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75%
  • 리뷰 총점6 2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7.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은 물인가요, 불인가요?『숨은 밤』
"당신은 물인가요, 불인가요?『숨은 밤』" 내용보기
어둠이 내리면 만물은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쉼”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밤(夜) 뒤에 숨어 잠깐 깊은 휴식을 취한다. 빛이 잠시 사라진 틈은 활력과 생기를 뒤로 보내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 축적의 터널이 된다. 그 터널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둥근 돔의 형체가 살아나고 반원에서 밀려드는 빛에 잠시 눈이 부신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에너지를 축적하며 빛을 받아들이고
"당신은 물인가요, 불인가요?『숨은 밤』" 내용보기

어둠이 내리면 만물은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쉼”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밤(夜) 뒤에 숨어 잠깐 깊은 휴식을 취한다. 빛이 잠시 사라진 틈은 활력과 생기를 뒤로 보내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 축적의 터널이 된다. 그 터널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둥근 돔의 형체가 살아나고 반원에서 밀려드는 빛에 잠시 눈이 부신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에너지를 축적하며 빛을 받아들이고 반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간혹 어둠을 방패로 자신의 실체를 그때서야 드러내는 이도 있다. 기(基). 자신의 이름조차 명확하지 않고 존재도 인정받지 못해 사람취급 못 받는 기(基). ‘근본 없는 놈’의 상징이 기(基)다. 그는 사람들이 분풀이와 괄시의 대상이 필요할 때 딱인 존재였다. 기가 이 마을로 흘러들어오기 전의 과정은 생략되었다. 그가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난 외양간의 구유1)가 그의 두 번째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소녀가 있다. 이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소녀. 그녀도 정처 없긴 마찬가지나 당분간이라도 공식적인 주거 공간은 존재한다. 기가 잡역부로 일하는 여관의 404호. 그렇게 그들은 만나게 된다.

 

안(雁). 이름답게 정처 없이 떠돌다가, 정착한 마을. 자라난 곳은 물이 귀한 곳이었으나 고향을 찾겠노라 떠돌다 정착한 곳은 물이 흔한 곳이다. 거기에 하는 일도 물고기의 탁본을 뜨는 일. 소녀의 아버지가 안에게 딸의 뒤를 부탁하자 소녀의 생활비와 여관비를 책임진다. 그리고 짊어진 물의 업을 소녀에게 전수하려 한다. 안과 소녀의 묘한 선이 이야기의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그리고 장(薔). 그녀 역시 이름답게 물이 있어야 자라는 풀처럼 물의 주변을 맴돈다. 비정상적인 신체비율, 그러나 맑은 영혼을 가졌다. 아마도 약간의 지적 장애가 있는 듯하다. 장의 유일한 친구는 404호 소녀. 가장 잘 하는 것은 수영, 그러나 좋아하는 오빠 앞에서 수영솜씨를 뽐내다가 익사할 뻔한 기억을 갖게 된 후 그녀의 사랑은 익사하는 상상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리고....자신도.

 

젊은 군청 직원은 불분명한 형체를 지닌 등장인물이지만 이야기의 막바지로 갈수록 형체가 분명했음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열성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지만, 하는 일들은 대체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99p)라는 문장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읽을 수 있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나 기를 흠모하면서도 조정하는, 겁이 많은 공범자일 뿐이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어둠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불안한 손전등이나 랜턴이 그것을 발해준다. 그 복선은 어둠에 익숙한 인물들과 끝내 동화될 수 없음을 뜻하리라.

 

복잡하지 않은 등장인물의 구도이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서사 중심이 아닌 듯하면서 서사의 흐름에 힘이 있다. 서사의 진행이 조용하고 짧은 대화만 오간 듯한데 극 중 대립은 분명하다. 소년과 소녀, 물과 불, 빛과 어둠의 팽팽한 긴장은 이야기의 몰입을 높여준다. 하나의 선이 진행되는 과정에 약간의 진동만 있을 뿐인데, 왜 독자들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듯 긴장을 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건 작가 김유진의 솜씨가 그만큼 탁월하다는 결론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다는 “사랑의 전조, 즉 채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사라지는, 혹은 사라질 미완의 감정”(작가의 말)을 곧 균형이 무너질 지도 모를 외줄타기의 긴장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간다. 사건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으로.

 

불이 났다. 지난한 장마 이후, 물의 공포가 사라진 후, 여름이 발을 질질 끌듯이 느리게 가던 시간의 막바지에, 불이 났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물을 다루던 안(雁)의 실종과 동시, 불에서 미래를 본 기에 의해 온 마을이 불에 탄다. 그 불은 구유에서 시작되었다. 기(基)는 출생 자체를 거부하듯, 자신의 근원을 지우고 싶은 욕망을 대변하듯, 헛간의 구유에 화염병을 던졌다.

“불타는 헛간 안에서 손을 흔드는 어린 기가 있었다.”(192p)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던 기는 화염 속으로 사라진다.

 

작가는 끊임없이 물과 불을 대립시킨다. 물에서 희망을 발견한 안과 소녀와 장이 있다면 불에서 복수를 꿈꾸는 기와 젊은 군청 직원이 있다. 텃새가 심한 마을의 인심으로 보이지 않는 팍팍한 벽 밖으로 밀려나 감히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틈새로 물과 불이 만난다. 작가의 섬세한 응축으로 그런 대립을 성사시킨다. 물과 불의 속성을 은근히 내밀면서.

 

물에 대해 생각한다. 물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 물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물의 깊이, 물의 무자비함, 물의 포용력, 물의 차가움, 물의 따스함, 물의 우울, 물의 부재. (140p)

 

여관 옥상에 오른 기는 불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불은 빠르게 몸을 키웠다. 태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제 할 일을 끝내고 난 후엔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망설임 없이, 겸허하게. 기는 그러한 불의 속성이 마음에 들었다. 불은 들짐승보다도, 야생 민들레나 나팔꽃보다도 빠르게 태어나고 사라졌다. 사라진 후엔 사방에 악취를 풍겼다. 불에 그슬린 보도블록과 전봇대의 얼룩은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불은 존재감이 대단했다. 원하는 만큼의 크기로 몸체를 키우거나 줄이고, 지속 시간을 영원에 가깝게 늘리고 싶었다.(169p)

 

소녀는 돌눈물을 흘리는 병을 가지고 있다. 눈물이 말라버리면 눈을 뜰 수 없다. 위아래 눈꺼풀 사이로 차 있던 눈물이 마르면 눈곱이 자리 잡아 다시 눈물을 흘려 눈곱을 녹이던지 물로 씻어내던지 해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다. "돌눈물은 공포 속에서 태어났다."(109p)라는 문장에서 그 이유를 추적해본다. 과연 아버지가 돌아올까, 처음의 제자리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하는 초조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돌눈물은 시작된 듯하다.

 

기와 소녀는 불타는 마을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죽음 경계에서 무사히 삶의 경계로 넘어온 둘은 다시 숲에 들어섰다. 손을 잡았다. 그사이 어둠이 내린다. 어둠을 피해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동굴 속에서의 빛은 기의 호주머니 속 성냥불이 전부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으로 두렵지 않다. 그들에겐 이것이 하나의 터널일 뿐이다. 터널만 지나면 빛이 보일 테니까. 이곳이 둘에겐 3번째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그걸 증명하듯 소녀의 눈에는 더 이상 눈곱이 없다. 눈물도 없다. “어제와 다른 오늘”(205p)이 있을 뿐이다.

 

 


1)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책의 표지가 스산하면서 여명이 곧 올 것 같다. 표지가 아름다워서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YES마니아 : 로얄 g********s 2011.07.23. 신고 공감 13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 단 한 사람의 이해와 인정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사랑, 단 한 사람의 이해와 인정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내용보기
주사위는 던질 때마다 다른 숫자를 보여준다. 그것이 주사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숫자 1, 숫자 5로 기억될 수도 있다. 숫자1에서 숫자6까지 여섯 가지를 가진 물건, 소설가는 주사위를 닮았다. 매번 던질 때마다 같은 수가 나오는 주사위처럼 어떤 소설가는 소설에서 특정 서사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소설가의 소설은 매번 다른 수를 보여준다. 고유성
"사랑, 단 한 사람의 이해와 인정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내용보기

 주사위는 던질 때마다 다른 숫자를 보여준다. 그것이 주사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숫자 1, 숫자 5로 기억될 수도 있다. 숫자1에서 숫자6까지 여섯 가지를 가진 물건, 소설가는 주사위를 닮았다. 매번 던질 때마다 같은 수가 나오는 주사위처럼 어떤 소설가는 소설에서 특정 서사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소설가의 소설은 매번 다른 수를 보여준다. 고유성과 다양성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좋고 나쁨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김유진의 장편소설 『숨은 밤』을 읽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늑대의 문장』으로 만난 김유진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웠지만 매혹적이었다. 잔혹스러운 동화 그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장편소설 『숨은 밤』은 단편의 확장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성장하는 아이들과 비주류로 살아가는 주변인과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의 이야기.

 

 여관에서 보호자 없이 장기 투숙하는 화자 ‘나’와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 기(基)는 고아 아닌 고아다. 트럭을 몰며 장사를 하는 나의 아버지는 안(雁)에게 소녀를 부탁한다. 주변의 강으로 낚시를 하러 오는 이들과 여름 축제에 모여드는 곳이다. 안이 있다는 이유로 소녀는 이 마을에 온 것이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어탁을 하는 안과 ‘나’가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한 번씩 안의 집에 방문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 소년 기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마을에서 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보호자도 없다. 군청 직원만이 쌀과 도시락을 챙겨주며 작은 진심을 보였다. 기가 잠깐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직원의 배려였다. ‘나’는 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재활용 교복을 입고 자신보다 작은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전자에서 후자로 흐르는 삶,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자족하는 삶, 안은 그런 삶을 꾸릴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르면, 기는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기는 자기 자신조차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기에게서 뒤늦게 발견한 놀라울 정도의 유치함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의 말은 늘 옳았다.’ (95쪽)

 

 김유진은 여전히 불편하고 불투명하다. 걷어낼 수 없는 얇은 막으로 인물을 설명한다. 물론 기, 안, 장은 독특하다. ‘나’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장(薔)도 기와 안과 마찬가지다. ‘나’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김유진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기가 어떤 이유로 분노와 함께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돌봄을 받지 않았다는 포괄적인 범위가 아닌 마을에 불을 지른 직접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랑의 전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김유진의 말은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뜻으로 들린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나’와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기가 서로의 바라보고 있으니까. 단 한 사람의 이해와 인정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서툴고 퉁명스러운 기의 고백이 답이다.

 

 ‘너는 누굴 싫어해?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그럼 누굴 좋아해?
 나는 너를 좋아해.’ (203쪽)

r*********s 2016.03.2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다. 김유진 '숨은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다. 김유진 '숨은밤'" 내용보기
1981년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09년 소설집 '늑대의 문장' 출간. 2011년 단편소설 '여름'으로 제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 책 날개에 적혀있는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김유진 작가의 이미지는 '느릿하다' 였다. 2004년 여름이면 칠 년 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다. 김유진 '숨은밤'" 내용보기


1981년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09년 소설집 '늑대의 문장' 출간. 2011년 단편소설 '여름'으로 제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 책 날개에 적혀있는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김유진 작가의 이미지는 '느릿하다' 였다. 2004년 여름이면 칠 년 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는 오년이란 시간이 흐른 2009년 봄이 되어서야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한 소설집을 묶어냈다. 물론 글을 써낸다는게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뚝딱한다고 뚝딱 나오는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녀의 작품을 기다린 독자들에게 그만큼의 시간은 절대시간보다 훨씬 더디게 흘럿을테니..

 

그리고 다시 이 년이 지난 2011년 여름, 소설가 김유진 씨는 첫 장편소설을 세상에 선보였다. 삼 개월 반 동안 문학동네 온라인 카페에서 연재되었다는 '숨은밤'. 책날개에는 '연재를 시작하며'에 작가가 적어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소설은 이방인이자 여행자인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가둬두고 있어 갑갑했을 두 아이들을 이제야 내놓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예측불가능함으로 가득 차 있어, 때때로 난감할 것이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할 때도 있겠지만, 분명 안온한 한때가, 마주 보며 멋쩍게 웃어 보일 때가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 기(基), 안(雁), 장(薔). 한 소년과 한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고있는 김유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 '숨은밤'은 불안과 분노에 관한 정밀한 보고서인 동시에, 사랑의 전조에 관한 은밀한 서사시이다. 여기, 희미한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어느 날 헛간의 썩은 볏짚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기(基)'이다. 다른 아이는 트럭을 끌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가 여관에 맡겨두었다. 그 소녀는 기가 일하는 여관의 '404호'에 산다. 소년과 소녀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 친해지고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는 건 김유진의 화법이 아니다. 다만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그들은 여름 휴양지로 반짝 성수기를 이루는 이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마을에 안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이윽고 분노한다. 그리고 소년은 마을에 불을 지른다.

 


작가의 이름은 종종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책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든 건 책의 뒷표지에 적혀있던 문구였다. 너는 누굴 싫어해?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그럼 누굴 좋아해? 나는 너를 좋아해. 주고받는 짧은 문구안에 여러가지 감정을 그러모아놓은 듯한 이 문구.

어두운 밤, 어느 한 곳에서만 환한 불이 비치고 있는 단순한 표지를 가진 이 책에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짤막한 문구를 접한 첫 느낌은..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궁금함이 가장 가까웠을 것 같다.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의아함이랄까..

 

어떤 내용인지조차 모르고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책을 고를때가 있긴하지만, 좀 심하게 애매했다. 그렇게 펼쳐든 김유진 작가의 '숨은밤'은 장편소설임에도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작품이다. 배경은 그렇다 쳐도, 등장인물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가 그려지질 않았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하지만 내가 그린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기'는 아이였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소녀라기보다는 아가씨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두번이나 읽고도 어떤 이야기를 담고있는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확 마음에 와닿지를 않았다. 작품의 처음과 끝에 자리한건 소년 '기'가 일으킨 방화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게 내가 이 작품을 어렵다..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걸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건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다. 라는 출판사 서평에 담겨있던 짤막한 두 문구였다.

'기'는(물론 나머지 등장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사회에서 이방인이고 미완성인 '소년'이었다.

 

그리고 등장하는 소년은 '소녀'인 나와 작은 동굴에서 서로에게 의지한다. 이방인이고, 미완성인 둘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좋아한다. 물론 작품 안에서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마음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작가의 말에 담겨있는 것처럼 소설가 김유진은 찬란한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랑의 전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채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사라지는, 혹은 사라질 미완의 감정에 대해 적었다.

 

그들의 삶이 미완인 것처럼 그들의 마음 역시 아직 미완이다. 극복은 커녕 견뎌내기도 어려운 이방인이라는 무력감이 방화를 통해 표출되지만

아직은 미완인 그들의 마음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건, 작가와 독자 모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l******i 2011.10.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로테스크한 몽환의 분위기 속, 간결한 문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그들... 숨은 밤
"그로테스크한 몽환의 분위기 속, 간결한 문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그들... 숨은 밤" 내용보기
마을은 불 타오르고 소년 기와 소녀인 나는 산에 오른다. 소년 기가 앞서 달리고 소녀인 나는 그의 뒤를 따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저 멀리 마을 아래에서 불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나귀를 발견한다. 결국 나귀는 산에 오르지 못하고, 소녀는 살이 타는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한다. 기는 소녀의 손을 잡고, 마을의 저편으로 다시 달리기
"그로테스크한 몽환의 분위기 속, 간결한 문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그들... 숨은 밤" 내용보기
  마을은 불 타오르고 소년 기와 소녀인 나는 산에 오른다. 소년 기가 앞서 달리고 소녀인 나는 그의 뒤를 따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저 멀리 마을 아래에서 불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나귀를 발견한다. 결국 나귀는 산에 오르지 못하고, 소녀는 살이 타는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한다. 기는 소녀의 손을 잡고, 마을의 저편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불이 붙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나와 기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은 그러나 곧이어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린다. 그 탄생의 지점이 애매하기만한 기가 어떻게 마을에 들어왔으며 또한 어떻게 노인의 집을 은근슬쩍 자신의 집으로 탈바꿈시켰는지를 짧게 언급하고, 여관 잡역부로 살아가는 현재의 기에게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러한 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기가 일하는 여관방 404호에서 홀로 숙식을 하며 살아가는 나, 그렇게 기의 뒤를 쫓는 나를 따르는 것이 소설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볼에 닿았다. 몸이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침대에 머물렀다. 빗소리가 꼭 닭 튀기는 소리 같았다. 햇빛이 없었으므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사실 김유진의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명약관화, 간결한 문장들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간결한 문장들은 정상에서 굴러 내리는 눈덩이와도 같아서, 뒷 문장이 앞 문장을 품고, 지금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덮어 쓰면서 점점 덩치를 키운다. 그리고 그 명약관화 하던 문장은 어느 순간 그로테스크한 몽환의 분위기 혹은 농염하고 애매한 뉘앙스의 한 켠으로 조용히 물러 앉는 것이다.


  “아버지의 발자국은 크고 깊었다. 나는 그 발자국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발끝을 스친 눈 벽의 가장자리가 무너졌다. 이미 발끝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발자국의 내부는 한없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순간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훈훈한 문장은 금세 냉정하고 차가와지기 일쑤이고, 어느 한 곳을 향한 따듯한 시선이 일정 시간 이상 유지되는 법은 없다. 리얼한 묘사 같은 것은 애당초 작가의 관심 밖인 듯 하니,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성별이나 연령대를 알아 차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저 막연하게 기와 나의 행동 양태들을 확인하면서, 혹은 나의 곁에서 나를 보호하는 후견인의 노릇을 하는 안과 나의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전자에서 후자로 흐르는 삶,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자족하는 삶, 안은 그런 삶을 꾸릴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소설은 아직 어른이라고 볼 수 없는 나와 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삶으로 넘어가기 전, 그렇지만 이쪽의 삶에서 저쪽의 삶을 건너다볼 수 있을 정도로 한참을 달려버린,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름답고 튼튼한 울타리를 쳐야 하는 시기에 도달한 나와 기의 세찬 뜀뛰기의 기록에 가까워 보인다. 더불어 작가 또한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그 뒤를 따르기만 하는 것으로 보여짐은 물론 안타깝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1.1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