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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옵소서, 주님!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서평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마리아와 주님을 위해 수고하던 마르다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들 자매는 오라버니인 병든 나사로를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다급하게 요청하는데 예수님은 며칠이나 지체하기로 선택하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며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신다. 그 바람에 나사로는 죽고 무덤에 장사된 지 나흘만에야 예수님이 도착하게 되는 이야기. 죽은 나사로를 보시고 예수님은 눈물까지 흘리신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나사로를 예수님은 원격의 말씀 한 마디로도 고치실 수 있었고,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달려오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지체하셨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사로는 다시 살아났고 저자는 이 기적에 보며 ‘예수께서 현장에 오시면 그때까지 끝으로 보였던 게 늘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메시지를 도출해 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받게 함’이라 하신 말의 내재된 의미와 그 말이 이 사건 속에서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게 한다.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그 이유는 바로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지체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순어법에 대한 신앙적인 풀이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조안나 위버가 전하고자 하는 이 책의 핵심 요지이다. 주님이 나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지체하신다? 더우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체하신다니! -여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기도제목들에 대해 그가 어떤 영광을 보기 원하시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모순어법에 대한 풀이를 좀 더 들어봐야겠다. 저자는 ‘어둠과 상처와 장애, 그리고 습관이라는 견고한 진’에 포로로 잡혀 사는 사람들에 대해 ‘무덤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헬라어에서 ‘무덤’은 ‘회상하다’, ‘기억하다’ 라는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안에 자리한 ‘견고한 진’이 우리의 과거에,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그는 우리가 무덤 속에 사는 이유가, ‘때때로 대낮의 빛보다 무덤의 보호에 더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직시한다. 즉, 우리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무덤 속 어둠이 차단시켜 줌으로써 고통에서 우리를 격리시키고 분리시켜 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안나 위버 여사는 <내가 어떤 사탄의 거짓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라, 하나님보다 견고한 진에서 피난처를 찾으려했던 것에 대해 회개하라, 나에게 세상 꼬리표를 붙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사탄이 준 권위를 하나님 앞에서 다 포기하라, 거짓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체하라>는 처방을 제시한다. 그리고 주님이 와서 ‘너는 어디에 갇혀 종노릇하고, 어디에 에워싸여 단절되고 차단되었느냐?’ 물으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답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병마에 갇힌 나사로를 대신해 했던 대답,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 ‘와서 보옵소서, 주님!’ 그러면 주님은 우리 고통 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품에 안고 죄와 죽음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슬퍼하며 눈물 흘리실 뿐이라는 것이다. 묘지라는 익숙한 곳을 떠나 그리스도라는 새 생명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우리 마음의 다이얼을 성령의 음성에 맞추기 위한 방법들도 알려준다. 그것은, 들을 귀 갖기, 마음을 여는 훈련(기도와 간구, 성경말씀 공부와 암송, 가르치기, 늘 깨어있기, 말씀에 순종하기, 시간과 노력들이기, 기다리기)과 같은 것들이다. 성경도 침묵하는 것 같고 아무리 기도로 소통하려 해도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 바닥을 치는 것과 경험은 신앙의 연륜이 쌓인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답변은 “선생님은 시험 시간에는 늘 조용하시”다는 것. 그리고 이때 우리는 현재 겪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해 준다. 기본으로 돌아가 나를 돌아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174쪽의 세 여인을 예로 든 이야기는 응답을 기다리며 지체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이다. 세 여인 중 예수님이 관심을 표현한 두 여인과 달리 예수님이 그냥 지나친 한 여인에 대한 의미는, 그녀가 가장 양질의 믿음과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즉 가장 거룩한 섬김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과정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해석은 탁월하기도 하거니와 길어지는 하나님의 지체하심 앞에서도 이런 긍정적인 해석과 믿음이 우리에겐 언제나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억할만하다. 성숙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지체되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는 의미이며, 주님은 사랑이시기에 때때로 무심한 듯 여겨지는 주님의 침묵 역시 그의 사랑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요 근래 주님의 음성을 거의 듣지 못했다. 예배 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는 성도들의 간증이 은혜롭기는 했으나 돌아서면 어쩐지 나만 소외된 듯 허전하고 쓸쓸했다. 내겐 왜 아무 말씀도 않으시나? 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쓸쓸한 건 당연했다. 그것이 나를 더 큰 일꾼으로 만들기 위한 주님의 훈련이었다는 조안리 위버 여사의 이 책을 통한 격려는 참으로 큰 힘이 된다. 밤낮 울부짖는 간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선한 결과를 이끌어 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며 자칫 주님과 나 사이에 불신앙이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나아가 저자는 주님께 받은 사랑과 훈련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기를 권한다. 작년과 올해, 신앙서적을 집중해 읽고 있는데 저자들은 하나같이 주님의 자녀로서 나아가야할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주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사역, 즉 섬김이라고 결론짓고 있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는데 서로의 짐을 나눠 지는 이런 사랑을 일러 저자는 ‘불편을 무릅쓰는 사랑’ ‘사랑은 불편을 무릅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불편을 무릅쓰는 사랑을 해야 할 예로,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보여준 나사로의 죽음에서의 부활 장면을 다시 제시한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셨다. 즉 생명을 주시고는 둘러서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며 그 과정을 도울 것을 요청하셨다. ‘예수님의 일은 생명을 안겨주는 일이고, 회중의 일은 사람들에게서 죽음의 예복을 벗겨내는 일’임으로 ‘수의 풀기’는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며 특권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변화와 치유에는 실천적 돌봄과 사랑에 앞서 언제나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수의를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중보기도란다. 중보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눈과 손이 될 수 있게 해 주는 사역의 소중한 도구이다. 나는 올 초부터 여성순의 순장으로 사역하게 되었다. 아직은 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작년에 훈련받은 모든 신앙서적의 결론은 ‘순종하라’는 것이었기에 나는 다만 주님께 의뢰하며 순원들을 섬기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누군가의 삶에서 내가 하나님의 손이 되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하는 저자의 외침에 깃든 기대와 설렘이 내 것처럼 전해져서 ‘아멘’으로 답한다. 사역자들은 필히,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성경에 근거한 섬김의 지식과 중보기도의 필요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이 책은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아니,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우리의 할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에 대해 더 알아야 하고 성경의 참고서가 되는 신앙서적도 읽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얼마나 어두운 무덤 속에서 신음하며 살았을까? 세상의 많은 일들을 겪은 후에 얼마나 심신이 황폐해졌을까? 세상의 폭풍 한가운데에서도 이 세상의 것과는 다른 주님의 평강 속에 있게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과 은혜가 새삼 감사하다. ‘하나님은 흔히 우리 영혼의 어두운 밤에 최고의 역사를 이루신다. 죽음과 같은 시절,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한밤중에.’ ‘내 힘으로 열매를 생산해 내려는 시도를 그만 두라. 죽기를 선택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내 생명이 친밀히 뒤얽히는 것을 받아들이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오늘의 삶 사랑하기’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들. 그래서 영원의 빛 가운데 살라는 격려의 메시지는 이 책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한다. 이 책 부록으로 ‘토론과 묵상을 위한 질문’을 담은 <성경 공부 가이드>가 있고, 각 파트의 내용 요약본이 있다. 요약본에 담긴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내 삶에 있는 견고한 진’ ‘수의를 푸는 법’등은 이 책에서 꼭 인지해야할 핵심을 다시 짚어 주어서 유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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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며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많은 기도와 많은 응답을 받고 어떤 것들은 아직도 진행중인 것들도 있다.
하나님의 응답에도 분명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하나님의 그 때를 기다리는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믿음의 식구들에게 이 책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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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서평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조안나 위버) 나를 향한, 나의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의심했던 적이 있다. 10년 전의 일이다.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생후 5개월 되었을 때 뇌에 이상이 있어서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나와 아내는 한 동안 정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부인과 원망은 잠시 뿐이었다. 나와 아내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로 전적으로 매달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들이 겪고 있는 질병의 분야에서 최고 전문의를 붙여 주셔서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고, 그와 더불어 주변의 모든 분들께 아들의 치료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부탁하였다. 희귀병의 일종이었던 아들의 뇌는 완치되었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조안나 위버의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를 읽으면서 ‘왜 제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라고 자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꼭 이 책을 읽어볼 수 있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자녀들에게 꼭 고난을 주신다. 하지만 그 고난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만 주시는 것 같다. 특히 그 고난은 내게 있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질병의 고난을 통해 나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닥친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하고 간절히 부르짖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이 오래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욱 조바심 내면서 하나님을 찾는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체하실 때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지하여 견고한 진을 깨는 것이다. 둘째는, 관계를 가로막는 돌을 치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기다리고 계신다. 셋째는, 나를 향한 사랑의 음성을 경청해야 한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듣고 그 삶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넷째는, 받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고난을 이겨내게 하시고 감사의 삶을 주는 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섬김의 삶을 살게하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주변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빚진 자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나 홀로 하나님을 믿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가족을 포함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오늘의 삶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에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지체하시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으시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신실하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사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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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을때 저마다 인생사에서 다가오는 어려움을 반드시 그때마다 아시고 해결해주시며 위로해 주어야 된다고 자칫 인간적인 생각을 할때가 한두번이 아닌것이 사실이다. 인간사에서 일어나 벌어지는 모든일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사람의 의지가 담겨,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것으로 자칫 왜곡할수도 있다. 물론 성경말씀을 통하여 평안을 내려주시고, 낮은곳에 임하시는 주님께서 앞에 닥친 어려움을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신것도 사실이고, 주께 구하고 아뢸때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신것도 사실이다. 조안나위버의 "하나님이 지체하실때"는 나사로와 마리아,마르다 3남매의 인물을 통하여 병들어 죽어가는 나사로를 얼른 치유하지 않고 역사하심을 지체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며는 무슨일이든지 최고최선의 삶을 향유하며 살아야하는데 어찌 이런일이 나에게 닦치며 하나님의 응답없이 지체하는지..하였던 속마음을 살피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은 조급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의 것과는 다르기에 자칫 하나님께서 순간적이나마 방치한것같은 모습을 느낄때가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성경속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요셉이 그의 형들로 인하여 노예생활을 거쳐 애굽의 감옥에서 수년간 지냈을때도 그랬고,,,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40년간을 광야에서 떠돌아 다녔을때도,,,아브라함이 그의 자녀를 내려주신다는 약속을 얻은후 이슬람신앙의 모태를 제공하고 25년간의 기다림끝에 이삭을 주신것,,, 얼핏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쉽사리 되지않는 대목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셨고 그의 택한백성을 사랑하셨음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할수 있다. 하나님께로의 응답이 당장 오지 않고 지체하는것 같지만 지체하는 시간속에 깃들여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을 깊이 사랑하기에 지체한다고 일깨우고 있다. 그때문인지 원하는 방법과 때가 아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기다릴줄 아는 신앙을 지켜야 됨을 도전받게 되었다. 부록1에서는 토론과 묵상을 위한 가이드를 신앙생활하면서 누구나 겪는 이와같은 문제점에 도움이 되도록 첨부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했던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부록2를 통하여 생각해볼수있게 했다. 내자신은 자유로이 하지못하게 알게모르게 강박하여 스스로를 가두려고 하는 마치 그물과도 같은 문제점들을 부록3에서 되집어보게 했으며 내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그리스도인의 자녀로써 마땅히 시도해야할 삶의 자세를 부록4에서 기술해주어 지친 신앙생활속에서의 형제자매들이 한번쯤 읽게끔 권하고 싶은 도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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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이 못난이를 사랑하시는 이에게 사실 나는 이책을 열심히 읽을 시간을 내기 힘든 상황이여서 그런데 이책은 참 정밀한 마음의 심리적인 면을 더군다나 각각의 내면의 상처(죄)들을
삶을 살면서 우리 외부적으로 피상적으로 겉으로 들어난 모습들은 참으로 나의 내면의 상처들을 많이
이러한 오류들을 참으로 많은 교인들이 겪에 됨에 안타까운마음 금할길이 없음에 한번 심도깊게 짚어주신 것이 이러한 오류중에서 참으로 내면의 상처문제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참으로 힘들게 한다 참으로 나자신조차도 내면의 상처가 너무 크고 커서 아예 덮고 싶어서 아예 기억에서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상처,장애,습관들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두는 능력이 있다
저자는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감점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들어가야할 부분들이 있다고한다
저자는 어떤 영역이든 우리 삶에 사탄이 편안함을 느끼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곧 견고한 진이요 우리는 거기서 자유로워야 나는 내자신이 상처로 인해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누구나가 내면의 상처,아픔,잘못된 습관들로 부터 오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더욱 쓸데없이 견고해지는 영역들이 있을것이다 언제나 인생을 아깝게 한탄하면서 사탄이 바라는 바대로 견고한 진을 구축하고만 있을것인가?
이책은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있는 쓴뿌리들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드러내게 만들고 그뿌리들이 더이상 더 견고하게 나의마음 이 못난 이를 사랑하시어 사탄에게 멸시를 당하시는 불쌍한 하나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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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동안 기도해 온 기도제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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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포기하고 싶은 당신에게, 라는 표제가 달린 책,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는 지금 내 상황이 너무 어둡고 막막해서 읽고 싶었던 책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힘겨운 싸움을 주님의 힘으로 이겨 내고 어느정도 안정이 된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이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길이었음을 확인하고 좀 더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고자 함이 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지난 3개월 동안에는 어쩌다보니 저자가 모두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한국인 고유의 정서에 공감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그런 아둔한 익숙함과 공감이 걱정이었다니 읽기도 전에 왜 그런 걱정을 했나 싶기도 하다.
아니다 다를까. 저자 조안나 위버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그 어떤 국경의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일깨워주었다. 우선 첫번째 파트 '왜'냐고 묻고 싶은 순간들의 경우는 이제 더는 왜라고 묻지 않기에 덤덤하게 읽어야지 했는데 맘이 동해 울컥하기도 했다. 참 내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아둔함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지금의 내모습이 다행스럽기도 했고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해서 지체하신다는 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두번째 파트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우리가 할 일은 이전에 내가 했어야 했던 일들이었고, 혹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을 때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들이기도 하다. 비단 나뿐 아니라 주변에 갖가지 일들로 고통받는 지인들을 보듬어 주고플때 역시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이 많았다. 다만 첫번째 파트를 완벽하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자라면 두번째 파트이전에 세번째 파트부터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되지 않은 일을 해야할 때 우리 맘속에 생기는 거부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마음이 다치거나 아플 때 우리는 믿고 싶다. 하나님은 결코 늦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한 깨달음은 바로 죽음의 관한 부분이었다. 왜냐는 물음에서 벗어나 한껏 자유로워진 후 내가 겁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었다. 나 자신의 소멸도 소멸이지만 내 가족이나 지인들이 예고도 없이 나를 떠나가는 일은 상상만 해도 나를 아리게 하고 두렵게 했다. 이런 두려움은 깊이 감추고 책을 읽다가 다음의 구절을 읽고 이 책을 만나게 하신 주님의 사랑에 또 한번 감사했다.
p.235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러나 이 점만은 확실히 알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임할 것이 더 있다는 것을. 전체적인 책의 내용도 좋지만 부록에 담긴 내용 또한 별책으로 묶었다면 개별적으로 들고 다니고 싶을 만큼 알찬 내용이 가득하다. 본문에 실린 내용을 재확인 하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들을 과연 실천 하고 있는지 그리스도안의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확신하는 좋은 기회를 선사하기에 앞서 말한 것 처럼 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차례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지만 부록에 담긴 질문지나 나의 존재를 확인 한 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더이상 나는 괴로워하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저 내 안에, 내 앞에 한걸음 더 많이 와주신 주를 느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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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이 가장 나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계속 되고 있다. 분명 육신의 안목으로는 참 불쌍한 환경이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유익한 시간이다. 지금처럼 내가 하나님과 소통하려고,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한 적이 있던가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체로 인해 낙망될 때도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최근에는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라는 책을 붙잡고 정말 잘 읽어보려고, 내 영에 유익함을 얻도록 집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잘 집중할 수 없었다. 다른 때처럼 기도회에 가고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내었지만, 기도 후에도 변함없는 환경을 바라보며 여전히 분노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연 응답의 시간,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는 시간은 언제일까 이렇게 기다리다 완전히 지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누군가를 붙잡고 싶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도 연결되지 않고.... 결국 이 숙제는 누군가에게 부탁할 것이 아닌,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상호관계에서 풀어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왜 그토록 많은 책들은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서 ‘주파수’를 맞추라는 얘기를 하는 것일까. 왜 예수님은 아직 안 오시는 걸까.... 베다니 나사로 사건의 의문과 실망, 슬픔과 두려움은 단지 마리아와 마르다 가족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주님이 빨리 오셔서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재정도 질병도 모두 주님 앞에 가져다 놓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쥐고 있는 잣대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일 앞에서 꾸벅 꾸벅 졸다 마음이 점점 무감각해져갔고 그로 인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도 말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도 점차 사라져서 영적인 문맹이었다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잠을 자서였을까..... 다시 하나님의 음성듣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한가지다. 하나하나가 아무 소망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속박은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리라는 것,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거룩한 속박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의 삶에서 하나님에게 쓸모없이 버려지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나의 모든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완전한 부활에서 조안나 위버가 말한 영생은, 영원의 빛 가운데 사는 삶은 놀랍게도 지난 주에 이어 오늘 주일 설교와 같은 메시지였다. 죽음을 이기는 승리는 미래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영생이 지금 시작된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영생은 이미 시작되었다. 충만하게 살라. 하나님을 위해 순간을 소중히 살라. 지금보다 더 많이 갖고자 집착하지 말라. 과거의 상처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지 말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며 가진 것을 쌓아두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눠주라. 그리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시선은 하늘에 두라.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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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절박한 상황에서 만약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 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의 참담하한 심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지고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나 이런 상황에선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가?에 이르기가지 ..다양한 의심과 불신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기에 이른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린 사실을 요셉이 어두운 감옥에서 수년간을 기다렸던 사실을 야곱이 애매하게 일하며 기다렸던 그 시간을, 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수년을 묵묵히 참음으로 기다렸던 시간을....이 외에도 수 많은 기다림,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는 나와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이 자신과 같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성경은 늘 역설적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와는 다르고 그 시간속에 해답이 담겨 있다. 이미 죽어서 무덤 속에 갇혀 지내는 동생 나사로, 이로 인해서 낙담속에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찾아 오셔서 구원을 베푸셨던 주님의 이야기를 돌아 보면서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왜 그렇게 지체해야 하셨을까?를 조안나 위버가 조명하고 있다.
우리가 '왜'냐고 묻고 싶은 순간들에 이 나사로 이야기는 그 의문점을 플어주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 지체하신다'. 자신과 끝없는 영적인 전쟁을 치르며 바닥 까지 떨어져서 마지막 남은 회의의 모래알이 사라져야 비로소 반석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시간들이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투자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찾아 오시던 그 순간에 마리아와 마르다의 행동이 다르다. 이전에 예수님을 향해 달콤한 교제를 나눴던 마리아는 오히려 집에 앉아 있고 예수님의 사랑에 의심을 품었던 마르다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 나가는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를 자신이 쥐고 있는가? 아니면 그 의지를 예수님께 넘겨 드리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크게 반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작은 그림만 보며 한탄하고 있을 때 주님은 전체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응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예스;라고 하실 때보다는 '노'라고 말하실 때가 자주 있고 나사로의 경우처럼 '잠깐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최상의 응답일 때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기다림의 시간을 잘 참아내지 못하는데 있다.
눈 앞의 현실에 얽매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타이밍 박자에 귀 기울이며 내 삶의 통재권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맡긴다면 단 한순간도 인생을 허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다림도, 우리의 의문도, 우리의 고통까지도 결코 헛된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으면 된다." 이 얼마나 위로가 넘치는 말인가? 보이지 않는 손길 때문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향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 그 하나면 된다. 이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읽다보니 주제와 관련된 연관성이 떨어져서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쨋든 '하나님이 왜 그렇게 지체하셔야 했을까?"에 대한 단순한 답변이 아닌 포괄적인 핵심을 두루 알게 되었다. 기다림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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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고 긍정해 주기를 사람들은 원한다. 우리의 앞길이 답답해 보이고, 진척이 없어보이고, 왜 이럴까? 하는 맘이 들 때,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어지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을 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 매달린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한다. 구하는 자가 얻을 것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구하고 또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전을 넣고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 처럼,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답으로 즉각 응답하시지만은 않는다. 가끔, 난관에 부딪치고 답답한 어둠에 쌓일 때, 우리들은 우리들의 지혜를 총 동원해서 준비하고 찾아보고 계획해 보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본다. 그럼에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린 '하나님, 더 이상은 안되는데요. 도와 주세요!'라고 매달려본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매달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침묵으로 응답하실 때 가끔 원망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들려 드릴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한동안, 더할 수 없이 가라앉고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내게 원하시는 길인가,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나는 이러지? 그들과 내가 뭐가 달라서 이러지? 왜 내게?? 왜 나만? 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에 나는 함몰되어 버렸다. "하나님, 도대체 내게 왜 이러세요?"를 외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무섭고 싫었다.
하나님이 지체하실때! 그토록 사랑하신 나사로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이틀을 더 유하신 예수님! 진정 나사로를 사랑하셨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등으로 예수님의 미루심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던 순간들! 마리아와 마르다의 고통과 눈물을 아시는 예수님, 그들을 사랑하신 예수님!
돌맹이를 치우라는 명령에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다는, 냄새가 난다는 이성적인 사실앞에,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서 냄새가 나는 시체 나사로에게 "나오라"명하신 예수님! 그 명령에 순종한, 죽음의 맛을 본 나사로! 그리고, 수의를 풀고 나온 그 액션들!
절망의 순간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그 뜻이 내 뜻과 다를 때는 그 뜻을 헤아리기가 더욱 어렵고 받아들이기엔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 기도! 그 말처럼 귀한 말이 어디 있을까? 점점 그 말보다 귀한 말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요즈음! 깜깜하던 내 마음에 정말 한 줄기 빛같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낄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하며 이 귀한 책을 만날 수 있음이 너무나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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