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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즈가 요절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년배 미국인과 비교할 때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막연히나마 엄청 오래 살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바로 그가 아주 젊은 시절부터 천재적 재능을 빛내며 다량의 업적을 남겼다는 그 사실이 부르는 오해이다. 예스 상품 소개에 보면 이 영화가 1974년 작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쯤이면 웰즈 사후에 공개된 유작이라기도 할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작품이기는 하다. 웰즈는 이로부터 10년 뒤에 죽었는데, 이 해에는 율 브리너, 록 허드슨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타계했다. 두 사람은 각각 과도한 흡연으로 인한 폐암, 또 에이즈로 죽었기에 당대인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해 그들이 사망하던 시점, 그 주의 휴일에 특선 영화를 틀어 주었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다. KBS 2TV에서 '자이언트', 교육방송에서 '누구를 위하여... ', 그리고 KBS 2TV에서 '왕과 나', 교육방송에서 '제 3의 사나이'를 특집으로 방영하였다. 아마 브리너와 오슨 웰즈는 같은 위크에 죽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두고 웰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잘못 아는 경우도 있던데, 그가 감독 각본 주연까지 맡아 해서 주는 착각일 뿐이다. 사실 이 영화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로 보기 힘들고, 팩트와 역사적 사실, 그리고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 끝에 간간히 보이는 웰즈 자신의 깊은 상념이 배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이걸 '모큐멘터리'의 시초로 봐도 될 듯하다. 실제로 요즘 그 장르 제작자들이 오슨 웰즈의 이 작품을 알고나 있는지, 혹은 그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한국어 제목은 '거짓의 F'라고 저렇게 다소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브이 포 벤데타', '엠 포 머더'에서처럼, '(이때)F라고 할 때 F는 fake라고 할 때의 그 F다!'라는 의미이다. 이 fake라는 단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인데, 바로 이 영화가 희대의 모작, 위작 화가인 엘미르 데 호리(도리 혹은 드 오리로 읽지 않는 게 표준 발음이다. 프랑스에서 활약했으나 헝가리인이기 때문이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가짜 제작에 평생을 바친 어느 사기꾼에 대한 고발'로 일관하는 내용도 아니다. 가짜를 만들되 기막힌 솜씨로 만들면, 그에 대한 예술적 가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진짜와 가짜를 평가하는 기준은 대체 무엇이고, 어느 정도 높은 안목과 감식안을 지닌 자가 판정을 해야 가짜가 가짜가 되는 건지 매우 어려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도 예전에 어느 추리 소설에서, 아무리 들여다 봐도 판명이 되지 않아 결국 시 의회에서 표결을 통해 '이 작품은 진짜임'으로 정하고 마는 설정을 본 적 있다. 미술 전문가도 아닌 정치인들이 다수결로 예술의 진위를 결정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향후 이 작품이 거래를 통해 여러 오너의 손을 거칠 시, 선의취득이나 하자담보 등 법률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행정 조치에 불과할 것이다(책에 그런 말이 나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다). 그 소설에서 위작 작가는 미모의 젊은 여성인데, 나중에 한 번의 반전이 더 나오는 구성이다.
주인공은 데 호리 뿐이 아니다. 오슨 웰즈에게는 두 바퀴 도는 띠동갑인 여친 오야 코다르가 나오고, 하워드 휴즈에게 가짜 전기를 써서 출판했다고 해서 (한국인들에게도 대학 원서 교재 때문에 아주 유명한) 맥그로힐 출판사와 함께 묶여 제소당한 클리포드 어빙도 출연한다. 여기서 이들은,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허위인지가 순전히 사회적 권력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다소 애매한 푸념을 늘어놓고 있기도 하다. 내가 하나 밝혀 두고 싶은 건, 클리포드 어빙은 실제로 법정에서 자신이 허위 사실을 저술했음을 자백하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자가 '나는 네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자의 평소 언행이 얼마나 진실된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만약 언행일치가 되지 않고 전후 모순을 보이는 자라면, 그 자는 '진실이건 뭐건 내 맘에 안 들고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건 모조리 믿기 싫어!"라며 늙은 어리광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에 바른 태도와 지향이 자리 잡지를 못하고(어린 나이에 이게 심성에 자리를 해야 하는데, 때를 놓치면 다 저런 식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발버둥치다 일이 안 되니 '멀쩡한 남까지 죽어라'며 비방을 일삼는 것. 나는 사실 웰즈의 그 기발한 실험 정신과 '시민 케인'에서 드러났던 고발 정신에 경의를 표하지만, 그가 늙어서 제작한 이 영화에 그와는 정반대되는 듯한 견강부회 논리가 스며 있는 걸 보고 약간 당혹스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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