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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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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출판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요약본만 읽어보았던 경험이 있다. 공자왈 하는 체면의 문화가 무너져야만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있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있는 허례허식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아무래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책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용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한절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이렇게까지 펼쳐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렇게 한절말씀을 가지고 성경전체를 풀어간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의 설교가 아닌 여러편의 설교를 한다는 것은 더 놀라울만한 경험이었다. 외국의 목사님들의 경우, 대표적으로 마틴로이드 존스목사님께서 요한복음 4장을 가지고 "생수시리즈" 4권을 펴내신 것을 읽으면서,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윤재 목사님의 책,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로이드존스 목사님 버금가는 영력을 지니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전임 목사님이 이중표 목사님 같은 분이셨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목회를 시작한다고 하는 것이 굉장한 어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든지 예상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한신교회를 이끌어 오신 목사님의 리더십이나 영력은 참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노하우와 그 영력이 이 책을 통해서 사실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리고 성경의 가장 핵심 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한절의 말씀을 가지고 성경전체를 풀어가는 목사님의 논리와 설교 말씀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내 자아가 죽고, 내 자아가 죽은 자만이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다. 이 사실은 맞는 것 같다. 내 자아가 죽었는데, 무슨 고집과 아집이 있겠는가? 교회에서 문제는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말하지는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목사님께서 설교집을 통해서 공공연히 밖으로 내어 놓으신 것 또한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살아 역사하셔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것이요, 은혜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는 것 또한 힘들다. 사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만 인정하고 산다면, 신앙생활에 걸림돌도 사라질 것이고, 내 자아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모습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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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은 지 오래된 신자들이면 4영리를 알고 있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은 성경의 본질적 메시지를 압축한 말씀이다. 이것이 믿어지고 이 말씀의 비밀을 안다는 것만으로 나는 천국 백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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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별세함으로 모든 사람을 별세시키듯 목회자가 별세되어야 교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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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목사님의 책을 ;광야의 영성'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때 한신교회와 별세 신학 이라는 단어가 한번에 조화를 이루며 이윤재 목사님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서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통해서 이윤재 목사님이 받았던 말씀의 깊이와 은혜를 함께 누리게 되었다.
이 책은 이윤재 목사님이 느끼고 묵상했던 내용들을 갈2장 20절 말씀속에 투영한 것 이라 볼 수 있다. 일상에서나 목회현장에서 목사님 자신이 죽고 살았던 기록의 번복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수없이 자아를 버렸다가 찾았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비춰보게 되고 그 속에서 다시 한번 결단을 하게 되는 책이다.
예수님이 별세하셔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었듯이 목회자가 별세해야 교인들이 별 세할 수 있다는 이중표 목사의 별세목회를 계승하고 있기에 이 책의 주제도 철저하게 거기에 초점 이 맞춰져 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가?'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살았는가?' '나는 예수님과 함 께 세상을 살리고 있는가?'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매일 자신의 죽음을 경험 하는 것이 영성생활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이 기본을 뒤집으며 우리는 기본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목회자 한 개인의 진솔한 고백이 오히려 내 모습을 더 부끄 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개 목회자의 경우,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우리가 보기 때문에 그 이면에 감춰진 인성과 품성을 우리가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간과할 수 도 있는데 목사님은 아주 솔직하 게 자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시면서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기도원에서 3주간 금식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이 부서지는 체험을 하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고 느껴지면서 이 말씀이 한 구절 한구절 폐부를 찌르면서 강력한 검으로 작용 했던 것 같다. 목회자의 '자기반성'은 어떤 열마디 백마디의 설교보다 더 성도들의 마음을 뒤흔들 어 정화작용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많은 자기반성은 아울러 우리가 어떻게 죽어야 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 나 야 하는지를 그리고 살아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부흥' 성공' 잘 되는 것''성공주의'..등등의 것들이 죽어 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일반 성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아를 깨뜨리고 날마다 코람데오의 삶을 살 것을 끝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아가도록 견책하는 채찍으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 성도들 보다는 특히 목회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앞으로 하실 분들이 꼭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갈2장 20절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다. 우리 가 나온것도 예수님이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도 예수님이다. 그것이 위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한 모금의 물도 아니고 한움큼의 양식도 아닌 낮 아지고 깨어지셨던 예수님의 영성이어야 한다. 예수결핍 시대에 사는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는 '교회부 흥'이나 사람으로 채워지는 교회가 아닌 '잘되는 우리'가 아닌 <예수로 채워지는 삶>이다.
"'주님과 상관없이 너무 바빠진 자신 때문에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제가 또 주님을 잃었습니다. 목회는 성공하는데 주님과의 관계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없는 저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주님 없는 성공보다 차라리 주님 있는 실패를 택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저자의 목회와 삶에 분명한 주인으로 모시게 한 책 뒷표지에 있는 위의 레마 의 말씀이 오래도록 나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것은 비단 목회에 국한 된 일만이 아니라 우리 의 일상과 자신과 관계된 모든 일에 적용을 해볼 말씀이다. 행복에 겨워 하면서도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인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안에서'의 삶 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삶이다.
'자기열심'과 '예수님을 사랑'해서 하는 목회나 교회일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것이다 . 예수님이 없는데도 얼마든지 성공을 할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어버린 목회는 얼마나 비참할 것인 가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성도들에게도 모두에게.. 목회자가 교회의 부흥과 성공을 바라는 것과는 달리 그것 보다 먼저 성화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목사님의 말씀 중에서 특히 '~를 위하여 '보다는 '~를 통하여'가 중요하다는 말을 새겨 듣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누구나 '예수님 을 위하여'라는 말을 쓰기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말 보다는 '예수님을 통하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유 는 '위하여'의 주인공은 '나'이지만 '통하여'는 내가 수단이 되고 주님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그렇 다.
우리가 '자기'라는 원안에 갇혀 있다면 결코 세상을 향해 나갈 수도 없고 세상을 살 릴수도 없다. 물론 이것이 자신을 죽인후에 그 전제하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나를 넘어서고 정복하 지 않고서는 세상을 향해서도 아무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게 된다.
이 책은 이윤재 목사님이 자기를 죽이는 과정의 고백의 기록이면서 갈2장 20절을 통 한 '나'를 죽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기록이다. 목회자아상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목회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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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스펄전 목사님께서 서재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모님이 목사님 왜 그렇게 우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 침묵 속에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도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아서 이렇게 울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은 현장이 십자가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잘 생각하지 않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의미 조차도 깊이 가슴에 와 닫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십자가의 의미를 통해서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이윤재 목사님의 책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에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며 깨낸 보화이다. 우리는 익숙한 말씀에 잘 은혜를 받지 못한다. 우리도 이 말씀을 얼마나 암송하고, 많이 들어왔는가? 그런데 감동이 있는가? 눈물이 있는가? 나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이 말씀을 통해서 진정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은 우리의 삶을 다시 예수님에게 돌아가게 만들고, 다시 예수님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교회가 변질되고, 신앙이 변질되었는지를 보려면 예수님에게 집중하고,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집중하는 삶이냐? 아니냐? 를 점검해야 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교회와 신앙이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세태 속에서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우리의 삶을 다시 예수님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에서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밀려나 계신 예수님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모셔오게 만든다. 이 책의 핵심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으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말은 복음의 진수 중에 진수이다. 우리의 삶과 신앙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말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살고, 나의 삶 전부가 예수님으로 살도록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전을 준다. 우리는 내가 죽고 예수로 살게 하는 삶을 날마다 철저하게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능력이 없고, 생명이 없는 무기력한 삶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은 오직 내가 죽고 예수로 살게 하는 삶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런데 나의 삶을 보면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말은 쉽지만 죽는게 그렇게 쉽지 않는 것 같다. 어렵다고 포기하고, 힘들다고 따라가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고 혼자만 간다고 주저 않는다. 그리고 다른 것에 관심을 빼앗긴다.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인가? 분명한 것은 잘못된 길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신 예수님이 이끄시는 삶,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님께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주님이 이루기를 원하는 삶을 날마다 이루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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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죽임과 관련된 비슷한 책들이 많다.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 시리즈도 그렇고 유기성 목사님의 나는 죽고....라는 책도 그렇다. 그리고 저자가 또 하나의 책을 내놓았다. 바로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이 책이다 아마 이렇게 비슷한 부류의 책이 출간되는 것은 사실 기독교안에 있는 가장 중심 주제가 자아죽임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개인적인 겸양과 겸손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살기에.. 사실 이 책을 쓴 저자는 고 이중표 목사님의 별세신학을 이어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삶이 아닌가? 그 뒤를 이으면서 바로 앞분의 신학을 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목회 자신만의 길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를 죽이면서 이런 계승이야말로 저자가 얼마나 깊은 영성의 소유자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통해서 저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하는 목회, 내가 하는 설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라는 진지한 자기성찰과 반성이 담겨져 있는 이 책은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예외가 없고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먼저 관계를 우선적으로 정립해야지 사역이 우선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오랫동안 금식하고 묵상한 결과로 내놓은 14개의 설교는 기독교가 가야할 방향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먼저 죽고, 그리고 다시 살고, 그런 후에 살리는 삶을 사는 것! 사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이 아닌가? 때문에 우리는 “죽다”라는 것에 우리의 정체성을 걸고 있다. 예수님이 죽으심이 우리를 살리셨기에,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을 얻기 위한 귀한 통로인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다에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님께서 가진 놀라운 능력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알려준다. 내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가장 중심이 아니겠는가? 살리다에서는 예수님께서 삶을 사신 방식으로 그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작은 섬김과 봉사가 그들에게 생명을 알게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아니 한국교회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절실하게 말한다. 교회가 대형교회 유명교회가 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복음의 삶,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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