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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렇듯 ‘문명’이란 단어는 아주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다. 그러나 그 개념을 말하려고 하면, 좀 생각해야하고, 또 생각한다고 해도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문명 안으로>(한길사.2011년)는 문명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서 시작을 한다. 문명이라는 단어는 서구의 ‘civilization’이라는 단어의 번역어다. 그렇다면 영어단어인 ‘civilization’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터. 이 단어는 라틴어 키빌리스(civilis)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시민을 뜻한다. 시민을 뜻하다 보니 당연히 도시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18세기부터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뜻을 간단하게 풀이하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세련된 생활태도나 세련된 예절”을 의미한다. 이 뜻이 발전해서 지금은 “인류가 더 질 높은 삶을 꿈꾸며 만들어낸 인간 활동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단어가 동양에 들어온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다. 이 시기는 서양이 무력의 힘으로 중국을 침략할 때였다. 아편전쟁 때 중국은 영국의 강력한 군사력에 굴복하고 만다. 중국인들은 서양의 강함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고 했고. 그 서양의 강한 힘이 바로 ‘civilization’에서 나왔음을 알아낸다. 그렇지만 문명이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한 나라는 일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이라는 책을 썼고, 그 이후 문명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에 이른다. 문명이라는 단어의 반대편에는 반문명 혹은 야만, 원시가 자리한다. 그렇기에 문명이란 단어에는 태생적으로 차별이 존재한다. 문명이란 단어에 도시가 자리하고 있기에, 농촌은 반문명이나 야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국은 이슬람권을 야만의 나라로 내몰고 있으며, 지난 몇 세기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서구의 입장에서 다른 나라는 모두 야만적이고 원시적이었다. 그렇기에 그 야만적인 나라를 문명국으로 이끌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식민지화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문명이란 반드시 좋은 것이냐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반드시 따른다. <문명 밖으로>(한길사.2011년)는 주류 문명에 대한 반대나 저항 거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의 탐욕만 크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렇기에 차라리 문명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양에서도 루소 같은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쳤고, 동양에서도 ‘무위자연’을 숭상한 그룹이 있었다. 문명에는 또한 종교도 함께하고 있다. 서양은 동양의 문호를 열자마다 그들의 종교도 함께 가지고 왔다. 서구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바로 문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종교를 통해 그들은 반문명이고 야만적인 나라들을 문명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들에게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미신일 뿐만 아니라 야만의 상징이었다. 정말로 기독교만이 문명적인 종교인가?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에는 차별적인 의미가 존재한다. 중국은 중심이 되는 국가를 뜻한다. 따라 그들은 항상 자신을 문명국가라고 생각했고, 주변에 있는 나라는 모두 오랑캐라고 칭했다. 그들은 우리를 동이 즉 동쪽에 있는 오랑캐라고 불렀다. 정말로 중국만이 문명국가인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이러한 견해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도취에 빠져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문명 밖으로>의 저자는 ‘반문명은 행복한 삶, 좋은 세상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행복한 삶, 좋은 세상에 대한 ’다른‘ 해석“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