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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섹스, 살인”, 이 세 단어만큼 탐욕으로 똘똘 뭉친 어휘도 없을 것이다. 이 낱말들의 심연에 똬리를 틀고 있는 본성에는 허기진 무언가를 채우려는 욕망이 가득하다. 적절히 통제되거나 금지되지 않으면 사악해지고 마는 것. 그러나 교활한 인간은 우아하고 세련된 감각으로 이것들을 고상한 무엇으로 바꾸어버렸다.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는 오늘의 매스미디어가 뿜어내는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그 내용만으로도 요리와 섹스가 얼마나 넘쳐나는지, 그러나 짐짓 점잖은 채, 혹은 그것들이 내재하고 있는 은폐된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 채 본질을 외면하고 포장하여 추악한 욕망을 감추는 위선에 몰입한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는 이것들이 발산하는 광기에서 권력의 사악한 본질과의 ‘유사성’을 보았던 모양이다. 또한 허영심으로 뭉쳐진 인간들의 그칠 줄 모르며, 제어되지 않는 충동으로서의 욕망, 그 역겨움을 지적인 독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위태로운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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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거의 100년에 걸친, 카글리오스트로, 치앙글리니 (카글리오스트로의 모계쪽), 롬브로소 (동업과 결혼관계로 이어진 4대), 페리 집안의 요리에 관한 것이다. 1892년 이탈리아에서 남유럽을 떠돌다가 외삼촌이 있는 아르헨티나로 이민오게 된 루치아노와 루드비코 카글리오스트로 쌍둥이 형제. 이 둘은 괜찮은 외모와 재빠른 응대로 호텔식당의 서비스를 맡게되고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과거의 레시피를 모은다. 그러던차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파리의 리츠호텔의 식당 제2주방장까지 진출한 천재적인 요리사 마시모 롬브로소를 만나게 된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카글리오스트로와 천재 요리사의 만남으로, 식당'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마르 델 델 플라타란 도시 뿐만 아니라 세계대전으로 남미대륙에 갇힌 온갖 유명인사들의 단골과 찬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페스트로 카글리오스트로 형제는 죽고, 외삼촌 치앙글리니의 집안과 롬브로소 집안이 사돈이 되면서, 마시모- 렌조- 페데리코- 세사르의 대를 이어 식당은 정치, 역사적, 레스토랑의 인적자원 형태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결국 세례에서 '피'와 '미각'이 운명이라는 말처럼..극한의 입맛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완전범죄가 먼저였는지도...) 피붙이가 나오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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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맛보고 싶어도 절대 맛봐서는 안 되는 것이 뭐가 있을까? 마약(魔藥)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바로 사람 고기(人肉), 즉 “식인(食人)”일 것이다. 세계 각지의 풍습이나 문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아직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奧地) 미개한 원주민들에게는 이런 식인풍습이 일부 남아있다고 하고, “사이코 패스(Psychopath) 연쇄살인범이 죽은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먹어치웠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례들을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식인”이 그저 먼 옛날 이야기나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강력한 “금기(禁忌)”이다 보니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상상(想像)의 소재로는 꽤나 매력적인지 “식인”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영화 <한니발(리들리 스콧 감독/2001년작)>에서 주인공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가 사람의 두개골을 열어 뇌를 요리해서 먹는 장면은 본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구토가 치밀어 오를 것 같은 역겹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번에 만난 아르헨티나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식인종의 요리책(원제 Manual Del Canibal / 비채 / 2011년 5월)>도 바로 이런 “식인”을 소재로 한 소설인지라 꽤나 망설이다 읽은 책이다. 역시나 첫 장면부터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이 부분만 무사히(?) 넘긴다면 그렇게 끔찍하지 않은, 오히려 독특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문제의 첫 시작은 이 책의 주인공인 “세사르 롬브르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을 본 생후 7개월이었을 때를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젖을 빨다가 어머니의 왼쪽 젖꼭지를 잇몸으로 억세게 물어 통째로 뜯어 먹는 이 엽기적인 아기 때문에 어머니는 놀라서 심장마미로 숨지게 된다. 며칠을 어머니의 시체와 보낸 이 아이의 운명 -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일들이 그 며칠 사이에 일어난다 - 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이처럼 충격적인 장면을 책 첫머리에 툭 던져 놓아 독자들을 놀라게 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시치미를 뚝 떼고는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레스토랑 “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명 “알마센” 식당에 대한 역사를 늘어 놓는다. 19세기 말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쌍둥이 형제가 1911년 개업한 이 식당은 세워진 지 9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색창연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리고 전설적인 명성을 꾸준히 이어온 유서 깊은 식당이다. 그러나 쌍둥이 중 형이 개업한지 1년 만에 페스트로 죽고 그 동생 또한 충격에 몇 주 만에 따라 죽게 되면서 쌍둥이 형제의 외삼촌 가족이 식당을 물려받게 되지만 수 차례 주인이 바뀌는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 이처럼 지루하기까지 한 알마센 유래가 책 중후반부까지 길게 이어지다가 드디어 “엽기”아기였던 “세사르 롬브르소”가 주방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랑스,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양한 요리비법을 접목시켜 탄생시킨 전설의 레시피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를 해독하여 맛을 재현해낸 세사르 롬브르소는 알마센의 '스페셜 디너'에 비밀의 재료 -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 - 로 만들어진 요리를 선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번을 읽다가 멈췄다. 먼저는 앞에서도 언급한 끔찍한 책 첫 장면인데 읽고는 도저히 더 읽지 못할 것 같아 한동안 책을 덮어두었었다. 망설임 끝에 다시 펼쳐든 책, 더는 끔찍한 장면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에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장면 이후로는 레스토랑 “알마센”의 역사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시점도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오고 가서 집중을 할 수 없었으며 각종 요리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서양 요리에 상상력이 빈곤한 탓인지 머릿 속에 요리 이미지를 그려낼 수 없어 결국 다시 덮어버렸다. 그러다가 도대체 자기 어머니를 먹어버린 첫장의 엽기 꼬마는 언제 등장하는거야 하며 처음에는 끔찍해서 싫었지만 오히려 “세사르 롬브르소”의 등장을 기다리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으로 지루한 대목을 건너 뛰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디어 후반부에 등장한 우리 주인공,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끔찍한 사건으로 시선을 붙들면서 비로소 중간의 지루함은 어느새 말끔히 잊어버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처음 놀라움(Shocking), 중간 지루함, 후반 다시 놀라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소개글에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19세기 초 독립을 했지만 끊임없는 혼란과 내전으로 수많은 폭력과 피로 얼룩진 아르헨티나 근 현대사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책이 주는 이미지 - 주로 끔찍, 잔혹, 엽기로 요약할 수 있는 - 에 너무 경도(驚倒)된 나머지 그러한 작가의 역사적 인식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까지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쉽게 입에 붙지 않는 스페인식 이름과 지명, 머릿 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요리 이미지, 낯설기만 아르헨티나 역사 등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식인”이라는 섬뜩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 머릿 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바로 세사르가 선보인, 인육을 주재료로 한 “스페셜 디너”가 과연 어떤 맛일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금세 무슨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결코 쉽게 가시지 않는 그런 궁금증, 앞으로도 이 책을 보면 한번씩은 떠올리게 될,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 만큼 더 강렬해지는 “그것”의 맛에 대한 궁금증, 결코 맛볼 수 도 맛봐서는 절대 안 되는 “금단(禁斷)”의 맛, 혹 하느님이 금지하신 “선악과(善惡果)”를 결국 따먹었던 “이브(EVE)"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며 책을 책꽂이에 꼽아 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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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두번째 소설인, '식인종의 요리책'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요리와 정치의 관계를,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와 요리와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얼른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영국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라는 영화다. 상영되자마자 컬트의 반열에 올라서버린 그 영화에서도 이 소설 처럼 카니발리즘(食人)과 독재와의 관계를 다루었었다. 아마도 결말이 요리사가 독재자를 정성껏 요리해 파티에 참석한 고관들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 영화처럼 이 소설도 그렇게 카니발리즘과 독재와의 관계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세계1차대전으로 갑작스레 부흥하게된 한 해변 도시의 레스토랑 알마센의 70여년에 걸친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그렇게 허구의 역사와 현실의 역사를 교묘히 교차시켜 70여년에 걸친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겨우 274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에 집약된 기다란 역사적 줄기를, 그것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내력을 동등하게 소상히 다뤄가며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한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요리사들과 그들의 요리책을 마치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그렇게 그야말로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의 행복한 결합이라 할 만하다. 기이하게도 발마세다는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이탈리아와 독일을 끌어들인다. 모두 파시즘이란 전체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이다. 소설의 초반 그러니까 알마센의 근원이 되는 레스토랑을 세웠으며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기도 한 신비의 요리책 '남부해안지역 요리책'을 쓴 저자이기도 한 카글리오스트로 쌍둥이 형제는 어쩐지 로마를 세웠던 로물루스, 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이 그렇게 고향을 떠나 로마라는 나라를 건국했듯이, 카글리오스트로 형제도 고국을 떠나 머나 먼 아르헨티나에서 그들만의 레스토랑을 만든다. 그렇게 레스토랑은 어쩌면 정말 '로마'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에 있으면서도 '로마'인,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외부'로서 존재하는지 모른다. 카글리오스트로 형제에게 신비의 요리법들을 전수했던 마시모 롬브로소 역시도 이탈리아인이었다.(롬브로소란 이름때문에 자꾸만 '생래범죄인설'을 만든 체자레 롬브로소가 떠올랐다. 롬브로소는 현재 프로파일링 기법의 창시자라고도 일컫는데 그렇게 그는 범죄인의 외모를 집중 연구하여 범죄인이 가지고 있는 외모적 특징들을 추려내어 진짜 범죄 수사에 응용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범죄인의 외모를 찬찬히 관찰하는 롬브로소의 모습은 왠지 어떻게 요리할까 하면서 사람 고기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는 세사르 롬브로소의 모습과 많이 닮아보인다. 아무래도 그런 이미지의 연상적 작용을 위해서 롬브로소의 이름을 정말 택했던 것은 아닐런지....) 알마센은 바로 이들 세사람의 힘으로 완성된 것이었는데, 사실 마시모는 늘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꿈꿨지만 1차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은 아르헨티나에 눌러 앉아 레스토랑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1차대전은 알마센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었고 더구나 앞서도 말했듯, 알마센을 부흥시킨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1차대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바다를 넘어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불행이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 법이고, 재앙이란 사회적 계층 같은 건 무시하기 마련이며, 처절한 액운이란 혈통 같은 건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민자들 역시 유럽에서 먼저 건너온 친지들을 찾아내는 데 실패해 거지꼴이 되어버렸고, 그러는 사이 엉겁결에 대서양이라는 바다가 되돌가갈 수 없는 철조망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탓에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 잃은 고아가 되었고, 수많은 남자들이 아내를 잃은 홀아비 신세가 되었으며, 요란한 굉음을 내며 달려든 전쟁이라는 괴물은 마을 곳곳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아르헨티나에도 상당수의 유럽인들이 돌아갈 곳을 잃고 눌러앉게 되었다(p.43) 이렇게 말하자면 알마센은 1차대전으로 고향을 잃은 자들로 만들어진 그들이 아르헨티나에 만든 새로운 영토 혹은 고향이었으며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외부였다. 그렇게 발마세다는 이 알마센이 가진 '아르헨티나의 외부로써의 특성'을 형성하고는 뒤이어 바로 그 외부적 성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바로 그 뒤 초창기 맴버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다시금 이탈리아에서 그들의 새로운 후손들이 알마센으로 오게되는 장면을 통해서다. 그들이 이탈리아를 떠나 알마센으로 오게되었던 것은 바로 무솔리니가 총리에 당선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전체주의화되어가는 이탈리아를 떠나 알마센으로 오게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다 분명하게 발마세다가 알마센이 가진 외부적 특성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하는 것인지 알 수있다. 그것은 '알마센'이 다름아니라 바로 전체주의 자체에 대한 저항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알마센을 만든 카글리오스트로의 형제가 사실은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 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했던 우리의 의심이 사실은 맞는 것임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그 쌍둥이 형제에 의해서 건국된 로마가 초창기에 공화정의 형태를 띄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더 그렇다. 그렇게 로마 초창기 공화정은 전체주의에게 있어 극단의 정치적 형태라 할 만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발마세다는 아르헨티나에 있어 알마센의 의미를 아르헨티나 독재에 대한 저항 공간으로 만든다. 그가 이렇게 하필이면 레스토랑을 그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요리가 가진 이타적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요리는, 특히 레스토랑의 요리는 더욱 더 그렇듯이, 내가 먹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남들을 위해 혹은 더불어 먹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초부터 이타적 행위인 요리와 오로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독재적 권력을 그렇게 대비시키려는 뜻에서 레스토랑을 그런 저항의 공간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마치 그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소설은 알마센을 거쳐가는 세대들이 모두 전체주의와 독재에 저항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신념들이 세대를 거치는 동안 희석되어 가듯이 그렇게 알마센을 통해 변함없이 이어져온 그들의 모습도 끝내 그들의 가장 마지막 후예 '세사르 롬브로소'에 이르러서는 단절되고 마는데, 바로 그가 소설의 초반부 자기 엄마를 물어뜯었던 그 사람이다. 마지막 후손, 세사르에 와서 알마센은 열린 이타적 공간에서 폐쇄적인 이기적 공간으로 변질되고 요리의 의미도 더이상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행위로 변질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이모와 나누는 사랑을 통해서 더욱 견고해지는데, 발마세다는 여기서 궁극적으로 카니발리즘과 독재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 지 드러내준다. 소설은 이렇게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정국은 육식문화를 부채질했다. 역사르 되짚어보면, 각각의 시대별로 어떤 스타일의 음식이 유행했는지를 세세히 설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결국 각각의 시기는 나름의 음식 문화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며, 유행하는 맛과 풍미는 늘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과 별개일 수 없음이 확인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머리' 보다는 '위'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명료하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음식을 보면 시대적 열광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결함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혐오하고 집착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결점과 어떤 미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수 있으니까 말이다. 피의 기록에 따르면 독재정권이 마련한 화려한 연회를 즐길 수 있는 자들은 매우 한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재자가 군림하면 대다수의 대중은 굶주리고 허기지게 되며,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최후의 만찬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차분한 슬픔 속에서 빵 한조각을 나누었고, 그런 그들에게 포도주는 수세기 전 부터 그래왔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여겨졌다.(p.238 ~ 239) 이렇게 독재정권과 인육이 자주 관계를 맺는 것은 인육이야말로 여기 언급한 대로 독재정권의 얼 그렇게 정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인간을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욕망 충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향연이란 오로지 내 배를 불리기만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핍박 받고 고통받는 가난한 서민들이 빵 한 조각이나 포도주 한 잔을 나누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마지막에서 발마세다가 굳이 예수님의 보혈을 운운하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타적 향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리라. 세사르의 존재를 통해 발마세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쩌다 세사르가 그런 존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도대체 거기엔 무엇이 작용한 것일까? 소설은 세사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상세하게 말해준다. 세사르의 아버지는 친구들과 술을 먹고 취해서는 우연히 경찰청장의 장례식을 차로 들이받는다. 그리고 그 때문에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아 총알 세례를 맞고 숨진다. 그 후 정권에 의해서 앎센 자체가 반정부테러세력으로 의심받으면서 알마센 마저 폐쇄되기에 이른다. 세사르의 엄마는 세사르를 임신한 채 경찰에 끌려가 모진 심문을 받는다. 이전에도 페론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탄압은 받았지만 지금에 비하면 오히려 하찮을 정도다. 세사르는 바로 그러한 와중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권력에 의해 완전한 단절이 있고나서 변해버린 세사르가 태어난 것이다. 지금까지 이 소설이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담아왔음을 상기한다면 이것 역시도 어쩌면 오랜 군부 독재를 거친 탓에 이전의 아르헨티나와는 결정적으로 변해버린 지금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은근히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사르'는 발마세다가 바라보는 현대 아르헨티나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오랜 군부독재를 경험한 탓에 이제는 완전하게 변해버린 현재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인지도 모른다.(어쩐지 현재 한국의 모습과도 통하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 역사가 어쩌고 카니발리즘과 독재가 어쩌구 했지만 이 책은 작고 채 300페이지가 안되는 가벼운 소설이다. 그리고 그 크기와 무게 만큼 놀랍도록 빨리 읽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담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얘기해온 것 처럼 그렇게 작거나 가볍지가 않다.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작품으로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다.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의 분위기를 좋아하신다면 더더욱 추천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배고플 때는 이 책을 읽지마시라는 것! 여기엔 아주 많은 상세한 음식의 묘사가 나온다. 읽으면 절로 식욕이 인다. 그래서 깊은 밤에 읽으면 문득 라면 생각이 간절해지곤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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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작품 <식인종의 요리책>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에 있는 마르 델 플라타의 레스토랑 알마센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궁금하다. “좋은 공기”를 뜻한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들어봤어도, 대서양에 인접한 휴양 도시 마르 델 플라타는 또 처음 들어본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조사해 보니, 아르헨티나에서 7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역사로 시작되는 <식인종의 요리책>에는 카니발리즘, 혀끝을 자극하는 요리 그리고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관통하는 다층적 구조를 보여준다. 제목에 나와 있는 “식인종”이라는 말에 넌더리를 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문학적 창조물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그르누이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약한 분은 조심하라는 경고는 굳이 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초반에 등장하는 세사르 롬브로소의 생존에 대한 부분에 제외한다면. 카를로스 발마세다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화려한 서사로 레스토랑 알마센과 관계된 롬브로소 가문의 연대기에 쿠데타와 그가 반복해서 말하는 광적인 파시즘으로 얼룩진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교묘하게 배합한다. 마치,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이는 유명한 셰프의 환상적인 소스처럼.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루치아노와 루도비코 카글리오스트로 형제가 남긴 전설적인 요리 레시피가 담긴 요리책에 관한 진술은 흥미진진하다. 그 책이 숱한 영욕을 세월을 거쳐 제 어미의 살을 뜯어 먹고 살아남은 세사르 롬브로소에게까지 전달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소설 같다. 정말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수많은 요리 레시피의 소개와 상상만으로 바로 입안에 군침이 고이게 하는 묘사는 여느 요리를 주제로 한 소설의 아우라를 훌쩍 뛰어넘는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항상 사회주의 진영의 편에 섰던 알마센 오너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온갖 역경을 딛고 불사조처럼 일어서는 레스토랑 알마센은 아르헨티나 민중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광적인 파시즘으로 무장한 군부의 악랄한 탄압에도 알마센의 주방장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요리를 개발해낸다. 때로는 해산물로 또 때로는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고급 육류로. 카를로스 발마세다는 현란한 미식가의 기호로 ‘더러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암울했던 군부 독재 시기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유럽과 남아메리카 두 개의 대륙을 잇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개연성은 끊어질 것 같은 알마센의 운명을 연장한다. 군부 쿠데타,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개입을 뒤로하고 레스토랑 알마센은 계속해서 전진한다. 시대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마센의 요리는 대중의 미각을 휘감는다. 어쩌면 작가는 요리라는 소재 속에 내재된 개인의 욕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사르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면서 소설은 살인과 미스터리까지 아우른다. 한 개의 소설에서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다니 놀랍다. 카를로스 발마세다는 연대기 작가처럼 허구의 역사를 신중하게 짜깁기하면서 독자를 보이지 않는 그물로 사로잡는다.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결말을 연상시키는 엔딩이 좀 씁쓸했지만, 텍스트의 창조적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작가가 작품 도중에 끼워 넣은 캐릭터인 유보트 승무원 위르겐 베케르가 잠수함 함장에게 눈을 감고 ‘사우어 크라우트’를 만드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 석봉에게 어둠 속에서 글을 쓰라고 하듯, 함장은 후각, 촉각 그리고 기억에 의존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명령을 내린다. 위르겐이 알마센에서 활동하던 시절,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에비타’ 페론의 방문도 빼놓을 수가 없다. 카를로스 발마세다가 창조한 가상현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고나 할까. 몬테비데오 앞바다에서 침몰한 독일 포켓전함 ‘그라프 쉬페’의 짧은 등장도 아르헨티나와 나치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말미에 등장하는 세사르의 엽기적인 카니발리즘이 좀 걸리긴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읽은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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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발마세다 님의 <식인종의 요리책>입니다..
원제 역시 Manual Del Canibal로 식인종의 지침서로..
책 장을 펼치기 전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책입니다.
<식인종의 요리책>는 처음부터 굉장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을 맛보게 되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세사르가 처음 인육을 맛을 본 것은 태어난 지 7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으로,
그 대상은 다름아니 그의 어머니라는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엽기적인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강한 이야기로 시작되다니 더욱 더 <식인종의 요리책>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식인종의 요리책>는 세사르라는 인물에 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세사르가 셰프로 일하면서 운영하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해수욕장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마르 델 플라타에 자리잡은 "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식당을 중심으로 "알마센"의 지난 과거에서부터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알마센"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어떤 인물들이 그 뒤를 이어 부흥을 이끌고 쇠락해가는 과정을 각 시대의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인물들에 맞춰서 펼쳐지는 도입부의 충격적인 사건에 비하면 나름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중후반부까지는 "알마센"이라는 식당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도입부의 사건이 주인공 세사르가 등장하면서 <식인종의 요리책>는 점차 치정과 질투에 이은 살인사건이 진행되면서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기면서 그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식인종의 요리책>는 다양한 장르가 아주 교묘하게 잘 섞여 들어가 있는 작품이네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미스터리 추리물적인 요소도 있고, 치정과 질투에 의한 남녀간의 교묘한 관계, 그리고
가족사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다룬 드라마적인 요소도 있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 식당이다보니 다양한 요리의 레시피까지..
3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임에도 <식인종의 요리책>는 참 다양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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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십니까? 제목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이 강렬한 포스가! 네, 저는 그 포스를 느끼고 한참이나 읽기를 망설이고, 또 읽다가 한숨을 푹푹 쉬며 내려놓고, 또 뭔가 이상해져오는 속을 달래기 위해 한참이나 쉬엄쉬엄 읽을 수밖에 없던 작품이었습니다. 식.인.종. 게다가 요.리.책. 뜨아! 예전에 [금단의 팬더]라는 일본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책 표지에는 귀여운 팬더가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먹고 있는 곳이 음식그릇 위이기는 했지만요. 귀여운 팬더이기는 하지만 온갖 것이 음식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마당에 징그럽기는 하지만 팬더라고 예외이겠더냐! 하는 마음으로 읽었답니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제 속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식인종의 요리책]은 정말 적나라하게도 식.인.종의 요리를 다루고 있죠.
이야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제 어미의 가슴을 물어뜯으면서 시작됩니다. 엄청난 고통과 충격으로 어미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 자리에서 사망. 오래된 건물에 살고 있던 쥐들이 나타나 시신을 처리하는 가운데 아기는 해맑게(?) 살아남습니다. 아기의 이름은 세사르 롬브로소. 그리고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세사르 롬브로소의 가족사와 그가 태어난 건물, 정확히 말하자면 레스토랑 '알마센'에 얽힌 역사를 들려줍니다. 레스토랑의 창시자 카글리오스트로 형제가 지은 전설의 요리책 '남부 해안지역의 요리책'이 중심에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어찌보면 알마센과 롬브로소 가문의 기나긴 역사는 이 책과 함께 해 온 것이 될테니까요.
처음 예상했던대로 작품에서 잔혹성과 기괴함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의 제목만 봐도 유추할 수 있듯, 세사르 롬브로소의 요리는 상상이상었습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풍기던, 피부를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어둠의 기운을 풍기던 세사르 롬브로소의 독특한 요리장면은 매우 적나라했거든요. 하지만 예상 외로 롬브로소 가문에 얽힌 역사와 사건들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단순히 폭력과 살인만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마센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알마센을 이어받아온 롬브로소 가문의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를 읽는 재미가 좋았다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평범한 음식을 요리할 때의 감칠맛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인 [향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두 작품은 닮아 있습니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제 어미의 젖가슴을 물어뜯은 후 그 맛을 음미하며 그에게 미각에 관한 한 비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은,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시장통 생선가게 쓰레기들 틈 사이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났음을 암시하는 장면과 오버랩되죠. 마지막 장면 또한 그루누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루누이는 오직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살해했다면, 세사르 롬브로소는 자신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 사람들의 목숨을 취했다는 것일까요. 그들 모두에게 죄책감은 없었지만요.
지금까지 한 번도 '요리'라는 행위 안에 폭력성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요리하는 그 행위 자체가 엄청난 폭력성을 띠고 다가옵니다. 아름답고 친근한 장면인데 말이죠. 읽는 동안 속이 많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잔혹한 장면들 외에 롬브로소 가문의 가족사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 나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만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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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두 명을 살해해 인육과 피까지 먹은 '현대판 뱀파이어'에게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지난 28일 외신 보도에선 이런 경악할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뱀파이어라는 표현으로 조금은 순화된듯도 느껴지지만, 사실 살해하고 인육을 먹었다는 외트케라는 이 독일인의 이야기는 정말 소름을 돋게 할 만큼 아찔하기까지 하다.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피를 마셨고, 목부터 살점을 씹었다는 그의 자백을 듣고는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한권의 책을 앞에 두고 이 낯설지 않은 이야기에 조금은 더 귀를 쫑끗 거리게된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의 맛, 그러니까 제 어머니의 살코기 맛을 본것은 태어난 지 7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 P. 11 -
자기 어머니의 젖꼭지를 깨물어 통째로 뜯어낸 갓난아기, 심장마비로 숨진 어머니, 씹고 삼키고 또 씹어 배가 든든해진 아이는 잠이 들고, 하수구에서 올라온 쥐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어머니의 시신을 가지고 만찬을 즐긴다. 백골로 남아버린 어머니의 시신, 배고픈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지쳐 또 잠이 든다. <식인종의 요리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세사르 옴브로소의 갓난 시절로 이야기는 말문을 연다. 너무 충격적인 묘사가 뱃속을 꼬이고 뒤틀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가 식인종?....
<식인종의 요리책>은 아르헨티나의 레스토랑 '부에노스 아이레스 알마센'에 전해지는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레스토랑 알마센과 롬브로소 가문의 100여년에 걸친 운명과도 같은 비극적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갓난 아기인 세사르의 충격적인 어린시절을 뒤로 하고, 지중해에서 이주한 루치아노, 루도비코 카글리오스트 형제가 지은 레스토랑 알마센 건물과 그들이 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궁금의 맛을 담은 요리책과 관련한 가문의 역사가 1900년대 초부터 전해진다.
그리고 책의 전반을 장식했던 '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건', 일명 '롬브로소 사건'과 그 사건을 담당했던 프랑코 루사르디 순경의 이야기가 꺼내어진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사르는 이 알마센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되고 드디어 궁극의 맛을 창조해내는 롬브로소 가문의 요리책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을 발견한다. 이 책의 첫장을 열자마자 세사르는 연금술과도 같은 이 경이로운 책에 매료되고 만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 최고의 맛을 위한 재료와 도구, 크기와 무게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이 요리책은 이제 세사르를 쾌락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만다.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세사르의 맛에 대한, 쾌락을 향한 질주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보인다.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서 이 궁극의 맛을 간직한 요리책이 사용되고, 알마센만의 만찬!은 이어진다. 계속되는 행방불명 사건들을 추적하던 프랑코 루사르디 경관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름, 세사르 롬브로소. 하지만 루사르디 경관 마저도 알마센의 만찬을 위한 요리가 되어버린다. 종이모이자 연인이었던 베티나 역시 신인종들의 향연에 몸을 내어 놓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맛, 최고 요리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아기는 먹이를 쟁취한 거미처럼 차가운 쾌감을 느끼며 입안에 놓인 자그맣고 물컹물컹한 고깃덩어리를 잘근잘근 씹어 그 맛을 음미했다.' - P. 12 -
이 작품에 쓰인 '식인풍습'이라는 소재는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노린 작가의 의도일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그런 의도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이런 식인풍습, 식인주의 속에 담긴 의미는 요리를 만들어가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폭력성'과 자신을 위해 타인을 짖밟는 인류의 역사, 혹은 '습성'을 드러내는 소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서 스페인에 식민화되고, 내란과 숱한 아픔을 겪은 그들의 역사를 요리를 통해 투영하고 있다고 한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음식!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속에 잠재하고 있는 폭력과 잔혹성들이 지금의 아르헨티나, 혹은 우리 사회 현대인들의 모습속에 비추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피흘리게 만들고 또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몰아 창조해낸 승리, 혹은 발전 자체가 바로 식인종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식인종의 요리책>은 단순히 세사르와 그의 가문을 둘러싼 요리책과 역사를 담은 이야기로 비추어도 좋겠고, 그 속에 담긴 깊이있는 의미들을 음미해도 좋을 작품이다.
<식인종의 요리책>을 펼치면, 우선 침이 꿀~떡 넘어간다. 잔인하면서도 너무나도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기 때문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자하니 어느새 급속한 배고픔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름끼치도록 맛있고, 재밌고, 특별한 알마센의 만찬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탐욕과 쾌락이 지배하는 사회, 그 사회를 걷는 모든 이들에게 잠시 그 탐욕을 멈출 이 작은 요리책을 선물하고 싶다. 식인종과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작은 거울과도 같은 이 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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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의 요리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물론 내용도 심상치 않았구 말이죠. 이 이야기는 주인공 세사르 롬브로소가 인육을 뜯으면서 시작합니다. 그것도 바로 자기 어머니를 말이죠... 이 충격적인 장면은 이대로가 끝이 아닙니다.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이 충격 이후에는 시치미를 떼고, 한동안은 평범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시작으로 상당한 몰입감을 부여했다고 파악되는군요.
'궁극의 맛을 찾는 사람들과 금지된 요리책, 그리고 한 가문의 잔혹사......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넘어서는 악마적 매혹!
한동안 책과 영화로 떠들썩했던 그 작품 향수를 넘어선다는 카피문구 저도 향수를 상당히 인상깊고, 신선하게 봐선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정말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면서도, 약간 방향이 다른 느낌에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일단 잔인함은 정말 끝내줍니다. 향수도 그렇지만 이 책은 향수를 저리가게 만드네요. 아주 담담하게 끔찍함을 묘사하는데 책속에서 종종 볼 수 있기에 덤덤해지기도 하네요. 이야기는 위 홍보문구대로 한 가문의 잔혹사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함께 그 가문의 부흥(?)부터 몰락까지를 길게 보여줍니다.
머, 잔인함속에는 맛도 있습니다. 잔인함은 담담하고 무감각하게 묘사했다면, 요리쪽은 군침을 돌게 만드는 황홀한 묘사를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한번 찾아보게 만드는 맛을 보여주네요. 또한 아르헨티나 역사와 함께 해선지 일단 배경지식이 있어야 좋았던 듯 싶구요.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얼핏이나마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시대였겠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잔인한 것은 싫어합니다. 하지만 잔인함 속에 특별함이나 신선함이 있다면 그 작품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사람들에게 추천하곤 합니다. 약간 틀은 달리하지만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 그랬구요. 영화 배틀로얄도 그랬습니다. 어여튼간에 이 작품도 그런 계열에 들만한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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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 일단 절대적으로 제일 필요한 것 공기, 그리고 물. 2차적으로 이제 필요한 것. 음식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영양분.
아무리 사람들은 사색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등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그렇게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굶주림 그리고 생체적인 본능 앞에서는 그 무엇도 힘을 쓰지 못하고 무릎꿇는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질문 하나.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산다는 것. '먹는' 것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뭐 어찌 보면 모두가 그 즐거움을 위해 살아간다는 상징 정도 되겠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 이건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그 삶을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어쨌든 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답은 모르겠다.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언제나 중도의 길을 걷는ㅡ이라기보다는 우유부단한ㅡ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먹기 위해 살 때도 있고, 살기 위해 먹을 때도 있다고. 언제나 딱 하나의 답만 내어놓는 것은 참 재미없지 않은가?
일단은 아마도, 아득한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맛있을 것 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다면, 혹은 그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할지도.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식인종의 요리책>은 그런 얘기다. 궁극의 맛을 찾는 사람들, 그들의 집념이 이어지고 있었던 한 가문의 잔혹동화 <식인종의 요리책>.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 그러니까 제 어머니의 살코기 맛을 본 것은 태어난 지 7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었다.(p.11)'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렇지만 어머니의 살코기 맛을 본 아기가 한동안 등장하지 않고 1900년대 초반의 한 형제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마르 델 플라타에서 '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레스토랑을 차린 카글리오스트로 형제는 1차 세계 대전 중 마르 델 플라타의 레스토랑의 셰프 직을 제안받고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마시모 롬브르소를 만나 서로 상승효과를 십분 발휘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매혹적인 요리를 창조해내기 시작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론 아시아의 다양한 요리비법을 익힌 그들은 오랜 세월을 거쳐온 수많은 요리책들의 자료 수집 역시 게을리하지 않아 끝내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이라는, 그들만의 레시피가 담긴 궁극의 요리책을 만들어낸다ㅡ.
가문의 혈통이 이어지듯 형제의 비밀의 요리책을 따라 그들의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자손들은 계속해서 나타났고, 그에 따라 풍파를 겪으면서도 레스토랑 '알마센'은 그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시대와 함께 흘러왔던 레스토랑 '알마센'과 한 가문의 잔혹사는 그렇게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글 속에서 다양한 요리법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식인종은 언제 나오는 건데?
아르헨티나 최대의 휴양 도시라는 마르 델 플라타는 실제로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고향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땅을 파면 나온다는 곳 아르헨티나는 그렇지만 축구 말고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곳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인데, 이 <식인종의 요리책>은 남미 문학으로서는 거의 처음이다. 남미의 열정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아르헨티나의 소설이 낯설어 솔직히 겁을 좀 먹었다. 거의 처음,이라고 말한 것은 이전에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어서인데, 그래도 놀라웠던 것이 두 작품이 닮지 않은 듯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시 노벨 문학상 작가의 영향이 후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일까?
한 가문의 잔혹한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은 참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으니 그냥 제쳐두련다. 아, 남미 문학은 이런 분위기인가? 라고 그냥 혼자 납득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그렇지만 이 <식인종의 요리책>은 전혀 다른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해외 언론에서도 이야기하듯 <향수>를 떠올리는 점이 훨씬 많다.
너무나도 뛰어난 후각으로 궁극의 향수를 제조하겠다는 열망을 품은 그르누이는 끝내 소녀들의 체취를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알마센'의 마지막 남은 한 명이자 아버지와는 달리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의 레시피를 해독하고 그 맛을 재현할 수 있었던 세사르 롬보르소는 알마센의 '스페셜 디너'에 비밀의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를 대접한다.
눈으로 맛보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책이다. 제대로 된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그려져 있지 않은 서술은 한 편의 동화를 그린 것 같다. 그렇지만 이는 잔혹동화다.
카를로스 발마세다는 직접 요리를 만들듯 레스토랑 '알마센'에서 대접하는 요리들의 다양한 향연을 제공한다. 솔직히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밥과 라면 밖에 없는 나로서는(심지어 계란 프라이를 하면 제대로 뒤집는 일이 없다!;;) 요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못 따라갔는데 그래도 어쨌든 눈앞에 그 요리들이 있으면 군침이 살그머니 돌 것 같다는 점은 확실했다.
세사르 롬브르소가 궁극의 맛을 찾기 위한 자극으로 선택한 것은 '인육'을 요리로 쓴다는 것이었는데, 실은 이것은 의도적이라기보단 우발적인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수없이 요리의 재료가 다듬어지는 과정을, 그 요리가 만들어지면서 흘러갔던 아르헨티나라는 곳의 시대적 흐름과 그 곳에서 일어나곤 했던 수많은 폭력과 부조리를 함께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일까. 소설 속의 식인 행위는 생각과 달리 그렇게 잔인하고 끔찍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꿈꿔보는 지상 최대의 자극과 향연을 누려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먹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은 맛있는 진수성찬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그 단면을 그려낸 카를로스 발마세다는 식인 행위라는 반문명적인 풍습을 통해 이러한 풍습을 방패삼아 또 다른 폭력을 행하고 있는 현재의 단면을 그려내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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