 되는 과정을,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성인의 세계로 들어선 까닭이다. 문제가 자연 생긴다. 안면이 약간 있는 한 만화작가는 이런 제목의 책을 낸 바 있다. ≪남자는 맞아야 한다≫. 책은, 내가 남자임에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졸지에 맞아도 싼, 놈으로 전락하는 한이 있어도 그 말은 맞다. 지금의 남자는 그런 상황이다. 비덜프에 의하면, 남자들은 성장이 더딘 인간들인데, 내 생각엔 더디게라도 하면 다행이다. 더디거나 성장이 중간에 멈추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가만 둘러만 봐도 그건 뻔하다. 지금, 남자들은 위기다. 자살률이나 사망률 등이 여자보다 훨씬 높다는 통계 등이 이미 각인된 현실이라면, 가정에서도 나는 위기를 찾는다. 비혼의 남자인 나는, 결혼한 남자 친구들 혹은 선후배들을 만나면 이런 얘길, 종종 듣는다. “나는 돈 벌어주는 기계야.” 자조 섞인 그 이야기가 나는 슬프고 아프다. 그들도 분명 그럴 테지만, 그들이 더욱 안쓰러운 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의지조차 박탈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왜 그들은 소년에서 남자가 되지 못하고 기계가 됐을까. 인류 역사 중 오랜 시간, 그러니까 95%의 시간 동안, 남자도 본성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끔 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남성 해방’을 외칠 때 그 단절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은, 대개 인류의 ‘쾌거’처럼 표현되지만,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같은 품질의 제품을 빠른 시간 내에 대량생산하는 산업화 시대로의 돌입은, 남자들을 일터로 내몰았고, 그럼으로써 소년들은 남자 어른을 잃었다. 남자가 되려면 공부를 해야 했으나, 그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주어지지 못했다. 그러니, 남자가 되는 상상력마저 상실했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산업화를 싫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산업체가 공동체의상실, 자연과 상상력의 죽음을 불러온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소년이었던 나의 ‘욕 서바이벌’은 결국, 훌륭한 성인 남자를 알고 지내지 못한 공동체의 책임도 있다. 성인으로 입문하는 여행을 필요로 함에도 그것을 제공하지 못한 죄도. 소년은 어떤 남자가 되길 원하는지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소년은 물론 공동체가 함께 이고 갈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일에만 몰두하느라, 아들(자식)을 돌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면서 가정에서 미미한 역할을 할 뿐인 아버지상. 대중매체 등을 통해서도 흔하게 접한 풍경이 아니던가. 비덜프가 사용하고 있던 ‘남성 해방’이 절실한 시점이다. 당연히, ‘해방’이라는 같은 단어를 썼대도 여성의 것과는 다르다. 여성들의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억압과 구속을 극복하기 위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면, 남자는 고립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외로움, 병적인 경쟁심, 평생 동안 이어지는 감정적인 수줍음과 같은 것에서의 해방. “여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만큼 이젠 남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p.35) 이 말을 절실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외로움, 병적인 경쟁심이나 감정적인 수줍음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고 있고, 조금씩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스스로 행한 임상실험의 결과다. 병적인 경쟁심으로 감정적인 수줍음 혹은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욕 콘테스트’를 행했던 소년 마초는, 다행히 ‘남성 우월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행이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남자 탐구!
이제 필요한 것은 진짜 남자의 탐구다. 이 진심 섞인 우스개를 보자. “한국 성인 남자는 여가의 절반을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술을 깨우는 데 사용한다.” 나도 한때 그랬다. 남자가 모이면 으레 술 한 잔 걸치고 의리를 쌓아야 한다고 착각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폭탄주 돌려서 취하고 망가지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고, 정분이 쌓인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퇴행적 온정주의다. 소아병적인 알코올 연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김정운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그랬다. 한국 남자들의 그런 행태는 문화적 다양성이 부재한 탓이라고. 문제가 많은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 계몽이나 가르침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자신의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고.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 이것저것 접근해보고, 정서적 공유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그 전부터 노력은 해오고 있었는데, 김 교수의 말을 통해 좀 더 나를 던졌다. 당시 내가 하고 싶어 시작했으나, 두려움이 도사리던 커피 만드는 일에 용기를 얻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나는 그 일을 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레퍼토리를 늘려가고 있다. 마초 같은 시절이 남자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사회가 만들어놓은 ‘판도라의 상자’다. 아무렴, 원래의 남자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비덜프는, 이런 말로 용기를 불어넣는다. 남자들은 원래 온전하며, 행복하고,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통합된 존재다(We are made to be unified and whole, happy and full of life). 여성들이 지난 40여 년간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통해, 여성에 대한 압제와 규제를 뚫고 해방의 기운을 살포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남성들이다. 세상은 분명히 남자들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새롭겠지만, 그것은 원래의 남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진짜 남자.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고 감정적인 폐업을 강요받았던 남자의 해방은 그런 압제에서 빠져나와야 가능하지 않을까. 윤전하고, 행복하고, 생명으로 가득 찬, 통합형 인간. 그건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자들도 분명히 가졌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진짜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좋은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그런 남자가 되기 위해 평생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비덜프의 말을 새겨 넣는다. “척추와 심장을 가진 사람!” 척추의 뜻은 이렇다. ‘확고하며, 참을성이 있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며, 때로 아주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맨 나중에 놓는 그런 능력.’ 심장은,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속에서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슬픔, 염려, 자비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능력. 신체적으로만 남자가 아닌, 남자 비슷한 무엇이 아닌, 진짜 남자, 좋은 남자. 이 책을 통해 편견을 깬 것이 있다면, 남자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친구>나 기타 남자들의 우정이나 의리랍시고 보여준 것들은, 그것을 비꼬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많은 경우 허접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들끼리의 우정에 대해 경시한 면이 있었다. 비덜프는 남자들 간의 잘못된 우정을 꼬집는 한편으로, 그 우정을 마냥 폄하하진 않는다. 남자 친구 관계에 대한 긍정. “남자 친구를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다. 떠들썩하고, 열정이 넘치고, 애정과 더불어 진한 농담이 오가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농담 가운데 진심이 숨어 있는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남자들 간의 우정이다.”(p.315) 그러니, 그는 그 우정을 위해 노력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많은 남자들은 아직도 우정을 쌓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훈련시키는 기술이나 가르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p.294) 아, 그렇구나. 우정도 사랑과 마찬가지지. 배워야하는 것이지. 남자 탐구가 필요한 이유다. 진짜 남자를 찾고, 그런 남자를 통해 나도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그런 남자가 돼서 소년들에게 그것을 전수하는 일.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온전한 남자가 된다는 것
“온전한 남자가 된다는 것은 좀 더 큰 삶을 사는 일, 좀 더 장기간의 게임을 하는 일, 미래를 바라보고 당신이 죽는 날 당신을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들을 포함한다. 부모 노릇을 하는 것만이 이런 기회, 이런 위험, 이런 도전을 가능하게 해 준다. 아버지 노릇을 한다는 것은 정말 남자다운 일이다.”(p.265) 글쎄, 책이 준 또 하나의 사유 지점이라면 이런 거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 그것이 물론 꼭 생물학적 아버지를 뜻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 통념상 노총각이지만, 나는 그것이 부끄럽거나 하자처럼 느껴진 적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버지 노릇’이라는 말에 살짝 끌렸다. 내가 온전한 남자가 되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소년으로, 소년을 남자로 이끄는 것도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찾으려면 의미 있는 일이 넘쳐나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했는데,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Shall We Find & Act...?
커피를 통해, 나는 세계의 불공정함을 엿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어떻게 커피하우스가 자리매김하고, 계층과 계급과 무관하게 좋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 정의(Food Justice)’에 접근할 수 있을지 찾고 싶다. 그것이 내가 믿는 일이다. “당신이 믿는 일을 찾아라. 그것이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거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 바람과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 덜 쓰고 사는 일, 지구의 예민한 생명 유지 능력을 보호하는 그런 일이라면 당신은 큰 삶에 참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p.353) 이왕이면 아버지도, 좋은 아버지면 좋겠다. 좋은 아버지는 가족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가정을 만드는 사람이고 나쁜 아버지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좋은 아버지 노릇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리라. 좋은 일들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바통을 제대로 물려주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나머지는 숲과 산, 하늘, 서핑, 춤, 노래, 따뜻한 피부, 흥분된 신경세포들, 북소리, 이야기, 신화, 마법의 몫”(p.401)이니까. 새로운 종류의 남자가 되는 일. 그건 진실을 다시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왠지 생각만으로도 뿌듯한 일이다. 감사할 일이다. 좋은 책을 만났다. 나는 다시, 진짜 남자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노력과 실천이 그만큼 따른다면. 이 책은 여자들이 읽어도 좋겠다. 남자친구, 남편, 아들, 남자 동료 등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건 여자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TV예능프로 <남자의 자격>보다 훨씬 좋다. 그걸 볼 시간에 이 책을 읽어라. (산수유) 광고카피와 달리, 남자한테 참 좋은데, 직접 말 못할 것 없다. 이 책,《남자, 다시 찾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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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다시 찾은 진실
이 책은 개인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 위한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항해에서 길을 찾아 나가려면 우선 물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당신의 삶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고 느낀담녀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산물이다. 그리고 지난 세기는 변화의 폭풍우가 사정없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정상적인 시대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 시대를 산 사람으로 아직도 생존해 있는 이들은 단 한번도 정상적인 때를 살아 본적이 없었다. 그들 모두 정상적인 시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질수하는 역사의 흐름을 좇아가느라 헐떡거리며 살아왔다. 최근 100여년 동안 세상에는 전쟁, 경제위기, 또 다른 전쟁, 이주와 이민 등의 변화가 정신없이 몰아닥쳤다. 피해를 입지 않은 가족이나 개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하여 이 힘든 시기를 훨씬 더 잘 극복해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여성상을 믿으며 서로 서로를 굳게 도와 그 난관을 헤쳐나갔다. 반면에 그 엄청난 일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남자들에게로 쏟아졌다. 모든 변화이 폭격속에 우리는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채아물기도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공격에 맞서야 했다. 깊은 상처를 입은 우리가 자녀들을 길러내고 아내를 사랑하고 사춘기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칠 능력이 없다는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건강한 남성성을 형성하고 전수해 왔던 옛 가르침과이 연계성을 잃어버렸다.
오랜 역사의 악몽속에서 우리는 남자로서의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남자는 본성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끔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본성은 다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심지어는 우리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삶의 목적이나 행복과 다시 연결해 준다면 그 목표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남자들이 원래 온전하며 행복하고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통합된 존재라는 전제 아래 쓴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영혼에 좋은 일이라면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럼 이제 그 일을 찾아 한번 시작해 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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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댄서처럼 단단함과 부드러움, 힘든 것과 쉬운 것, 고통과 환희 등 얼핏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서로서로를 몰아내지 않는다. 실제로는 서로서로를 허용한다. 그것들은 춤추는 댄서처럼 서로서로 고개를 숙인다. - 스티브 비덜프의《남자, 다시 찾은 진실》중에서 - *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당신과 나,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춤추는 댄서처럼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함께 얼굴 맞대고 서로 고개 숙이며 서로서로를 허용하면 기쁨도 춤이 되고 슬픔도 춤이 됩니다. 당신과 나라면 모든 것이 다 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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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다시 찾은 진실 ( The New Manhood) -스티브 비덜프 저
(성인 남자와 소년들을 위한 책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남편과 아들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여자들을 위한 책) 현대의 아버지들은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이 바쁘다. 먹을 것도 충분하고, 몰고 다닐 차도 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있으니 과거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에서 남자들의 삶은 노예의 삶과 다를바 없다. 질적으로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죽어라 일에만 매달리며 외로운 일벌레로 살아가고 있다. 걸어다니는 지갑으로 가족들에게 돈이나 갖다 주려고 뒷바라지를 하느라 또 결혼 생활을 지탱하느라 평생 숨막히게 뛰어다니고 허둥거리던 삶을 살아간다. 세계 전역에서 남성들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전 우주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남자들의 우울증, 폭력,이혼,알코올 중독, 교통사고 사망률, 파괴적인 행동에 관한 높은 수치가 이런 위기를 말해 주고 있었다.
"상처받고 쓰러진 아들을 만나러 오지 않을 건가요? 그러려고 했었소. 날 반긴다면 물론 그럴 생각이었지. 그런데 그들은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증오하고 있다오. " -전통민요 p53
100명중 90명, 즉 90퍼센트 정도의 남자들이 자기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상황. 멀리 가지 않고 우리집만 보더라도 이상하게 아버지와 아들은 관계가 그다지 매끄럽지 않다. 겉으로 볼때는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두사람 사이에 흐르는 막연한 검은 구름이 느껴지고, 거기에 조금 더하면 비가 오고 폭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성인인 아들에게 존경과 자부심을 받고 싶어하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할 뿐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들이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 말하는 방식까지도 아버지에게서 봤던 모습들이 자기한테도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랄것이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다면 사실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방법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댈 수 있는 원로나 멘토가 필요한 법이다. 과거의 문제들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나갈 수 는 없겠지만 실마리를 제공하고 상처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하는 화해의 시작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