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보이는 것만 믿는 건은 아마 당연한 것 같아요~
어느 날 있지도 않은 포비와 딩언을 잃어버리고서 그저 슬픔에 빠져 아픈 동생 켈리앤을 위해,
먼저 동생을 구할려면 보이는 것만 믿었던 애슈몰에게 상당한 변화가 생기는데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자신보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더불어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어른들도 읽으면 참 좋은 책이네요^^
|
|
상상 속의 친구들에 대한 한 소녀의 믿음이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변화를 감동적으로 그린 이야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동안 줄거리만 따라가게 하는 작품도 있고, 등장인물의 입장과 상황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애잔한 감동의 추가 가슴 속에 가만히 내려앉는 작품이다.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오팔 드림(Opal Dream)>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
|
|
|
작고 아담한 책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라는 책이 왔다. |
|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편지가 전해졌을 무렵이었을까 말을 달려 팻말을 먼저 꽂는 쪽이 그 땅의 임자가 되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낯선 곳으로 부와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모험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 온 애슈몰 가족이 떠올랐다. 일확천금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도 힘겹고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위험 속에서 행운을 캐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 안타깝다. 애슈몰의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다. 아직 소꿉놀이가 좋은 나이의 아이들은 가끔 상상 속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이기도 한다. 애슈몰의 동생 캘리언은 그 정도가 다소 심해 보이기는 하다. 어쩌다가가 아니라 늘 상상 속 친구 포비와 딩언을 생각하니까. 캘리앤의 그런 행동에 동조하는듯 보이지만 상태가 더 심각해져 현실 속에서의 적응이 어려워질까봐 아빠는 일하던 포비와 딩언을 광산에 데려가는데 집으로 돌아온 캘리앤은 포비와 딩언이 광산에 남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걱정하다 앓아눕기까지 하게 된다. 애슈몰과 아버지는 캘리언을 위해 다시 광산으로 가지만 아버지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둑으로 몰리고 동네 사람들마저 아버지를 도둑으로 몰아가는데 캘리언은 더 창백해져간다. 여동생의 상상 속 친구를 애슈몰은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우리들 독자들은 캘리언의 포비와 딩언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애슈몰이 포비와 딩언을 인정해가는 여정에서 읽어가는 애슈몰이 스스로에게 품은 질문을 나 역시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포비와 딩언을 찾았다며 나서는 장면들 중 캘리앤에 대한 걱정만이 아니라 사례금을 바라는 모습에서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버지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오색영롱한 오팔을 포비와 딩언의 시신 옆에서 찾은 애슈몰이 아픈 여동생을 위해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을 위해 다 써버릴 땐 내가 다 안타깝기도 했다. 어릴 때 읽었다면 저 아까운 오팔을 하는 마음이 덜 했을지도 모른다. 무모한 열정의 청춘이 빛바랜 낡은 사진처럼 아쉽고 그리움이 남는 이 시절엔 보다 현실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어린 여동생을 위한 애슈몰의 순수함이 아름답게만 보이기보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아이들 책인데도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의 눈과 마음으로 읽어서 그럴까? 우리 아이에게 읽히고 그 느낌을 물어봐야겠다. 맑은 눈의 애슈몰이 나를 똑바로 쳐바보며 물어온다. 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
광산에서 데려오지 않았다는 캘리앤의 직감처럼 상상속 친구들은 캘리앤에게 굉장한의미였어요.
첨에 이웃들은 사례비를 받으려고 애를 썼지만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을 열면서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빠를 재판했던 판사의 판결도 어쩜 감동이던지요. 보이는것만 믿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상상속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상상 속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그의 판결은 책을 읽는 독자의 가슴을 때리는 글이였어요,^^ 캘리앤의 오빠가 장례식을 준비하는동안 정말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함께 긴장했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전부 상상해야 하는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함께 들기도 했지요. 한 소녀가 아니 한 가족이 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을 순화시켜준 사건이 아닌가 싶어요. 오로지 느끼기만 한 존재에 대해 인정해 주는 사람들. 바로 어른들인 셈이죠. 바로 나도 그런 어른이면서 다른 많은것을 부정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도 보이는것만 믿니?’ 제목이 주는 강한 메세지가 여운이 상당히 남는 책이였어요. 어른이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읽고 내 아이를 보듬어 줄수 있는 책입니다.
|
|
이 책의 뒷표지 문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한 소녀의 상상이 마을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켈리앤의 상상 속 친구들, 포비와 딩언을 찾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섰다. 켈리앤의 눈부신 상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던 마을 사람들에게 기적을 안겨 주었다. 오팔보다 아름다운 순수의 결정체 같은 이야기를 펼치면, 꿈과 사랑, 믿음과 신뢰, 삶 속에 숨어 있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상상 속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켈리앤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내용입니다. 오팔을 찾으러 전국에서 모여든 라이트닝 리지. 애슈몰과 켈리앤의 부모들도 그 중의 하나이죠. 하지만 2년 동안 노력했지만 값나가는 오팔은 아직 찾질 못하고 있어요. 그런 것에 조금씩 지쳐가던 부모님들, 그런 때 사건이 일어난 것이죠. 켈리앤의 상상 속 친구들은 예전부터 존재했습니다. 포비와 딩언이 있다며 말을 걸고, 가족들에게도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그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면서 점차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애슈몰은 그런 상황이 짜증났지만, 포비와 딩언이 켈리앤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여서 참고 있을 뿐이죠. 그러던 어느날, 아빠가 출귾마녀서 포비와 딩언을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켈리앤이 수업 받는 동안 포비와 딩언을 운동시키겠다면서요. 아무래도 아빠는 켈리앤이 상상 속 친구들과만 있는 것이 걱정스러워서 자연스레 떼어놓을려고 한 것 같습니다. 여튼 그 둘을 태우고 아빠는 출근을 하셨고, 퇴근할 때는 그냥 혼자 돌아왔죠. 켈리앤은 포비와 딩언이 실종되었다며 찾으러 다시 광산에 가야한대요. 어쩔수없이 애슈몰, 아빠, 켈리앤이 나섰어요. 정말 날이 저물 무렵동안 존재하지도 않는 포비와 딩언을 찾으러 다녔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광산을 기웃거리던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광산주인이 오팔을 전부 훔쳐 가려고 한다며 경찰을 불렀어요. 그 자리에 잡혀 들어간 아빠, 아니라고 했지만 상상 속 친구들을 찾으러 광산에 왔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겠죠. 애슈몰과 켈리앤은 걸어서 집으로 왔어요. 오면서도 켈리앤은 포비와 딩언을 찾아야한다며 정신을 놓고 있어요. 그 이후로 먹지도 않고, 매일 울면서 포비와 딩언을 걱정했고, 실제로 아프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재판날짜까지 잠시 풀려나 한동안은 식구가 같이 있어서 안심이였지만, 켈리앤이 너무나 아파서 좋은 상황은 아니였어요. 애슈몰은 어떻하면 될까 고민하다가 마을 사람들이 포비와 딩언을 찾으면 켈리앤의 병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죠.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였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닌 애슈몰.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야기의 마지막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야겠죠. |
|
글쎄요?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 믿지 않나요? |
|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당연한 것일테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그 이상의 믿음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것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과 보이지도 않고 그 존재 자체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도 다 믿을수도 없고 다 부정할 수도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소녀 켈리앤이다. 자신의 상상속의 친구를 너무나 당연하게 사실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까지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한다.
이쯤되면 중증이다. 하지만 남이라면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법도 한데 가족이 켈리앤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다르다. 일단 믿어주는 것이다. 엄마는 딸의 상상속 친구인 포비와 딩언의 식사도 함께 차리고 속마음은 켈리앤의 상상속 친구에 대해 부정적이고 현실속 친구를 사귀지 않고 상상속 친구와 어울리는 그녀를 걱정하는 오빠와 아빠도 가족인 그녀를 위해 포비와 딩언의 존재를 완전히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있는 사람인듯 대해준다. 제3자가 보면 꽤 이상한 행동이다.
하지만 포비와 딩언에 대한 켈리앤의 심한 애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도 하다. 가족들은 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나름 연기을 한 것인데 그 연기를 하다 사단이 나고 만다. 아빠는 딸에게 딸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포비와 딩언을 자신의 일터 광산으로 데리고가 운동을 시켜준다고 호기를 부렸고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원래 마음속에 없던 존재인지라 까맣게 잊어버리고 와 딸 켈리앤이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결국 딸의 성화에 못이겨 일이 끝났음에도 다시 광산에 가서 상상속 친구를 찾는 시늉을 하게 되는데 남의 광산에서 오팔을 훔치려던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정말 있는지도 모르는 상상속 친구의 실종으로 켈리앤은 병이 들고 아빠는 도둑으로 몰려 재판을 기다리는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상상속 친구들은 혼자 집에 못돌아오나? -.-;) 아빠의 재판보다는 친구의 실종에 마음이 상했던 켈리언의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딸의 병세에 아빠는 사람들에게 상상속 친구 실종 사건을 말하기에 이르고 마을사람들은 정말로 '포비와 딩언 수색대'를 결성해서 그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켈리엔의 말대로 상상 속 친구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장례를 치루게된다. 그렇게 상상 속 친구들의 장례를 치른 뒤 얼마후 켈리앤도 죽게 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것 같다. 것도 확실히! 그렇기에 책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 하지만 켈리앤을 위한 가족의 헌신이 눈물겹다. 절대 공감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존재지만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진심을 다하는 모습과 처음에는 마을 소녀의 건강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수색대를 결성하고 포비와 딩언을 찾기도 하고 그들의 장례식에도 모두 참석했다는 사실이 보이는 것을 믿는 믿음을 떠나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믿을 수 없는 것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믿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 어느순간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육신의 눈보다 마음의 눈으로 볼 때도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지금보단 적어도 한뼘은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