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네비게이션이나 구글지도 등의 등장으로 굳이 종이로 만들어진 지도에서 목적지를 찾는 수고를 덜게 됐다. 기술의 발달로 지도도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의 지도가 등장하고 있어서 대체 지도가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위성을 통해 정확하고 다양한 지리적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과학기술 덕분에 지도가 업그레이드 되고 있지만 기술이 없던 조선시절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발전해갔던 것일까.
'조선의 지도천재들'에서는 조선시대 지도의 제작과 제작인들에 대해 살피고 있는데, 생각보다 조선 지도의 수준이 높았고 정리된 지리적 정보와 수요가 많았다는 것은 의외였다.조선은 통치를 위해 지리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 확보하고 있었고, 그 정보를 활용한 지리지와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 중앙집권적 권력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또 국방을 위해 지리지와 지도가 필수적이었기에 조정에서는 지리지와 지도제작을 지원했던 것이다.
흔히 조선시대 지도는 측량기술이 떨어져 실제 모습이나 거리와 차이가 크다고들 지적하는데, 필자는 이 지적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즉 측량을 바탕으로 한 정확성에서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당시 조선상황을 살펴보면 기계적인 거리보다는 실제적으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거리가 더 생활에 필요했고 유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목 '조선의 지도천재들'에 어울리게 조선의 지도 제작자 들이 이룬 성취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언급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일조일석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호 이전에도 여러 지도 제작자들이 고민하고 개선한 결과 수준 높은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체계적으로 정리됐던 지리지를 비롯한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백리척이나 경위도, 색과 기호등을 활용되면서 정확성과 정보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정척과 양성지, 정상기,정철조, 신경준으로 지도 제작자들 계보가 이어졌으며 이들은 전문가적 지식과 열정으로 지도를 질적으로 양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갔던 것이다.
국가의 지원아래 이루어진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는 중부지방 부분을 정확하게 담았고, 그 누구보다 정확성을 고민했던 정상기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축적을 적용해 '동국지도'를 완성했다. 정철조는 정상기의 지도를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수정해 더 제사하고 정확한 전국지도를 표현할 수 있었고, 정상기가 백척리를 활용했다면 20리 눈금선을 지도에 담아내 모든 고을에 동일한 축적을 적용한 인물은 신경준이었다.
이들은 정확성와 사용편의, 보급까지 고민하면서 지도를 제작해갔고,이리하여 통치를 위한 필요에 의해 제작된 지도들은 점점 실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좀더 정확하게, 좀더 소지하기 간편하고 좀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졌고 더불어 목판본 인쇄본으로 제작되면서 보급도 늘어나게 됐다.
'조선의 지도천재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구 지도에 비해 정확성에 떨어진다고 우리 지도를 필요 이상으로 폄하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우리 실정을 감안해야지 과도하게 근대성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렸다. 서양이 무역을 통한 이익을 확보하고자 해상탐험에 나섰고, 그 결과 직접 탐사하고 측량한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지도가 점점 정확해져갔다는 사실, 그리고 그 무역이익의 대상지가 아니었고, 또 스스로 쇄국의 길을 걸었기에 조선땅은 세계지도에서 가장 늦게 등장하는 결과를 빚었다. 쇄국적이었던 조선은 금해(禁海) 정책으로 땅 중심의 지도를 제작했지만 바닷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그 결과 바다나 섬 부분 지도는 부정확하게 그려질 수 밖에 없었고, 조선 지도에 반영됐던 것이다.
|
|
야구선수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리그를 평정하고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뒤, LA 다저스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한국 리그에서도 최정상급 성적을 보인 그는 실력적으로 더욱 상위리그로 여겨지는 메이저리그에서까지 그 성적을 이어가면서, 소위 '야구 천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류현진의 야구선수로서 능력은 과연 개인의 자질만으로 이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저개발 국가에서 빈민으로 태어나 야구를 할 능력이 전혀 되지 않았거나 야구가 전혀 대중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대단한 야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야구 천재 류현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능 및 노력에 더불어, 그 사회가 야구 천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재능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천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자질과 인적 관계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갖고 있던 잠재적 가능성과 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것을 파악하는 것이 꼭 전제되어야 한다. (p.117) 조선의 지도학자와 관련된 내용의 책이지만 뜬금없이 '천재에 대한 소고'로 글을 시작했다. <조선의 지도 천재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조선의 수많은 지도 천재들에 대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에는 김정호를 포함하여 정척, 양성지, 정상기, 신경준 등 수많은 지도 천재들이 있었다. 이들의 개인적인 능력을 찬양하기에 앞서, 방금 언급한 '천재에 대한 소고'를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도 천재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조선 사회가 지도 천재를 탄생시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여야 조선시대의 지도학자 및 고지도에 대해서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관찬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 사회의 지리 정보 축적의 클라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리지이다. 조선 사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리 정보의 축적이 우수하였다. 그 이유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거나 장사하는 이들이 많아서가 결코 아니다(저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여행의 편의를 위해 분첩절첩식으로 제작되고 도로에 눈금을 표시했다는 내용을 비판한다. 이 부분에서는 일반적인 통설에 대해서 저자가 도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조선이 매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전 고을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수도에서 모든 행정사항을 통제해야 했던 조선 정부는, 각 지방으로 가는 방향, 각 지방의 자연 및 인문지리적 정보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국가에서는 관찬지리지를 제작했는데,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지리지의 지리 정보는 지도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조선이 고려처럼 지방분권 국가였으면 지리 정보의 구체성 및 고지도의 제작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결코 고려보다 조선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저자는 단선적인 사회진화론으로 고지도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 결국 조선의 중앙 권력이 지방을 통치하고 관리한다는 사회적 현상이 지리지 및 지도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도는 근본적으로 왕궁과 같은 곳에 앉아서 가보지도 않은 곳을 한눈에 이미지로 파악하면서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배-피지배 관계의 탄생 즉, 인류 문명의 탄생은 지도의 탄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p.30~31)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나서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2부에서는 고지도 및 지도 제작의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조선의 풍부한 지리 정보의 특징과 그 원동력, 지리 정보의 획득을 통한 지도 제작의 방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3~5부에서는 조선 전기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부터 시작해서, 동람도식 소형 지도, 조선 후기 정상기의 동국지도 및 동국지도 계열의 지도들, 신경준의 지도 등에 대해서 차례로 다룬다. 각 지도를 읽는 시선에서 형태의 정확성, 축척의 유무 등 현대 지형도의 잣대로 단선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대신에 지도에서 읽을 수 있는 지도 탄생의 사회적 배경, 지도 제작자의 일생 및 지도 제작의 목적, 지도 계보학적 관점에서 지도의 변천과정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지도 내의 여러 요소와 지리지에 실린 지리 정보를 살펴보고 지도의 오류를 찾아내기도 한다(이 부분에서 저자는 무비판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조선의 지도에 관한 찬양을 지양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 필사본. ![]() 지도 계보학적 관점에서 여러 지도를 비교하고 지리 정보의 오류를 찾아내는 모습. 저자의 조선 고지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선시대의 지리 정보 및 고지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평가를 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전에서 지도의 정의를 살펴보면, "지표 위의 지리 정보를 일정한 비율로 축소한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사실 지도라기보단, '현대 지형도'에 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측량 기술에 의해 제작되어 정확한 축척을 가진 지형도를 모든 지도의 정의에 포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통해 고지도를 바라본다면, "축척이 존재하지 않고 거리, 면적 정보가 부정확한 지도로, 그림으로 분류됨" 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지도가 단선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현대 지형도로 발전했다는 관점으로 고지도를 바라본다면, 동국지도, 대동여지도 등에서 거리, 면적 정보의 정확성이라는 점에만 주목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지도 내 지리정보의 풍부성, 지도가 재현하려는 세계관 및 지도의 목적에 대해서 놓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근대화에 대한 컴플렉스로 보고, "근대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이 책은 "근대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근대와 새로운 전통 문명을 향해 달려가고자(p.6)" 하는 목적으로 조선의 지리 정보 및 고지도를 해석한다는 점이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역사지리학 분야의 소장학자이다. 자신의 주장을 가감없이 저서에 드러내다 보니, 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대치되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튀기 위한 주장을 한다기보다, 자신의 연구 철학이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는 부분이 많아서,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지도학적 우수성에 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조선 고지도 여행'이라는 시리즈물의 1편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아는 조선 지도학자인 김정호, 조선 고지도인 대동여지도는 빠져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시리즈물의 2편인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에 잘 나와 있다. 김정호 얘기는 너무나도 할 게 많아, 별개의 책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두 책을 함께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